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조본좌 조본좌 2013.01.20 00:34

최근 나는 "곽노현 사건에 대한 소고 : 진보에게 도덕성은 무엇인가?"라는 글을 포스팅했다. 이 글은 내가 필진으로 참여하고 있는 한겨레 훅에도 올라갔다.(http://hook.hani.co.kr/archives/33012)

내 글의 요지는 한 마디로, 도덕성을 진보라는 정치세력의 무기로 삼기 전에 왜 현실에서 정치인들이 도덕성을 유지하지 못하는지 그 구조를 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정치개혁이나 혁명은 바로 각 개인들, 혹은 정치적 역할을 담당하는 각 개인들이 자신들의 신념체계나 도덕성을 유지할 수 있는 사회로의 변화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 글을 '그럼 진보가 도덕성을 버리란 말이냐'라는 말로 받아들이는 건 최악의 독해다. 이는 무수한 가능성을 둘 중 하나의 선택으로만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곽노현의 사퇴를 지지하느냐 마느냐의 차원에서 문제는 둘 중의 선택이지만, 우리는 '단기'를 살고 있지 않으며 잠정적으로 '장기'를 살고 있다는 의미에서, 개별적 정치사안을 넘어선 정치구조의 문제를 분명 이야기할 수 있다.

최원 님(@marxpino, 블로그 http://marxpino.tistory.com)이 이에 대해 흥미로운 코멘트를 주셨다. 최원 님은 나의 시사적인 글을 '개념화'해주신 셈이다. 내가 최원 님에 대해 알고 있는 건 뉴욕에서 철학 공부를 하고 있으며. 좌파이며, 발리바르에 관한 글을 쓰시거나 번역한다는 것 정도이다.


최원 Won Choi(marxpino) 약 2일 전 '도덕적 교화의 정치' 및 '정치적 도덕'과 대립하는 칸트의 '도덕적 정치'(정치를 도덕법과 화해가능하게 교정해가는)를 연상시키는 글 RT @jobonzwa: 곽노현 사건에 대한 소고 : 진보에게 도덕성은 무엇인가?
http://j.mp/r8ZbwA

도덕적 교화의 정치/정치적 도덕 그리고 이와 대립하는 칸트의 도덕적 정치의 의미가 무엇일까? 이에 대해 다시 묻자 최원 님이 다시 상세히 대답해주셨다.

최원 Won Choi(marxpino) 약 1일 전 @jobonzwa 도덕적 교화의 정치는 대중들에게 도덕을 설파하려는 것일테고(도덕 결벽증적 진보정치), 정치적 도덕은 정치적 필요에 따라 도덕을 유연화하는 것(일종의 실용주의).

최원 Won Choi(marxpino) 약 1일 전 @jobonzwa 도덕적 정치는 (도덕법을 따르는 것이 너무 어렵지 않도록) '세계를 변혁하라'는 칸트의 모토를 실현하기 위해 제도를 개조해나가는 것. ^^ 조본좌님의 입장이 앞의 둘을 비판하면서 칸트적 입장에 서신 듯하여 드린 말슴.

최원 Won Choi(marxpino) 약 1일 전 @jobonzwa 물론 이러한 사고가 가능하기 위한 조건은 칸트에게는 도덕이 일관된 하나의 체계로 규정가능하다는 점이겠지요. 그래서 도덕법의 목적론의 위험이 있습니다만, 여전히 요즘 등장했던 두 가지 편향에 대한 유효한 대안이 될 수는 있을 듯합니다.

정리하자면, 최원 님은 내 글을 도덕적 교화의 정치/도덕적 정치에 대한 대안으로써의 (칸트적 의미에서) 도덕적 정치의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셨다. 도덕적 교화의 정치와 도덕적 정치란 내가 글에서 지양하려고 했던, 곽노현 사건에 대한 두 가지 입장이었다. 조금 거칠게 구별하자면, 도덕적 교화의 정치란, 그래도 도덕성이 중요해! 라는 것이고, 도덕적 정치는 그러니까 도덕성을 버리자고!라는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이 두 가지를 모두 지양하고, 최원 님 말대로 도덕법을 따르는 것이 너무 어렵지 않도록 세계를 변혁하라는 입장에 서고자 했다. 이 입장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는, (이론적으로든 실천적으로든) 계속 고민할 생각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 입장이 '좌파적인 정치 기획'이라는 것에는, 이 입장의 구체화를 위해서는 자본주의와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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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조본좌 조본좌 2013.01.19 01:17

http://blog.aladin.co.kr/mramor/5916829

이주의 책을 골라놓는다. 새로 나온 책들을 여러 번 훑어보았지만 가닥을 잡을 수가 없어서 시간이 좀 걸렸다. 고심 끝에 최근에 나온 한국사회비평/칼럼 분야의 책들로 채우기로 했다. 타이틀이 좀 긴데 최장집 교수의 칼럼집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폴리테이아, 2012)에서 가져왔다. “노동의 시민권이 노사 관계와 정당 체제에서 취약해질 때 그것의 부정적 효과는 사회 전반의 공동체적 결속을 해체시키는 것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것, 노동이 배제되면 노동자만 배제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주요 이익 모두가 배제된다는 것,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바로 여기에 있다.” 두번째 책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당한 사건별 전담 변호사들의 증언을 묶은 <시민을 고소하는 나라>(스토리플래너, 2012)다. "이 책은 MB정부 5년 간 역사적 퇴행을 거듭한 표현의 자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책은 천안함 문자메시지, 조중동 광고불매운동, 국정원 손해배상청구소송, G20 쥐그림 포스터, 용산참사 대책위원회 기자회견,‘장자연리스트’, KBS 정연주 사장 해임 등 구체적인 사건의 전말에 대해 해당 사건을 담당한 변호사들의 증언으로 이뤄져 있다."

세번째 책은 조윤호의 <보수의 나라 대한민국>(오월의봄, 2012)다. 청년 논객으로 활동하고 있는 알라디너 조본좌님의 새책으로 부제가 '박근혜로 한국 사회 읽기'다. "어쩌다 우리는 이러한 현실에서 살게 된 것일까? 대체 무엇이 한국 사회를 보수가 지배하는 세상으로 만들었을까? 도대체 왜, 무슨 이유로 그들은 보수를 지지하고 동경하고 존경하는 것일까? 이러한 의문점에서 이 책은 출발한다." 그리고 나머지 두 권은 BBK 관련서들이다. 미국의 BBK 소송사건 담당 변호사인 메리 리의 <이명박과 에리카 김을 말한다>(진실, 2012)는 BBK 사건의 실체가 옵셔널 벤처스 코리아라는 금융 상장회사에서 벌어진 사기 사건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사건의 당사자로 현재 수감중인 김경준의 (비비케이북스, 2012)은 BBK 의혹 사건의 진실이 무엇인지를 밝힌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보수의 나라 대한민국

저자
조윤호 지음
출판사
오월의봄 | 2012-10-22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박근혜로 한국 사회 읽기『보수의 나라 대한민국』. 대한민국 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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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조본좌 조본좌 2013.01.19 01:16

http://blog.aladin.co.kr/mramor/5521180

'이주의 책'을 골라놓는다. 읽어볼 만한 책이 많아서 다소 학술적인 책과 교양과학서는 제외하고 다섯 권을 골랐다. 타이틀은 파커 파머의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글항아리, 2012). 시절이 시절인지라 눈에 확 띄는 제목인데 부제 '왜 민주주의에서 마음이 중요한가' 또한 그렇다. 민주주의는 제도가 아니라 마음이고 마음의 습관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정치제도, 지역사회와 결사체 그리고 인간의 마음이 지니는 강점과 약점 속에서 쉬지 않고 이뤄지는 실험이다. 그 성과는 결코 당연시될 수 없다. 우리가 그 실험실을 폭파시켜버리지 않는다면 민주주의의 실험은 끝없이 진행된다.” 4월 총선을 앞두고 국민적 토론거리로 삼아볼 만한 책이다.

장하준, 정승일, 이종태의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부키, 2012)는 이미 폭발적인 반응을 모으고 있는 책인데 역시나 '총선용' 필독서. 김상봉 교수의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꾸리에, 2012)는 조금 더 왼쪽의 시각에서 기업민주주의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대한민국 권력자들의 불편한 진실'을 까발린 안치용의 <시크릿 오브 코리아>(타커스, 2012)는 이제 비밀에 성역이 없다는 걸 알게 해준다(위키리크스의 폭로를 정리한 <그들은 아는, 우리만 모르는>과 같이 묶을 만하다). 그리고 조윤호(알라디너 '조본좌'님)의 <개념찬 청춘>(씨네21북스, 2012)은 '대한민국 20대'의 '정치적 주체' 선언 가운데 하나다. 20년 후 그들의 대한민국은 '다른 대한민국'이기를 기대한다...

 

 


개념찬 청춘

저자
조윤호 지음
출판사
씨네21북스 | 2012-03-23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원하는 것을 스스로 요구하는 정치적 주체『개념찬 청춘』. 광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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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조본좌 조본좌 2013.01.19 01:16

강남좌파 프리스티는 왜 명동 재개발 투쟁에 갔나

평범한 오덕후라고요?
아닙니다. 살아 숨 쉬고 움직이고 실천하는 진짜 오덕후, 프리스티입니다!


때는 2011년 여름. 서울 명동에는 철거민 투쟁 현장으로 유명한 '마리'를 지키는 한 마리 소덕(소녀시대 덕후(오타쿠))이 있다는 전설이 있었다. 마리를 비롯한 명동 재개발 구역에 출몰하는 건장한 철거 용역일까? 용역 알바들이 대체로 대학 등록금이나 생활비를 벌기 위해 나온 20대 청춘 사내들이라고 하니 이상한 일은 아니다. 카페 마리 앞에 진 치고 있었던 용역 아이들의 귀에 꽂혀 있는 이어폰에 가까이 가서 들어보니 '넌 재미 없어 매너 없어! Run Devil Devil Run Run' 이 들리고 있었다는 목격담이 들렸다. 그러니 전설의 소덕이 철거 용역이라고 해도 이상할 것 없는 것 아니겄'소'?

그러나 이번에 만난 명동 마리의 소덕은 그들과 대치했던 한 청년, 프리스티(김예찬, 25세). 소녀시대를 좋아하는 20대 청년들이 재개발 구역 세입자 보상 투쟁의 현장에서 적으로 조우해 서로 대치한 기묘한 현장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다. 특히 부족한 것 없이 자란 청담동 소덕-그는 소녀시대 옛 숙소 옆에 살며 그녀들을 종종 엿보곤 했다!-이 명동 재개발 구역의 ‘점령자’로 거듭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프리스티는 강제 철거로부터 세입자 권익을 지키고자 카페 마리로 모인 청(소)년들이 안고 있는 문제가 마리의 철거민 문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하는데…


강남좌파(?) 프리스티, 명동 카페 마리를 점령하다

-명동 재개발 현장에는 어떻게 가게 됐어요?

친구들에게 명동 카페 마리 재개발 소식을 들었어요. 마리 이전에도 홍대앞 두리반 칼국숫집에서 비슷한 투쟁이 있었어요. 두리반 세입자 보상 문제가 해결되고 나서 두리반에서 함께 투쟁하던 사람들이 명동 마리 투쟁에 함께하게 됐는데, 저도 그때 소식을 들었어요. 여기에도 두리반처럼 철거용역들이 언제 닥칠지 모른다는 내용을 트위터에서 봤고, 거기서 세입자 일을 자기 일처럼 관심 깊게 생각하는 친구들을 많이 알게 됐죠. 카페 마리에 가면 그렇게 알게 된 친구들을 볼 수 있었고요.

-원래 두리반이나 마리 같은 재개발 지역 세입자 권리 투쟁에 적극 참여하는 편이었어요?

두리반에는 한 번씩 왔다갔다하는 수준이었어요. 두리반에는 공연하거나 아니면 상근하는 식으로 자주 오는 친구들이 있으니까 저는 그냥 한 번씩 가는 수준이었죠. 그러다가 마리에서는 거의 살았어요. 명동 마리가 문제가 된 게 2011년 6월 중순부터 9월 초 협상이 타결되기까지 4개월 정도인데 저는 6월 말 잠시 농활에 다녀온 기간을 빼고는 거의 마리에 살았죠.

-명동 마리의 경험을 토대로 책을 쓰고 있다고 들었어요. 마리에서 대치했던 4개월 경험의 본질이 뭐라고 생각하나요?

언론에서 봤을 때는 그냥 투쟁이죠. 재개발 예정 상가의 세입자 보상 문제가 걸려있는 투쟁이요. 권리금 문제나 그런(재개발 추진 건설사 등이 부담하는 보상) 비용이 법적으로 보장되지 않으니까 농성하게 된 것이죠. 명동 3구역 세입자들은그런 입장이었던 것 같아요. 2, 4구역에도 같은 문제가 있었는데 3구역에서 먼저 공사가 시작돼 그쪽 중심으로 사람들이 몰렸어요.

