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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글/한겨레 hook

좌파 근본주의? 반MB 근본주의!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야권연대, 진보대연합이 화두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른바 ‘독자파’라 불리는 세력과 ‘통합파’라는 불리는 세력이 대립하고 있다. 진보신당 내의 독자파는 이전 정권에서 노동자, 서민의 이해관계를 침해했던 민주당,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연합에 의구심을 보내는 동시에 패권주의와 종북주의가 청산되지 않는 한 민주노동당과 도로 합당하는 것에도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을 일컫는다. 물론 참여당과의 통합은 찬성하지만 민노당과의 통합은 반대하는 이들, 민노당과의 통합은 찬성하지만 참여당과의 통합은 반대하는 이들이 공존한다는 점에서 독자파도 그 의견차가 매우 복잡하다. (다만 호칭을 편하기 하기 위해 일반화를 무릅쓰고 독자파라는 호칭을 사용하니, 이를 이해해주기 바란다.) 통합파란 진보신당이 홀로 독고다이처럼 고집을 부릴 일이 아니라, 정권교체를 위해 다른 당과 적극적으로 통합/연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진보신당 내에 존재하는 것뿐만 아니라 진보신당 밖에도 존재한다,

얼마 전, 그리고 지금도 암묵적으로 서로를 겨냥하며 벌어지는 김규항과 진중권의 논쟁은 이러한 독자파와 통합파의 논쟁을 대표하고 있다. 김규항은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의 편에 서야 할 진보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서 섣부른 통합과 연합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반면에 진중권은 머리로만 진보를 생각할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의 대중의 욕망을 읽어내야 한다며 사실상의 통합을 주장한다. 그는 ‘영성좌파’, ‘불임진보’, ‘수도원좌파’와 같은 말까지 쓰면서 김규항을 비롯한 일련의 독자파들을 공격한다.

진중권 뿐만이 아니다. 많은 통합파들이 독자파들을 공격하기 위해 낡은 사회주의 이념과 쓸데없는 고집을 버리고 대중의 욕망과 현실을 생각하라고 주장한다. 파워 트위터리안 고재열은 ‘좌파감별사’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비아냥거렸다. 한 줌도 안 되는 좌파들이 한나라당과 이명박 심판이라는 대의와 국민의 요구를 저버리고 자신들의 이념만 추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민주당/국민참여당을 비롯한 통합파들을 좌파인지 진보인지 ‘감별’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고재열과 진중권을 비롯한 통합파들은 자신들이 뭔데 남이 진보인지 좌파인지 감별 하냐고, 좌파 딱지를 허락 맞고 써야 하나며 비판한다.

그러나 이들의 조롱과는 달리 특정 정치세력이 좌파인지 진보인지는 분명 ‘감별가능’할뿐더러, 감별해야만 한다. 그럴 수 없다면 진보대연합이나 야권연대는 안 하는 것이 옳다. 아니 도대체 대연합이니 연대니 왜 하는 것인가? 다 한나라당과 이명박을 심판하자는 것이 아닌가? 그럼 한나라당과 이명박은 왜 심판해야 하는가? 그들이 펼친 특정한 정책, 그리고 그것이 기반하고 있는 특정한 이념 때문이 아닌가? 그들이 펼친 정책들과 그것이 기반 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에 반대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이 FTA를 추진하는 데 있어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입장이 한나라당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면, 도대체 통합을 왜 해야 하는가?

정당이란 특정한 이념을 공유하는 이들이 정권 획득을 위해 모인 세력이다. 따라서 서로 다른 이념을 지닌 정당이 뭉치기 위해서는, 통합 자체가 목적이지 않는 이상 서로의 이념과 정책에 공통분모가 있는지에 대해 고민해야한다. 즉 통합과 연합을 하는데 있어 최소치의 ‘기준’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진중권을 비롯한 일부 통합파들은 이러한 기준을 명확히 하자는 독자파의 주장에 대해 좌파 근본주의니 좌파 감별사니 하며 비아냥거린다.

