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조본좌 조본좌 2013.02.04 10:38

예전에 썼던 레포트.

 

Ⅰ. 서론

최근 영국 등 서구 선진국들에서 공정무역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무역을 추구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으며 분야도 점차 확대되고 있다. 공정무역은 무역이론으로서 독보적인 지위를 유지하고 있던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에 대한 반발로부터 시작되었다.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에 입각해서 시행되어 온 자유무역은 이론에서 가정하는 것과는 반대로 남북문제를 심화시키고 있으며, 교역이익의 배분 차원에서도 형평성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유무역의 폐해로 인해 현재 공정무역을 지지하는 시민단체나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우리 조는 자유무역, 특히 리카도의 무역이론을 중점적으로 살펴보고 이의 한계는 없는지,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공정무역의 특징은 무엇인지, 나아가 공정무역이 자유무역을 대체할 수 있는가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Ⅱ. 비교우위와 자유무역

2. 리카도의 모형

1) 절대우위와 비교우위

애덤 스미스는 한 나라 안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분업 혹은 전문화의 원리가 국제적으로도 그대로 연장되어 적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모든 상품은 각기 그것을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생산할 수 있는 생산자, 즉 생산에 있어서 절대우위를 가지고 있는 생산자들에 의해서 그 생산이 담당될 것이고, 그것은 곧 주어진 생산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분업의 원리를 국제무역에도 연장 적용했다.

애덤 스미스는 국제무역이 이러한 절대우위의 원리에 의해서 소비자들은 국경에 관계없이 가장 싼값에 원하는 상품을 구매하려 할 것이고, 그 결과 각국은 결국 생산비면에서 절대 우위에 있는 상품들에 전문화를 해서 그것을 수출하고 절대열위에 있는 상품들을 수입함으로써 자연적으로 생산에 있어서 국제적 분업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이러한 절대우위론은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2국 2재화 1요소(노동)의 경제를 가정할 경우 한 나라가 두 재화 모두에서 절대 우위가 있다면 무역은 성립할 수 없다.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리카도가 제시한 이론이 비교우위론이다.

리카도에 의하면 한 나라 안에서와 같이 산업간 노동의 이동이 자유롭게 허용되는 경우 분업 및 생산전문화는 절대우위론에 의해서 그 설명이 가능하지만 노동의 이동이 전혀 허용되지 않는 국가간에 발생하는 분업 및 무역은 절대우위가 아니라 비교우위에 의해서 결정된다.

한 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서 두 재화 모두에서 절대열위(혹은 절대우위)에 있다고 하더라도 각국은 상대적으로 더 싸게 생산할 수 있는 상품, 즉 비교우위를 가진 상품에 전문화를 함으로써 국가 간의 분업과 무역은 발생할 수 있으며, 이 때 두 나라 모두 이로부터 경제적 이득을 볼 수 있다.

각국은 서로 상대적으로 더 싸게 생산할 수 있는 상품, 즉 비교우위를 갖고 있는 상품을 생산해서 수출하고 비교열위에 있는 상품을 수입함으로써 결국 각국은 무역 이전보다 더 많은 양의 두 재화를 소비할 수 있게 된다.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은 누가 무엇을 상대적으로 더 싸게 생산할 수 있는가 하는 소위 비교생산비설(theory of comparative cost)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렇게 시작된 무역은 궁극적으로 두 나라의 국내가격비율이 서로 같아질 때까지 진행될 것이며 최종가격비율은 두 나라의 무역 전 국내가격비율의 사이에서 결정될 것이다.

리카도 모형에서 비교우위는 각 산업에서의 노동생산성 또는 단위노동투입량의 상대적 크기에 의해서 결정되고, 무역의 패턴은 비교우위가 있는 재화를 수출하고 비교열위에 있는 재화를 수입하는 방식으로 결정된다.

리카도 등 고전무역학자들이 본 국제무역이론의 특징은 생산요소가 한 나라 안에서는 산업 간에는 이동이 완전히 자유로우나 국가 간에는 그 이동이 전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또한, 그들은 산업 간의 연관성을 완전히 무시하고 노동을 유일한 생산요소로 가정하였고, 무역 전 각국에서 거래되는 재화들의 가치는 곧 재화를 생산하는 데 투입되는 노동의 양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소위 노동가치설(labor theory of value)에 의존해서 이론을 전개했다.

그러나 노동가치설은 현실을 너무 단순화시킨 것이다. 예를 들면, 토지, 자본 등 중요한 생산요소들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3. 교역조건의 결정과 무역이익

1) 교역조건의 결정

두 나라 간에 자유무역이 허용될 경우 각국은 상대적으로 값이 싼(즉, 상대적으로 생산비가 싼) 재화를 수출하고 상대적으로 값이 싼 재화를 수입한다. 그 과정에서 각국의 국내가격에도 변화가 생긴다. 결국 무역은 두 나라의 가격비율이 같아질 때까지 지속되고 무역 후 두 나라 사이에 같아진 가격비율은 무역 전 각국의 가격비율의 사이에서 결정된다.

A국

B국

X재

1

4

Y재

1

2

총노동량

100

200

표 1에서는 A국이 두 재화 모두에 절대우위를 가지고 있지만, 비교우위론에 의하면 A국은 X재 생산에, B국은 Y재 생산에 각각 비교우위를 지닌다. B국과 비교하여 A국에서 X재의 생산성이 Y재의 생산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높은 경우 A국은 X재에 비교우위가 있다고 말한다. 이를 수식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다.

A국의 X재 생산성/A국의 Y재 생산성⟩B국의 X재 생산성/B국의 Y재 생산성

여기서 재화의 생산성은 표 1에서 제시된 각 재화의 단위노동필요량의 역수이다.

2) 무역의 이익

리카도 모형에서 무역의 이익은 첫째, 어떤 재화의 생산에 비교우위를 지니고 있는 국가가 그 재화의 생산에 특화하고 둘째, 이를 통해 얻어진 재화를 국제균형상대가격에 따라 타국에서 생산된 다른 재화와 교환함으로써 획득된다.

무역이 시작되면 각국은 비교우위를 지닌 재화를 생산하고 이를 타국에서 생산한 재화와 교환하여 과거 무역 전에 소비할 수 없었던 분야까지 소비가 확대된다. 다시 말해, 비교우위를 지닌 재화에 특화하면 더 많이 생산할 수 있고 자국에서 소비되지 못하고 남은 초과공급을 타국과 교역하여 이득을 낼 수 있다. 동시에 세계전체적인 측면에서 보아도 전문성을 제고시켜서 생산하기 때문에 생산이 늘어나서 소비 영역이 확대되는 이점이 있다.

4. 리카도 이론의 장점(개도국이나 소국개방경제 측면에서)

무역으로부터 발생하는 경제적 이익은 항상 경제대국보다는 경제소국에 더 많이 돌아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 이유는 무역이익이 무역 후 형성되는 균형교역조건 즉, 두 재화의 국제가격비율과 무역 이전에 각국에 존재하였던 국내가격비율과의 차이에 의해서 결정되는데, 경제규모가 클수록 그 격차가 적어지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무역량에 비해서 국내경제 규모가 아주 클 경우 이 나라의 대외무역은 국내가격비율에 전혀 영향을 못 미칠 수도 있다. 이러한 경우 무역에 의한 경제적 이익은 전부가 경제소국에 귀착된다는 것이 리카도 이론을 통해 설명 가능하다.

따라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을 따를 경우 개도국이나 경제소국은 오히려 이익을 얻게 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자유무역을 적극적으로 장려하여 개도국이 비교우위가 있는 산업 분야에 특화시켜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5. 리카도 이론의 문제점

1) 최초의 비교우위가 발생하는 원인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

2) 비교우위에 따라 그 산업에 특화를 한다는 결론은 일견 적실성이 있지만, 일국이 한 재화생산에 완전 특화하여 그 재화만을 생산한다는 결론은 비현실적이다.

3) 생산요소를 노동에 국한시켜 자본, 토지 및 기타의 중요한 생산요소를 포함시키지 않았다.

4) 무역자유화를 할 경우 정부의 개입 없이는 한 나라의 수출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실질소득은 증가하고, 비교열위에 있는 산업(수입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실질소득은 삼고하여 소득분배의 왜곡이 발생한다. 이는 한미 FTA의 경우에도 드러난다. 농산품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소득분배의 측면 때문에 양국 간 자유무역협정을 반대한다.

5)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은 산업구조의 다각화를 전제로 하고 있지만, 개도국의 경우에는 산업구조의 다각화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교우위를 적용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6) 경험적인 분석에서 산업구조가 비슷한 선진국끼리 비교우위론을 적용해 보더라도 무역경쟁이 일어나고 분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자동차 산업이나 스마트폰 산업이 대표적인 분야이다.

6. 부등가 교환론

비교우위론에 대한 비판은 부등가교환론의 입장에서도 제기된다. 부등가교환론은 주변부의 저임금 상품과 중심부의 고임금 상품 사이의 무역관계는 부등가교환의 성격을 띠고, 이러한 부등가 교환의 지속은 국제적인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심화시켜 주변주의 저발전을 가속화시킨다는 이론이다. 이에 따르면, 비교우위의 결과 나타나는 상대가격의 균등, 무역에 의한 소비가능영역확대 등으로 인해 경제소국에서도 발생할 수 있는 이익 등은 실현 불가능한 것이다.