-명동 마리라는 공간에 사회의 이목이나 언론 보도가 왜 집중됐을까요? 다른 여러 재개발 지역에서도 보상과 관련한 세입자 투쟁이 벌어진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렇죠. 지금도 서울 북아현동에서 비슷한 이유로 철거민들이 농성하고 있어요. 사실 전국 어디를 가봐도 재개발을 하지 않는 데가 없잖아요. 똑같이 어려운 싸움을 하고 있는데 마리가 다른 곳과 비교해 특별한 곳이 된 까닭은 (참여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사람들이 많이 몰리고 이슈로 부각되니까 언론 주목도가 높았죠. 명동이 지리적으로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이라서 더 많이 참여했을 수도 있고요. 직전에 두리반 투쟁이 있었기 때문에 (두리반에 대한 관심이 이어져서) 마리에 투쟁역량이 집결됐다는 분석도 가능하겠죠. 한편으로는 트위터 같은 SNS의 역할이 컸다고 봐요.

SNS, 명동마리, 그리고 두리반

-트위터와 같은 SNS가 마리를 더 주목받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트위터가 이런 소식을 전하는 공간으로 적당하잖아요. 2011년 초에는 트위터에서 홍대청소 노동자 문제가 많이 얘기됐고, 그 이후에는 한진중공업, 희망버스가 중요 화제였죠. 그해 여름에는 한진중공업 문제와 더불어 카페 마리 투쟁이 트위터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였고요. 그때 많은 트위터러가 마리나 한진중공업에 가 있었기 때문에 이슈가 더 빨리 확산했다고 봐요. 그렇게 해서 카페 마리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그곳에서 거의 생활하다시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는데, 생활 자체를 SNS를 통해 지속할 수 있었어요. 쌀이나 여러 가지 필요한 물품 목록을 SNS에 올리면 시민들이 해당 물품을 자발적으로 마리로 보내주거나, 후원금을 보내줬어요.

마리 농성장에서 사람들이 누워 전화기를 만지며 놀고 있다. 마리에 오면 바로 옆 사람과 자신도 모르게 스마트폰을 통해 트위터로 대화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고. 실제로 연대에 참여한 사람들 대부분이 트위터 사용자였다는 후문.



-두리반이 먼저 있었기 때문에 이후 명동 마리 문제에 사람들이 더 주목할 수 있었다고 했는데요. 그렇다면 명동 마리 투쟁을 두리반의 연속 선상에서 파악할 수 있겠네요?

그렇죠. 일단 두리반에서 이긴 경험이 마리 철거민들에게 환영을 받았으니까요. 트위터나 SNS를 통해 모이게 된 시민과 연대해서 두리반처럼 잘 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을 거고요. 두리반에서 싸우던 사람 중 여럿이 두리반 협상 타결 이후 마리로 옮겨왔어요. 마리로 온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그곳을 자율적으로, 주체적으로 연대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조직운동권 밖의 사람들이 와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연대했던 공간이라는 측면에서 두리반과마리는 같은 투쟁 양상의 기원이라고 볼 수 있어요. 하지만 두리반보다 마리가 더 자율적인 분위기를 추구한다든가 그런 면에서 다른 점이 있었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두리반과 마리가 비슷하지만 다르다?

마리에서도 공연이 열리고 여러 가지 기획이 진행됐지만 그게 두리반에서처럼 정기적으로 ‘월요일은 무슨 공연, 화요일은 무슨 공연’ 이런 식으로 정해져 있지는 않았어요. 대신 마리는 외부 사람들이 와서 며칠 하고 싶어하면 공간을 빌려주는 방식이었어요. 두리반에 온 사람들이 문화나 문예 쪽, 그러니까 음악이나 다큐멘터리, 미술 같은 쪽으로 강한 성향을 띠고 모였다면 마리(에 사람들이 참여하는 방식)에서는 ‘생활’ 측면이 강했던 것 같아요.

-그렇다면 단순히‘기성 운동권 집결지’라고 보는 건 틀린 분석이겠네요?

기성 운동권이 하던 방식과는 다르죠. 일단 SNS를 통해서 온 비조직 개인들이 많이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사실 조직운동은 마리에서 결합하기가 어려워요. 자기들 (활동의) 싸이클이 있으니까요. 여름에는 농촌봉사활동에 가고 포럼 같은 것을 하고 그런 식으로 학생회와 연계해서 하는 흐름이 있기 때문에 마리에 일상적으로 결합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죠. 물론 마리에서 캠프를 하면서 참여했던 대학생사람연대(대사연) 같은 대학생 조직도 있었지만 대사연은 조금 특수한 사례로 파악돼요. 대사연이 학생회 기반으로 활동하기는 하지만 조금 더 자유스러운 배경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봤거든요. 그러다 보니 마리에서는 보통 다른 농성장에서 조직들이 강한 힘을 행사한 것과 다른 양상이 펼쳐졌죠. 운동권 조직이나 진보 정당이라던가 그런 사람들이 주도하는 투쟁을 거부하고 자율적인 개인들이 모여서 연대해 보자는 분위기가 마리에 있었죠.

-조직운동권도 아닌 일반 시민, 특히 청소년이나 20대 청년들, 대학생들이 마리와 같은 세입자 투쟁 현장에 가서 투쟁에 참여했던 이유가 뭘까요?

마리에서 같이 활동했던 친구들을 보면 10대, 20대가 많았는데 그들에게는 ‘공간’을 향한 투쟁이라는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철거민들을 위한 투쟁이라는 의미만큼이나 그런 성격이 강했다고 보거든요. 보통 생각하는 철거민 투쟁의 양상과는 조금 달랐다는 거죠. 흔히 언론에서 보도하듯 문화 기획이나 연대가 많이 이뤄졌다는 것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거기에 모였던 (젊은) 사람들에게 마리라는 공간, 또는 두리반이라는 공간은 공간을 얻어내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존재했던 것이죠. 저에게도 그런 의미가 있었고요.

마리가 세입자들의 공간을 넘어서 ‘우리’의 공간이 되기까지

-세입자를 도와주러 온 사람들이 마리를 자신들의 공간이라고 느꼈다는 거네요. 용역이 급습해서 불시에 철거를 진행하지 못하도록 주간반, 야간반으로 나눠서 생활했나요?

아니요. 나누지 않고 그냥 가고 싶을 때 가죠. 거기에 상주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저와 같은 대학생이나 20대가 많이 왔고요. 특히 청소년들이 많이 살았어요. 탈가정 청소년들, 흔히 말하는 가출 청소년들이 적잖게 있었죠. 가면 알아서 밥을 먹고 마리를 비롯해서 상가 건물에 흩어져 있으면서 같이 생활했어요.

-밥은 누가 해요?

밥을 사올 때가 있지만, 보통은 세입자들이 했어요. 통상 여성 세입자들이 밥을 짓는 현상을 두고 그게 옳으냐 그르냐하는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죠. 어쨌든 그렇게 밥이 제공되면 각자 알아서 먹고 알아서 설거지를 해요. 가위바위보를 하든지, 하여간 알아서 하죠. 수요일마다 바로 옆에 있는 향린교회에서 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과 같은 정해진 프로그램이 없으면 그냥 알아서 놀아요. 원래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어요. 만화책을 볼 사람은 보고 그렇게 노는 거예요.

-연대했던 사람들이나 세입자가 같이 생활하는 데 드는 비용은 어떻게 마련해요?

기금 같은 것을 사회단체들에서 주기도 하는데 대부분 트위터로 조달해요. 트위터에다가 지금 마리에 쌀이 부족하다고 하면 다음날에 쌀이 와요. 물이 부족하다고 하면 다음날에 생수가 몇 통씩 와요. 지금은 그런 모습을 종종 목격할 수 있지만 그때만 해도 그 모습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어요.

2011년 7월 트위터에 올라온 명동 카페 마리 후원 요청 트윗



-마리 생활 자금이 후원 계좌로 이체된 게 아니라 SNS를 통해 현물로 배달됐다는 거죠?

현물로도 배달되고 계좌로도 들어왔죠. 세입자대책위 위원장 계좌로 후원 자금을 받았어요. 그런데 사실 돈 쓸 일이 별로 없는 거예요. 왜냐면 (SNS를 통해 알려져서) 김치가 들어오고 쌀이 들어오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음료수나 술, 과자 같은 것을 사오고, 굉장히 물품이 많이 들어왔거든요. 마리 상황이 끝난 다음에 보니 쌀이 굉장히 많이 남았더라고요.

-SNS를 통해서, 또는 지나가던 시민이 도와주고 그러면서 주로 갈 곳 없는 탈가정 청소년이나 사회 문제에 관심 많은 적극적인 20대 청년들이 마리에서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었던 거네요. 의사결정도 다 같이 참여해서 하는 식이었나요?

회의체가 있었는데 세입자들은 세입자들끼리 세입자대책위에서 논의하는 게 있었고, 주로 10대, 20대 참여자들이 결성했던 명동해방전선은 거기에 있는 사람들끼리 활동 방향을 논의하고 그랬어요. 일주일에 한 번은 세입자들과 다 같이 총회를 하자는 의견이 있어서 일이 있고 필요할 때 비정기적으로 총회를 소집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그것도 자율적인 참석이었고 세입자들도 몇 명만 왔어요. 주로 그냥 앞으로 어떤 걸 하자고 이야기하면서 활동의 항상성, 동심력을 얻기 위한 것이었죠. 결국, 그냥 자기가 열심히 활동하고 싶으면 (회의 참석 등) 활동하는 거고 그렇지 않고 놀러 오고 싶다면 놀러 와도 되는 거였죠. 어떻게 활동해야 한다는 강요는 없었어요.

-세입자들은 ‘외부 세력’이 와서 공간을 차지하면서 회의에서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이야기하는 것을 달갑지 않아 하지는 않았나요?

그렇지는 않았어요. 좋아하건 좋아하지 않건, 연대한 사람들의 주장에 거의 따르는 편이었어요. 우선 이해관계가 일치한데다, 사실 이 친구들이 빠지면 (철거민들 자체적으로는) 도저히 싸울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요. 예를 들어 같이 생활했던 사람들이 모여서 공간을 다시 배분하자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어요. 마리가 다른 재개발 지역 보상 투쟁과는 다르게 (사람들이 부담 없이 왔다갔다하거나 참여하거나 하는 그런) 자율적인 성향이 있다 보니까 그 공간을 우리가 더 잘 사용하려면 어떻게 할지 논의하고 그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세입자들이 같이 생활하는 공간인데 거기에 와서 연대하고 참여하는 사람들이 공간 배분을 다시 하자고 했다고요?

그게 다른 투쟁현장과는 다른 점이었던 것 같아요. 왜냐면 보통 그런 데에는 연대하러 가는 것이지 자신의 공간이라고 느끼지는 않잖아요. 그런데 마리에 온 사람들은 스스로 청소하고 꾸미고 세미나도 하고 그러면서 그 공간을 자율적인 공동체 같은 것으로 느꼈던 것 같아요. 마리가 있는 건물 1층에 세 개의 공간이 나뉘어 있었는데 그 중 한 군데를 세미나 공간으로 정해 같이 공부하고 회의하는 데 쓰자는 의견이 나왔죠. 카페 마리 오른쪽은 토속마을이라는 순대국밥집인데 거기도 사람들이 점령해서 생활하고 있었거든요.

-쫓겨날 처지의 세입자들 공간에서 그 공간을 지키는 것뿐만 아니라 같이 놀고 먹고 공부하고 잘 수 있는 일종의 공동체 공간을 만들어 나가려고 했던 거네요.

그래서 토속마을에 책을 많이 갖다 두고 세미나 공간으로 쓰자고 하면서 토속마을이라는 위원회를 만들었어요. 거기서 사람들이 자고 자꾸 무질서하게 되니까 토속위원회를 자율적으로 만들어서 그 공간을 새로 꾸미고 그랬죠.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자기네들이 만들고 싶다고 해서 엄청나게 열심히 청소하고 그랬어요. (마리 투쟁에 참여한 10대, 20대에게) 공간이 있다는 것 자체가 주는 매력이 많이 있었던 것 같아요.

-꼭 재개발 지역 세입자 보상 문제에 관심이 없었더라도 마리에 와서 사람들을 만나고 관심 있는 활동을 자유롭게 해 볼 수 있는 그런 공간이었다고 볼 수 있겠네요.

누구나 먼저 이야기만 해두면 공간을 사용할 수 있었으니까요. 슬럿워크도 준비를 마리에서 했었고요. 음악 공연, 디자인 관련 세미나 등 여러 가지 기획이 마리에서 많이 이뤄졌어요.

슬럿워크 기획회의를 취재하러 마리를 방문한 한 기자(@pudXXXXX)의 트윗. 2011.8.



 

[좌] 카페 마리 옆 토속마을 순대국밥집에서 열렸던 즉흥극 워크숍. 마리에 있던 학생들과 세입자, 워크샵 주최 측이 함께 어울린 시간. 2011. 7. [우]대안생리대 쓰기 운동을 하는 한 시민단체가 카페 마리에서 했던 워크숍. 2011. 7. 출처 : 명동해방전선



경축! 카페 마리와 명동3구역 협상 타결!
그런데우리는… “갈 곳을 잃어버렸어요! ㅠㅠ”


-3구역 보상 협상이 타결되고 나서는 마리에서 연대했던 사람들이 다 헤어졌나요?

다른 투쟁 장소로 가기도 했지만, 그냥 떠돌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봐요. 사실 마리 (협상이) 타결되고 나서 사람들이 자기들을 일컬어 “내가 철거민이 돼버렸다. 있을 곳을 잃어버렸다.” 이런 말을 많이 했어요. 4개월여의 투쟁이 어쨌든 시행사와 합의를 통해서 나름 성공적으로 끝났으니 당연히 좋긴 좋았죠. 사실 그때 승리해서 좋다는 그런 것보다는 있을 곳을 잃어버렸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물론 그게 승리였느냐 아니냐가 애매하긴 하죠. 적절한 보상을 받는 것이 중요한 사람이 있지만, 재개발 자체에 반대하는 뜻으로 참여한 사람들도 있었으니까요.

