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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글/노동당 기관지

통합진보당 당원들이 구덩이를 팠다?

지난해 12월 초유의 통합진보당 해산사건이 있었다. 이번 정당해산은 2013년 8월 진보당 내란음모사건에서 시작됐다. 진보당에 사람들의 눈과 귀가 쏠렸고, 당연히 언론도 득달 같이 달려들었다. 이 과정에서 몇몇 언론들은 온갖 것들을 다 진보당과 ‘무리하게’ 연관시키는 보도를 쏟아냈다. 당연히 오보도 속출했다. 밀양 송전탑 공사현장을 전한 뉴시스의 보도가 대표 사례였다.

통합진보당 당원들이 밀양 송전탑 현장에서 구덩이 팠다?

지난 2013년 10월 초 한국전력이 밀양 송전탑 공사를 강행하겠다고 밝히면서 송전탑 반대 주민들과의 충돌이 벌어진 적이 있다. 공사현장 곳곳에서 충돌이 벌어지면서 많은 언론들이 밀양 현장을 취재했다.

그 중 민영통신사인 뉴시스의 기사가 문제가 됐다. 뉴시스는 10월 6일 기사 <구덩이 판 사람은 통진당 당원들>에서 공사현장에 있던 구덩이를 밀양 주민이 아니라 통합진보당 당원들이 팠고, 그곳에 걸려 있던 목줄도 통합진보당 당원들이 걸어뒀다고 보도했다. 구덩이와 목줄은 주민들이 목숨 걸고 송전탑을 막겠다는 의지의 표현인데, 이 기사에 따르면 통합진보당이 주민들의 극렬 투쟁을 부추긴 셈이다.

“지난 10월 5일 밀양 송전탑 공사가 진행 중인 단장면 96번 송전탑 공사 현장에서 발견된 무덤처럼 생긴 구덩이는 통합진보당 당원들이 판 것으로 전해졌다. 그리고 구덩이를 파는데 힘을 보탠 주민은 2명으로 이들 역시 전 과정을 돕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목줄을 메는 것 역시 통진당 당원들이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주민들이 노끈을 나르기는 했지만 구덩이 위에 설치한 지주대에 목줄을 건 것과 현장 입구에 설치한 나무 가지에 메어진 목줄 등 목줄 10개를 건 사람들도 통진당 당원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뉴시스의 기사는 다음과 같이 마무리된다. “통진당 당원들이 떠난 자리에는 무덤처럼 생긴 구덩이와 지주대, 그 곳에 걸린 목줄과 휘발유가 담긴 페트병이 을씨년스럽게 남아 있었다”

뉴시스의 첫 보도가 나간 뒤 조선일보가 7일 새벽 온라인 판에 같은 내용의 기사를 실었다. 10월 7일자 지면 1면에도 기사가 실렸다. <통진당 당원들, 밀양 송전탑 현장에 무덤 구덩이 파고 올가미 줄 내걸어>라는 무시무시한 제목의 기사였다.

조선일보 기사는 뉴시스 기사에 없던 해석까지 덧붙였다. “경찰과 반대 주민의 대치 속에 공사가 정상적으로 진행되는 가운데 외부 세력으로 개입한 통진당원들이 극렬 행동을 부추기는 도구를 만들어 놓고 간 것 아니냐”

이 보도는 사실이었을까? 밀양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대책위)는 보도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대책위에 따르면 통합진보당 경남도당 당원 20여명이 지지 방문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구덩이는 전날부터 마을 청년들이 파기 시작했던 것이며, 진보당 당원들은 구덩이의 용도가 움막을 짓기 위한 터잡기 작업이라 생각해 잠시 도왔을 뿐이다.

현장에 없던 기자, ‘전해졌다’ ‘알려졌다’로 가득찬 기사

뉴시스는 대책위한테 확인도 안 한 채, 과연 어디서 무슨 이야기를 들어 기사를 쓴 것일까? 뉴시스 기사는 온통 ‘전해졌다’ ‘알려졌다’는 말로 가득 차 있다. 일반적으로 기자들은 기사를 쓸 때 명확히 확인되지 않았을 때, 기사에 자신이 없을 때 ‘전해졌다’ 혹은 ‘알려졌다’는 단어를 주로 쓴다. 하지만 누가 구덩이를 파거나 목줄을 달았다는 이런 내용의 기사는 현장에서 직접 보고 쓰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는 점에서 이런 기법의 기사 쓰기는 적절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미디어오늘은 구덩이 작업에 참여한 당사자들을 찾아 확인 취재를 했다. 사건 당일 구덩이 작업을 했던 마을 청년회 주민 손아무개씨는 “청년들이 주도를 했고, 저희가 하니까 노인 분들도 돕고, 주위에 있는 통합진보당 당원들에게 요청을 했다”고 밝혔다.