7. 자유무역의 문제점

위의 논의와 더불어, 공정무역이 등장하게 된 배경과 조류 등을 살피기 위해서는 자유무역이론에 내재되어 있는 적실성 부재와 한계에 대한 고찰이 선행되어야 한다. 공정무역 논의로 넘어가기 전에 자유무역에 대해 문제점을 중심으로 간략히 논의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자유무역, 특히 비교우위론은 선진국 간 교환(무역)에서만 적실성이 있는 모델이다. 비교우위론은 무역을 하는 각국이 서로 비슷한 산업구조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가정하기 때문에 선진국과 후진국 간의 남북무역에서는 적실성이 없다. 또한 개도국이나 후진국들은 선발 산업 국가들에 비해 특화할 수 있는 분야가 거의 없다. 둘째, 자유무역은 시장의 원리를 강조한다. 흔히 알고 있는 보이지 않는 손(시장의 가격조절기능)의 역할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효율성이라는 가치가 무역에서 강조되며 결과적으로 개도국들은 무역의 혜택을 향유할 수 없다. 게다가 개도국의 생산자들의 노동가치가 저평가 되어 있기 때문에 이들이 충분한 보상을 받을 수 없다. 공정무역은 바로 자우무역의 이러한 한계를 비판하면서 등장했다.

Ⅲ. 공정무역은 자유무역을 어떻게 극복하고자 하는가?

공정 무역에 대하여 가장 널리 알려진 정의는 세계공정무역기구(World Fair Trade Organization, WFTO)가 밝힌 것으로, 이에 의하면 공정무역은 국제무역의 더 공정함을 추구하는 대화, 투명성 그리고 존중에 기초한 무역관계이며 주류에서 배척된(특히 개도국 및 후진국의) 생산자와 노동자에게 보다 나은 거래 조건을 제공하고 그들의 권리를 보장함으로써 지속가능한 발전에 공헌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공정무역이란 제 3국 생산 제품에 대해 정당한 가격을 보장해 주고, 이를 통해 제3국 생산자 및 노동자들의 자립을 돕는 무역형태이며 공정무역제품은 이러한 공정무역을 통해 거래되는 제품이다. 제 3국 생산자나 노동자들에게 단순히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공정성과 투명함, 존중 등을 기반으로 개발도상국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돕는 거래의 형태를 의미한다.

이러한 의미와 목적을 가진 공정무역은 일반적으로 국제무역이 저개발국이나 개발도상국에 혜택이 된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현재 또는 기존의 국제무역은 공정하지 않기 때문에 이를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이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1. 공정무역 운동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보면, 무역이 경제성장의 가장 강력한 동력이지만 동시에 경제적 불평등을 야기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다국적 기업들은 저개발국의 취약한 노동규제나 값싼 노동력 활용만을 위하여 저개발국의 하청공정을 설립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저개발국의 환경이나 전통문화가 파괴되고 어린이에 대한 노동력 착취, 농산물 시장 가격의 급락 등을 야기함으로써 오히려 저개발국의 경제발전이나 성장에 장애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2. 또한, 저개발국의 허술한 환경규제나 노동기준에 따른 환경파괴 산업이나 제품, 열악한 노동환경 등에서 생산되는 제품은 대부분 저개발국으로 전파되었고, 저개발국과 선진국 사이의 정치적 영향력이나 생산능력, 기술능력, 경제규모에서 많은 격차를 보이고 있어서 기존의 자유무역은 선진국과 저개발국이 동등한 입장에서 이루어지기 보다는 사실상 빈국과 부국 사이의 이루어지는 강압적인 형태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선진국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무역체제가 형성되었다고 비판하고 있다.

3. 한편, 선진국들 농산물을 중심으로 자국 생산자에 대하여 대규모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으며 다국적 기업을 중심으로 하는 생산 및 분배의 전 세계적 확장에 따라 제품의 가격 경쟁은 더욱 치열해 지고 이 결과 저개발국의 농민들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가격을 더 떨어뜨릴 수밖에 없고 선진국의 보조금 지급에 의한 세계 농산물의 과잉생산으로 인한 가격 폭락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결국, 현재의 세계화는 빈곤을 악화시키고 부자와 선진국만을 더 부유하게 하여 부자와 빈자 그리고 선진국과 후진국 사이의 격차를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으며, 선진국과 후진국 사이의 경제규모와 정치적 영향력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협상력의 차이에 의하여 불공정한 교역조건이 형성되고 이에 따라 자유무역 하에서 제3세계 국가들이 당면하는 국제무역의 교환조건은 점점 더 불리해지게 된다.

공정무역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시작되었다. 공정무역의 시작은 1946년 미국의 ‘텐 사우전드 빌리지’ 같은 시민단체나 종교단체가 제3세계 주민들이 만든 수공예품을 주먹구구식으로 사다팔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0년대에는 영국의 Oxfarm이나 네덜란드의 Organisatie 등과 같은 비정부조직에서 ‘원조 대신 무역을’이란 구호 아래 ‘대안무역’ 운동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공정무역이 지금처럼 ‘사업’의 꼴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공정무역 커피의 대명사인 ‘막스 하벨라르’가 등장한 1980년대부터다. 주민들과 함께 커피협동조합 운동을 벌이던 프란스 판 데어 호프 신부는 중간상인을 배제하고 지역 농부들이 생산자협동조합을 만들게 했다. 막스 하벨라르의 성공 이후 독일의 ‘트란스페어’, 영국의 ‘페어트레이드재단’ 등 공정무역 업체들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국제적인 움직임으로는, 1987년 유럽의 11개국이 참여한 유럽공정무역협회(EFTA), 1989년 70개국, 300여 조직이 가입한 세계공정무역연합(IFTA), 1994년 공정무역 상품을 판매하는 월드샵 네트워크인 유럽월드샵네트워크(NEWS), 1997년에는 공정무역 제품의 표준, 규격 설정, 생산자 단체 지원, 관리 감독등을 위하여 세계공정무역인증기구(Fairtrade Labelling Organizations Internationl)를 발족시켰다. 이 네 단체는 국제적인 공정무역 운동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단체들의 앞 글자를 딴 FINE라는 이름 하에 공동으로 활동하고 있다.

FLO에 의하면 2009년 827개의 인증 생산자 조직, 60개국에서의 공정무역 생산자가 있으며, 전세계 70개국 이상에서 27000개 이상의 공정무역 제품이 판매되고 있다.

WFTO, FLO는 2009년 공동으로 공정무역 원칙 헌장을 발표함으로써 자유무역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였다.

(1)공정무역 제품 생산자들이 전통적 생산방식으로 공동체의 사회적 이익 실현을 돕는다는 것을 홍보함으로써 주류에서 배제된 생산자들에게 시장접근 기회를 제공하고,

(2)자원보호나 미래의 투자에 필요한 직접적 간접적 생산비용을 모두 고려한 무역조건을 제시함으로써 지속가능하고 공정한 무역 관계를 정립하고,

(3)공정무역 생산자들에게 지식과 기술, 자원 개발을 지원함으로써 역량 구축 및 강화를 도모하고,

(4)소비자들에게 사회 정의의 필요성과 변화의 기회를 알리는 소비자 인식 강화 및 지원 활동을 펼치고,

(5)공정무역의 생산자와 구매자들은 모두 공정무역의 의의와 역할, 역량 등에 대하여 동의하는 암묵적인 사회적 계약으로서의 공정무역을 구축한다.

또한 IFTA에서는 다음의 열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1)경제적으로 불이익을 받는 생산자들을 위한 기회의 창출

(2)공정한 거래를 위한 투명성과 책임 제고

(3)생산자 자립을 위한 역량강화

(4)생산 과정, 상품 정보 공개

(5)공정한 가격의 지불

(6)남녀 구분 없이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불받는 양성 평등 확립

(7)건강하고 안전한 작업환경 제공

(8)아동 노동 금지 및 최소화

(9)친환경적인 생산 방식 적용을 통한 환경 보호

(10)상호존중과 신뢰 및 연대를 바탕으로 한 공정무역 조직과 생산자의 지속적, 장기적 관계 형성

이러한 원칙들은 공정무역의 목적과 깊은 연관을 갖는다. 공정무역이 주장하는 목적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생산자 및 노동자의 생활 개선

저개발국 생산자들의 시장접근 개선 및 생산자 조직 강화, 더 나은 가격과 거래의 연속성 제공을 통한 생산자들의 생활수준 개선, 토착민이나 여성에 대한 개발 기회 제공, 아동 보호 등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저개발국 생산자 및 노동자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중심으로 하는 경제개발 및 발전을 시도

(2)소비자들의 소비행위가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인식시킴으로서 소비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유도하고, 전통적인 국제무역의 규칙이나 관습이 변해야 함을 홍보

(3)인권이나 환경 및 경제적 안전을 보호 하는 것

그렇다면 공정무역은 그 원칙과 목적대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사람마다 다르게 대답할 것이다. 잣대가 다르기 때문인데, 위에 언급한 공정무역의 의도를 그 잣대로 삼으면 답은 좁혀진다. 통상적인 커피 거래에 따른 이익 배분을 보면, 생산자는 최종 가격 중 1% 이하에서 7%까지를 받는다. 대부분의 이익은 개발도상국의 중개인이나 선진국의 대기업이나 소매업자에게 돌아간다. 공정무역은 이러한 불공평한 무역구조에 조그마한 구멍을 낸다.

