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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 /단상

‘그알’의 ‘이재명 조폭연루설’ 편은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그알’의 ‘이재명 조폭연루설’ 편은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논란이 되고 있는 SBS <그것이알고싶다>의 ‘파타야 살인사건 편’을 보았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조폭 연루설’을 심층 취재한 바로 그 편이다. 논란이 한참 확장되고 나서야 뒤늦게 보았는데 보는 내내 한 가지 커다란 의구심을 지울 수 없었다.

대체 이번 편의 제목인 ‘파타야 살인사건’과 이재명이 무슨 상관이라는 걸까?

‘파타야 살인사건’은 <그것이 알고싶다>가 약 1년 전에 취재했던 사건이다. 2015년 11월 태국 파타야의 고급 리조트 주차장에서 25세의 임모씨가 사망한 채 발견됐다. 이 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였던 김형진은 지난 4월 검거되었다.



‘그알’은 김형진의 검거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점을 포착해낸다. 김형진이 쫓기면서도 버젓이 여기저기서 모습을 드러내고 다니고, 심지어 카지노에서 일까지 했다는 것이다. 잡히면서도 전혀 반성이 없는 모습. 그리고 검찰 수사과정에서 살인죄가 사라진다. ‘그알’은 이 석연치 않은 일의 배후에 김형진이 속한 조직 ‘성남국제마피아파’가 있다고 의심한다.

이어 파타야 살인사건과 김형진에 대한 이야기는 성남국제마피아파에 대한 이야기로 옮겨간다. 성남국제마피아파 출신의 이모 대표가 경영하는 코마트레이드가 나온다. ‘그알’은 전직 경찰까지 포섭할 정도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성남국제마피아파의 석연치 않은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은수미 성남시장과 이재명 경기도지사에게로 향한다. 결론적으로는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성남마피아파와 결탁되어 있다는 몇가지 의혹을 제기한다. ‘그알’이 제기한 의혹은 아래와 같다.

1) 2007년 성남국제마피아 조직원들 47명이 기소된 사건에서 변호사 이재명이 그 중 2명의 조직원을 변호하였음(코마트레이드 이모 대표도 함께 재판을 받았음) 
2) 성남시장 시절인 2016년 7월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이모 대표에게 성남시 중소기업인대상 장려상을 수여함 
3) 성남시청 산하 성남청소년재단수련관에서 성남국제마피아파 조직원과 관련 있는 기관과 MOU를 체결함 
4) 성남시 및 성남도시개발공사가 성남국제마피아파 조직원이 딜러로 재직 중인 주차관리회사와 4천만원 수의계약을 체결하고, 성남시가 해당 주차관리회사를 두 차례에 걸쳐 성남시 고용우수기업으로 선정함.



이 여러 의혹을 보고 든 생각은 하나였다. 이런 의혹들이 파타야 살인사건과 무슨 관련이 있지?

‘그알’은 파타야 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를 둘러싼 석연치 않은 점에 착안해 그 배후로 성남국제마피아파를 지목했다. 따라서 ‘그알’이 입증해야 되는 가설은 대략 다음과 같다.

“조폭 조직이 성남에서 기업을 만들고 이 기업을 통해 경찰과 검찰 등 수사기관까지 장악했다. 이 힘을 통해 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 김형진이 거리를 맘대로 활보하도록 만들었고, 있는 죄까지 없어지게 만들었다”

‘그알’은 방송 초반부에 이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여러 각도로 취재한 결과물을 보여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야기가 갑자기 이재명으로 틀어진다. 그리고 이재명과 성남국제마피아파의 연루 의혹을 제기하기 시작한다. (위에서 정리한 네 가지 의혹)

‘그알’이 파타야 살인사건으로 시작한 취재의 결론을 이재명으로 내리고 싶다면 아래 세가지 중 하나의 가설을 입증해야만 했다.

1. 이재명이 성남국제마피아와 결탁하여 살인사건 용의자를 풀어주도록 수사기관에 압력을 행사했다.
2. 성남국제마피아가 이재명과 쌓은 친분, 네트워크를 통해 살인 용의자의 죄가 삭감되거나 살인 용의자가 거리를 활보할 수 있도록 힘을 발휘했다.
3. 이재명이 성남국제마피아파에 준 특혜를 바탕으로 성남국제마피아파가 살인 용의자의 죄가 삭감되도록만들거나 살인 용의자가 거리를 활보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그알은 위 세 가지 가설 중 어느 것도 입증하지 못했다. 파타야 살인사건에서 제기된 의문은 해결되지 않은 채, 이재명이 마피아파 조직원의 변호를 맡았고 그들에게 기업인상을 수여하고 수의계약으로 특혜를 줬다는 의혹만 쌓아뒀다.

과연 성남국제마피아파가 이재명과 ‘연루’되어 얻은 게 무엇인가? 변호행위? 기업인상? 4천만원의 수의계약? 유력 정치인과 힘들게 관계를 쌓아 얻은 이익이라고 하기엔 민망하지 않은가? 이런 (이재명과 조폭조직의) 몇 가지 관계맺음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 관계맺음을 통해 이재명과 성남국제마피아파가 ‘더 큰 무엇’을 얻었는가/혹은 도모했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그알은 방송 맨 처음에 파타야 살인사건을 배치해 ‘더 큰 무언가’가 마치 이 살인사건에 대한 공모행위인 것처럼 묘사했다. (나도 방송 보기 전에 그런 종류의 의혹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알이 제기한 의혹은 살인사건과 관련이 없다. 그럼에도 파타야 살인사건이라는 자극적인 제목 옆에 이재명 얼굴까지 박아서 방송했다.



‘그알’이 가진 장점은 수많은 정보들을 이야기처럼 재구성해 풀어내는 스토리텔링이다. 이 스토리텔링에는 정보를 얻은 순서도, 취재한 순서도 중요하지 않다. 이 스토리텔링은 정보와 취재 결과물의 적절한 배치를 통해 시청자로 하여금 결국 여러 가설과 의혹을 제거한 채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게 만든다.

하지만 ‘파타야 살인사건’ 편에서 그알은 본인들의 취재 순서를 그대로 늘어놓았다. 파타야 살인사건을 파다 보니 성남국제마피아의 실상이 나왔고, 이걸 파다보니 이재명과 관련된 의혹들이 나왔다. 인과관계가 아니라 취재의 순서대로 보도를 구성한 셈이다. 

그동안 그알이 따라온 스토리텔링 방식대로라면 여기서 버릴 건 버리고, 필요에 따라 순서를 뒤집어서 배치했어야 한다. 파타야 살인사건의 미스테리를 다루고 싶으면 거기에 집중하거나, 아니면 파타야 살인사건을 빼버리고 이재명 조폭연루설을 팩트체크하거나. 적어도 이번 ‘파타야 살인사건’ 편에서 그알은 스토리텔링에 실패했다.


P.S
한 가지 더, 취재 대상의 언론에 대한 태도가 그 대상에 대한 의혹 제기를 정당화하지 않는다. 이재명 지사가 보도를 앞두고 SBS 윗선에까지 전화를 한 것은 부적절했다고 생각한다. 의도와 무관하게 언론보도 개입으로 보이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이재명의 언론에 대한 거칠고 무례한 태도가 이재명에 대한 의혹이 사실임을 입증하진 않는다. 이 점은 명확히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