-마리가 있는 명동 3구역 협상이 종료되고 나서도 사람들이 그 근처를 떠돌았다고요?

그런 사람들을 많이 봤어요. 마리 일이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시내와 별로 상관없던 사람들이 그 근처를 왔다갔다하는 게 보여요. 지나가다 보면 다 있어요. 항상 망령처럼 을지로, 종로 일대를 막 헤매고 있어요. 그러다가 시청 광장이라든가 대한문 앞, 그 근처에 있던 재능교육 농성장이라든가 그런 곳에서 종종 마주치죠. 별다른 (집회 같은) 게 없어도 그 인근 장소를 그냥 사람들이 떠도는 거예요. (웃음)

이 대목에서 필자는 대학생 시절을 떠올렸다. 필자는 대학에 다닐 때 대학연합철학학회에서 활동한 적이 있다. 특정 학교 소속이 아니어서 학내 동아리방을 구하기 어려워 학회비를 근근이 모아 저렴한 월세방을 구했다. 학회 방은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의 쓰러져 가는 건물 2층에 있었는데, 학회 방에 가기 위해선 경사각이 45도는 족히 넘을 정도로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굽이굽이 골목길에 있는 학회 방은 늦은 시간 여학우들이 홀로 다니기 부담스러운 위치에 자리 잡고 있었지만, 대학생의 주머니 사정에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학회원들끼리 함께 공부할 수 있고, 심심할 때 그냥 놀러 갈 수 있는 '우리들만의 공간'이었다. 하지만 이조차 오래 버티지 못하고 필자와 동료는 강의실이나 유료 세미나실을 빌리는 떠돌이 생활로 돌아가게 됐다.

-자신들만의 공간이 사라졌다는 것은 이런 느낌일까요? 예를 들면 중고등학생 때만 해도 수업을 듣는 공간과 생활 공간이 일치한다고 볼 수 있죠. 하지만 대학생이 되고 나면 강의시간의 강의실과 도서관열람실 외에는 갈 데가 없잖아요. 친구들 만나서 수다를 떨고 싶어도, 같이 놀고 싶어도 돈 없으면 할 수 없죠. 공간이 없는 학생들이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 커피숍이고, 그래서 시험기간에 대학 근처 카페가 만석이라는 기사가 나오죠. 마찬가지로 많은 20대 청년들에게는 카페 마리에서 투쟁도 투쟁이지만, 대학 내에서 구할 수 없었던 '공간'이라는 의미가 중요하게 다가온 것이 아닐까요.

그런 측면이 크다고 생각해요. 마리에 온 사람들이 보통 10대, 20대이고 마리에 그냥 놀러 가는 경우도 많았거든요. 대학생이건 10대건 기본적으로 독립적으로 활동할 만한 공간이 좀처럼 없잖아요. 예를 들어 대학생에게는 같이 부대끼고 놀면서 뭔가 기획하고 그럴만한 공간으로 과방 같은 곳이 있다고는 해도 군대에 다녀오고 고학번이 되면 과방에 가기가 뻘쭘해지는 게 현실이죠. 어쨌든 기를 펴고 살만한 독립된 공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잘 안 되는 거죠. 이제는 마리 같은 공간을 만들 수도 없고...

-청년 문제의 한 축으로 ‘공간’이라는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겠네요.

제가 군대에 있을 때부터 청년 운동을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특히 ‘공간’이 없다는 점이 청년 운동이 다뤄야 할 중요한 문제라고 봤어요. 청년 운동이 무엇이냐고 할 때 보통 등록금 문제나 실업 얘기 같은 것들을 하잖아요. 그런데 (청년들의) 문화 문제도 심각하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청년 문화라는 게 없다는 판단이 들었어요. 그런 문화는 공간에서 나오는 거거든요. 공간을 제공해야 문화가 생기는 거고 확산이 되는 거니까요.

-청년들에게 공간이 없다는 건 카페 마리처럼 놀면서도 관심사를 공유하거나 뭔가를 같이 기획해 본다거나 그런 공동체를 꾸릴만한 곳이 없다는 건가요?

그런 것뿐 아니라 그냥 노는 공간도 부족하다는 거죠. 사실 20대들이 친구들을 만나도 가는 곳이라는 게 카페나 노래방, PC방, 이런 데잖아요. 술 마시거나 그런 식으로 소비하면서 노는 거죠. 그런데 그런 건 사실 질리잖아요. 재미가 없을뿐더러 얼마나 주체적이지 못해요. 맨날 하는 것도 똑같고요. 그래서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저는 제대하고 나서 그런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친구들과 ‘우리가 부모의 개입이 없는 우리의 집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공동생활전선이라는 것을 만들었어요. 우리가 모여서 같이 학습하고 생활하고 이야기하면서 치열하게 서로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의미로요.

“청년들에게 공간을!”
강남좌파(?) 프리스티, 독립된 공간을 위해 가출하다
- 공동생활전선 실험


청담동 도련님 프쨩



-‘공동생활전선’이라는 게 독립된 공간에서 같이 학습하고 생활하는 공동체를 만들려고 시도한 것이라고 했는데요. 그래서 지금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구해서 집에서 나와서 사는 거예요?

따로 나와서 산 지 아직 2년이 안 됐어요. 2010년 8월에 집을 나왔거든요. 군대에 있을 때 구상해서 처음에 열 명 정도가 모였어요. 보증금을 십시일반으로 같이 마련했고 그중에서 실제로 거기에서 주거하는 사람들이 월세를 내는 거죠. 그러면서 같이 세미나 공간으로 쓰고 그랬어요. 멤버는 한두 명 정도 바뀌었어요. 같이 사는 사람은 지금 네 명이고요. 주로 같은 대학이나 가까운 대학에 다니는 친구들이고 대학원 준비하는 친구도 있었어요.

-같이 살면서 어떤 공부를 하는 거예요?

여러 가지를 했어요. 자신이 관심 있는 영역이 정치경제학이면 정치경제학 강의를 해주고, 저는 동아시아 역사에 관심이 있어서 동아시아 세미나를 했고요. 공통의 세미나로 마르크스를 했어요. 각자 관심 있는 분야를 따로따로 정해서 공동생활전선 열 명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같이 세미나를 진행하고 그러다가 공통 세미나가 어렵다는 의견이 있어서 1주일이나 2주일에 한 번 정도 모여서 각자 글을 쓰고, 그 글을 두고 논의하고 서로의 관심 분야에 관해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죠.

-지금은 안 하고요?

2011년까지는 그렇게 했어요. 그러다가 구성원들이 각자 하는 일들이 너무 달라졌고 대학원을 준비하던 친구 중에 대학원에 간 친구가 있고, 논쟁이 있고 싸우기도 하고 그래서 애매해졌어요.

-돈을 나눠내서 잠만 같이 자는 게 아니라 같이 공부하고 같이 성장할만한 활동을 생활 속에서 규칙을 정해서 추진한 거네요. 체력을 같이 단련한다거나 그런 것도 있었나요? 구보라든지…

새벽에 일어나서 구보하자는 얘기가 있었는데 그렇게는 못했고요. 체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같이 운동하자고 한 건데 잘 안 됐죠. (웃음)

-군대식 무장투쟁조직을 만들려고 한 건가요? 공동생활전선이라는 게 알고 보니 영화 <넘버 3>에 나오는 것과 유사한 좌파 무장투쟁조직?! (웃음)

처음에 (공동생활전선에 대해) 논의한 게 군대에 있을 때라서 그런 얘기가 나왔던 거예요. 그때 논의했던 사람들이 완전히 학생 정치조직에 몸담은 사람들이 아니어서 학생 정치조직 식으로 하는 것은 어려웠고요. 그래도 기본적으로는 우리가 어느 정도 이론적으로 공부하고 토론하고 글을 써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있었죠. 군대처럼 우리에게 규율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도 많이 했는데 결국 그렇게는 안됐죠. (웃음)

<쉬어가며 - 공동생활전선에 대한 짧은 소개>

시도 초기의 프리스티 글 발췌(2010. 1. 26)

Q: 왜 꼭 지금 가출해야 하나? 사실 가출해서, 일해서 돈 벌며 공부한다는 것은 시간적인 측면에서 큰 낭비 아닌가? 차라리 일단 자신이 집에서 보조받을 수 있는 환경에 있다면 자신이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을 때까지 열심히 공부하고, 그 후에 가출한다 해도 상관없는 문제 아닌가?

A: 집에서 돈을 받으며 공부한다는 것은 어쨌든 부모에게 빚지는 것이다. 그 빚은 어떤 형태로든 나중에 갚아야 한다. 아니, 부모·자식 관계가 일반적인 채무관계와 어떻게 같느냐고? 생각해 보라. 어쨌든 아무리 훌륭한 부모라도 나중에 자식의 (경제적) 성공을 바라기 마련이다. 그것은 자식이 부족함 없는 삶을 살기 원하는 마음이 물론 크겠지만, 어느 정도는 경제적, 혹은 심적인 '부양'을 염두에 둔 것이기도 하다. 전혀 경제적 부양을 바라지 않는 부모더라도, 자식으로서도 내가 '빚'을 지고 있다는 마음 자체가 하나의 부담이다.

경제적 성공과 상관없이, 사회를 위해서건 자신이 원하는 꿈을 위해서건 사랑을 위해서건 어쨌든 뭔가 하기 위해서는 젊은 나이일수록 오히려 부모에게서 '독립'해야 한다. 부모에게 빚진 상태로는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고, 나아갈 수 없다.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부모의 자식에 대한 경제적인, 혹은 사회적 지위에 대한 기대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미 '자신의 인생'이 아니다. 부모의 기대를 채우기 위한 인생이지.

Q: 공동생활이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개인 공간이 없으므로 사생활을 침해할 수밖에 없는데, 이런 상황에서 오랫동안 아무런 마찰 없이 살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해 '대의'라는 목적과 '규율'을 제시했는데, 만약 시작할 때는 다들 열의에 충만한 상태라 별문제가 없어 보일지라도 누군가 모임을 빠지거나 지각하기 시작하면 그 문제는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A: 맨 처음부터 지속적인 규율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일정 시간 단위로 자율적인 규율 정하기가 있을 것이다. 그 단위는 한 달이 될 수 있겠고, 한 주가 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함께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 서로가 가진 책임감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기독교인들이 잠을 이겨내며 새벽기도에 나오는 정도의, 그 정도의 책임감은 적어도 갖추고 있어야 함께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반대로, 그 정도의 책임감이 있다면 누구나 같이할 수 있을 정도의 규율이 될 것이다.

Q: 공동생활 전선에서 '실천'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호한 것 같다. 공부하겠다는 것은 이해가 되어도, 정치적 실천이라면 뭘 말하는 건가?

A: 실천이라면 소소한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공동생활전선의 아지트는 분명 학교 근처에 차려질 것이다. 그렇다면 분명 그 근방의 거주민들은 대부분 학생일터, 이들을 대상으로 한 사업을 펼쳐나가야 하지 않을까. 예컨대 일정 기간마다 한 번씩 주위에 사는 학생들을 초대해 영화를 보고 토론회를 한다든지, 주위의 하숙/자취생들을 모아 자발적으로 골목길을 쓸고, 제설작업을 해나간다든지 하는 소소한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또 공동생활전선의 이름을 내걸고 집회에 참석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이외에도 공동생활 자금을 모으기 위한 알바 방안, 따로 또 같이 공부하고자 하는 분야, 공동생활 중에 지켜야 할 연애의 원칙, 기상과 취침, 세미나와 강독 시간 등을 정해놓은 공동 시간표 등에 대한 방향이 글에 담겨 있었다. 현재 프리스티는 다른 3명과 함께 살며 생활학습연대조직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대체로 20대 논객이나 저술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친구들이다. 선거의 해 2012년에<개념찬 청춘-원하는 것을 스스로 요구하는 정치적 주체>라는 책을 낸 정치학도 조본좌(필명) 씨나 <부르주아를 위한 인문학은 없다>를 쓰고 인터넷논객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박가분 씨 등이 그의 룸메이트.



불온한 군인들의 암중모색?

-군대에 있으면서 어떻게 군인들끼리 모여서 공동생활전선을 같이 구상할 수 있었나요?

공군으로 복무할 때 인트라넷 커뮤니티 ‘책마을’이라는 것을 만들었는데 거기에서 얘기하면서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결의를 맺었죠. 육해공군이 다 들어오는 곳이었고 기본적으로는 독후감을 쓰는 곳이었어요. 그러다가 갈수록 일상적인 얘기를 많이 하게 되고 정치적인 주장을 하고 그런 분위기가 됐죠. 자체적으로 백일장 같은 것을 열기도 했고요.

-군대 인트라넷에서 정치적인 얘기를 쓸 수 있었어요?

그러니까 그게 굉장히 비밀사이트였던 거죠. 공식적인 사이트가 아니라 무슨 부대 사이트 내에 만들어놓은 것이었어요. 육군 OOO이라는 부대가 있는데 거기 사이트 내에 그 부대 병사들 소모임처럼 만든 건데 그게 소문이 나면서 육해공군이 다 들어오게 됐던 거죠.

-원래 그런 군대 인트라넷 소모임들이 많이 있었나요?

