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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관련된 남의 글/펌글

최원 씨 코멘트

최근 나는 "곽노현 사건에 대한 소고 : 진보에게 도덕성은 무엇인가?"라는 글을 포스팅했다. 이 글은 내가 필진으로 참여하고 있는 한겨레 훅에도 올라갔다.(http://hook.hani.co.kr/archives/33012)

내 글의 요지는 한 마디로, 도덕성을 진보라는 정치세력의 무기로 삼기 전에 왜 현실에서 정치인들이 도덕성을 유지하지 못하는지 그 구조를 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정치개혁이나 혁명은 바로 각 개인들, 혹은 정치적 역할을 담당하는 각 개인들이 자신들의 신념체계나 도덕성을 유지할 수 있는 사회로의 변화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 글을 '그럼 진보가 도덕성을 버리란 말이냐'라는 말로 받아들이는 건 최악의 독해다. 이는 무수한 가능성을 둘 중 하나의 선택으로만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곽노현의 사퇴를 지지하느냐 마느냐의 차원에서 문제는 둘 중의 선택이지만, 우리는 '단기'를 살고 있지 않으며 잠정적으로 '장기'를 살고 있다는 의미에서, 개별적 정치사안을 넘어선 정치구조의 문제를 분명 이야기할 수 있다.

최원 님(@marxpino, 블로그 http://marxpino.tistory.com)이 이에 대해 흥미로운 코멘트를 주셨다. 최원 님은 나의 시사적인 글을 '개념화'해주신 셈이다. 내가 최원 님에 대해 알고 있는 건 뉴욕에서 철학 공부를 하고 있으며. 좌파이며, 발리바르에 관한 글을 쓰시거나 번역한다는 것 정도이다.


최원 Won Choi(marxpino) 약 2일 전 '도덕적 교화의 정치' 및 '정치적 도덕'과 대립하는 칸트의 '도덕적 정치'(정치를 도덕법과 화해가능하게 교정해가는)를 연상시키는 글 RT @jobonzwa: 곽노현 사건에 대한 소고 : 진보에게 도덕성은 무엇인가?
http://j.mp/r8ZbwA

도덕적 교화의 정치/정치적 도덕 그리고 이와 대립하는 칸트의 도덕적 정치의 의미가 무엇일까? 이에 대해 다시 묻자 최원 님이 다시 상세히 대답해주셨다.

최원 Won Choi(marxpino) 약 1일 전 @jobonzwa 도덕적 교화의 정치는 대중들에게 도덕을 설파하려는 것일테고(도덕 결벽증적 진보정치), 정치적 도덕은 정치적 필요에 따라 도덕을 유연화하는 것(일종의 실용주의).

최원 Won Choi(marxpino) 약 1일 전 @jobonzwa 도덕적 정치는 (도덕법을 따르는 것이 너무 어렵지 않도록) '세계를 변혁하라'는 칸트의 모토를 실현하기 위해 제도를 개조해나가는 것. ^^ 조본좌님의 입장이 앞의 둘을 비판하면서 칸트적 입장에 서신 듯하여 드린 말슴.

최원 Won Choi(marxpino) 약 1일 전 @jobonzwa 물론 이러한 사고가 가능하기 위한 조건은 칸트에게는 도덕이 일관된 하나의 체계로 규정가능하다는 점이겠지요. 그래서 도덕법의 목적론의 위험이 있습니다만, 여전히 요즘 등장했던 두 가지 편향에 대한 유효한 대안이 될 수는 있을 듯합니다.

정리하자면, 최원 님은 내 글을 도덕적 교화의 정치/도덕적 정치에 대한 대안으로써의 (칸트적 의미에서) 도덕적 정치의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셨다. 도덕적 교화의 정치와 도덕적 정치란 내가 글에서 지양하려고 했던, 곽노현 사건에 대한 두 가지 입장이었다. 조금 거칠게 구별하자면, 도덕적 교화의 정치란, 그래도 도덕성이 중요해! 라는 것이고, 도덕적 정치는 그러니까 도덕성을 버리자고!라는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이 두 가지를 모두 지양하고, 최원 님 말대로 도덕법을 따르는 것이 너무 어렵지 않도록 세계를 변혁하라는 입장에 서고자 했다. 이 입장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는, (이론적으로든 실천적으로든) 계속 고민할 생각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 입장이 '좌파적인 정치 기획'이라는 것에는, 이 입장의 구체화를 위해서는 자본주의와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