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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글/미디어스 칼럼

진보가 가르쳐야 할 것들

몇 년 전 한국사회에 ‘강남좌파’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사회의 엘리트이거나 주류 계급의 위치에 있지만 서민이나 노동자들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복지를 요구하는 이들을 총칭하는 단어였다. 우리는 강남좌파가 기존의 좌파들이 지닌 생각에 문제를 제기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강남좌파는 “사회경제적인 계급이 의식을 결정한다.”는 기존 좌파들의 사고를 넘어서고자 한다. 사회경제적인 계급이 주류에 속해 있더라도 좌파적이고 진보적인 사유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강남좌파의 두 가지 계급조건, 부동산과 교육

하지만 난 여전히 인간은 사회경제적인 계급에 얽매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는 강남좌파의 한계이기도 하다. 좌파적이고 진보적인 ‘사고’는 마음껏 할 수 있지만, 어떤 실천을 할 것인가라는 차원에서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강남좌파들이 얽매이는 첫 번째 사회경제적인 계급조건은 ‘부동산’이다. 한국사회에서 부동산은 계급 재생산이자 부의 바로미터다. 아무리 좌파적이고 진보적인 주장을 하는 강남좌파들이라도 자신의 재산과 계급 재생산의 문제가 걸린 부동산 문제에서는 좌파적인 주장을 하기 힘들다. 이러한 측면에서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저서 <강남좌파>에서 노무현 정부가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오히려 땅값을 올리는 데 기여한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노무현 정부가 강남좌파를 표방했고, 강남좌파들의 지지를 받았기 때문에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강남 좌파

저자
강준만 지음
출판사
인물과사상사 | 2011-07-22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강남 좌파, ‘이념’보다 ‘엘리트’ 문제다『강남 좌파』에서는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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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좌파들을 옭아매는 또 다른 계급조건은 ‘교육’이다. 강남좌파들이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자식들의 ‘학벌’이다. 실제로 좌파, 진보 지식인을 표방하는 사람들 중에 자식이 서울대를 가지 못할까봐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칼럼리스트 김규항은 이런 현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보수 부모는 아이가 일류대학생이 되길 소망한다. 진보 부모는 아이가 진보적인 일류대학생이 되길 소망한다.”

진보 아이들도 영어 잘하게 키웁시다?

지난 일요일 트위터에서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의 글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진보 아이들도 영어 잘하게 키웁시다!’[각주:1]라는 제목의 글에서 조기숙은 강남좌파, 더 나아가 한국의 진보적인 부모들이(정확히 표현하자면 자기 자식이 강남좌파가 되길 바라는 진보적인 부모들) 지닌 자식 교육에 대한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영어공부법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서술한 뒤, 조기숙은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우리사회에서 영어는 계급이고 신분입니다. 영어가 별 쓸 데도 없는데 권력을 취득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어요. 21세기 지식정보화시대에 지식은 곧 권력입니다. 진보 아이들은 보수 아이들이 운영하는 회사의 운전기사, 노동자만 시킬 생각이 아니라면 우리 아이들이 올곧으면서도 사회의 권력을 갖도록 키워야 합니다. 그래야 그들이 세상을 좀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영어 잘하게 만드는 게 왜 나쁩니까? 진보는 늘 공부 안 시키고, 놀리기만 하고, 경쟁은 무조건 반대한다는 말은 잘못된 신화입니다. 외국의 진보들은 모두 주류입니다. 그들은 공부를 억지로 시키지 않고 즐겁게 하도록 만들고, 놀이도 삶과 공부의 일부가 되도록 하고, 약자를 짓누르는 경쟁이 아니라 나쁜 놈을 이겨서 세상을 좋게 만드는 경쟁을 시킵니다. 진보는 왜 맨날 물러 터져서 지고, 양보하고, 악인에게 패해야 하나요? 자녀들이 자율적으로 재미있게 놀면서 공부하도록 하고, 힘든 이웃도 돌아보게 하고, 악착같은 승부근성으로 나쁜 놈을 이기는 법도 가르쳐 주자구요. 보수 부모는 강제로 학원 보내고 억지로 경쟁시킨다면, 진보부모는 아이의 인권을 존중하며 즐겁게 공부시키는 게 차이점 아닐까요?^^”

자신의 욕망을 아이들에게 투사하는 부모들

조기숙의 글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대체 ‘어떤’ 진보 부모가 자식을 교육시키는 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대체 ‘어떤’ 진보 부모가 영어 잘 하는 게 나쁘다고 생각하지?”였다. 이미 대부분의 진보 부모들이 자식들의 영어교육을 위해 돈과 시간을 쏟아 붇고 있다. 영어가 신분이자 계급이라는 걸 매우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체 ‘어떤’ 진보가 늘 공부 안 시키고, 놀리기만 하고, 경쟁은 무조건 반대하는가? 아니, 오히려 ‘아무도’ 그런 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아무도 이러한 현실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게 문제 아닌가? 주장은 진보적으로 하면서 자기 자식들은 혹독하게 학벌의 경쟁으로 몰아넣는 게 문제 아닌가?

