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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글/노동당 기관지

박원순은 ‘세 번째 박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어쩌면 그는 행운아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그 행운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박원순 서울시장 이야기다. 

희망제작소’ ‘아름다운 재단으로 알려진 시민사회 계의 거물 박원순이 정계에 진출한다는 말은 예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현실감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기회는 갑작스레 찾아왔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무상급식을 주민투표에 붙이자며 사퇴라는 승부수를 띄웠고 결국 투표함도 열어보지 못한 채 셀프탄핵당했다. 2010년 무상급식으로 만들어진, 야권에 우호적인 분위기가 이어지던 와중에 201110.26 재보궐 선거가 열렸다.

5%의 지지율에서 재선에 성공하기까지

오세훈의 셀프 탄핵이 박원순에게 유리한 판은 아니었다. 첫 주인공은 안철수였다. 누구도 박근혜를 능가하지 못하는, 능가는커녕 따라가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안철수가 박근혜를 지지율로 누르는 첫 대선후보로 등극했기 때문이다. 안철수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서울시장 지지율 50%를 기록했고, 박원순은 5%에 그쳤다.

그러나 50%의 안철수가 5%의 박원순에게 양보하며 드라마가 시작됐다. 안철수의 양보를 얻어낸 박원순은 나경원 새누리당 후보와 대결에서 승리했다. ‘반값 등록금같은 복지 의제를 전면에 내건 채 정치 초짜인 박원순이 새누리당의 간판 정치인 나경원을 누른 것이다.

박원순 시장은 20146월 지방선거에서도 재선에 성공했다. 정몽준 새누리당 후보가 각종 토건공약을 앞세우며 박원순 시장을 네거티브로 공격했으나, 박 시장은 13% 차이로 정몽준 후보를 가볍게 눌렀다. 정몽준 전 의원이 지금은 개그 캐릭터로 자리 잡았지만 결코 우습게 볼 수 있는 정치인이 아니다. 7선 국회의원에, 유력한 대권 주자로 거론되는 거물이다. 그런 거물을 여유롭게 꺾고, 민주당의 서울 승리까지 이끌었다.

박 시장이 재선에 성공하면서 그의 정치적 포지션은 더욱 넓어졌다. 그는 야권과 개혁진영의 적극적 지지를 얻는 동시에 인권변호사’ ‘시민운동가라는 경력답게 진보진영의 비판적 지지를 얻었다. 이제 재선을 통해 일 잘하는 서울시장’ ‘시민의 서울이라는 그의 전략이 중도파에게도 통한다는 점이 확인됐다.

박원순, 시민사회의 성장? 아니면 종속?

박원순 시장은 이미 기존 시민사회 운동가들의 한계를 뛰어넘고 있다. 기존 시민사회 인사들은 정치권에 흡수되어 그냥 그저 그런 개혁적 정치인 중 한 명으로 전락하거나, 아니면 계파정치에 밀려 나가떨어지곤 했다. 하지만 박 시장은 민주당을 뛰어넘은 시민의 정치를 내세우며 재선에 성공했고, 당의 유력 대선후보로 자리매김했다.

박 시장은 재선 직후 여론조사에서 대선후보 지지율 1위를 기록했다. 한 때 자신에게 양보했던 안철수 의원은 물론 문재인 의원, 김무성 의원 등까지 모두 제쳤다. 그러자 야권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어쩌면 세 번째 박 대통령을 볼 수도 있겠다는 반응까지 (박정희, 박근혜 대통령에 이어) 나왔다. 문재인 의원과 김무성 의원이 각각 새정치민주연합새누리당 대표로 취임한 이후에 박 시장의 대선주자 지지율은 약 10%를 기록하며 3위로 밀려났다.

하지만 항상 정치적인 논란의 중심에 서서 지지층을 결집시킬 수 있는 문재인김무성 대표와 중앙정치로부터 한 걸음 떨어져 서울시정에 주력하는 박원순 시장 간의 격차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오히려 새정치민주연합 내 지리멸렬한 계파갈등으로 문재인 대표의 지지율과 새정치연합의 지지율이 떨어질수록 박 시장의 보폭은 더욱 넓어지고, 지지율을 끌어올릴 기회도 더 많아질 가능성이 크다. 이런 이유로 박 시장의 성공이 시민사회운동의 성장이라는 긍정적인 평가도 적지 않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오히려 박 시장이 성공할수록 시민사회운동이 독자적인 정치 감시의 영역을 구축하기보다 기존 정치에 종속돼 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시민사회 내부에서도 이러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전상봉 서울풀뿌리시민사회네트워크 정책위원장은 지난해 1219일 열린 박원순 시정, 어떻게 볼 것인가토론회에서 “81일 시민단체들이 박 시장의 경전철 공약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하는데 박 시장의 참모들이 왜 참여하느냐고 관계자들에게 전화를 돌렸다고 말했다. 전 위원장은 박 시장과 우호적 관계에 있거나 서울시에 발을 딛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그 때 기자회견을 통해 입장이 갈리면서 내부 네트워크가 약화됐다고 밝혔다.

전 위원장은 나아가 시민단체가 (박 시장의) 이중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서울시민운동이 자기중심과 방향을 갖고 있지 않고, 어떻게 자립할 것인지에 대한 원칙과 기준이 없으니 서울시 사업에 동원되는 데 그쳤다는 것.

조금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박 시장이 들어서고 나서 서울시가 시민사회단체들이 참여할 수 있는 수많은 사업들을 만들었다. ‘마을 만들기사업이 대표적이다. 시민사회 진영에 일자리와 돈을 제공한 셈이다. 시민사회 진영이 박 시장의 재선과 성공에 따라 밥줄이 끊기거나 혹은 이어지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는 뜻이다.