1. 공정무역은 "공정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를 이루기 위한 대화와 투명성, 상호 존중에 기초한 무역 파트너십"을 의미한다. '원조가 아닌 무역을!'이라는 구호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공정무역의 가장 큰 사명은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노동의 대가가 공평하게 지불되는 일자리를 제공하는 데 있다. 지속 가능한 일자리를 통해서만 스스로의 힘으로 빈곤을 극복하고 자립을 이룰 수 있는 힘을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2. 공정무역은 친환경 무역이기도 하다. 친환경 농법과 자연 소재를 이용한 전통 기술을 장려하여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대안적 발전을 추구한다. 공정무역 조직들은 국제 무역의 관행과 규칙을 변화시키기 위한 캠페인을 이끄는 한편, 사람을 최우선에 두는 비즈니스가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음을 실제로 보여줌으로써 무역이 가야 할 따 다른 길을 제시하고 싶어 한다.

3. 공정무역은 제3세계의 가난한 생산자들에게만 이익이 돌아가는 무역이 아니다. 공정한 거래의 다른 쪽 파트너인 소비자들은 노동 착취, 환경 파괴, 문화의 동질화에 의존하지 않는 물건을 구매함으로써 공정한 지구촌을 만드는 일에 참여할 수 있게 되고, 중간착취를 배제한 직거래를 통해 보다 좋은 가격에 안전한 먹거리를 살 수 있게 된다.

4. 공정무역이 주장하는 것은 '생산자와 소비자의 새로운 만남'이다. 이윤추구를 위해 인간의 삶 자체도 상품화시켜 버리는 시장의 반생명성과 비인간화에서 벗어나, 공정무역은 물건을 만드는 사람과 사는 사람 사이에 새로운 소통의 길을 연다고 주장한다.

5. 국제 무역에서 가장 불리한 위치에 있는 생산자들을 위한 공정한 일자리 제공이라는 공정무역의 원칙에서 가장 먼저 고려되는 것이 여성과 원주민이다. 거래 대금의 50%를 미리 지불하여 원료 구입비와 운송비를 사전에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 선불금 제도도 재정적으로 취약한 여성 생산자들을 돕는 수단이 된다. 

공정무역연합에 따르면, 공정무역 수공예품을 만드는 장인의 70%가 여성이며 이 여성들의 대부분이 가족의 유일한 소득자라고 한다. 작업장까지 먼 거리를 걸어가야 하고 위험한 노동 조건에서 장시간 일해야 하는 공장과 달리, 공정무역 생산자조합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인격적 관계, 안정적 수입, 가정과 지역 사회에서의 지위 향상에 힘입어 여성으로서의 주체성을 회복할 수 있다.

여성에게 미친 공정무역의 효과는 지역 공동체 전체로 확산된다. 유엔 식량농업기구는 여성이 소득을 얻고 수입을 직접 관장하게 되면 이를 가족, 특히 아이들을 위해 사용하는 경향이 있고, 여성에서 권리를 부여하는 것은 가족의 영양 상태를 개선하고 식량의 생산과 분배를 증진하며 지역의 취약한 주민들의 생활 조건을 개선하는 데 핵심이라고 지적한다.

Ⅳ. 공정무역은 자유무역의 대안이 될 수 있는가?

지금까지 우리는 공정무역이 자유무역의 어떠한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으며, 또 이를 어떻게 극복하고자 노력했는지 살펴보았다. 많은 이들은 앞에서 설명한 공정무역의 원칙들과 활동들을 바탕으로 공정무역이 착취에 기초하는 현재의 자유무역을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과연 공정무역이 자유무역의 대안이 될 수 있는가? 공정무역은 과연 ‘공정’한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공정무역은 자유무역이 야기했던 불공정한 무역 구조와 이로 인한 불균등 발전이라는 모순을 해결할 수 없다. 이는 공정무역이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를 건드리기보다는(생산의 문제, 무역 구조의 문제) 선진국 중산층 이상 소비자의 선의와 윤리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필연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1. 공정무역은 저개발 국가의 산업구조 다각화를 방해한다.

공정무역이 다루고 있는 상품은 주로 1차 산업, 즉 노동집약적 산업에서 생산되는 상품들이다. 그리고 이 상품들을 생산하는 이들은 국제적 무역구조에서 노동집약적 산업을 담당하는 저개발국가의 노동자들이다. 공정무역 캠페인은 공정무역의 정당성을 설파하기 위해 커피 농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나 초콜릿 공장에서 일하는 어린 아이들이 처한 처참한 현실을 보여준다. 저개발국가의 노동자들이 생산하는 상품 중 일부의 가격을 높여 이들 노동자(1차 생산자)에게 더 많은 몫이 돌아가게 해야 한다는 것이 공정무역론자들의 주장이다. 따라서 공정무역 상품의 높은 가격은 일종의 원조, 자선의 성격이 강하다. 공정무역론자들은 원조가 저개발국의 선진국으로의 종속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정치적인 이유로 원조가 이용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그리고 그냥 돈을 퍼다 주는 원조보다 스스로 생산하여 제 값을 받고 교환할 수 있는 공정무역이 빈곤을 해결하는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물론 직접적인 원조와는 다르게 공정무역은 정치적인 의도로 이용될 가능성이 낮다. 하지만 저개발국가가 선진국에게 종속될 수 있는 위험성은 여전하다. 직접적인 원조와 다르게 기능할 뿐이다. 공정무역은 1차 생산자들을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묶어버린다. 예컨대 공정무역의 혜택을 보는 1차 생산자들은 계속 커피 생산만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산업 구조의 측면에서 저개발 국가가 겪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 그리고 선진국과 저개발 국가 사이의 불균등 발전의 원인은 무엇인가? 바로 저개발국가의 생산자들이 1차 상품 생산에 종사하기 때문에 산업 구조가 다각화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비교우위는 산업 구조가 어느 정도 다각화되어있는 국가를 가정하고 전개되는 이론이다. 그렇기 때문에 산업 구조가 다각화 되어 있지 않은 후진국과 선진국 간의 무역은 비교우위보다는 일방적인 착취의 모습으로 드러나기 쉽다는 것이 비교우위의 난점이자 비교우위를 근거로 이루어지는 자유무역이 현실에서는 윈윈이 아니라 제로섬으로 나타나는 이유 이다. 저개발국가의 농민과 노동자들은 공정무역의 대가로 돈을 조금 더 받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커피만 생산하고, 초콜릿만 생산하게 될 것이다. 산업 구조가 다각화되거나 경제 발전을 이룰 길은 없으며, 선진국 중산층 소비자들의 ‘선의’에만 의존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임금을 500원 받다가 1000원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불균등 발전의 모순을 해결하려면 산업 구조, 더 나아가 이를 기반으로 한 국제 무역 구조가 바뀌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2. 공정무역으로는 현재의 불공정한 무역구조를 바꿀 수 없다.

공정무역이 저개발 국가들의 종속을 심화하고, 산업구조의 다각화와 경제 발전을 저해한다는 사실은 왜 저개발 국가들이 커피와 초콜릿을 생산하게 되었는지를 고민하면 더욱 분명해진다. 커피, 바나나, 초콜릿, 차 등의 기호품 소비는 20세기에 선진국에서 대중적 유행이 되었다. 공정무역이 소비자들의 ‘선의’에 기초할 수 있는 이유는 선진국 소비자들이 이러한 기호품들에 대한 수요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호품들이 생산된 역사는 아프리카, 남미 등지의 플랜테이션 노예농장과 연관이 있다. 제국주의 국가들은 식민지를 경영하면서 식민지 국가를 식민본국의 기호품 소비를 위한 단일경작 노예농장으로 바꾸어버렸다. 이러한 역사는 20세기 중반에도 계속된다. 선진국들은 가난한 나라들의 경제발전을 돕는답시고 차관을 대주고, 엄청난 고금리를 요구했다. 가난한 나라들은 빚을 갚기 위해, 식민지 시절에 건설된 플랜테이션 농장을 기반으로 생산하는 상품에 특화를 해야 했다. 자국의 식량 공급을 파괴하면서 선진국 시장에서 돈이 되는 작물의 단일 경작으로 농업 구조를 바꾸어버린 것이다.

이런 와중에 공정무역론자들이 나타나 옛날 식민지 시대에 플랜테이션 경영자들이 저지른 죄악과 지금 다국적 기업들이 계속 저지르고 있는 죄업을 해결하겠다며 원래 받던 돈보다 20~30% 값을 더 주겠다고 말하고 있다. 공정무역론자들의 ‘선의’와는 별개로, 공정무역은 이러한 역사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며, 근본적인 무역 구조의 문제를 은폐한다.

