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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글/미디어스 칼럼

메가스터디 광고가 말하고 있는 것

며칠 전 대형 입시업체 메가스터디의 광고가 SNS 상에서 화제가 되었다. 어떤 네티즌이 2013년 새 학기를 앞두고 메가스터디가 시내버스 등에 게재한 광고를 찍어서 인터넷에 올리면서 논란이 일었다. 문제가 된 메가스터디의 광고 내용은 다음과 같다. “새 학기가 시작되었으니 넌 우정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많아질 거야. 그럴 때마다 네가 계획한 공부는 하루하루 뒤로 밀리겠지, 근데 어쩌지? 수능 날짜는 뒤로 밀리지 않아. 벌써부터 흔들리지 마. 친구는 너의 공부를 대신해주지 않아. 아브라카다브라 기적은 반드시 일어나.”



이 광고는 소위 ‘우정파괴’ 광고라 불리며 많은 네티즌과 언론의 비판을 받았다. 많은 네티즌들과 언론은 이 광고에 대해 “시험 잘 보려면 친구를 버려야한다는 말이냐.”며 메가스터디가 비교육적인 내용을 선전하고 입시경쟁을 조장한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메가스터디는 “해당 광고는 새 학기를 맞아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은 것으로, 학생들에게 가장 와 닿는 소재인 친구를 차용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우정이냐 공부냐 그것이 문제로다?

하지만 우리는 메가스터디에 대한 비난을 넘어 한국의 교육 현실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우정이나 인간관계 같은 가치들과 공부를 대립 항으로 설정하고 배치시키는 한국의 교육 현실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실제로 SNS 상에서 이번 메가스터디 광고 논란에 대해 “현실이 잘못된 거고 메가스터디는 그러한 현실을 표현했을 뿐이다.”, “친구가 경쟁자인 대한민국의 교육 현실이 더 문제다.”라는 의견도 많았다.

이미 많은 교사들이 학교에서 공공연하게 “친구는 너의 공부를 대신해주지 않아.”라는 말을 해왔다. 내 경험을 이야기하자면, 내가 고2때 교사들이 전교생을 강당에 집합시킨 적이 있다. 그 때 교사들은 대학 가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지 일장연설을 했다. 그리고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우리가 하면 안 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하지 말아야 하는 것 목록에는 연애도 있었고, 쉬는 시간에도 친구들과 쓸데없이 잡담하거나 놀지 말라는 말도 했다. 그런 거(?) 할 시간에 수학문제를 하나라도 더 풀고 영어단어를 하나라도 더 외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고3때 친구들이 쉬는 시간에 밖에서 농구를 하고 있었는데 학생주임 선생이 와서 아이들을 혼냈다. “고3이 한가롭게 농구나 하고 있냐? 그럴 시간에 공부해라.” 고3때 내가 야자 시간 도중에 잠깐 밖에 나와 친구들하고 잡담을 한 적이 있다. 담임이 나를 따로 불렀다. “너 그렇게 애들이랑 어울리다 성적 떨어진다.”

공교육기관이라는 학교도 이런데, 학원은 오죽하겠는가? 고등학교 때 학원에 다닌 적이 있는데, 이사장과 학원 선생들은 정기적으로 학생들을 모아놓고 대학 가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좋은 대학에 가려면 우정이나 연애, 기타 개인적인 희로애락들은 개나 줘버려야 한다는 정신교육을 시켰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메가스터디 광고를 패러디했다.

서로가 협동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공부다

하지만 인간관계를 좋게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삶을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공부가 아닐까? 세상을 살다보면 많은 문제에 부딪치는데,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서로 협동해야 한다. 그런데 왜 선생들은 교실에 짱 박혀 문제 푸는 것 외에는 공부라고 생각하지 않는 걸까? 한국의 교실에서는 친구들과 협동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공부로, 교육의 일환으로 취급받지 못한다.

한국의 교실에서 가르치는 것은 ‘나 혼자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다. 2008년 내신등급제가 도입될 당시 언론들은 서로 필기노트도 보여주지 않고, 친구가 교과서를 훔쳐 갈까봐 자물쇠로 사물함을 잠그는 교실의 풍토에 대해 보도했다. 아이들은 서로를 협동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내가 이겨야 할 경쟁자라고 생각한다. “네가 자는 동안 남들의 책장은 넘어가고 있다!”

지난해 4월 서울시교육청이 초·중·고교생 26만여 명을 대상으로 친구들과의 관계에 대한 조사를 했다. ‘친구들과 사이가 원만해서 좋다’는 문항의 만족도 지수에서 고등학생은 5.0점 만점에 3.2점을 기록했다. 이는 초등학생 4.42점, 중학생 4.24점에 비해 낮은 수치다. 입시경쟁이 본격화될수록 동급생을 친구가 아닌 치열한 경쟁자로 인식하는 게 아닐까?[각주:1] 

‘공동의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는 청년들

내가 고3일 때 어른들은 “1년만 참아. 대학 가서 하고 싶은 거 다 해. 연애도 하고 친구들하고 마음대로 놀아.”라고 말했다. 하지만 어른들이 지금도 경쟁에 시달리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대학생이 되어도 자유를 만끽할 수 없다. 학점을 잘 받으려면 서로 경쟁해야 되고 좁은 취직 문을 통과하기 위해서 서로 경쟁해야 한다. 높은 등록금과 생활비에 시달리면서 공부를 병행해야 한다. 고3을 겨우 버텨낸다 해도 더 심한 경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이러한 현실이 20대가 정치. 사회문제에 무관심한 현상과도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의 청년들은 ‘함께 힘을 합쳐 해결해야 할 공동의 문제’에 대해 인식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내가 주변의 지인들에게 집회에 같이 가자고 유혹하고, 정치조직이나 정당에 참여해보자고 말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이렇다. “취업 스터디 때문에 바빠서”, “알바를 해야 해.” 하지만 취업하기 어려운 현실, 알바를 여러 개 해야만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현실은 우리가 공통의 목소리를 내는 ‘정치활동’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개인들에게 중요한 건 이런 공통의 목소리가 아니라 취업이나 알바 등 경쟁을 통해 살아남는 것이 되어버렸다. 몇몇 진보적인 어른들은 요즘 청년들이 보수화되었다고 한탄하지만, 보수화된 게 아니라 원자화된 것이 아닐까?

한국사회는 초등학교, 심지어 유치원 때부터 학생들에게 나 혼자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가르친다. ‘공부’는 홀로 문제집을 푸는 행위, 남들을 이기기 위한 자기계발 등의 좁은 의미로 한정된다. 메가스터디 광고가 표현하고 있는 우리 교육의 현실은 단순히 우정이냐 공부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다. 그러한 양자택일 속에 숨겨진 현실은 공동체가 개개인으로 갈기갈기 찢겨짐으로써 공동체로서의 학교가 사라진 현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개인들은 정치. 사회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여기지 않고, 살아남기 위한 생존경쟁에만 몰두하게 된 것이 아닐까?

교육에 대해 고민하자!

공동체는 공동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는 개인들을 통해 성립한다. 개인들이 공동체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라고 인식하지 못하면 공동체는 재생산에 실패하고, 파편화된 개인들만 남는다. 이것이 우리가 교육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1. 한겨레, <“친구 끊고 공부해” 우정파괴 메가스터디> 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575642.html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