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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글/한겨레 hook

북미합의 타결과 김정일 사망, 왜 북한은 미국과 합의했을까

한반도와 동아시아 국제정세에 비상이 걸렸다. 오늘(12월 19일) 12시 30분, 조선중앙티브이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소식을 공식적으로 보도했기 때문이다. 조선중앙티브이에 따르면 김정일은 지난 17일 오전 8시 30분 경 현지 지도를 하던 중 사망했다고 한다. 사망원인은 중증급성 심근경색과 심장쇼크 합병으로 알려져 있다. 이 소식에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한반도를 둘러싼 4강이 이목을 기울이고 있고, 한국은 국가 비상사태에 돌입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소집했고, 전 군은 비상경계 태세에 돌입했다. 비록 연기되긴 했지만 곧 3차 북미대화가, 내년 3월에는 핵 안보정상회의가 열릴 예정이며, 6자 회담도 재개될 전망이므로 김정일의 죽음과 향후 북한 체제는 앞으로 한반도와 동아시아 국제정세를 둘러싼 핵심 쟁점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가장 시급히 파악해야 할 사항은 며칠 전 타결된 북미합의와 이번 김정일 사망이 어떤 관련이 있는지에 대해서이다. AP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과 북한은 바로 어제인 18일 미국이 북한에게 24만 톤의 영양 지원을 제공할 것을 최종 합의했다(19일 공식 발표할 예정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김정일이 사망한 건 17일이다. 그리고 김정일 사망은 19일 날 공식 발표되었다. 이 북미 간의 합의가 김정일 사망과 독립적인 사건인지 아닌지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보자. 북한은 북미합의에서 이전의 입장과는 다르게 전향적인 입장을 취했다. 24만 톤의 영양 지원의 대가로 미국이 요구한 사항을 대부분 수용한 것이다. 우라늄농축프로그램 잠정중단이라는 카드를 내놓았으며, IAEA 사찰단 입국과 미사일 실험 중단에도 합의했다. 오바마 행정부가 그 동안 북미합의와 대북지원의 조건으로 내걸었던 ‘선 핵 폐기, 선 비핵화’를 수용하겠다고 대답한 것이다. 이는 그동안 북한이 ‘선 지원, 후 비핵화 및 핵 폐기’를 고집하며 협상 불가를 외쳐왔다는 점에서 보면 상당히 전향적인 입장이다. 북한이 왜 그런 것일까? 이것이 아마 김정일 사망과 관련되어 있지는 않을까?

 

CNN은 김정일 사망 보도가 나오자 중국이 이를 이미 알았을 것이라 보도했는데, 마찬가지로 미국도 이를 미리 파악하고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오바마 행정부는 그동안 비핵화, 핵 폐기에 대한 북한의 입장이 바뀌지 않는 한, 그리고 이러한 입장이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입장이라는 확신이 없는 한 북미대화에도, 대북지원에도 나설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해왔다. 오바마 행정부가 만일 김정일의 죽음에 대해 미리 파악하고 있었다면, 바로 이러한 김정일의 죽음을 북한 비핵화, 핵 폐기의 조건으로 파악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설령 오바마 행정부가 김정일의 죽음에 대해 (보도 이전에) 알지 못했다고 해도, 미국은 이미 김정일의 죽음을 대비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지난 2008년 8월 김정일이 뇌 관련 질환으로 쓰러지면서 미국은 김정일의 기대 수명을 3년으로 예측하기도 했다. 즉 김정일의 죽음을 변수로 생각해 오던 상황에서 미국이 북한의 전향적인 입장 변화에 즉각적으로 합의를 도출해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북한의 입장이다. 북한이 북미합의에서 그동안 다른 입장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 추측이 가능하다. 일단 이 두 가지 추측의 공통된 전제는 다음과 같다. 북한은 2012년 강성대국 건설을 위해 북미합의라는 외교적 성과와 식량 지원이라는 경제적 성과를 얻어낼 필요가 있었고, 게다가 김정은 체제로의 체제 전환과 내부 안정을 위해 대외적 안정 역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것을 얻어내는 방법인데, 그 상황에서 김정일의 죽음은 북한이 미국에게 ‘한 수 접고’ 들어가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미국과 합의를 이뤄내는 변수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비로소 두 가지 추측이 가능해진다. 첫 번째는 김정일의 죽음으로 북한의 전향적인 대외정책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만일 김정은을 비롯한 차기 세대들이 군부 강경파에 맞서 유화적인 대외노선과 개혁개방의 방향으로 나아가기로 생각했다면, 김정일의 죽음은 이 차기 북한의 지도층 입장에서 이러한 노선을 전면에 내세울 수 있는 기회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노선의 반영이 이번에 미국의 요구를 전면 수용한 것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추측에는 아주 복잡한 가정이 두 가지 필요하다. 바로 김정은 지도체제가 군부 강경파를 누르고 권력을 잡아내는 데 성공했다는 가정, 김정은과 북한 지도부가 개혁적인 방향의 노선을 결심했다는 가정, 이 두 가지가 그것이다.

