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조본좌 조본좌 2017.12.12 16:53

2017년 10월 셋째 주 좋은 기사 솎아보기

1. 언론장악만 없으면 지상파 뉴스가 살아날까

낙하산 사장이 내려온 방송사는 정권친화적인 뉴스만 해댔고, 정권을 비판한다는 이유로 유능한 기자·피디들을 한직으로 내쫓았다. 지난 9년 간 KBS와 MBC 뉴스를 정리한 말이다. 정권이 교체되고 KBS와 MBC의 지배 권력이 다시 뒤바뀌려는 지금, 한 가지 질문이 가능하다.

“언론장악만 없으면 지상파 뉴스가 다시 과거처럼 살아날 수 있을까?”

EBS 지식채널e ‘언론4부작’은 지상파 뉴스의 영향력이 줄어든 과정이 단지 ‘정권이 내려보낸 낙하산 사장’ 한 명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무능한 데스크들은 현장의 목소리를 묵살해 오보를 양산했다. 쏟아지는 뉴스를 백화점식으로 나열하는 뉴스에서는 ‘왜’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 결과가 바로 지상파 뉴스의 몰락이었다.

언론장악은 정권 차원에서 자행한 고도의 작전이자 지배전략이었다. 하지만 지상파 뉴스가 무너진 과정에 낙하산 사장 한 명이 모든 것을 지휘한 것도 아니며, 따라서 사장이 바뀐다고 지상파 뉴스가 살아날 가능성도 요원하다. ‘언론장악’이 사라진 지상파 뉴스는 이제 한걸음 깊이 들어가는 JTBC 뉴스와 뉴스의 이면을 설명해주는 팟캐스트와의 경쟁 속에서, 각종 자극적인 뉴스에 휩쓸리지 않으면서 살 길을 찾아야 한다.

● EBS 지식채널e  ‘언론 4부작’

큐레이션 EBS

2. 누구에게는 편한, 누구에게는 너무도 불편한

요새 영화관이나 패스트푸드 점에 가면 직원들 말고 기계 앞에 길게 줄을 늘어서 있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무인 단말기, 키오스크다. 줄서는 것보다 빨리, 사람 없이도 상품을 구매할 수 있어 키오스크는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키오스크가 너무도 불편한 존재다. SBS 스브스뉴스가 장애인에게 불편한 기술, 키오스크에 대해 짚었다.

휠체어 사용자 임 모 씨는 키오스크를 사용해 영화표를 구매할 수 없다. 팔을 뻗어도 화면이 닿지 않기 때문이다. 시각 장애자 김훈 씨도 패스트푸드 점의 키오스크를 사용할 수 없었다. 음성 서비스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패스트푸드 점의 40%는 키오스크를 사용하고 키오스크로만 주문이 가능한 곳도 늘어나고 있지만, 장애인용 키오스크는 찾아보기 어렵다.

장애인용 키오스크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있지만, 법제화는 아직 미지수다. 장애인 차별금지 법률에 명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술의 진화는 편리를 만들지만, 모두에게 그런 것은 아니다. 국가와 사회가 개입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 SBS 스브스뉴스

큐레이션 스브스뉴스

3. 돌봄의 젠트리피케이션

젠트리피케이션. 낙후됐던 구도심이 번성해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몰리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을 이르는 말이다. 이런 젠트리피케이션의 피해자 중에는 가난한 아이들도 있다. 가난한 아이들의 ‘제2의집’ 지역아동센터가 임대료 상승을 못 견디고 밀려나고 있기 때문이다. 한겨레21이 ‘돌봄의 젠트리피케이션’을 취재했다.

11살 민지와 9살 민형이는 매일 서울 강북구 수유동 지역아동센터에서 저녁밥을 먹는다. 이 밥을 먹기 위해 버스로 10분 거리를 오간다. 돈이 아까워 30분 걸을 때도 있다. 하지만 민지와 민형이의 발걸음은 더욱 길어지게 됐다. 센터가 세든 건물의 주인이 경매로 건물을 넘겼고 센터가 이사를 가야하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상가나 주택이 아닌 지역아동센터가 임대차보호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기에 생기는 일이다.

지난해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가 진행한 조사를 보면, 서울에 있는 지역아동센터 421곳 가운데 252곳이 상가 건물을 빌려 운영하고 있었다. 건물이 경매에 넘어가는 일이 아니더라도 임대료 상승을 감당하지 못하는 아동센터들은 임대료 상승을 피해 장소를 계속 옮겨 다녀야 한다. 셋방살이 하는 아이들은 건물주가 찾아와 임대료 인상을 요구할 때마다 센터장에게 묻는다.

“선생님, 우리 또 버려지는 거예요?”