처음에는 책마을 뿐 아니라 네 개 정도가 있었어요. 정보기술(IT) 정보를 공유하는 컴퓨터 덕후들이 모인 데가 하나. 자작 게임을 만들어서 올리고 그런 데였죠. 모든 게 한정된 군대에서 그런 걸 그냥 막 노가다로 만들어서 올리는 애들이 있는 거예요.

-군대에서 할 일이 없으니까? (웃음) 또 어떤 군대 내 소모임이 있었어요?

음악커뮤니티가 있었고 축구 커뮤니티도 있었죠. 축구 커뮤니티는 자기들끼리 엑셀을 가지고 리그를 하고 그랬죠. 서로의 능력치 같은 것을 정해 무슨 프로그램을 만든 뒤에 심판 역할을 하는 운영자가 한 명 있어서 두 팀이 붙으면 각 팀 선수를 여기저기 배치해서 변수들을 조합하는 거죠. 그래서 쭈르륵 (엑셀 프로그램을 돌려서 게임을) 해서 점수를 내고 그런 식으로 경기하는 거예요. 되게 신기했어요. 군대에서 그런 것을 만들어서 리그를 돌리고… (웃음)

-군대 내 소모임에서 만난 사람들이 공동생활전선을 하려고 만나기도 했나요? 군인들끼리 만나기는 어려웠을 것 같은데요.

그런데 실제로 모였어요. 되게 재미있는 경험이었던 게, 책마을 컴뮤니티 사람들이 한번 만나자고 그래서 휴가를 맞춰서 나가기로 했거든요. 사실 휴가를 맞춘다는 게 굉장히 어려운 일이잖아요. 근데 어떻게 그걸 또 맞췄어요. 처음에 경희대 회기 역 쪽에서 만났는데 조금 떨렸죠. (웃음)

-군인들이 휴가나와서 여자친구를 만난 게 아니라 군인들끼리 만났다고요?!

하고 싶은 게 많았으니까요. 인트라넷으로만 글 올리고 얘기 나누고 그러다가 진짜로 만난 거죠. 처음 만난 거니까 그때 다들 뭔가 되게 떨렸다고 그랬어요. 인트라넷으로만 만나던 사람들을 직접 만나게 돼서 뭔가 떨렸다고들… (웃음)

-인트라넷에서 서로 공감대가 많이 형성됐나 봐요. 청년 문제에서 경제적 자립이나 공간 문제 같은 것들에 대해서요.

한창 (책마을에서) 그런 문제에 대한 논쟁이 있었거든요. 2007년에<88만원 세대>란 책이 나오고 나서 세대론이 한참 얘기되다가 어떤 문학잡지에서 좌담회 내용을 실었던 것을 가지고 한참 이야기를 나눴거든요. 그 잡지를 보면 김현진, 우석훈과 몇 명이 나와서 좌담했는데 거기에서 청춘이 어떻고 그런 얘기를 하면서 ‘20대 개새끼론’ 같은 것을 얘기해요. 그걸 보고 우리는 화가 났죠.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때 20대가 ‘20대 개새끼론’ 같은 논리로 비판을 많이 받았죠. 사회 문제에 관심을 두고 시위에 적극 참여하는 10대와 달리 개인적인 성공을 위해 스펙 쌓기에 몰두하느라 정치나 사회 문제에 무관심하고 그래서 20대에게는 희망이 없다는 식으로요.

촛불시위 끝난 다음에 그런 비판이 많았죠. ‘청춘이 패기가 없다’ 이렇게 얘기하면서요. 책마을 사람들이 그걸 보고 열을 받아서 이렇게들 얘기했죠. “그러면 청춘이 왜 그렇게 됐냐. 그렇게 된 물적 조건이 있을 것 아니냐” 이런 얘기를 하면서 “그러면 왜 청년 담론이 생겼는데 (청년) 운동이 없느냐”와 같은 이야기로 진전된 거죠. 그때가 청년 문제를 조직적으로 다루는 청년유니온이 생기기 전이었어요. 그때 책마을 사람들과 얘기하다가 ‘문제는 집이다’라고(귀결된 거죠).

-청년 세대 담론이 활황인데 정작 청년 운동이 일천한 이유가 청년들, 특히 대학생들이 집으로부터 독립을 유예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 거네요?

그렇죠. 지금 생각해보니 약간 대학생에 맞춰서 얘기하기는 했었는데 일반적으로 청년 문제의 근본원인이 거기에 있다고 봤어요. 세대 담론이 한참 쏟아지는 상황에서 정작 당사자의 문제가 되지 않았던 이유를 보면 사실 의식주 중에서 ‘집’의 문제가 가장 크다고 봤거든요. 등록금이 사실 되게 비싸긴 한데 보통 집에서 등골 빠지게 일해서 대주는 거고, 집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 공간으로 따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나중에 가서 그게 ‘아, 이게 나의 빚이 되는구나’라고 인지하게 되지만 그 당시에는 그냥 사는 거죠. (그런 문제에) 우리가 별로 그렇게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집(부모)의 도움으로 의식주나 학업이 지탱되면서 빚을 지게 되니까 부채의식을 가지게 되고 결국 나의 선택권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것?

그런 것도 있고 그래서 열심히 논쟁하다가 공동생활전선을 하자고 얘기가 이어진 거고요. 지금 생각해 보면 공동생활전선이 구체적으로 어떤 방향이 돼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다들 조금씩 생각하는 게 달랐지만, 기본적으로 ‘공간’에 대한 문제의식 자체는 어느 정도 공유하고 있었던 거죠.

공동생활전선 시작!
공간 논의가 싹텄던 그때 그 ‘책마을’은…


-책마을 커뮤니티에서 나눴던 세대 담론과 공간 문제에 관한 이야기들이 전역하고 공동생활전선 기획으로 곧바로 실행에 옮겨진 건가요?

저를 포함해 일단 군대에서 만난 사람 세 명과 학교 친구가 모여서 넷이서 시작하자고 결의했죠. 그런데 공동생활전선을 실행하려고 하니까 방을 처음부터 바로 구할 수는 없잖아요. 돈이 없으니까 일단 모아야 했어요. 그래서 우선 학교 생활도서관을 거점으로써 생활도서관 운영위원을 하면서 함께할 사람들을 모으고, 거기에서 같이 세미나 하고 그랬어요. 2010년 3월에 전역하고 생활도서관에서 준비하면서 저는 한 학기를 다닌 다음에 2학기에 휴학하고 월세 내려고 돈을 벌었어요. 저녁에는 학교 중앙도서관에서 알바를 했는데 도서관에서 일하면 시간이 조금 남았어요. 그래서 밤에 세미나를 열심히 듣고 그때 두리반에도 종종 가게 됐죠. 2010년 8월부터는 같이 살면서 본격적으로 공동생활전선을 시작했고요.

도서관 죽돌이 프리스티 현장 포착! 그의 손에 들린 책은?!



-그 이후로 쭉 공동생활전선 활동을 같이 하고 있는 거네요? 부모님 사시는 본가에는 안 들어가나요?

집에는 일주일에 한두 번 가죠. 그런데 마리 이후로 계속 투쟁 현장에 가면서 밖으로 싸돌아다니게 되다 보니까 공동생활전선에도 참여도가 떨어지게 됐죠. 2011년까지는 같이 공통 세미나를 하고 같이 생활했죠. 3월부터는 시청광장에서 많이 잤고요. 학교에서도 잘 데가 많으니까 학교에서 자주 자고요. 그냥 아무 데서나 내키는 대로 편하게 잡니다. 마리에 있을 때는 마리에서 자고 그런 식이다 보니까 불안정해지는 기분이 있긴 해요. (공동생활전선) 공간도 있고 (부모) 집도 있는데 오히려 계속 다른 데서 자게 되네요.

-사학과 졸업반이라고 알고 있는데 앞으로는 무슨 일을 하고 싶어요?

원래는 대학원에 가서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쭉 있었어요. 운동권에 대한 것, 마르크스 같은 비판적인 학문을 공부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바꾼 거죠. 일단 지금 제가 공부에 소질이 없다는 생각이 들고요. 공부보다는 지금 당장 현실에 존재하는 투쟁현장이 많은데 거기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쪽으로 일하고 싶어요. 그런 생각인데 기회가 돼서 2011년부터 진보신당 당직자로 일하고 있어요. 물론 아직은 장기적으로 대학원에 가서 공부하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공부도 하고 사회 운동도 하려고 했는데 당장은 후자를 택한 거네요.

원래는 군대에서 복무 후반부에 시간이 많아지면서 책을 엄청나게 많이 읽었는데 그때는 공부하고 싶다고 생각했죠. 제대하면 공부도 하고 투쟁도 열심히 하는 사람이 돼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둘 다 잘하는 건 안되더라고요. 처음에는 공부도 열심히 했어요. 세미나를 일주일에 3개씩 했죠. 그러다가 두리반도 왔다갔다하고 2010년 8월에는 현대자동차 본사 앞에서 노동자들이 투쟁하고 있었는데 거기도 몇 번 갔어요. 그러면서 ‘그런 현장에 사람들이 많이 필요하다’라고 생각했어요.

-군대를 기점으로 삶에 많은 변화가 있었네요. 군대에서 공간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친구들도 만나고 제대하고 공동생활전선을 하고, 공부와 운동 중에 후자를 택하게 되기까지 군대 경험이 많은 영향을 끼쳤네요. 그때 그 인트라넷 책마을은 어떻게 됐어요?

없어졌어요. 군에서 없앴거든요. 사실 책마을 얘기는 책이나 언론을 통해 기록으로 남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인상적인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토론하고 추억이 많은데 아깝죠. 지금도 자기 길을 찾아서 열심히 사는 친구들이 많은데 (없어져서) 아까워요. 몇 년 동안 축적된 글이 있고 그때 활동했던 사람 중에 지금 책을 내거나 기자로 활동하면서 필력을 잘 보여주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요.

-좌편향적인 내용이 많이 올라온다고 생각해서 조처를 한 걸까요?

그건 아닌 것 같고요. 어쨌든 매우 많은 사람들이 왔다갔다하고 트래픽이 커지니까 나중에 걸려서 그게 없어졌죠. 사이트를 운영하던 부대였던 OOO에서 컴퓨터 관리하던 군인에게 “이게 뭐냐. 왜 자꾸 우리 홈페이지가 접속이 안 되느냐”고 그러다가 걸린 거죠. 그때 그냥 없앴어요.

-그러고 보니 제일 중요한 걸 가장 마지막에 묻네요. (웃음) 프리스티(FReEstY)는 무슨 뜻인가요?

(멋쩍게 웃으며) 제가 한때 서태지 팬이었어요. PC통신 시절 서태지 팬클럽에 가입했는데, 서태지 노래 제목으로 다 메뉴 제목을 삼았더라고요. '서태지와 아이들' 4집에 나오는 '프리스타일'(Freestyle)이란 곡이 영어로 쓰여 있는 게시판이 있었는데, 지금 제 닉네임처럼 대문자, 소문자가 섞여서 배열이 돼 있었죠. y 앞까지 보니 순간적으로 뭔가 떠오르는 단어들이 있어서, 지금처럼 '프리스티'가 된 거죠. 대문자로 써놓은 F,R,E,Y는 각각 ‘자유롭게(Freedom) 저항하고(Resistance) 존중하면서(Esteem) 젊게(Youth) 살자!’는 뜻이 되는 거죠. 헤헤.

마지막으로 우리는 유튜브에서 서태지의 프리스타일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소녀시대 멤버들의 그날그날 컨디션까지 줄줄 꿰고 있다는 전설의 소덕 프리스티는 알고 보니 90년대 아이돌인 서태지의 열성 팬이었다. 아이돌 가수를 좋아하는 것을 보아 프리스티의 노선은 확실히 반자본주의는 아닌 것 같다.

자유, 저항, 존중, 젊음을 외치는 프리스티와의 인터뷰를 끝으로 지난 2월부터 연재해온 청년저주 시리즈를 마친다. 그동안 저주무당의 보며 함께 분노 에너지를 발산해온 열혈 독자들에게 감사드린다. 길고 긴 연재 글에도 지치지 않고 꾸준히 열독해온 독자들에게 특히 감사하다. 잘 보이지 않아도 저주와 분노가 들끓는 곳이라면 저주무당의 필봉은 또다시 바쁘게 움직일 수도 있다. 제보 환영.


저주무당 유정보살 (상담문의 sunmudang444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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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조본좌 조본좌 2013.01.19 01:15

[김수길 칼럼] 이념은 간다

[중앙일보] 입력 2012.04.25 00:53 / 수정 2012.04.25 00:07


‘봄날은 간다…그래도’

 4·11 총선 결과와 그 평가에 대해 김호기(52) 연세대 교수는 경향신문에 이런 제목의 글을 썼다.

안타까움을 바탕에 깔고, 민주당은 이번 총선이 분명한 패배임을 인정해야 하며 더욱 더 ‘중도 진보’ 정당으로서의 자리매김을 확실히 해야 한다고 쓴 글이다. ‘좌 클릭’이니, 아니니 하는 노선 논쟁보다는 구체적 정책을 제시하라는 주문과 함께.

 그러나 젊은 세대는 별 안타까움이 없다. 대신 불만과 아쉬움이 보인다.

 ‘닥치고 투표? 닥치고 정치?’

