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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글/한겨레 hook

나는 왜 한미FTA에 반대하는가

최근 한미 FTA를 둘러싼 논쟁이 격화되고 있다. 투자자 국가 소송제를 중심으로 청와대와 여당, 야당 사이에서 그리고 찬반 입장에 선 전문가들 사이에서 격렬한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완전히 상반된 정보와 사실들이 넘쳐나서, 정보를 수용하는 일반 시민들 입장에서는 어느 것이 옳은 이야기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는 2006년에 한미 FTA가 처음 추진되었을 당시의 상황과 유사하다. 당시의 나는 당시 한미 FTA에 반대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한미 FTA의 구체적인 내용을 잘 알지 못해도 한미 FTA에 대해 입장을 정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 고민이 한미 FTA 비준을 앞둔 지금에도 필요한 고민이라고 생각한다.

한미 FTA가 추진되었던 당시 나는 너무 혼란스러웠다. 그 이유는 한미 FTA를 둘러싸고 너무나 다른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찬성과 반대논리 모두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줄 수 없을 정도로 나름대로 정교했다.

한미 FTA라는 사안 자체가 찬성 혹은 반대 둘 중에 하나를 택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하지 않았다.1) 한미 FTA란 쉽게 이야기해서 한국과 미국 간의 무역장벽을 낮추고 시장을 개방하자는 것이다. 개방되는 시장에는 상품시장은 물론 서비스, 투자, 지적재산 등 광범위한 분야가 포함되어 있다.

 

최근 한미 FTA를 둘러싼 논쟁이 격화되고 있다. 투자자 국가 소송제를 중심으로 청와대와 여당, 야당 사이에서 그리고 찬반 입장에 선 전문가들 사이에서 격렬한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완전히 상반된 정보와 사실들이 넘쳐나서, 정보를 수용하는 일반 시민들 입장에서는 어느 것이 옳은 이야기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는 2006년에 한미 FTA가 처음 추진되었을 당시의 상황과 유사하다. 당시의 나는 당시 한미 FTA에 반대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한미 FTA의 구체적인 내용을 잘 알지 못해도 한미 FTA에 대해 입장을 정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 고민이 한미 FTA 비준을 앞둔 지금에도 필요한 고민이라고 생각한다.

한미 FTA가 추진되었던 당시 나는 너무 혼란스러웠다. 그 이유는 한미 FTA를 둘러싸고 너무나 다른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찬성과 반대논리 모두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줄 수 없을 정도로 나름대로 정교했다.

한미 FTA라는 사안 자체가 찬성 혹은 반대 둘 중에 하나를 택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하지 않았다.1) 한미 FTA란 쉽게 이야기해서 한국과 미국 간의 무역장벽을 낮추고 시장을 개방하자는 것이다. 개방되는 시장에는 상품시장은 물론 서비스, 투자, 지적재산 등 광범위한 분야가 포함되어 있다.

 

일단 노무현 정부는 집권 이래로 한국이 처한 경제 현실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고학력 실업이 확산되고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해 성장률과 성장잠재력이 둔화되고, 게다가 양극화가 점점 심해지는 지금 한국에게는 새로운 성장 동력과 이를 통한 도약이 필요하다! 게다가 중국이 급부상하면서 한국이 세계시장에서 중국에게 따라잡힐 날이 멀지 않았다. 이런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경제 시스템을 선진화하고, 세계시장 속 한국의 경쟁력을 제고시킬 필요가 있다. 이러한 주장을 ‘경제 선진화론’이라 칭할 수 있다. 즉 한국 경제의 위기를 ‘경제선진화’를 통해 극복하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경제선진화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

가장 좋은 방법은 ‘개방’이다. 한국은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 즉 대외무역을 통한 경제 발전과 성장에 의존하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우리가 더 잘 먹고 잘 살려면 수출을 늘리는 방법이 가장 좋은 방법이고, 이를 위해 무역 장벽을 낮추고 시장을 개방하는 FTA는 필수적이다. 세계시장을 주도하는 대부분의 나라들은 FTA를 통한 시장 개방에 주력하고 있다. FTA 열등생 대한민국은 이제라도 FTA라는 세계적 조류에 적극 동참하여야만 한다. 개방을 통해 경쟁력 있는 외국 기업들이 한국에 진출하면 한국 기업들도 이들과의 경쟁을 위해 기업 체질을 변화시킬 것이고, 경제 시스템 역시 선진적으로 변할 것이다. 이것을 ‘개방을 통한, 즉 외부 쇼크에 의한 내부개혁’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일단 우리는 누구와 FTA를 맺어야 하는가? 최대한의 시장 개방을 위해서는 동시다발적인 FTA 추진이 필수적이지만, 일단 미국과의 FTA가 급선무이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시장이므로 중국이나 일본과 같은 경쟁국 기업들이 미국과 FTA를 맺어 미국에 진출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미국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

