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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영화. 문학 외

이념이 아니라 인간으로 혁명하라!

 


인생 (1995)

Lifetimes 
9.6
감독
장예모
출연
공리, 게유
정보
드라마 | 중국, 대만 | 125 분 | 1995-05-27

모든 사회나 국가는 변화를 겪기 마련이다. 하지만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의 중국만큼 격변의 시기를 겪은 사회는 흔치 않을 것이다. 그 변화 중 가장 급격한 변화, ‘혁명’이라 부를 만한 변화는 봉건적이고 농촌사회의 모습을 지니고 있던 중국을 ‘사회주의’로 뜯어고치려고 한 마오쩌둥과 공산당이 시도한 변화였다.


우리는 역사를 학습할 때 일반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정치. 사회적 사건에 대해 공부한다. 그리고 제도. 체제, 몇 몇 지도자의 사상과 이념에 주목한다. 물론 이것들 모두 중요하지만, 이런 식의 학습은 자칫하면 그 시대를 살아간 인민의 삶을 사상시켜버릴 위험을 지니고 있다. 마오쩌둥의 사상과 이념도 중요하고, 대약진 운동이 무엇인지 문화대혁명의 의의가 무엇인지도 중요하지만 마오의 사상과 이념, 대약진 운동과 문화대혁명이 그 당시 인민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라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생>과 <부용진>는 이를 잘 보여주는 영화다.


특히 19세기 말과 20세기 ‘중국의 역사’를 살펴볼 때 우리는 인민의 삶에 ‘더’ 주목해야 한다. 그 이유는 당시 중국을 지배하던 마오의 이념과 공산당의 사상, 사회주의의 특징 때문이다. 자본주의를 변혁하고자 하는 사회주의 ‘사상’은 인민의 강력한 동원을 전제로 한다. 당시 중국 공산당은 군벌들에 맞서, 국민당과 부르주아지에 맞서 인민의 힘과 이를 결집시키는 당의 힘을 통해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고 있었다. 공산당의 영향을 받는 농민, 노동자계급과 당원들은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끊임없이 동원되었고, 혁명에 온 몸과 정신을 바쳤다. 사회주의라는 체제의 성격과 지도자 마오의 이념이 농민, 노동자계급의 육체활동과 정신활동 전반을 지배했던 것이다. 이것이 사회주의 사상과 이념 자체를 넘어, 그것이 인민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이 글에서는 사회주의라는 체제가 인민의 육체활동과 정신활동을 총 동원하려 한 사례로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을 제시한다. 또한, 영화 <인생>과 <부용진>을 통해 이 두 가지 사건이 중국 인민들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볼 것이다.


대약진 운동이란 1958년부터 1960년까지 진행된 중국의 산업부흥정책이다. 중국이 주력한 산업은 중공업이다. 이전까지 사회주의 세계의 리더는 소련이었다. 하지만 마오와 공산당은 소련이 아닌 중국이 사회주의 세계의 리더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스탈린이 사망하면서 소련의 새로운 지도자가 된 흐루시초프는 스탈린 격하 운동을 펼치고, 서방 세계와 교류를 증진하고 자본주의 문물을 도입하고자 했다. 이에 마오는 소련을 진정한 사회주의를 저버린 ‘수정주의’라 비판했고, 이로 인해 중국과 소련 간의 이데올로기 대립이 격화된다. 이에 따라 마오는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소련에 의존하지 않은 채 중국식 사회주의를 건설하여 자본주의 세계에 맞서겠다는 야심찬 결정을 내린다. 이로 인해 시작한 것이 ‘대약진운동’이다.


