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조본좌 조본좌 2018.12.06 13:08

https://ppss.kr/archives/181373


문재인 정부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다. 11월 29일 리얼미터 조사에 따르면 취임 후 처음으로 ‘40%’대를 기록했다. 지지율 하락에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문제는 경제다.

81%에서 51%까지 하락한(한국갤럽 기준) 20대 남성 지지율도 주목을 받는다. 젠더 문제의 요인이 크겠지만, 이 역시 경제문제와 얽혀 있는 측면이 크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먹고 사는 문제도 해결 못 하면서 저런 (골치 아픈) 문제만 신경 쓴다. 우리말은 듣지 않는다’와 같은 정서라는 뜻이다. 지지율 하락의 요인을 살피기 위해서는 ‘지지율이 가장 높았던 때’를 떠올릴 필요가 있다.

4·27 남북정상회담 직후, 즉 한반도 문제가 풀려나가는 과정에서 문재인 정부는 가장 큰 신뢰와 높은 지지를 받았다. 문 정부는 한반도 문제를 풀어내는 과정을 통해 ‘해결사’ ‘수석협상가’ 같은 별칭까지 얻었다. 그 이유는 대한민국 정부가 트럼프와 김정은이라는, 종잡을 수 없는 두 사람 사이에서 한반도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하는 신뢰감 있고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소통의 힘을 보여주었다. 수없이 얽혀있는 이해관계의 실타래를 소통으로 풀어나가는 리더. 촛불을 겪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바라는 모습이 아니었을까. 북한에 가서 북한 주민에게 고개를 숙였고,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평양 주민 15만 명 앞에서 연설했다. 상상하기 힘든 파격적인 소통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또 다른 소통방식은 ‘가장 반대가 심할 상대’들, 즉 트럼프나 김정은을 가장 믿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었다. 미국 특사로 갔던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서훈 국정원장 등을 바로 중국과 일본에 보냈다. 미국에 간 문 대통령은 (아마도) 김정은을 가장 싫어할 매체인 ‘폭스TV’와 인터뷰했고, 민주당의 ‘큰 어른’ 격인 제시 잭슨 목사를 만나 협력을 당부했다.

자유한국당은 남북정상회담이 겉만 요란하고 성과는 없다고 대통령을 공격했지만 대통령 지지율은 계속 오르기만 했다. 애초에 국민들이 남북관계를 해결했다는 이유로 대통령을 지지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문재인 정부가 남북관계와 한반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신뢰를 가졌기 때문에 대통령을 지지한 것이다.

나는 경제정책에 세세히 판단할 능력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경제 문제도 한반도 문제처럼 풀었으면 어떨지 아쉬운 마음이 든다. 우리가 주도권을 쥐고 해결해 나간 한반도 문제와 달리 경제 문제에 있어 정부는 중심이 없고 이슈에 따라 끌려다니는 모습을 보였다. 최저임금 논란, 부정적인 고용지표, 부동산 문제 등이 그랬다.

“경제 펀더멘탈은 괜찮다” “최저임금 긍정 효과가 더 크다”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해서 그렇다” “산업구조가 문제다” 정부가 내놓은 설명들이다. 이슈를 주도하기보다 방어하고 설명하고 해명하는 위치에 섰고, 논란이 터지면 그때야 대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부동산 문제는 가격 급등이 터지자 대책을 내놓았고 고용지표도 안 좋게 나오자 부랴부랴 대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보수야당과 언론이 소득 주도 성장을 무력화하기 위해 최저임금, 고용지표를 과하게 공격하는 측면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참여정부 때를 떠올려보자. 참여정부 시절 경제지표가 나쁘지 않았음에도 ‘경제위기론’이 등장했고, 정부와 집권여당이 지지율 하락을 겪었다.

정부가 수치/통계를 둘러싼 진실 공방에 매몰될 경우, 국민들은 ‘정부가 경제 지표 지키는 데만 관심 있고 내가 느끼는 경제적 어려움은 관심사 밖’이라고 생각한다. 몇몇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정부의 경제정책이 ‘통계 주도 성장’이라는 말이 돌아다녔다. 경제지표를 둘러싼 공방에 휩싸인 정부를 비꼬는 말이다.

소통의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대통령이 국민들을 상대로 솔직히 소득 주도 성장이 효과를 보기 위한 경제 체질 개선의 어려움을 털어놓고 과감한 정부 재정 투자를 통해 이 어려움을 극복하겠다고 말한다든지, 한반도 문제를 풀기 위해 반대할 것 같은 상대부터 만나서 협의했듯 대통령이 직접 자영업자들부터 만나서 최저임금에 대해 끝장토론을 한다든지, 그 외에 다양한 방식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대응은 경제가 나쁘지 않다는 반박과 해명, 그리고 “연말까지 믿고 기다려 달라”는 말이었다.

‘메시지 관리’라는 측면에서도 한반도 문제와 경제 문제는 달랐다. 한반도 문제에서 메신저는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최고지도자인 문 대통령이 직접 발언하고 움직였다. 그래서 메시지의 신뢰감을 높일 수 있었다. 다른 참모들이 나서서 미주알고주알 떠드는 걸 최소화했다. 반면 경제문제에 있어선 문재인 대통령보다는 김동연 부총리와 장하성 정책실장의 말이 공방처럼 오갔다. 언론은 유리한 대로 해석하고, 메시지의 혼선이 빚어졌다.

물론 경제문제가 한반도 문제보다 훨씬 이해관계자가 많고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반박할 수 있다. 하지만 핵심은 ‘실제 해결하는 것’보다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종전선언도, 평화협정도, 비핵화도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국민들은 문재인 정부가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한반도 평화를 구축할 수 있다고 믿는다. 반면 경제문제에 있어서는 그런 신뢰와 안정감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5년 임기 대통령이 한반도 문제만 제대로 해결해도 성공한 대통령 아닌가?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한 분야에서 쌓인 불신이 다른 영역으로 번져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문제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높아지면, 한반도 평화에 대한 신뢰도 약해질 수 있다. 야당과 보수언론도 이 약한 고리를 집중 공략할 것이다.

posted by 조본좌 조본좌 2018.12.04 08:59

요즘 들어, 별로 신뢰안하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대중(혹은 국민 혹은 나를 뺀 일반사람들)의 모순된 점을 지적하면서 지적인 만족감을 느끼는 것 같은 부류다.

당연하게도 모든 인간은 원래 완전하지 않고 모순적이다. 상황에 따라 이랬다저랬다 하고 내로남불이다. 그게 인간이다.

따지고보면 나도 그렇다. 국민연금이 사보험에 비해 보장성도 좋고 필요한거 다 안다. 하지만 내 월급에서 국민연금 빠져나가면 너무 아깝다. 세금도 높여서 복지국가 해야한다고 생각하지만 내 세금 더 낼 생각하면 아찔하다.

누구에게나 이런 모순들이 있다. 동성애에 반대한다는 말을 하면서도 동성애 차별은 반대한다. 난민을 도와줘야한다고 여기면서도 내 주변에 난민이 많이 들어오는 건 싫다고 한다. 모순이다. 하지만 그게 인간의 일부다. 인간의 인식은 어느 순간 한번에 확 바뀌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 부류의 사람들은 자기가 정한 어떠한 절대선의 변화에 다른 사람들이 도달하지 않으면 견디질 못하는 것 같다.

평생 주어진 일만 열심히 하고 살아가던 할머니 할아버지 청소노동자들이 처음으로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그리고 목소리를 낸다. 이 어르신들이 선거 때 박근혜를 찍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어르신들은 자신의 삶에서 어찌보면 혁명을 했다. 이들이 박근혜를 찍었다고(자기가 바라는 진보의 기준에 도달하지 않았다고, 사회적 약자면서 박근혜같은 강자 대변하는 사람 찍는 건 모순이라고) 이들의 변화가 무의미하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들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여기서부터 변화와 진보의 씨앗을 찾아냈으면 좋겠다.

조지 오웰이 일찍이 이런 말을 했다. (사회주의를 진보주의 정도로 바꾸면 오늘날에도 의미가 통할 말이다.)

“(우리가) 연합해야할 사람들은 사장에게 굽실거려야 하고 집세 낼 생각을 하면 몸서리쳐지는 모든 이들이다. 소규모 자작농이 공장 노동자와 연합하고, 타자수가 광부와, 학교장이 자동차 정비공과 연합해야 한다는 뜻이다. (중략) 해고당하는 꿈을 자주 꾸는 모든 은행원은 파산직전을 오가는 모든 가게 주인과 (본질적으로) 같은 처지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두 가지 사실을 대중의 의식 속에 각인하는 것뿐이다. 하나는 모든 피착취 인민의 이해관계는 같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사회주의는 상식적인 양식과 조화를 이룬다는 점이다.”


posted by 조본좌 조본좌 2018.11.01 11:26

http://www.dtnews24.com/news/articleView.html?idxno=528754


[류재민의 정치레이더 42] 허위정보, 정략적 이용에 대처하는 자세

단풍이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거리마다 노랗게, 빨갛게 물든 단풍을 보면서 아, 가을이구나, 합니다. 여러분은 어제와 다른 오늘의 날씨와 계절 변화를 느끼며 살고 계신지요? 아니면 정신없이 사느라 가끔 창밖을 바라볼 여유도 없으신가요?

날씨도 뉴스인지라, 계절의 바뀜은 체감하지 못해도 일기예보는 챙겨보는 일상입니다. 검색 한번이면 당장 궁금한 지금과 내일 날씨뿐만 아니라, 주간 날씨까지 알 수 있으니 세상 참 좋아졌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는 기상청 일기예보가 사실과 다를 때 적잖이 실망합니다. 장마철이나, 태풍이 올라온다고 할 땐 그 정도가 더 심하죠. 어떤 분들은 기상청에 전화를 걸어 “당신들 도대체 밥 먹고 하는 일이 뭐야”하며 노발대발 한답니다.

기상청 직원들이라고 왜 할 말이 없겠습니까. 기상도를 살펴보니 비가 올 것 같아 우산 챙기라고 하고, 눈이 내릴 것 같으니 빙판길 조심하라고 했겠죠. 하늘이 하는 일을 일부러 거스른 것도 아닌데, 된통 욕이나 얻어먹으면 기분 좋을 리 없겠지요.

그래도 우리들 일상생활에서 날씨만큼 민감한 뉴스도 없으니, 예보가 빗나가면 분풀이는 기상청 몫일 수밖에 없을 겁니다. 날씨 하나 못 맞춰도 난리가 나는 세상인데, ‘가짜뉴스’로 피해를 입는 분들 심정은 오죽할까요.

올해 국정감사 주요 이슈 중 하나가 ‘가짜뉴스(Fake News)’와의 전쟁입니다. 여당이 법적 조치로 가짜뉴스를 때려잡겠다고 하자, 야당은 언론탄압이라고 맞서고 있습니다. 정보통신기술(I T) 발달로 뉴스를 접하는 수단은 다양화되고 있습니다. 특히 SNS(소셜네트워크시스템) 상용화로 뉴스는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손 안의 정보’가 되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실시간 정보 전달과 다양성 못지않게 부작용도 가져왔습니다. 대표적 사례가 바로 ‘가짜뉴스’인 거죠. 진짜인 양 전달되는 허위정보는 개인의 삶과 가치관, 나아가 사회 전체에 혼란을 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온라인상에서 비수를 꽂는 건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진짜로 상처 주는 것도 아닌데 뭐, 이렇게 생각하는 거죠. 그런데 댓글이나 이런저런 사이트에서 사실과 다른 이야기들이 왜곡되어 돌아다니고 입에 담을 수도 없는 모욕적인 말들이 있는 것을 보면 견디기 힘들어요. 《당신이 허락한다면 나는 이 말 하고 싶어요》(김제동, 나무와마음, 2018)

가짜뉴스로 피해보는 건 비단 연예인이나 유명인사에 국한하지 않습니다. 멀쩡한 사람이나 무리(집단)가 가짜뉴스로 혐오와 차별을 받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몰지각한 1인 미디어를 비롯해 언론사로 등록되지 않은 ‘무늬만 언론’이 ‘카더라’ 통신 또는 증권가 정보지(흔히 ‘찌라시’라고 하죠)로 특정세력과 집단을 무차별 공격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오호 통재라’입니다.

정치도 가짜뉴스의 좋은 먹잇감이 되고 있습니다. ‘뉴스’라는 탈을 쓰고 쏟아지는 허위‧왜곡 정보가 정치공세에 이용되고 있습니다. 여와 야, 좌와 우, 진보와 보수 양 극단에 미치는 가짜 뉴스의 파괴력과 휘발성은 실로 어마어마 합니다.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보수진영 유력 대권 주자였던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그의 불출마 배경에도 가짜뉴스가 있었습니다. 그는 불출마 선언 기자회견에서 "저의 순수한 애국심과 포부는 인격살해에 가까운 음해, 각종 가짜뉴스로 정치교체의 명분은 실종되고, 개인과 가족 그리고 제가 10년을 봉직했던 유엔의 명예에 큰 상처만 남기게 됐다"고 토로했습니다.

가짜뉴스는 단순 오보나 편파 뉴스를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조중동(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과 한경오(한겨레, 경향신문, 오마이뉴스)에서 대대손손 내려오는 ‘논조’의 문제도 아닙니다. 언론사 논조야 제각각이니, 입맛에 맞는 걸 골라 보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논리와 맥락은커녕 출처 불분명한 내용이 뉴스로 둔갑해 포털과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를 자유자재로 넘나듭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을 선동해 정치적 대립을 부추긴다는 게 큰 문제입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무엇이 이토록 가짜뉴스가 활개 치도록 만들었을까. 기성언론이든, 대안언론이든, 그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못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혹은, 정치와 권력에 휘둘려 편파적이거나, 전달해야 할 팩트를 ‘아몰랑’ 덮어버리며 불신을 자초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가짜뉴스가 버젓이 ‘진짜뉴스’ 행세를 하는 요즘을 사는 현직 기자로서 반성과 자괴감이 듭니다.

