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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글/노동당 기관지

잊지 말아야할 세월호 참사, 그리고 오보참사

416일은 세월호 참사 1주기다. “잊지 않겠다던 약속은 얼마나 지켜졌을까. 우리가 잊지 않아야할 것은 세월호 참사 그 자체만이 아니라 세월호 참사를 통해 보여준 언론의 참사다. 세월호 1, 당시 언론이 보여준 오보를 정리해봤다.

오보로 시작한 세월호 참사 보도전원구조오보 막을 수 있었다

세월호 참사 보도는 시작부터 오보였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2014416일 오전, 언론들은 속보로 세월호가 침몰했지만 안에 타고 있던 학생과 교사 전원이 구조됐다고 보도했다. 언론 보도를 지켜보던 나 역시 다행이다’ ‘큰일은 아니구나라고 생각했다. “경기 안산단원고등학교 사고대책본부는 세월호에 타고 있던 2학년 학생과 교사 전원이 구조됐다고 오전 115분 해경으로 통보받았다는 내용이었다.

전원구조 보도는 몇 시간이 지나면서 오보가 됐다. 오후 2, 사고대책본부는 전원구조가 아니라 ‘477명 중 368명 구조라고 밝혔고 언론이 이를 일제히 받아썼다. 오후 3, 368명은 180명으로 줄었고 오후 4‘476명 중 174명 구조로 수정됐다. 이후에도 탑승객 수와 구조자수는 계속 바뀌었다. 언론은 사고대책본부와 해경의 말을 잇따라 전달하며 오보를 경신했다. 416일자 석간 문화일보·내일신문은 전원구조를 신문에 실었다가 다음날 사과문을 실어야 했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의 언론에 대한 불신은 전원구조에서 시작됐다. 사실 전원구조 오보를 두고 받아쓰는 언론탓만 할 수는 없다. 정부가 정보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무언가 실수가 있었고, 언론 입장에서는 재난상황에서 정부가 제공한 정보를 의심하기 어려운 일인데다 언론이 정부를 의심하고 구조자수를 직접 집계하러 다니느라 안 그래도 혼잡한 현장에서 더 큰 혼란이 발생할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언론이 정부의 발표가 틀릴 수도 있음을 전제하지 못한 채 속보경쟁에 휘말렸다는 점이다. 정부 발표에 의심이 간다면 사상자의 최저치와 최대치를 밝히고, 정보의 출처를 명확히 밝히는 식으로 보도해야 한다. 대다수 언론은 출처도 밝히지 않은 채 전원구조라는 자막을 내보냈다.

그러나 이후 전원구조오보를 막을 수 있었다는 점이 드러났다. 전국MBC기자회는 513일 오후 성명을 내고 우리는 MBC의 오보에 대해서는 더 할 말이 많다. 왜냐하면 MBC의 오보는 단원고 학생 전원 구조라는 기사가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낸 미필적 고의에 의한 명백한 오보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전국MBC기자회에 따르면 목포MBC 기자들은 사고당일 기자들 중 가장 빨리 진도 팽목항에 도착했다. 기자들은 현장 지휘를 맡고 있던 목포 해양경찰청장에 전화를 통해 취재를 했고 구조자는 160여명이라는 말을 들었다. 이 때 전원구조 오보가 나왔고, 취재한 기자들은 MBC 전국부에 이 사실을 알렸다.

그러나 전국MBC기자회는 이런 보고가 묵살됐다고 말한다. 현장 기자들이 전원구조가 사실과 다른 것 같다고 보고했고, 목표 MBC 보도부장과 보도국장이 MBC보도국 전국부(서울)에 전화를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목포MBC 기자회 관계자는 미디어오늘에 재난본부의 발표가 그렇다고 해도 현장 취재진들에 따르면 ‘160명이 구조됐다는 정도라도 뉴스를 통해 전했다면 사고 초기 오보는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라고 밝혔다.

이처럼 전원구조 오보는 막을 수 있었다. 이 오보로 인해 실종자 가족이 받았을 충격을 생각하면, 또 민간 어선들이 전원구조 오보를 보고 사고 초기 사건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 구조작업에 나서지 않았다는 증언들을 고려하면 이 오보는 다시는 발생해서는 안 될 중대한 오보다.

사고발생 하루 지나서도 이어진 오보, ‘시신 뒤엉켜있다?

사고가 발생한 지 하루가 지나서도 오보는 이어졌다. YTN417오전 12시 반부터 공기주입이 시도되고 있지만 아직 성공하지는 못했다고 보도했다. SBS오전 7시 정도부터 산소공급 작업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해경의 말을 전한 것이다. ‘에어포켓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실종자 가족들에게 희망을 준 보도였다.

그러나 희망은 얼마 지나지 않아 분노로 바뀌었다. 이날 오후 해양수산부는 산소공급장치가 아직 현장에 도착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산소공급장치가 도착도 하지 않은 시점에서 산소가 공급되고 있다고 보도한 것이다.

자극적인 오보도 있었다. KBS418일 오후 430분 경 자막을 통해 구조당국, 선내 엉켜 있는 시신 다수확인이라는 속보를 전했다. 이 보도를 본 시민들과 실종자 가족들은 가슴이 철렁했을 것이다. 그러나 해경은 시체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구조대는 진입했으나 시신은 보지 못했다는 것.

같은 날 오전 YTN 등 다수 언론은 잠수부들이 선내 진입에 성공했다는 보도를 쏟아냈다가 사고대책본부가 선내 진입 성공에서 실패로 정정하자 허겁지겁 실패라는 자막을 띄웠다. 구조 소식을 기다리던 이들의 가슴은 또 한 번 철렁했을 것이다.



언론 불신 극해 달해세월호 이후 언론은 얼마나 변했나

이런 오보가 이어지면서 실종자 가족들의 불신은 극에 달했다. 417일 실종자 가족이던 김중열씨는 JTBC와 인터뷰에서 방송이 보여주는 화면이 전부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공영적이어야 할 방송에서 조명탄을 환하게 밝히고 있는 구조장면을 내보냈다. (하지만) 오늘 민간 잠수부팀이 조명탄이 없어 대기하고 있었다. 조명탄 허가를 받는 데까지 40분이 걸렸다방송에 나가는 장면과 현장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이는 해경과 사고대책본부 등의 말을 여과 없이 받아쓴 언론이 자초한 불신이다. KBS가 생방송을 통해 해경이 구조에 나서고 있다고 보도할 때, 곁에 있던 한 실종자 가족이 구조를 안하는데 무슨 구조냐며 욕설을 내뱉어 이 욕설이 그대로 방송되는 사건도 있었다.

극에 달한 불신으로 많은 언론은 세월호 이후 반성문을 썼다. 고개를 숙이기도 했고, ‘재난보도준칙을 내놓았다. 이제 1년이 지났다. ‘기레기’(기자+쓰레기) 소리 듣던 언론은 그 날의 참사 이후 얼마나 변화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