같은 토론회에서 김상철 노동당 서울시당 위원장도 시민사회가 박 시장에 종속되는 현상을 우려했다. 서울시장의 직속 보좌관으로 서울혁신기획관과 시민소통기획관이 편재되어 있는데, 서울시는 서울시 행정기구 설치조례 시행규칙 개정에 따라 서울혁신기획관 내 민관협력담당관을 신설했다. 업무는 민간단체 시정참여사업 공모, 지원 비영리 민간단체 등록업무 총괄 비영리법인 관리시스템 운영에 관한 사항 시민사회 육성 지원 업무 등이다.

민간단체의 등록업무, 공모사업 등을 시장 직속 보좌기관의 업무로 삼은 것이다. 김상철 위원장은 서울시 민간협력담당관의 업무가 민간전문가의 주도성을 보충하기 위한 것인지 밖에서 싫은 소리하는 시민사회에 대한 효과적인 순치를 위한 것인지 모호하다고 지적했다.

박원순이 오른쪽으로 가면 어떻게 해야 하나

문제는 박 시장이 오른쪽으로 가면 시민사회 진영과 그의 비판적 지지자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이다. 박 시장의 서울시 2기에서 그의 우향우 조짐이 보이고 있다. 인권헌장 논란이 대표 사례다.

서울시는 수많은 시민들이 수없이 많은 토론을 거쳐 만들어낸 서울시민인권헌장 제정을 포기했고, 그로 인해 성소수자단체들이 서울시청에서 점거농성을 벌였다. LTE급 트위터 소통으로 유명한 박 시장은 인권헌장이 무산된 것을 묻는 이들의 질문에 묵묵부답이었다.

 

박 시장이 강조하던 시민참여정신에도 어긋나는 일이었다. 각계각층의 시민위원 150여명과 전문위원 30여명으로 구성된 서울시 시민위원회가 위원회 회의 6, 분야별 간담회 9, 권역별 토론회 2, 공청회 1번 등 수많은 합의와 논의를 거쳐 만들어진 것이 인권헌장이었다. 동성애혐오단체들의 반대에 시민위원회가 다수결로 결정했으나 서울시가 끼어들어 만장일치가 아니면 수용할 수 없다고 초를 쳤다.

  박 시장의 우향우 행보는 이것이 다가 아니다. 서울시가 2014년 말 발표한 2015년 예산안에서 저소득층급식비, 방과후 자유수강권 지원, ‘학습부진학생 책임지도’ ‘학교폭력 예방’, ‘특성화고 교육내실화 지원등 복지교육 예산 등은 삭감됐다. 반면 서울역고가프로젝트 사업을 비롯해 토건사업으로 분류할 수 있는 전시성 사업들의 예산은 늘어났다.

박 시장은 인권헌장 논란이 한창이던 와중에 보수 기독교단체를 찾아가 동성애를 지지할 수 없다는 입장까지 밝혔다. 이런 우향우 행보로 성소수자단체, 시민사회 진영 일각에서 박 시장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겠다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박 시장의 이런 행보는 대선 행보로 해석해야 한다. ‘인권변호사출신 박 시장의 자신의 지기기반을 까먹으면서 우향우 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이유는 그것 뿐이다.

결국 박 시장과 그 주변 참모들은 진보진영과 시민사회진영의 지지는 확고하다고 판단하고. 지지층을 넓히는 전략을 취하는 셈이다. 바꿔 말하면 진보진영에서 박원순 외에 대안은 없다는 자신감이다. 실제 인권헌장 폐기 이후 서울시청을 점거하자는 주장이 나오는 상황에서 점거농성은 과하다는 조심스러운 입장의 인권시민단체들도 있었다. 박 시장과의 관계를 고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박원순 시장이 기억해야할 그의 지지기반

집토끼는 내 손아귀 안에 있으니 이제 산토끼를 잡자는 식의 박원순 시장의 대권전략은 성공할 수 있을까. 박 시장이 우향우한다면,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이 박 시장을 지지할까. 박 시장은 동성애포비아들에게 손을 내밀었지만, 동성애 포비아들은 동성애를 혐오하는 걸까 아니면 박원순 시장을 혐오하는 걸까. 박 시장이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내비쳐도 여전히 서울시청 앞에서는 박 시장이 서울을 동성애 도시로 만든다는 식의 동성애혐오단체들의 선전선동이 계속되고 있다.

박 시장이 대선후보가 되려면 먼저 성공한 시장이 되어야 한다. 대권경쟁을 돌파하려면 자신의 지지기반이 있어야하고, 서울시장으로서 잘해야 지지기반을 다질 수 있다. 박 시장은 새정치연합 내에서 지분이 많지 않다. 당장 대권 경쟁이 벌어지면 새정치연합 의원들이 문재인 대표를 지지할까, 아니면 당 내 기반도 계파도 없는 박 시장을 지지할까.

박 시장이 2011년 재보궐 선거에서 민주당을 꺾고 본선에 오를 수 있던 이유는 그가 내세운 시민의 서울덕이었다. 그가 처음 시장이 될 때 그의 지지기반은 변화를 바라는 시민, 시민사회와 진보진영, 새정치연합 내 개혁 세력이었다. 박 시장이 국가보안법 폐지에 반대하고, 보수단체들을 껴안기 하고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말을 이어가도 이들이 박 시장을 지지할까. 박 시장의 현명한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