 역시 4·11 총선을 놓고 한겨레에 서울시립대 4학년 조윤호씨가 쓴 글의 제목이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우리들에게 과거에 대한 심판만을 이야기하던 그들은 결국 집권당한테 또 한번 기회를 주고 말았다’라는 대목이 핵심이다. 담담하다.


총선을 앞둔 올 3월 다음과 같은 제목의 책이 한 권 나왔다.

 『이런 나라 물려줘서 정말 미안해』.

 헤럴드경제에서 일하는 33세부터 48세까지의 기자들이 쓴 책이다.

30대 후반~40대 중반의 세대를 ‘잊혀졌다가(Forgotten) 사회를 바꾸는 사람들’이란 뜻에서 F세대로 명명하고 그들의 분노·자성·희망을 담아냈다. 386(이제는 486)세대의 동생뻘이자 2040세대의 맏형·맏언니로 지난해 4·27 재·보선과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세대 투표’를 표출한 주역이 F세대임을 자임했다.

 그러나 4·11 총선에서 2040 연대에는 금이 갔다. 출구조사 결과 새누리:민주당 지지율이 20대와 30대에서는 지난해 재·보선 때의 35:65 기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지만, 40대에서는 45:55로 많이 다르게 나왔다. 『이런 나라…』의 대표 저자 함영훈(48)씨는 이를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2030과 달리 40대는 ‘따져보고’ 심판론에 기댔다. 변화를 희구하며 야당에 기대를 걸었지만 실망했고, 여당이 집권해도 야당 못지않게 변화할 것 같은 느낌을 가졌다. 2040 연대에서 40대가 약간 ‘변절’했다고 하지만, 여당이 집권해도 사실상의 정권 교체로 여긴다면 40대의 변심은 탄력을 이어갈 수 있다. 그러나 여당이 탐욕적 보수의 압박에 굴복한다면 40대의 표심은 다시 지난해 서울시장 선거 때로 돌아간다.”

 그럼, 20대는 어떤 생각일까. 한 단면을 보자.

 ‘찍어줘도 개라는 나꼼수와 386에게 작별을 고한다!’

 점령하라(Occupy) 운동을 주도하는 ‘대학생사람연대’가 4월 14일 올린 성명 제목이다.

 “… ‘투표합시다’ 캠페인의 주요 계몽 대상이 20대… 그러니 20대들만 투표해 주면 자신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여기서 실망스러운 거다… 우리에게 구걸하지 말고 좀 더 섹시한 제안을 하란 말이다… 우리들은 97년 이후부터 고통스러웠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 정권을 잡았던 바로 그 시기, 우리는 등록금 폭등을 경험했고… 일부 유명인사들은 20대들이 자신들의 망가진 모습을 보기 위해 투표하는 거라 생각하는 것 같다… 한국 정치는 예능이 됐고, 투표하는 사람들은 예능 시청자가 됐다… 끔찍했던 민주정부 10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투표로 바꿀 만한 대안 세력이 보이지 않는다….”

 이들의 글·책·성명이 각 세대 모든 사람의 생각을 대표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50대에서 40대, 20대로 젊어질 수록 변화의 추세는 분명히 보인다. 탈 이념, 탈 진영논리다.

 보수의 기사회생이 4·11 총선의 최대 수확(?)이 아니라 보수·진보의 어쩔 수 없는 수렴이 4·11 총선의 최대 수확(!)이며, 따라서 4·11 총선의 승자는 박근혜 위원장이나 새누리당이 아니라 유권자라고 보는 이유다.

 이제 연말 대선에서 어디든 정권을 잡으려면 2040 세대를 제대로 볼 수밖에 없다. 그러려면 보수·진보는 어느 정도 수렴되지 않을 수 없다. 지긋지긋한 진영 논리도 통하지 않을 터이다. 2040 세대는 어디가 잡든 상관없이 일자리·교육·주거·여가 등 미래 비전을 보고 판단한다는 것이 이번 선거에서 명확해졌다. 또 2040은 현실적이라 실현성 없는 황당한 공약에 넘어가지도 않았다. 자신들의 노후가 걸려 있음을 잘 안다.

 이 봄, 봄날은 간다. 이념도 간다. 봄날은 안타깝지만, 진영 논리는 안 그렇다.

 4·11 총선의 승자가 누구인지를 제대로 보고 그들을 올 연말 대선에서도 승자로 모시려는 쪽이 승리할 것이다. 올해 대선은 좀 대선답게 치르자. 유권자들이 승자가 되도록.

김수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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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조본좌 조본좌 2013.01.19 01:14

군인 최저임금 연재 두 번째 글이 프레시안에 올라왔습니다.

"병역을 '보편적 의무'로 확장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바로…"

["군인에게 최저임금을!"·<2>] 군 복무, 자부심과 원한 감정

최근 진보신당 청년학생위원회(준)에서 병사, 공익요원, 전/의경 등 의무복무자에게 최저임금지급할 것을 요구하는 소송을 진행 중이다. 물론 당 차원에서는 아니더라도 그러한 취지의 소송은 (헌법소원을 포함해서) 예전부터 개별적으로 이미 제기되어 왔다. 소의 취지는 극히 간명하다.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의무복무를 행하는 자들 역시 '근로기준법' 상에서의 '근로자'로 인정받아야 하며, 설사 신분의 특성상 노조설립 등의 기본적 권리를 제약 당한다 하더라도, '근로자'들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어야 할 '최저임금법'만큼은 군인들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단 근로기준법상에서의 근로자성이 인정된다면 일종의 공무원 신분으로서 근로자의 성격을 가지는 군인 역시 당연히 최저임금법에 해당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와 비슷한 주제로 이미 조윤호가 (법리적 쟁점과 별개로) 군인 최저임금의 사회적 정당성을 주장한 바 있으므로, 거기에 대해 크게 중언부언하지는 않겠다. 어쨌든 조윤호는 의무복무자들에 대한 최저임금 문제 역시 '청년노동'의 문제로 봐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의무복무자들에 대한 처우가 청년 노동자들이 겪는 어려운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이야기해 주었다. 무엇보다 조윤호의 논지 중에서 압권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흔한 얘기로 '돈'이 없어서 의무복무자들에게 최저임금을 지급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일반적인 반론에 대해 청년 자신들은 철저히 '노동계급'의 관점에서 응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변명'들은 물론 우리 사회에 흔히 통용되곤 한다. 이를테면 단지 '매출'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경영상'의 이유로, 청년 비정규직 불안정 노동자들에게 임금체불이나,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임금지급을 '변명'하는 것이 관행처럼 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불평에 대한 노동자들의 유일하게 적절한 응답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최저임금을 보장하지 못할 사업이라면 처음부터 시작하지 말라!" 그리고 우리는 같은 이야기를 '국가'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노파심에 말해두지만 여기에 대해 군인들은 엄밀한 의미에서의 '노동자'로 인정될 수 없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반론에는 크게 봐서 우파적 판본과 좌파적 판본이 있을 수 있다. 전자의 경우, 국방의 의무는 일반적인 사회경제적 권리와 무관한 것이므로 군인들 역시 최저임금법으로 보장된 권리를 지닌 근로자로서 인정될 수 없다는 것이며 후자의 경우, 군인들은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노동계급'이 아니므로 군인에 대한 처우 문제를 노동문제로 끌고 가는 것은 곤란하다는 입장이 되겠다. 따라서 크게 이러한 두 가지 측면에서 군인 최저임금 문제를 청년노동 문제로뿐만 아니라 '노동문제'로 바라보는 것은 곤란하다는 주장 역시 가능하다. 전자의 경우에는 법리해석을 동반하는 문제이고 앞으로 소송 과정에서 자연스레 쟁점화될 것이므로 상세하게 논하지 않겠다. 다만 내가 여기서 다루고 싶은 것은 군인 역시 노동자로서 인정될 수 없다는 (구-)좌파적 반응이다.

물론 나는 사회경제적으로 약자나 소수자의 위치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싸잡아서 "누구누구도 노동자다!"라고 외치는 무분별한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단지 (상상 속의) 구좌파들을 도발하기 위한 인정투쟁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군인 최저임금 문제를 좀 더 정확하게 바라봐야 한다. 물론 군인, 공무원, 전통적인 분류상에서는 전혀 노동자라고 볼 수 없다. 물론 최저임금과 같은 사회적 권리들은 실제로 잘 조직된 노동자들의 '투쟁' 없이는 존속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최저임금과 같은 '노동권'을 보편적인 시민권으로 바라봐야 한다. 그리고 노동운동이라는 것 역시 그러한 보편적 권리를 확립하는 데 있어서 비로소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노동운동이 시민사회에서 고립되고 있으며 심각한 위기를 겪는 이상 노동권을 보편적 시민권으로 확장하고자 하는 방안들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군인 최저임금 문제 역시 바로 그러한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정치'란 어떠한 방식으로 발생하는 것인지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고찰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모든 사회적인 갈등은 일상적인 경제적 이해관계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진정한 의미에서 '정치'란 일상적인 경제투쟁에서 정식화된 '요구'들을 사회적으로 보편화하는 것에서 발생한다고 할 수 있다. 최저임금 및 사회보험 정책 등은 시작에서는 원래 단지 '일부'의 경제적 요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실제로는 보편적인 권리로 정착되어 갔다. 실제 의미에서의 정치적 계급투쟁은 바로 그러한 우연적이고, 경제적인 이해관계에서 제기된 '요구'를 광범위하게 확산시키는 데서 출발한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최근 노동권을 보편적 사회적 권리로 확장하는 데 있어 장애가 되는 많은 예외들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다. 최저임금 등 기본적인 노동권으로부터 소외된 수많은 불안정 노동의 형태뿐만 아니라, 나아가 외국인 노동자들의 요구를 새로운 방식으로 정식화하는 것에 대한 논의들이 상당히 진행되었다. 여기서 우리의 주장은 바로 그러한 흐름에 전통적으로 사적/경제적 임노동관계의 외부에 존재하는 의무복무자들 역시 포함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흔히 강제적 의무로서만 사고되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 좌파적 정치란 보편적인 사회적 권리의 '예외'들을 철폐하는 지속적인 운동으로서 존재한다는 점을 유념할 때, 의무복무자들의 사회적 권리에 대한 논의를 충분히 새로운 형태의 기획으로 전화시킬 수 있다. (조윤호 등 다른 사람들이 지적했듯이) 청년 시기에 병역의 의무를 지니는 수많은 젊은이들의 대다수 역시 불안정한 노동현실을 겪어내야 하는 주체들이다.

무엇보다 의무복무자들을 최저임금 등의 법적/사회적 권리의 주체로 인정하는 것은 국방의 의무를 둘러싼 불필요한 성대결 및 사회적 갈등을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사실 이는 (다들 알고 있지만) 공공연하게 발설하기 힘든 부분인데, 현역병 및 전/의경으로서 병역의무를 수행한 대다수의 남성들의 젠더 정체성에 있어서 '원한감정'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그러나 그것은 표면적으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한 '자랑스러움'의 형태로 포장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미 군가산점제 논란에서 보듯이 그러한 '자부심' 이면의 '원한감정'을 숨길 수 없다. 정상적으로 군대를 다녀왔다는 '자부심'은 대개 뒤틀린 원한감정의 표현인 경우가 많다. 사실 국가 역시 일반적인 사회적 권리 및 기회들을 희생해가면서 병역의무를 이행한 젊은이들의 희생을 '숭고'한 것으로 포장하며 동일한 '자부심'을 고취하곤 한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 그러한 선전은 자부심 이면의 뒤틀린 원한감정을 더욱 부추기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물론 병역의 의무 등 시민이 마땅히 져야만 하는 사회적 의무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을 '숭고'한 것으로만 보는 것은 오히려 그러한 의무를 건강한 형태로 정착시키는 것을 방해할 뿐이다. 여기서 군가산점제에 대한 요구는 병역 의무자들의 사회적 처우 개선의 문제를 탈정치적인 방식으로, 즉 상상적으로 봉합하는 방식의 요구에 지나지 않는다. 병역 이행자들에 대한 처우의 문제를 공무원 시험 따위에 혜택을 주는 선에서 봉합할 수 없다.


▲ ⓒ진보신당 청년학생위원회(준)
마지막으로 군인 최저임금 보장에 대한 요구는 병역의무 수행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확장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것은 단지 '일부' 남성들의 문제만은 아니다. 오히려 최저임금 보장 등 의무복무자들의 사회적 권리 인정은, 앞으로 병역의무 이행에 있어서 사회적 복무 등 대안적인 복무 형태를 확산에 기여할 것이라 기대할 수 있다. 현재 그러한 논의를 가로막는 것은 물론, 일반적인 사회적 기준에 비해 터무니없이 열악한 현역 복무자에 대한 처우 때문이다. 그러한 처우를 '숭고한' 의무 등으로 포장하는 것은 군복무 문제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한 교착상태를 돌파하기 위해서 대체복무제 등 사회적 복무의 다양한 형태에 대한 논의가 요청된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의 가장 큰 장벽은 물론 일부 남성들에게 병역의무가 '숭고한' '의무'로서 강요당하는 사태 그 자체이다. 그러나 우리는 헌법에 규정된 시민적 의무로서의 병역의무를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 장애인, 등 시민들의 보편적 의무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라도, 현역 병사 등에 대한 처우의 문제를 다시 재고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것의 연장선상에서 건전한 보수와 상식적인 권리를 보장받는 사회적 복무의 형태들에 대한 '상상력'이 요청된다 하겠다. 병역의무를 보편적/시민적 의무로 확장시킬 수 있는 상상력의 기반은 물론 보편적/시민적 권리의 확장에 대한 급진적인 상상력이다. 현역 병역이행자들의 '최저임금'에 대한 요구 역시 그러한 상상력에 기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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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조본좌 조본좌 2013.01.19 01:14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의 영국 폭동 사태 관련 글 "The London Riots – On Consumerism coming Home to Roost"을 번역했습니다.

