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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classic

사회개혁이냐 혁명이냐

 


사회 개혁이냐 혁명이냐(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5)

저자
로자 룩셈부르크 지음
출판사
책세상 | 2002-01-01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사회주의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의을 번역하여 옮긴 책. 1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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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있다. 진보는 앞으로 나가지 않은 길을 가야하는 "미래적" 사고를 해야하기에 그 방법론을 가지고 수 없이 싸울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진보세력, 혹은 좌파세력 역시 마찬가지이다. 민주노동당 내에도 수많은 분파들이 있고, (그 중 한 분파가 결국 진보신당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분당했다.) 트로츠키주의자, 사민주의자, 개량주의자, 좌파 민족주의자와 같이 사회 변혁의 "신념"과 "방법"에 의해 많은 좌파들이 있다. 또 시민운동을 강조하느냐, 노조활동을 강조하느냐, 지식인 운동을 중점에 두느냐, 예술운동을 중점에 두느냐 등 중점에 두는 대중선전활동을 중심으로 수 많은 좌파들이 나뉜다.

 

좌파들의 이런 세력 분화는 비단 21세기의 한국에서의 문제만은 아니다. 맑스주의 2세대자들에게도 이런 방법론의 차이는 극명했다. 맑스가 죽고 난 뒤, 맑스주의를 받아들인 독일의 혁명가들. 도대체 맑스주의를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어떤 것이 "참된" 맑스주의인가? 어떻게 해야 맑스가 바라는 유토피아가 오는가? 카우츠키주의, 로자 룩셈부르크주의, 베른슈타인주의(수정주의) 세 갈래가 흔히 당대 독일의 방법론적 차이를 대변한다.

 

영국 사회주의당의 존 몰리뉴는 <고전 마르크스주의의 전통은 무엇인가>에서 수많은 짝퉁 맑스주의가 있었는데, 그 중 제대로 맑스주의를 계승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 레닌, 트로츠키, 로자 룩셈부르크 정도라고 본다. 물론 이 도식에 동의할 순 없지만, 그가 룩셈부르크를 높게 평가하는 것에는 나도 동의한다.

 

베른슈타인 류의 수정주의는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정당활동 등을 통해 노동자의 지위를 격상시키는 방법을 통해 노동자의 정치적 권리나 경제적 권리를 보호하고 개선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른바 이런 "수정주의"의 가장 큰 약점은 구조의 문제를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맑스가 과연 이런 식의 현실 속에서의 자본가-노동자의 타협을 어떻게 보았을지는 의문이다.

 

물론 카우츠키 식으로 맑스를 교조적으로 받들고 싶진 않지만, <자본론>과 <경제학 철학 수고>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맑스가 바라본 노동자의 굴레란 정치적 힘이 없어서, 혹은 돈이 없어서 생기는 문제가 결코 아니었다. 노동의 물화. 내 노동이 내것이 아닌 사태. 그래서 스스로가 스스로를 소외시키는 사태. 이 소외가 문제의 핵심이다. 노동이 즐거운 것이 되어야 하는데 나를 괴롭히고 나를 소외시키는, 행위와 대상의 분리. 이것이 노동의 비극인 것이다. 그리고 그 비극의 뒤편에는 자본의 가치증식을 위해 노동력이라는 노동의 사용가치를 판매와 구매의 유통 속에 집어넣은 "시장"과 "부르주아"들이 있다. 국가권력과 결합하여 노동력을 팔 수 밖에 없게 만든 그 자본가들. 그리고 그것이 자본주의다. 자본주의에 착한 자본가, 나쁜 자본가란 없다. 자본주의에 힘든 노동자, 살기 좋은 노동자란 없다. 자본주의엔 자본가만 있다. 그리고 자본주의엔 노동자만 있을 뿐이다.

 

이 구조의 문제에 천착하지 않으면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별로 소용이 없는 대안을 생각하게 되는데, 그것이 이른바 수정주의이다. 한국의 어떤 정당들도 "자본주의 대안"을 논하지 않는다. 민노당의 권영길이 대선공약으로 "성장"을 이야기하는 시대이다. 후쿠야마가 "이데올로기 종언"을 논했지만, 이데올로기의 종언이라기보다 "상상력의" 종언인 거 같다. 자본주의 이후를 생각하지 못하는 상상력. 역사적 과정으로 자본주의를 파악하려던 맑스를 잇는다면서 자본주의 구조 자체를 문제 삼지 못하는 맑스주의자들. 그들이 수정주의자들인 것이다.

 

문국현이 대안인가, 아니면 <아름다운 가게>가 대안인가. 둘은 "천민"자본주의적인 한국을 좀 더 아름다운 자본주의로 가게 만들겠다는 시도인데, 맑스나 룩셈부르크가 말하듯이 자본주의에는 좋은 자본가 나쁜 자본가란 없다. 자본주의 자체가 천민적인 것이다. IMF 때도 한 명도 안 짤리고 경영했던 유한킴벌리의 문국현 신화. 그러나 그 노동자들은 연봉을 깍여야했고 교대조로 노동시간을 늘려야했다. 그것이 자본주의적 대안인가! 서동진의 표현대로 하자면 더, "자기계발"적이지 않은가. 즉 더 자본주의적이지 않은가 라는 말이다. 차라리 파업의 결과로 5시에 퇴근하고 다른 노동자들보다 연봉도 더 받는 현대차노조의 투쟁방식이 더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것이 아닌가. 근데 왜 문국현은 대안이라 말하고 현대차노조는 "귀족노조의 파업"이라 부르는가. 맑스가 <경제학 철학 수고>에서 임금은 노동자의 계급투쟁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밝혔는데도 말이다.

 

이것이 수정주의의 함정이다. 베른슈타인이 빠졌던, 빠질 수 있었던 함정이기도 했다. 스파르타쿠스당의 로자 룩셈부르크는 바로 이 지점을 정확히 짚어낸 것이다. "혁명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니, 기다리라고? 혹은. 현실에서 타협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라고? 그건 자본주의의 본질 그 자체를 망각한 일이다. "혁명을 하고 싶다면, 지금하라."는 것이다. 설사 실패한들 어떠한가. 그 아름다운 실패는 진정한 자본주의의 대안운동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비겁한 타협, 혹은 수정주의라는 오명을 받지 않고 말이다. 그 아름다운 혁명이 바로 룩셈부르크가 제안한 바이다. 개혁은 문제를 바꾸지 못한다. 특히 "자본주의"에서는 말이다. 보다 급진적으로, 그러나 교조적이지는 않게 말이다. 발터 벤야민이 말한 "호랑이의 도약"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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