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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영화. 문학 외

박헌영의 아내도, 맑스걸도 아닌 혁명가 주세죽

박헌영의 아내도, 맑스걸도 아닌 혁명가 주세죽

[서평] 코레예바의 눈물 / 손석춘 지음 / 동하 펴냄


1901년 함흥에서 태어나 1953년 사망한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 여성 혁명가 주세죽을 일컫는 말이다. 그 외에도 주세죽에게는 ‘미모의 독립운동가’ ‘박헌영의 부인’ ‘맑스걸’ ‘레이디 레닌’과 같은 호칭이 붙는다.

손 석춘의 장편소설 ‘코레예바의 눈물’을 읽기 전 내 머릿속에 있던 주세죽의 이미지도 주세죽에게 붙던 호칭과 같았다. 역사 수업 시간에 워낙 미모가 뛰어나 인기가 많았다, 박헌영의 베프(베스트프랜드) 김단야와 3각 관계여서 박헌영이 죽은 줄 알고 김단야와 결혼했다는 이야기 등 그에 대한 기억은 야사에 가까운 ‘썰’이었다.

‘코레예바의 눈물’은 카자흐스탄에서 우연히 주세죽의 기록을 발견한 문인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소설 속 화자로 등장하는 이 문인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주세죽의 기록을 보며 ‘기록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떠앉는다. 이 소설을 읽은 많은 독자들은 아마 그 문인과 같은 심정을 느끼게 될 것이다.

주 세죽에게 어울리는 호칭은 ‘박헌영의 아내’도 ‘맑스걸’도 ‘레이디 레닌’도 아니다. 1919년 3.1운동으로 감옥에 갇힌 이후 줄곧 일본 제국주의와 맞섰다. 사회주의 혁명을 꿈꾸며 항일투쟁에 앞장섰으나 믿었던 소련 공산당에 의해 체포당한다. ‘사회적 위험분자’로 찍혀 1938년 5월 22일 카자흐스탄의 사막 도시 크즐오르다에 유배된다.

주세죽은 ‘절대음감’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음악에 천재성을 보이고 상하이로 유학을 떠난다. 그곳에서 만난 박헌영으로 인해 그녀의 인생이 뒤바뀐다. 박헌영은 “사회주의 조국에도 예술가가 필요하다”고 꿈을 포기하지 말라고 했지만, 그녀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주세죽은 단지 박헌영이라는 남성을 만나 사회주의자로 변모한 것이 아니다. 그녀는 박헌영을 만나기 전부터 31.운동을 기획하다 일제에 잡혀 고문을 당한다. 고문을 당하면서도 수갑을 찬 손으로 경찰을 두들겨 팰 정도로 패기가 넘치던 여성이다. 그녀는 박헌영 같은 당대의 남성 혁명가들에게 가르침을 요구하지 않았다. 동등한 입장에서 정세토론을 벌였다.

▲ 코레예바의 눈물 / 손석춘 지음 / 동하 펴냄

주 세죽은 당대의 남성 혁명가들이 지닌 봉건의식을 거침없이 비판하는 여성 혁명가였다. 박헌영은 주세죽과의 결혼을 앞두고 “주세죽은 세상이 다 알고 있는 미인이다. 조선이 식민지이지만 고래등 집에게 호의호식하며 살 수 있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다”며 “나는 주세죽 동지에게 편안한 삶을 보장할 수 없다”고 말한다.

주세죽은 분노해서 그에게 따진다. 박헌영마저 “여자 팔자는 뒤웅박 따위처럼 결혼한 여성의 운명이 남편에 달렸다고 생각하는, 케케묵은 양반계급 사고”에 빠져 있냐고 말이다.

남 성 혁명가들은 레닌이 부인 크루프스카야가 있는데도 애인 아르망과의 관계를 끊지 않고 셋이 동거한 사실을 높게 평가한다. 레닌에게 배울 것은 혁명뿐이며, 그만큼 레닌에게 인간적인 매력이 있기에 두 여자가 같이 산 것 아니냐고 말이다. 주세죽은 “만약 크루프스카야가 젊고 잘생긴 남성 혁명가와 사랑에 몰입해도 뜨거운 열정이 숨어 있다고 평가할 자신이 있나”라고 되묻는다. 오늘날 여성혐오에 반대하는 이들이 즐겨 사용하는 ‘미러링’의 원조인 셈이다.

여성 혁명가가 맞선 것은 일본 제국주의 뿐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여성을 남성의 종처럼 취급하는 봉건적 악습은 물론 타락한 소련 공산당과도 맞서야 했다. 주세죽를 ‘맑스걸’ ‘레이디 레닌’ ‘박헌영의 아내’ 정도로 취급하는 것은 그녀가 살아온 삶과 맞지 않는다. 그녀는 조선의 혁명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