미국은 또한 최고로 ‘선진화된 경제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시장이기도 하다. 미국은 지식기반의 3차 산업인 금융, 서비스 시장이 가장 발달해 있는 곳이다. 그리고 현재 세계시장에서 가장 큰 성장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분야는 금융과 서비스업이다. 한국이 미국과의 FTA를 통해 금융, 서비스 시장을 개방하고, 그 효과로 선진적인 경제 시스템을 갖출 수 있다면 침체에 빠져 있는 한국경제를 살릴 수 있으며, 제조업 분야 등 1,2차 산업에서 한국을 따라잡을 신흥 성장국과도 격차를 벌리면서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

“개방은 시장을 넓히는 전략입니다. FTA와 적극적인 해외 투자, 이런 것인데 개방도 이제는 단순히 소극적으로, 수동적으로 개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능동적으로 시장을 개척해 나가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점에 관해서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만, 역사를 돌이켜보면 교류하지 않은 문명은 전부 쇠약하고 소멸했습니다. 세계의 역사, 이른바 물질적 측면의 세계 역사는 통상 국가가 주도해왔습니다. 물질문명을 주도하는 국가가 오늘날 세계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물론 한국이 세계를 지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러나 지배받지 않으려면, 지배력에 대항하려면 적어도 그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통상국가가 돼야 한다는 것이지요. 선진적 통상국가가 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방하고, FTA도 해야 합니다.”2)
 

노무현 정부는 이러한 일련의 논리에 따라 FTA가 결국 한국의 미래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주장했다. 보수언론과 FTA를 찬성하는 지식인/전문가들도 같은 논리로 한미 FTA에 찬성했다. 그렇기 때문에 한미 FTA 추진과정이 민주주의적 절차에 위배된다거나,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채 너무 성급하게 FTA를 추진한다는 비판은 정당하지만, 정부 관료들에게는 별 소용이 없는 비판이다. 그들은 “그럴 시간이 어딨어?”라고 응대할 것이 뻔했다. 1분 1초라도 늦으면 엄청 손해 보는 이 판에서 일일이 국민의 동의와 합의를 구하며 심도 있는 연구를 통해 손익 관계를 계산할 시간 따위는 없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개방과 선진 시스템 구축은 선택이 아니라 과학법칙이었고, 국가를 위한 필수과제였다.

이런 믿음 하에 노무현과 경제 관료들은 모든 반대를 억누르면서 2007년 4월 2일 한미 FTA 협상을 최종 타결했다. FTA 협상 전반을 기획하고 추진했던 통상교섭본부장 김현종은 협상이 결렬될 위기에 처하거나 국내로부터의 격렬한 정치적 반대에 직면했을 때마다 대통령의 위대한 결단이 빛을 발했다고 칭찬했다. 늘 노무현의 결단력을 무모하고 위험한 치기라고 비난해왔던 조선일보마저 한미 FTA가 최종 타결되던 날만큼은 대통령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위대한 결단을 내렸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노무현의 이러한 결단은 내가 생각하기에 ‘매우 위험한 신념’에 기초하고 있었다.

그가 FTA를 추진하는데 기반하고 있던 믿음이란 한 마디로 미국과의 FTA를 통해 지식 기반의 3차 산업 시장을 개방해 한국 경제의 체질을 바꾸고, 이를 경제도약의 기회로 삼아 양극화를 비롯한 한국이 처한 경제 현실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노무현이 한미 FTA를 처음 공론화한 2006년 1월 18일 신년 연설의 주제가 다름 아닌 ‘양극화 해소’였다는 점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그러나 나는 그의 이러한 믿음에 동의할 수 없었다.