세상이 말세라 사람들이 음모론과 찌라시에 빠져 있다고 한탄할 생각은 없다. 뉴스를 비판적으로 읽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음모론과 찌라시를 좋아하는 이들은 적어도 뉴스를 의심하는 독자들이기 때문이다. 뉴스가 넘쳐나는데도 음모론과 찌라시에 귀 기울이게 된 현실이 기자인 나도 서글프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비판적으로 읽어야 한다. 의도가 담긴 음모론과 찌라시는 그 어떤 뉴스보다 위험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쁜 뉴스의 나라-우리는 왜 뉴스를 믿지 못하게 되었나》(조윤호, 2016, 한빛비즈)

매체전문지 '미디어스'에서 기자와 편집장을 지낸 김민하 씨는 지난 15일 한 칼럼에서 “언론은 권력에 대한 비판과 공론의 형성이라는 제 역할에 충실해야 하고 이를 통해 정치가 이익이 아니라 가치를 말하도록 강제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현대 민주주의 정치가 가짜뉴스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오히려 의존하고 있는 것에 가깝다는 게 그의 주장입니다.

국민들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정치세력은 그 권한의 유효기간을 늘리기 위한 수단으로 언론을 이용합니다. 그래서 어쩌면 세상에 있지도 않은 뉴스를 만들거나 사실을 왜곡‧조작해 ‘우민정치(愚民政治)’를 하려들지도 모릅니다.

그런 세력을 감시하고 비판, 견제할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한 채 도리어 ‘묻어갈’ 생각만 한다면, 가짜뉴스가 정치에 기생하며 살 더없이 좋은 환경이 만들어지겠지요. 가짜뉴스가 가짜정치를 만드는지, 아니면 가짜정치가 가짜뉴스를 만드는 건지. 전문가가 아닌 저로선 명쾌한 규정을 내리기 어렵습니다. 


가짜뉴스가 민주주의 정치를 파괴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위정자들도 그런 가짜뉴스를 가져다 마구잡이 정치공세로 밀어붙여도 안 됩니다. 개인적으로 가짜뉴스를 척결하자는데 백번 찬성하고 동의합니다. ‘법’을 통한 제재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다만, 그보다 뉴스를 생산하고 공급하는 기자와 언론이 정치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객관적 사실에 입각한 기사를 유통해 국민 신뢰를 얻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가짜뉴스로 사회질서를 문란하게 만드는 ‘가짜정치’도 배격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비판적 사고와 가치관이 이 나라 언론과 정치를 건강하게 만듭니다. 나아가 대한민국을 살찌우게 합니다. 이 글을 읽는 모두가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가짜뉴스’와 ‘가짜정치’에 속지 않길 바랍니다. ‘좋은 뉴스의 나라’는 결국 여러분이 만드는 거니까요.

출처 : 디트news24(http://www.dtnews24.com)

posted by 조본좌 조본좌 2018.11.01 11:26

http://news.bookdb.co.kr/bdb/IssueStory.do?_method=detail&sc.webzNo=33914&Nnews


지난 10월 2일, 이낙연 국무총리가 ‘가짜뉴스와의 전면전’을 선포한 이후, 여야가 '가짜뉴스’ 척결에 대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오늘(10일) '가짜뉴스대책특별위원회(이하 가짜뉴스 대책특위)'의 구성을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최근 무분별하게 확산되고 있는 ‘가짜뉴스’에 대한 선전포고다. 가짜뉴스 대책특위는 총 모니터링단, 팩트체크단, 제도개선단, 자문위원단 등 6개 대책단으로 꾸려졌으며, 국정감사가 시작되는 오늘부터 가짜뉴스 신고센터에 접수된 내용의 법적 조치를 검토하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가짜뉴스의 기준이 모호하다’며 더불어민주당의 가짜뉴스 제재 방안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행위’라고 반발하고 나섰다.

최근 ‘가짜뉴스’는 그 심각성이 사회적으로 대두되고 있다. 인터넷이 발달함에 따라 SNS, 유튜브 등 사회관계망 서비스가 급발전하면서 개인 또는 특정 집단이 사실이 아닌 내용을 진짜 뉴스처럼 퍼뜨리는 경우가 빈번히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수많은 정보가 범람하는 서비스 속에서 ‘가짜뉴스’를 알아내기가 점차 힘들어진다는 사실이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성인 5명 중, 3명은 가짜뉴스 등의 허위정보를 구별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모바일 동영상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인식조사’)

거짓으로 조작된 가짜뉴스는 어떻게 우리의 일상을 뒤흔들고 있을까. 나아가 교묘한 방식으로 여론을 조장하는 나쁜뉴스의 실체는 과연 무엇인가. 뉴스를 소비하는 국민의 역할은 무엇일까. 관련 책들을 통해 함께 살펴본다. 

 

​"당신이 믿고 싶은 모든 것을 의심하라"

상황에 따라 ‘거짓말’은 헤프닝이 될 수도, 무기가 될 수도 있다. 오늘날의 가짜뉴스는 무기 그 자체다. 이 ‘무기화된 거짓말’은 거짓이 진실을 압도하는 ‘탈진실 사회’를 야기시켰다. 그렇다면 무분별한 가짜뉴스가 일으킨 여러 사회적 문제들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소셜미디어 플랫폼? 가짜뉴스 생산자들?

신경과학자이자 인지심리학자인 대니얼 J. 레비틴 박사는 책 <무기화된 거짓말>(대니얼 J. 레비틴 /레디셋고/ 2017년)을 통해 아무 의심없이 가짜뉴스를 ‘확산하는 자’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단언한다. 그렇기에 오늘날 언론뿐만 아니라 개인 또는 특정 집단이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는 가짜뉴스를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의심하는 ‘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책은 가짜뉴스가 얼마나 체계적이고 세밀하게 조작된 자료를 만들어내고 있는지, 거짓 정보는 어떤 과정을 통해 부풀려지고 확산되는지 추적한다. 오늘날 하나의 무기로 작용하는 가짜뉴스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 나아가 온갖 정보의 홍수 속에서 어떤 비판적 사고가 필요한 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뉴스를 주입하는 공범자들의 꼼수 파헤치기”

가짜뉴스의 무분별한 증가가 ‘의심없이 뉴스를 확산하는 이들의 책임’이라면, 애초에 신뢰할 수 없는 뉴스를 생산하고 주입하는 이들의 책임 또한 따져봐야 한다. <뉴스는 어떻게 조작되는가>(최경영/ 바 다출판사/ 2017년)를 출간한 뉴스타파 최경영 기자가 말하는 ‘공범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한두 개의 인터넷 포털이 뉴스의 유통을 독과점하는 현실. 과연 우리는 정말 뉴스의 생각들로부터 자유로운가? 많고 많은 가짜뉴스, 주입된 뉴스 속에서 냉정한 비판적 사고를 지켜왔다고 말할 수 있을까? 최경영 기자는 대표 신문이나 방송사로 불리는 언론에 의심의 돋보기를 갖다 댄다. 지금껏 정치, 경제, 행정 권력과 연계되어 권력을 위한 뉴스를 생산해 온 일부 한국 언론의 불편한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는 한국 언론이 국민을 속이는 방법으로 9가지로 나누어 ‘나쁜뉴스’의 생산 과정을 폭로한다. 또한 법과 규범의 틀 속에서 ‘합법적 부조리’를 생사해 온 ‘공범자들’을 비판하며, 변화를 위해 시민들이 명심해야 할 사항들을 설득력있게 정리했다.

“나쁜뉴스에 반문하지 못하면 나쁜 나라에 살게 된다”

거짓된 정보 조작을 기반으로 한 가짜뉴스와 비교한다면 나쁜뉴스의 방식은 조금 더 교묘하다. 그럴싸한 사실의 내용을 일부 생략한다거나, 원인과 결과 또는 전제 조건을 따지지 않는 방식으로 기사의 본질을 흐리기도 한다. 불행한 것은 이미 수많은 ‘나쁜뉴스’가 우리 일상 속에 잠식해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뉴스의 정의를 다시 생각하고, 언론이 감춘 허상을 깨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가 있다. 매체비평지 ‘미디어오늘’ 몸 담았던 現 정의당 조직위원회 차장 조윤호다. 그는 ‘미디어오늘’에 기자로 재직할 당시, 독자와 언론인들의 관심을 받았던 연재글을 모아 <나쁜뉴스의 나라>(조윤호/ 한빛비즈/ 2016년)를 출간했다. 의도된 왜곡을 가려낼 줄 아는 독자, 의심하는 대중, 나쁜뉴스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절실하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보수 진보를 가리지 않고 양 진영의 성역을 넘나드는 비판을 하며 오늘날 ‘뉴스의 정의’에 대해 다시 묻는다. 또한 자신이 몸담고 있던 언론계의 명암에 대해 가감 없이 파헤친다.

posted by 조본좌 조본좌 2018.08.06 09:20

‘그알’의 ‘이재명 조폭연루설’ 편은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논란이 되고 있는 SBS <그것이알고싶다>의 ‘파타야 살인사건 편’을 보았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조폭 연루설’을 심층 취재한 바로 그 편이다. 논란이 한참 확장되고 나서야 뒤늦게 보았는데 보는 내내 한 가지 커다란 의구심을 지울 수 없었다.

대체 이번 편의 제목인 ‘파타야 살인사건’과 이재명이 무슨 상관이라는 걸까?

‘파타야 살인사건’은 <그것이 알고싶다>가 약 1년 전에 취재했던 사건이다. 2015년 11월 태국 파타야의 고급 리조트 주차장에서 25세의 임모씨가 사망한 채 발견됐다. 이 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였던 김형진은 지난 4월 검거되었다.



‘그알’은 김형진의 검거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점을 포착해낸다. 김형진이 쫓기면서도 버젓이 여기저기서 모습을 드러내고 다니고, 심지어 카지노에서 일까지 했다는 것이다. 잡히면서도 전혀 반성이 없는 모습. 그리고 검찰 수사과정에서 살인죄가 사라진다. ‘그알’은 이 석연치 않은 일의 배후에 김형진이 속한 조직 ‘성남국제마피아파’가 있다고 의심한다.

이어 파타야 살인사건과 김형진에 대한 이야기는 성남국제마피아파에 대한 이야기로 옮겨간다. 성남국제마피아파 출신의 이모 대표가 경영하는 코마트레이드가 나온다. ‘그알’은 전직 경찰까지 포섭할 정도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성남국제마피아파의 석연치 않은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은수미 성남시장과 이재명 경기도지사에게로 향한다. 결론적으로는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성남마피아파와 결탁되어 있다는 몇가지 의혹을 제기한다. ‘그알’이 제기한 의혹은 아래와 같다.

1) 2007년 성남국제마피아 조직원들 47명이 기소된 사건에서 변호사 이재명이 그 중 2명의 조직원을 변호하였음(코마트레이드 이모 대표도 함께 재판을 받았음) 
2) 성남시장 시절인 2016년 7월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이모 대표에게 성남시 중소기업인대상 장려상을 수여함 
3) 성남시청 산하 성남청소년재단수련관에서 성남국제마피아파 조직원과 관련 있는 기관과 MOU를 체결함 
4) 성남시 및 성남도시개발공사가 성남국제마피아파 조직원이 딜러로 재직 중인 주차관리회사와 4천만원 수의계약을 체결하고, 성남시가 해당 주차관리회사를 두 차례에 걸쳐 성남시 고용우수기업으로 선정함.



이 여러 의혹을 보고 든 생각은 하나였다. 이런 의혹들이 파타야 살인사건과 무슨 관련이 있지?

‘그알’은 파타야 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를 둘러싼 석연치 않은 점에 착안해 그 배후로 성남국제마피아파를 지목했다. 따라서 ‘그알’이 입증해야 되는 가설은 대략 다음과 같다.

“조폭 조직이 성남에서 기업을 만들고 이 기업을 통해 경찰과 검찰 등 수사기관까지 장악했다. 이 힘을 통해 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 김형진이 거리를 맘대로 활보하도록 만들었고, 있는 죄까지 없어지게 만들었다”

‘그알’은 방송 초반부에 이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여러 각도로 취재한 결과물을 보여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야기가 갑자기 이재명으로 틀어진다. 그리고 이재명과 성남국제마피아파의 연루 의혹을 제기하기 시작한다. (위에서 정리한 네 가지 의혹)

‘그알’이 파타야 살인사건으로 시작한 취재의 결론을 이재명으로 내리고 싶다면 아래 세가지 중 하나의 가설을 입증해야만 했다.

1. 이재명이 성남국제마피아와 결탁하여 살인사건 용의자를 풀어주도록 수사기관에 압력을 행사했다.
2. 성남국제마피아가 이재명과 쌓은 친분, 네트워크를 통해 살인 용의자의 죄가 삭감되거나 살인 용의자가 거리를 활보할 수 있도록 힘을 발휘했다.
3. 이재명이 성남국제마피아파에 준 특혜를 바탕으로 성남국제마피아파가 살인 용의자의 죄가 삭감되도록만들거나 살인 용의자가 거리를 활보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그알은 위 세 가지 가설 중 어느 것도 입증하지 못했다. 파타야 살인사건에서 제기된 의문은 해결되지 않은 채, 이재명이 마피아파 조직원의 변호를 맡았고 그들에게 기업인상을 수여하고 수의계약으로 특혜를 줬다는 의혹만 쌓아뒀다.