‘진보 부모도 자식 교육 잘 시켜서 진보 세력이 사회의 주류가 되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의 가장 큰 문제는 교육받는 사람, ‘아이’의 관점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많은 아이들이 교육 때문에, 지나친 경쟁에 내몰려 불행해지고 있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자신의 욕망을 투사하고 자식들을 자신의 욕망의 대리자로 취급한다. “내가 서울대 못 갔으니 너라도 서울대 가야 집안이 잘 살 수 있다.”, “내가 서울대를 갔으니 너도 서울대를 가야 집안이 계속 잘 살 수 있다.” 등등의 방식을 통해 부모들은 자식들을 몰아붙인다. 부모들은 자식들이 뭘 하고 싶어 하는지, 무엇을 위해 살고 싶은지에 관심이 없다. 한국의 부모들은 대부분 집에서 자식들과 대화를 하기보다, 늦게까지 일을 하고 돈을 벌어서 자식들을 학원에 보내는 게 자식들을 위해 더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조기숙의 주장은 진보 부모 입장에서는 “나는 보수 부모와 달라.”는 자기 위안을 마련해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별로 다를 게 없다. 조기숙은 “보수 부모가 강제로 학원 보내고 경쟁 시킨다면, 진보 부모는 아이의 인권을 존중하며 즐겁게 공부시킨다.”며 보수 부모와 진보 부모를 구별 짓기 하지만, 아이 입장에서 부모가 ‘시키는’대로 해야 하는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아마도 조기숙은 보수 부모와 진보 부모의 욕망이 다르다고 말하고 싶은 것 같다. 보수 부모는 아이가 엘리트가 되어 떵떵거리며 살라고 좋은 대학에 보내려 하지만, 진보 부모는 엘리트가 되어 나쁜 놈들 물리치고 정의사회 구현하려고 좋은 대학에 보내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약자를 짓누르는 경쟁이 아니라 나쁜 놈을 이겨서 세상을 좋게 만드는 경쟁을 시킵니다.”)

하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코웃음 나오는 말이다. 보수 부모건 진보 부모건 자신을 경쟁으로 내모는 태도는 다르지 않으며, 일단은 좋은 대학에 가고, 영어를 잘해서 엘리트가 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 부모님은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보수’ 부모에 속한다. 고등학생 때 부모님에게 “나는 진보적인 목소리와 의제에 관심이 많고, 대학을 꼭 가지 않아도 그런 걸 하면서 살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자 부모님은 나에게 “일단 대학을 가고, 성공을 한 다음 그런 목소리를 내라.”고 말했다. 좋은 교육 받아서 엘리트 되고, 사회를 변화시키라고 말하는 조기숙의 말이 보수 부모인 우리 부모님이 했던 말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뭐야, 결국 시키는 대로 공부 열심히 하라는 거잖아?” 김규항은 이러한 현실에 대해 “보수 부모는 당당한 얼굴로 아이를 경쟁에 밀어 넣고 진보 부모는 불편한 얼굴로 아이를 경쟁에 밀어 넣는다.”고 말했다. 부모 입장에서는 내가 당당 하냐, 불편하냐의 차이가 있겠지만 경쟁에 밀어 넣어지는 아이 입장에서 그런 차이가 느껴질까? 자신의 욕망을 아이에게 투사하는 건 똑같은데 말이다.

진보가 진짜 가르쳐야 할 것들

부모가 자신의 욕망을 아이에게 투사하는 것이 뭐가 문제냐고 물을 수도 있다. 문제는 그 욕망이 갖는 ‘전제’다. 그것은 ‘높은 사람이 되어야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전제다. 조기숙이 “보수 아이들이 운영하는 회사의 운전기사, 노동자만 시킬 생각이 아니라면 우리 아이들이 올곧으면서도 사회의 권력을 갖도록 키워야 합니다.”라고 말하는 이유다. 운전기사, 노동자가 돼서는 세상을 바꿀 수 없고 사회를 진보적인 사회로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사회를 변화시키려면 권력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진보가 바라는 세상이 과연 선하고 도덕적이고 올곧은 지도자와 엘리트가 나타나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세상인가? 그런 우연적인 요소에,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엘리트들에게 희망을 거는 사회가 진보가 바라는 세상일까? 노무현이나 안철수 같은 올곧은 메시아들이 이명박이나 박근혜 같은 악당을 물리치고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어줄 거라고 믿는 사람들은 그런 세상을 바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보수는 ‘엘리트만이 세상을 운영할 능력이 있으며,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하는 엘리트주의자다. 그렇다면 진보는 ‘평범한 사람들도 세상을 운영할 수 있으며,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해야 하는 것 아닐까? 진보 부모의 아이들이 영어교육을 열심히 받아서 사회 엘리트가 되는 사회가 이러한 세상에 얼마나 기여하는지 의문이다.

진보 부모가 아이에게 가르쳐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운전기사나 노동자야말로 진짜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이 아닐까? 서로 연대하여 권력을 남용하고 남을 착취하는 보수 아이들의 회사에 맞서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성공해라.’가 아니라 ‘차별은 배제하고 평등은 옹호하라’는 것이다.

<미디어스>에 기재되었습니다.

  1. http://cafe.daum.net/slowschool/BytC/4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