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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글/한겨레 2030잠금해제

노동자가 아니므니다

지난 4일 가수 싸이의 공연을 보러 서울광장에 8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강남스타일’을 ‘떼창’하며 축제를 즐겼다. 눈에 띄는 전광판 하나가 싸이의 공연을 보도하는 방송국 카메라의 언저리에 잡혔다. ‘재능교육’. 8만명의 시민들이 즐거운 축제를 즐기러 서울광장에 찾아왔을 때,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들이 서울광장 맞은편 재능교육 본사 앞에서 농성중이었다. 1735일째의 농성이다.

 

그들은 왜 1700일이 넘는 어마어마한 시간을 거리에서 보내게 된 것일까? 학습지 교사들의 요구는 임금인상이 아니라 자신들을 노동자로 인정해 달라는 것이다. 1990년대 초반까지 학습지 교사들은 학습지 회사에 고용된 노동자였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특수고용직이다. 특수고용이란 사용자가 노동자를 개인사업자로 등록하도록 하는 등의 방식으로 사업자화하여 근로계약 대신 위탁, 도급 등의 계약을 체결하고 일을 시키는 형식의 고용형태를 말한다. 즉 특수고용직은 개인 사업주, 사장이다. 기업들이 이 개인 사업주와 일대일로 계약을 맺는다. 기업은 월급이 아니라 수수료, 수당을 지급한다. 현재 학습지 교사뿐만 아니라 화물노동자, 덤프트럭 기사, 레미콘 운송차주, 간병인, 택배기사, 애니메이터, 에이에스(AS·애프터서비스) 기사 등이 특수고용직으로 분류된다.

 

특수고용직은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헌법에 보장된 노동 3권도 보장받지 못하며, 산재보험 혜택도 누리지 못한다. 장시간 고강도의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한다.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재능교육은 회원을 늘릴수록 수당을 더 받을 수 있으니 좋은 거라고 주장했으나 학습지 교사들의 노동조건은 매우 불안정해졌다. 재능교육은 틈만 나면 수수료를 낮추려 했다. 교사들은 회원을 늘리기 위해 유령회원을 만들고, 자신의 돈으로 회비를 대납한다. 학업성취가 뛰어난 학생들에게 주는 스티커나 기타 학생관리비용도 모두 교사들이 부담해야 한다. 사업주니까.

 

재능교육 교사들은 노조를 결성하고, 사측과 단체교섭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그러나 재능교육은 노조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재능교육은 교사들에게 돌아가는 수수료를 삭감하려 했고, 이에 동의하지 않은 노조원들이 재능교육 본사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노동조합 활동으로 해고된 교사들의 복직과 노조 인정이다. 현재 전국에서 58만~200만명의 특수고용직이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노동권을 박탈당한 채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특수고용직 문제는 결코 ‘특수’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에는 불안정한 노동조건과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수많은 비정규직이 있다. 프리랜서 에디터, 디자이너, 방송작가 등이 특수고용직과 다를 바 없이 불합리한 고용계약, 착취, 임금 체불 등에 시달리며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노동자가 아니므니다, 그렇다고 사장도 아니므니다. 우리 사회 수많은 노동자들이 정체성을 잃은 채 타자로 전락해가고 있다. 복지도, 경제민주화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노동에 대해 합당한 대가를 받는 사회가 아니라면 그 사회의 복지와 경제민주화는 허울일 뿐이다.

 

싸이의 공연을 보러 모인 인파들이 재능교육으로 달려가 연대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들과 수많은 비정규직,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이 서울광장에서 마음 놓고 축제를 즐기는 모습을 보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아니라 노동하기 좋은 사회를 희망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한겨레>에 기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