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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인문, 사회과학

우리 모두 니체가 되자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저자
고병권 지음
출판사
그린비(그린비라이프) | 2003-03-25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지금, 여기에서 다시 쓴 고전'이라는 리라이팅 클래식 시리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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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책들은 위험하다. 이는 단지 박홍규의 해석처럼 니체가 “반민주적”이어서도 아니고 히틀러가 정치 투쟁에 사용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에겐 다른 심오한 철학자들에게 존재하는 길 찾기의 어려움이 아니라 길의 과잉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에겐 천 개의 길이 있다.(고병권, 2001) 니체가『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아직 밟아보지 못한 천 개의 작은 길이 있다. 천 개의 건강과 천 개의 숨겨진 삶의 섬들이 있다.”라고 말했듯이 니체로 향하는 길, 니체의 길은 넘쳐난다. 그래서 니체는 네하마스에게, 리 스핑크스에게, 히틀러에게, 들뢰즈에게, 하이데거에게, 야스퍼스에게, 푸코에게, 데리다에게, 박홍규에게, 고병권에게 각자 다르게 읽힌다. “존재하는 것은 해석뿐이다.”라고 말했던 니체의 바람대로. “노예적 철학자”가 아닌 “창조적 철학자”가 되라고 했던 니체의 바람대로, 니체 연구자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니체를 해석하고 니체를 창조한다. 이 엄청난 과잉의 카오스를 넘어서고 자신의 니체를 만들어내는 자만이 니체를 읽을 수 있다! 그래서 니체의 책들은 위험하다.

어쩌면 니체 철학 자체가 위험할지 모르겠다. 스스로가 자신을 “망치를 든 철학자”라고 소개했듯이 니체는 서양철학 전반을 망치로 두들기며 때려 부수며 조롱하고 비웃는다. 합리주의적 서양철학의 전통을 비웃기라도 하듯 온갖 문학적 표현과 시적 은유로 가득 찬 그의 시들은 혼란과 혼동을 준다. 그의 망치 앞에 논리학은 진리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기독교는 온갖 악의 근원이자 사기꾼으로, 민주주의는 노예들의 평등으로, 자본주의는 노예를 생산하는 기계로 박살난다. 그렇게 해서 그는 비합리주의의 선봉으로 해석되었고 각종 극단적 민족주의와(니체 스스로는 국가와 민족을 경멸했음에도) 오리엔탈리즘의 논거로 사용되었다. 극단적 니힐리즘에 빠져 그저 현실만 긍정하라는 철학으로 해석되기도, 철학 자체를 무의미한 것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이런 해석들이 과연 올바른 것일까? 물론 니체가 말했듯이 “올바른” 것이란 없다. 다만 “해석”들만 즐비할 뿐이다. 하지만 니체는 가치의 가치를 평가할 때 그것이 “노예적”인가 “귀족적”인가는 구분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니체를 수동적 니힐리즘과 극단적 민족주의, 반기독교주의자이자 반민주주의자로 받아들이는 건 니체가 그렇게 말해서인가, 아니면 본인들이 그 가치에 지배당하고 있기 때문인가? 그대들은 니힐리즘과 민족주의의 노예적 신봉자이기에 니체를 보고 반가워하는 것이 아닌가? 그대들은 민주주의와 기독교를 노예적으로 신봉하기에 니체에게 불만족스러운 것이 아닌가? 당신들이 그렇게 믿는 니힐리즘과 민족주의라는 가치의 가치를 평가해 본 적이, 민주주의와 기독교를 의심해 본 적이 있는가. 의심하지 않고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 아닌 남이 만들어낸 가치를 노예적으로 받아들여 니체를 해석한다면 적어도 그들은 니체주의자가 아니다! (니체는 이를 미리 예측했던 걸까. 그는 <이 사람을 보라>에서 “나로부터 무엇인가를 이해했다고 믿는 사람은 추려내어 꾸민 것이다. 그것도 그의 표상에 의해......(중략)”이라고 밝혔다.)