공정무역론자들은 저개발국의 농민, 노동자들이 노동에 대한 ‘제 값’을 받지 못해 가난하게 살아간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절반만 맞는 말이다. 식민지 시대부터, 아프리카와 남미 등지의 저개발 국가들은 만성적인 식량 위기에 시달려 왔다. 돈이 없어서 쫄쫄 굶고 가난한 것도 맞지만, 그 이전에 식량 자체를 자급자족할 수 없는 산업 구조를 가지고 있다. 선진국 시장에 돈이 되는 작물만 단일 경작하다보니 그 나라 국민들이 수급해야 할 식량을 생산하지 못한 것이다. 단일경작 수출은 변덕스러운 국제 식량시장에 해당 지역 농민과 노동자들의 운명을 맡기는 위험천만한 일이다. 그러나 공정무역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농민과 노동자들이 커피와 초콜릿을 제 값을 받고 판다고 해도, 그 돈으로 자신의 식량은 어디론가부터 수입해야 한다. 곡물가격의 변동이 심한 국제시장에 자신의 운명을 맡겨야 한다는 점은 여전하다. 공정무역은 이러한 상황을 악화시킨다. 수출 의존, 수출용 단일경작 체제를 바꾸지 않는 한 공정무역은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없을뿐더러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자급의 길을 선택해 살아야 할 현지 주민들에게 아득한 식민지 시절부터 원주민 자신들의 필요가 아니라 식민주의자들의 취향과 착취수단으로 재배한 커피 농사를 계속 짓게 만들 공정무역이 과연 공정한 것일까? 공정무역은 세계 무역의 구조를 바꿀 수 없으며, 오히려 수탈적인 세계 무역구조를 미화하고 근본적인 문제를 은폐하는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다.

3. 공정무역은 자유무역에 포섭될 가능성이 높다.

공정무역이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공정무역이 이윤 극대화라는 기존 자유무역의 한 형태로 포섭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다국적 기업들마저도 공정무역 로고를 내세우며 본인들이 윤리 경영을 하겠다고 말한다. 공정무역론자들은 이것이 공정무역의 성과라고 말한다. 대기업을 움직였다는 것이다. 이는 애초에 공정무역 운동의 많은 부분이 대기업 및 주류 유통 시스템과의 협력을 마다하지 않으면서 주류 시장에 진입하고 국제 무역의 관행을 보다 건전화하려는 시도에 주력했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발상이다. 그러나 공정무역이 ‘이윤보다는 사람을’ 추구하는 반면에 대기업은 이윤 극대화를 위해 공정무역을 이용한다. 대기업들의 공정무역 참여로 인해 이제 공정무역이 보호하려던 저개발 국가들의 전통, 환경 같은 가치들은 부차적인 것으로 내몰리고 공정무역이라는 이미지를 바탕으로 한 수익이 공정무역의 핵심으로 부각될 가능성이 커졌다. 기업들은 기업 브랜드나 이미지 쇄신을 위한 생색내기 용으로 공정무역을 이용하고, 일종의 마케팅 전략으로 활용한다.

공정무역론자들은 공정무역 시장이 점점 더 커지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이는 공정무역의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이들을 설득하는 논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만일 대기업들이 공정무역에 참여한 상태에서 공정무역 시장이 점점 더 커지면 어떻게 될까? 아마 대기업들이 자본력이 약한 공정무역 기업들을 밀어내고 시장을 나눠먹기 하지 않을까? 공정무역이 시장에서 경쟁하는 한, 그리고 그 시장에 대기업들이 들어온 이상 피할 수 없는 결과이다. 그렇게 되면 대기업들이 공정무역 로고를 사용하면서 가격 프리미엄을 부여한 더 비싼 커피와 더 비싼 초콜릿을 파는 것과 공정무역이 다를 것이 무엇인가?

대기업들은 자신들이 직접 공정무역을 해도 손해 볼 것이 없다. 대기업들이 1차 생산자들에게 더 많은 가격을 쳐주니 이전보다 더 공정하고 윤리적으로 바뀌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비용은 소비자들이 부담한다. 자유무역의 문제는 다국적 대기업들이 저개발 국가의 노동자들을 착취한다는 것이 아니었나? 이 착취를 해결하려면 다국적 대기업들이 가지고 가는 이윤의 몫 중 일부를 저개발국가의 노동자들에게 내놓게 해야 한다. 그러나 공정무역에서 발생하는 상대적인 고비용, 즉 더 높은 가격은 기업이 아니라 소비자가 부담한다. 공정무역은 대기업과 이들이 주도하는 무역 구조를 전혀 위협하지 않는다. 오히려 계속 착취를 하면서 공정한 기업이라는 이미지도 얻으면서 그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할 수 있다.

1960년대 미국에서 히피들은 자본주의가 상품으로 만들어내지 않는 방식의 스타일을 추구함으로써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반문화운동을 펼쳤다. 이에 대한 자본가와 대기업들의 대응은 간단했다. ‘히피룩’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미국 제국주의에 저항한 체게바라마저 스타벅스 로고로 만들어버리는 것이 자본가들이다. 공정무역도 마찬가지이다. 자본주의의 이윤 극대화 논리는 공정무역을 자유무역의 대안이 아니라 하나의 상품으로 만들어버리고, 그 결과 공정무역이 추구하는 가치들은 이윤에 묻혀버리고 말 것이다. 공정무역은 자유무역의 대안으로 작동하지 않고, 자유무역으로 포섭되어 버릴 것이다.

Ⅴ. 결론

공정무역은 자유무역의 대안으로 등장했다. 분명히 실질적인 성과도 이루어냈다. 저개발국가의 생산자들에게 돌아갈 몫을 늘리는 데 성공했으며, 아동노동이나 여성노동의 문제를 개선하는 데에도 성과를 이루었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생산자들이 처한 현실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일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다. 공정무역으로 자유무역의 폐해를 없애고 기존의 국제 무역 구조를 대체할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내는 것은 역부족이다. 윤리적 소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저개발국가가 자급할 수 있도록 내수시장을 갖추고, 다각화된 산업 구조를 구축하는 것이 아닐까. 핵심은 소비가 아니라 생산이다.

참고문헌

김문성, “윤리적 소비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레프트21, 제42호, 2010.10.16.

김인준, 이영섭, 『국제경제론』, 제 6판, 다산출판사,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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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건희, “공정무역이 제3세계의 빈곤을 해결할 수 있을까?”, 레프트21, 제6호, 2009.05.23.

배희정,「선진국의 경험이 한국의 공정무역에 주는 시사점」, 숙명여자대학교 국제관계대학원 석사논문,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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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규석,『천규석의 윤리적 소비』, 실천문학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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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조본좌 조본좌 2013.01.18 23:49

과제

 


라깡의 재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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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언어학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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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서론


어떤 사상과 철학이 ‘순수하게 독창적’이라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어떤 사상이든, 어떤 철학이든 이전의 사상과 철학의 영향을 받고, 이를 계승하거나 비판적으로 수용하기 마련이다. 기존 철학과는 다른 ‘체계’를 구축한 ‘정신분석학’도 예외는 아니다. 프로이트의 뒤를 이은 정신분석학자 라캉 역시 다른 철학을 수용함으로써 정신분석학의 새로운 계기를 마련했다.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는 라캉의 명제에서 알 수 있듯이, 그가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철학은 ‘언어’학이다. 그리고 이때의 언어학이란 소쉬르의 구조주의 언어학을 칭한다. 라캉은 기표-기의 등 소쉬르의 몇 가지 개념을 차용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소쉬르의 구조주의 언어학의 체계를 정신분석학에 도입했다.


우리는 라캉이 정신분석학에 기여한 바를 ‘프로이트로의 복귀’로 정리할 수 있다. 라캉은 프로이트 이후의 자아심리학에 맞서 프로이트로의 복귀를 시도했다. 그 복귀란 다수 정신분석 학파에서 치료 과정 중 주체가 보인 신체적 반응들에 부여된 중요성과는 달리 그 동안 종종 과소평가된 말의 실천적 중요성을 되찾는 것이다. 자아심리학은 동일시적인 자아, 통일적 자아를 통해 주체들을 자아라는 틀에 귀속시키고 그를 사회에 통합하려 한다. 그러나 라캉은 정신분석이 역할이 주체를 자아 안에서 대상화하는 상상적 동일시들을 충만한 말을 통해 상징화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정신분석은 주체를 그의 상상적 동일시들로부터 탈-동일시 시켜야 한다. ‘언어’는 이 지점에서 라캉에게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1. “정신분석학이 존재한다면 언어란 무엇인가?”


정신분석학이란 무엇인가? 정신분석학이 기존 철학에 파란을 일으킨 이유는 ‘무의식’에 대한 연구 때문이다. 기존 철학은 인간은 자기의식을 가지고 이에 따라 행동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정신분석학은 인간에게 의식이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며, 사실 인간의 행동을 지배하는 것은 무의식이라는 과감한 명제를 제시했다. 프로이트는 히스테리 환자 안나 O의 사례분석을 통해 정신분석을 시작했다. 안나 O는 발작증상으로 프로이트에게 치료를 받는데, 놀랍게도 안나 O가 자신이 겪었던 일을(그러나 기억나지 않았던) ‘언어로’ 표현하자 그의 발작증상을 사라졌다. 이를 두고 프로이트는 언어로 표현되지 않은 것이 무의식적 행위, 즉 신체적 증상으로 바뀌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프로이트 역시 무의식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의, 정신분석에 있어서의 언어의 중요성에 대해 알고 있었다.


라캉은 ‘프로이트로의 복귀’를 시도하면서 언어를 정신분석학의 핵심 개념으로 내세운다. 프로이트만 해도 무의식이 원초적이거나 본능적인 무엇인가로 보았다. 프로이트의 뒤를 이은 국제정신분석학회의 정신분석학자들이 무의식을 생물학적 결정론, 행태주의로 해석하는 데 어느 정도 단초를 제공했던 셈이다. 라캉은 이에 강력히 반대하며 자신이야말로 프로이트의 진정한 후계자라고 주장한다.


