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글 /단상

무엇이 더 많은 생명을 살리는 길일까?

<무엇이 더 많은 생명을 살리는 길일까?>

낙태죄 폐지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생명의 소중함을 주 논거로 삼는다.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낙태가 없는 세상’ ‘낙태를 최소화할 수 있는 세상’이 가장 좋은 세상일 것이다.

하지만 낙태를 금지하고 있는 우리나라, 그리고 다른 나라의 상황을 보자. 과연 낙태죄로 인해 낙태가 줄어들었을까? 현재의 낙태죄는 낙태를 줄이지 못했다. 가장 최근인 2010년 실태조사에서만 추정건수가 17만 건이고, 아마 통계에 잡히지 않은 건수를 합치면 더 늘어날 것이다. 게다가 이 중 1만여 건만 모자보건법에 의한 합법적 수술이고, 나머진 비합법의 영역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현실이 이런데 “낙태는 생명을 해치니까 금지해야 돼” “그건 도덕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행동이야”라고 훈계만 하고 있으면 무슨 문제가 해결되는 것일까? 나는 낙태죄로는 낙태를 전혀 줄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낙태죄 폐지가 낙태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에 낙태죄 폐지에 찬성한다. 낙태죄 폐지가 낙태 최소화의 길이다.

낙태가 합법화된 대부분의 나라에서 국가는 많은 상담과 진료를 제공하고, 이후 숙고를 거쳐 여성은 낙태를 결정한다. 이 과정에서 낙태를 포기하는 여성들도 많다. 기본적으로 몸을 상하게 하는 일인데다, 낙태로 인한 부작용이나 위험성, 낙태 외 다른 대안(예컨대 출산 후 입양) 등에 대한 설명을 충분히 제공받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태아의 존재를 깊이 인지하게 되면서 오는 생각의 변화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둠 속에서 혼자 위험하게 낙태를 결정하는 여성들의 부담을 사회가 함께 짊어지는 것이다. 2010년 보건복지부 실태조사를 보면 임신중절 수술을 경험한 여성 중 전문기관 상담을 거쳤다는 여성은 3.3% 밖에 없었다. 반면 전문기관 상담이 필요하다는 의견은 96%에 달했다. 현재 대부분의 낙태에 대한 결정은 여성 혼자, 또는 가족이나 파트너와 상의한 정도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와 동시에 국가가 해야할 일은 낙태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가난한 커플, 청소년 미혼모, 미혼 가정이 ‘아이를 키울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데 주력을 다하는 것이다. 이런 고민 없이 낙태를 계속 처벌한다면 가난한 여성들이 많은 돈을 지불하면서 더 위험하게 수술을 받는 현실이 계속될 뿐이다.

낙태를 정말로 줄이고 싶은가? 그럼 낙태죄를 폐지하고 낙태를 여성이 혼자 결정하는 것이 아닌, 국가와 사회가 함께 결정하는 영역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그것이 정치가 해야 할 일이다.

엄격한 카톨릭 국가임에도 낙태 합법화에 성공한 우루과이의 호세 무히카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낙태 합법화가 낙태를 줄일 것이다. 합법화가 비밀리에 낙태를 하다가 사망하는 일을 막을 것이고, 또한 낙태 건수도 줄일 것이다. 국가가 낙태를 결정한 외로운 여성을 지원한다면, 결정을 철회할 여성이 많을 것이다. 그렇게 더 많은 생명을 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