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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글/한겨레 2030잠금해제

경제민주화? 바로 우리가!

19대 국회가 새롭게 구성된 지금, 대선을 앞두고 있는 지금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가 화두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은 물론 새누리당마저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를 외치고 있다.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의 핵심은 간단하다. 과연 ‘누가’ 재벌을 개혁하고 한국 경제를 ‘공정’하게 만들 수 있을까?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를 읊조리는 그들에게 재벌을 개혁하고 한국의 경제·사회구조를 뜯어고칠 ‘힘’이 있을까?

 

재벌 중의 재벌이라는 삼성을 예로 들어 보자. 누가 삼성을 개혁할 수 있을까? 장하준은 ‘삼성의 경영권 세습을 용인해주고 삼성에게 무언가를 받아내자’고 주장한다. 누가? 누가 ‘감히’ 삼성에게 무언가를 받아낼 수 있을까? 정치인들이 할 수 있을까? 친기업 정책을 펼쳤던 집권여당이 할 수 있을까, 아니면 ‘권력은 시장에 넘어갔다’며 삼성경제연구소 보고서를 참조해 국가를 경영하던 구 집권당이 할 수 있을까? 사법부라면 삼성을 건드릴 수 있을까? 온갖 불법행위에 솜방망이 처벌을 하는 주체가 바로 사법부다. 검찰이 할 수 있을까? ‘떡값’이나 받아먹지 않으면 다행이다.

 

언론이 할 수 있을까? 보수언론은 물론이고 <한겨레>나 <경향> 같은 진보언론도 삼성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않다. 광고라는 힘을 통해 언론을 통제하고 있는 것이 삼성 등의 재벌·대기업이다. <삼성을 생각한다>나 <먼지 없는 방>, <사람 냄새> 등 삼성을 비판하는 책들의 광고는 언론에 실리지 못한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 자본주의의 기본 원리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는 이윤을 창출하며, 그 이윤은 노동자들의 노동에서 기인한다. 따라서 자본가들은 노동을 멈추는 ‘파업’을 두려워한다. 삼성이라는 독주 기관차를 멈출 수 있는 것은 삼성의 노조뿐이다. 삼성이 어떻게든 무노조 경영을 유지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를 이룰 수 있는 힘은 재벌을 먹여살리고 한국 경제를 먹여살리는 노동자들, 그들과 연대하고 함께 싸우는 민중들에게 있다.

 

자본주의에 대해 가장 끈질기게 탐구했던 카를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회는 법에 기반하지 않는다. 반대로 법이 사회에 기반해야 하며, 법은 특정 시대를 지배하는 물질적 생산양식에서 발생하는 사회의 공동이익과 요구를 표현해야만 한다. 법전이 사회적 상황에 맞지 않으면 법전은 종이뭉치가 된다.”

 

정치인들과 일부 학자들은 입법과 법 개정을 통해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를 이루자고 말한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말대로 법은 사회적 현실에 기반하여 만들어질 뿐이며, 법이 현실과 맞지 않으면 법은 종이뭉치에 불과하다. 우리가 바꿔야 할 것은 온갖 법 조항이 아니라 한국의 자본주의이며 대다수 노동자와 민중을 죽음으로 내모는 물질적 생산양식이다. 그리고 이것을 바꿀 수 있는 힘은 일부 국회의원이나 대선주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자본의 작동을 실질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노동자와 민중들에게 있다.

 

헌법 119조 2항, 경제민주화 조항은 왜 죽은 조항이 되었을까? 이 법조항을 법적으로 되살린다고 사회적 현실이 변할까? 비정규직법을 없애면 비정규직이 없어질까? 사법부가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는 불법파견이라는, 그러므로 정규직이라는 판결을 내렸지만, 현대차는 정규직 전환을 하지 않는다. 기억하자. 재벌개혁? 경제민주화? 그것은 우리만이 할 수 있다. 삼성에 노조를 건설하고 비정규직들이 단결하여 자본에 저항할 때, 그리고 우리가 이들과 연대할 때만 이뤄낼 수 있다.

 

<한겨레>에 기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