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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 /단상

학문

다산 정약용이 충청도로 유배되었을 때 일이다.
정약용이 머물던 마을에는 황상이라는 15세의 소년이 있었다.
황상은 본디 학문에는 뜻이 있었지만
사대부의 집안에 태어나지도 못했고(시골 아전의 아들이었다) 또 15세가 되어서도 주변의 다른 뛰어난 천재들처럼 사서삼경을 달달 외우거나 하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저 학문을 좋아했던 그는 용기를 내어 다산을 찾아가고 그의 밑에서 학문을 배우게 된다.

그가 다산에게서 학문을 배운 지 10일 되던 날, 다산이 그에게 다가와 한 권의 책을 건네주며 말한다.
"산석(황상의 아명)아. 이 책을 읽으면서 문사(文史)를 공부해보거라."

황상이 답한다.
"스승님, 저는 학문하는 자로서 가져서는 안될 세 가지 결점이 있습니다. 첫 번째 머리가 나쁘고, 둘 째 앞 뒤가 꽉 막혔으며 세 번째, 이해력도 모자릅니다. 이런 제가 과연 학문으로 성공할 수 있겠습니까?"

다산이 대답했다.

"그러나 너는 학문하는 이들이 가질 수 있는 세 가지 결점을 가지고 있지 않구나. 기억력이 뛰어난 아이들은 한 번 보면 척척 외우지만 문제를 깊이 이해할 줄 모른다. 글짓는 재주가 좋은 아이들은 제목만 던져주면 글을 지어내지만 자신도 모르게 경박하고 들뜨게 된다. 이해가 빠른 아이들은 한마디만 던져주면 금세 말귀를 알아듣지만 곱씹어 생각하지 않으므로 깊이가 없다.

허나 너는 그렇지 않겠구나. 너처럼 둔하지만 공부에 파고드는 사람은 식견이 넓어지고 꽉 막혔지만 그것이 한 번 뚫리면 거칠 것이 없으며, 답답하지만 꾸준히 연마하는 사람은 그 빛이 더욱 반짝이느니라.


파고드는 방법은 무엇이냐, 근면함이다.
뚫는 방법은 무엇이냐, 근면함이다.
연마하는 방법은 무엇이냐, 근면함이다.
그렇다면 그 근면함은 어떻게 지속하느냐.
마음가짐을 확고히 하는 데 있다.

다산에게 자신의 무능함을 토로한 이 시골소년 황상은
훗날 치원유고卮園遺稿라는 문집을 남겨 세상에 이름을 알리게 된다.
추사 김정희는 이 치원유고卮園遺稿를 읽고 "지금 세상에 이런 작품이 없다."고 감탄했다고 한다.
그리고 황상은 75세가 되던 해에, [임술기]라는 저서를 통해 이렇게 밝힌다.

"지난 60년 간, 나는 많은 것을 배우고 많이 변화했지만 변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
바로 그 때 그 스승님의 가르침이다. 근면함. 그리고 마음가짐."

근면해지자. 나의 마음가짐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