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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글/한겨레 hook

등록금 투쟁을 교육공공성 투쟁으로!

나는 서울시립대학교 학생이다. 작년에 있었던 반값 등록금 투쟁의 여파로, 그리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당선으로 우리 학교의 등록금은 반값이 되었다. 우리 학교 학생들은 이제 한 학기에 (평균) 119만원만 내고 학교에 다닐 수 있다. 사립대학의 한 학기 평균 등록금이 400만원이 넘는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반값 등록금’이 아니라 ‘반의 반값 등록금’이다.


그러나 반값등록금 투쟁의 목표는 단지 서울시립대의 등록금을 절반으로 인하하는 게 아니다. 서울시립대 총학생회는 서울시립대 반값등록금이 다른 대학까지 이어지는 데 힘을 보태기로 결정했다. 서울시립대 총학생회가 지난 12월 19일 반값등록금 원년선포식에 참여하고(머니투데이, 2012.01.26.) 2월 1일 사립대의 등록금 인하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한 이유는 이 때문이다.(민중의 소리, 2012.02.01.) 박원순 서울시장도 같은 입장이다. 서울시립대의 반값 등록금을 위해 182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는 것이 무리가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반값등록금이 서울시의 특수성을 고려하더라도 최초의 선례를 만들면 전국적 파급효과를 가지지 않을까. 그렇다면 182억 쓸 가치가 있다고 생각. 그것은 제 공약이기도 합니다. 적다든지, 학교 발전을 위한 또 다른 투자를 해야 한다든지 하는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이 가지는 상징적 효과가 워낙 크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결정했습니다."(YTN, 2011.11.03.)


그러나 등록금 인하는 다른 학교로 확산되지 못하고 있다. 작년에 감사원이 일반 사립대의 등록금을 12.7% 인하할 수 있다고 발표했지만, 교과부 이주호 장관과 대학교육협의회(총장협의기구)가 대학등록금을 5% 인하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대학들은 이를 실행에 옮기지 않고 있다. 등록금심의위원회조차 열지 않거나 등록금을 동결한 대학도 있다. 인하하겠다고 했다가 등록금 고지서에는 동결로 발표한 대학도 있다. 생색내기 용으로 2~3% 인하하는 대학이 다반수다. 오마이 뉴스 보도에 따르면 2012년 4년제 대학 등록금 평균 인하 액은 평균 30만 원이고 전문대는 29만2458원이라고 한다. 실망스러운 수준이다.(오마이뉴스, 2012.01.30.)


그렇다면 왜 서울시립대는 50%나 인하했는데, 다른 대학들은 등록금을 인하하지 못하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반값등록금 그 자체에는 찬성하지만, 그것이 ‘서울시립대의 방식’으로 확산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고 있다. 예컨대 서울시립대의 경우, 반값 등록금은 어쩌면 ‘간단’하다. 서울시에서 예산을 책정하고, 예산안을 의회에서 통과시키면 된다. 등록금을 인하해줄 시장을 뽑는 선거와 그 시장의 서명이라는 행정적 절차, 민주당 의원들로 구성된 의회에서의 예산안 통과면 오케이다. 하지만 사립대는 이렇게 ‘간단히’ 등록금을 인하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어떤 투쟁이 필요할까?


반값등록금 투쟁은 ‘교육 공공성’ 투쟁으로 이어져야 한다. 반값 등록금이나 등록금 인하는 학생들에 대한 시혜여서는 안 된다. ‘대학’이라는 상품의 과도하게 높은 가격에 문제를 제기하는 소비자와 공급자 간의 가격 협상이어서도 안 된다. 반값등록금 투쟁은 교육이 공동체를 구성하는 구성원 모두의 권리임을 천명하는 방향으로, 따라서 이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교육은 ‘공공성’을 띠어야 한다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


그렇다면 교육의 ‘공공성’은 어떻게 보장될 수 있는가? 최우선의 과제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민주주의란 당사자가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결정하고, 해결하는 원리이다. 더 이상 총장과 재단 이사장 등 몇 명이 등록금을 결정하게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 학생들이 등록금 결정에 참여해야 한다. 이런 취지로 2010년 이후 대학에 등록금심의위원회(이하 등심위)가 설치되었지만,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2010년 1월 통과된 고등교육법 개정안은 등심위 구성시 교직원・학생・전문가 중 어느 한 쪽의 비율이 50%를 넘기지 말아야 한다는 규정만 두고 나머지는 개별 대학에게 맡기고 있다. 이러니 대부분 대학에서는 이를 악용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인사를 등심위 위원으로 참여시킨다. 예를 들어 학생에게는 위원 자리로 두 자리만 준 뒤, 나머지 자리는 사실상 학교 측 입장을 대변하는 학교 교직원, 외부 전문가, 총동문회 회원 등으로 채우는 식이다. 이렇다 보니 등록금 인하 및 등록금 산정 기준 공개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의견은 번번이 묵살되기 일쑤이다.(프레시안, 2011.03.29.)


더욱 필요한 조치는 사립학교법 개정이다. 사립대들은 재정압박을 내세워서 등록금을 인상한다. 하지만 그들은 수백억의 적립금을 쌓아두고, 그 돈으로 땅을 사들이고, 주식에 투자한다. 등록금을 어디다 썼느냐고 학생들이 항의하면, 경영상의 비밀이라고 뻐긴다. 많은 사람들이 대학이 기업화되었다고 걱정하는데, 이건 기업도 아니다. 칼만 안 들었지 강도다. 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설명도 안 해주면서, 무엇이 필요한지 학생들의 의견도 묻지 않은 채 학교에서 등록금을 어디에 사용할 지 마음대로 결정한 뒤 돈이 없으니 돈 내놓으라는 식이다. 그냥 입 다물고 돈 필요하니 돈이나 내놓으라는 게 강도가 아니고 뭘까?


