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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인문, 사회과학

내겐 자극으로 남은 역사

 


키보드워리어 전투일지(2000~2009)

저자
한윤형 지음
출판사
텍스트 | 2009-03-30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자신의 주관으로 한국 사회를 재단하다!인터넷 정치평론과 각종 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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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가 부러웠다. 아니, 원래는 그의 시대를 부러워했다. 이것은 내가 그의 저작 중 학술적 작업이 가미된, 그러나 프로페셔널하지 않은 상식인의 역사 관전기, <뉴라이트 사용후기>를 먼저 읽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진중권의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와 강준만의 <인물과 사상>을 읽으며 정치적 의식을 일깨우고, 조선일보가 주최한 대회에 나가 1등을 하는가 하면 조선일보의 인터뷰를 거부하기도 하는, 인터넷 대통령을 만들었던 잠시나마의 혁명이었던 그 시절에 키보드워리어로 살아갔던 한윤형의 삶. 그리고 20대 개새끼론을 무색하게 만들만큼의 정치적 관심과 대중지성을 무시하는 이들에게 한방 날려줄 만큼의 상식인의 면모, 인터넷의 순기능을 긍정하게 만드는 그 현란한 키보드질! 나는 그가 부러웠다, 아니 그의 시대가 부러웠다.

 

그보다 한 세대 뒤에 있는 나는, 무엇으로 그만큼 즐겁고 신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새로운 소통방식과 실험으로 들썩이던 인터넷 초기 시대, 그리고 지식인의 새 장을 개척한 진중권-강준만의 시대, 한국 정치에 거대한 바람을 일으켰던 노무현의 시대. 그 시대를 살지 못한 채, 허무함과 88만원 세대라는 딱지를 단 채 "20대는 안되."라는, 자질을 의심받으며 살아가는 나는 그의 시대가 부러웠다. 돈과 가능성이라는 굴레를 벗고 가벼운 진지함을 가지고 청소년기를 보내고 맘껏 뛰놀며 활보할 수 있었던 대학시절, 그 공간 안에서 <뉴라이트 사용후기>라는 걸작이 나왔다고 생각한 것이다. 나는 이를테면 한윤형을, 인터넷과 진중권, 강준만, 노무현, 민주노동당이 만들어낸 20대의 상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전투일지에서 그는 자신이 단지 시대의 산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어쩌면, 한윤형은 2000년대 초반 시대 그 자체일지도 모르겠다. 그의 댓글과 정치평론, 그리고 "전투" 그 자체가 한 시대였다. 그의 댓글들과 평론들은 시대의 산물이 아니라 시대의 입이었다.

 

내가 한윤형의 나이가 되어 비슷한 책을 쓰게 된다면, 난 그 책의 제목을 무엇으로 장식할 수 있을까. 두발자유에 비행기를 접어날리던 10대의 나는, 조선일보 기사에 분노하고 싸이월드 베플에 추천을 꾹 누르며, 어둠 속에 촛불을 들고 전경에게 얻어터졌던 그 때의 나는, 철학과 정치학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지금의 나는, 극좌와 극우를 넘나들며 정신분열 유사증상을 보이는 20년 간의 나는, 나는 무엇으로 나를 기록하게 될까. 나는 어떤 시대의 입이 될 수 있을까. 조선일보가 그렇게도 외치는 G세대의 입, 아니면 가난한 88만원 세대의 입, 아니면 88만원 세대가 아닌 주제에 88만원 세대를 대변하는 강남좌파? 자본의 힘으로 자본을 비야낭거리는 헐리우드 좌파? 지식인이 되고 싶지만 C급에 머물러 있는 키보드워리어? 열정과 패기를 가졌으나 대연합론에 밀려 좌절하고 마는 좌파정당의 정책위원장? 금융위기때마다 목소리를 드높이게 될 맑스주의자? 내 돈으로 산 촛불로 밤을 붉힌 촛불리언? 일주일에 50권의 책을 빌려가 사람들에게 책을 소개하는 인문학멘토? 피피티도 필기도 없이 말빨 하나로 쇼를 진행할 철학 오타쿠? 모르겠다, 그 어느 것이던지 간에, 나도 전투일지 하나 쯤은 쓰고 싶다. 나는 이것들과 싸웠다! 라면서 자신있게 말이다. 나에게 자극이 되어준 한윤형 씨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당부의 말씀도, 앞으로도 열심히 싸워주세요.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런 의미에서 써보는 아주 주관적이고 사소한 나의 일대기

1989년 조본좌 출생(1세)

 

2001년 내 일생을 바꿔놓을 박노자의 명저 <당신들의 대한민국> 출간 (13세). 노무현이 대선 출마를 선언하다.