소련에 더 이상 의존할 수 없던 중국은 자립할 만큼의 경제성장을 이루어야 했다. 동시에 중국은 미국과 영국 같은 자본주의 국가보다 사회주의 체제가 우월하다는 사실을 보여주어야만 했다. 따라서 중국은 단시간에 자본주의 국가를 넘어서는 생산력 발전을 시도한다. 마오가 중공업에 주력한 이유는 군사적인 목적 때문이다. 자본주의 국가와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고, 소련으로부터 군사적으로 독립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영화 <인생>에도 대약진운동 당시의 모습을 반영하는 장면들이 등장한다. 강철생산을 위해 집집마다 철로 된 제품을 모두 수거하고, 철을 녹이는 작업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동원되는 장면이 그것이다. 이렇게 모든 사람들을 동원해 철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을 하나의 몸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이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마을 단위로 생활을 공유하게 한다. 이런 목적으로 마오와 공산당은 마을에 인민공사를 설치한다. 영화 <인생> 중 마을 사람들이 집단식당에 다 같이 모여 똑같은 국수를 먹는 장면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찌아젼이 “강철을 다 가지고 가면 뭘 가지고 요리해서 밥을 먹나요?”라고 묻자 쩐장은 “집단 식당에서 다 같이 먹으면 된다.”고 대답한다.


대약진 운동의 목표는 자본주의를 따라잡는 생산력의 확보였다. 마르크스는 생산력의 발전을 생산관계가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하는 ‘모순’ 때문에 혁명이 발생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그의 역사발전 5단계도식은, 뒤의 단계일수록 앞의 단계보다 생산력이 발전한 상태라는 전제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당시 중국은 농촌사회로 생산력이 매우 떨어지는 사회였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공산주의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보다 생산력이 높아야 했다. (역사발전 5단계도식에서 자본주의 이후에 공산주의가 위치한다.) 따라서 마오는 농민과 노동자를 강제로 동원해 생산력을 폭발적으로 증가해보고자 한 것이다.


<인생>에서도 당시 인민들이 자신들이 하는 노동과 철강 생산, 그리고 공산주의 사회를 ‘생산력이 높은 사회’, ‘배불리 먹고 살 수 있는 사회’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들이 종종 등장한다. 푸꾸이와 마을 주민들이 철강을 생산하고 난 뒤 “영국과 미국을 따라 잡읍시다!”라고 외치는 장면, 푸꾸이가 아들 요우칭에게 “닭이 크면 소가 되고, 소가 크면 공산주의가 된다.”고 말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대약진 운동은 결국 실패로 끝난다. 생산된 철강 중 품질이 낮은 철강이 대부분이었고, 농민들을 중공업 발전에 동원하는 바람에 농업, 경공업이 무너지면서 식량이 부족해지고, 2천 만 명이 아사한다. 거기다 흉작까지 겹치면서 중국은 대혼란에 빠진다. 마오는 대약진 운동의 실패를 계기로 권력을 상실하고, 리우샤오치와 덩샤오핑 등의 실용주의자들이 중국 공산당 내에서 권력을 잡는다.

마오와 그 일당 4인방은 리우샤오치와 덩샤오핑 등의 실용주의자들에 의해 중국이 사회주의를 버리고 자본주의의 길로 나아갈 것을 우려했다. 그래서 그들은 문화대혁명을 일으킨다. 문화대혁명이란 ‘학술, 교육, 신문, 출판, 문화 각계의 부르주아 반동사상을 철저히 비판하고, 당, 정부, 군대, 문화계 내 부르주아 사상에 물든 이들을 비판하라.’는 내용의 극좌 사회주의 문화운동이다. 단순히 부르주아 사상과 관련된 것뿐만 아니라 사회주의 이념에 어긋나는 중국 전통도 비판의 대상이었다. 사구(구사상, 구문화, 구품속, 구습관)은 사라져야 할 대상이었고 낡으면 낡을수록 반동적인 것이다. <인생>의 주인공 푸꾸이는 이러한 이유 때문에 중국 전통 연극인 그림자연극 소품들을 불태워야 했다.


문화대혁명이 개시된 이후, 마오의 사상을 받드는 젊은이들로 구성된 홍위병이 등장했다. 홍위병들은 각 지역으로 몰려다니며 부르주아 사상과 관련 있다고 여겨지는 지식인과 전문가들을 색출해 냈다. <인생>에서도 이러한 장면이 등장한다. 푸꾸이의 딸 펑샤가 출산을 하기 위해 병원에 가자 의사들이 없디. 젊은 학생들뿐이다. 푸꾸이 가족이 "나이든 의사들은 없냐"고 묻자 학생들은 “그 반동권위 늙은이들은 쫓겨났다”고 대답한다.


