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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글/미디어스 칼럼

보편적 복지가 넘어야 할 산, 평등을 다시 사유하라

지난 주 언론이 ‘국제중’ 논란으로 들썩였다.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용의 아들이 최근 ‘사회적 배려대상자 전형’으로 서울 강북구 영훈 국제중학교에 입학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영훈 국제중에 따르면 이 부회장의 아들(13)이 사회적 배려대상자 전형에서 ‘한부모 가정의 자녀’라는 자격으로 응시했고, 최종 합격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한겨레나 경향 같은 진보언론은 물론 조선일보, MBC, KBS까지 비판에 나섰다. 입학 절차에 문제가 있었다는 의혹과 저소득층 자녀도 국제중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마련한 ‘사회적 배려대상자’의 취지에 어긋난다는 비판이 대다수였다.

삼성의 이건희도 보편적 복지의 수혜자!?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 논란의 핵심에는 ‘평등’이 있다. 그리고 같은 맥락에서, 이 논란 속에서 우리는 진보진영이 주장하는 보편적 복지가 넘어서야 할 거대한 산과 마주한다. 바로 “보편적 복지를 반대하는 가장 강한 논리-부자들한테 뭐 하러 그런 걸 해주냐-를 평등이라는 관점에서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라는 문제다.

경향신문이 이와 관련해 중요한 점을 잘 지적했다. <경향>은 1월 22일 기사에서 이 부회장 아들의 국제중 입학에 관련된 논란을 보도하며, 사회 일각의 비판을 소개했다. “영훈국제중의 경우 2011학년도부터 사회적 배려 대상자를 경제적 배려 대상자와 비경제적 배려 대상자로 나누고 한부모 가정 자녀 요건에서 ‘저소득’ 조건을 제외시켰다. 이 부회장과 임세령 대상그룹 상무는 2009년 이혼해 아들이 ‘한부모 가정의 자녀’로 사회적 배려 대상자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날 포털사이트 등에서는 ‘재벌 자녀가 어떻게 사회적 약자가 될 수 있느냐’는 비판이 나왔다.”

여기서 기사가 끝났다면 다른 언론의 보도와 다를 게 없었을 것이다. <경향>은 논쟁이 될 만한 화두를 던지며 기사를 마무리한다. “반대로 ‘정서적 약자’까지 배려하자는 제도의 취지로 볼 때 ‘부자는 한부모 가정 자녀라도 사회적 약자가 아니다 라는 시각은 편협하다’는 반론도 제기됐다. 이혼 가정의 자녀가 느끼는 상실감은 빈부를 떠나 비슷하다는 것이다. 논쟁은 보편적 복지로까지 확대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보편적 복지 찬성론자들은 그동안 이건희 회장의 손자(이 부회장의 아들)도 무상급식의 대상이 된다고 주장해왔다. 같은 맥락에서 이 부회장의 아들도 사회적 배려 대상자로 영훈 국제중에 입학할 자격이 된다는 것이다.”

<경향>이 지적한 것은 한국에서 보편적 복지를 주장하는 이들이 처한 난점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 부회장의 아들이 ‘사회적 배려대상자’로 국제중학교에 입학한 것이 말도 안 되는 처사라고 이야기하며, 이것이 ‘부당’하다고 말한다. 몇몇 언론은 “법적이고 절차상으로는 문제가 없을 지라도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 “윤리적으로 올바르지 않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심지어 “국민정서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말까지 나왔다. 그리고 동시에 이 많은 사람들이 부자의 자식들에게 뭐 하러 밥을 주냐고 무상급식에 반대하고, 이건희 같은 부자 노인들이 지하철에 공짜로 타면 안 된다며 노인 무임승차에 반대하며 돈 많은 집안 자식들까지 등록금을 안 내고 학교에 다니는 건 부당하다며 보편적인 반값등록금에 반대한다.