● 한겨레21

한겨레21 큐레이션

4. 놀이가 교육이다

어렸을 적 동네 놀이터는 항상 시끌벅적했다. 따로 연락해서 만나지 않아도 그곳엔 항상 늘 동네친구들이 있었고, 그곳에서 놀다 엄마가 부르거나 좋아하는 만화 영화를 할 시간이 되는 해질녘에 집으로 되돌아가곤 했다. 그렇게 놀면서 친구를 사귀고 싸우기도 하는 게 생각해 보면 모두 교육이었다. 문제는 어른들이 아이들의 교육을 앉아서 연필을 잡고 문제를 푸는 것으로 채울 때 발생한다.

머니투데이가 초등학생 4~6학년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절반에 가까운 초등학생이 하루 평균 2시간 이상 놀지 못했다. 자유롭게 놀 수 있는 시간은 점심시간 뿐이다. 40~50분밖에 되지 않는 시간에 아이들은 밥을 먹고 놀고 5교시 준비까지 하는데, 이는 노동자에게 보장된 점심 휴게 시간보다 짧다. 아이들은 놀기 위해 일부러 밥을 적게 먹는다.

학교, 학원에서 공부만 하고 나머지 시간을 노는 시간으로 여기는 관념 자체를 바꿔야 한다. 학교 교육이 아예 놀이를 안고 가야한다는 것이다. 서울 은빛초등학교는 2011년 개교 이래 7년 간 30분 중간 놀이시간을 배정하고 있다. 아이들에게는 ‘놀이가 있는 삶’이 필요하다.

● 머니투데이

머니투데이 큐레이션

posted by 조본좌 조본좌 2017.12.12 16:50

http://slownews.kr/66148

2017년 10월 둘째 주 좋은 기사 솎아보기

1. 복지국가 덴마크, 공짜 점심은 없다

‘행복지수 1위의 복지천국’ 북유럽 국가 덴마크를 일컫는 말이다. 많은 한국인들이 덴마크를 부러워한다. 하지만 어디서나 공짜 점심이란 없다. 덴마크가 복지천국이 된 이면에는 또 다른 한계와 대가도 존재한다. tvN 다큐 ‘행복난민’이 복지천국 덴마크에 대한 팩트를 체크했다.

덴마크 노동자들이 오후 4시면 퇴근하고 주당 30시간밖에 일하지 않는 건 팩트다. 하지만 그 짧은 노동시간을 유지하고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각종 장치를 부과한다. 25분 간 초집중했다가 잠깐 쉬는 걸 반복하는 다소 비인간적으로까지 보이는 프로그램에 회사 중 사적인 업무는 아예 금지다.

야근이 아예 없다는 건 오해다. 일주일에 60~70시간씩 일하며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덴마크 회사들이 있다. 다만 대한민국의 야근과 다른 것은 노동자들에게 권한과 책임, 자율성을 주고 그들이 야근을 선택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복지가 많아지면 국민이 게을러진다.”

한국에서 들어봄직한 주장도 덴마크에 있다. 10년 간 실업급여만 받아 생활한 사람이 존재하고, 이를 둘러싸고 덴마크에서도 치열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 덴마크에서도 복지는 당연히 주어지는, 모두가 합의한 명제가 아니다.

● tvN 행복난민 1부

큐레이션

2. 직장인 68% “과로로 죽을 수 있다는 생각해봤다”

한국인이 북유럽 국가를 가장 부러워하는 이유는 노동시간이다. 연간 노동시간 2,113시간에 OECD 국가 중 노동시간 2위. 서울신문이 과로로 죽어가는 이들, 사회적 죽음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과로의 현실을 짚었다. 서울신문 여론조사에서 직장인 68.4%는 “과로로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봤다”고 답했다.

서울신문은 2011년 이후 숨진 과로사·과로자살 유족 54명을 인터뷰했다. 과로사로 죽은 노동자의 가족들에게 남겨진 건 세 가지와의 싸움이었다. 첫 번째 적은 과로를 증명하기 위한 자료 수집조차 방해하는 비협조적인 회사다. 자료를 어렵게 모아도 두 번째 적인 질병판정위원회를 마주한다. 2013년 2월~2016년 6월 과로 기준 시간을 충족한 산재 신청 사건 1351건 가운데 산재 승인을 받은 건은 절반 정도인 752건(55.6%)에 불과했다. 세 번째 적은 심리상태가 엉망이 된 자기 자신이다.

과로는 단지 개인 생활을 빼앗는 문제에서 끝나지 않는다. 과로사나 과로자살이 아니더라도, 과로는 직장인들을 건강을 위협한다. 하루 5시간만 잔 사람은 복부비만율이 1.6배 높다. 당뇨, 고지혈증, 고혈압도 과로가 키우는 대표적인 질환들이다. 장시간 노동은 몸은 물론 건강까지 해친다. 주 52시간 근로자들이 우울증, 불면증을 앓은 경우가 주 40시간 이하보다 각각 2.13배, 1.86배 높았다.

‘꿈의 직장’이라 불리던 공직사회도 과로로 쓰러지고 있다. 실적주의 바람은 과로를 부추겼고, 소방관과 경찰관은 교대제 탓에 잠 못 자는 하루가 이어진다. 복지 수요는 늘어났는데 인력 충원은 되지 않아 사회복지공무원들도 과로에 시달린다. 과로가 대한민국 노동자 모두의 삶을 갉아먹고 있다.

