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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이집트 여행기 ⑥ 한국 못 올 뻔한 이집트에서의 마지막 날 8월 5일 토요일,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 아침이 밝았다. 긴장해서일까 아니면 아쉬워서였을까 이날은 새벽 4시 반에 눈이 떠졌다. 알렉산드리아 기차역에서 오전 8시15분행 기차를 타고 카이로로 돌아가야 했다. 조식을 먹을까 말까 하다가 마지막 날이기도 하니 간단히 먹기로 하고 오전 7시에 식당으로 갔다. 결론적으로 매우 잘한 결정이었다. 이후 비행기에 타서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했기 때문이다. 빠른 식사를 마치고 미리 싸놓은 짐을 들고 체크아웃을 하러 갔다. 이집트에선 특히 호텔 체크아웃을 할 때 시간적 여유를 두는 게 좋다. 정산에 시간이 꽤 걸리기 때문이다. 숙소 안에 있던 유료 ‘bar’에서 콜라 3개랑 오렌지 주스 1개, 미란다 1개, 그리고 초콜릿 바 4개(이건 간식으로 먹으려고 가방에 넣어놨다.).. 더보기
2023 이집트 여행기 ⑤ 콰이트베이 요새와 샤와르마شَاوَرْمَا 8월 4일, 이집트 여행 4일차 아침에 가장 먼저 한 일은 호텔 프론트를 방문하는 일이었다. 전날의 laundry service 때문이다. 세탁물에 대해선 매우 만족했다. 맡긴 지 2시간 만에 이집트의 흔적이 싹 빠진 새 옷으로 돌아왔다. 문제는 옷을 가지러 온 직원 놈이었다. 저녁 8시쯤 호텔에서 쉬고 있는데 흑인 직원이 영수증과 옷을 들고 문을 두드렸다. (사실 직원인지 뭔지도 모르겠다.) 이 직원이 내민 영수증에는 laundry service의 총 비용이 156파운드라고 적혀 있었다. 지금 내야 되는지 아니면 호텔 체크아웃 할 때 내도 되는지 묻자 그 녀석은 우물쭈물 답을 못했다. 그러다가 지나가던 다른 호텔 직원과 잠시 대화를 하더니 자기가 영어를 잘못해서 나를 헷갈리게 했다며 지금 납부하면 된다.. 더보기
2023 이집트 여행기 ④ 알렉산드리아도서관과 이집트 3무(無) 8월 3일 알렉산드리아에서의 아침은 전날보다 상쾌했다. 카이로에서 강제 기상을 하게 만든 자동차 경적소리는 확실히 줄었고, 눈 앞을 가리던 시큼한 매연은 지중해의 바닷바람이 걷어내 주었다. 아침 7시에 아직 덜 깬 상태로 호텔 6층으로 조식을 먹으러 갔다. 부킹닷컴 같은 사이트를 보면 호텔 조식을 되게 중요하게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던데, 나에게 조식은 숙소 평가에서 가장 중요하지 않은 기준 중의 하나다. 조식이란 그저 여행을 나서는 데 필요한 연료이고, 조식 식당은 그저 주유소일 뿐. 그렇게 주유를 하러 식당에 올라와서 다시 한번 느꼈다. 이 호텔은 진짜 뷰가 개간지다. 지중해를 마주한 채 몸에 연료를 주유하고 있자면 부자가 된 기분이다. 든든하게 연료를 채운 뒤 길을 나섰다. 알렉산드리아에 와서 꼭 가.. 더보기
2023 이집트 여행기 ➂ 카이로를 떠나 ‘지중해의 진주’ 알렉산드리아로 8월 2일, 이집트 여행 두 번째 날의 아침이 밝았다. 카이로에선 기상 알람이 따로 필요 없다. 귀를 울리는 자동차 경적 소리에 자동으로 눈이 떠지기 때문이다. 카이로는 내가 다녀본 어떤 곳보다도 최악의 교통난을 자랑한다. ‘사람이 먼저다’라는 말은 카이로에서 통하지 않는다. ‘자동차가 먼저다’ 이 동네는 애초에 신호등과 횡단보도라는 게 없다고 봐야한다. 죽고 싶지 않다면 무단횡단을 잘해야 하고, 살인자가 되고 싶지 않다면 급정거를 잘해야 한다. 운전면허 딸 때 대체 무슨 교육을 받는 것인지 궁금할 정도로 사람이 도로를 건너가려고 해도 차들은 전혀 배려하지 않는다. 눈치 보며 멈칫거리면 그걸 기가 막히게 알고 차들이 쌩쌩 지나가 버린다. 눈치 보지 말고 당당하게 무단횡단 하라! 살인을 저지르고 싶지 않은.. 더보기
2023 이집트 여행기 ② 5년 만의 카이로 박물관과 코샤리كشرى 8월 1일 여행 첫째 날의 주된 일정은 카이로 박물관이었다. 매연과 삐끼, 자동차 경적소리로 가득 찬 카이로에 굳이 한 번 더 온 이유를 찾자면 바로 이 박물관 때문이다. 카이로의 이집트 박물관은 전 세계에서 이집트 관련 유물이 가장 많은 곳 중 하나다. 이집트에 이집트 유물이 많은 건 당연한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으나 영국, 프랑스 등의 약탈 실력을 고려하면 당연한 건 아니다. (실제 대표적인 이집트 유물인 로제타석은 영국에, 덴데라 천궁도는 프랑스에 있다.)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은 이제 곧 역사 속으로 사라질 예정이다. 현재 이집트가 기자에 ‘이집트 대박물관’을 건립 중인데 카이로 박물관 유물을 여기다 이전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대박물관은 2021년 완공 예정이었으나 아직 못 지었다고 한다. 만약.. 더보기
