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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Feral Capitalism Hits the Streets- David Harvey

영국 폭동 사태에 대한 맑스주의 지리학자 데이비드하비의 글을 번역했습니다.

 

원문 : http://davidharvey.org/2011/08/feral-capitalism-hits-the-streets/

 

흉포한 자본주의가 거리를 강타하다 - 데이비드 하비 , 2011년 8월 11일

 

허무주의적이고 흉포한 십대들. 데일리 메일지는 그들을 그렇게 불렀다. 각계각층의 미친 젊은이들이 정신없이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거리를 뛰어다니면서 경찰을 향해 벽돌과 돌과 병을 집어던진다. 이쪽에서는 약탈이, 저 쪽에서는 화재가 벌어진다. 그들은 하나의 전략적 목표에서 다른 목표로, 앞뒤를 가리지 않고 짹짹거리며 치고 빠지는 방식으로 경찰당국을 곤혹스럽게 한다.

 

이 글을 읽던 중 나는 “흉포한”이라는 단어에서 멈추어 섰다. 이 단어가 나로 하여금 1871년 파리코뮌의 지지자들을 떠올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파리 코뮌의 지지자들은 야생동물, 하이에나 같은 이들로 묘사되었다. 그들은 성스러운 사유재산, 도덕, 종교, 그리고 가족의 이름으로 즉결 처분당해 마땅한 이들이었다. 그러나 그리고 나서, 그 단어는 또 다른 연상을 불러일으켰다. 오래 전부터 아주 편안하게 루퍼드 머독의 왼쪽 주머니 안에 들어가 있었던 토니 블레어는, 나중에 머독이 그를 대체하기 위해 오른쪽 주머니에서 데이비드 카메룬을 꺼내들자 “흉포한 미디어”라는 공격을 퍼부었다.

 

물론 순수하고, 억제되지 않았으며 용납할 수 없는 범죄로 이 폭동을 바라보려는 사람들과 안 좋은 치안을 배경으로 벌어진, 맥락을 고려해야하는 사건으로 이 사건을 바라보길 원하는 사람들 사이의 히스테리적인 논쟁이 있다. 지속되는 인종주의, 젊은이들과 소수자들에 대한 정당하지 않은 학대, 높은 청년 실업률, 사회적인 박탈감의 급증, 그리고 경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면서 개인적인 부와 권력을 영속화화고 강화하는 것과는 관련이 깊은 긴축정책. 몇 몇은 심지어 엄청나지만 인간 번영을 위해 균등하지 않게 분배되는 잠재력 중에서 많은 직업과 많은 일상적인 삶의 무의미하고 소원해진 자질들을 비난 하는 데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

 

만약 우리가 운이 좋다면, 우리는 위원회를 갖게 될 것이며 대처의 시대에 Brixton와 Toxteth가 말했던 대로 똑같이 말하게 될 것이다. 나는 ‘운이 좋으면’ 이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최근 수상의 흉포한 본능으로 미루어볼 때 그는 윤리와 도덕의 실패, 예의범절의 타락, 가족적 가치와 잘못된 젊은이들에 대한 규율의 쇠퇴 등등을 들먹거리며 물대포 공격을 명령하고, 최류 가스 부대를 부르고, 고무탄을 사용한 진압에 동조할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자본주의가 그 자체로itself 맹렬히 흉포해지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흉포한 정치인들은 그들의 비용에 대해, 자신들의 부를 위해 공적 자금을 약탈하는 흉포한 은행가들에 대해, CEO와 헤지펀드 운용자에 대해, 부의 세계를 약탈하는 비공개기업투자펀드에 대해, 모든 이들의 청구서에 미스터리한 부담을 가하는 전화와 신용카드 회사에 대해, 바가지를 씌우는 장사꾼들에 대해, 주저하지 않는 사기꾼들에 대해, 기업과 정치세계의 가장 높은 계층을 위해 쓰리카드 몬트를 연습하는 예술적인 신용사기꾼들에 대해 거짓말을 한다.

 

특히 가난하고 취약하고 순진하며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백주대낮 날강도 짓 수준에 다다른 약탈 행위! 다량몰수의 정치경제는 하나의 풍조가 되었다. 더 이상 누가 정직한 자본가, 정직한 은행가, 정직한 정치인, 정직한 장사꾼, 정직한 정책 위원회 위원을 찾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겠는가? 그렇다, 그들은 존재한다. 단, 오로지 모든 사람들을 바보로 취급하는 소수에게만 존재한다! 똑똑해져라. 쉽게 이윤을 획득해라. 사취하고 훔쳐라! 잡힐 가능성은 낮다! 그리고 너의 불법행위에 대한 대가를 너의 부에서 지불하지 않을 수많은 방법들이 있다!

 

내가 말한 것은 아마 충격적으로 들릴 것이다. 우리들 중 대부분은 이것을 알지 못하는데 왜냐하면 우리는 이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어떤 정치인도 감히 이에 대해 말하지 않으며 언론들은 오로지 이러한 말을 한 사람들을 경멸하는 말들만 쏟아낼 뿐이다. 그러나 내가 추측하건데 거리의 폭동자들은 모두 이 사실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다. 그들은 단지 모든 사람이 여태껏 해왔던 일을 조금 잔인한 방식으로, 거리에서 눈에 띠게 했을 뿐이다. 대처리즘은 자본주의의 흉포한 본능을 해방시켰다. (그들은 친근하게 그것을 기업가의 “동물적 본능”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리고 그 이후에 그 무엇도 그 흉포한 본능을 제어하지 못했다. 베어버리고 불태워버리는 것은 거의 모든 곳의 지배계급들에게 공공연한 모토로 기능한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새로운 표준이다. 이것은 다음에 등장할 심리위원회가 언급할 내용이다. 폭동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이 책임을 져야한다. 흉포한 자본주의는 본능에 반대한 범죄를 위해서는 물론, 인간성에 반대한 범죄를 위해서 재판을 열 것이다.



슬프게도, 이것은 생각 없는 폭동자들이 알아서도, 요구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그것을 알고 요구하는 것을 막기 위해 모든 측면에서의 집단적인 공모가 이루어 질 것이다. 이것이 정치권력이 이 사태를 순수하게 비도덕적이고 바보같이 비합리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 성급히 우월한 도덕성과 번지르르한 논리의 예복을 입는 이유이다.



그러나 전 세계에는 깜빡이는 희망과 빛이 많이 있다. 스페인과 그리스에서 들고 일어난 분노한 사람들(the indignados), 라틴 아메리카에서의 혁명적인 충격, 아시아에서의 소작농 운동 모두가 약탈적이고 흉포한 글로벌 자본주의가 세계에 촉발시킨 대규모 신용사기의 진실을 간파했다. 우리 중 나머지가 이것을 깨닫고 행동하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우리는 또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우리가 나아가야할 방향은 어디인가? 이에 대한 대답은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이 한 가지 있다. 우리는 오로지 올바른 질문으로부터, 올바른 대답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