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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글/미디어스 칼럼

박근혜 시대를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

25일 0시를 기점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시대가 개막했다. 어떤 이들은 아직도 인터넷상에서 대선 수개표, 재검표를 요구하며 박근혜 대통령을 부정하지만, 이제 우리는 ‘대통령 박근혜’라는 표현에 익숙해져야 한다. 박근혜에 반대하고, 박근혜를 지지하지 않았던 진보좌파들은 새롭게 도래할 5년, 박근혜 시대에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명박산성’에 이은 근혜산성?

이명박 정부 5년간의 키워드는 ‘소통’이었다. 2008년 촛불집회 때 서울도심에 설치된 ‘명박산성’은 시민과 노동자들을 대하는 이명박의 마인드를 보여준 상징물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남의 말과 비판을 듣지 않고 4대강, 쇠고기협상, 한미 FTA 등을 밀어붙였고 그 과정에 ‘불통’ 정권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명박 정부와는 다르다”고 주장하는 박근혜 정부는 불통이 아닌 소통의 정부가 될 수 있을까? 인수위의 활동을 보면 이명박 정부보다 더 답답할 정도다. 어떤 언론도, 심지어 대통령의 최측근도 누가 장관이 될지 누가 총리가 될지 알 수가 없다. 인수위 간사들은 박근혜의 함구령 지시를 받고 기자들의 질문을 피하고, 대변인은 현장에 와서 밀봉된 봉투를 뜯어 장관 인선을 발표했다. 언론은 예측을 빗나간 인선에 허둥지둥했다. 정부조직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았는데도 자기들 마음대로 장관 인선까지 마쳤다. 정부 조직안에 동의하지 않는 야당을 새 정부 발목 잡는 세력으로 몰아붙이려는 속셈으로 보인다.

이러한 박근혜 식 밀봉 인사, 불통, 비밀주의는 아버지 박정희의 그림자와 연결되면서 진보세력으로부터 더 심한 비판을 받게 될 것이다. 이명박 정부 5년 내내 진보세력은 정부의 불통에 문제를 제기하며, 거리로 나가 소리를 질러야 했다. 박근혜 5년도 마찬가지 아닐까? 진보세력 앞에는 명박산성이 치워지고 근혜산성이 자리 잡았다.

박근혜가 (말)바꾸네?

이명박 정부는 남들의 비판을 듣지 않고 자신의 공약을 끝까지 밀어붙였다. 박근혜도 이명박과 같은 불통이라면, 재벌이나 시장주의자들의 비판에 귀를 닫고 복지, 경제민주화 공약을 밀어붙일 수도 있지 않을까? 박근혜와 인수위가 내놓은 답은 “아니올시다.”이다.

박근혜가 내세운 복지공약들이 줄줄이 후퇴하고 있다. 박근혜는 대선 때 만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월 20만원씩 기초연금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 공약은 만 65세 이상 노인을 소득수준과 국민연급 가입 여부에 따라 4개 그룹으로 나눠, 그룹에 따라 월4만원에서 20만원까지 차등지급하는 안으로 바뀌었다. 4대 중증질환(암, 심장, 뇌혈관, 희귀난치성 질환)의 총 진료비를 국가가 전액 부담하겠다는 공약도 후퇴했다. 상급병실료, 선택 진료비, 간병비 등 ‘3대 비급여 항목’은 국가가 부담하는 진료비에게 제외하겠단다. 의료단체와 환자들은 3대 비급여 항목을 국가가 지원하지 않는다면, 실질적으로 지금이랑 별로 달라질 게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노인 임플란트 건강 보험 적용’ 공약도 흔들리고 있다. 박근혜는 대선 때 65세 이상 노인의 모든 치아를 대상으로 하는 임플란트에 건강 보험을 적용하겠다고 밝혔으나, 이 공약은 ‘75세 이상 노인의 어금니 2개’를 대상으로 하는 임플란트에만 건강 보험을 적용한 뒤 점차 확대하겠다는 식으로 후퇴했다.

경제민주화는 또 어떤가? 박근혜는 지난해 7월,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국민행복을 위한 3대 핵심과제’ 중 하나로 경제민주화를 제시했다. 하지만 경제민주화는 최근 인수위가 발표한 5대 국정목표에서 제외됐다. 200쪽에 달하는 국정과제 자료집에 경제민주화라는 표현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고, 대신 성장 중심의 ‘창조경제’가 박근혜 정부가 내세우는 경제정책의 핵심이 되었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사령탑들도 경제민주화를 추진할 만한 인물들이 아니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후보자는 시장주의 원칙을 강조하는 경제관료 출신이다. 그는 그간 “대기업은 나쁘다는 식으로 정서적인 차원에서 경제민주화를 풀어서는 안 된다.”, “기업형 슈퍼마켓의 진입을 규제하는 것은 시장 왜곡을 초래한다. 우선은 시장에 맡겨야 한다.” 등의 발언을 통해 경제민주화에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내정된 조원동 역시 시장주의 원칙을 강조하는 경제 관료이다.

박근혜 시대의 복지, 경제민주화 공약이 이명박 시대의 ‘반값 등록금’ 역할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명박은 반값등록금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으나 이를 깡그리 무시했고, 대학생들은 공약을 지키라며 반값 등록금 운동을 전개했다. 이는 복지와 경제민주화 요구와 맞물리면서 반정부 운동과 진보세력의 집결로 이어졌다. 진보세력도 박근혜에게 공약을 지키라고 요구하면서 박근혜 정부와 대립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다시 한 번 복지와 경제민주화 열풍으로 이어질지 그렇지 않을지는 진보 세력에게 달려있다.


