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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글/노동당 기관지

세월호 침몰, 대한민국 언론도 같이 침몰했다

지난 16일 세월호가 침몰하던 날, 한국 언론도 같이 침몰했다. 사람들이 언론을 신뢰하지 않은 지 오래되었지만, 이렇게까지 불신을 받은 적이 또 있었나 싶다. 세월호 침몰 현장에서 기자들은 쫓겨나기 일쑤다. 실종자 가족들은 카메라를 든 기자들에게 “카메라 들이대면 가만 안 둔다”고 말하고, 취재차량을 밀어낸다. 기자들은 눈치를 보느라 수첩도 꺼내지 못한다. 실종자 가족들이 기자의 핸드폰을 빼앗아 바다에 던져버리는 일도 있었다.

쏟아지는 오보, ‘속보경쟁’ 아닌 ‘오보경쟁’

언론에 대한 불신은 언론이 자초한 것이다. 세월호 침몰 소식은 처음부터 ‘오보’로 시작했다. 언론들은 사고 초기 ‘전원 구조’됐다는 보도를 했다. 하지만 오보였다. 경기도교육청과 안산 단원고 측의 잘못된 발표가 원인이지만, 언론도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전원 구조’라는 말에 안심하고 있던 실종자 가족들은 300명이 넘는 사람이 실종됐다는 보도에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을까?

오보는 쏟아졌다. 17일에는 세월호 구조작업 중 산소공급이 진행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지만 오보였다. 산소공급 장비는 도착조차 하지 않은 상태였다. 산소공급에 희망을 걸고 있던 가족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18일 YTN 등은 “해경이 세월호 선체로 진입하는데 성공했다”고 보도했으나, 오보였다. 공기주입은 시작했으나 선체 진입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같은 날 KBS는 자막을 통해 “구조당국 ‘선내 엉켜 있는 시신 다수확인’”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해경은 시신 확인하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이 외에도 사망자 수와 구조자 수가 바뀐 건 너무 많아서 셀 수도 없을 지경이다.

MBN은 18일 자신을 민간잠수부라고 밝힌 홍가혜씨를 인터뷰 해 큰 논란을 일으켰다. 홍씨는 “민간 잠수부 투입을 막고 있다”, “정부 관계자가 대충 시간이나 때우고 가라고 말했다”, “민간 잠수부가 생존자와 대화를 했다”는 등의 주장을 펼쳤다. 하지만 해경은 사실이 아니라는 보도 자료를 냈고, MBN은 보도국장이 직접 <뉴스특보>에 출연해 오보를 인정하고 사과했다. 이쯤 되면 언론이 ‘속보경쟁’을 하는지 ‘오보경쟁’을 하는지 헷갈릴 정도다. 정부가 우왕좌왕하고, 언론까지 덩달아 우왕좌왕하는 상황에서 실종자들을 기다리는 가족들과 국민들은 누굴 믿어야 하는 걸까?

죽음마저 ‘검색어 장사’에 이용…오죽하면 네이버가 ‘자제’ 요청

기본적인 기자윤리에 어긋나는 보도도 이어졌다. JTBC는 생존자에게 “친구가 죽은 걸 아나”라고 물었다가 엄청난 질타를 받고, 손석희 앵커가 직접 사과까지 했다. SBS ‘생생영상’은 가족이 모두 실종된 6살 아이와 인터뷰한 영상을 내보냈다가 삭제했다. 뉴시스는 죽은 학생의 학교로 찾아가 일기장을 찍어 올렸다가 비난을 받고 기사를 내렸다.

어뷰징, 즉 ‘검색어 장사’도 난무했다. 세월호 관련 검색어가 계속 상위권에 오르자 인터넷 언론들이 자신들의 인터넷 기사가 검색어에 걸리게 하기 위해 세월호 침몰 사고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제목의 기사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투데이는 16일 세월호 참몰 관련해 재난영화들이 주목 받고 있다며 영화 타이타닉과 포세이돈을 소개하는 기사를 썼다. 이투데이는 같은 날 <[진도 여객선 침몰] SKT, 긴급 구호품 제공·임시 기지국 증설 “잘생겼다~잘 생겼다”>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이투데이는 기사들을 삭제하고 사과문을 올렸다.

세월호가 무슨 보험을 들었는지, 여객선은 어떤 보험을 들었는지 소개해주는 기사를 내보내며 “세월호 보험, 그래도 다행”이라는 네티즌 의견을 덧붙인 조선일보 기사도 있었다. 인터넷 언론만이 아니라, 공영방송인 MBC도 <이브닝뉴스>에서 보험금을 계산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아직 구조가 진행 중인데다, 온 국민들이 구조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기사들을 꼭 써야했을까?

오죽하면 네이버에서 “자극적인 편집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할 정도였다. 네이버는 16일 뉴스를 제휴하는 언론사들에 메일을 보내 “오늘 오전 진도해상에서 발생한 여객선 '세월호' 침몰사고로 심각한 인명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라며 “뉴스스탠드 내 관련 기사에 대한 이용자 항의도 다수 유입되고 있다”고 밝혔다.

기자 아닌 ‘기레기’가 되어버린 언론…진지한 고민 필요해

인터넷은 ‘기레기’(기자+쓰레기)를 비난하는 글들로 가득 찼다. 쓰레기 같은 기사를 누군가 퍼 나르면 밑에 사람들이 ‘기레기’라는 수백 개의 댓글을 단다. 하지만 기자들의 탓만 할 일은 아니다. 기자들이라고 그런 행동을 하고 싶어서 하진 않을 것이다. 문제는 기자들을 옥죄어오는 한국 저널리즘의 현실이다.

그럼 ‘재난보도준칙’ 등 취재원칙이 없는 것이 문제일까? 글쎄다. 물론 취재준칙을 교육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자들이 속보경쟁과 검색어 경쟁에 내몰리는 현실에서, 누가 취재준칙을 지킬까. 지키면 혼자 손해 보는데 말이다.

기자들이 자극적인 제목을 달았다고 기자들을 ‘기레기’라고 매도하고, 메일에 욕을 보내도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 원인은 포탈 검색어에 의존해 트래픽을 올리고, 이 트래픽으로 광고를 받아 먹고 사는 인터넷 언론들의 현실, 그리고 이 현실에 철저히 적응해버린 각 언론사 데스크에 있다.

우리가 감시해야할 것은 현장에서 취재하는 기자들이 아니라 그 기자들의 이름 뒤에 숨어, 기자들을 취재 경쟁과 검색어 경쟁으로 내모는 한국 저널리즘이다. 세월호 침몰 사건을 계기로 기자들이 다시 신뢰를 얻기 위해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사회적 공론화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