지난 3월 27일에 있었던 진보신당 당 대회에 대한 몇몇 통합파들의 논평은 이들이 얼마나 맹목적으로 통합을 외치는지 보여준다. 3월 27일 진보신당 당 대회에서 독자파 성향을 지닌 대의원들은 당대회에 올라온 <2011년 당 종합실천계획 확정의 건 중 ‘Ⅱ.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종합실천계획[안]’>에 대해 수정안을 발의했다. 그리고 통합파들은 독자파들의 수정안 발의가 합당 논의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들었다며 독자파들이 비타협적 순혈주의를 내세웠다고 맹렬히 비판했다. 진중권은 트위터에서 “정당이 무슨 사회주의 동호회인지, 아니면 좌익 보이스카웃 캠핑인지, 아니면 틴에이저 소셜리스트 카페인지, 도대체 뭘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며 “그냥 하던 대로 하자, 그래 놓고 그걸 승리라고 자화자찬하고 자축들 하고 앉았으니…”라며 독설을 내뱉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통합파들은 독자파들이 내걸었다는 수정안 내용을 읽어보지도 않고 그런 소리를 함부로 내뱉었거나 그렇지 아니면 최소한의 통합기준도 없는 ‘묻지마 통합’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수정안은 진보대통합이나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에 대해 반대를 표명하고 있지 않으며, 선거연합은 언급도 하지 않았다. 다만 1) 신자유주의를 표명하는 정치세력과 연합할 수 없으며, 2) 북한 3대 세습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견지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진중권을 비롯한 통합파들은 이러한 것이 사실상 1) 민주당, 국민참여당, 2) 민주노동당과의 통합에 걸림돌이 된다며 사회주의 동아리니 좌파 근본주의니라며 비아냥거린 것이다. 진중권은 심지어 당 대회에서 한 번도 나오지 않는 사회주의를 들먹거리며 진보신당 당 대회를 도구로 사회주의에 대한 자신의 반감을 표출하는 자위행위와 같은 독설을 보여주었다.1)

그러나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대를 표명할 수 없다면, 그리고 신자유주의를 긍정하는 세력과도 연합할 수 있다면 도대체 진보정치는 왜 하자는 거고 MB심판은 왜 하자는 건가? 북한 3대 세습을 비판할 수 없으면 진보정치는 왜 해야 하는 건가? 통합파들은 독자파들이 ‘통합에 대한 최소 기준’을 설정한 것을 가지고 통합에 걸림돌이 된다고 비판하는데, 이 자들이야말로 아무 원칙도 없이 MB심판만 하면 된다는 ‘반MB 근본주의’자들이 아닌가? 근본주의자란 특정 원칙에 대한 맹목적인 신앙을 공유하면서 이를 잣대로 다른 원칙과 가치들을 재단하는 인간의 무리를 칭한다. 진중권을 비롯한 통합파들은 겉으로는 자유주의자인 척 행세하며 독자파들을 근본주의자라고 비판하지만, 정작 본인들이야말로 통합이라는 지상명제를 기준으로 이에 방해가 되는 ‘통합의 최소 기준 설정’마저도 짓밟으려 하는 근본주의자들이다.

그들이 좌파라고 칭하는 진보신당 내 독자파들은 민노당이나 민주당, 국민참여당이 사회주의 혁명을 지향하지 않는다고, 개량 정당에 불과하다고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진중권은 지난 번 한겨레 칼럼에서 민노당과 진보신당, 참여당이 서로를 견제할 수 있는 통합을 제시하며, 그 세 당이 “유럽식 ‘사회국가’의 이념 아래 서민복지와 남북화해를 추구한다는 최저 강령에는 모두 동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2) 그도 이미 스스로 통합의 최소 기준을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독자파들의 입장에서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은 유럽식 사회국가의 이념 수준에도 못 미친다. 전 정권의 과오는 뒤로 미뤄둔다 쳐도, 민주당이 전주버스노동자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이 여전히 FTA를 한국의 미래를 위한 필수 과제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그들의 노동정책에 대한 태도만 보아서도 그들은 유럽식 사회국가의 이념조차 추구하지 않는 자들이다. 이런 비판을 하면서 통합을 견제하면, 좌파들이 낡은 사회주의 이념에 경도되어 있다느니 지가 뭔데 진보와 좌파를 감별하려 드느냐면서 으르렁거린다.

그러나 누가 서민과 노동자의 이해관계를 대변할 정치세력인지,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해줄 정치세력인지 가려내는 ‘감별’은 절실히 필요하다. 재보궐 선거로 자신감을 받은 민주당과 위기에 처한 국민참여당이, 세력 확대를 위해 어떻게든 차기 정권에서 한 자리를 차지해야 하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통합파들이 반MB라는 지상명제를 내걸고 독자파, 통합반대론자들을 압박할 것이기 뻔하기 때문이다. 더 많은 심판과 감별을 통해 반MB근본주의자들을 쳐내야 한다. 한나라당과 별 다를 게 없는 세력들에게 간도 쓸개도 다 빼줄 통합 근본주의자들이 주도하는 진보대연합의 미래는 진보가 아니라 퇴보다.

각주

1) 진보신당 당 대회에 대한 통합파들의 논평에 대한 반박은 한윤형의 글 “진보신당 당대회와 그 정치평론가들”(http://yhhan.tistory.com/1329)을 참조하라.

2) 진중권, “불임 진보에 대하여.”(http://hook.hani.co.kr/archives/24178)

<한겨레 훅>에 기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