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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글/한겨레 2030잠금해제

전쟁을 넘어 평화를 고민하자

북-미 간의 갈등과 남북 간의 긴장이 갈수록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외국인들이 보면 한반도는 당장 전쟁이 일어날 분위기일지도 모르겠다. 북한의 3차 핵실험과 이어진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 키 리졸브 훈련 등을 통해 남북한의 긴장은 점점 고조되어 갔다. 엊그제 미국의 B-2 스텔스기가 한반도에 진입해 폭격 훈련을 벌였고, 그러자 북한은 ‘사격 대기 상태’와 ‘핵전쟁을 일으키겠다는 최후통첩’으로 맞섰다.

언론은 연일 한반도가 당장 전쟁에 휩싸일 것처럼 긴장감을 조성하고 있다. 보수 언론들은 노골적으로 전쟁을 부추기거나 마치 곧 전쟁이 벌어질 것처럼 위기감을 조성한다. “전쟁을 결심해야 전쟁이 없다”, “북이 미사일 쏘면 피해 없어도 상응 조치”, “북, 돌격명령만 남아”, “10배 이상 응징” 등의 살벌한 말들이 신문 1면을 장식하고 있다. 북한의 <로동신문>도 ‘최후 결전’과 ‘보복’을 외치며 전쟁을 부르짖는다.

하지만 전쟁 위기에 대해서는 신나게 떠드는 언론들한테 어떻게 하면 전쟁을 억제하고 평화를 유지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별로 없어 보인다. 지난 30일 언론은 앞다투어 북한이 공개한 한 장의 사진에 대해 보도했다. 북한은 29일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긴급 작전회의를 주재하는 사진을 공개했다. 그 사진에는 ‘전략군 미본토 타격계획’이라는 제목의 작전 계획도와 북한군 주요 전력이 나와 있다. <조선일보>는 북한이 의도적으로 작전 계획과 주요 전력을 노출해 미국과 한국을 위협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중앙일보> 역시 미 본토 타격 능력이 있는 것처럼 선전하기 위해 비밀스러워야 할 회의 내용까지 의도적으로 연출했다고 보도했다. 두 신문 외에도 많은 언론들이 이런 식으로 북한이 연출된 쇼를 했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언론의 보도에는 북한이 연출을 한다는 비웃음만 있을 뿐 전쟁 위기로 치닫는 한반도의 갈등을 어떻게 풀어낼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없다. 북한의 강경 대응이 만일 연출된 것이라면 오히려 실제 전쟁 위협이 낮을 수도 있는 게 아닌가? 북한이 실제로는 전쟁을 할 생각이 없으며 협상하자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언론은 한반도 전쟁 위기에 대해서 보도할 뿐, 평화와 타협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

언론이 한반도 평화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북한에 비웃음밖에 날리지 못하고 있는 현상의 가장 극단적인 사례는 김정은이 애플 아이맥을 사용한다는 내용의 조선일보 단독 보도였다. 조선일보는 북한이 미제와 전면전을 벌이겠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미국산 컴퓨터를 쓰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도했다. 이런 식으로 북한을 희화화하고 깔아뭉개기나 할 줄 알지 저 예측하기 힘든 북한을 상대로 어떻게 평화를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없다.

언론의 사회적인 역할은 사람 몸에 비유하자면 혈관이다. 몸에서 아무리 피를 잘 만들어도 혈관이 피를 잘 옮기지 못하면 사람은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다. 언론은 많은 사람들이 중요한 이슈에 대해 알고, 또 고민할 수 있도록 사회에 필요한 목소리를 유통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북한 문제와 한반도 평화에 대해서는 언론이 제구실을 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이제 한반도가 얼마나 위험한 상황인지 잘 알고 있다. 또 북한이 이상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집단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이제 평화를 위해 어떠한 노력이 필요한지 그 이야기가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