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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글/한겨레 hook

나는 왜 한미 FTA에 반대하는가(2)

결국 한미 FTA가 통과되고 말았다. 지난 11월 22일, 한나라당은 본회의를 소집하여 날치기로 한미 FTA 비준동의안을 통과시켰고, 이에 반발한 야당 세력과 시민, 노동자들이 매일 밤 비준무효를 외치는 집회를 벌이고 있다. 지난 주 토요일인 11월 26일에는 2008년 촛불집회 이후 3년 만에 집회 참가자들에 의해 광화문사거리 도로가 점거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 와중에 종로경찰서장이 시위대 안으로 진입하다가 폭행을 당했다는 사건이 벌어졌고, 보수언론과 경찰, 청와대는 ‘폭력집회’와 ‘법치주의’ 프레임을 내세워 총공세에 나섰다. 한미 FTA를 둘러 싼 사회적 갈등이 점점 증폭되고 있다.

지난 번 글(http://hook.hani.co.kr/archives/35367)에서 나는 한미 FTA의 핵심이 수출이나 일자리 증진, 소비자 이익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박가분이 이전에 한겨레 훅에 올린 글(http://hook.hani.co.kr/archives/35920)에서 잘 지적했듯이, 한미 FTA로 인해 한국의 수출이 증진할지, 소비재 가격이 하락할지, 일자리가 늘어날지는 ‘알 수 없다.’ 경제학적인 논의에 대해서 우리는 침묵해야 한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한미 FTA로 인한 경제적인 효과는 한미 FTA를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의 기준이 될 수 없다. 그 누구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관세가 줄어들어 수출이 증대한다는 가정이 성립하려면,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가정이 성립하려면, 소비재 가격이 하락하여 효용이 증진한다는 가정이 성립하려면 수많은 경제학적 조건과 변수들이 고정되어 있거나 이 수많은 변수들을 우리가 통제하거나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어떤 경제 모형에 대입하느냐에 따라 FTA의 경제적 효과가 다르게 나타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따라서 한미 FTA의 진정한 목표는 관세 인하나 상품 교역의 증진이 아니다. 오히려 한미 FTA는 수출과 일자리 증진, 소비재 가격 하락이라는 경제적 효과가 있을지 없을지 ‘예측할 수 없다 해도’ 더 큰 목표를 위해 해야 하는 무언가에 가깝다. 삼성경제연구소는 한미 FTA가 타결되자마자 발간한 2007년 4월 5일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전통적 FTA는 관세인하를 통한 무역확대가 주목적이었으나 WTO 발족 이후 탄생한 FTA는 투자유치, 경제개혁 등 동태적 효과를 중시”한다. 또한 삼성경제연구소 보고서는 관세 인하로 인한 수출 증진과 소비자 이익을 내세워 한미 FTA를 찬성하는 이들을 꾸짖듯이 다음과 같이 말한다.

FTA를 산업구조 고도화 전략의 일환(으로 사용할 수 있다.) 최근 FTA 협상의제는 상품, 관세 뿐 아니라 서비스, 투자, 지적재산권 등으로 확대(되었다). (FTA는) 상품의 교역구조는 물론 산업 및 경제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따라서 FTA를 추진하면서 상품교역에 따른 이익에만 관심을 집중하는 것은 근시안적 접근(이다). 지식집약산업과 고부가가치산업으로의 구조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내부적 자극이 부족한 상황에서 FTA를 산업구조 고도화의 계기로 활용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특히 제조업과 달리 내수산업으로 성장해 오던 국제경쟁에 노출되지 않았던 서비스 산업의 경쟁력이 낮은 상황(이다). 거대 경제권과의 FTA는 장기적 관점에서 경제의 체질 강화에 기여(한다).(삼성경제연구소,「한미FTA 협상타결과 한국 경제의 미래」중 인용)

위에서 인용한 삼성경제연구소의 보고서는 한미FTA의 진정한 목적을 아주 간략하게 정리해주고 있다. 한미FTA의 목적은 단순히 상품과 서비스 시장을 개방해 교역을 늘리는 데 있지 않다. 한미 FTA는 미국식 ‘선진’ 경제시스템의 도입으로 인해 한국경제의 체질을 변화시킴으로써, 양극화와 저성장으로 침체에 빠진 한국경제를 살려보자는 프로젝트인 것이다. 즉 한미 FTA란 투자자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해주는 동시에 공공영역의 많은 부분을 민영화하는 ‘미국식’ 경제 시스템의 도입(이는 투자자-국가 소송제나 의료민영화로 대표될 수 있다.)이자, 금융 및 서비스 산업을 포함하는 3차 산업 국가로의 전환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한미 FTA의 본질을 이해한다면, FTA를 둘러 싼 두 가지 ‘호도’에 대해 반박할 수 있다. 먼저 이런 관점에서, 보수 언론이 FTA에 반대하는 것을 대책도 없는 ‘쇄국’이나 ‘보호무역’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FTA의 본질을 완전히 왜곡하는 행위이다. 대한민국의 대외의존도는 이미 70%가 넘는다. 대체 이 정도로 자유무역을 하는 나라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이미 한국은 ‘충분히’ 자유무역을 하고 있다. 미국과 FTA를 맺지 않는다고 한국이 보호무역으로 나아가지는 않는다. 한미 FTA는 한국이 자유무역을 하느냐 보호무역을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이 미국식 시스템으로 나아가느냐 마느냐의 문제이다. 나는 ‘자유무역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이 미국식 시스템으로의 개조에 반대한다.