● 서울신문 ‘2017 대한민국 과로 리포트’

큐레이션

3. 정책자료집이 아니라 표절자료집

국회에서 열리는 청문회 때마다 많은 장관 후보자들이 논문 표절로 곤욕을 치른다. 의원들은 후보자의 표절 사실을 거세게 질타한다. 하지만 정작 그렇게 말하는 국회의원은 표절에서 자유로울까? 뉴스타파가 베끼고 또 베끼는 의원들의 정책자료집 표절 실태를 분석했다.

정당을 가리지 않고 상당수 의원들이 다른 자료를 베껴서 의원 이름으로 발간하는 정책자료집을 만들었다. 표절한 원자료는 연구기관의 보고서, 정부 보도자료, 국책은행 자료는 물론 학자들의 학술논문, 언론 기고문까지 각양각색이다. 설훈 의원의 자료집에는 “2000년대 초반 사회단체에서 일하던 시절 나는”이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시민단체 활동가가 만든 자료집을 그대로 베끼다 주어 바꾸는 걸 깜빡한 것이다.

의원들은 정책자료집 발간을 명목으로 세금을 사용한다. 중소기업연구원 보고서를 베껴서 잘집을 만든 조경태 의원은 2013년부터 2016년 자료집 발간을 이유로 2천만 원을 사용했다. 김을동 전 의원은 보좌관의 박사연구 논문을 베껴 자료집을 내고, 그 명목으로 460만 원을 받았다.

● 뉴스타파

posted by 조본좌 조본좌 2017.10.10 16:38

http://www.kunews.ac.kr/news/articleView.html?idxno=24371


언젠가부터 뉴스를 잘 믿지 않는다. 지난 몇 년간 정치세력과 손잡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국민을 기만하는 일부 언론의 모습을 지켜보며, 언론은 세상을 비추는 조금 더러운 거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영화 <공범자들>에서 고발하는 부끄러운 지식인들의 모습도 한몫했다. 그들은 공영방송을 장악해 감시견이 되어야 할 언론의 입을 막아 버렸다.

  한때 언론인을 꿈꾸며 신문방송학과 진학을 준비하던 시절, ‘뉴스’가 주제였던 학교 도서전에서 이 책을 만났다. 언론의 순기능만을 역설하는 입문용 책이 아닌, 한국 언론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꼬집는 책이 필요했다.

  하루에도 수많은 얕고 방대한 뉴스들이 손바닥 안을 떠다니는 지금, 언론사를 취재하는 언론 <미디어오늘>의 조윤호 기자는 <나쁜 뉴스의 나라>를 썼다. ‘기레기’라는 말이 상징하는, 언론을 향한 대중의 불신을 뼈아프게 인정했다. 그리고 독자에게 언론이 썩었다고 욕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한국 언론의 관행과 시스템에서 비롯된 어두운 그림자를 직면하라고 외친다. ‘그럼 그렇지’라고 눈 감고 외면하는 순간, 변화의 가능성은 사라진다. 항상 진실만을 말하지는 않는 뉴스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조윤호 기자는 그 인식을 바탕으로 더 분석적으로 뉴스를 읽을 것을 제안한다. 미디어의 의도와 맥락을 알게 되면서 사회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한 현명한 지침서가 되어주는 책이다.

  침묵하는 미디어가 무서운 이유는 뭘까? 집회나 행진이 있을 때 누가 무슨 이유로 하는 것이며, 그들의 요구 사항이 무엇인지에 대해선 침묵하다가 충돌이 발생하면 그제야 보도를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진짜 알아야 할 것은 숨기고 본질과 무관한 자극적인 면을 부각하는 것이다. 뉴스에 별 관심이 없거나 뉴스를 의심하지 않고 무심코 지나친다면, 우리는 미디어의 의도에 맞게 움직이게 된다. 미디어는 현실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현실을 만들어 나간다. 우리는 이미 그걸 겪고 있다.

  나쁜 미디어는 나쁜 대로 내버려 둬야 할까? ‘세상이 원래 그래’라고 자조하며 머물러야 할까? <나쁜 뉴스의 나라>라는 제목이 전혀 이상하지 않고 당연하게 느껴지는 것이 섬뜩하다. 이 책에서는 “언론과 미디어는 지금 이 순간에도 보여 주고 싶은 것을 부각시키며 의제를 만들어 내고 자신들이 설정한 프레임에 맞춰 뉴스를 재구성하고 있다”는 걸 강조한다. 이 사실을 기억하지 않는다면, 본심을 숨긴 뉴스에 익숙해져 현실에 더 무감각해질지 모른다.

  의미를 생각할 틈도 없이 오늘도 수많은 미디어로 눈과 귀를 채우는 우리들, 늦기 전에 뒤돌아보자. ‘나쁜 뉴스의 나라’에서 잘 살아 가고 있는 것인지. 그들이 원하는 대로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있는 건 아니었는지.

글 | 손유라 (미디어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