 

북한이 미국의 요구를 대폭 수용한 것에 대한 두 번째 추측은 첫 번째 추측과는 정반대로, 북한이 김정은 체제를 확립하지 못하고 혼란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미국의 요구를 대폭 수용한 것은 북한이 지금의 내부적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시간 벌이’를 했다는 것이다. 사실 북한은 그동안 다른 국가들과 합의한 내용을 슬금슬금 깨버리는 일을 반복해왔다. 북미합의를 했다 손 쳐도 6자회담이나 3차 북미회담에서 합의를 깨버릴 수도 있다.

 

김정일은 김일성의 반대파들을 숙청하는 작업을 손수 지휘하며 안정적인 김일성 체제 내에서 20년간이나 후계자 수업을 받아왔다. 그렇기 때문에 김일성이 사망했을 때도 안정적으로 체제 유지가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은 그럴 시간이 없다. 2009년에 후계자로 내정되고 2010년 당 대표자회의를 통해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에 오른 것이 경력의 전부다. 단독으로 정책을 결정하고 국정을 운영하며. 지도력을 발휘한 경험이 거의 없다. 이에 반해 김정일 체제에서 2인자였던 장성택은 권력이 막강하다. 행정부장으로 공안업무를 책임지고, 국방부 부위원장으로 국방정책에도 관여하고 있으며, 황금평 특구 개발에도 개입하고 있다. 특히 2010년 당 대표자 회의에서 당 비서 최룡해, 당 부장 리영수, 평양시당 책임비서 문경덕, 주중대사 지재룡 등의 장성택 최측근들이 중앙정치 무대에 진입했다. 이렇게 힘이 커진 장성택이 김정은에게 복종할 것인지 미지수이다. 또한 아직 막강한 권력을 가진 군부의 존재도 미지수다. 김영춘 인민무력부장이 새로운 권력을 꿈꿀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김정은 체제가 확립되지 않은 상황이라면, 군부와 장성택과 김정은이 권력을 공유하는 집단지도체제나 군부와 장성택이 힘을 합쳐 김정은의 권력에 도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연합뉴스, “김정은 후계구도 유지될까”)

 

김정일의 죽음은 서로 다른 권력들 간의 갈등을 관리해주던 절대적인 지도자가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즉 북한에서 권력 간의 갈등이 표면화되고, 북한이 혼란 속으로 들어섰다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김정은이 주도하여 김정은 체제의 성과를 내세우기 위해 급하게 미국과의 합의에 동의했거나, 아니면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일단 시간벌이용으로 합의했을 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한마디로 이번 북미합의와 김정일 사망 사건의 연관성을 파악하는 일은 북한 내부의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 정부는 이를 제일 먼저 파악하고,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다 해도 A부터 Z까지 진행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북관계 로드맵을 작성해야 할 것이다.

 

<한겨레 훅>에 기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