이런 라캉이 국제정신분석학회의 학자들과 자신을 구별 짓기하며 내세운 것이 바로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는 명제였다.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고, 언어화된 무의식을 가진 인간은 상징적인 질서, 타자의 질서, 언어적으로 조직된 질서에 편입되어 살아간다. 무의식은 빙산의 일각처럼 의식 아래 잠들어있지 않는다. ‘실재’에 문제가 생길 때, 무의식은 의식 위로 솟아오르며 꿈이나 증후 등을 통해 자신을 표현한다. 그리고 그 표현방식은 언어의 법칙(환유, 은유 등)을 따르며 우리는 이 언어의 법칙을 분석함으로써 무의식을 읽어낼 수 있다.


정리하자면, 정신분석학에서 언어가 중요한 이유는 세 가지이다. 첫째, 꿈이나 증후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무의식이 언어의 모습으로 현현한다. 둘째, 정신분석의 치료 역시 언어를 통해 이루어진다. 셋째, 언어란 곧 인간이 살아가는 현실의 상징계와 같다.『언어의 사랑』이라는 저서를 쓴 밀너가 다음과 같은 질문은 던진 이유는 이 때문이다. “정신분석학이 존재한다면 언어란 무엇인가?”


라캉 이전에도 몇 몇 인물들이 정신분석학과 언어의 만남을 주관하고자 했다. 구조주의 언어학의 선구자 소쉬르의 둘째 아들 레이몽 드 소쉬르가 그런 인물 중 한 명이다. 레이몽은 제네바대학에서 베버 교수의 지도 아래「정신분석학 방법」이라는 이름의 박사논문을 썼는데, 이 논문을 감수한 이가 바로 프로이트였다. 실제로 레미몽은 그의 박사논문에서 소쉬르의『일반언어학 강의』를 인용하기도 했다. 라캉의 전기학자 루디네스꼬에 따르면 레이몽은 소쉬르의 후계자로 은유-환유에 대해 연구한 언어학자 야콥슨과 만난 적이 있다고 한다. 레이몽이 야콥슨과 만났을 때 그는 ‘정신분석학과 언어학의 공통된 연구 영역을 개척해보고 싶다’는 의견을 내비추었다고 한다.


소쉬르의 제자인 쎄셰에 부인은 실제로 언어학과 정신분석학을 연결시키려는 시도를 했다. 그는 저서『한 정신분열증 환자의 일기』에는 ‘상징적 실현’이라는 방법을 통해 환자를 치료했다고 설명한다. 이 책에서 그는 소쉬르의『일반언어학 강의』를 인용하며, 소쉬르가 창안한 개념인 기호나 상징, 기표, 기의, 기표-기의 간 자의성 등에 대해 말한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언어학과 정신분석학의 만남을 시도한 장본인은 라캉일 것이다. 그는 소쉬르의 구조주의 언어학을 수용해 정신분석학을 새롭게 정립했다. 라캉과 소쉬르는, 무의식과 언어는 어떻게 만날 수 있었을까? 라캉정신분석학의 주요 개념들을 통해 정리해보자.


2. 라캉과 소쉬르, 무의식과 언어의 만남.


① 기표와 기의


소쉬르가 내세운 구조주의 언어학과 전통 언어학은 큰 차이가 있다. 만일 소쉬르의 언어학과 전통 언어학이 차이가 없었다면, 라캉은 자신의 정신분석학에 소쉬르의 언어학을 차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언어학은 한 사물을 지시하는 이름인 ‘기호’를 다룬다. 전통 언어학은 이러한 기호를 추론하는 언어의 지시론적 모델을 발전시켰다. 소쉬르 역시 기호를 연구한다. 그는 기호를 기표와 기의로 나누었다. 기표란 인간의 목소리에 의해 표현되는 것이다. 그는 이 기표를 ‘청각 영상’이라 표현한다. 내가 ‘고양이’라고 소리 내어 기표를 말하지 않아도, 마음속으로 ‘고양이’라고 말한다고 해도 기표는 기표다. 이는 기표가 단순히 목소리가 아니라 ‘청각 영상’이기 때문이다. 기의란 그 기표가 지시하는 개념이나 심적 관념이다. 소쉬르는 기표와 기의 간의 관계가 자의적이라고 주장했다. 고양이를 가리키는 말이 ‘고양이’가 된 것에는 어떤 필연적인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소쉬르가 전통 언어학에 비해 혁명적인 이유는 기표보다 기의를 중시하는 전통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그는 기표에 자율성을 부여하고, 기표를 기의로부터 자유롭게 한다. 기표는 기의를 단순히 지시하는 역할에서 벗어난다. 기표가 기의를 표현하는 필연적인 이유 같은 것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소쉬르는 기호학적 가치, 즉 기표와 기의의 관계가 매순간 변할 수 있다는 ‘가변성’을 제시한다. 소쉬르에 이르러, 기표는 더 이상 기의에 종속되지 않으며 자율적인 체계를 갖는다.


<그림 1 라캉에게 기표와 기의>

기표 S

-------------------------------------------------------------------------------

기의 s


라캉은 소쉬르에서 더 나아간다. 그는 세미나 3권에서 그의 세 가지 언어개념을 요약한다. 첫째, “사물들의 질서는 트레이싱처럼, 말의 질서 위에 덧놓인다.” 둘째, “기의는 또 다른 기의를 통해서만, 또 다른 의미작용을 참조함으로써만 자신의 목표물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함으로써 커다란 전진이 이루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이상 두 가지의 언어 개념은 소쉬르의 개념에 상응한다. 그러나 라캉은 이어 말한다. “이것(두 번째 개념)은 단지 첫 걸음일 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또 다른 걸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기표에 의해 구조화되지 않는다면 어떤 의미도 가능하지 않으리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라캉은 이로써 소쉬르를 인정하지만 소쉬르에서 벗어난다. 소쉬르는 기의들의 상호의존, 언어의 변별적 구조를 주장하는 데 그치지만, 라캉은 기의에 대한 기표의 우위를 주장한다. 정리하자면 라캉은 소쉬르의 기호 개념을 채택하면서도 동시에 세 가지 근본적인 방식으로 이를 전복한다.


소쉬르는 이전의 전통 언어학자들과는 달리, 기호의 두 가지 특징을 제시한다. 첫째, 기호는 체계의 부분으로서 그 체계와 분리될 수 없다. 즉 하나의 기호에 내재하는 의미작용은 모든 기호들 사이에 존재하는 대립을 통해서만 출현하는 차이적 체계이다. 소쉬르는 기호의 의미가 언어 안에서 ‘기호’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차이나 대립에서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고양이(cat)는 모자(hat)와 매트(mat)가 아니고, 자유(free)는 나무(tree)나 연회(spree)가 아니다. 라캉은 더 나아가, ‘의미’는 서로 다른 기표들 간의 ‘차이’에서 발생하며, 기의는 이러한 끊임없는 차이, 기표의 미끄러짐의 ‘효과’로 정의된다. 사전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편하다. 우리가 어떤 단어의 의미를 찾고자 사전에서 그 단어를 찾으면, 그 단어는 다른 단어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져있다. 우리는 그 단어를 찾고, 또 그 단어를 설명하는 단어들을 찾는다. 하지만 결코 진정한 의미에는 도달할 수 없다. 기의에는 도달할 수 없다. 기표들은 다른 기표들로 끊임없이 대체되며. 이 차이를 통해서만 우리는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소쉬르는 기호의 음운론적인 성분과 개념적인 성분, 즉 기표와 기의가 서로 상응하는 방식이 자의적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기호에 특유한 언어적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언어적 구조 자체이기 때문이다. 기호의 두 성분 사이의 연결은 이 구조의 부차적 현상에 불과하다.


라캉은 세 가지 면에서 소쉬르의 언어학과 다른 기호 개념을 제시한다. 첫째, 기표는 논리적으로 기의에 앞서며 기의의 원인이다. 라캉에게 있어 기표 S가 대문자로, 기의 s가 소문자로 표기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또한 기표와 기의 사이의 “---” 표시는 장벽을 의미한다. 라캉에 따르면 기표를 통해서는 기의의 의미를 바로 찾을 수 없다. 기의의 개념적 본성은 기표들의 의미화 작용의 산물이다. “기표는 단지 의미작용을 위한 어떤 봉투나 용기를 제공하는 게 아니다. 기표는 그것을 분극화하고, 구조화하고, 존재케 한다.”(세미나 3권) 둘째, 라캉에게 있어 기표와 기의는 일대일로 상응하지 않는다. “기표와 기의의 관계는 일대일 대응과는 거리가 멀다.”(세미나 3권) ① 언어는 시간이 경과하면서 진화하며, 기표는 역사적으로 상이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② 문장을 구성하는 기표적 단어들은 문장의 층위에서 보면 그 자체로 아무 의미작용도 하지 않는다. 의미작용은 문장이 구성된 이후에야 발생한다. 이런 의미에서 라캉은 기표와 기의의 관계가 항상 유동적일 수 있다고 말한다.(세미나 3권) 이는 소쉬르적인 통일성에 대한 반론이다. s와 S 사이의 횡선은 실제적 분할인 것이다.


