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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인문, 사회과학

정치의 원형을 찾아서

 


정치의 원형을 찾아서

저자
최자영 지음
출판사
살림 | 2005-04-1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고대 그리스의 정치사를 추적하는 책. 그리스 정치의 독특한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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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 도시국가 개괄

최자영의 이 작은 책은 오늘날 우리가 ‘정치’라고 부리는 것의 시원인 그리스 정치를 탐구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쓰였다. 하지만 오늘날의 우리가 그리스 정치를 탐구하는 목적이 단지 과거에 대해 알아보자는 교양 쌓기의 의미만은 아닐 것이다. 김경희가 지적했듯이,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민주주의의 문제점들이 논쟁의 장에 펼쳐진 이 시대에 민주주의의 기원을 찾아가는 탐구는 충분히 실천적이고 정치적일 수 있다.

최자영은 이 책의 부제를 ‘그리스 정치의 이해’라고 붙였지만, 내 소견으로는 익숙하지 않는 명칭인 ‘헬라스’가 ‘그리스’보다 더 적절한 표현이라 생각한다. 당대의 그리스인들은 스스로를 헬라스인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플라톤 역시 국가에서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헬라스의 정체성에 대해 역설한 바 있다.) 당시 헬라스는 에게 해를 둘러싼 지역 전체를 일컫는데, 서쪽에는 그리스 반도가 있고 동쪽에는 트로이 지역, 그리고 남쪽에는 크레타섬이 있고 그리스 반도와 트로이 지역은 코카서스 산맥으로 연결되어 있다. 최자영이 초기 그리스 정치를 개관하는 부분에서 트로이, 미케네, 크로노스 문명도 다루고 있고, 또 아테네 정치사를 설명할 때 페르시아 지역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으므로 헬라스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앞에서 밝혔듯이 헬라스 지역은 바다를 육지가 두르고 있는 형상으로, 통상적으로 이런 지형에선 거대 권력이 발달하기 어렵다고 한다. 또한 그리스 반도(특히 아티카 지역)는 폴리스 사이에 산맥이 가로막혀 있어서 상호 교류하기도 어려웠다. 이런 지형적 조건이 폴리스라는 소규모 부족 공동체인 도시국가를 만들어낸 요인일 것이다. 또 바다에 근접해 있다는 조건은 정치 체제의 발달에도(이 책에선 아테네에 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다.) 많은 영향을 주었다.

도시국가는 시기상으로 기원전 800년부터 마케도니아가 괴뢰정권 코린토스 동맹을 설립한 기원전 328년까지 유지되었다. 도시국가는 원시 혈연 사회와 고대 후기 로마 형태의 제국 사이의 과도기 형태의 국가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고대의 미케네 등의 문명에서는 미약하나마 왕정이 실시되었으나, 트로이 전쟁 이전의 헬라스의 기록을 모두 불살라버린 도리아인의 남하 이후 그리스는 시민 자치에 기반을 둔 도시국가 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도시국가가 다른 지역의 정치체제와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은 자유와 재산권을 지닌 시민들이 스스로 통치하며, 관료들이 아닌 시민의 민회에 의해 주요 정책들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도시국가에도 다른 정치체제들과 마찬가지로 부유한 귀족 계층이 있었으므로, 도시국가의 정치사는 민주정과 과두정의 투쟁으로 정리된다. 이에 대해 민중의 세력이 강해지는 흐름상에서 과두세력들이 반기를 들었다고 보는 시각과, 민중세력과 과두세력의 투쟁은 결국 개인적 유대를 지닌 소집단(상류집단)들 간의 민중 끌어들이기로 보는 시각이 있다.

2. 아테네 정치사 : 솔론의 에우노미아eunomia에서 클레이스테네스의 이소노미아isnomia

최자영은 초기 그리스 정치사를 개괄한 다음 민주주의가 가장 극적으로 발전한 아테네 정치사를 살펴보고 있다. 그가 살펴보려고 한 아테네 민주정의 발전에 초석을 놓은 인물이 바로 솔론이다. 솔론은 부자와 군중 사이의 대립이 격화되었던 위기의 시대에 비상대권을 부여받아 이 대립을 해소하는 개혁을 실시했다. 솔론은 크게 세 가지 개혁을 실시했다. 첫 번째로 그는 빈자들이 채무자가 되어 결국 노예화되고, 국방에 차질이 생기는 현상을 막기 위해 부채를 말소하는 개혁을 실시했다. 이 개혁을 통해 그는 사적으로 예속되어 있던 인민들을 공동체 내에 통합하려 했다. 두 번째로 그는 국가의 부담을 지우는 데 비례평등의 원칙을 적용하여 시민들에게 등급별로 차별적인 의무를 부담하게 했다. 그 기준은 재산이었는데, 재산이라는 기준을 통해 그는 태생, 혈연, 가문이 아닌 객관적 기준에 따라 정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으며 부자들은 전쟁 경비를 부담하는 등의 더 많은 의무도 지녀야했다. 세 번째로 그는 사회의 위기가 귀족계층의 지나친 전횡이라는 판단 하에 아레오파고스 의회의 재판권을 민중재판소로 넘기고 관리를 선출이 아닌 추첨으로 결정하는 식으로 다수민중의 참정권을 확대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아레오파고스 의회의 많은 권한을 보장해주었고 빈민층의 토지 재분배 요구와 같은 급진적 요청은 거부함으로써, 김경희에 따르면 부자와 빈자의 균형을 맞추어 조화를 유지하고자 하는 eunomia적인 질서를 따랐다.

