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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 /기타 칼럼 기고

‘기레기’ 를 위한 변명

지 난 16일 오전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인근 해상에서 수학여행을 떠나던 안산 단원고등학교 학생 400여명이 탑승한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하는 대형사고가 발생했다. 세월호가 침몰하던 날, 한국 언론도 같이 침몰했다. 언론에 대한 불신이 이렇게 컸던 시기가 있을까. 이런 분위기 때문에 기자들은 수첩도 못 꺼낸다. 실종자 가족들이 기자들의 핸드폰을 빼앗아 바다로 던져버리는 일도 있었다.

이 는 언론이 자초한 일이다. 세월호 침몰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정부 못지않게 언론도 오락가락했다. 사고초기 학생들이 ‘전원 구조’됐다는 언론들의 집단 오보는 아마 세계사에 길이 남을 오보가 될 것이다. 17일에는 세월호에 산소공급이 진행 중이라는 뉴스가 나왔지만 오보였다. 산소공급 장비는 도착조차 하지 않았다. 검색어 장사도 난무했다. 세월호 침몰을 언급하며 재난영화를 소개하거나, SKT가 임시기지국을 건설했다며 “잘생겼다~잘생겼다”를 제목으로 뽑은 기사도 있다. 누군가의 죽음과 절망을 ‘검색어 장사’로 이용한 행태, 가족이 모두 실종된 어린아이에게 카메라를 들이대고, 구조된 학생에게 “친구가 죽은 건 아나”라고 물어본 행동 모두 해서는 안 될 짓이었다. 이런 언론 보도를 옹호하고 싶진 않다. 문제는 기자들을 싸잡아 ‘기레기’로 매도하는 현상이다. 재난 앞에서 기자들은 갈등에 빠진다. 대중에게 사실을 알려야 하지만, 이를 위해선 누군가의 죽음 앞에 카메라나 마이크를 들이대야 한다. 모두가 슬퍼하고 있을 때 누군가는 마이크를 들어 사실을 전달하고, 누군가는 유족에게 말을 건다. 억울한 죽음을 폭로하고, 그의 죽음이 사회적 타살이었다고 밝혀내는 것도 기자들이다. 그래서 정부 정책을 바꾸고,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낸다.

실 종자 가족에게 카메라를 들이댄 기자들은 욕을 먹었다. 하지만 실종자의 메시지를 공개한 기사는 공감을 받았다. 이 두 가지 사이에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 감동적인 사연을 알기 위해 기자는 집요하게 취재했을 것이고, 가족들을 많이 괴롭혔을지 모른다. 문제는 ‘정도’의 차이다. 즉 취재준칙의 유무다. 외국언론은 장례식장을 찍을 때 유족들의 얼굴을 직접 보여주지 않은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를 ‘기레기’들 탓으로 돌릴 일만은 아니다. 나주 어린이 성폭행 사건을 취재했던 한 기자는 “당시 막내기자였는데 어디까지 취재할 수 있는 건지 전혀 몰랐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취재경쟁도 기자들을 압박한다. 기자들은 새로운 걸 알아내야 한다는 특종경쟁의 압박과 물먹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에 시달린다. 이 압박은 기자들을 ‘기레기’라고 욕하는 바로 그 사람들에게서 받는 압박이기도 한다. 사람들은 기자들이 오보를 쓰고, 비윤리적으로 취재한다고 비난하다가도 ‘언론이 현장에 대해 보도를 안 한다’고 비난한다.

검 색어 장사를 옹호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기자들을 ‘기레기’라고 매도하고 캡처해서 퍼 나르고, 메일에 욕을 보내도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 이런 참혹한 현실의 배경에는 포탈 검색어에 의존해 조회 수를 올린 뒤 광고로 생존하는 인터넷 언론들과 이 현실에 적응한 언론사 데스크가 있기 때문이다.
 
진 도 세월호 침몰사건 관련 기사를 썼다가 ‘기레기’라는 비난을 받은 한 기자는 나에게 “제목은 내가 붙이지 않았다. 조회 수를 의식해 데스크가 붙인 것”이라고 토로했다. 이 기자는 “하지만 데스크가 잘못했다고만 말할 수도 없다”고 한다. “언론사 대부분이 그런 압박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뉴스 소비자의 대다수가 포털 검색어를 통해 유입되는 한국적 현실에서, 광고로 생존하는 한국 인터넷 매체들은 검색어 장사를 안할 수가 없다. ‘기레기’로 비난받은 기자들이 기자 일을 그만둬도, 그 자리는 곧 누군가에 의해 채워지고 검색어 장사는 반복될 것이다.
 
같 은 기자가 봐도 ‘기레기’는 있다. 하지만 기레기보다 현장에서 열심히 취재하는 기자들이 훨씬 많다. 우리가 감시해야할 것은 그 기자들의 이름 뒤에 숨어 제목을 달고, 자극적인 이슈의 취재를 지시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런 괴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기자들을 취재 경쟁과 검색어 경쟁으로 내모는 한국 저널리즘의 위기다. 기자들을 기레기라고 비난하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세월호 침몰사건을 계기로 한국 저널리즘에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그리고 그 변화는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가 이루어졌으면 한다.

조윤호 ssain747@naver.com
마음이 잘생긴 기자. 재빨리 대학을 졸업해 20대 중반의 나이에 <미디어오늘>의 2년 차 기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