작업을 도왔던 정호식 진보당 경남도당 조직국장 역시 “어르신들이 땅을 파고 계시기에 돕겠다는 생각에 판 것이다. 그리고 그 옆에 움막을 더 지어야 한다는 말에 움막 터잡기 정도의 작업이라고 생각했다, 구덩이를 파는 것인 줄 잘 알지 몰랐다”고 말했다.

미디어오늘은 대책위에서 찍어둔, 구덩이 파는 영상도 확인해봤다. 그 동영상에는 주민 5명과 통합진보당 당원 1명이 작업하는 장면이 나온다. 지지대를 세우는 데 4명의 주민이, 구덩이 파는데 마을 주민 손아무개씨와 진보당 당원 한 명이 동원됐다. 하모씨, 손모씨, 평모씨 등 마을 주민 3명이 목줄을 메는 장면도 나온다. 진보당 당원이 목줄을 걸었다는 보도와는 다른 내용이었다.

미디어오늘은 기사를 썼던 뉴시스 강경국 기자와 통화를 했다. 해당 기자는 당시 현장에 없다고 말했다. 강 기자는 “당시 현장에 없었지만 뉴시스의 다른 기자와 복수의 관계자가 있었다. 복수의 관계자에게 목줄을 누가 달았느냐고 물어보니 당원들이 했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에 주민 누구와 인터뷰를 했느냐고 묻자 “밝히기 어렵다. 그거 밝히면 당사자는 거기서 못 산다”고 답했다.

그는 또한 목줄 관련해서는 “당시에는 그렇게 취재를 했는데 주민들이 아니라고 강하게 부인하시니까 저도 현장에 있었다면 제가 뭐라고 말씀을 드리겠는데 전화상으로 취재를 한 부분이라서 뭐 달리 한 말이 없다”고 답했다. 현장에 없었으면서, 직접 본 것도 아니면서 이렇게 확정적으로 기사를 써도 되는 것일까. 그것도 대책위 측에는 문의도 하지 않은 채.

조선일보의 경우 취재를 작성한 권경훈 기자에게 문의했다. 구덩이 파는 것을 직접 보았는지, 주민과 직접 인터뷰했는지 등을 묻자 권 기자는 다른 말은 없이 “취재 과정을 다 거친 거다”라고만 말했다. 어떤 취재과정을 거쳤기에, 얼마나 믿을 만한 취재원이 있기에 송전탑반대 공식기구인 대책위의 말은 듣지 않은 채 기사를 쓴 것일까. 




‘아파트 동문’(?) 이석기와 안철수의 인연도 기사가 된다


뉴시스와 조선일보는 왜 이런 기사를 쓴 것일까. 당시 시국을 살펴보면 답이 나온다. 밀양송전탑이 논란이 되기 전이었던 2013년 8월 말 통합진보당 내란음모사건이 터졌다. 8월 말 터진 내란음모사건은 2013년 하반기 정국을 뒤흔들었다.

보수언론은 통합진보당과 이석기 전 의원에 대한 비난을 쏟아내는 동시에 온갖 것들을 다 통합진보당 그리고 이석기와 엮는 보도를 쏟아냈다. 조선일보에서 야권연대가 통합진보당을 키웠다고 비판하거나 문재인과 이석기의 인연에 주목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 와중에는 무리수도 많았다.

2013년 월간조선 10월호에는 “안철수·이석기의 우연한 인연?”이라는 제목의 기자수첩이 나온다. 이석기와 안철수가 서울 동작구 사당동 한 아파트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는 내용이다. 기사를 보면 정작 두 사람은 같은 시기에 같은 아파트에 살지 않았다. 서로 다른 시점에 아파트에 살았는데 이것이 무슨 인연이라는 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사다. 이런 식이라면 ‘이석기와 박근혜의 우연한 인연’이라는 제목의 기자수첩도 가능하다. 둘 다 국회의사당에 있었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밀양송전탑과 통합진보당을 엮은 것도 비슷한 의도가 아니었을까. 이런 이유로 대책위는 “최근에 진보당 사태로 조성된 부정적 여론과 결부시켜 밀양 송전탑 싸움의 본질을 왜곡하려는 시도”라고 지적했다.

밀양 송전탑 건설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송전탑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언론이라면, 배후에 불순세력이 있다는 저열한 손가락질을 그만두고 밀양 송전탑을 건설하면 무엇이 좋은지, 반대 주민들을 어떻게 설득하면 좋은 지에 대해 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