영어 원문 :
http://www.social-europe.eu/2011/08/the-london-riots-on-consumerism-coming-home-to-roost/

런던 폭동 : 소비자주의의 자업자득이다!
2011년 8월 9일 지그문트 바우만

이 폭동은 배고픈 자들에 의한 폭동도, 빵을 달라는 폭동도 아니다. 이 폭동은 어딘가 모자르고, 자격을 박탈당한 소비자들의 폭등이다.

혁명은 사회적 불평등의 주요 산물이 아니다. 그러나 지뢰밭들이 있다. 지뢰밭들은 무작위로 산재해 있는 폭발물들로 가득 차 있다. 그것들 중 가운데 일부가, 언젠가 폭발할 것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어느 것이 폭발할지, 언제 폭발할지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다. 특정 사건으로 인해 촉발된 혁명에서, 그것들을 찾아내고 제 시간에 뇌관을 제거하는 것은 가능하다. 비록 지뢰밭 유형의 폭발이 아니라도 해도 말이다. 특정한 부대의 군인들에 의해 배치된 지뢰밭의 경우, 당신은 다른 부대의 다른 군인들을 보내 지뢰를 파내고 그것들을 해체시킬 수 있다. 그러나 나이든 군인의 지혜를 상기한다면, 그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병은 오로지 한 번만 실수할 수 있다.” 사회적 불평등에 의해 배치된 지뢰밭의 경우, 그런 해결책(비록 기만적이기는 하지만)이 먹혀들지가 않는다. 지뢰를 설치하고 그것들을 파내는 것은 낡은 지뢰에 새로운 지뢰가 첨가되는 것을 멈출 수도 없고, 그것들을 밟는 것을 피할 수도 않는, 같은 부대에 의해 수행되어야 한다. 지뢰를 배치하는 것과 그 폭발물에 의해 희생되는 것은 일괄적인 과정이다.

이미 500년 전 미구엘 드 세르반테스가 말했듯이 모든 사회적 불평등은 유산자와 무산자 사이의 구별에서 유래한다. 그러나 시대마다, 사람들이 소유하고, 소유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장 격렬하게 갈구하고 가장 격렬하게 분개하는 대상들은 다르다. 2세기 전 유럽만 해도, 유럽과 다소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서는 몇 십 년 전만 해도, 아니 지금도, 독재국가에서는, 부족 간의 전쟁이 벌어지는 전장에서는 무산자와 유산자 사이의 투쟁을 불러일으키는 주된 대상이 빵이나 쌀이다. 신의 가호로 인해, 과학, 기술과 합리적인 정치적 방편들 덕분에 이것들은 이제 더 이상 투쟁의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이 오래된 구분(유산자-무산자)이 사라졌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꽤 많이, 욕구의 대상들은(그것이 없을 때 사람들이 가장 격렬하게 분노하는) 오늘날 많아졌고 다양해졌다. 그것들을 소유하려는 유혹은 물론, 그것들의 숫자 자체도도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가지지 못한 것을 파괴하고 싶은 충동은 물론 가지지 못함에 의해 촉발되는 분노, 모욕감, 악의, 원한도 증대하고 있다. 상점을 약탈하고 그것들에 불을 지르는 행위는 모두 같은 충동에서 유래하며, 같은 열망을 충족시킨다.

지금 우리는 모두 소비자이다. 소비자의 권리와 의무에 따라, 소비자가 우선이고 가장 중요하다. 9.11 이후 조지 부시가 미국인들에게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정상으로 돌아가자”고 요청했을 때, 그 요청에 제일 부합하는 단어는 “상점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쇼핑이 얼마나 활발한가에 따라, 그리고 우리가 새롭고 향상된 상품으로의 대체를 위해 하나의 소비재를 얼마나 용이하게 처리하는 가에 따라 결정된다. 이것은 누구의 인생이 얼마나 성공했느냐는 경쟁에서 각자의 사회적 지위와 점수를 측정하는 주된 지표이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우리는 상점을 삶의 고통이나 질병을 치료하거나 적어도 완화시켜주는 약들로 가득 차 있는, 약국으로 대하기 위한 훈련을 받는다. 상점과 쇼핑은 그렇게 함으로써 완전하고 진실 되게, 종말론적인 차원을 획득한다. George Ritzer가 밝혔듯이 슈퍼마켓은 우리의 신전이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쇼핑 리스트는 우리의 성무일도서이고, 쇼핑몰을 거니는 것은 성지순례이다. 가장 열광적인 감정이라는 장소에 더 매력적인 한 가지를 들여놓기 위해 충동들을 구매하고 소유물들을 처리하는 것은 더 이상 충분히 매력적이지 않다. 소비자의 향락의 충만함은 삶의 충만함을 의미한다. 나는 쇼핑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쇼핑하느냐 마느냐는 문제가 아니다.

현대의 무산자라 할 수 있는 모자란 소비자defective consumers들에게, 쇼핑하지 않는 것은 삶이 충족되지 않는다는, 나의 삶이 보잘 것 없고 아무 의미도 없다는, 거슬리고 곪아터진 오명이다. 단지 쾌락이 부재하는 것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존엄도 부재한다. 삶의 의미도 없다. 궁극적으로, 주변의 다른 이들을 존중하고, 자기 자신을 존중할 어떠한 근거도, 인간성의 근거도 없다.

슈퍼마켓은 신도들의 예배를 위한 신전이다. 소비자들의 교회에 대해 알아차리고 그들로부터 추방당한 파문자들에게, 소비자들의 교회는 망명자들의 땅에 서 있는 적들의 전초 기지이다. 그들은 비슷한 믿음으로부터(파문자들의 믿음) 다른 이들을 보호해줄 상품들의 출입을 제외하고, 나머지 것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 성곽을 엄중히 감시한다. 조지 부시가 동의했듯이, 그들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강철의 쇠창살, 블라인드, CCTV, 입구와 안에 숨겨진 보안 요원은 오로지 전장에서, 계속되는 적대적인 상황에서 더해진 것들이다. 그들은 무장한 채로 매일 매일, 본래의 빈곤과 적은 부, 인간성, 모욕감을 상기시키는 우리 내부의 적을 철저히 감시한다. 그들의 거만함에, 가까이 하기 어려운 오만함에 저항하는 이들에게, 그 감시자들은 소리칠 것이다 : 네가 감히? 어디 한 번 해봐! 그런데 너흰 무얼 하려는 거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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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조본좌 조본좌 2013.01.19 01:14

폴 크루그먼의 칼럼을 번역했습니다.

Credibility, Chutzpah and Debt By PAUL KRUGMAN

원문 : http://www.nytimes.com/2011/08/08/opinion/credibility-chutzpah-and-debt.html?_r=2&src=ISMR_HP_LO_MST_FB

신용, 대담함, 그리고 채무
폴 크루그만
2011년 8월 7일

신용평가사 S&P가 미국 정부의 신용등급을 강등시키기로 한 결정에 대한 분노를 이해하려면, 우리는 겉으로 보기엔(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모순적인 두 가지 아이디어에 대해 기억해야 한다. 첫 번째는 미국이 실제로 더 이상 안정적이지 않으며, 예전처럼 신뢰할 만한 나라가 아니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S&P 그 자신도 별로 믿을 만한 기관이 아니라는 것이다. : 이것은 미국의 전망에 대한 평가를 위해 바꾸어야만 하는 마지막 믿음이다.

S&P의 신뢰성 부족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미국의 신용등급을 강등시키기로 한 결정을 설명할 만한 가장 좋은 단어는 ‘담대함’이다. 이 담대함이라는 용어는 전통적으로 자신의 부모를 살해했으나 그가 고아라는 이유로 자비를 호소하는 젊은이에 대해 말할 때 쓰이는 단어이다.

결국 미국의 막대한 재정 적자는 우선적으로 2008년 금융위기에 잇따른 경제 슬럼프의 결과이다. 그리고 S&P는 그들의 자매격인 신용평가사들과 함께 금융위기를 불러 일으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유독성 폐기물toxic waste로 변해버린 모기지 파생상품들에 트리플 A라는 신용등급을 부여함으로써 말이다.

이들이 한 나쁜 짓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미 알려졌듯이, S&P는 글로벌 금융공황의 도화선이 된 리먼 브라더스에게 A라는 신용등급을 부여했다. 그것도 그들이 붕괴하던 바로 그 달에 말이다. 어떻게 신용평가사라는 자들이 A 등급의 회사가 도산한 이후에야 반응을 보일 수 있는가? 게다가 그들은 아무것도 잘못한 것이 없다는 식의 보고서까지 발행했다.

이런 작자들이 지금 미국의 신용에 대해 발표하고 있는 것인가?

(혹시) 잠시만, 상황은 나아질 거야?(라고 생각하는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강등시키기 이전, S&P는 언론에 발표하기 이전의 초안preliminary draft을 미국 재무부에게 보냈다. 재무부 관료들은 재빠르게 s&p의 계산에서 2조 달러의 오류를 찾아냈다. 그리고 이 오류는 어떤 예산 전문가라도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이었다. 내부논쟁을 거쳐, s&p는 이것이 실수라고 인정했다. 그래서 이 보고서에서 오류가 된 몇 개의 경제적 분석을 지워냈고, 어쨌든 미국의 신용등급은 강등되었다.

내가 몇 분만 설명하면, 이러한 예산 수치들은 어떤 경우에도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님이 드러나게 된다. 그러나 이 에피소드는 s&p의 평가의 신뢰성에 어떠한 자극도 주지 못한다.

더 나아가보자. 신용평가사는 우리가 그들의 국가 지불능력에 대한 판단을 진지하게 고려할 어떠한 이유도 제공하지 못한다. 채무불이행 국가가 일반적으로 채무불이행 선언 이전에 신용등급을 강등당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 신용평가사는 단지 채무국이 지닌 문제들에 따라 변화하는 시장을 따라다녔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의 미국처럼, 투자자들의 신뢰가 여전한대도 신용평가사가 신용등급을 강등시킨 매우 희귀한 경우가 있다. 그들은 지속적으로 실수하고 있다. 특히 일본의 사례를 생각해보자. 2002년 이전에 s&p는 일본의 신용등급을 강등시켰다. 그러나 9년 뒤 일본은 여전히 자유롭게 그리고 매우 저리로 돈을 빌릴 수 있다. 사실, 지난 금요일처럼(*미국 신용등급이 강등된 날), 일본의 10년 만기 채권의 이자율은 단지 1%였다.

따라서 지난 금요일의 신용등급 강등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들은 우리가 ‘믿어야만 하는’ 평가를 하는 최후의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겐 큰 문제가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단기적이거나 중기적인 예산 수립과 별 상관이 없다. 미국 정부는 최근의 적자를 채우기 위해 돈을 빌리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우리는 결국 이자를 지불하기 위해 빚을 쌓아나갈 것이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계산을 정확히 한다면, 악마의 목소리로 거대한 숫자들을 읊조리는 대신에, 심지어 향후 몇 년 간을 뛰어넘을 매우 막대한 재정 적자도 미국 재정의 지속가능성에 별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미국이 신뢰하지 못할 국가처럼 보이는 것은 예산 수립에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정치이다. 그리고 제발, 두 가지 측면 모두에 잘못이 있다는 흔한 선언을 하지 말자. 우리의 문제는 완전히, 명확하게 한 가지 측면에서의 문제다. 이 문제는 이러한 요구들에 양보하기보다는 반복된 위기를 만들어낼 준비를 하고 있는 극우파들에 의해 발생한다.

straight economics가 진행되면 될수록, 미국의 장기적인 재정 문제는 수정하기가 힘들어질 것이다. 최근의 정책들 하에서, 고령인구의 증가와 의료보험의 확대에 따른 비용은 세수보다 빠른 소비 증대에 대한 압박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다른 어떤 선진국보다 많은 의료비를 지출하고 있으며, 국제 기준에 따르면 매우 낮은 세율을 가지고 있다. 만약 우리가 부분적으로라도 이 두 가지 문제들을 국제적인 표준에 다가가게 할 수 있다면, 우리의 예산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왜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가?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강력한 정치적 움직임이 있기 때문이다. 이 정치적 움직임은, 더 효율적으로 건강보험을 사용하려는 온건한 노력 앞에서 “death panels"(*사라 페일린이 페이스북에 의료보험개혁을 비난하며 사용했던 용어)라고 소리 지르는 것이다. 추가적 비용 1 페니를 사용하는데 동의하느니 차라리 금융 재앙이라는 위험을 감수하고자 하는 것이다.

순수하게 재정적인 관점에서도, 미국이 직면한 진정한 문제는 우리가 적자로부터 여기서 1조를 아껴야하는가 저기서 1조를 아껴야하는가가 아니다. 어떠한 종류의 책임 있는 정책도 패퇴하고 하찮게 만들 극단주의자들의 훼방이 문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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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조본좌 조본좌 2013.01.19 01:13

영국 폭동 사태에 대한 맑스주의 지리학자 데이비드하비의 글을 번역했습니다.