셋째, 라캉에게 있어 언어의 구조주의적 접근은 ‘주체’를 추적하는 일에 도움이 된다. 구조와 주체는 상호배제적이지 않다. 기표와 기의 사이의 간극은 주체가 기의의 주체일 뿐 아니라 기표의 주체라는 사실의 원인이다. 주체는 기표의 작용 때문에 분열된다. 그는 주체가 구조를 억압하고, 주체가 구조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는 구조주의적 발상을 넘어서서 구조와 주체가 상호배제적이지 않다는 점을 역설한다.


이 모든 접근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라캉은 왜 소쉬르를 차용하면서 동시에 소쉬르에 반대하는가? 그는 소쉬르의 기표-기의 개념을 빌려 무의식을 분석하는 데 사용한다. 우리는 꿈이나 증후의 의미를 쉽게 알아차릴 수 없다. 그것은 억압되고 변형되어 있어,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 도달할 수 없다. 라캉은 꿈이나 증후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다양한 기표들이 어떻게 조직되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고 말하며 소쉬르를 수용하는 동시에 그를 극복한다.


② 은유와 환유


기표와 기의 개념에 대해 알았으니 이제 기표에 의해 발생하는 의미작용의 사슬들이 무의식에서 형성되는 방식을 분석하고, 어떤 언어법칙들에 따라 그것들이 의식적 의미작용을 하는지 산출하는 지에 대한 분석으로 나아가야 한다. ‘무의식은 언어와 같이 구조화되어 있다’는 말의 의미를 밝혀야 하는 것이다. 소쉬르가 언어의 계열체와 통합체로 의미작용을 분석하고자 했다면, 야콥슨의 영향을 받은 라캉은 인간이 인식하는 언어가 은유와 환유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은유와 환유라는 언어구조를 이해하면, 무의식의 구조를 이해할 수 있다. 은유와 환유는 다른 말로 하면 압축과 전치이다.(이 구별법은 프로이트가 사용하기도 했던 것이다.) 또한 은유와 환유는 소쉬르의 계열체, 통합체와 대응한다.


은유는 유사성에 의한 대체를 뜻한다. ‘내 마음은 호수다’라는 문장은 대표적인 은유법이다. 여기서 호수는 ‘고요함’, ‘잔잔함’이라는 의미를 대체한다. 고요함과 호수, 잔잔함과 호수 사이의 유사성이 은유다. 은유는 압축이다. ‘너를 향한 내 마음이 불타고 있어.’라는 문장에서. ‘불타다’는 ‘사랑하다’는 말을 대체한다. ‘불타다’와 ‘사랑하다’는 ‘뜨겁다’라는 공통요소를 함께 중첩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압축이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꿈은 은유로 이루어져 있다. 꿈에 등장하는 요소들은 원래 무의식의 욕망을 대체해서 나타난다. 소쉬르는 이에 대해 어떻게 말했는가? <표2>에서 나-너-우리, 너-나-그, 때리고 싶다-좋아한다-응원한다는 하나의 계열체이며, 서로 대체 가능한 말이다. (은유)


<표 2>

나 는 너 를 때리고 싶다

너 나 좋아한다

우리 그 응원한다


환유는 인접성에 의한 대체를 뜻한다. '한 잔 하자‘는 문장은 대표적인 환유법이다. ’잔‘은 ’술‘을 대체한다. 둘 사이에는 어떤 의미의 유사성이 없지만, 잔을 드는 것은 술을 마시기 전의 인접한 단계이다. 달을 보고 둥그런 얼굴을 떠올린다면 이미지의 유사성에 의한 은유이지만, 토끼를 떠올린다면 의미의 인접성에 의한 환유이다. 은유가 꿈의 언어라면, 환유는 증후의 언어이다. 증후는 무의식을 드러내지 못하고 인접되어 있는 다른 기표로 계속 치환된다. 소쉬르는 이에 대해 어떻게 말했는가? <표2>를 다시 보면, 나-는-너-를-때리고 싶다, 너-는-나-를 좋아한다, 우리-는-그-를-응원한다는 하나의 통합체이다.


③ 언어와 상징계


소쉬르는 기표와 기의 간의 자의성을 강조했다. 서로 관련 없는 기표와 기의가 결합해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회성이다. 언어란 사회적 규범이자 제도이다. 소쉬르는『일반언어학 강의』에서 언어가 사회적 제도라고 말한다. 사회 구성원들이 ‘그렇게 하기로 했기’ 때문에 그 기표는 그 기의를 표시한다. 소쉬르 언어학의 연구대상인 ‘랑그’는 사회적인 약속이며 모두가 따라야만 하는 규칙이다. 어떠한 개인도 이러한 언어 법칙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하나의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 법칙을 따라야 한다.


라캉은 소쉬르의 이러한 문제의식을 이어받지만, 언어를 단순히 사회성 정도로 파악하지는 않는다. 그는 ‘타자’와 ‘상징계’라는 개념을 등장시킨다. 언어는 소쉬르의 말대로 사회적 규범이나 제도 정도가 아니라.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그것을 따르지 않으면 정신병적 증세에 시달릴 수박에 없는 것이다. 상상계에 머물러 있던 어린 아이가 오이디푸스 과정을 거쳐 상징계에 들어서고. 비로소 사회 속의 하나의 인간으로 ‘탄생’한다. 인간이 무의식을 갖는 이유는 인간만이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며, 인간만이 상징계라는 질서에 편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상징계의 모든 존재는 그들 간의 차이를 근거로 성립하며, 이 차이에 의해 세계에 주체가 들어설 자리가 생긴다. 또한 상징계는 언어의 세계와 같다.


3. 의문점? 혹은.....


이러한 라캉의 체계는 좌파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수용되고 있다. 라캉을 정치적으로 독해하는 것은 오늘날하나의 유행이다. 야니 스타브라카키스는『라캉과 정치』라는 이름으로, 슬라보예 지젝은 라캉이 말년에 착안했던 ‘실재계 개념’을 통해서 말이다. 지젝은 혁명이란 바로 이 실재계가 도래하여 상징게가 뒤집어 지고, 새로운 상징계가 수립되는 순간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접근은 라캉이 구조주의적 접근만 모색하지 않고, 주체와 구조를 상호배재적으로 설정함으로써 구조의 극복 가능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가능하다. 하지만 실재계가 도래한다는 것은 마치 심판의 그 날을 기다리는 유대인의 심정과 무엇이 다른가? 이 지점에서 혁명과 현재 상징계의 전복을 꿈꾸는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점에서 다시 구조주의적 한계에 부딪치지 않는가?


과학자들이 만약 라캉을 읽는다면 쉽게 수긍하지 못할 것이다. 심리학자들이 정신분석학을 비판하는 것과 유사할 것이다. 예컨대 만일 우리가 정신병에 걸린다면 우리는 정신분석가를 찾아갈 것이 아니라 약을 먹어야 한다. 임상적 의미에서 정신분석이 치료 효과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실효가 없기 때문에 정신분석의 실효는 다한 것인가? 정신분석은 이에 대해 다른 답을 제시해야 한다. 정신분석은 치료성은 떨어질지 몰라도, 인간에게 ‘내가 왜’ 그런 정신병에 빠진 것인지에 대한 일종의 논리적인 체계를 제공한다. 그래서 환자가 그것을 ‘납득’하게 만든다. 오늘날 정신분석의 기능은 임상이 아니라 이 지점에 있지 않을까?


4. 결론

라캉의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라는 말에, 무의식과 언어가 어떻게 만나는지, 그리고 라캉은 소쉬르와 어떻게 만나는지에 대해 잘 요약되어 있다. 언어라는 상징계 속에 살고 있는 인간은 언어를 통해 세계를 인식하고, 판단한다. 그리고 인간이 인식하는 언어구조는 은유와 환유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간의 무의식도 그러하다. 무의식과 언어처럼 은유-환유의 형식으로 구조화되어 있으며. 우리는 이 언어구조를 분석함으로써 무의식을 분석할 수 있다.


참고문헌


로렌조 키에자,『주체성과 타자성 : 철학적으로 읽은 자크 라캉』, 이성민 역, 2012.

리처드 커니,『현대유럽철학의 흐름』, 임헌규, 곽영아, 임찬순 역, 한울, 1992.

이동성,「정신분석과 언어 : 라캉이론을 중심으로」, 東西言論, 제15집, 2012.02.

최용호,「언어학과 정신분석학 : 소쉬르에서 라캉으로, 라캉에서 소쉬르로 - 시니피앙에 관하여」, 불어불문학연구 제55집, 2003.

최용호,「라깡과 소쒸르 : ‘실재하는 것’에 대한 물음」,『라캉의 재탄생』, 창비, 2002.

페르디낭 드 소쉬르,『일반 언어학 강의』, 최승연 역, 민음사,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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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조본좌 조본좌 2013.01.18 23:48

1. 데카르트 철학의 목표

데카르트 철학의 최대 목표는 이성을 사용하여 철학적 진리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 철학은 지혜의 탐구를 의미하는데, 여기서 지혜란 모든 사물들에 대한 완벽한 지식이다. 비유하자면 도덕, 의학, 역학 이 나무의 가지라면 철학은 뿌리이다. 동시에 철학이란 실천적 가치이다.

데카르트의 철학이 근대철학의 시조이자 혁명적인 이유는 그가 과거와의 단절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그는 기존 철학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며 오로지 자신의 이성에만 의지하여 명석하고 판명된 것(확실한 것=지식)과 추측, 그저 그럴 듯한 것(데카르트는 이것이 스콜라철학의 책임이라 말한다.)을 구분한다. 하지만 그가 과거의 모든 것을 부정한 것은 아니다. 과거 몇몇 철학자들의 공로는 참된 것으로 인정했다. 다만 ‘올바른 방법을 통해’ 재발견해야한다는 것이다. 그의 공격하는 철학 사조는 회의주의이다.

