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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글/한겨레 2030잠금해제

박근혜 표 화합의 정치?

박근혜의 ‘통 큰 통합’이 화제다. 박근혜는 아버지 박정희와 자신의 정적들을 찾아가 손을 내밀었다. 대통령 후보가 되자마자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을 방문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를 찾아가 인사를 나누었다. 보수언론과 박근혜 지지자들은 이러한 박근혜의 행보가 ‘국민통합’, ‘화합’이라는 박근혜의 모토에 걸맞은 행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런 반응에 탄력을 받았는지 박근혜는 전태일까지 찾아 나섰다. 박근혜는 전태일재단을 방문해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를 추모하겠다고 밝혔다. 전태일재단이 방문을 거부하자 꽃을 들고 전태일 동상을 찾아갔다. 자, 이쯤 되면 박근혜가 ‘국민 통합’, ‘화합’을 외치며 하는 행동이 무엇인지 그 패턴이 보인다. 박근혜는 방문과 악수, 인사를 ‘통합’, ‘화합’과 동일시하는 듯하다. 통합하기 참 쉽다. 정적이 있으면, 정적을 찾아가 악수하면 그게 통합이다. 정권의 반노동 정책으로 인해 사망한 노동자들이 있으면 찾아가 참배하면 그게 화합이다.

 

박근혜는 전태일 동상에 헌화를 하려다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 김정우의 항의를 받았다. 김정우 지부장은 쌍용차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서 전태일 열사와 화해하겠다는 것은 사기극이라고 주장했다. 박근혜는 앞을 가로막은 김정우를 바라보지 않고, 전태일의 동상만 바라보았다. 기자들은 박근혜의 얼굴을 찍느라 바빴다. 전태일 동상에 헌화를 하기 위해, 박근혜의 경호원들은 김정우의 멱살을 잡아 그를 끌어내리려 했다.

 

박근혜는 과거의 적들과 화해할 순 있어도, 현재의 적들과는 화해할 수 없다. 박근혜는 죽은 전태일과 화해하기 위해 살아있는 김정우의 멱살을 잡았다. 박근혜의 눈은 자신에게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노동자가 아니라, 이미 죽어 동상으로 남은 전태일을 향했다. 박근혜가 전태일과 화해하고 싶다면 지금 대한민국의 노동자들이 처한 문제를 해결하면 된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박근혜는 살아있는 전태일과 화해할 수 없다. 박정희는 국가 중심의 경제개발과 그 과정에서 벌어진 노동자 착취를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치부했다. 전태일은 이에 저항하고, 아래로부터 노동자들을 조직하여 박정희식 개발독재가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알린 열사다. 화해와 사과는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얼굴을 붉히며 본인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행동이다. 박정희 시절 ‘본의와 다르게’ 피해를 입은 분들께 사과한다는 박근혜가, 5·16이 구국의 혁명이며 박정희식 개발독재가 한국 역사에서 불가피했으며 꼭 필요했다고 주장하는 박근혜가 박정희를 통째로 부정한 전태일과 화해할 수 있을까? 박근혜는 이미 죽어 말이 없는 전태일하고만 화해할 수 있다.

 

박근혜는 박정희가 김대중을 탄압하던 시절이 아니라, 박정희가 죽고 김대중도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이후에야 김대중과 화합할 수 있었다. 박근혜는 노무현이 죽고 나서야 노무현과 화해했다. 박근혜는 박정희의 정적이었던 장준하의 유가족들을 찾아가 화해했다. 그러나 장준하가 박정희 정권에 타살당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박근혜와 그 측근들은 ‘정치공세’라며 눈을 부라렸다. 박근혜에게 죽은 장준하는 화해의 대상이다. 하지만 장준하가 ‘현재’의 문제로 다시 살아난다면 박근혜는 장준하와 화해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박근혜의 통합과 화합의 방식은 항상 방문, 인사, 참배다. 박근혜는 과거와 화합할 수 있어도 현재와는 화합할 수 없다.

 

<한겨레>에 기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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