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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글/노동당 기관지

‘문창극’과 장관 후보자 검증 보도, 한계 드러낸 SBS

한국 보수 세력의 진면목을 보여준 문창극 총리후보자가 사퇴했다. 문창극씨가 총리 후보자가 되고, 이어 사퇴까지 하게 된 배경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한 동안 제 역할을 못했던 공영방송 KBS였다.

KBS는 6월 11일 문창극씨의 2011년 교회 특강 내용을 전했고, 발언 내용 중에는 충격적인 내용이 여럿 포함돼 있었다. 그는 “하나님은 왜 이 나라를 일본한테 식민지로 만들었습니까, 라고 우리가 항의할 수 있겠지. 아까 말했듯이 하나님의 뜻이 있는 거야”라며 “너희들은 이조 5백년 허송세월 보낸 민족이다. 너희들은 시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식민 지배를 하나님의 뜻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문 후보자는 또한 남북분단, 민족해방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주장했고, “조선 민족의 상징은 아까 말씀드렸지만 게으른 거야.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하고 남한테 신세지는 거 이게 우리 민족의 DNA로 남아 있었던 거야”라며 민족을 비하하는 발언까지 했다. 문제적 발언들이 추가적으로 폭로되면서 문 후보자는 결국 자진사퇴해야만 했다.

공영방송의 진가 발휘한 KBS, 한계 드러낸 SBS

KBS는 문창극을 날려버림으로써 공영방송의 진가를 제대로 보여줬다. 뉴스 시청률 20%를 자랑하는 KBS가 제대로 보도를 하니 제 아무리 ‘불통’인 박근혜 정권이라도 버텨낼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다.

문창극 사태는 KBS의 진가를 보여준 동시에 SBS의 한계를 드러냈다. SBS가 KBS보다 문창극 발언 동영상을 먼저 확보하고도 이를 보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SBS 정치부 기자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문창극을 지명한 10일부터 검증 보도에 착수했고, ‘식민지배는 하나님 뜻’ 등 발언이 포함된 동영상을 입수해 10일 저녁 7시 경 데스크에 보고했다. 정치부 기자들은 정치부 데스크에 보고하고, 부장을 통해 국장한테까지 보고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보도국 간부들은 교회 연설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야 하며, 시간을 두고 보완취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이후 SBS 기자들은 문창극 후보자가 강연을 했던 대학교 학생들을 만나 문제가 될 만한 발언들을 수집하고, 칼럼 내용 등을 모아 다시 보고했다. 해당 기자가 기사 초안까지 작성했으나 결국 6월 11일 SBS 뉴스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한 시간 뒤인 KBS 9시뉴스가 이를 단독 보도했다. SBS 기자들 입장에는 눈앞에서 특종을 놓친 셈이다. SBS는 KBS가 9시 뉴스 이후 12시 40분에 방송된 나이트라인에서 문창극 동영상을 보도했다. ‘추가취재’ 핑계를 댔지만 결국 ‘단독 보도’라는 부담을 지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SBS 기자들이 문창극 동영상을 입수해 보고했던 6월 10일은 세월호 참사 보도 관련한 SBS 내부 토론회가 있었던 날이다. SBS 기자들이 모여 세월호 참사 보도를 돌아보면서 재난보도를 제대로 하고, 민감한 사안도 똑바로 보도하자는 의지를 다지는 자리였다. 하지만 토론회를 했던 바로 그 날 문창극 관련 기사가 누락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문창극에 이어 최경환…단독 보도 두 번 놓친 SBS

문창극 단독보도를 놓친 이후 기자들의 항의로 보도국 차원의 재발방지책이 논의됐다. 하지만 이 사태가 채 봉합되기도 전에 SBS는 또 한 번의 단독을 놓쳤다. 최경환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 의혹을 미리 파악하고도 보도하지 못한 것이다. 경향신문은 6월 27일 최경환 후보자의 아들과 딸 취업 특혜 의혹을 보도했는데, 이는 SBS가 먼저 파악한 내용이었다.

SBS 기자들은 경향신문 보도 이틀 전인 6월 25일 오후 관련 내용을 발제했고, 부장단 회의에서 최경환 관련 보도에 대해 논의했다. 부장단 회의에서는 보도 여부에 대한 의견이 엇갈렸고, 의혹 수준이기에 보도하지 말자는 의견이 더 많았다. SBS 기자들은 경향신문에 없는 최경환 후보자 아들의 녹취록까지 확보한 상태였지만 보도는 결국 불발됐다. 부장들은 ‘추가 취재’를 요구했고 기자들은 ‘이 정도면 충분히 보도할 수 있다’고 대립했다. 문창극 ‘보도 누락 사태’를 겪은 이후 재발방지 차원에서 만든 ‘인사검증TF'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KBSㆍMBC는 정권교체 되면 기대할 수라도 있지”

MBC와 KBS가 망가진 이후 SBS는 상대적으로 더 많은 신뢰를 받았다. SBS는 계속 제자리에 있지만 MBC와 KBS가 우향우하면서 SBS가 왼쪽에 서게 된 탓이다. SBS는 예전부터 지금까지 중요한 사안에 대해 술에 물탄듯 물에 술탄듯 양 쪽 입장을 나란히 전하는 ‘중립적인’ 태도를 보였고, 이것이 아예 한쪽의 입장만 반영하는 MBC와 KBS의 한계에 비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번 문창극과 장관 후보자 검증보도에 있어 SBS는 그 한계를 명확히 보여줬다.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앞둔 7월 5일 지상파3사의 장관 및 국정원장 후보자 관련 보도에는 차이가 없었다. 하나같이 검증보도가 ‘전혀’ 없었다. 7월 5일부터 7일까지 지상파 3사가 내보낸 청문회 소식은 8건에 불과했고, 이 가운데 새로운 검증 보도는 KBS 1건 뿐이었다. 같은 기간 JTBC 혼자 청문회 소식을 6건, 단독 보도를 2건 내보냈다.

SBS는 이제 망가진 KBS, MBC와 별 차이가 없다. 단순히 보도를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보도가 누락되는 사태가 똑같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상업방송인 JTBC에도 밀리고 있다. KBS가 투쟁을 통해 보도 기능을 회복한다면, MBC마저 그렇게 된다면 SBS는 어떤 경쟁력으로 승부할 수 있을까. SBS 내부에서 “KBSㆍMBC는 정권교체 되면 기대할 수라도 있지”라는 자조 섞인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