데카르트는 철학의 이상이란 학문적으로 확립된 진리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체계를 구성하는 것이라 보았다. 모든 것을 관통할 수 있도록 질서 지워진 진리의 체계가 철학이며, 철학이란 통일된 전체로서의 학문을 형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와 비교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서로 다른 학문의 서로 다른 주제와 내용들이 서로 다른 방법을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 이에 반해 데카르트는 모든 학문을 포괄하는 대학문, 철학을 건설하고자 했다. 그렇다고 데카르트가 이미 제시된 진리를 단지 재배열하고 증명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는 올바른 방법의 사용이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진리를 알게 해준다고 생각했다.

물론 철학사가 코플스턴이 비판하듯이, 이러한 데카르트의 방법론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데카르트가 제시하는 수학적 방법이란 자명한 원리들로부터 이 원리들에 논리적으로 함축되어 있는 명제들을 연역해내는 작업인데, 연역이란 인과관계와 논리적 함축관계를 동일한 것으로 보아야만 한다. 이 경우 스피노자의 일원론적 체계를 채택할 수밖에 없으며, 형이상학과 논리학이 동일한 것이 된다. 또한 물리학은 어떠한가? 물리학의 진리가 연역될 수 있다면 물리학 실험은 전혀 쓸모없는 것이 된다. 물론 데카르트도 이 점을 인식하고 있었고, 자신의 실제적 연구절차와 이상을 조화시키려고 했다.

2. 데카르트의 방법과 원리

데카르트는 확실하고 손쉬운 규칙들을 제시하고, 이를 지키기만 하면 참, 즉 진정한 인식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때의 규칙이란 인간 정신과 별개가 아니라 인간 정신의 자연적 능력과 작용을 올바르게 하기 위한 규칙을 의미한다. 이 규칙을 작용하는 방법은 직관과 연역으로 구성되며, 연역을 직관으로 변형할 수 있다. 예컨대 제 1원리에서 직접 연역되는 명제가 있다고 하자. 그러나 제1원리 자체는 직관이며 그 결론은 연역이다. 연역의 확실성은 기억의 타당성에서 비롯되는 데, 추론을 반복함으로써 제1원리에 결론이 함축되어 있음을 직관적으로 파악함으로서 기억의 역할을 줄일 수 있다.

그런데 직관과 연역을 ‘방법’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이것은 규칙이 아니다. 방법은 두 정신적 작용을 올바르게 사용하기 위한 규칙들로 이루어지며 질서를 이루려는 것이다. 우리는 질서 있는 규칙을 지켜야한다. 그렇다면 규칙이란 무엇인가? 방법서설에 의거하여 살펴보자. 첫 번째 규칙. 조금도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 이외의 어떤 것들도 받아들이지 말 것. 이를 회의라 한다. 또한 방법이란 우리의 정신이 주의를 기울여야만 하는 대상들을 질서지우고 성향을 파악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복잡. 모호한 명제들을 단계적으로 단순한 것으로 환원해야 한다. 이는 2번째 규칙과 연관된다. 즉 두 번째 원칙이란 검토해야만 하는 각각의 어려움들을 가능한 한 많은 부분들로 나누는 것이다. 이를 분석. 분해. 발견의 원리라 한다. 그리고 세 번째 원칙, 인식에 이르는 길을 되돌아간다. 단계가 안 빠졌는지, 두 번째 명제가 첫 번째 명제에서 나온 것인지. 이를 종합. 합성. 혹은 ‘이미 알려진 것을 논증’하는 규칙이라 한다.

왜 우리는 분석하는가? 우리는 분석을 통해 단순한 본성들에 대한 직관에 이를 수 있다. 단순한 본성이란 무엇인가? 물체는 여러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는데, 우리는 물체를(물질적 본성, 연장성, 형태 등) 이러한 본성으로 이루어진 복합물로 파악하며 분석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형태를 더 이상 어떤 요소로 분석할 수 없다. 단순한 본성들이란 분석의 과정을 통하여 도달할 수 있는 궁극적 요소를 뜻한다. 형태, 연장성, 운동 등이 물질적 단순한 본성에 해당한다. 지적인 본성은 의지, 사고, 회의이며, 공통되는 본성은 현존, 단일성, 지속성이다.

요약해보자. 데카르트를 이해하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은 무엇인가? 최초에 모든 명제를 직관한다. 그리고 이러한 명제들을 통해 현존과 같은 단순한 본성이 추상화 과정에 의해 분리된다. 판단은 명제의 형식이며, 단순한 본성들 사이의 결합, 판별이라는 연결은 그대로 남는데, 이는 바로 명제들에 의해 확인된다. 그렇다면 단순한 본성들이 이상적 질서인가? 단순한 본성들을 존재에 관한 결론으로 연역할 수는 없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존재에 관한 명제로부터 신의 현존을 이끌어낸다. 그는 존재와 아무 관련이 없거나 존재와의 관련이 의심스러운 형이상학을 산출하길 바라지 않았던 것이다. 존재에 관한 명제 도입이 수학적 방법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한 발언은 수학의 역할을 과장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데카르트는 ‘원리’라는 용어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 원리는 하나의 동일한 사물이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언명과 같은 추상적 원리일 수 있다. 이 같은 원리에선 어떤 것의 현존도 연역될 수 없다. 또 원리는 현존을 확인하는 명제를 나타내는 데 사용될 수도 있다. 이러한 원리로부터 신, 자신을 제외한 피조물들의 현존이 연역된다.

그러나 그에 따르면 발견의 질서가 존재의 질서에 앞선다. 신이 앞선 게 아니라 발견의 질서에 따라 자기 자신의 현존이 앞선다. 자기 자신의 현존에서 신의 현존, 사물들의 현존을 발견한다. 즉 데카르트에 따르면 ‘나’가 있고 나서야 신이 있다. (과연 ‘나’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는 뒤에서 언급하도록 하겠다.) 비슷한 논리에 따라, 물리학이 형이상학으로부터 연역될 수 있다. 데카르트는 신이 창조하려고 선택하였을지도 모를 어떤 물질적 세계를 지배하는 법칙에 대한 지식과 실제로 신이 창조한 물질적 사물의 현존에 대한 지식을 구별한다. 분석을 통하여 단순한 본성 도달하고, 이로부터 일반 법칙을 도출해내는 것이다.

여기서 잠시 앞에서도 언급한 의문에 대해 짚고 넘어가자. 데카르트의 방법에서 경험, 실험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물리적 사물의 현존한다는 사실을 선천적으로 연역할 수는 없다. 자석의 존재는 경험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그러나 자석의 참된 본성을 규명하기 위해선 데카르트적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관찰들을 수집하고 이로부터 연역을 한다. 단순한 본성으로부터 연역한 다음 실험을 통해 일치하는지 불일치하는지를 확인한다.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데카르트는 일차적, 일반적 결과와 원리들, 개별적 결과를 구별한다. 전자는 어려움 없이 연역되지만 하나의 동일한 제1원리로부터(후자) 연역되는 무한한 결과들은 쉽게 연역되지 않는다. 그럼 우리는 실제로 발생하는 것과 발생할 수 있었지만 신에 의해 실제로 발생하지 않은 것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가? 그 구별을 위해 우리는 경험, 실험을 사용한다. 따라서 데카르트가 제시하는 범 수학주의(수학적 방법론이 옳다!)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실험과 감각, 경험을 인정한다 해도 순수한 연역이라는 데카르트의 이상은 남아있다.

데카르트의 또 다른 방법은 회의이다. 회의는 보편적이다. 의심할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하여 보편적으로 적용된다는 의미에서 보편적이다. 그러나 확실성에 도달하기 위한 준비 단계이며 의심할 수 없는 것을 의심스러운 것으로부터 구별한다는 점에서 방법적이다. 신뢰하지 않았던 것을 반드시 새로운 명제로 대체시킬 것을 목표 삼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잠정적이기도 하다. 회의의 범위는 모든 감각적인 것이다. 데카르트트는 우리가 잠잘 때 속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회의는 수학 명제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설령 마음대로 섞어 허구적인 것을 만들어 낸다 해도 이것을 구성하는 색깔만은 적어도 참 되다. 눈, 머리, 손 등의 일반적인 것이 공상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이것과는 다른 단순하고 보편적인 것은 실제로 존재한다. 이 단순하고 보편적인 것이란 무엇인가? 물질적 본성 일반 및 그 연장, 그리고 연장적 사물의 형태, 그것의 양, 즉 그것의 크기와 수, 그것이 존재하는 장소, 그것이 지속하는 시간 등이다. 따라서 자연학, 의학 및 복합적인 것을 고찰하는 모든 학문은 의심스럽지만, 단순하고 일반적인 것을 다루는 대수학, 기하학 등은 확실성을 담지하고 있다. 내가 깨어있든 잠들어 있든 이 더 하기 삼은 언제나 오이며, 사각형은 네 변밖에 가지지 못한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형이상학적 가설을 통해 수학 명제조차 회의 가능한 조건을 만들어낸다. 악마가 속이고 있다는 가정이다.