보수의 나라 대한민국

저자
조윤호 지음
출판사
오월의봄 | 2012-10-22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박근혜로 한국 사회 읽기『보수의 나라 대한민국』. 대한민국 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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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와의 전면전?

박근혜가 경제민주화를 포기한다면, 노동계는 박근혜 정부와 전면전을 벌여야 할 것이다. 박근혜는 얼마 전 한국경영자총연합회를 방문한 자리에서 “고용경직성이 강하다.”, “법과 질서가 존중되는 노사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는 말을 했다. 나아가 정부의 노사 문제 대응방침에 대해 밝혔는데, 그것은 ‘노사문제의 자율적 해결’, ‘불법 관행에 대한 단호한 대처’였다. 또한 박근혜는 경총, 한국노총과 긴밀하게 파트너십을 유지하며 노동문제를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대화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박근혜 정부의 노사 문제 대응방침, 노사문제를 자율적으로 해결하고 불법 관행에 단호하게 대처하겠다는 태도는 이명박 정부와 하나도 다를 게 없다. 자본과 대기업은 대법원 판결도 무시하며 불법적인 관행들을 일삼아왔고, 이를 제대로 바로잡자는 게 경제민주화의 취지였다. 막강한 힘을 가진 대기업과 자본가들의 횡포를 막으려면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는 경제민주화보다는 경제성장에 초점을 맞추는 경제정책을 내세우고 있으며, 정부의 개입이 아닌 ‘노사의 자율적 해결‘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박근혜가 내세우는 법과 질서는 결국 노동자들이 정리해고에 맞서 투쟁하지 말고, 파업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민주노총을 대화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 태도(“민주노총은 불법적인 파업을 일삼는 세력이다!”)와도 일맥상통한다.

현대사를 둘러싼 전면전!?

결국 박근혜 정부는 경제민주화를 이슈로 내세울 의지가 없는 것 같다. 경제정책의 방점을 경제성장에 두고 이를 추진할 경제 관료들을 경제사령탑으로 임명했다는 것은 곧 경제정책은 전문가, 즉 관료들에게 일임하겠다는 의사 표현이 아닐까? 노사 문제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 역시 노동 문제는 기업의 자율에 맡겨두고 정부는 경찰을 동원해 불법적인 투쟁만 제어하겠다는 태도다. 박근혜 정부가 경제민주화와 노동 문제를 이슈화하고 싶지 않은 게 아닐까? 이에 맞서 진보세력과 노동자들은 계속해서 경제민주화와 복지, 노동문제를 이슈화하기 위해 애써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박근혜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이슈화하고, 사회에 논란을 불러일으킬 부문은 무엇일까? 한국현대사, 즉 과거사 논란이 아닐까 싶다. 친일과 이승만, 박정희 등 한국 현대사를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명박 정부 때 뉴라이트가 금성출판사 등 교과서의 좌편향성(친북/반미/반재벌)을 제기하며 교과서 수정을 요구하고,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교과서 수정을 지시하는 일이 있었다. 박근혜가 아버지 박정희를 옹호하는 발언으로 대선 기간 내내 논란이 되었다는 점, 그리고 박근혜 주변에 “한국사회가 좌빨로 가득 차 있다.”는 식의 외눈박이 문제의식을 지닌 인사들이 즐비하다는 점에서 교과서 수정 등을 둘러싼 현대사 논란이 정국을 좌지우지할지도 모른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었다며 신난 우익들과 보수주의자들이 물 만난 고기처럼 날뛰어댈 것이다.

논란은 이미 시작되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지난 1월 22일 ‘초중등교육법 일부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 법안은 장관의 교과서 수정권을 법률에 명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안에 따르면 교과부 장관은 국정 교과서를 직접 수정할 수 있고, 검정교과서의 경우 저작자나 발행자에게 수정을 요청할 수 있다. 또한 교과서 편찬, 검정, 인정 단계에서 필요한 경우 교과부 장관이 감수를 할 수도 있다. 출판사가 장관의 수정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출판사의 검·인정 합격을 취소할 수 있다. 합격이 취소된 출판사는 3년간 교과서 심사에 참여할 수 없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각주:1]

박근혜 정부를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

진보세력에게는 박근혜 정부의 등장에 낙담하거나, 이제 끝났다고 한숨 쉴 시간이 없다. 이명박 정부 못지않게 박근혜 정부는 우리 사회의 기득권을 유지하려 할 것이다.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거부하고 노동계에게 법과 질서의 철퇴를 내리치면서 말이다. 박근혜의 시대는 이명박의 시대만큼 역사를 거꾸로 되돌리려는 시도들이 판을 치는 시대가 될 것이다. 한국사회의 좌편향을 한탄하는 우파들이 현대사를 둘러싼 논란을 제기하는 식으로 말이다. 진보좌파들은 이 시대를 다시 뚫고 버텨내야 한다. "이성으로 비관하더라도 의지로 낙관하라."

<미디어스>에 기재되었습니다.

  1. '朴통 시대' 발맞춰 '교과서 전쟁 시즌 2' 시작되나?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20130122151158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