과연 성남국제마피아파가 이재명과 ‘연루’되어 얻은 게 무엇인가? 변호행위? 기업인상? 4천만원의 수의계약? 유력 정치인과 힘들게 관계를 쌓아 얻은 이익이라고 하기엔 민망하지 않은가? 이런 (이재명과 조폭조직의) 몇 가지 관계맺음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 관계맺음을 통해 이재명과 성남국제마피아파가 ‘더 큰 무엇’을 얻었는가/혹은 도모했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그알은 방송 맨 처음에 파타야 살인사건을 배치해 ‘더 큰 무언가’가 마치 이 살인사건에 대한 공모행위인 것처럼 묘사했다. (나도 방송 보기 전에 그런 종류의 의혹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알이 제기한 의혹은 살인사건과 관련이 없다. 그럼에도 파타야 살인사건이라는 자극적인 제목 옆에 이재명 얼굴까지 박아서 방송했다.



‘그알’이 가진 장점은 수많은 정보들을 이야기처럼 재구성해 풀어내는 스토리텔링이다. 이 스토리텔링에는 정보를 얻은 순서도, 취재한 순서도 중요하지 않다. 이 스토리텔링은 정보와 취재 결과물의 적절한 배치를 통해 시청자로 하여금 결국 여러 가설과 의혹을 제거한 채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게 만든다.

하지만 ‘파타야 살인사건’ 편에서 그알은 본인들의 취재 순서를 그대로 늘어놓았다. 파타야 살인사건을 파다 보니 성남국제마피아의 실상이 나왔고, 이걸 파다보니 이재명과 관련된 의혹들이 나왔다. 인과관계가 아니라 취재의 순서대로 보도를 구성한 셈이다. 

그동안 그알이 따라온 스토리텔링 방식대로라면 여기서 버릴 건 버리고, 필요에 따라 순서를 뒤집어서 배치했어야 한다. 파타야 살인사건의 미스테리를 다루고 싶으면 거기에 집중하거나, 아니면 파타야 살인사건을 빼버리고 이재명 조폭연루설을 팩트체크하거나. 적어도 이번 ‘파타야 살인사건’ 편에서 그알은 스토리텔링에 실패했다.


P.S
한 가지 더, 취재 대상의 언론에 대한 태도가 그 대상에 대한 의혹 제기를 정당화하지 않는다. 이재명 지사가 보도를 앞두고 SBS 윗선에까지 전화를 한 것은 부적절했다고 생각한다. 의도와 무관하게 언론보도 개입으로 보이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이재명의 언론에 대한 거칠고 무례한 태도가 이재명에 대한 의혹이 사실임을 입증하진 않는다. 이 점은 명확히 해야 한다.

posted by 조본좌 조본좌 2018.07.13 14:53

72, 이집트에서의 마지막 아침이 밝았다.

 

이날의 투어는 전날 만난 흑인 가이드 아저씨와 함께하는 일정이다. 전날 있었던 아부심벨 투어와 보트투어 및 누비아 마을 방문, 오늘 오전 투어까지 비용은 2인 기준 190달러였다. 혹시 아스완 투어가 필요하신 분들은 비용 참조하시길...

 

오후 2시에 아스완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카이로 공항으로 가는(그리고 한국으로 가는) 일정이었기 때문에 오전 일정은 빠듯했다. 6시에 일어났다. 현인 알-아민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이 640분쯤 손수 아침을 준비해주셨다. 이집트식 빵에 삶은 계란, 과일 등을 주셨고 맛있게 먹었다.


(알 아민 게스트하우스 숙소 안에서 내다본 풍경. 이 풍경을 놔두고 가야한다니, 너무 아쉬웠다.)

 

아침을 먹고 7시에 정들었던 알-아민 게스트하우스를 떠났다. 아스완에 온다면 이 게스트하우스를 강력 추천한다. 비용도 2인 기준 23일에 44달러로 비싸지 않다. (22박인데 5만원 안 되는 꼴) 방에 팁으로 20파운드를 놓고 나왔다. 이집트 여행 하면서 가장 흔쾌히 놓고 나온 팁이었다.

 

짐을 들고 다시 배를 타러 나가는 우리에게 알-아민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은 부킹닷컴’(booking.com) 평점을 잊지 말아 달라고 했다. 평점 관리까지 하는 센스! 나는 한국에 오자마자 바로 부킹닷컴에 들어가 10점 만점의 평점을 남겼다.


"제가 만난 어떤 호텔의 직원보다 주인 분이 친절했고, 서비스가 좋았습니다"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가이드가 기다리고 있는 아스완 KFC 앞 선착장으로 향했다. 또 이집션 들이 배 값을 속일까봐 이번엔 아예 얼마인지 묻지도 않았다. 그냥 1인당 2파운드, 4파운드 동전을 미리 준비한 뒤 손에 쥐어주고 배에 타 버렸다.

 

가이드를 만나 가장 먼저 보러 간 것은 미완성 오벨리크스(Unfinished Obelisk)였다. 앞서 7에서 소개한 바 있는 이집트 유일의 여성 파라오, 핫셉수트가 만들려다가 못 만들었다는 오벨리크스다. 가서 보면 60파운드(학생증 있으면 반값)를 내고 들어가면 만들려다가 실패한 채 그냥 엎어져 있는 미완성 오벨리스크를 볼 수 있다.


(미완성 오벨리스크. 중간에 갈라진 틈이 보인다. 더 갈라질까봐 오벨리스크를 세우지 않고 포기한 채 채석장에 내버려뒀다고 한다.)

 

들어가면 직원이 네셔널지오그래픽에서 방영한 미완성 오벨리크스 관련 영상을 보여준다. (가이드가 미리 섭외한 것인지 원래 제공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만약 완성되었다면 높이가 42m, 무게가 1200톤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오벨리스크였다. 오벨리크스를 만들려고 돌을 자르는 도중에 버려져서 미완성이 되었는데, 중간에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금이 생겨서 제작을 포기했다. 채석장에 버려진 상태로 3500년이 넘게 있는 셈이다. 미완성 상태로 버려져서 현대인들이 고대 이집션들의 석조 기술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원이 되었다고 한다.

 

(미완성 오벨리스크 앞에서.)


미완성 오벨리크스를 보고, 그 다음으로 향한 곳은...향수 가게였다. 가이드 투어의 단점이다. 투어 시간이 급박한 데도 꼭 투어를 하면 이런 데를 끼어 넣는다. 지난 번 피라미드 여행 때처럼 가게에서 콜라라도 줄까 하는 기대감에 암말하지 않고 들어갔다.

 

그러나 정작 콜라는 없고 이집트 전통차만 줬다. 아무래도 상술인 것 같았다. 전통 차는 만드는데 시간이 좀 걸리고, 뜨거워서 다 마시는 데도 오래 걸린다. 고로 그 시간 동안 손님을 잡아둘 수 있다. 콜라를 주면 그냥 원샷해 버릴 테니까. 향수가게에서는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아빠 선물로 향수를 살까 했는데, 뭔가 사기 같은 느낌이 나서 안 사기로 했다. (정품이 아닌 것 같다고 해야 할까. 그런 느낌이었다.)

 

다만 향수가게에서 얻은 것도 있었다. 이집트 여행 내내 의문이었던 한 가지가 풀린 것이다. 이집트로 가는 비행기를 타면서부터(두바이공항부터) 내 코를 강하게 찌르던 정체를 모를 향수 냄새가 있었다. 이집트 남자들이 주로 바르는 향수 냄새 같았는데, 이집트 여행 내내 이 강한 향수 냄새가 내 코를 찔렀다. 무슨 향인지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그게 파피루스 향수였다. 향수가게 주인이 내 손등에 살짝 발라줬는데도 거의 하루 종일 냄새가 남아있을 정도로 강력한 향이었다.

 

향수 가게를 잠시 들렀다가 다음으로 향한 곳은 필레 신전이다. 이시스 신전이라고도 불리는 곳이다. 지금은 아킬라섬이란 곳에 있는데, 원래 필레섬에 있었기 때문에 흔히들 필레 신전이라 부른다. 아부심벨도 그렇고, 댐 건설로 수몰 위기에 처하자 이집트 정부가 유네스코 도움을 받아 지금의 위치에 이전했다. 신전을 이전할 때 전체를 다 분해해서 돌 하나하나에 번호를 붙인 뒤 퍼즐 맞추기를 하듯 복원했다고 한다. 그래서 신전에 가서보니 돌 하나하나에 다 번호가 붙어 있었다.

 

(필레 신전 가는 길. 이집트에서 타는 마지막 배가 이 배였다.)


섬에 있기 때문에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신전이다. 신전 입장료는 100파운드다. (학생증 있으면 할인) 배 값은 따로 받지 않았는데 아마 가이드가 낸 것 같았다.(투어 비용에 포함. 아마 가이드 없이 가는 사람은 배 값을 따로 내야할 듯.) 필레 신전은 섬에 있어서 그런지 경치가 정말 좋은 신전이었다.

 

필레 신전을 오가는 길에 탄 배는 모터만 달렸지 돛단배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작은 소형선이었다. 내가 왼쪽에 있다 오른쪽으로 움직이자 배가 휘청거렸고, 앉아서 손을 뻗으면 강물이 닿았다. (강물에 손을 대려고 몸을 기울여도 배가 휘청거렸다. 짝은 움직이지 말라고 여러 차례 경고했다. 너 때문에 집에 가는 날 나일강에 빠지고 싶지 않다며..)


(필레 신전 입구.)


(필레 신전 안에서.)

 

필레 신전 가는 길을 포함해서, 아스완은 배를 타고 보면 경치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어디서 타든, 아스완에서는 배를 타고 여행을 해볼 것을 추천한다. 필레신전 오갈 때 배 값은 안 냈지만 가이드가 뱃사람들에게 팁을 주라고 해서 20파운드를 주었다.

 

필레 신전에는 고양이가 정말 많았다. 날씨가 매우 더웠는데, 큰 선풍기를 틀어놓은 카페테리아에 가니 이 동네 고양이들이 모조리 모여 있는 것 같았다. 여기 고양이들은 가까이 다가가도 도망가지 않고 가만히 있다. (시원해서 딴 데 가기 귀찮아서 그런 것 같다.) 섬에 콜라나 물을 파는 상점이 있는데 관광지답게 일반 상점보다 비싸다. 미리 물을 준비해가는 게 좋다.


(이집트에서도 고양이는 귀엽다.)

 

필레 신전 다음으로 향한 곳은 아스완 하이댐이다. 입장료는 1인당 30파운드였다. 필레 신전, 그리고 아부심벨 신전을 이전하게 만든 그 문제의 댐이다. 알다시피 고대부터 나일강은 자주 넘쳤다. 그리고 넘친 뒤 토양이 비옥해지면서 이를 바탕으로 나일강 주변의 문명이 발달했다. 그런데 인근 유역에 사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나일강 범람을 막고 관계 및 농경을 위해 전력 발전을 해야 할 필요성이 생겼다. 그래서 만든 게 아스완 하이댐이다.

 

52년 이집트공화국을 출범한 나세르 대통령이 댐을 쌓기 시작했다. 기존에 로댐이 있었는데 이걸로는 범람을 막고 전략발전을 이끄는데 부족해서 만든 게 하이댐이다. 처음에 미국과 영국이 돈을 대다가 사이가 틀어지면서 소련의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준공기념탑에 아랍어와 러시아어가 함께 쓰여 있다.) 이 과정에서 수몰지역에 있던 아부심벨과 필레 신전을 옮겼고, 9만 명이 거주지를 옮겼다. 누비아 족만 빼고 대부분 댐 건설에 찬성했다고 한다.


(하이댐 위에서 바라본 풍경.)

 

하이댐은 볼 게 별로 없다. (그래서 입장료가 30파운드...) 그냥 하이댐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설명을 듣고 댐 주변 경치를 둘러보는 정도다. 일정이 바쁘거나 빡세신 분들은 굳이 안 들러도 될 듯.

 

(하이댐을 배경으로. 이게 이집트에서 찍은 마지막 사진이다.)


하이댐까지 구경을 마치니 오전 11시 반 쯤 되었다. 가이드가 아스완 공항까지 데려다주었다. 가이드에게 팁 20파운드를 주고, 바이바이 했다.

 

아스완 공항에서 2시 비행기를 타고 4시에 카이로공항 도착 예정이다. 하지만 역시나 이 이집트 공항에선 정시 출발을 기대해선 안 된다. 아스완 공항은 비행기 타러 가는 길에 피자 조각이나 샌드위치 같은 걸 파는 곳이 있다. 그곳에서 간단히 점심을 때웠다. (남은 이집트 화폐도 해치울 겸) 이집트 국내선 공항에선 기내식을 주지 않고 비스킷 같은 것만 주기 때문에 밥을 먹고 비행기를 타야 한다.

 

아스완 공항에서 내려서 카이로 공항에 왔다. 한국으로 가려면 640분 비행기를 타야 했다. 카이로공항은, 정말 돌아가는 날까지 우리를 지치게 했다. 나랑 내 짝은 각자 다른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는 상황이었다.(짝은 다음날 새벽, 모스크바 경유 비행기) 내가 돌아가는 비행기 티케팅을 하기 위해 짐 검사를 한 뒤 안으로 들어왔고 내 짝도 같이 들어갈 수 있다고 해서 들어왔다. 그런데 갑자기 다른 공항 직원이 내 짝을 불렀다. (그리고 그 뒤 난 짝을 서울에서 만났다..)

 

짝은 다음날 비행기라서 아직 들어가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짝이 잠깐 인사만 하고 오겠다고 했으나 절대 안 된다고 했다. 8일을 같이 다닌 우리는...그렇게 카이로 공항에서 인사도 못한 채 헤어졌다.

