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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인문, 사회과학

화폐의 계보학!

 


화폐 마법의 사중주

저자
고병권 지음
출판사
그린비(그린비라이프) | 2005-11-21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새로운 사유와의 마주침을 주선하는 클리나멘 총서 제1권. 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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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의심하라.

 

간단하지만 쉽지 않은 명제다. 인간은 쉽게 어떤 가치에 의해 노예적으로 지배당하고, 지금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과거에도 그랬고, 원래 그런 것이고(자연스러운 것이고) 고로 이 행위에는 목적성이나 권력의 개입이 없으며 단지 난 그저 그렇게 행동할 뿐이라는. 그런 류의 소극적 정당화는 우리 삶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의심한다 해도, 그것의 허구성을 밝히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당장 그것들을 노예적으로 신봉하는 모든 이들의 의심과 공격을 받아내야하며, 수 많은 논쟁을 감당해야한다. 그래서 니체는 이 어려운 작업에 엄청난 세밀함과 용기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계보학이라고 칭했다.

 

모든 단조로운 목적성으로부터 사건들의 단독성을 탐지하고; 가장 예기치 않은 곳과 역사가 없다고 여겨지는 것 - 감정, 사랑, 의식, 본능에서 사건들을 주시하며, 단일 진전의 느린 곡선을 그리기 위해서가 전혀 아니라, 사건들이 다른 역할을 하였던 다른 장면들을 되찾기 위해 사건들의 회귀를 포착하며, 이것들이 일어나지 않았던 순간엔 이것들의 공백점 조차 정의하는 것이다.

- 미셀 푸코,『니체, 계보학, 역사』 中

푸코가 수많은 형벌의 역사와 감옥, 규율의 역사를 통해 근대국가의 규율권력을 파헤치기 위해 수 많은 고문헌을 뒤졌고, 에피스테메의 개념 조차 뒤흔들었을 때, 니체가 모두가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던 것의 "계보학"을 밝혀 기독교의 심장을 찔렀을 때, 그들이 한 일은 과연 무엇인가!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것,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되는 것에 대한 의심. 그리고 그것에 역사성을 부여하는 일이다. 이는 주류 경제학자들에 대한 마르크스의 비판이기도 했다. <역사성이 없다!> 자본주의를 역사의 과정으로 이해하지 못한 채, 도달해야할 절대지, 혹은 이상적 단계로 파악하여 자본주의의 온갖 모순과 폭력을 자연스러운 것,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치부한다는 것이다.

 

이런 니체와 마르크스의 철학을 두루 공부한 고병권이기에, 고병권의 책을 읽을 땐 항상 역사성과 계보학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특히 마르크스에 대한 글, 니체에 대한 글 말고 독자적인 연구를 진행한 박사논문이었기에, 이에 대한 기대가 컸다. 주류경제학자들이 제대로 설명해 주지 않는 부분, 화폐 자체에 대한 계보, 화폐의 계보학을 고병권이 그 고유의 말빨로 어떻게 풀어나갈 지 기대했던 것이다.

 

책을 읽은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마르크스는 자본론 1권을 상품분석으로 시작하며, 상품이 자본주의의 고유 특징이라 주장하는데, 그 상품교환이 발달하면서 등장하는 게 바로 화폐였다. 고로 화폐에 대한 이해는 자본주의에 대한 이해의 기본이기도 하다. 그런데 주류경제학자들은 이를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는다. 화폐를 왜 쓰냐고! 당연하지 않느냐. 인간의 본성 아니냐!

 

그러나 고병권은 이 책에서 화폐 사용이 결코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닌, <마법>과도 같은 신앙이며, 거기다 화폐거래네크워크, 근대적 화폐주권, 화폐공동체로서의 사회, 근대화폐론이 사중주를 일으켜 서로 융합한 "역사적" 현상이었다. 각각의 사중주가 보여주는 것 또한 그러하다. 화폐거래네트워크, 화폐를 거래할 시장의 확대는 결코 초역사적 현상이 아니라 특정 계급과 특정 집단의 강력한 노력에 의해 만들어진, 어쩌면 하나의 폭력이 가해진 인위적 현상이었다! 당대인들은 화폐를 쓰며 불편하다고 투덜거렸다. 그리고 강력한 근대국가가 주권을 발휘해 화폐 사용을 강제할 그 힘. 그 힘의 탄생과 화폐의 확대는 맞물리며 그것은 힘에 의한 강제였다. 그리고 화폐를 쓰지 않으면 안되는 화폐공동체의 탄생. 종이쪼가리가 신앙을 지니게 되는 믿음의 사회학. 그리고 화폐 그 자체에 대한 논쟁. 화폐란 무엇인가에 대한 논쟁. 우리는 지금도 "통화정책"을 이야기하면서, 화폐론을 잊고 있다. 이 네 가지의 마법적 사중주. 그것에 의해 화폐는 "만들어진 " 것이다.

 

나는 이런 고병권의 작업이 자본주의 대안을 상상하는 사회학자로서 꼭 필요한 작업이었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 자체를, 자본주의 구조 자체를 천민적으로 만드는 상품물신. 그 속엔 화폐가 스스로 춤을 추는 화폐물신이 있다. 교환가치가 탄생한 순간 자본주의가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그 교환가치는 화폐로 化했다. 화폐에 대한 공격, 화폐물신에 대한 대안 마련 없인 자본주의의 구조 자체를 뒤흔들 혁명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일단 고병권은 한 단계는 성공한 듯 하다. "화폐는 역사적 과정이다. 고로 자본주의 역시 역사적 과정일 뿐이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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