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리뷰/인문, 사회과학

철학자들이여 야성을 가져라

 


모더니티의 지층들

저자
이진경 지음
출판사
그린비(그린비라이프) | 2007-03-10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에 대한 진지한 이해! 현대사회를...
가격비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기반은 무엇인가? 이 책은 그에 대한 물음이다. “모더니티의 지층들”이란 제목은 이러한 문제 의식을 담고 있다. 지층(startum)은 퇴적암이 퇴적될 당시의 환경적 상황을 보여주는 것으로, 층리면을 기준으로 층이 나누어지며 층리면은 새로운 시간의 시작을 뜻한다. 모더니티의 지층들에 대한 탐구는 근대성이라는 코드가 우리의 삶 전반을 지배하게 되기 시작한 시간의 시작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저자들은 화폐, 노동, 계급, 어린이, 주거 공간, 도시, 경찰과 같은 다양한 지층들을 통해 우리가 서 있는 땅의 바로 아래의 근대성을 보여주고, 더 나아가 이 지층들을 기반으로 하여 진행되는 다중, 생체권력, 마이너리티 문제, 제국과 다중과 같은 포스트모더니즘(여기서 포스트는 脫의 보다 後의 의미가 더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의 모습들도 보여주려고 한다.

근대성에 관한 훌륭한 개론서들이 즐비함에도 불구하고(예컨대 앤서니 기든스의 <현대 사회학>과 같은) 이 책이 내 눈길을 끈 이유는 그 “정치성”에 있다. 내가 지나치게 정치적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기든스의 책 같은 논리정연하게 현대사회를 설명해주는 책들은 명료하긴 하지만 뭔가 텁텁하다. 먹어야만 하지만 별 맛은 없는 영양제를 먹는 기분이랄까. 그 까닭은 내가 느끼기에 이런 강단철학용 책에는 정치성이 없기 때문이다.

한나 아렌트가 마지막 근대적 인간이라고 평한 칼 마르크스, 그는 헤겔의 영향 아래 있는 근대적 인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구조주의, 알튀세리언, 비판이론, 세계체제론 등의 수많은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을 양산해냈다. 그야말로 진정한 포스트모던과 모던 사이의 지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마르크스가 외친 한 마디 말은 니체가 말한 “노예적 철학자”와 더불어 나에겐 항상 책을 읽는, 학자를 평가하는 기준이다. “지금까지의 철학자들은 세계를 해석하기만 했다. 그러나 이제 철학자들은 세계를 변화시켜야한다.”

이 책의 저자들의 글빨(?)에게서 길들여지지 않는 야성을 느끼는 것도 바로 이 이유 때문일 거라 생각한다. 이 책의 저자들, 수유+너머의 연구원들은 강단 철학의 한계를 비판하며 한국 사회에서 국가와 거리를 두려는 거리의 철학자들이다. 야성으로 넘치는 이들은 강단철학자들이 하기 어려운 작업들을 수행하며 나 같이 인문학에 무지한 사람들에겐 인문학을 쉽게 정리해주고, 나같이 사회에 분노하는 이에겐 분노에만 그치지 말라고 충고해준다. 그런 이들이 쓴 사회학 입문서다. 그래서 뭔가가 다르다고 느낀 것이다.

이 책의 서문 부분에 해당하는 첫 장에서 이진경은 합리성. 계산가능성. 통제가능성으로 구성되는 모더니티가 폭력적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어 이 폭력이 봉건사회를 근대사회로 어떻게 변모시켰는지, 그리고 더 나아가 근대인의 생활 방식 하나하나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서술한다. 수많은 철학자의 심오한 주장들이 이 글을 학술적으로 덮었을지 몰라도 이 책에 저변하고 있는 것은 모더니티의 폭력에 대한, 특히 자본의 폭력에 대한 분노와 변화의지다. 난 이런 길들여지지 않는 야성이 좋다. 정치적이라고? 객관적이지 못하다고? 그게 내가 이 책에 끌린 이유다.

“지층들”에 대한 탐구가 비판적으로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것이 역사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지층들을 살피고 지구의 역사를 살펴보다보면 겸손해질 수밖에 없게 된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45억년 동안 지구를 지배한 건 인간이 아니었다, 이 오만한 것들아. 마찬가지다. 근대성의 지층들을 살피다보면 알게 된다. 우리가 심각하게 빠져 있는 경제주의, 화폐 증식에 대한 욕망, 국가 폭력의 정당화는 아주 짧은 시기에 급격하게 형성된, 바로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라고. 1만 년 동안 인류를 지배한 건 자본주의가 아니야, 이 오만한 것들아.

(4장) 우리가 그토록 가지고 싶어 하는 화폐, 신을 믿지 않지만 화폐는 숭배하는 이 시대에, 마르크스가 화폐 증식의 욕망을 내면화했다고 평가한 이 지본주의 시대에 많은 자본주의 옹호론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화폐는 교환을 위해 생겨난 자연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화폐 유통을 위해 자본가들의 수많은 폭력이 화폐의 유통을 위해 가해졌는지에 대해서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또한 종이 쪼가리를 믿고 교환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 그리고 교환 개념 자체가 없던 원시인들의 자본주의적 본성을 설명하기 위해, 몇 가지 물물교환이 이루어지던 고대. 중세의 시장과 시장이 없으면 살 수가 없는 근대의 시장을 동일시하기 위해 그들은 역사를 무시한다. “옛날에는 쉽게 얻을 수 있던 것을 화폐를 기준이 한 가격이라는 것이 생겨 골치 아프다”는 농부의 불평은 그들에게 무시해야할 증언이다. 그들은 자본주의 이전과 자본주의 이후를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아니, 스스로 그걸 포기했다.

역사성을 가지라, 우리가 당연하다고 맹신하는 이것들은 폭력과 눈물을 가져온 하나의 권력이었음에. 그리고 그 폭력에 분노하시라.

'리뷰 > 인문, 사회과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치의 원형을 찾아서  (0) 2013.01.18
화폐의 계보학!  (0) 2013.01.18
역사의 무거움을 해체하라  (0) 2013.01.18
우리 모두 니체가 되자  (0) 2013.01.18
애정과 거리두기  (0) 2013.0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