 

원문 : http://davidharvey.org/2011/08/feral-capitalism-hits-the-streets/

 

흉포한 자본주의가 거리를 강타하다 - 데이비드 하비 , 2011년 8월 11일

 

허무주의적이고 흉포한 십대들. 데일리 메일지는 그들을 그렇게 불렀다. 각계각층의 미친 젊은이들이 정신없이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거리를 뛰어다니면서 경찰을 향해 벽돌과 돌과 병을 집어던진다. 이쪽에서는 약탈이, 저 쪽에서는 화재가 벌어진다. 그들은 하나의 전략적 목표에서 다른 목표로, 앞뒤를 가리지 않고 짹짹거리며 치고 빠지는 방식으로 경찰당국을 곤혹스럽게 한다.

 

이 글을 읽던 중 나는 “흉포한”이라는 단어에서 멈추어 섰다. 이 단어가 나로 하여금 1871년 파리코뮌의 지지자들을 떠올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파리 코뮌의 지지자들은 야생동물, 하이에나 같은 이들로 묘사되었다. 그들은 성스러운 사유재산, 도덕, 종교, 그리고 가족의 이름으로 즉결 처분당해 마땅한 이들이었다. 그러나 그리고 나서, 그 단어는 또 다른 연상을 불러일으켰다. 오래 전부터 아주 편안하게 루퍼드 머독의 왼쪽 주머니 안에 들어가 있었던 토니 블레어는, 나중에 머독이 그를 대체하기 위해 오른쪽 주머니에서 데이비드 카메룬을 꺼내들자 “흉포한 미디어”라는 공격을 퍼부었다.

 

물론 순수하고, 억제되지 않았으며 용납할 수 없는 범죄로 이 폭동을 바라보려는 사람들과 안 좋은 치안을 배경으로 벌어진, 맥락을 고려해야하는 사건으로 이 사건을 바라보길 원하는 사람들 사이의 히스테리적인 논쟁이 있다. 지속되는 인종주의, 젊은이들과 소수자들에 대한 정당하지 않은 학대, 높은 청년 실업률, 사회적인 박탈감의 급증, 그리고 경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면서 개인적인 부와 권력을 영속화화고 강화하는 것과는 관련이 깊은 긴축정책. 몇 몇은 심지어 엄청나지만 인간 번영을 위해 균등하지 않게 분배되는 잠재력 중에서 많은 직업과 많은 일상적인 삶의 무의미하고 소원해진 자질들을 비난 하는 데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

 

만약 우리가 운이 좋다면, 우리는 위원회를 갖게 될 것이며 대처의 시대에 Brixton와 Toxteth가 말했던 대로 똑같이 말하게 될 것이다. 나는 ‘운이 좋으면’ 이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최근 수상의 흉포한 본능으로 미루어볼 때 그는 윤리와 도덕의 실패, 예의범절의 타락, 가족적 가치와 잘못된 젊은이들에 대한 규율의 쇠퇴 등등을 들먹거리며 물대포 공격을 명령하고, 최류 가스 부대를 부르고, 고무탄을 사용한 진압에 동조할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자본주의가 그 자체로itself 맹렬히 흉포해지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흉포한 정치인들은 그들의 비용에 대해, 자신들의 부를 위해 공적 자금을 약탈하는 흉포한 은행가들에 대해, CEO와 헤지펀드 운용자에 대해, 부의 세계를 약탈하는 비공개기업투자펀드에 대해, 모든 이들의 청구서에 미스터리한 부담을 가하는 전화와 신용카드 회사에 대해, 바가지를 씌우는 장사꾼들에 대해, 주저하지 않는 사기꾼들에 대해, 기업과 정치세계의 가장 높은 계층을 위해 쓰리카드 몬트를 연습하는 예술적인 신용사기꾼들에 대해 거짓말을 한다.

 

특히 가난하고 취약하고 순진하며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백주대낮 날강도 짓 수준에 다다른 약탈 행위! 다량몰수의 정치경제는 하나의 풍조가 되었다. 더 이상 누가 정직한 자본가, 정직한 은행가, 정직한 정치인, 정직한 장사꾼, 정직한 정책 위원회 위원을 찾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겠는가? 그렇다, 그들은 존재한다. 단, 오로지 모든 사람들을 바보로 취급하는 소수에게만 존재한다! 똑똑해져라. 쉽게 이윤을 획득해라. 사취하고 훔쳐라! 잡힐 가능성은 낮다! 그리고 너의 불법행위에 대한 대가를 너의 부에서 지불하지 않을 수많은 방법들이 있다!

 

내가 말한 것은 아마 충격적으로 들릴 것이다. 우리들 중 대부분은 이것을 알지 못하는데 왜냐하면 우리는 이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어떤 정치인도 감히 이에 대해 말하지 않으며 언론들은 오로지 이러한 말을 한 사람들을 경멸하는 말들만 쏟아낼 뿐이다. 그러나 내가 추측하건데 거리의 폭동자들은 모두 이 사실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다. 그들은 단지 모든 사람이 여태껏 해왔던 일을 조금 잔인한 방식으로, 거리에서 눈에 띠게 했을 뿐이다. 대처리즘은 자본주의의 흉포한 본능을 해방시켰다. (그들은 친근하게 그것을 기업가의 “동물적 본능”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리고 그 이후에 그 무엇도 그 흉포한 본능을 제어하지 못했다. 베어버리고 불태워버리는 것은 거의 모든 곳의 지배계급들에게 공공연한 모토로 기능한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새로운 표준이다. 이것은 다음에 등장할 심리위원회가 언급할 내용이다. 폭동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이 책임을 져야한다. 흉포한 자본주의는 본능에 반대한 범죄를 위해서는 물론, 인간성에 반대한 범죄를 위해서 재판을 열 것이다.



슬프게도, 이것은 생각 없는 폭동자들이 알아서도, 요구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그것을 알고 요구하는 것을 막기 위해 모든 측면에서의 집단적인 공모가 이루어 질 것이다. 이것이 정치권력이 이 사태를 순수하게 비도덕적이고 바보같이 비합리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 성급히 우월한 도덕성과 번지르르한 논리의 예복을 입는 이유이다.



그러나 전 세계에는 깜빡이는 희망과 빛이 많이 있다. 스페인과 그리스에서 들고 일어난 분노한 사람들(the indignados), 라틴 아메리카에서의 혁명적인 충격, 아시아에서의 소작농 운동 모두가 약탈적이고 흉포한 글로벌 자본주의가 세계에 촉발시킨 대규모 신용사기의 진실을 간파했다. 우리 중 나머지가 이것을 깨닫고 행동하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우리는 또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우리가 나아가야할 방향은 어디인가? 이에 대한 대답은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이 한 가지 있다. 우리는 오로지 올바른 질문으로부터, 올바른 대답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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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조본좌 조본좌 2013.01.19 01:13

최근 노르웨이 참사에 대한 슬라보예 지젝의 언론 기고글 두 개의 번역문입니다. 첫 번째 글은 다른 분이 번역한 걸 퍼온 것이고, 두 번째는 가디언지 기고글은 제가 번역했습니다.

원어 링크 : http://www.abc.net.au/religion/articles/2011/07/26/3030861.htm(7월 26일)

슬라보예 지젝 - 반 이민주의 정치 :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주의

최근의 사건- 예를 든다면 집시의 프랑스로부터의 추방, 독일에서의 국수주의와 반이민주의의 부흥, 노르웨이에서의 학살-은 서부 및 동부유럽에서의 장기에 걸친 정치 공간의 재배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최근까지,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유권자의 다수를 대표하는 두 개의 주요정당- (기독신민당, 자유보수당, 인민당과 같은) 중도우파 정당과 (사민당, 사회당과 같은 ) 중도 좌파정당이 주도권을 쥐고 (생태주의당, 공산당과 같은) 군소 정당이 소수 유권자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동유럽 뿐만 아니라 서유럽에서의 최근의 선거 결과는 다른 양극화의 출현의 징후를 보여주고 있다. 이제는 (예를 든다면 낙태, 게이의 권리, 종교적 그리고 인종적인 소수자에 대한 관용과 같은) 자유주의적인 문화 주제와 더불어 글로벌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하나의 압도적인 거대정당이 존재한다. 이의 반대편에는 점점 강력해지고 있는 반이민주의 포퓰리스트 정당이 있으며 주변부에 공개적으로 신파시스트 집단을 거느린다. 이러한 것의 가장 좋은 예는 폴란드이다. 폴란드는 과거 공산주의의 소멸 이후 주요 정당은 수상인 도널드 터스크의 “반 이데올로기적인” 중도 자유당과 카진스키 형제의 보수 기독교 법과 정의당이다.

비슷한 경향이 우리가 목격한 바와 같이 노르웨이. 네덜란드, 스웨덴, 헝가리에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어떻게 핵심에 다가갈 것인가??

복지국가로 유지된 수십년 동안의 희망 이후, 재정 삭감은 일시적인 것으로 판매되었고 사물들은 곧 정상화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유지될 때, 우리는 위기, 혹은 긴급 경제상황이 영원한, (복지를 축소하고, 건강과 교육 서비스를 감축하고, 직업을 더욱 비정규화하는) 모든 종류의 내핍 수단을 사용하는 새로운 시대로 입장하게 된다. 위기는 생활 방식이 되고 있다.

1990년대 공산정권의 몰락 이후 우리는 국가 권력의 실행의 주된 형식이 탈정치화된 전문가 행정과 이해관계의 조정이 되는 새로운 시대로 입장했다.

열정을 이러한 종류의 정치로 인도하는 유일한 방법,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동원하는 유일한 방법은 공포를 통해서다. 이민자에 대한 공포, 범죄에 대한 공포, 신 없는 성적 타락에 대한 공포, (높은 세율과 통제라는 부담을 가지는) 과도한 국가에 대한 공포, 생태적 파국에 대한 공포, 그리고 성 희롱에 대한 공포 말이다(정치적 공정성political correctness은 공포의 정치의 전형적인 자유주의적 형식이다).

이러한 정치는 항상 편집증적인 군중에 대한 조종에 의지한다- 공포에 질린 남녀에 대한 공포스러운 결집 말이다. 바로 이것 때문에 새천년의 첫 10면에서 가장 큰 사건이 반이민주의 정치가 주류에 편입되고 결과적으로 그것을 주변부의 극우 정당과 연결한 탯줄을 끊어버렸던 순간이 되었다.

자신의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정체성에 대한 자부심을 가진, 프랑스에서 독일, 오스트리아에서 네덜란드에 이르는 주요 정당들은 이민자들이 그들을 맞이하는 나라를 정의하는 문화적 가치에 적응하여야 하는 손님일 뿐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을 이제 수용한다. “여기는 우리나라다. 사랑하거나 아니면 떠나라”가 메시지인 것이다.

진보적인 자유주의자들은 물론 이러한 포퓰리즘적인 인종주의에 공포를 느낀다. 그러나 조금만 더 자세히 본다면 그들의 다문화주의적인 관용성과 차이에 대한 존중이 이민에 반대하고 다른 사람들과 적절한 거리를 두고 유지하는 자들과 얼마나 공통점을 가지는지 알게 된다. 자유주의자들은 말한다. “타자, 좋습니다. 나는 그들을 존중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나만의 공간을 너무 침범해서는 안됩니다. 그 순간, 그들은 나를 불편하게 합니다-나는 약자에 대한 우대조치affirmative action를 전적으로 지지합니다. 그러나 나는 시끄러운 랩뮤직을 들을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습니다.”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중심적인 인권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은 “불편해지지 않을not to be harasseed 권리”, 즉 타자에 대하여 안전한 거리를 유지할 권리이다. 실행이 저지되어야 할 인명살상을 계획한 테러리스트는 법의 지배로부터 면제된 텅 빈 공간인 관타나모에 소속된다. 그리고 근본주의 이념을 가진 자들은 그가 증오를 전파했다는 이유로 침묵하여야 한다. 그러한 사람들은 나의 평화를 방해하는 유해한 주체들이다.

오늘날의 시장에서 우리들은 유해 요소가 제거된 일련의 상품을 발견한다. 카페인 없는 커피, 지방 없는 크림, 알콜 없는 맥주 등등. 그리고 목록은 계속된다. 섹스 없는 가상 섹스는 어떤가? 사상자 없는 전쟁이라는 -물론 우리 측 이야기다- 콜린 파웰의 교전 원칙은 전쟁 없는 전쟁 아닌가? 전문가들의 행정 기술이라는 우리시대의 정치에 대한 새로운 정의는 정치 없는 정치 아닌가?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오늘날의 관용적인 자유 다문화주의를 타자성이 박탈된 타자-카페인 없는 타자-대한 경험로 이끈다.

이러한 중화의 메커니즘은 1938년에 로버트 브라지야크Robert Brasillach가 가장 잘 정식화했다. 그는 프랑스의 파시스트 지식인이었는데 자기 자신이 “온건한” 반유대주의자라고 생각했으며 합리적인 반유대주의의 공식을 고안했다.

“우리들은 영화를 보면서 절반은 유대인인 찰리 채플린에 갈채를 보낼수 있으며 완전한 유대인인 예후디 메뉴인에 대해서도 갈채를 보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무도 죽이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학살의 실행도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또한 우리는 예측이 불가능한 본능적 반유대주의 행동을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합리적인 반유대주의를 고안해 내는 것임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민자들의 위협”을 다루는 우리들의 정부의 방식과 유사하지 않는가? 그들은 직접적인 포퓰리스트 인종주의를 “비합리적”이고 우리의 민주주의적 기준에 수용될 수 없다고 것으로 정당하게 거부한 후, 인종주의적 방어수단을 “합리적으로” 지지한다.