 

2002년 월드컵으로 전국이 흥분. 나도 흥분해서 날뜀. 그 뒤 박노자의 <당신들의 대한민국>을 읽고 내 가슴이 싸그리 식는 느낌을 받다.(14세) 노무현이 대선에서 승리하다! 대한민국은 혁명의 분위기로.

 

2004년 16세. 한나라당에 대한 적개심이 최초로 생기다. 인터넷에서 조선일보의 기사들을 찾아보며 경악을 금치 못하다. 탄핵 때 치를 떨며 촛불을 들다. 그리고 김선일의 죽음에 비통해하다.

 

2005년 17세. 아주 우연한 계기로 두발자유화 운동에 투신하다.(http://www.1318virus.net/modules/news/view.php?id=3838) 청소년단체와 청소년언론에서 활동하기 시작. 학교 내외에서 농민 집회, 노동자 집회, 내신등급제 반대 집회, 수능 반대 집회에 참여하다. 교육부 앞에서 마이크 잡고 개같은 교육현실에 대해 기자회견을 진행함.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시사토론반 동아리 창설하고 내가 회장을 맡음. 사회문제에 대한 급격한 관심으로 감정적 좌파로 돌아섬.

2006년 18세. 죽음의 고3. 반항심에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인문.사회과학서 500권을 7개월만에 독파함. 머리가 커지면서 못배운 좌파, 감정적 좌파들에 대한 반감이 늘어감. 결국 여러 청소년단체에서 다 뛰쳐나옴. 그러면서 중도우파로 돌아섬. 반대하던 한미FTA도 찬성으로 돌아섬.

 

2007년 19세 대학 새내기. 500권의 독서가 무용지물로 돌아가고 급실망함. 그러다가 유일하게 흥미를 느낀 것이 생김. 나름대로 운동권에 투신함. 반전 시위와 반FTA 집회에 단골로 참여. 트로츠키주의 공산주의단체인 다함께에서 동지를 얻었다고 좋아함. 그러나 이것도 잠깐. 우리 과 내의 문제로 대판 싸우고 내가 지칭하는 "진보꼴통"들과 결별함.

 

2008년 20세 대학2학년차. 진보꼴통들과의 결별로 급격히 우파로 전향함.(그럼에도 이명박의 당선은 지독히 싫어했다.) 그러던 와중 촛불사태가 터졌다. 결국 매일 밤을 꼴딱세워가며 촛불을 켜다. 그러다 물대포에 얻어맞고 닭장차에 끌려가다가 경찰 밀치고 도망침. 전경 방패에 등이 찍히기도 함. 다음 아고라와 진중권의 촛불 중계, 아프리카에 거의 상주하며 전의를 불태움. 그러던 와중 촛불 민중들의 경찰관 폭행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 그 와중에 진행된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 공정택이 당선되는 개같은 일이 발생. 나는 또다시 "키보드워리어 좌파들"과 결별함. 그 이후 국제학포럼, 안보토론대회, 모의유엔대회, 한중포럼, 피피티대회 등 국제관계학과 스펙쌓기에 몰두. 스펙쌓기에는 성공했으나 밀려오는 허전감. 역시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

 

2009년 공익근무를 시작함. 21세. 조용히 우파로 살고 싶었으나 정권이 가만놔두질 않음. 그러나 신분이 공무수행 중이라 애만 닳을 뿐. 한예종 사태와 미디어법 사태 때 결국 빡돌아 몰래 거리로 나섬. 그러던 중 철학 공부에 매달리는 삶이 시작됨. 철학과 정치철학으로 1년을 보내며 더욱 좌파적이 되어가다.(아마 노무현의 죽음은 내게 한동안 트라우마로 남을 듯.)

 

2010년 현재 22세. 맑스의 자본론을 읽으며 올바른 좌파가 되어가고 있다고 자부하는 중. 1년이나 남은 공익근무를 뭐하며 보낼까, 내년부터 어떤 좌파질을 할까 심각하게 고민중임. 여새는 칸트 공부와 맑스 공부, 그리고 정치학회를 만들어 그곳에 여념하고 있음. 사유와 실천을 일치시키는 레닌이 되기 위해 재장전 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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