 

티케팅도....굉장히 오래 걸렸다. 보통 우리는 비행기 타면 한 시간 전에 티케팅을 다 끝내고 기다리면서 이것저것 하지 않나? 그런 걸 이곳에서 기대하면 안 된다. 늦을까 걱정할 필요도 없다. 어차피 비행기도 늦게 출발한다.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왔다. 두바이 경유를 통해 인천공항으로 돌아오니 73일 오후 5시였다. (다음날 바로 출근을..ㅠㅠ) 624일 출국해서 73일 귀환, 9일 만에 꿈같았던 이집트 여행을 마치고 현실로 복귀했다.

 

(아스완을 떠나며 남긴 팔찌 사진.)


*이집트 여행 총평.

 

프랑스도 가보고 이탈리아도 가봤는데 유적지가 주는 웅장함은 이집트가 단연 압도적이었다.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느낌이 , 이 그림 진짜 잘 그렸다.”였다면 이집트의 유적지를 보면 ...사람이 이런 걸 어떻게 만들었지?”라는 생각이 든다. (+ “유럽 놈들이 훔쳐온 게 원래 여기 있던 거였구나!”)

 

이렇게 좋은 곳이지만 혼자 가는 건 비추다. 나도 한 번 가보고 나니 다음번엔 자신감이 생겨서 혼자 갈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처음 갈 때는 친구들이랑 가거나 단체 투어를 추천한다. 인도 삐끼도 심하다는 말이 있는데, 이집트까지 다녀와 본 어떤 사람은 이집트에 비하면 인도 삐끼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여행을 많이 다니진 않았지만 다른 나라에서 경험한 삐끼들은 그래도 최소한의 이라는 게 있었다. 싫다고 몇 번 이야기하면 다시 접근하지 않는다거나, 먼저 호감을 갖게 한 뒤 나중에 슬쩍 무언가를 팔려고 한다거나. 아니면 최소한의 상응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돈을 달라고 한다거나 하는 식이다.

 

그런데 이집트에서 만난 삐끼들은 그런 게 아무것도 없다. 그냥 내 내면에 존재하는 짜증과 폭력성만 깨닫게 된다. 최소한의 노력도 안 하고 무작정 돈을 달라고 한다. (6에서 소개한 알린 정도의 삐끼라면 속아줄 수 있다.) 유적지 안에서 아무 유물이나 가리키면서 아무 소리나 해대고 돈을 달라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어떤 삐끼는 놀이터 모래더미에서 막 주은 것 같은 담배꽁초를 들이대며 원달러 원달러라고 했다. (원달러 주는 것도 안 내키는데 나보고 쓰레기까지 가져가라는 거냐?)


(인간의 폭력성을 실험하기 위해 사람들을 룩소르로 보내보겠습니다...)

 

어른들은 물론이고, 10살도 안 되어 보이는 꼬마 아이들까지 외국인만 나타나면 조각품 같은 걸 들고 "원달러 원달러" 한다. (많이 안타까웠다나라에 관광 말고 다른 산업이 없으니 어렸을 때부터 외국인 상대로 삐끼짓하는 것 말곤 먹고 살 궁리가 없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집트에서 본 많은 유적지와 잊지 못할 풍경과 야경, 그리고 (-알민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을 비롯해) 그 안에서 찾은 이집트의 양심들. 그들이 떠올라 이집트는 추천하고 싶은 여행지다. 특히 후르가다와 아스완은 꼭 다시 한 번 가보고 싶다. (카이로는 공항이 거기 있으니 어쩔 수 없이 들러야 하겠지만, 삐끼천국이던 룩소르는 솔직히 다시 가고 싶지가 않다;;) 이번에 못 가본 알렉산드리아랑 다합도 다음 번엔 꼭 다시 가고 싶다.

 

그리운 이집트!

만약 다시 가게 된다면 또 여행기 형태의 기록으로 남겨보겠다.

 

그럼 이만, .


posted by 조본좌 조본좌 2018.07.11 14:42

 

이집트 최남단 아부심벨로 가는 길은 71일 아침, 아니 새벽에 시작됐다.

 

전날 숙소에 도착한 시간이 10시반 경. 씻고 이것저것 다하니 12시가 넘었다. 2시간 밖에 못 잘 것 같아서 난 그냥 잠을 자지 않기로 했다. 짝은 잠들었고, 난 침대에 누워서 그동안 찍은 사진들 좀 보고 한국 소식도 검색해보고 하다가 2시가 좀 넘어서 일어났다.

 

씻고 두 시 반에 숙소를 나가려는데 옆방에 있던 한 외국인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에게 아부심벨에 가는 거냐고 물어봤다. 그렇다고 하자 자기도 아부심벨로 가는 차를 타야 한다며 5분만 기다리면 같이 배를 타고 나가자고 했다.


(이른 새벽, 배를 타러 나가는 길.)

 

그래서 그 외국인과 함께 아스완 KFC(픽업 장소)로 가는 배를 탔다. 정류장에는 웬 흑인 소년이 혼자 배를 띄우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룩소르까지만 해도 아랍인들이 많았는데 아스완부터는 아프리카라는 느낌이 확 났다. 여기서부터는 아랍인보다 흑인이 훨씬 많다.)

 

아침이나 낮에 타는 배는 각 2파운드 밖에 안 했는데 새벽에 타는 배 값은 25파운드나 했다. 같이 온 외국인이 새벽은 원래 비싸다고 들었다고 했다. 따지자면 그 흑인 소년이 아부심벨에 가는 우리를 태우기 위해 새벽에 나온 셈이다. 야간노동에 대한 값이라 생각하고 아무 말 하지 않고 50파운드를 냈다.

 

KFC 앞에서 그 외국인과 함께 픽업 차가 오길 기다렸다. 그녀는 독일에서 왔으며, 시리아와 터키의 국경지대에서 난민 관련 활동을 하는 시민단체 활동가라고 했다. (삐끼들이 가득한) 이집트에 혼자 여행 온 것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녀의 이력을 듣자 수긍이 갔다. 전쟁터에서 산전수전 다 겪었을 텐데, 삐끼들 정도야 이겨낼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대한민국에도 난민들이 와서 사회적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어디냐고 물어보길래 예멘이라고 했더니 바로 이해한 것 같았다. 제주도로 500여명의 예멘인들이 난민 신청을 하러 왔지만 한국은 단일민족국가이고 이런 일을 처음 겪어봐서 그런지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전했다. 그녀는 그런 우려에 대해 충분히 이해한다고 했다.

 

그녀는 이집트에 와서 삐끼들한테 많이 시달렸다며 다음 행선지는 후르가다라고 했다. 우리는 후르가다는 쉬기 딱 좋은 휴양지이며, 독일인들이 매우 많다고도 전했다. (4편 참조) 픽업하러 온 차가 달라서 그녀와 우리는 서로 다른 차를 타고 헤어졌다. 그녀는 휴가를 마치고 다시 시라아 터키 국경지대로 간다고 했는데, 별 일 없이 자신의 임무를 다하길 기원한다.

 

여튼 우리는 아부심벨로 가는 봉고차를 탔다. 우리를 픽업하러 온 기사와 그 기사의 친구는 굉장히 시끄러운 놈들이었다. 그들은 아부심벨로 가는 3시간 내내 쉬지 않고 떠들어댔다. 봉고차에는 우리 말고도 멕시코에서 온 남자 두 명과 (국적은 잊어버렸으나 직업이 교사라고 했던) 여성 한 명이 탑승했다. 멕시코 남자 두 놈도 굉장히 시끄러웠다.

 

아부심벨은 이집트 남부인 아스완에서도 3시간을 차타고 달려야 나온다. (아스완에서 280km 떨어져 있음) 수단과 국경지대로, 이집트 최남단이다. 3시간을 달려 6시 반 쯤 아부심벨에 도착했다. 우리를 맞이한 건 역시 삐끼들이었다. 그래도 아스완 삐끼들은 룩소르보다 낫다. 싫다고 하면 따라오진 않는다.


가이드가 우리들에게 한 명 붙었는데,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아부심벨 신전 안으로 들어가는 식으로 투어를 시작했다. 아부심벨에는 신전이 크게 두 개가 있다. 아부심젤 대신전이라 불리는 신전은 람세스 2세가 지은 신전으로, 입구에 4개의 좌상이 있다. 4명 모두 람세스다. 람세스 어렸을 때, 람세스 늙었을 때 등등 조금씩 다른 모습의 좌상들이라 한다. (람세스2세는 자기 과시가 굉장히 강했던 사람 같다.)


(아부심벨 대신전 앞에서. 저 뒤에 보이는 석상 네 개 모두가 람세스2세다;;)

 

신전 안은 매우 넓고 화려했다. 람세스2세의 자의식 과잉을 한껏 느낄 수 있다. 깜짝 놀란 건 신전 안에서 뭐가 시끄럽게 날아다니기에 새인 줄 알았는데 한 무리의 박쥐들이었다. 입구에 가면 웬 이집션이 굉장히 큰 열쇠 같은 걸 들고 관광객들한테 건네주는데, 이 열쇠 비슷하게 생긴 건 symbol of eternity라고 했다. 처음엔 삐끼인 줄 알았는데 삐끼는 아니고 그 열쇠를 주고 사진을 찍어주는 아부심벨 알바였다. (돈 안 줘도 됨)

 

(불멸의 상징은 요렇게 생겼다. 이집트 신전 안에서 이 문양을 많이 볼 수 있다.)

 

람세스2세가 지은 신전(룩소르신전, 카르나크신전, 아부심벨신전) 안에는 유독 저 “symbol of eternity”이 많았다. 사람들이 손에 들고 있거나 다른 사람이 왕에게 저 상징물을 바치는 장면이 벽화로 조각되어 있었다. 아마 모든 것을 손에 넣은 파라오가 유일하게 손에 넣지 못한 게 불멸이어서 거기에 집착한 게 아닐까 싶었다.


신전 안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가 없다. 하지만 돈 앞에 안 되는 게 어디 있으리. 돈을 더 내면(300파운드) 사진을 찍는 티켓을 준다. 안에서 사진 찍는 분들이 있어서 나도 모르게 ? 사진 찍으면 안 되는데라고 말했는데 크게 들렸나보다. 그 분들이 한국어로 저희 돈 내고 샀어요~”라고 하셨다. 알고보니 한국에서 관광 온 비구니 스님들이었다.

 

아부심벨 대신전 옆에는 작은 신전이 하나 있다. 람세스2세의 부인이었던 네페르타리를 위해 람세스가 지은 신전이다. 람세스 2세 부인들이 많았는데, 그 중 람세스2세가 가장 아꼈던 부인이라고 한다. (소설 람세스에도 나온다. 투탕카멘의 의붓어머니인 네페르티티와는 다른 사람이다.)

 

(네페르타리 신전 앞에서.)


많이 사랑했으니 신전까지 만들었겠지 라고 생각하고 네페르타리 신전을 가보았는데, 신전 앞에 있는 6개의 입상 중에 2개만 네페르타리고 나머지 4개는 람세스2세였다. 기껏 부인한테 주는 신전을 만들어놓고 그 문 앞에 정작 자기 석상을 4개나(자기 부인보다 많이) 박아놓은 것이다. 참 자의식이 강한 파라오였구나 싶었다.

 

아부심벨 대신전 앞에는 바로 강이 펼쳐져 있다. 그 강 너머가 바로 수단이다. 아부심벨은 원래 이곳에 있지 않았다고 한다. 원래 있던 장소에서 댐 건설로 수몰될 위기에 처하자 이집트 정부와 유네스코가 함께 수단 국경지대인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는 것이다.

 

(저 강을 지나면 바로 수단이 보인다고 한다.)


아부심벨은 굉장히 유명한 유적지고 웅장하지만 정작 둘러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는다. 큰 신전 하나랑 작은 신전 하나에 주변 경치 정도다. 2시간 만에 다 둘러보고 8시 반에 다시 돌아오는 봉고차를 탔다. 앞의 두 놈은 여전히 시끄러웠지만 피곤해서 그런지 3시간 내내 잠들었다.

 

아스완에 다시 돌아올 때가 되자 버스 기사 옆에 앉아 있던 이집션이 우리한테 봉투를 건넸다. 팁을 넣으라는 거였다. 이놈들은 한 게 뭐가 있다고 대놓고 팁을 요구한다. (봉고차 기사야 운전이라도 했지 그 옆의 놈은 시끄럽게 떠든 거 말고 한 게 없었다.) 우리는 돈이 아까웠지만 억지로 5파운드를 넣었다.

 

봉고차는 멕시코인 두 명을 픽업했던 장소에 멈췄다. 아스완의 뜨거운 태양이 비추는 도로 한 복판이었다. 이집션들은 차 문을 열더니 여기서 내리면 5분 뒤에 너희 숙소에서 픽업을 하러 올 거라 했다. 멕시코인들은 여기 있다가 차가 오면 내리겠다. 밖이 뜨거워서 밖에 있고 싶지 않다고 하차를 거부했다. 이집션들은 “5분이면 온다고 했으나 멕시코인들은 너네가 하는 5분이란 말 안 믿는다.”고 했다. 현명한 선택이었다. 10분 넘게 지나서 차가 왔고 멕시코인들이 내렸다.

 

참고로 이집션들은 관광객들을 상대할 때 입버릇처럼 ‘5분만아니면 ‘1분만’(one minute)을 외치는데 절대 믿으면 안 된다. 그게 10분이 될지 30분이 될지 12일이 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도 다른 외국인들과 작별하고 KFC 앞에서 내렸다. 배가 고파서 KFC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명색이 KFC인데 카드를 받지 않았다. 심지어 카드기가 있었는데도. 가격은 매우 쌌다. 세트메뉴 2개를 시켰는데 우리나라 돈으로 만 원이 안 됐다. 하지만 싼 이유가 있다. 햄버거 내용물이 매우 부실했기 때문이다. 대신 감자튀김은 짜지 않고 맛있었다.