혹은 오늘날의 브라지야크로서 그들중 일부인 사민주의자들은 우리에게 말한다. “우리들은 아프리카계 스포츠맨, 동유럽계 스포츠맨, 아시아 의사, 인도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에게 갈채를 보낼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아무도 죽이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어떠한 학살도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또한 우리는 항상 예측불가능하고 폭력적인 반이민주의 방어수단을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합리적인 반이민주의 방어를 고안해 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이웃의 독성에 대한 중화라는 이러한 환상은 직접적인 야만주의로부터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주의로의 명확한 여정을 암시한다. 그것은 자신으 이웃을 사랑하라는 기독교적인 사랑으로부터 야만적인 타자와 맞선 우리 부족에 대한 이교도적 특혜로의 퇴행을 드러낸다. 그것은 비록 기독교적 가치에 대한 방어로서 은폐되어 있긴 하지만 그자체가 기독교적 전통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인 것이다. (끝)

원어 링크 :
http://www.guardian.co.uk/commentisfree/2011/aug/08/anders-behring-breivik-pim-fortuyn (8월 8일)

브레이빅이 타켓을 설정한 불쾌한vile 논리
브레이빅 이전에 그와 비슷한 Pim Fortuyn는 우익 포퓰리즘과 자유주의적인 정치적 올바름 사이에서 교차점을 구현했다.

슬라보예 지젝, 가디언지 기고문.

브레이빅은 노르웨이에서 70명 이상의 사람을 죽였다. 우리는 브레이빅의 살인 행위에 대한 반응뿐만 아니라 그의 이데올로기적 자기 정당화를 통해 무언가를 사유할 수 있다. 노르웨이에서 70명 이상을 죽인 기독교인 “맑시스트 사냥꾼”의 성명서는 절대 미친놈의 횡설수설이 아니다. 이것은 반이민주의 포퓰리즘의 부흥이라는, 암시적인 토대에 기여하는 “유럽의 위기”의 결과적인 폭로이다. 성명서 내용 사이의 심각한 불일치는 반이민주의 포퓰리즘의 내적인 모순을 드러내는 징후라 할 수 있다.

그의 성명서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띠는 것은 브레이빅이 그의 적들을 구성한 방식이다. 그는 세 가지 요소인 맑시즘, 다문화주의, 이슬람을 조합하는 데, 사실 이 각각은 다른 정치적 영역에 속해 있는 것들이다. ‘맑스주의’적 ‘급진좌파’, ‘자유주의’적 ‘다문화주의자’, ‘이슬람 근본주의자’. 상호 배타적인 다른 요소들을 단 하나의 적의 책임으로 돌리는 과거 파시스트들의 습관이(“볼셰비키-재벌-유대인의 음모”) 브레이빅을 통해 새로운 모습으로 귀환했다.

심지어 더 암시적인 것은 브레이빅이 급진적인 우파 이데올로기의 카드들을 뒤섞으면서 스스로를 설계하는 방법이다. 브레이빅은 기독교의 교리를 신봉한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그는 불가지론자이다. 기독교는 그에게 단지 이슬람에 반대하기 위한 문화적 구조물일 뿐이다. 그는 반여성주의자이며 여성이 고등 교육을 받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세속적인” 사회를 선호하며, 낙태를 지지하고 스스로를 동성애에 호의적인 사람이라고 선언한다.

이런 관점에서 그의 선구자는 네덜란드의 우익 포퓰리스트 정치인이었던 Pim Fortuyn이다. 그는 그가 전체 유권자의 5분의 1의 지지를 얻을 것으로 예상되던 선거가 있기 2주전에 죽었다. 그는 역설적인 인물이었다. 우익 포퓰리스트였지만 그는 대부분의 사안들에서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고자 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었으며. 그가 내세우는 견해 또한 그러했다. 그는 많은 이민자들과 좋은 개인적 관계를 맺고 있던, 타고난 아이러니의 감각을 선보이던 동성애자였다. 간단히 말해서, 그는 이슬람 이민자들에 대한 기본적인 입장을 제외하고 모든 면에서 훌륭한 관용을 갖춘 자유주의자였다.

그가 구현한 것은 우익 포퓰리즘과 자유주의적인 정치적 올바름 사이의 교차점이었다. 게다가, 그는 우익 포퓰리즘과 자유주의적 관용 사이의 적대적인 관계는 오류에 불과하며, 우리가 그것들을 동전의 양면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생각의 산 증인이었다. 바꿔 말하면 우리는 인종주의자가 내세우는 여타의 주장들을 거부하면서 동시에 인종주의자가 될 수 있다.

더 나아가, 브레이빅은 나치즘의 요소와 히틀러에 대한 증오를 결합한다. 그가 자신의 성명서에서 영웅이라고 평가한 인물 중 한 명은 노르웨이 반 나치 저항군의 지도자였던 Maz Manus였다. 브레이빅은 반 이슬람주의자 씩이나 되는 인종주의자가 아니다. 그의 증오는 무슬림의 ‘위협’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리고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점은, 그가 정반대로 이스라엘이 이슬람의 팽창을 막는 첫 번째 방어지점이라는 이유로 이스라엘에 호의적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그는 유대인 신전이 다시 건축되는 것을 보고 싶어 하기도 했다. 그는 유대인들이 너무 많아지지 않는 한 유대인들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의 선언문을 보자 : “영국과 프랑스를 제외한다면 서구 유럽에 유대인 문제란 없다. 서구 유럽에는 유대인이 오직 1백만 명밖에 없으며, 이 1백만 명 중 80만 명은 프랑스와 영국에 살고 있다. 반대로 6백만 명의 유대인이 살고 있는 미국은 상당한 유대인 문제를 지니고 있다.” 그는 시오니스트-나치라는 궁극적인 모순에 도달했다. -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가?

이에 대한 핵심은 브레이빅의 테러에 대해 ‘유럽의 권리’라는 방식으로 반응하는 관점이 제공해준다. 이런 관점의 모토는 그의 살인적인 행위를 비난하면서, 그가 “진정한 문제에 대한 정당히 우려”를 표명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 “유럽의 주류 정치는 이슬람화와 다문화주의에 의한 유럽의 쇠퇴를 막는데 실패했다.”거나, 예루살렘의 포스트를 인용하면서 “우리는 노르웨이와 다른 유럽의 이민자 통합을 위한 정책을 진지하게 재평가하는 기회로 오슬로의 비극을 이용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의 사설을 실은 신문은 이후에 이에 대해 사과했다. (덧붙여 말하자면, 우리는 “이 테러 행위는 이스라엘 정책을 재평가하는 데 기여해야한다.”와 같은, 팔레스타인들의 테러에 대한 비슷한 해석을 아직까지 듣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이스라엘에 대한 언급은 이러한 평가를 내포하고 있다 : 다문화적인 이스라엘은 생존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파르트헤이트는 유일하게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시오니스트 우파들의 ‘이러한 계약’pact에 대한 대가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압박을 정당화하기 위해, 초기 유럽의 역사에서 유대인에게 반대하기 위해 이용되었던 이전의 논쟁이 반동적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었다. : 이 계약에 내포된 거래는 다음과 같다: “만일 너희가 우리의 땅 한복판에서 팔레스타인들을 관용하지 않을 우리의 권리를 인정한다면 우리는 너희의 땅 한복판에 있는 다른 문화들을 향한 너희들의 불관용을 인정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러한 거래의 비극적인 아이러니는 지난 세기 유럽의 역사에서 유대인은 최초의 “다문화주의자”들이었다는 것이다. 지난 세기 유대인들에게 가장 문제는 다른 문화들이 지배적인 다른 지역에서 어떻게 하면 자신들의 문화를 손상되지 않는 채 보존하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새로운 이성이 바로 그것들을 강요하는 시대에 들어선다면 어떻게 될까? 만약에 유럽이 자신들의 ‘민주적 개방성’이 사실은 ‘배제’에 기반하고 있었다는 역설을 받아들인다면 어떻게 될까? 로베스피에르가 오래전에 말했듯이 자유의 적을 위한 자유는 없다는 식으로 말이다. 원리적으로, 물론 이것은 사실이지만 이 지점에서 이것은 매우 특별한 것이어야만 한다. 어떤 의미에서, 여기에 브레이빅이 자신의 목표를 선택한 몹시 불쾌한 논리가 있다. 그는 외국인들을 공격하지 않고, 유입되는 외국인들에 대해 지나치게 관용적인 그의 공동체 내부의 사람들을 공격했다. 문제는 외국인들이 아니라 우리 유럽의 정체성이다.

비록 지금 진행되고 있는 유럽연합의 위기가 경제와 금융 위기라는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해도, 이것은 본질적인 차원에서 이데올로기-정치적인 위기이다. 2년 전 유럽 연합 헌법에 관한 국민투표의 실패는 투표자들이 유럽연합을 사람들을 결집할 수 있는 어떠한 비전도 갖추고 있지 않은, 단지 기술적인 경제 연합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명확한 시그널이다. 유럽연합에 대한 최근의 저항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을 동원할 수 있는 유일한 이데올로기는 반 이민주의 뿐이었다.

최근 동유럽의 탈 공산주의 국가들에서의 호모포비아의 분출은 우리에게 사고의 중지를 선사한다. 2011년 초 이스탄불의 게이 퍼레이드에서는 수천 명이 어떤 폭력이나 소란 없이 평화롭게 행진했다. 똑같은 시간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에서 진행된 게이 퍼레이드에서, 경찰은 수천 명의 폭력적인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잔인한 공격으로부터 참가자들을 보호하지 못했다. 터키인들이 아니라 근본주의자들이 유럽의 유산에 대한 진정한 위협이다. 그래서 유럽이 터키인들의 유입을 차단할 때, 우리는 명백하게 다음과 같이 물어야 한다. 동일한 규칙을 동유럽 국가들한테도 적용하는 것이 어떤가?

반유대주의는 다른 형태의 인종주의, 성차별주의, 호모포비아의 연장선에 있다. 이스라엘은 이런 점에서 재앙적인 실수를 했다. it decided to downplay, if not completely ignore, the "old" (traditional European) antisemitism, focusing instead on the "new" and allegedly "progressive" antisemitism masked as the critique of the Zionist politics of the state of Israel.(이 부분은 말끔하게 번역이 안 되서 원문으로 남겨두었습니다 ㅠㅠ) 이러한 입장에서, Bernard Henri-Lévy는 최근 21세기의 반유대주의는 진보적이며 그렇지 않은 것은 어디에도 없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테제로 인해 우리는 ‘반자본주의를 혼동하게 만드는 반유대주의’라는 고전적인 맑스주의자들의 해석에 다시 주목 할 수 있다. (자본주의 체제를 비난하는 대신, 분노는 이 체제를 부패하게 만든 특정한 인종집단에게 책임을 묻는 것에 주력한다.) 레비와 그의 지지자들에게 따르면, 오늘날의 반자본주의는 반유대주의라는 형태로 위장하고 있다.

고전적인 반유대주의를 공격하는 이들의, 소리 없는 그러나 그럼에도 효과적인 퇴장은 고전적인 반유대주의가 전 유럽에 돌아오는 그 순간 벌어질 일이다. 헝가리부터 라트비아에 이르는 탈 공산주의 동유럽 국가들에서 특히 그러한 일들이 벌어질 것이다. 심지어 우리를 걱정하게 만들 일은 미국에서의 벌어지는 기독교 근본주의와 시오니즘 사이의 괴상한 조합이다.

이러한 수수께끼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있다. 이 괴상한 조합은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변화해서가 아니다. ‘시오니즘’ 스스로가 역설적이게도 유대인을 증오하는, 반유대주의의 몇 몇 논리들을 수용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정치에 동의하지 않는 유대인을 그들의 목표로 설정하는 것이다. 시오니스트들의 계획을 의심하는 유대인들은 반유대주의가 유대인이라는 적을 구성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시오니스트들의 ‘적’으로 구성된다. 그는 위험하다 왜냐면 그는 우리 사이에서 살고 있으나, ‘진정한 우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이스라엘은 위험한 게임을 하고 있다. 미국의 급진적인 우파들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폭스 뉴스와 이스라엘 팽창주의의 견고한 지지자들은 가장 대중적인 사회자 글렌 벡을 강등시켜야만 한다. 최근 그의 언급은 명백하게 반유대주의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물론 이스라엘의 정책을 비판하는 데 반대하는 표준적인 시오니스트들의 주장은 다른 모든 국가들처럼 이스라엘도 비판받을 수 있고 그래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반유대주의적 목표를 위한 이스라엘의 정책에 대한 정당한 비판을 악용한다. 이스라엘의 정책을 지지하는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이스라엘 정책에 대한 좌파적인 비판을 거부할 때 그들이 내포하고 있는 주장에 대해서는 2008년 7월 Viennese daily Die Presse에 나온 환상적인 만평이 묘사했다. 이 만평에는 완고한 나치처럼 보이는 두 명의 오스트리아인이 등장한다. 그들 중 한 명이 손에 신문을 쥔 채로 그의 친구에게 말한다. “여기서 너는 다시 어떻게 완전하게 정당화된 반유대주의가 이스라엘에 대한 천박한 비평을 위해 악용되는지 볼 수 있어!” 이들은 오늘날 이스라엘의 동맹자들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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