그리고 이러한 반대가 진보진영이 주장한 보편적 복지에 대한 거부감으로 이어진다. 이는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든 요인 중 하나였다. 복지를 둘러싸고 여권과 야권은 각각 선별적 복지 vs 보편적 복지의 입장에 서서 대립했다. 많은 한국인들이 어떤 복지에 더 찬성할까? 지난 1일 <경향>의 보도에 따르면 국민의 68.7%가 대학 등록금을 소득에 따라 차등 지원하는 것에 찬성했다. 소득과 무관하게 반값등록금을 지원하는 것에 대해서는 29.6%만이 찬성 의견을 냈다. 대선 전 서울권대학언론연합회가 대학생들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 조사의 결과도 비슷했다. 박근혜에 대한 대학생의 지지는 18%로 문재인/안철수에 비해 낮았지만, 박근혜의 정책에 대한 지지는 꽤 높았다. 등록금, 대학교육지원의 항목에서 박근혜의 정책이 문재인/안철수의 그것보다 높은 평가를 받았다. 대학생들조차 무조건 보편적으로 뭘 해주겠다는 공약보다 소득에 따라 차별적으로 대우하겠다는 정책을 더 지지한 것이다.

이는 보편적 복지를 주장한 진보진영이 넘어야 할 거대한 산이다. 많은 국민들이 한국 최고의 갑부인 이건희 가족이 왜 복지의 혜택을 누려야 하는가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다. 실제로 새누리당과 보수진영은 복지에 관한 의제가 등장할 때마다 이러한 논리로 맞섰다. 보편적 복지=부자 복지라는 것이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은 이런 의문에 대처할 논거를 마련하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은 이건희와 서민인 ‘내’가 똑같은 대우를 받는 게 ‘평등’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국가가 서민인 ‘나’에게 복지와 혜택을 집중하는 것이 ‘평등’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맥락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 부회장 아들이 ‘사회적 배려대상자’로 국제중에 입학한 것에 거부감을 느낀다. 이에 대해 삼성 측은 “한부모 가정의 자녀라는 이유로 입학한 것”이라며 “한부모 가정의 자녀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한 정서적 약자라는 게 이 제도의 취지”라고 밝혔다. 부자건 가난한 자건 정서적 약자이므로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에 코웃음을 치는 것은 쉽지만, 보편적 복지를 내세우는 입장(이건희 아들이건 서민의 아들이건 똑같은 혜택을 누릴 수 있다.)이라면 이 사안에 대해 단순히 “그렇게 돈 많은 사람이 어떻게 배려 대상자가 되냐.”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 보편적 복지의 반대자들은 똑같은 논리로 무상급식, 무상의료, 보편적인 반값등록금에 반대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돈 많은 사람에게 어떻게 밥을 공짜로 주냐. 그렇게 돈 많은 사람에게 왜 공짜로 등록금을 주냐.” 등등.

 

평등을 다시 사유하기

몇몇 언론과 정치인들은 이번 논란에 대해 이 부회장의 아들이 입학하는 과정에 부정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한겨레>는 보도를 통해 “영훈국제중이 2013학년도 입학전형에서 입학전형위원회 위원 가운데 외부 위원을 단 한 차례도 입학전형 절차에 참가시키지 않은 채 신입생을 선발해 관련 지침을 위반했다”고 말했다. 물론 입학 부정은 사라져야 한다. 하지만 입학 부정이 없이, 규정에 따라 공정하게 입학이 진행되었다고 한들 논란이 없었을까? 국민들은 이건희의 손자가, 이재용의 아들이 사회적 배려대상자에 해당한다는 것 자체가 부당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또한,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이 그 취지와 맞지 않게 왜곡되었다는 비판은 또 어떤가? KBS는 23일자 뉴스광장에서 “사회적 배려대상자 전형은 국제중 도입 당시 주로 저소득층을 위해 마련됐다.”는 전교조 관계자의 말을 전하며 “사회적 배려 대상자의 상당 부분이 배려 대상의 입학 전형이라기보다 특례를 받은 입학 전형의 성격으로 변질됐다”고 보도했다. MBC도 22일자 뉴스데스크에서 “법과 절차상 문제는 없었지만 제도의 취지에 맞지 않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한부모 가정의 요건을 충족시키더라도 소외계층을 배려한다는 취지에 걸맞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제도의 취지를 살린다고 소외계층에 대한 배려가 실현될 수 있을까? 국제중학교의 성격에 대해 알아보자. 국제중은 일반 중학교와는 달리 국제 관련 교과 수업을 특화해 대부분의 과목을 영어로 가르치는 특성화 중학교다. 국제중은 특목고로 진학하는 관문이라는 이유로 학부모와 학생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누리며, 사회 고위층 자녀들의 인맥 관리의 장소로 각광받고 있다. 학비만 900만원이 넘고 수학여행 경비만 240만원이 넘는다고 한다. 다른 학생들에게 뒤지지 않으려면 계속 사교육을 받아야 하므로 사교육비도 만만치 않게 든다.

