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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글/한겨레 2030잠금해제

대통령은 메시아가 아니다

‘꿈: 대통령.’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많은 아이들이 장래희망으로 대통령을 꼽았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나쁜 사람을 혼내주기 위해 높은 사람이 되고 싶었고, 대통령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제일 높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난 곧 그 꿈을 포기했다. 대통령은 아무나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은 하나같이 권모술수에 능하고, 수백명의 사람들을 자유자재로 부리는 언론플레이의 달인들이었다. 옆집 아저씨, 윗집 아주머니 같은 정치인은 아무도 없었다. 정치인들은 옆집 아저씨와 윗집 아주머니를 대변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그들이 대변하는 건 자기 자신밖에 없었다.

 

그래서 난 정치인 노무현을 좋아했다. 그 사람은 옆집 아저씨 같았다. 말을 빙빙 돌려가며 책임 회피 하는 다른 정치인들과도 달라 보였다. 그의 솔직한 말을 들으면 속이 다 시원했다. 그래서 노무현을 좋아했다. 그런데 그도 어쩔 수 없었다. 그의 약속은 대부분 지켜지지 않았다. 그는 서민과 노동자가 아니라 부자와 자본가 편에 섰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자기는 서민 편이라고 우겼다. 노무현의 팬이었던 나는 노무현 정부의 행동 없는 말의 향연에 지쳐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리고 다시 한번 대통령이라는 꿈을 포기했다. 아무리 신념 있는 사람이라도 대통령이 되면 막상 다 똑같아지는구나. 아무리 대통령에게 막강한 힘이 있어도 기득권을 깨뜨리는 건 역부족이구나.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기대와 희망을 걸고 있다. 가끔 나는 대통령이 선출된 ‘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백성을 가엾이 여기는 성군을 뽑기 위해 투표장에 나오는 게 아닐까?

 

올해 대선은 박근혜 대 문재인의 양자구도로 진행될 것이다. 박근혜와 문재인이 대표하는 것은 박정희와 노무현이다. 이번 대선은 권위, 국가주도의 발전, 반공을 상징하는 박정희와 탈권위, 시장으로 넘어간 권력, 평화를 상징하는 노무현의 대결이다. 두 가지 가치는 매우 다르지만, 두 가지 가치의 지지자들은 똑같이 ‘성군’을 꿈꾸는 게 아닌가?

 

박근혜 지지자들은 대부분 박정희를 떠올리며 그의 딸이자 퍼스트레이디였던 박근혜를 지지한다. 박근혜 지지자들에게 박정희는 반인반신의 영웅이며, 오늘의 한국을 만든 신화다. 그리고 박근혜는 이 신화를 계승하여 흔들리는 국가의 기강을 바로잡고 힘없는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풀 성군이다.

 

문재인을 지지하는 야권 지지자들은 어떤가? 이 ‘깨어있는 시민’들도 사실 성군을 바라는 게 아닐까? 기득권과 한국의 보수파를 박살내고 국민을 대변해줄 정상적인 국가! 광해와 정조대왕을 보며 노무현을 떠올리는 이들 역시 ‘어게인 2002’, ‘돌아와요 노짱’을 연호하는 것이 아닐까? 가치와 방향은 다르지만, 박빠와 노빠한테는 공통적으로 ‘메시아’에 대한 요구가 보인다.

5년 전의 이명박도 마찬가지였다. 이명박은 대통령이 되면 주가를 올리고 747을 이뤄내겠다고 큰소리쳤다. 세상에 대통령 하나 바뀐다고 경제가 살아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이야기일까? 마찬가지로, 대통령 하나 바뀐다고 살기 좋은 세상이 오고 내가 바라는 국가가 나를 대변해줄 거라는 게 올바른 생각일까?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누구를 지지하든 그건 유권자들의 선택이다. 하지만 유권자들이 메시아를 꿈꾸며 누군가를 지지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은 메시아가 아니라 나만이, 그리고 ‘나’들이 연대한 우리만이 만들 수 있다.

 

<한겨레>에 기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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