2023 이집트 여행기 ① 출국, 그리고 ‘또(카)이로’ 2023년 7월 31일, 이집트 출국 날이 다가왔다. 비행기 시간은 오후 5시 55분. 오후 늦은 비행기였으나 조금 일찍 집에서 나섰다. 이집트 출국 전에 해야 할 일이 딱 두 가지 있다. 첫 번째는 환전이다. 원화를 달러로 환전한 다음 이집트 카이로 공항에 가서 이집트 파운드로 환전하면 된다. 그래서 출국 며칠 전에 주거래 은행인 국민은행에 800달러(한국 돈 100만 원 조금 넘는다)를 환전해두었다. 또 다른 일은 여행자보험 가입이다. 5년 전에 ‘에이스 보험’에서 이집트는 보험 가입이 안 된다고 했던 기억이 나서 이번엔 바로 삼성 보험에 가입했다. 여행자보험 가입 시 이집트에 간다고 하면 꼭 이집트 어디에 가는지 물어본다. 이스라엘 등과 국경을 마주한 ‘시나이반도’는 위험 지역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더보기
2023 이집트 여행기 Intro : 이집트 여행이 어려운 세 가지 이유 “나일의 물을 마신 자, 반드시 그 달콤한 물을 다시 맛보게 되리라” 이집트의 오래된 속담이 실현된 걸까, 아니면 기자 피라미드를 갔다가 받아온 파라오의 저주였을까. 2018년 여름에 찾았던, 그 개고생을 했던 이집트로 5년 만에 다시 향했다. 쉬려면 최대한 멀~리 떠나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길거리에서 씨발 씨발거려도 아무도 의식하지 않는 곳, 하지만 사람이 바글거리지는 않는 곳. 그러다 문득 이집트가 떠올랐다. 그때 가고 싶었지만 가지 못했던 알렉산드리아는 어떨까? 어차피 이번 휴가 때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5~6일 정도로 저번처럼 룩소르, 아스완, 후루가다, 카이로 등을 돌아다닐 여력은 없었다. 그래서 알렉산드리아행 비행기를 찾았지만 결국 포기했다. 무엇보다 알렉산드리아 ‘엘 보그’ 공항의 접근.. 더보기
우리말 겨루기가 된 보궐선거 보궐선거가 '우리말겨루기'가 된 것 같다. 누구는 누구의 단어가 잘못됐다고 지적하고, 누구는 누구의 단어가 차별이라고 지적한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으니 잘못된 언어 습관을 지적하는 일은 분명히 필요하다. 시대가 변하면 인식도 변하고, 따라서 언어가 변하는 것도 당연하다. 새로운 언어를 통해 우리의 인식과 상상력을 더 확장하는 계기를 만들 수도 있다. 문제는 말버릇을 지적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못하는 무능함이다. 아니, 오히려 그 무능함을 감추려 빨간펜 선생 노릇으로 정치를 대체 하려 한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진보주의자들의 단점은 실질적인 문제 해결은 요구하지 않으면서, 언어와 생각을 감시하는 것에 더 관심이 있다는 것이다. 진보적 성향의 백인 대학생들은 ‘안전한 공간’, ‘공격적인 단.. 더보기
치트키 쓰지 말자 대학생 때 시험기간이 되면 핫식스를 들이키고 30시간씩 잠을 안 잔 채 공부하고 시험을 보곤 했다. 그런데 핫식스는 마법의 약이 아니었다. 내일의 체력을 담보삼아 멀쩡한 정신력을 대출해주는 대부업자였다. 그 결과 시험이 끝나면 죽은 듯이 잠들었다. 혹시 며칠씩 연달아 미래의 체력을 빌리고나면, 한 이틀은 정신을 못 차리곤 했다. 빌려 쓰는 체력의 규모가 커질수록 다시 몸을 회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삶에서 치트키를 쓰는 것에는 다 대가가 있다. 내 능력으로 할 수 없는 자리나 역할을 내 능력 외의 도움을 받아서 맡게 되면, 당장은 기분이 좋을지 몰라도 언젠가 엄청난 부채로 돌아온다. 문제는 핫식스를 들이킨 결과는 내가 쓰러져 잠자는 것 정도로 끝나지만, 치트키를 써서 사회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오른.. 더보기
능력주의만 비판하면 된다는 착각 신이 한 청년에게 ‘다음 생에 가지고 태어날 세 가지 재능’을 주겠다고 말했다. 청년은 ‘소재가 떨어지지 않고 재미있는 웹툰을 그릴 수 있는 능력’ ‘임요환을 능가하는 프로게이머의 재능’ ‘로또 번호를 맞출 수 있는 능력’ 세 가지를 요구했다. 그렇게 청년은 ‘소재가 무한한 재밌는 웹툰을 그릴 수 있는 최고의 프로게이머 억만장자’의 재능을 갖고 태어났다.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조선 시대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네이버에 연재되었던 웹툰 84화에 나오는 에피소드다. 이 에피소드는 우리의 능력이나 재능이 얼마나 ‘사회적’인 것인지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미국의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은 이런 상황을 일컬어 “내가 재능을 후하게 보상하는 사회에 산다면 그것 역시 우연이며, 내 능력에 따른 당연한 결과라고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