노무현 정부 시절에 사립학교법을 개정하려다 실패했다. 당시 사립학교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개방형 이사제(사학재단 이사진의 3분의 1을 학교운영위나 대학평의원회가 추천하는 인사로 구성하는 안)를 도입하고 사립학교 학교운영위원회를 심의기구로 설치하고. 이사장 친인척의 임용을 금지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사학법 개정은 학교를 민주주의의 원리에 따라 운영되도록 하고, 이를 통해 사학이 자신들의 사익을 위해 학교를 운영하는 것을 막아 ‘교육의 공공성’을 되살리기 위한 조처였다. 그러나 보수언론과 한나라당, 사립학교 측은 이런 조치가 ‘경영권 침해’라며 반발했다. 정부의 지원금(이는 결국 국민 세금)과 학생의 등록금에 의존하면서 오직 설립 시기에 개인재산을 출연했다는 이유만으로 학교를 개인의 재산처럼 운영하고 세습하면서, 이를 ‘경영권’이라고 부른다.


이처럼 등록금 결정구조를 교육의 주체인 학생에게 개방하고, 폐쇄적인 사립학교의 운영을 개방형으로 바꾸는 ‘민주적 조치’가 없는 이상, 교육의 공공성은 확보될 수 없다. 총장이나 이사단 몇 몇의 의지에 따라 운영되는 학교가 어떻게 ‘공공성’의 가치를 충족시킬 수 있겠는가? 반값 등록금 투쟁이 불쌍한 대학생들에 대한 ‘시혜’나 ‘가격 협상’ 따위가 아니라 ‘보편적인 권리’에 대한 투쟁으로, ‘교육 공공성’에 대한 투쟁으로 이어져야 하는 이유다. 서울시립대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운’좋게도 박원순이 서울시장이고, 민주당이 의회를 차지하고 있다. 근데 만약 그렇지 않다면? 언제 등록금이 다시 오를지 모르는 일이다.


내가 이처럼 교육 공공성 투쟁을 강조하는 이유는 이미 대학의 시장화와 효율성, 경쟁력 강화를 외치는 시장주의자들의 반격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 26일 ‘2단계 국립대학 선진화 방안’을 발표했다. 국립대를 평가하는 기준 중 하나로 ‘선진화 지표’를 내세웠다. 선진화 지표란 ‘총장직선제 개선 여부’와 ‘기성회 회계 건전성’이다.(한국대학신문, 2012.01.26.) 하나씩 살펴보자.


선진화 지표의 첫 번째 요소는 총장직선제 개선 여부다. 총장직선제를 폐지하면 경쟁력 있고 선진화된 국립대라는 것이다. 총장직선제를 이사회의 선임제로 대체하는 것은 국공립대 법인화의 핵심이기도 하다. 학교의 운영을 책임지는 총장의 선출을 학교 구성원들이 아니라 몇 몇 이사회의 손에 맡기는 것은 대학의 민주성을 침해하는 조치이며. 학교의 자율성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것이다.


선진화 지표의 두 번째 구성요소는 기성회 회계 건전성이다. 그간 국립대는 수업료 외에 ‘기성회비’라는 명목의 돈을 학생들에게 걷어왔다. 그리고 이 기성회비로 구성된 예산은 부당하고 불투명하게 집행 되었다. 지난 1월 27일 서울중앙지법은 “대학이 징수한 기성회비는 부당 이득”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레프트21, 2011.02.02.) 이 판결이 확정될 경우, 많은 국립대들은 엄청난 타격을 받게 된다. 전체 예산 중 적게는 50%에서 많게는 80%까지 기성회비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립대들이 정부에게 8000억 원의 예산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한 이유는 이 때문이다.(동아일보, 2011.01.30.)


물론 투명하지 않게 사용된 기성회비에 ‘부당 이득’이라는 판결이 내려진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정부가 이를 ‘대학의 시장화’ 개혁의 계기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교과부가 발표한 국립대 선진화 방안에 ‘기성회 회계 건전성’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가? 교과부는 기성회비의 불투명한 이용을 내세워 국립대가 부패와 비리로 가득 차 있으니 이를 시장의 원리에 맡겨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며 시장화, 구조조정 을 밀어붙일지 모른다.


이것이 등록금 투쟁이 단순히 ‘시혜’나 가격 ‘협상’이어선 안 되는 이유다. 등록금 인하라는 '시혜‘를 베푼 대가로 대학의 시장화를 밀어붙인다면 어쩔 것인가? 등록금 인하와 시장화 사이에서 ’거래‘를 하자고 나온다면 어쩔 것인가? 당장 등록금이 내려가니 좋은 것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사회가 학교 운영을 장악하고, 대학의 효율성과 경쟁력 강화라는 명목으로 대학의 시장화가 진행된다면, 한 번 내려간 등록금은 다시 치솟을 지도 모른다. 우리의 요구는 ’등록금 인하‘를 위한 요구가 아니라 ’우리가 결정할 권리‘를 달라는 요구여야 한다. 교육의 공공성을 보장하라는 요구여야 한다.

 

<한겨레 훅>에 기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