그러나 솔론의 이러한 개혁은 의도한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 채 파당들 간의 불화와 정치 싸움으로 이어졌다. 이후 권력을 장악한 참주 페이시스트라토스는 외국인 용병을 이용하고 정기적인 세금 제도를 실시하는 등 아테네 전통과 맞지 않는 정책들을 도입하면서 농민들에게 면세 혜택을 주어 부유층의 분노를 샀다. 그의 아들들은 민중을 우대하지도 않은 채 폭정을 일삼았고 결국 클레이스테네스가 참주를 타도하여 온건 민주정을 수립했다. 이사고라스와 클레오메네스가 그를 추방하고 의회를 장악하고 권력을 손에 넣었으나 민중들의 저항으로 클레이스테네스가 아테네에 복귀한다.

돌아온 클레이스테네스는 개혁을 실시했다. 그의 가장 중요한 개혁은 이전의 4부족을 10부족으로 나누는 행정구역의 개편이었다. 그는 기존의 혈연, 지연에 기반한 부족 중심의 정치구조를 극복하고자 행정구역을 개편했다. 그리고 각 지역구 차원에서의 시민들의 정치참여를 유도하였으며 도편추방제를 도입하여 참주의 등장을 막고자 했다. 김경희는 클레이스테네스의 개혁을 isonimia란 개념을 통해 이해하고자 한다. 원래 isonomia란 민주주의란 개념이 생기기 전 참주에 대한 귀족들의 평등이 법으로 보장되어 있다는 의미였으나 광범위한 의미의 시민 개념이 등장하면서 법에 의한 시민들의 정치적 평등이라는 의미로 확대되었다. 이것은 또한 공동체 구성원, 귀족들과 일반 민중들의 힘의 균형을 의미한다.

3. 아테네의 제국화와 demokratia

이런 isonomia로의 아테네의 발전 와중에 벌어진 페르시아 전쟁과 이후의 군사제국화는 아테네 정치의 주요한 특징을 귀족과 민중의 힘의 균형이 아닌 인민의 지배로 탈바꿈시키는 계기를 만들어준다.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했을 때만 해도 살라미스 해전에 크게 기여한 아레아파고스 의회가 득세했다. 그러나 아테네가 페르시아에 공동 대응한다는 이름으로 해상국가들끼리 델로스 동맹을 체결하고, 델로스 동맹이 아테네를 경계한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한 펠로폰네소스 동맹과 대립하면서 아테네의 정치구도 역시 달라진다. 해군력 유지를 위해 스스로 중무장을 할 능력이 없는 테테스 계층(무산계층)이 해군에 충원되면서 이들의 힘이 강력해진 것이다.

아테네는 델로스 동맹의 금고를 스스로 관리하고 동맹국들을 무장 해제, 관리하면서 제국주의화한다. 이렇게 되면서 동맹국들의 관계와 스파르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가 아테네 정치 지형의 하나의 구도가 되었는데, 이를 대표하던 이들이 아리스테이테스와 데미스토클레스였다. 아리스테이테스는 동맹국의 신임을 얻고 스파르타와 친선 관계를 유지해야한다고 주장하던 온건파였던 반면 데미스토클레스는 동맹국들에게 정액 외의 자금을 거두고 다니는가 하면 스파르타의 무력에 강력하게 대응하자고 주장하던 강경파였다.

페르시아 전쟁 이후 아테네 정치에 발생한 두 번째 지형 변화는 앞에서 이야기했던 무산 계층의 힘이 강해지면서 시작된다. 이 시기에 권력을 잡은 에피알데스는 원래 의회였던 아레오파고스 의회의 권한을 약화시키고 500인 의회, 민회, 민중재판소의 권한을 증대시키는 개혁을 단행한다. 민중의 권한 확대는 아테네 제국주의가 절정에 달하던 페리클레스 시대에 극대화된다. 스파르타와 동맹국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동시에 민회 중심 개혁에 반대했던 보수파 키몬과 대립했던 페리클레스는 아테네인으로서의 자긍심을 매우 중요시 여겼고 민중의 지배를 확립하는 데 박차를 가했다. 그는 재판소에 보수제를 도입함으로써 테테스 계층이 생계 걱정 없이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했다. 이 시기에 이르러서는 진정으로 demos가 지배하는, demokratia가 확립된다.

4. 아테네의 몰락

그러나 해상제국으로서 아테네 제국주의를 드높이던 아테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패배로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게다가 민중의 힘이 강해진 마당에 그들을 선동하여 정치권력을 장악하려는 선동정치가들이 난립함에 따라 아테네는 혼란 속으로 빠져든다. 그 결과로 아테네는 선동당한 민중들에 의해 무리한 시칠리아 원정을 일으켰다가 펠로폰네소스 동맹에게 참패하게 된다. 이후 네 차례에 걸쳐 과두파의 혁명이 벌어지고 참주들이 집권했으며 이 혼란 속에서 아테네는 동맹국들과의 전쟁을 계속하다가 결국 마케도니아의 침입으로 완전히 몰락하게 된다.

김경희에 따르면,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후 demokratia의 중우정치화를 방지하기 위해 나온 논의들이 바로 혼합정에 관한 논의들이다.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탄식하며 민주주의를 반대한 것,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보다는 조금 더 현실적으로 혼합정에 대해 언급한 것 역시 이런 시대적 맥락에서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 혼합정의 논의, 즉 다양한 계층들 간의 균형을 통해, 궁극적으로 광범위한 중산층을 중심으로 한 지배를 통해 특정한 집단에 의한 지배(과두정과 중우정치의 폐해)로 인한 폐해를 방지하고자 하는 시도가 현대에 벌어지고 있는 공화주의-민주주의 논쟁의 맥락과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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