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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글/노동당 기관지

‘특종’에서 ‘오보’로 전락, 권력 따라 춤추는 언론보도

하루에도 수천 개의 기사가 쏟아져 나온다. 그 중에는 팩트가 틀린, ‘오보도 많다. 하지만 오보가 오보가 되는 과정이 꼭 공정하지는 않다. 팩트가 틀렸다는 이유로 오보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굉장히 석연치 않은 이유로 오보가 되어버린 특종이 있다.

국민일보는 지난해 104·1면 기사 <‘不通 청와대진영 파동 불렀다>에서 진영 당시 복지부 장관이 사퇴한 이유에 대해 단독보도를 했다. 국민일보에 따르면 진영 전 장관은 기초연금을 국민연금과 연계하는 방식에 반대하기 위해 박근혜 대통령과 면담을 신청했으나 청와대 비서실로부터 면담을 거부당했다. 국민일보는 이 면담 거부가 진영 전 장관의 사퇴 이유라고 보도했다. 또한 여권 관계자의 말을 빌려 최원영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이 자신이 주도한 수정안을 진 전 장관이 동의한 안인 것처럼 박 대통령에게 허위보고를 한 정황도 드러났다고 전했다.



박근혜 정부 불통꼬집은 국민일보 특종갑자기 오보인정?

이 특종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 복지부장관까지 반대하는 안을 밀어붙이면서 장관 면담조차 거부한 박근혜 정부 불통의 진면목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사실무근이라며 1017일 서울남부지법에 정정보도 청구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박근혜 정부 들어 청와대가 언론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첫 사례였다.

그런데 소송 관련 변론이 진행될 예정이었던 올해 2, 갑자기 국민일보가 단독보도를 뒤집었다. 국민일보는 252면 기사 <진영 복지장관 면담 요청, 청와대 거부 없었다>에서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정부의 기초연금안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과의 면담을 신청했다가 청와대 비서실로부터 거절당했다는 국민일보 2013104일자 보도와 관련, 청와대가 밝힌 정황과 여러 증거를 종합한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고 밝혔다.

국민일보는 진 전 장관의 면담 요청을 김기춘 비서실장이 묵살했다는 대목은 사실무근으로 확인됐다최원영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이 진 전 장관을 배제한 채 복지부 내 기초연금 정책을 담당하는 실국에 직접 지시해 만든 국민연금 연계안을 마치 장관 동의를 받은 것처럼 박 대통령에게 허위 보고했다는 주장 역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고 전했다. 특종이 한순간에 오보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이후 국민일보는 홈페이지에서 1041면 기사 <‘不通 청와대진영 파동 불렀다>3면 관련 기사 <청와대 비서실에 막혀 식물장관 무력감사퇴 항명>를 모두 삭제했다.

필자는 소송이 한창 진행 중이던 지난해 12월 국민일보 측 허윤 변호사와 통화를 한 적이 있다. 허윤 변호사는 “(청와대의 소송은) 권력이 언론의 감시와 견제를 받지 않겠다는 생각이라며 우리는 보도가 진실이라고 믿고, 취재기자도 복수의 팩트 체크를 했다. 진실을 썼는데 손해배상에 정정보도까지 청구하는 것은 언론이기를 포기하라는 요구로, 언론사 입장에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근거가 탄탄하고 반론권도 보장됐기에 문제없다는 것. 그런데 입장이 갑자기 바뀐 것이다.

청와대 소송 피하려고 단독보도 뒤집었나

결국 청와대와의 소송을 피하기 위해 보도를 뒤집었다는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전국언론노조 국민일보 지부는 대자보를 통해 정치부 등을 통해 기사가 나간 배경을 들어보니 이 기사는 청와대가 진영 파동기사를 상대로 제기한 정정보도 청구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종료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작성됐다소송의 대상이 된 기사를 우리 스스로 오보라고 밝혔으니 청와대가 소송을 유지할 이유가 없어지는 셈이라고 말했다.

국민일보와 청와대 간의 소송이 진행되던 와중 양 측의 협상이 있었고 소송을 종료시키기 위해 국민일보가 기사를 통해 오보를 인정하는 방식을 수용했다는 것이다. 필자도 기자 생활을 한 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기사를 통해 자사 보도를 뒤집는 경우는 처음 봤다. 보통 오보임이 드러났을 경우 바로잡습니다알려왔습니다등 반론보도문이나 정정보도문을 싣는다. 이 오보가 진짜 오보가 아니라, 협상에 의해 오보라고 하기로 합의된 사항임을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정황은 하나 더 있다. 특종을 오보로 인정한 이 기사에는 내용이 하나도 없다. ‘기사가 사실이 아니다는 주장만 있을 뿐 어떤 과정을 거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는지에 대한 내용이 전혀 없다. 국민일보 노조는 “(기사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고 확인됐다는 데 기자가 이를 어떻게 밝히고 확인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우리 기사를 우리 스스로 검증한 결과 오보로 판정한 것인데 그 태도가 너무나 쿨 해서 기이할 정도라고 꼬집었다.

소송을 맡았던 허윤 변호사와 다시 통화했다. 허 변호사는 말씀드리기 애매하다. 회사의 정책적 판단에 따른 것이라 생각 된다고 말했다. 회사의 정책적 판단이란, 청와대와의 소송을 피하기 위해 오보임을 쿨하게 인정하는 것일까?



국민일보 노조는 이번 기사가 사실에 진 결과였다면 얼마든지 수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기사는 사실에 진 게 아니라 청와대, 김기춘, 소송 등 압력에 진 결과로 나온 것이라는 게 분명해지고 있다이런 식으로 소송은 피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언론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품위조차 내다버렸다는 비난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 밝혔다.

오보란 팩트가 틀린 기사다. 기자 입장에서 실수를 할 수도 있고, 오보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팩트가 틀린 것이 아닌 데도 오보가 되면 제정신이 박힌기자라면 열 받을 수밖에 없다. 열심히 취재해서 쓴 기사가 한 순간에 오보가 되어버린 셈이기 때문이다. 국민일보의 한 기자는 협상을 할 수는 있지만 언론이 자신의 보도를 스스로 사실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건 너무 굴욕적이라고 말했다.

특종보도 뒤집었을까

눈치 빠른 독자라면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국민일보가 청와대와 소송을 피하기 위해 보도를 뒤집었다면, ‘라는 질문이 남는다. 팩트라면, 근거가 명확하다면 소송에서 지지 않을 텐데 왜 국민일보가 물러난 것일까? 스스로 특종을 오보라 인정하는 굴욕을 감내하면서 말이다.

이 부분은 아직 사실이 밝혀지지 않았기에 함부로 이야기하기 어렵다. 하지만 막연하게 이 보도를 둘러싸고 상상 밖의 큰 그림이 그려졌을 수도 있다는 추론은 할 수 있다.

언론은 이처럼 팩트와 진실만 가지고 움직이지 않는다. 기사 하나를 둘러싸고도 엄청난 정치가 있고, 권력이 이에 개입하기도 한다. ‘석연치 않은 오보를 통해 우리는 언론의 속성을 들여다볼 수 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오보를 단지 팩트가 틀린것으로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 점을 유념하면 언론보도 속 행간을 더 잘 읽어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