KFC 직원은 거스름돈이 1파운드 모자라자 "원 미닛"(1분만 기다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식사를 다 할 때까지 1파운드는 주지 않았다. 내가 다시 가서 1파운드 달라고 하자 그제야 거스름돈을 줬다.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다시 배를 탔다. 근데 정류소에 있던 놈이 배 값이 1인당 10파운드라고 했다. 어제밤에 탔을 때 분명 2파운드였는데. 우리가 "어제 2파운드 내고 탔다. 우리는 가격을 알고 있다"라고 했더니 "리얼리?"라면서 그럼 2파운드만 내라고 한다. 이쪽 사람들은 가격을 물어보면 그냥 머리에 떠오른 숫자를 아무거나 이야기하고, 거짓말을 한 것에 대한 최소한의 민망함도 없다. 

 

다음 투어 일정은 아스완 섬들을 보트로 돌아보는 보트투어였다. 하지만 오후가 되어도 여행사에서 어디로 나오라는 연락이 오질 않았다. 우리를 아부심벨에 데려다 준 일당들한테 물어봐도 아무것도 몰랐다. (우리는 분명 EYE OF HORUS라는 회사랑 계약했는데, 아부심벨 투어랑 보트투어가 각각 아스완의 다른 회사들에서 진행됐다. 아마 손님을 잡으면 커미션을 받고, 다른 여행사들에 팔아넘기는 시스템인 것 같다.)

 

여행사 사장한테 연락을 취해도 답이 없었다. 고민하던 순간에 우리 앞에 이집트의 현인, 엘 아민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이 나타났다. (현인 이야기는 7편 참조) 우리는 현인에게 고민을 털어놓았고 고민을 듣고 있던 현인은 어딘가로 전화를 했다.


잠시 뒤 우리를 안내해 줄 가이드에게 연락이 왔다. 숙소에서 쉬고 있으면 4시 반에 픽업하러 오겠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4시반에 가이드가 숙소 앞으로 보트를 끌고 우리를 픽업하러 왔다. 아아, 현인 엘-아민. 그저 빛...


(아...엘 아민. 그저 빛...)

 

숙소에서 뻗어서 자다가 일어났고, 네 시 반에 연락이 왔다. 나가보니 숙소 바로 앞에 보트가 대기하고 있었다. 그 보트를 타고 가이드와 함께 바로 보트 투어에 나섰다.


(보트 투어를 통해 둘러본 아스완 섬 일대.)

 

(아가사 크리스티가 틀어박혀서 소설을 쓴 아스완 호텔이라고 한다. 저런 데서 글 쓰면 진짜 잘 써질 것 같다.)


나일강 유역을 한 바퀴 도는 보트투어였다. 나일강은 물이 정말 깨끗했고 경치도 좋았다. 돈만 많으면 이런 데 집 하나 짓고 살면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나일강에서 수영을 할 수 있냐고 물었고 가이드는 현지인들이랑 관광객들이 종종 수영하는 곳에 우리를 떨구어 주었다.

 

그래서 한 20분 동안 나일강에서 수영(이라기보다 몸 담구기)을 했다. 물이 너무 깨끗해서 안이 다 보일 정도였다. 물이 매우 시원해서 오래는 들어가 있지 못했다. 그래도 오들오들 떨리는 정도는 아니었고, 온 몸이 맑아지는 기분 좋은 시원함이었다.


(나일강 수역. 사람들의 안구 보호를 위해 몸은 자체 모자이크 처리했다.)

 

보트 투어 중에 한 섬에 도착했다. ‘엘레판티네(Elephantine)섬이었다. ’코끼리의 귀란 뜻으로, 섬이 코끼리 귀처럼 생겨서 붙은 이름이다. 그곳에는 이집트의 소수민족인 누비아 족이 사는 누비아 마을이 있다. 이 섬에서 자신들의 생활 방식을 유지하며 살아간다고 한다.

 

가이드의 설명과 함께 누비아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열 전달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곳에 지어지는 건물은 둥근 모양을 하고 있다고 했다. 건물도 형형색색 매우 예뻤다. 푸른색과 초록색을 좋아해서 독특한 색감의 그림 같은 건물들이 많았다. 여행 내내 엄마 선물로 뭘 살까 고민했는데, 여기서 수제 스카프를 득템했다. (5000원 밖에 안 함)


가이드가 한 집으로 들어가서(관광코스) 누비아 족 생활에 대해 이것저것 보여주었는데, 이 집에는 악어가 있었다. 원래 나일강에는 악어가 많아서, 고대인들은 악어 때문에 사투를 벌였다고 한다. 관광코스로 악어를 이렇게 집에 가둬놓는 것 같았는데, 악어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요해서 기르는 게 아니면 이런 악어는 그냥 풀어줬으면 좋겠다.


(건물이 진짜 예쁜 누비아 마을.)


(누비아 마을을 배경으로. 옆에 있는 흑인 아저씨는 가이드.)


(누비아에선 이렇게 낙타들이 개나 고양이처럼 흔하게 돌아다닌다.) 


누비아 마을에서 기억 남는 곳은 초등학교였다. 가이드가 방학 때문에 텅 비어 있는 누비아 마을 초등학교에 데려다주었다. (외국인을 위해 관광 코스로 만들어놓았음) 교실에 들어가보고, 그곳에 있던 선생님이 아랍어와 누비아어 알파벳을 소개해주었다. 아랍어로 내 이름도 써보았다. 내 이름이 윤호라고 말하고, 알려주는 대로 썼는데 알고보니 내가 글자의 발음은 윤호가 아니라 유후에 가까웠다고 한다. 선생님이 내 이름을 유후라고 알아들으신 모양이다.

 

(암기를 못해서 한국식 체벌 중....)


(아랍어 공부를 해보았다.)


(누비아 초등학교 교실의 안과 밖.)



해질녘의 아스완 섬 일대는 정말 아름다웠다. 우리는 배 사공 두 명에게 30파운드를 팁으로 주었다. (가이드는 다음날 또 만날 거라서 다음날 주기로) 저녁은 보트 투어를 하다 마주친 누비안 레스토랑(nubian restaurant)에서 하기로 했다. 옆에 나일강이 보이는 매우 예쁜 레스토랑이었다.

 

(엘레판티네 섬의 선박장 모습,)


누비아 전통 빵과 누비아 전통 밥, 생선조림 등을 먹었는데 특히 생선 조림이 맛있었다. 토마토와 양파 소스에 절인 생선 조림이었는데, 입에 살살 녹는 것 같으면서도 굉장히 특이한 맛이 났다. 혹시 아스완에 오면 한 번 먹어보길 추천한다. 엘레판티네 섬에서 배를 타고 5분만 가면 나오는 곳이다.

 

(누비안 레스토랑에서 마신 논알콜 맥주,)


(누비안 레스토랑의 전통 빵.)


(누비안 레스토랑에서 먹은 음식들. 오른쪽 빨간 물체가 토마토에 절인 생선조림이다.)


레스토랑에서 주문 받던 아저씨는 우리한테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한국에서 왔다니까 “south or north?”라고 되물었다. 코리아라고 했을 때 이렇게 되물어본 사람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웃으면서 남한이라고 하자, 그 아저씨는 북한의 젊은 지도자에 대해 알고 있냐고 물었다. “김정은?”이라고 다시 묻자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집트를 포함해 수많은 나라의 독재자/집권자들이 김정은을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이집트 정치인들도 매우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젊은 독재자가 (트럼프나 시진핑 같은) 세계의 주요 지도자들을 만나며 보여주는 모습, 그리고 앞으로 북한의 변화에 매우 관심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이역만리에서 BTS 다음으로 대화 주제로 등장한 (노스)코리안이 김정은이었다...

(이 식당에도 고양이가 있었다.)

 

누비안 레스토랑에서는 아예 수상택시를 운영하고 있었다. 40파운드를 내니 엘 아민 게스트하우스 앞까지 데려다준다. 밥 먹고 기분 좋게 숙소로 돌아왔다. 룩소르는 유적지들은 좋았지만 날씨도 덥고 삐끼들 때문에 정말 피곤해서 다시 오고 싶진 않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스완은 또 오고 싶을 정도로 좋았다. 기온 자체는 높았지만 강 근처에 있어서 그런지 바람이 많이 불어서 시원했다.


(누비안 레스토랑의 야경.)

 

돌아가니 빛-아민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이 우릴 기다리고 계셨다. 옆방이 비었다며 옆방으로 옮겨서 머물러도 된다고 했다. 지금 머무는 방은 에어컨 조정하는 게 바깥에 있어서 조금 불편했는데 옆방은 에어컨을 방 안에서 조정할 수 있다면서 말이다. 자신의 편의가 아니라(대부분의 이집션들은 이랬다) 손님의 편의에 맞춰 서비스를 제공하는 빛-아민. 우리는 현인의 제안대로 방을 바꿨다.

 

그렇게 이집트에서의 마지막 밤이 흘러갔다.

 


다음 편은 아스완 2일차, 이집트에서의 마지막 날 이야기다

posted by 조본좌 조본좌 2018.07.10 17:44

630, 룩소르 서안 여행을 위한 아침이 밝았다.

 

룩소르 서안 여행을 위해 이집트 현지인 복장을 갖췄다. 전날 1000파운드나 주고 구매한 이집트 젤라비아(젤라바)를 입었다. 그리고 머리에는 같이 산 흰 색 스카프를 둘렀다. 현지인에 따르면 보통 젤라비아 안에는 나시 티와 속옷만 입는다고 한다.

 

(바로 이 옷이 젤라비아다.)


나로썬 처음으로 치마 혹은 원피스 비스무레한 걸 입어본 셈인데, 자연스레 매우 계단 같은 데를 오를 때 매우 조신하게(?) 움직여야 했다. 바람 불 때는 바지 보다 훨씬 시원하다는 점도 알았다.

 

복장을 완비하고 아침부터 서안 투어를 시작했다. 이집트 서안 투어는 전부 유적지 탐방이라 가이드 투어를 신청했다. 이베로텔 호텔에 물어보니 호텔에서 연결해주는 데가 따로 없다고 하여(되는 게 없는 호텔이다.) ‘트립어드바이저라는 사이트에서 검색해서 찾았다. ‘Eye of horus'라는 회사의 private tour 프로그램이었다. 금액은 2인 기준 120달러였다. 유적지 입장료는 별도로 내야 한다.

 

아침에 기사와 가이드가 호텔로 우리를 픽업하러 왔다. 가이드는 이스마일이라는 이름의 중년 아저씨였는데 영어로 천천히 설명해주는 좋은 가이드였다. 이스마일의 유창한 영어 가이드를 들으며 차를 타고 30분 정도 달리니 룩소르 서안에 도착했다.

 

룩소르 서안의 유적지를 가면 맨 처음에 볼 수 있는 것이 멤논의 거상(The Colossi of Memnon)이다. 높이가 20m에 달하는 2개의 거상이 룩소르 서안에 도착했음을 알려준다. 원래 이곳에 아멘호텝 3세가 만든 신전이 있었고 이 거상이 신전의 입구에 놓여져 있던 것인데 신전은 사라지고 이 두 개의 거상만 남았다. 거상의 모습은 파라오 아멘호텝 3세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라 한다.

 

(멤논의 거상 앞에서 이집션 코스프레를 하고.)


멤논 거상에서는 사진 찍는 거 말고는 할 게 없다. 그렇게 사진 한 방씩 찍은 뒤 다시 차를 타고 서안 쪽으로 가서 핫셉수트 신전(Temple of Hatshepsut)에 도착했다. 핫셉수트는 이집트 역사에서 유일하게 파라오의 지위를 얻었던 여성이다. 핫셉수트는 자신이 여성이라는 점 때문에 한동안 남자인 척을 했다고 한다. 턱수염까지 붙였을 정도. 파라오 즉위 후에도 자신이 여성이라는 점을 의식한 듯 다른 파라오들에 비해 더 웅장하고 거대한 유적들을 많이 남겼다고 한다. 핫셉수트 신전만 해도 짓는데만 15년이 걸렸다고.

가이드는 우리에게 설명을 해주고 자유시간을 주었다. 핫셉수트 신전은 이집트에서 본 신전 중에서도 눈에 띠게 벽화 색상이 예쁘게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이었다. 계단이 많은 신전이라, 롱스커트(?)를 입은 나는 매우 조신하게(치마가 밟히지 않도록 살짝 걷어 올리며) 계단에 올랐고 그 모습을 본 이집션 가이드는 한참을 낄낄대고 웃었다.


(핫셉수트신전 입구.)

(햇빛을 가릴 것이 없어서 옷으로 가려야한다.)

 

이날 젤라비아 예쁘다는 이야기를 이집션들한테 30번 정도 들었던 것 같다. 그러고보니 대부분의 이집션들이 입은 젤라비아는 그냥 색깔이 없는, 흰 색 젤라비아였는데 내가 입은 건 하늘색이었다. 아마 외국인이 매우 화려한 한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것을 본 기분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전에 누워 있던 삐끼들이 내 패션에 대해 한 마디씩 말을 걸어서 매우 귀찮았다. 어디서 샀냐, 얼마주고 샀냐고 물어보기도 하고 흰 스카프의 코디법에 대해 조언하기도 했다. 어떤 삐끼는 내가 사진을 찍으려 하자 흰 스카프를 아랍인들이 쓰고 다니는 모자처럼 만들어주었는데, 고마웠지만 돈 달라고 할까봐 얼른 자리를 피했다.


(삐끼의 도움으로 만든 이집션 완전체.)

 



하룻동안 이 복장을 하고 다니니 왜 이집션들이 더운 나라에서 긴 옷을 입고 다니는지 알게 됐다. 체감 기온이 48도인 나라다. 반팔을 입어도 어차피 땀은 나고 더운 건 마찬가지다. 햇빛으로부터 몸을 가리는 게 시원하게 입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안 그러면 살이 타거나 일사병에 걸리기 때문이다. 바람이 잘 통하는 것도 중요하다. 젤라비아는 이런 요소들을 두루 갖춘 전통 의상이었다.