보수 언론들 못지않게 현재 FTA를 반대하는 세력 역시 FTA의 본질을 흐리는 반대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참여정부 출신의 야권 정치인들과 참여정부 지지자들이 대표적이다. 문재인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비롯한 야권 인사 일부와 김어준 같이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는 이들 중 일부가 “참여정부의 FTA는 그나마 이익균형을 이뤘는데, 이명박 정부의 재협상으로 한미 FTA는 불평등해졌다”는 헛소리를 일삼고 있다. 이 헛소리 중 가히 최강은 “노무현 정부의 FTA는 착하고 진품이며, 이명박 정부의 FTA는 나쁘고 짝퉁”이라는, 듣기에도 민망한 소리들을 내뱉는 상식과 원칙 좋아하지만 상식도 원칙도 전혀 없어 보이는 이들의 주장이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 2010년 말 미국과 재협상을 해서 자동차 분야에서의 관세 인하 보류 등을 비롯한 10가지 정도의 조항을 미국과 재협상했다. 이들은 이를 근거로 한미 간의 이익 균형이 침해되었다고 주장한다. 차라리 안희정 지사나 송영길 시장처럼 소신 있게(?) FTA를 찬성하는 것이 더 바람직해 보인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경제전문가들마저도 한미 FTA의 효과를 다르게 예측할 만큼, 한미 FTA의 ‘경제적 효과’는 예측 불가능하다. 그런데 참여정부는 미국과 윈 윈 하는 협상을 했는데, 조항 몇 개 재협상했다고 이명박 정부는 미국에게 나라를 팔아넘겼다고? 몇 개 조항의 변동으로 인한 경제적 효과가 미국과 한국에게 어떤 이익으로 돌아갈지 ‘예측’할 만큼 대단한 계산 능력을 갖추신 모양이다. 반대를 하고 싶다면 차라리 정동영 의원처럼 2008년 금융위기 때문에 미국식 경제시스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맞다. ‘미국식 경제시스템 도입’이라는 한미 FTA의 본질은 참여정부 때건 이후 이명박 정부 때건 변하지 않았다. 나는 참여정부와 이명박 정부에서 일관되게 유지되어 온 이 한미 FTA의 목적, 미국식 경제시스템으로의 개조에 반대한다.

참여정부는 2003년 인수위원회 시절부터 이 미국식 경제시스템 도입을 위한 준비에 착수했다. 인수위 시절 내세운 ‘동북아 금융허브론’이 그것이다. 동북아 금융 허브론은 일종의 국가발전론이다. 외환위기 이전 한국에서 돈의 흐름은 국내 예금자나 투자자의 돈이 국내 은행이나 증권사를 통해 주로 국내 산업에서 운용된 뒤 다시 그 산업에서 발생한 기업이익금과 종업원 소득이 국내 은행에 저축되어 결국은 회귀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이에 비해 금융허브론의 핵심은 국내는 물론 해외의 돈이 국내외 은행, 증권사, 자산운용사, 투자은행 등 금융회사를 통해 다양한 금융상품으로 운영된 뒤 다시 국내외의 투자자에게 일정한 수익과 함께 회귀하는 자금의 흐름을 만들자는 것이다. 즉 돈의 세계적 순환이라는 금융세계화를 기반으로 하면서 국내외의 투자자들이 최대한의 수익을 뽑아낼 수 있는 금융시장 여건을 한국 내에 조성하려는 것이 금융허브론의 핵심 구상이었다.(복지국가 소사이어티에서 펴낸『복지국가혁명』244페이지 참조)

참여정부가 추진했던 동북아 금융허브를 위해서는 금융투자가 활성화되어야만 했다. 이를 위해 참여정부는 집권 내내 다양한 구상들을 실행에 옮겼다. 재정경제부는 2003년 한국을 ‘자산운용업 중심의 금융허브’로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한국투자공사를 성립하고 ‘간접투자 자산운용업법’을 제정했으며, 2005년에는 금융기관의 아웃소싱을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금융기관의 업무위탁 등에 관한 규정’을 개정했으며, 2007년에는 자본시장통합법을 추진했다.(『복지국가혁명』245페이지 참조) 참여정부는 한국의 금융 관련 제도들을 글로벌 스탠다드, 즉 미국 기준에 맞춰 개정했으며, 한미 FTA는 동북아 금융허브 프로젝트를 완성하여 한국을 미국처럼 만들기 위한 ‘체질 개선’ 프로젝트였다. 한미 FTA가 조항 전반에 걸쳐 금융시장 자유화와 투자자 보호를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명박의 FTA와 노무현의 FTA는 다르지 않다.

따라서 한미FTA를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는 미국식 경제 시스템에 대해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로, 투자자 보호 국가라는 국가발전모델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를 기준으로 정리되어야 한다. 나는 ‘선진통상국가’라는 모델을 강령으로 채택하고 있는 정당이 ‘이익 불균형’을 내세워 한미 FTA를 반대하는 것에 도저히 납득이 안 간다. 삼성경제연구소 보고서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이는 ‘근시안적’이다. 이들이 집권 후에는 국익에 도움이 된다며 다시 FTA를 추진하지 않을 것이라고 어떻게 보장할 수 있는가? 노무현이 그랬듯이 말이다.

이런 근시안적인 주장들이 등장하는 이유는 지금의 FTA 반대운동이 반MB-반한나라당-진보대연합의 틀 안에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들은 지금 ‘MB와 한나라당에 반대하고 정권 교체를 이루기 위해’ 한미 FTA를 반대하고 있다. 진보대연합, 좋다. 그 기치에 따라 연합하고 연대하자! 단, 반MB가 아니라 반FTA로 연합하고 연대하자! 이명박의 FTA도, 노무현의 FTA도 모두 반대하자!

<한겨레 훅>에 기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