니체는 진리가 없음을 창조의 기회로 긍정한다. 그에게 해석뿐인 이 세계는 주관주의도 객관주의도 아닌 창조로 가득 찬 세계다. 길이 하나 뿐인 것도 길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라 천 개의 길이 과잉 상태로 분포되어 있고 니체는 이 과잉을 즐기라고 단언한다. 니체의 철학은 위험하다, 그러나 즐겁다. 중국 전국시대의 시인 굴원(屈原)은 땅 위에 서 있는 것보다 바다위에 서 있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말했다. 이는 바다 위에 있으면 늘 위험을 의식하기에 조심하게 되는 반면 땅 위에서는 자신이 안전하다고 믿어 위험에 처하기 때문이다. 니체를 읽는 것은 흔들리는 바다 위에 서 있는 것과 같다. 언제 자신의 믿음과 신앙을 깨부수는 그의 비웃음 소리가 닥쳐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니체를 읽을 땐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러나 니체의 파도로부터 멀리 떨어져 서양철학의 전통적 기반 위에 안전히 서는 순간, 그 믿음과 신봉으로 마음이 안정될지는 몰라도 이 믿음은 결국 위험을 불러올 것이다. 인류의 재앙들이 왜 탄생했는가! 인간의 오만과 독단, 이성에 대한 신적 신봉! 그리고 스스로의 능력에 대한 자만, 그것이 인류의 재앙을 초래하지 않았는가? 니체의 바다 위에 서서 그의 망치질을 받아라, 그럼으로써 기반이 단단하지 못한 믿음들을 박살내라, 그러면 스스로 단단해질 것이고 스스로 창조할 힘을 갖게 될 것이다. 이 힘에의 의지! 그것이 니체 읽기의 궁극이다.

고병권의 이 책은 이런 의미에서 하나의 니체 창조다. 기존 니체 연구자들이 가장 어렵고 난해하다며 니체를 충분히 알고 난 뒤 읽으라던『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니체 입문으로 소개하고, 니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나 같은 사람들도 니체를 읽게 만들었다.『짜라투스트라』에서도 극히 일부분만을 인용한 그는 이 몇 안되는 부분을 기반으로 니체의 전반적 사상을 넘나들며 그 화려한 말빨로 니체를 소개한다. 고병권의 말빨은 니체의 저작들을 가로지르며 중력의 영을 무시한 채 어린 소녀처럼 춤춘다. 이 소개에 확 반한 나는 이 책 이후에 니체에 관한 책들과 니체 전집을 읽기 시작했다. 고병권은 나에게 니체를 창조해냈다. 학자들의 권위 어린 해석과 근엄한 말투조차 저버린 그의 말빨은 니체의 사상에 대한 논리적 전개보다 니체 자체에 대한 매력을 부각시켰고 그것이 나로 하여금 니체를 읽게 했다. 천 개의 길 중 하나로 나를 끌어 들인 다음 이렇게 말한다. “이건 하나에 불과해. 다른 길은 어떨까?” 나는 홀렸다. 그리고 나만의 니체를 창조하기 시작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 책의 한 가지 단점으로 꼽히는 것이 니체와 고병권이 헷갈린다는 것이다. 이게 니체가 한 말이야, 고병권이 한 말이야? 그러나 니체가 말했다, 모든 것은 해석이라고! 그리고 그는 여러 개의 이름으로 글을 쓰고, 심지어 스스로를 3인칭해서 스스로에 대한 평전을(이 사람을 보라) 쓰기도 했다. 주체는 여러 가지다! 라고 선언한 니체, 그래서 포스트모던의 선구자라 일컬어지는 니체에게 주체성이라니. 고병권이야말로 니체가 가진 하나의 주체일지도 모르지 않는가! 그렇게 생각하고 편하게 이 책을 읽으시라. 그리고 니체를 창조하시라. 그럼 당신도 하나의 니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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