이런 학교에 ‘사회적 배려 대상자’를 도입한들 저소득층이 입학할 수 있을까? 입학한다 해도 차별과 박탈감을 느끼지 않으면서 공부할 수 있을까? 실제로 사회적 배려대상자로 입학한 학생들이 하위 성적과 저소득층이라는 딱지로 인해 인격적 모독과 정서적 위화감을 느끼고 전학 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애초에 학교 자체를 귀족학교로 만들어놓고 거기에 저소득층을 배려하는 입학전형을 마련한다고 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우리는 이건희의 손자가 사회적 배려 대상자로 국제중에 입학했다는 사실에 분개해야 하는 게 아니라, 국제중 같은 학교가 있다는 것 자체에 분개해야 한다. 부모의 신분에 따라 아이들을 구별 짓기 하고, 다른 교육을 받게 한다는 것 자체에 분개해야 한다.

진보진영의 보편적 복지가 내세워야 하는 것은 이 같은 ‘평등’의 가치이다. 이건희도 나도 똑같은 사람이며 똑같은 권리와 행복을 누려야 한다는 평등의 가치를 내세우지 않는 한 보편적 복지는 대중에게 먹히지 않을 것이다.

무상급식 논쟁을 떠올려보자. 많은 부유층이 무상급식에 반대했다. 새누리당의 주장대로 무상급식이 부자급식이라면, 본인들에게 혜택을 주는 무상급식에 왜 부유층이 반대했을까? 무상급식이 ‘평등’을 내세우며 구별 짓기를 거부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부자이건 가난한 사람이건 부모가 누구건 무상급식은 ‘똑같은’ 밥을 준다. 그리고 그 밥은 부모의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밥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속한 공동체가 제공하는 밥이다. 부자들은 이러한 평등의 가치에서 불편함을 느껴 무상급식에 반대한 게 아닐까? 무상급식은 능력에 따라 차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우파의 가치와 어긋나기 때문이다. 무상급식에 찬성하는 몇몇 어른들은 “애들 밥 먹이는 거 가지고 정치싸움하지 맙시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무상급식은 단순히 아이들 밥 먹이는 문제가 아니다. 평등이라는 가치를 둘러싼 중요한 정치쟁점이다.

진보진영이 보편적 복지를 주장하고 이를 통해 보수 진영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면 이처럼 평등이라는 개념을 다시 사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기회의 평등을 주장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국제중의 존재는 인정하되 저소득층도 국제중 안에 들어갈 수 있도록 ‘배려’하는 ‘평등’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국제중의 존재 자체가 평등이라는 가치에 어긋난다는 점을 지적하고, 이러한 평등의 가치에 기초한 보편적 복지를 주장해야 한다. 이런 고민 없이 ‘무상’ 노래만 부르다가는 보수 진영한테 다시 패배하고 말 것이다.

<미디어스>에 기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