 

핫셉수트 신전을 보고 있는데 한 무리의 관광객 여성들이 우리한테어디서 왔냐고 말을 걸었다. 한국이라고 하자 신기해하며 같이 사진을 찍자고 했다. 알고 보니 파키스탄에서 온 방탄소년단 팬이었다. 이 이역만리에서 파키스탄 사람들과 BTS를 두고 이야기하게 되다니...BTS의 위대함을 실감했다.

“왓츠 유어 페이버릿 멤버?”
“아이 라이크 지민”

그렇구나 하고 가려는데 한 파키스탄 소녀가 나한테 너는 누굴 제일 좋아하냐고 묻는다. 얼떨결에 나도 대답했다.

“마이 페이버릿 멤버 이즈 뷔.”

사실 뷔는 내가 이름을 아는 유일한 방탄소년단 멤버였다. 자신도 뷔를 좋아한다며 웃는데 그 순간 뷔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게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사실 얼굴도 몰랐다.ㅠ)


(한국 와서 찾아봤다. 이 분이 뷔다. 출처 : 오마이뉴스)


파키스탄의 방탄소년단의 팬들과 헤어진 뒤 우리가 간 곳은 메디나트 하부(Medinet Habu) 신전이다. 람세스 3세가 만들었고, 이집트 신전 중에 보존 상태가 매우 좋은 신전이라고 한다. 실제로 보니 벽화나 조각들이 거의 그대로 남아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마치 군대 요새처럼 만들어진 하부 신전 입구.)

 

입구는 군사요새 같이 생겼다. 당연한 것이 이 신전 전체가 이집트의 정복 전쟁을 찬양하는 내용이다. 대부분의 벽화나 조각들이 이집트의 전쟁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집트가 타 민족을 정복하고 전쟁에서 승리한 이야기가 벽에 도배되어 있다. (이 신전을 만든 람세스 3세가 이스라엘, 레바논, 팔레스타인 지역을 정복한 이집트의 정복왕이었다.)

 

(하부신전의 벽화와 조각들. 마지막 사진은 전쟁 모습을 묘사한 조각이다.)


두 개의 신전을 본 뒤 향한 곳은 왕가의 계곡이다. 좁고 긴 골짜기로 되어 있는 곳인데, 왕들의 무덤이 몰려 있는 곳이다. 도굴꾼들이 하도 왕가의 무덤을 파헤쳐 대서 비밀리에 접근이 어려운 골짜기에 무덤을 형성했다. 계곡에 구멍을 파서 묘를 만든 다음, 장례가 끝나면 입구를 봉인해버렸다고 한다.

 

왕가의 계곡 일반티켓을 사면 무덤 3개를 볼 수 있다.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서, 사진을 못 찍었지만 내부가 굉장히 화려하다. 바위산을 파서 이런 묘실을 만들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투탕가멘의 무덤을 들어가려면 티켓을 별도로 사야 하는데, 가이드가 별 게 없다고 해서 굳이 사서 들어가보진 않았다.

 

(왕가의 계곡은 대충 이런 모습이다. 사진을 못 찍었다.)


왕가의 계곡에서 쉬고 있는데 가이드 이스마일이 내일은 어디를 가냐고 물어봤다. 아스완에 간다고 하자 자기네 회사의 가이드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논의하다가 비용을 좀 깍은 뒤 이 회사에서 투어를 하기로 했다. 어차피 다음날 봐야할 아부심벨은 혼자 가기 힘든, 투어가 꼭 필요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여튼 룩소르 여행의 핵심인 왕가의 계곡 투어를 마치고, 가이드는 우리를 점심 먹을 식당으로 데려다주었다. 그 전에 아스완으로 가는 기차표를 끊는 게 우선이었다. (호텔 직원에게 부탁했으나 하루 째 표 예매가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호텔 직원이 12일 걸려도 못하던 걸 가이드는 쉽게 처리했다. (역시 돈이면 다 된다.) 단 원래 타려던 4시 반 기차는 그 사이에 꽉 차서 6시 반 기차를 타야만 했다.

 

점심을 먹으러 온 식당은 sofra였다. 카이로 2일차 때 먹었던 코사리를 잊지 못하고 코사리에 양고기를 먹었다. 음식은 맛있었지만 이 식당은 정말 서비스가 최악이었다. 아니, 직원들이 기본적인 예의가 없었다. 동양인 둘이 오자 원숭이처럼 대놓고 쳐다보는데 그 시선이 느껴져서 내가 민망할 정도였다. 3~4명이 반대편 테이블에 앉아서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한 놈은 테이블에 얼굴을 기댄 채로 계속 나를 쳐다보는데, 나한테서 성적 매력을 느낀 건지 (남자놈이었다) 의심스러울 정도로 빤히 쳐다봤다.

 

게다가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을 했다. 음식 값을 계산해서 잔돈으로 50파운드를 줘야 하는데, 직원 놈이 50파운드짜리가 없다고 뻐기기 시작한 것이다. 식당이 50파운드 지폐가 없다는 게 말이 안 될뿐더러, 식당 사장이 환전할 데 없으면 달러를 파운드로 바꿔줄 수 있다고 말한 상태였다.

 

직원이 없다고 뻐기기에 우리는 친절히 방법을 알려줬다. “뒤에 보이는 저 계단을 내려가서, 1층에 가서 너희 사장을 찾아. 그리고 잔돈을 가져와.” 그러자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이 직원 놈이 1층에 가서 50파운드를 가져왔다. 우리 돈을 먹으려던 것도 아니고, 1층으로 내려가기 귀찮아서 일단 거짓말부터 하고본 것이다. (이 나라는 정말 자본주의화, 근대화가 덜 된 나라 같았다.) “, 있잖아.”라고 하자 그놈이 웃었다. 웃는 낯에도 침 뱉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까 헤어진 가이드가 우리를 기차역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해서, 밥을 먹은 뒤 다시 이베로텔 호텔로 갔다. 3시간 동안 호텔 로비에서 멍하니 시간 낭비를 했다. 4시 반 기차표를 예매하지 못해서 생긴 일이다. 시간도 남아 환전을 하려고 했으나 이베로텔은 달러가 없다며 안 바꿔줬다. 그래서 환전소가 어디냐고 물어본 다음 밖에 나가 환전소를 찾았으나 죄다 문이 안 열려 있었다. (내가 그래서 환전소 어디냐와 함께 환전소가 오늘 열리냐고 물어봤다. 그런데...) 이놈의 호텔 직원은 정말 아는 게 하나도 없다.

 

참고로 이집트는 금,,일이 휴일이다. 그래서 금요일에도 관공소나 환전소, 은행이 문을 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집트 여행할 때 주의해야할 점 중에 하나다. (환전을 미리 해둬야 함)

 

여튼 이 아무것도 모르는 이베로텔을 떠나 룩소르 기차역에 도착했다. 내일 투어를 예약한 'Eye of horus' 사장과 그 사장 친구가 우릴 기차역으로 픽업해주었다. 그런데 기차역에서 문제가 생겼다. 분명 아스완의 숙소를 알려주고 내일 새벽(아부심벨 투어는 새벽 3시 반에 시작한다.)에 픽업해달라고 했는데, 픽업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 대신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아스완의 어떤 장소로 나오라고 했다. (이 장소에 가려면 적어도 새벽2시에는 일어나야 했다.)

 

내 짝이 화가 나서 항의했으나 우리가 말한 숙소랑 비슷한 다른 숙소가 있어서, 픽업을 해줄 수 있는 곳인줄 알았다는 말 같지도 않는 변명을 했다. (우리가 아스완에서 머물기로 한 엘아민 게스트하우스el-amin guest house는 섬에 있다. 그래서 차로는 픽업이 불가능하다. 그래도 선착장 정류소까지는 픽업하러 나올 수 있는데, 이것마저 안 된다고 했다.)

 

아부심벨 투어를 취소할까도 고민하다가, 이미 아부심벨 투어를 위해 여권까지 복사해서 허가를 받은 터라(아부심벨은 수단과의 국경지대에 있어 관광객도 여권 사본을 미리 내고 허가를 받아야 한다.) 취소하기도 애매했다. 결국 우리는 포기하고, 새벽 2시에 일어나기로 했다.

 

여행사 놈들하고 투닥거리를 한 뒤라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로 아스완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여행사 사장이랑 같이 나온 그의 친구가 우릴 기차 객실 안까지 안내해주었다. 그래서 그에게 팁 10파운드를 주고, 자리에 앉았다. 6시반 출발해서 9시반 도착하는 기차였다.

 

좀 가다보니 배가 고팠는데 마침 음식을 파는 카트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 중 65파운드 짜리 핫치킨이 있어서 그걸 하나 달라고 했다. 닭다리 하나 정도 나올 거라 생각하고 시켰는데(65파운드면 원화로 3900원이다.) 웬걸, 공항 기내식보다 더 좋은 메뉴가 나왔다. 닭이 거의 반 마리 째 통째로 들어가고 밥이랑 빵, 디저트까지 나오는 메뉴라 배부르게 한끼 식사를 할 수 있었다. (혹시 이집트에서 기차를 타다 핫치킨을 발견하면 식사대용으로 먹어보기를 추천한다.)

 

여튼 우여곡절 끝에 저녁 9시 반에 아스완 기차역에 도착했는데, 도착하자마자 우리를 맞이한 이들은 역시나 삐끼였다. 택시를 외치는 삐끼들이 기차역 바깥도 아니고 기차에서 내리는 문 앞까지 나와 있다. 어차피 택시를 타야 해서 한 삐끼에게 얼마냐고 물어보자 ‘100파운드를 불렀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꺼지라고 했더니 바로 50파운드로 가격이 떨어진다. 우리가 방금 타고 온 3시간 짜리 기차비용이 60파운드였다. 이놈들은 그냥 머리에 생각나는 숫자를 아무거나 말하는 것 같다.

 

50파운드를 부른 이 삐끼는 우리를 포기 못하고 계속 게이트 밖으로 나가는 내내 우리 짐을 들어주려고 했다. 우리는 짐에 손대지 말라고 경고하고, 밖에 나가서 다른 삐끼를 찾았다. 다른 삐끼도 50파운드를 주장했는데, 40파운드를 주장하던 우리가 떠나려고 하자 급하게 “40파운드!”라며 우리 손을 잡았다. (우리는 이미 엘 아민 게스트하우스 주인장에게 택시비를 물어본 상태였고, 주인장은 50파운드 이상은 절대 내지 말라고 알려주었다.)

 

40파운드를 내고 아스완역에서 아스완 KFC까지 왔다. 아스완은 섬이 많은 지역이라, 섬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일종의 수상 택시들이 있다. KFC 앞의 정류소에서 배를 탔다. 비용은 각 2파운드, 4파운드였다. 4파운드를 타고 배를 타자 엘 아민 게스트하우스 바로 앞에서 내려주었다.


(아스완은 섬이 많아서 이렇게 섬을 이어주는 배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이제 아스완으로 넘어왔으니 엘 아민 게스트하우스에 대한 본격적 찬양을 해보려고 한다. 엘 아민 게스트하우스의 사장님은 내가 이집트 여행을 하면서 처음 만난, ‘대가를 바라지 않고 친절한사장님이었다.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해 다음날 아부심벨로 간다고 하자 10분 만에 우리한테 차 안에서 먹을 수 있는 빵과 음료를 챙겨주었다. (부킹닷컴에서 아스완 숙소 중 가장 평점이 높은 숙소다. 평점이 높은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수많은 삐끼들을 겪은 나에게 이 분은 단지 게스트하우스 사장이 아니라 일종의 현인이었다. 우리는 다음날 새벽에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곳으로 아부심벨행 봉고차를 타러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현인이 바로 여행사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현인의 통화 이후 우리에게 여행사에서 연락이 왔다. KFC 앞으로 우리를 픽업하러 오겠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아무리 항의해도 안 되던 것이 현인의 전화 한 통으로 해결됐다.

 

이집트를 많이 여행하는 여행자들은 다 안다고 하던데, 이집트의 홍반장으로 유명한 만도라는 사람이 있다. '중동 4대 천황'으로 알려진 만도는 한인들을 전문으로 상대하는 여행 브로커다. 비싼 돈을 지불하면 여행의 A부터 Z까지 모든 플랜을 짜준다고 한다. 심지어 가짜학생증까지 만들어주고, 만도식당에서 본국 음식을 그리워하는 한국인들을 위해 닭도리탕까지 손수 만들어주는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한국어를 모국어 수준으로 구사한다고 하며 룩소르 기차역에 가면 그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심지어 아스완역에 내렸을 때 우리에게 한국인이냐고 물어본 한 삐끼가 나는 만도 친구야라고 접근하기도 했다. 어쩌라고?)


(알 아민 게스트하우스.)

 

하지만 나에겐 알 아민 게스크하우스 사장님이 홍반장이었다. 물을 사기 위해 게스트하우스 1층에 있는 상점에 들르자 큰 물병을 6파운드에 팔았다.(이베로텔에서는 30파운드 하던 것이다.) 혜자스러움에 감격해 6파운드를 두 손으로 정중히 제출했다. 그렇게 우리의 아스완 여행은 현인과의 만남으로 시작됐다.

 

다음 편은 이집트 최남단 아부심벨 신전과 아스완 보트투어 이야기다.

 

posted by 조본좌 조본좌 2018.07.09 16:01

629, 이집트 남부 룩소르의 아침이 밝았다.