홍위병들에 의해 반동으로 찍힌 이들은 마을 공동체로부터 격리 당했다. <인생>에는 이런 장면들이 종종 등장한다. 푸꾸이의 동료로 마을 구장 출신인 춘성은 주자파(자본주의를 주장하는 이)로 몰려 공개적인 인민재판을 받아야 했다. 또한 푸꾸이와 오랫동안 같은 마을에 지내던 쩐장 역시 주자파로 몰린다.


<부용진>에도 비슷한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부용진의 지식인 진숙전은 자본주의를 찬양했다는 이유로 반동으로 낙인찍힌다. <부용진>의 주인공 호옥음도 마찬가지이다. 문화대혁명 이후 마을에 내려온 이국향(이반장)은 호옥음을 주자파 부농으로 만들어버린다. 호옥음이 지주 계급 출신이며, 쌀두부 식당을 경영하며 자본가처럼 이윤을 많이 남긴다는 이유 때문이다. 마을에는 진숙전과 호옥음 말고도 우파분자로 몰려 다른 마을 사람들과 차별 대우를 받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지주, 부농, 반혁명분자, 전과범과 범죄자들로 주기적으로 마을 광장에 집합하여 당 간부의 점호를 받는다. 심지어 마을반장인 이국향마저 왕추수의 고발에 따라 홍위병들에 의해 반동으로 몰리기도 한다.


문화대혁명은 ‘사회주의 형 인간’ 만들기 프로젝트였다. 대약진 운동이 생산력 발전이라는 하부구조 개조 프로젝트였다면, 문화대혁명은 중국 인민들의 머리를 사회주의로 가득 채우는 상부구조 개조 프로젝트였던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문화대혁명은 마오와 극좌 사회주의자들의 권력 투쟁이었다. 지식인과 전문가 위주의 공업 발전을 추구하는 실용주의 파에 맞서, 지식인과 전문가를 일반 대중의 힘으로 몰아내고자 했던 운동이 문화대혁명인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암시하는 장면이 <부용진>에 등장한다. 이국향은 자신의 방에 찾아온 왕추수에게 “곡반장 세력이 돌아오고 있다.”며 “우리가 권력을 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 말은 사실 마오가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닐까? “덩샤오핑이 등장하고 있다. 우리가 권력을 잡아야 한다.”


대약진 운동과 문화대혁명이라는 생산력 개조와 정신 개조 운동에 대응해, 중국 인민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인생>과 <부용진>은 이 시기 인민들에게 ‘살아남는 것’ 외의 선택은 없었다고 말한다. 인민들은 혁명에 능동적으로 참여한다기보다, 살아남기 위해 수동적으로 혁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인생>의 한 장면은 이러한 인민들의 현실을 잘 보여준다. 지주라는 이유로 룽언이 살해당하자 놀라 집에 돌아온 푸꾸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 집은 어느 성분에 속하지?”, “보통 인민이 좋아. 보통 인민이 좋다고.” 푸꾸이 가족은 살기 위해 스스로가 혁명에 동참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전짱이 룽언의 집에 불타버렸다며 푸꾸이 네 집 목재가 다 타버렸다고 말하자 푸꾸이와 지아쩐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그건 우리 집 목재가 아니라 반혁명분자의 목재예요.”


푸꾸이는 살아남기 위해 대약진 운동에 열성적으로 참여한다. 그는 지쳐 잠든 아들 요우칭을 구장의 학교 참관에 참가시키기 위해 등에 업고 학교에 보내야만 했다. “이 철강 생산 작업에 온 주민이 다 동원되는데 우리만 뒤떨어질 수 없어. 요우칭도 가야 돼. 가야한다.” 요우칭이 누나를 괴롭힌 친구들의 머리에 국수를 붓자 푸꾸이는 요우칭을 때리며 혼을 낸다. 요우칭이 대약진을 파괴한다는 말에 그는 요우칭을 때리며 혼낼 수밖에 없었다. “그 사람이 애가 대약진을 파괴한대잖아!” “가정을 위해서 때린 거야! 애를 이렇게 내버려둔다면 집안이 망하고 말거야!”