과연 한미 FTA는 양극화를 해결해줄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을까? 우리는 이미 FTA가 추구하는 대규모 시장 개방, 그리고 모든 영역의 시장화를 제한적이나마 경험한 적이 있다. 바로 1997년의 IMF 사태 이후의 경제개혁이다. 그리고 한국사회에서 양극화가 문제시되기 시작한 때는 IMF 사태 이후였다. IMF 이후 도입된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인해 한국은 노동자들은 언제나 실업의 위기에 시달리는 불안정한 상태를 살아가게 되었다. 즉 IMF 이후 나타난 양극화의 심화는 시장개방과 상시적 구조조정 같은 신자유주의정책의 ‘결과’였다. 한미 FTA는 IMF 경제개혁에 절대 뒤지지 않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결정판이다. 한미 FTA로 인해 서비스 분야를 비롯한 다양한 공공 영역이 모두 개방되어 시장의 원리에 의해 돌아가고, 정부가 공공성의 확보를 하고 싶어도 이를 되돌리는 정책을 시도할 수 없다.

게다가 한미 FTA가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다는 믿음은 경제성장이 분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에 기초하고 있다. 즉 일단 파이가 커지면 그 커진 파이를 다 같이 나누어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장이 분배로 이어진다는 경제학에서의 낙수 효과(Trickle down)가 과연 현실에서도 작동하는 것일까? 현실에서 정부나 국가권력의 개입이 없으면 부는 집중되기만 할 뿐 나누어지지는 않지 않는가? 그러나 한미 FTA 협정문은 정부의 시장 개입을 강력하게 저지하는 조항들을 명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부는 FTA로 인한 경제성장의 혜택이 많은 노동자, 농민, 서민들에게 ‘자발적으로’ 나누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또한 정부가 주장하는, 한미 FTA로부터 얻을 수 있다는 선진화된 경제 시스템이 과연 ‘선진적’인 것인지도 의심스러웠다. 선진적이지 않다는 의미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 번째, 정부가 한미 FTA로 커질 것이라 생각하는 파이가 과연 실속 있는 파이인가에 대한 의심이다. 미국식 선진 경제 시스템을 대표하는 ‘금융 산업’은 실물 경제에 기초하지 않은 채 ‘돈 놓고 돈 먹기’를 통해 성장한다. 이런 ‘돈 놓고 돈 먹기’는 언젠가 경제공황으로 이어질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고, 2008년에 미국에서 발생해 전 세계로 확산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이러한 사실을 잘 보여주었다.

두 번째, 공공영역마저 시장에게 맡길 경우 돈 없는 사람들은 점점 살기 힘들어진다. 영화 <식코>가 잘 묘사했듯이 돈이 없어서 아파도 병원에 못가는 사람들이 즐비한 나라가 미국이다. 이것을 ‘선진화된 시스템’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경제성장률이 몇 퍼센트 오르고 주가지수가 얼마 오르는 것만으로 그 체제를 ‘선진적’이라 말한다면, 그 ‘선진화’는 너무 비인간적이다. 선진 안 하고 말겠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한미 FTA에 반대하기로 결심했다. 나는 한미 FTA의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지만, 한미 FTA에 반대한다. 한미 FTA를 하면 한국과 우리가 얻을 수 있다는 바로 그것들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그것들을 얻고 싶지 않기 때문에 반대한다.

 

각주

1) 한미 FTA의 대표적인 찬성론자인 이화여대 최병일 교수는 한미 FTA 찬반 유형을 생계형 반대/이념적 반대/경제적 중립/무관심/비판적 지지/전략적 지지/생계형 지지라는 8가지로 정리했다.(최병일,『한미 FTA 역전 시나리오』, 랜덤하우스, 2006, pp.65-79 참조)
2) 노무현의 2007년 6월 참여정부평가포럼 연설 중 한 대목이다.『노무현, 마지막 인터뷰』 193페이지에서 재인용했다.

3) 이 발언은 한미 FTA를 처음 노무현에게 제안하고 그 기획과 추진을 주도했던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2003년 2월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를 만나서 한 말이다.『김현종, 한미 FTA를 말하다』(김현종, 홍성사, 2010)의 12, 13페이지에서 인용했다. 이 책에는 한미 FTA를 추진한 실무자가 어떤 철학을 가지고 FTA를 추진했는지가 잘 드러나 있다.

<한겨레 훅>에 기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