 

우리가 머문 숙소는 이베로텔 룩소르(Iberotel Luxor)라는 곳이었다. 와이파이도 잘 되고 숙소도 나쁘지 않았으나 여기도 서비스가 일못이었다. 뭘 부탁하면 되는 게 없었다. 달러를 small bill로 바꿔달랬는데 (분명 달러가 잔뜩 있는 걸 봤는데도) 없다며 바꿔주지 않는다. 아스완으로 가는 기차에 대해 물어보니 본인이 표를 예매해주겠다고 했는데 일이 진척이 안 된다. “내가 도와준 걸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는 이해할 수 없는 비밀요원 같은 말까지 했다. (결과적으로 말할 필요가 없었다. 도와준 게 없으니까.)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호텔인데 물을 따로 사먹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것도 무려 큰 병 하나에 30파운드였다. 밖에 나가서 사먹으면 6~7파운드인데, 호텔에서 사면 30파운드이다. 나중에 카르나크 신전이라는 관광지에서 같은 크기의 물을 사봤는데 10파운드였다. 관광지에서 10파운드인데 호텔에서 30파운드에 판다! 물장사하는 게 봉이 김선달 급이다.

 

여튼 30유로짜리 물을 들고 룩소르 첫째 날 여행에 나섰다. 룩소르 여행의 주의점은? 딱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덥다.

 

엄청 덥다.

졸라 덥다.

개덥다.

 


검색해보니 기온이 42, 체감온도가 48도다. 아침 9시에 집에서 나섰는데도 태양이 중천에 떠 있는 것 같다. 햇빛이 날 때리는 것 같이 덥다. 다만 햇볕만 피하면, 그늘에 가면 습도는 없어서 그나마 좀 시원하긴 하다. 2L짜리 물을 들고 다니면서 벌컥 벌컥 마시게 된다.

 

더위에 지친 몸에 이어 내 정신을 괴롭히는 건 삐끼들이다. 밖을 나서면서부터 택시 택시’ ‘페리 페리라는 소리가 화음을 이루며 내 귀를 어지럽힌다. 페리는 룩소르 동안에서 서안으로(다음편에 소개할 왕가의계곡 등 유적지가 있는 곳) 갈 때 타는 작은 배를 뜻한다. 하지만 동안과 서안은 다리로 연결되어 있어서 굳이 페리를 탈 필요가 1도 없다. 여기에 말 택시까지 나타나서 우리를 괴롭힌다.

 

니하오” “차이니즈?” “코리안 굿” “고니치와외국어 초급회화 시간에 등장할 법한 각종 인사말들이 총출동한다. “안녕하세요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극성은 말 택시를 탄 삐끼들이었다. 페리야 배가 정박되어 있으니 쫓아오는 데 한계가 있고, 택시도 차를 타고 쫓아올 순 없을 테니까. 말 택시는 아주 여유롭게 우리를 따라오면서 계속 말을 건다.

 

성질이 나서 한 삐끼한테 “DO NOT TALK ME"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랬더니 나한테 소리 지르지 말라고 되려 소리를 지른다. 그리고는 노려본다. 손 감자 큰 거 하나 먹여줄까 하다가 일이 커질까봐 참았다.

 

내 인성을 시험한 또 다른 삐끼는 한 스무살도 안 되어 보이는 녀석이었는데, 정말 한 20분을 우리를 쫓아왔다. 콜라 사러 상점에 들렀을 때도 안 가고 기다리고 있었다. “코리안 베리 굿이런 잡소리나 하면서. 지 마음대로 룩소르 여행계획에 대해 브리핑하더니 얼마에 해주겠다고 한다. 노땡스를 한 30번 정도 한 것 같다. 안하겠다고 소리를 지르자 “WHY?"라고 되려 소리를 친다. 나는 화가 나서 ”WHY!!!!!!"라고 소리를 질렀다.

 

내가 소리를 지르니까 쏘리 쏘리를 반복하더니 사라진다. 그러더니 유치하게 코리안 노 굿이라고 외쳤다. 내 짝도 열 받아서 이집션 노 굿을 외쳤다. 아까 그놈에게 못 먹인 손 감자를 먹여줬는데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가 생각났다. (뫼르소는 아랍인을 총으로 쏜 뒤 강렬한 태양빛 때문에 쏘았다고 말했다.)


(룩소르 신전의 거대한 기둥들.)

 

10분 간 걸어서 삐끼와 더위를 뚫고 도착한 첫 번째 방문지는 룩소르 신전이었다. 해가 질 때가 되면 야광조명이 일제히 나오면서 진짜 예쁘다는 데 우리는 잘 몰라서 오전에 갔다. 룩소르 신전은 신왕국 제18왕조의 아멘호텝 3세의 치세 때 지어진 것으로, 이집트 신화에서도 매우 중요한 아문신에게 바치기 위해 만들어진 신전이다.

 

(룩소르 신전의 벽화)


굉장히 웅장하고 또 벽화의 색깔이 아직까지도 보존되어 있었다. (당시에는 얼마나 화려했을지 짐작이 간다.)  제일 먼저 눈에 띠는 건 높이가 24미터에 달하는 오벨리스크였다. 람세스 2세가 세운 것인데, 원래 두 개였는데 무식한 프랑스 놈들이 하나는 떼 갔다고 한다. 뜰로 들어가면 100미터에 달하는 기둥머리를 올린 열 네 개의 열주가 늘어져 있는데, 나름 장관이다.


(룩소르 신전 입구의 오벨리스크)

 

신전 입구에는 스핑크스들이 잔뜩 늘어서 있다. 뭔 스핑크스들이 이렇게 많나 싶었는데 이것이 '스핑크스의 길'이라고 한다. 북부에 있는 카르나크신전까지 3km미터 가량 뻗어있는 엄청난 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파괴되어 완전히 연결되어 있진 않다고 한다.)

 

(스핑크스가 이런 식으로 길처럼 계속 늘어서 있다.)


룩소르 신전을 다 보고 나오니 10시반 쯤 됐다. 너무 더웠다. 그래서 우린 활로를 찾아 맥도날드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빅사이즈 콜라에 아이스크림을 먹고 나니 좀 살 것 같았다

 

(맥도날드 3층에서 본 룩소르 신전의 모습)


맥도날드에서 좀 쉬다가 다시 10분여를 걸어 룩소르 박물관(Luxor Museum)에 도착했다. 카이로에 있는 이집트 박물관처럼 수많은 석상과 유물들이 보관되어 있는 곳이다. 나일강변에 위치하고 있고, 테베 지역 유물들이 주로 보관되어 있다.

이집트 박물관과 달랐던 점은 유물 보관이 매우 잘 되어 있다는 점이다. 유물들이 아무렇게나 쌓여 있던 이집트 박물관과 달리 이곳의 유물들은 온도와 습도를 잘 지켜서 보관되고 있었다. 처음 들어가면 직원이(이 사람도 삐끼인가 싶어 처음에 노땡스라고 했다.) 룩소르 박물관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상을 보여준다. 잘 듣고, 박물관을 두루 감상하면 된다. (에어컨이 너무 시원해서 나가기가 싫어진다.)


(룩소르 박물관 바로 밖에는 이렇게 나일강이 흐른다.)


룩소르 박물관에서 나온 우리는 식당을 찾아 걸었다. 식당까지 가는 길에 수없는 삐끼들이 있었다. 삐끼들을 헤치고 간 식당은 Al-Sahaby Lane Restaurant. 이곳에서 고기, 야채가 섞인 밥 등을 먹었다. 밥을 먹고 있는데 고양이가 다가와서 야옹야옹 거렸다. 사람이 먹는 걸 주면 안 된다는 생각에 그냥 무시하고 먹었는데 계속 와서 울어대서 마음에 걸렸다. 그 때 레스토랑 직원이 나타나 고양이를 쫓았다.

 

(점심으로 먹은 고기들)


쫓겨난 고양이가 다시 내 옆에 와서 앉아 있는데 차마 거절할 수 없어서 콩 같은 걸 줬다. 손에 콩을 올려놓으면 와서 얌전하게 먹을 줄 알았는데 내 손을 마구잡이로 때린 다음 내가 콩을 놓치자 주워먹는다. (역시 냥아치;;;)

그렇게 콩 몇 개를 먹더니 또 안 먹는다. 고기를 줄 순 없어서(내가 먹어야 하니까) 그냥 무시하고 먹었다. 그랬더니 그제야 던져준 콩을 먹기 시작한다. 콩을 안 먹는 척 해서 고기를 얻어내려던 전략이었다. 이집트의 고양이 삐끼였다!

 

(이 녀석도 삐끼였다.)


식사를 마치고 아까 본 룩소르 신전에서 스핑크스길로 이어진다는 카르나크 신전으로 향했다. 멀어서 걸어갈 수는 없는 거리였다. 말 택시를 타기로 했다. 가격 흥정이 필수다. 50인가 40을 불렀는데 20파운드에 가기로 하고, 말 택시에 탔다. 말 택시의 구성은 간단하다 말 택시는 한 마디로 돈 받는 마차다. 뒤의 공간에 승객들이 타고, 말 위에 한 명이 타서 운전한다. 때로 운전자 외에 삐끼가 한 명 더 타고 있을 때도 있다.

말 택시를 탄 이후에도 삐기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20파운드 더 주면 바자르(시장)를 한 바퀴 구경시켜주겠다는 이야기였다. 그냥 가던 길이나 가라고 했다. ‘말 안 걸면 두 배라고 했으면 좀 조용했을까? 아무튼 말을 타고 10분 정도 와서 카르나크신전에 도착했다. 우리를 태워준 삐끼는 우리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했다. 몇 시간 걸릴지 모르겠다고 했더니 상관없다고 그냥 기다린단다. 기다리든 말든 알바 아니라고 하자 그제야 다시 장사를 하러 사라졌다.

카르나크신전은 이집트 최대 신전이다. ‘아몬, 그리고 태양신인 신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만들었다. 남북으로 540미터, 동으로 500미터, 서로 600미터의 사다리꼴 형태다. 탑문만 10개가 있고, 오벨리스크와 스핑크스(룩소르에서 연결되는)가 나란히 서 있는 길이 있다. 역대 왕들이 건설한 작은 신전들과 야외 박물관, 중앙 정원, ‘성스러운 연못까지. 신전이라기보다 하나의 소도시 같았다.

 

(카르나크신전에도 오벨리스크가 있다.)


그래서 모두 돌아보는 데 졸라 힘들다. 물을 얼마에 팔든 사먹게 된다. (그래도 30파운드에 팔던 우리 호텔보단 싸다.) 나도 지쳐서 끝까지 돌아보지는 못했고, 짝은 내가 쉬는 동안 성스러운 연못까지 보고 왔다.

 

(짝이 찍어온 연못 사진.)


거대한 신전인 만큼 신전 안에는 각양각색의 삐끼들이 NPC처럼 도사리고 있다. 그늘 같은데 물 한 병 끼고 누워 있다가 관광객이 오면 잽싸게 일어난다. 잘못 말을 붙이면 미션을 수행하고 돈까지 줘야 한다. 한 삐끼는 계속 설레발을 치면서 이 장소에 오면 오벨리스크를 더 멋있게 볼 수 있다고 컴온 컴온을 반복했다. 보고 우리가 감탄했으면 돈 달라고 했을 거다. 무시하고 난 뒤 도대체 뭐가 있기에 호들갑인가 싶어서 가봤더니 별 것도 없었다.

 

또 다른 삐끼는 가이드 코스프레를 하며 묻지도 않았는데 우릴 오라고 하더니 막 신전에 대해 설명해주려 했다. 벽화를 가리키며 이 그림이 아몬신이고, 이 그림이 라신이고, 이 그림이 람세스2세라면서 떠든다. 나중에 다시 가서 자세히 보니 그냥 손 가는대로 아무 거나 가리키면서 아무 말을 해댄 것 같았다. (우리가 고개라도 끄덕였으면 돈 달라고 했을 거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나중에는 전통의상 입고 머리에 터번 같은 거 두른 이집션만 봐도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분명 그 중에는 선의로 뭔가 도와주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관광객 입장에선 구별이 안 가니 미칠 노릇이다.

 

(웅장한 카르나크 신전의 모습들.)


웬 서양인 남자애도 갑자기 우리한테 와서 사진을 찍자고 했다. 얼떨결에 같이 셀카를 찍었는데 사진 찍고 난 뒤 사진을 보며 기분 나쁘게 낄낄거렸다. 동양인을 원숭이처럼 보는 건가 해서 기분이 나빴는데 나중에 보니 마주치는 모든 외국인들과 같이 셀카를 찍고 기분 나쁘게 웃는 그냥 관종이었다. (“이집트에서 외국인 100명과 셀카 찍기미션 같은 것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카르나크 신전을 다 돌아보니 예상대로 출구 앞부터 말 택시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중 한 삐끼와 흥정을 해서 20파운드인가 주고 다시 숙소인 이베로텔로 돌아왔다. 저녁은 이베로텔 안에 있는 저녁 뷔페를 이용했다. 카이로에서 먹어본 스텔라와 함께 이집트 2대 맥주라는 사카라를 마셨다.

 

(이집트의 2대 지역 맥주 중 하나라는 사카라.)


삐끼와의 모든 조우가 끝났다고 생각할 무렵, 우린 가장 고단수의 삐끼 한 명을 마주한다. 알린이라는 이름의 삐끼였다. (아마 이 이름도 가명일 가능성이 높다.) 물이 너무 비싸 밖에 물을 사러 나간 게 화근이었다. 길을 걷다 마주친 그는 자신이 이베로텔 호텔의 식당에서 일하는 요리사라고 했다. 그리고 조리하면서 우리를 봤다고 했다. 물을 사러 간다고 하자 같이 봉이 김선달 짓을 하는 이베로텔 호텔을 씹어주면서 우릴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러더니 물이 가장 싸다는 바자르의 상점으로 안내했다. 싸게 사긴 했다. 호텔에서 30파운드하던 물을 6~7파운드에 샀으니까. 큰 병으로 물을 세 개 샀다. 그는 요리사답게 향신료 가게에 들러 다양한 향신료들을 소개하고 우리에게 냄새까지 맡게 해주었다.