이렇게 살기 위해 대약진 운동에 열성적으로 참여했지만 돌아온 건 처참한 삶과 죽음이다. 요우칭은 대약진 운동에 참여하기 위해 학교에 갔다가 사망하고 만다. 요우칭의 죽음은 일종의 상징이다. 중국 인민들은 잠이 모자랄 정도로 열심히 철강을 생산하고, 잠이 모자라 거리에서 잠을 자면서 일하지만, 돌아온 건 죽음이다.


문화대혁명도 마찬가지이다. 문화대혁명에 참여한 중국 인민 대부분은 살기 위해 문화대혁명에 참여했다. 스스로 인간성을 포기하기도 했다. 인간과 인간의 자연스러운 만남조차 차단하는 것이 문화대혁명이었다. <인생>에서 얼시는 푸꾸이에게 춘성이 주자파로 몰렸다면서 그를 멀리 하라고 말한다.


<부용진>의 주인공들은 ‘남을 고발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야.’라고 탄식한다. 그것이 당시 인민들이 느낀 중국이었다. <부용진>의 곡반장은 호옥음을 고발하고 괴로워하는 친구에게 ‘일말의 양심은 남아 있군.’이라고 말한다. 서로가 서로를 고발하면서 인간성을 일어버린 가운데, 그것에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며 일말의 인간성을 느낄 수 있다는 의미이다.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려는 남녀조차 ‘한 쌍의 개 부부’라 부르는 마을에 인간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호옥음과 진숙전은 결국 몰래 결혼식을 올리고, 곡반장이 증인으로 등장한다. 이 세 명의 인물은 부용진에 남은 유일한 ‘인간’ 셋이다.


<인생>의 푸꾸이는 후회를 잘 하는 인물이다. 그는 아들 요우칭을 잃은 뒤 ‘요우칭을 학교에 보내지 말 걸’이라고 후회하고, 딸 펑샤를 잃은 뒤 ‘왕 교수에게 만두를 7개만 줄 걸’하고 후회한다. 하지만 그가 요우칭을 학교에 보내고 왕 교수에게 만두를 준 것은 그가 자유롭게 선택한 행위가 아니다. 대약진 운동과 문화대혁명이라는 거대한 사건에 마주한 개인이 어쩔 수 없이 한 행동이었다. 푸꾸이는 어쩌면 그림자연극 속 인형이 아니었을까. 마오의 사상과 공산당의 이념에 의해 움직일 수밖에 없었던 인형 말이다.


<인생>과 <부용진>이 던지는 메시지는 중국 혁명기의 인간성 상실이다. 거대한 이념과 사상은 있었으나 주체적인 인간,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가 결정하는 주체적인 인간은 없었다는 것이다. <부용진>의 마지막 장면에는 문화대혁명이 끝난 이후 광인이 되어 징을 치며 돌아다니는 왕추수가 등장한다. 그는 ‘혁명운동을 하자’는 소리만 반복하며 부용진을 배회한다. 왕추수는 ‘혁명운동’이라는 구호에만 휩싸여 주체적인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중국 인민들의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하고 있다. 진숙전은 그에게 국수 한 그릇을 건넨다. 왕추수 같은 사람에게 필요한 건 국수 한 그릇이 아니었을까. 감독은 마지막 장면을 통해 이러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인생>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유사한 메시지가 등장한다. 푸꾸이의 손자 만두는 병아리를 손에 든 채 할아버지에게 묻는다. “병아리가 크면 뭐가 되요?” “닭이 되지.” “닭이 크면 뭐가 되요?” “거위가 되지.” “거위가 크면 뭐가 되요?” “양이 되지.” “양 다음엔 뭐가 되요?” “소가 되지.” “소가 다 자라면요?” “어른이 되지.” 그리고 푸꾸이는 덧붙인다. “너가 어른이 되면 소가 아니라 비행기나 기차를 타고 다녀라.” 비슷한 장면이 영화 전반부에도 있었다. 푸꾸이는 아들 요우칭에게 “소 다음은 공산주의”라고 말했지만, 손자 만두에게는 “소 다음은 네가 어른이 된다.”고 말한다. 감독은 이 장면에서 이념과 사상이 아니라 ‘인간’이 자라나야함을 역설하고 있다. 그리고 그 자라난 인간이 변화와 발전을 주도해야 한다고 말이다. 두 편의 영화가 결국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러한 ‘인간’의 중요성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