 

바자르 구경을 시켜주더니 이윽고 도착한 곳은 웬 기념품 샵이었다. 알린은 독심술에도 소질이 있는 게 분명했다. 마침 룩소르 여행을 하루 동안 하고 난 뒤 현지 옷을 입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때였다. 저 긴 옷으로 햇볕을 가리면 덥지 않을까? 저게 더 시원할까?

 

(삐끼한테 낚인 채 옷까지 입어본 호구.)


알린과 친구처럼 보이는 기념품 샵 주인은 나에게 이집트 현지인들이 입는 옷 젤라비아를 추천했다. 입어 보니 꽤나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가격을 물어보니 무려 1000파운드였다. 30파운드 짜리 물에 분노했던 입장에선 안 사는 게 합리적 소비자다운 일이다. 같이 온 짝도 너무 비싸다고 했다.

 

그 순간 깊은 번뇌에 빠졌다. 알린을 따라 이곳에 온 이상 이 옷의 구매는 어쩌면 필연적인 것이 아닌가? 이 정도 정성의 삐끼라면 속아 넘어가 주는 것도 예의가 아닌가? 적어도 알린은 우리가 만난 수많은 이집트 삐끼들에 비해 노력하고, 스스로를 개발하는 삐끼가 아닌가? 하루종일 흥정에 시달리고, 여기까지 와서 내가 이 옷쪼가리 때문에 또 다시 흥정을 시도 해야 하는가? 우리를 기분 좋게 하기 위해 열심히 영어로 떠드는 알린의 모습까지 뇌리에 겹쳐졌다.

 

그래서 1원도 흥정하지 않고 쿨 하게 1000파운드 내고 현지 옷을 샀다. 한국 돈으로 6만원이다. 솔직히 개비싸다고 생각했지만, 그냥 이 순간만큼은 흥정하고 싶지 않았다. 알린은 우리를 다시 호텔로까지 데려다줬다. 우리는 알린에게 원달러 팁까지 건네 주었다.


(옷은 매우 만족스러웠다.)

 

알린은 헤어지기 전 우리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내가 도와줬다는 것을 호텔의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면 안 된다. 그럼 내가 해고될 수도 있다.” (리베로텔의 한 직원이 했던 말과 똑같은 말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우린 늦게까지 호텔에 있었지만, 호텔 식당에서 알린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다음편은 룩소르 2일차, 룩소르 서안의 왕가의 계곡 탐방과 이집트 최남부 아스완으로 가는 길 이야기다.

 

posted by 조본좌 조본좌 2018.07.09 03:03

628일 아침, 스킨스쿠버 다이빙을 위해서 일어났다.

 

다이빙을 하러 출발하기로 한 시간은 오전 8시였다. 아침에 일어나고 나니 문득 내가 눈이 몹시 나쁜데, 안경을 쓰지 않고 물에 뛰어드는 게 괜찮을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앞이 잘 안 보이는 안전상의 문제 + 바다 속이 잘 안 보여서 다이빙을 즐기지 못할 것이란 우려 등. (난 렌즈도 없었다.)

 

약속시간보다 일찍 가서 다이빙 센터에서 고민을 토로했다. 그러자 도수가 있는 물안경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도수가 있는 물안경은 내 머리 사이즈에 맞질 않았다.....(다행히도 도수없는 물안경은 내 사이즈가 있었다.) 그래서 센터장과 합의를 보았다. 일단 맨 눈에 물안경을 쓴 채 물에 한 번 들어가 보고, 아니다 싶으면 바로 나오기로 했다. 그럴 경우 돈은 안 받는 것으로.


(다이빙을 하기 위해 홍해 바다로 향하는 길)

 

그래서 모여 있던 다른 독일인들과 함께 해변으로 가서 스쿠버다이빙용 배를 탔다. 다른 배들에는 독일인들이 십수 명씩 탔는데, 우리가 탄 배에는 우리 둘에 우리 둘을 맡을 두 명의 스쿠버들만 탔다. (거기다 배 선장까지) 아무래도 내가 수영도 전혀 못하고 완전 초보인데다 눈까지 안 보인다고 하니 요주의 인물로 파악하고 특별 대우를 한 것 같았다. 내 담당은 이라는 이름의 독일인 남자 스쿠버였다. (나의 구세주.)

 

나는 스쿠버 다이빙이라면 얕은 물에서 훈련도 좀 하고 보낼 줄 알았는데 여기는 인생은 실전이야를 외치듯 그냥 바로 물로 들여보냈다. 배를 타고 홍해 바다로 가는 동안 나는 살려주세요’ ‘천국에서 만나요’ ‘엄마 아빠에게 사랑한다고 전해주세요등의 영어 표현을 연습했다. (나중에 이 이야기를 들은 독일인 스쿠버들은 빵 터졌다.)


(가즈아! 홍해 바다로!) 


짝이 먼저 여성 스쿠버의 도움을 받아 입수했고, 그 다음이 내 차례였다. 다이빙 장비를 모두 갖추자 몸이 매우 무거웠다. 몸에 꽉 끼는 스쿠버 복에(전문가인 스쿠버들은 수영복만 입었다.) 산소통을 메고, 물안경을 끼고 다리에는 오리발. 그리고 물에 들어갈 수 있도록 허리에는 무거운 벨트(돌 같은 게 들어간?)를 착용했다. 그리고 물로 뛰어들었다.

 

긴장한 나머지 물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실수를 했다. 스쿠버 강사가 분명 입에 산소호흡장치를 물고 입으로 숨을 쉬라고 했는데, 까먹고 그냥 물에 들어가 버린 것이다. 덕분에 입수하면서부터 물을 다 먹었다. 코로까지 물이 들어와서 켁켁 거렸다. 거기다 뇌가 수영을 못한다는 사실을 자각했는지 허우적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톰이 전문가답게 날 안정시키고 다시 호흡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스킨스쿠버 다이빙 장비들.) 


그렇게 한참을 켁켁거리고 코에 들어간 물까지 빼내자 그냥 올라갈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힘겹게 몸에 끼도록 입은 옷이 아까워서 들어가 보기로 결심했다. 입으로 하는 호흡에 적응했다 싶을 때 내가 톰에게 이제 괜찮다고 했고 톰과 함께 바다로 진입했다.

 

그렇게 바다 밑으로 입수하기 시작했다. 목숨줄처럼 잡고 있던 배의 밧줄에서 손을 떼고 오리발로 허우적대며 바다 속을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조금 더 가다 문제가 생겼다. 허우적대다가 그랬는지 원래 사이즈가 잘 안 맞았는지 코와 눈을 덮고 있던 물안경이 살짝 벗겨진 것이다. 코로 물이 들어가자 나는 또 다시 허우적댔다. 설상가상으로 허리에 차고 있던 벨트도 벗겨졌다.

 

톰은 전문가답게 내 벨트를 다시 차주었고, 물 위로 올라와서 순식간에 자신이 끼고 있던 물안경과 내 물안경을 바꿔치기했다. (톰도 나 못지않게 머리가 컸던 모양이다.) 톰이 힘들면 그냥 돌아가겠냐고 물어보았으나 나는 톰이 열심히 바꿔치기 한 물안경이 아까워 들어가겠다고 했다.

 

그래서 우여곡절 끝에 다시 바다 속에 입수했다. 이번에는 주인을 살리기 위해 몸이 열심히 배운 대로 호흡을 했다. 그 때서야 주위의 물고기들과 산호초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바다는 매우 아름다웠다. 바다 속에 들어가자 내 안 좋은 눈이 탁 트이는 느낌이었다. 아주 세밀하게 보이진 않았지만 움직이는 물고기들이 손에 잡힐 듯이 움직였다. 홍해바다는 예뻤다. 사진을 남기지 못하고 내 눈에만 간직해서 아쉬울 정도였다.

 

잠수 중에 한 가지 삽질을 또 저질렀다. 톰이 물에 들어가기 전 힘들어서 위로 올라가고 싶으면 엄지손가락을 펼쳐 따봉을 하라고 했다. 근데 난 이걸 잊어버리고 물 속 풍경이 예쁘다고 연신 따봉을 해댔다. 톰이 올라가자는 뜻인 줄 알고 올라가려 할 때마다 내가 실수했다는 걸 깨닫고 다시 오케이 신호를 주어야만 했다.

 

그렇게 30분을 바다 속에 있다가 물 밖으로 나왔다. 밖에 나오려니 몸이 천근만근처럼 무거웠다. 물 위에 올라와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홍해바다 풍경이 더 아름다워 보였다. 톰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전하고 배를 타고 다시 육지로 돌아왔다.

 

우리가 지불한 금액은 111달러였다. 날 살려준 톰을 생각하면 비싼 비용은 아니었다. 물도 많이 먹었지만 한 번 해보고 나니 다음에 한 번 또 해보고 싶은 스킨스쿠버 다이빙이었다. 다음에 하면 더 잘할 것 같다.

 

숙소로 돌아와 씻고 12시에 맞춰 호텔 체크아웃을 했다. 나가는 길에 방에 팁으로 원달러를 놓고 나갔다. 이어서 우버 택시를 타고 미리 찾아놓은 음식점으로 향했다. 10분 거리였는데 25파운드가 나왔다. (이걸 보고 택시비 75파운드를 받았던 레게머리가 우리한테 사기를 쳤음을 확신했다. - 4편 참조)

 

점심을 먹기 위해 간 곳은 해산물 전문 레스토랑인 엘 미나(El Mina) 레스토랑. 세트메뉴 같은 게 있어서 하나 시키고, 추가로 파스타를 하나 더 시켰다. 세트 메뉴에는 이집트식 빵에 각종 해산물 튀김, 게 스프(?)랑 해산물 볶음밥까지 나와서 맛있게 먹었다.


(존맛이었던 해산물 요리들.)

 

이제 룩소르로 가는 3시반 버스를 타기 위해 후르가다 go bus를 찾아갔다. (이집트에선 버스터미널을 ‘go bus’라고 부른다.) 역시 우버 택시를 불러서 갔는데, 택시 기사가 버스터미널 앞에 있는 경찰차를 보더니 죄송하지만 반대편에 내려드릴 테니 걸어가세요. 경찰이 있어서요.’라며 내려줬다. 여기서는 우버가 뭔가 합법적인 게 아닌가보다. 아니면 그 택시기사가 수배자일수도.

 

버스표를 전날 홈페이지에서 미리 예매해놓았기에 수월하게 표를 받을 수 있었다. 후르가다 버스역에 대한 안 좋은 내용의 블로그 글들을 많이 보았는데, 개선이 많이 된 것 같았다. 에어컨이 없어서 매우 덥다는 글을 봤는데 에어컨이 잘 나왔다. 자기 자리를 찾아가면 이집션들이 먼저 앉은 다음 자기 자리라고 우기면서 안 비킨다는 내용의 글도 봤는데, 그렇지 않았다. 지정석이 있고 버스기사가 앞에서 체크하면서 사람들을 들여보내기 때문에 그럴 일은 없었다.

 

버스도 편하고 좋았다. 앞자리에 앉은 중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 둘이 의자를 뒤로 젖힌 채로 방방 뛰었던 걸 빼면. 네 번 정도 정중히 "뒤에 앉은 입장에서 불편하니까 조금 조용히 가달라"고 말했으나 말을 듣질 않았다. 내가 앞자리 의자를 주먹으로 한 번 내리친 이후에 편하게 갈 수 있었다. (나는 조심해(be careful)라고 말했다. ‘의자를 뒤로 젖히는 걸 조심해라는 뜻이었다. 그 소년들이 니들 몸 조심해라고 이해하지 않았길 바란다.)

 

룩소르 가는 길은 총 5시간~6시간 정도 걸렸다. 3시 반에 출발해서 룩소르 도착하니 9시 쯤 되었다. 사막 한가운데 있는 도로를 지나기 때문에 버스 타고 가는 길에 사막을 볼 수 있다. 특히 사막의 해지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버스 창문으로 보인 사막 풍경) 


사막을 지나다보니 이제 도시에서 시골로 접어든 것 같았다. 카이로나 후르가다에선 서양식 옷이 많이 보였는데, 룩소르에 가까워질수록 이집트 전통의상이 더 눈에 많이 띠기 시작했다. 실제로 이집트 남부로 갈수록 종교적으로 엄격하다고 한다.

 

대여섯 시간 달리는 동안 휴게소는 딱 한 번 들렀다. 후르가다 버스터미널에서 작은 물 1병이랑 콜라 작은 거 1병씩 사가지고 차에 탔는데, 목이 너무 말라서 물을 더 샀어야 했는데 라고 후회했다. 휴게소에서 물을 사려고 보니 작은 병 하나에 20파운드였다. (원래는 4~5파운드.) 너무 바가지 같아서 물을 집어들었다가 내려놓았다. (그리고 룩소르까지 가는 내내 너무 목이 말라서 그래도 살걸이라고 후회했다.)


(해지는 사막을 본 건 정말 행운이다.)

 

6시간 정도를 달려 드디어 룩소르 go bus에 도착했다. 룩소르는, 진정한 삐기의 왕국이었다. 카이로는 전초전에 불과했다. 내리기도 전부터 버스 문 앞에 삐기들이 얼굴을 들이대며 기다리고 있었다. 택시 타라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호텔이 버스터미널에서 걸어서 10분 거리라서, 택시 타라는 삐끼들을 무시하고 걸었다. 조금 걷다보니 택시가 아니라 말 탄 삐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룩소르에서만 보았던 말 택시였다. 말 택시와 일반 택시들이 서로 택시를 타라고 소리를 지르는 것을 무시하고 룩소르 숙소에 도착했다.

 

다음 편은 삐기와의 2차 대전이 벌어진 룩소르 1일차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