3. 나는 사유한다, 고로 존재 한다

앞에서 데카르트의 말대로, 내가 보는 모든 것은 거짓이라고 가정하자. 내 기억은 기만적이다. 나는 어떠한 감각도 갖고 있지 않으며. 물체, 형태, 연장, 운동 및 장소도 환영 이외에 다름 아니다.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다는 이 한 가지 사실 뿐이다. 그런데 이 확실한 사실을 나는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일까? 내 안에 다른 누군가 있다면? 누군가 나를 설득했다면? 설사 다른 누군가 있다 해도, 누군가가 들어설 ‘내’가 존재한다. 누군가 나를 설득했다 해도, 그가 설득할 ‘내’가 존재한다. 유능하고 교활한 악령이 나를 속인다 해도, 속일 대상인 ‘내’가 있어야 한다. 이렇게 이 모든 것을 세심히 고찰해 본 결과, ‘나는 있다, 나는 현존 한다’는 명제는 필연적으로 참이다.

나는 이 전에 나를 신체라고, 물체의 하나로 가정해왔다. 그러나 악신이 나를 속인다면 신체는 허구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사유한다는 것은 어떤가? 이것은 나와 분리될 수 없다. 내가 사유하는 동안, 나는 있다. 나는 현존한다. 나는 사유하는 것이다. 사유하는 것이란 의심하고, 이해하며, 긍정하고, 부정하며, 의욕하고, 의욕 하지 않으며, 상상하고, 감각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하는 ‘내’가 현존한다.

가장 판명하게 파악된다고 믿는 물체를 고찰해보자. 밀랍이 있다. 밀랍은 나름의 빛깔과 모양, 향기를 가지고 있다. 이 밀랍을 불 가까이로 가져가면 밀랍의 모든 것이 변한다. 그럼에도 밀랍은 여전히 밀랍이다. 왜인가? 내가 밀랍을 밀랍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밀랍에게 속하지 않는 특성들을 모두 지우고 나면 연장성, 유연성 및 가변성이 남는다. 이것들이 밀랍의 본질이다. 이는 오로지 정신에 의해 지각될 수 있다. 즉 물체조차 감각이나 상상력이 아니라 오직 오성에 의해 지각된다. 물체는 만져서 혹은 보아서가 아니라 이해함으로써 지각된다. 내 정신보다 더 쉽게 또 더 명증적으로 인식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즉 나는 사유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제1원리가, 의심할 수 없는 원리가 등장한다. 여기서 사유한다는 말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우리가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작용이라고 의식하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데카르트의 제1원리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해보자. 현존하는 것으로 확인되는 “나”는 무엇인가? 사고 작용과 구별되는 다른 어떤 것의 현존은 확인할 수 없다. 여기서 데카르트는 영혼(정신, 의식)과 육체의 구별을 하고 있다. 나 자신은 육체가 아님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코플스턴은 이 점을 지적한다. 사고 작용이 사고하는 자를 필요로 한다는 데카르트의 가정은 사고 작용, 사고 자체는 대상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대상이 아니며 나는 사고하는 존재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회의되지 않았다. 이는 스콜라 철학에서 사용되는 ‘실체’의 개념을 전제하고, 실체의 이론을 가정하고 있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신 현존을 증명한 이후에야 실체에 관해 다룬다. 나는 단지 ‘사고 작용’이 아니라 내가 사고하고 있다는 것을 파악해야 한다.

그렇다면 사유하는 나의 사유는 어떻게 하면 참이 될 수 있을까? 어떤 명제가 참이고 확실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데카르트는 확실성에 대한 일반적 기준을 검토한다. 진리임을 보증해 주는 것은 자신이 그 명제가 주장하고 있는 바를 매우 명석하고 매우 판명하게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명석하고 판명하게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참(일반 규칙으로)이다. 지각은 판명하지 않으면서 명석할 수 있지만 명석하지 않고서는 판명할 수 없다. 이러한 기준에는 두 가지 어려움이 존재한다. 첫째, 우리가 판명하게 지각하는 것들을 확인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둘째, 나에게 분명하게 나타나는 것으로 보이는 사물들에 관해서도 내가 속임을 당할 수 있도록 신이 나에게 그러한 본성을 부여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어려움을 돌파하기 위해 데카라트는 신의 현존을 증명해야한다.

4. 신의 현존을 증명하라!

데카르트는 우리를 속이는 자로서가 아닌 신의 현존을 증명해야 한다. 이는 내부로부터의 신 증명이다. 데카르트는 과장된 회의를 제거하려는 용도로 신의 현존을 증명하기 때문에, 그는 외부세계와 전혀 관련하지 않은 채 신을 증명해야한다. 데카르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정신 안에 있는 관념들은 특성의 측면에서 서로 다르고 어떤 관념은 다른 관념보다 더욱 큰 객관적 실재성을 포함한다. 이 관념들 모두는 야기된 것이며 더욱 완전한 것으로부터 도출된 것이다. 연장성, 운동이란 관념이 내가 단지 사고하는 존재일 뿐이라면 어떻게 갑자기 등장할 수 있었겠는가? 그런 관념들은 실체의 어떤 양태일 뿐이고 나는 실체이므로 그들은 분명 나 자신 안에 포함된다. 그렇다면 신의 관념을 나 자신이 만들어낼 수 있는가? 내 자신은 이런 것들에 대한 관념들을 결코 만들어낼 수 없다. 유한 실체의 나에게서 무한 관념인 ‘신’은 도출될 수 없다. 무한하고 완전한 존재의 관념과의 비교에서 나의 유한함과 한계가 드러난다. 내가 지니고 있는 무한의 관념은 명석하고 판명한 것이다. 이에 대해, “나 자신도 무한한 완전성을 갖추고 있다!”는 반박이 가능하다. 그러나 완전성에 이를 정도로 지식을 증대시키는 능력은 현실적이고 무한한 신의 완전성이라는 관념과 비교해보면 단지 불완전한 것에 불과하다.

데카르트는 두 번째 신 증명을 살펴보자. 무한하고 완전한 존재의 관념을 지니고 있는 내가 그러한 존재가 현존하지 않더라도 현존할 수 있는가? 내 현존을 신보다 덜 완전한 어떤 다른 근원으로부터 도출해낼 수 있는가? 데카르트는 “나는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이를 통해 나는 다른 존재에 의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원인은 최소한 결과가 지닌 것만큼의 실재성을 지녀야한다. 그러나 내가 의존하고 있는 존재가 신보다 못하다면 이 존재의 현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고로 신은 존재한다. 이것이 데카르트의 두 번째 신 증명이다. 완전한 관념을 지니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한 원인으로서 신을 확인한다. 그러나 역시 완전한 것이라는 관념 자체는 긍정하고 있다. 이 완전한 관념은 감각적 지각으로부터 도출된 것도 아니며 정신적 허구도 아니며 결국 내 안에 본유적으로 들어 있다. 즉 나와 신 사이에는 유사성이 있다는 것인데, 데카르트는 신이 나를 창조했을 때 넣어둔 것이라 말한다. 즉 우리는 본성상 신을 인식할 수 있는 본유적 잠재성을 지니고 있다. 데카르트는 내부적으로 신의 관념을 형성하고 있다.

만일 내 안의 완전한 존재의 관념이 없다면 (비교를 통하여 나의 부족함을 깨닫게 되는) 나는 어떻게 내가 회의하고 욕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가? 내가 완전한 것을 동경해서 무한하고 완전한 것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완전한 관념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나 자신의 불완전성을 의식하게 된다는 것이 데카르트의 논리이다.

5. 데카르트의 ‘임시의 도덕’

데카르트는 앞에서 언급한 대로 인식을 기초로 각종 도덕 법칙들을 이끌어내고, 신의 현존까지 증명해냈다.. 하지만 그는 이와 별개의 도덕에 대해『방법서설』 3부에서 언급한다. 이성이 여러 판단에 있어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동안에도, 행동에 있어서 결정을 내리지 않는 상태에 있는 일이 없도록 마련해야 할 임시의 도덕이 그것이다.

그 중 첫 번째는 자신이 속한 나라의 법률과 관습에 복종하여 하느님의 은총으로 내가 어렸을 적부터 배워 온 종교를 지키며, 다른 모든 일에 있어서는 내가 함께 살아가야 할 사람들 가운데 가장 총명한 사람들이 실생활에서 보통 받아들이고 있는 가장 온건하고, 극단에서 가장 먼 의견들을 따라 나를 다스리는 것이다. 무엇이 그들의 진정한 의견인가를 판단하는 기준은 그들의 실제 행동이다. 그리고 그 의견들 가운데 오직 온건한 것들만 택한다. 이는 온건한 의견들이 언제나 실행하기 가장 편하고, 참으로 가장 좋은 것으로 여겨지며, 모든 극단은 으레 좋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이 실수를 하는 경우에도 극단적인 의견들 중 하나를 택하고 나서 나중에 그 반대되는 극단을 따라야 했음을 깨닫는 경우보다 내가 올바른 길로부터 덜 벗어나기 위해서이다.

두 번째는 내 행동에 있어서 될 수 있는 대로 가장 확고하고 가장 결연한 태도를 취하며, 또 아무리 의심 가는 의견들이라 하더라도 일단 그것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하면 그것들이 아주 확실한 것인 양 어디까지나 그것들을 따르는 것이다.

세 번째는 언제나 운명보다 나를 이기며, 세계의 질서보다는 오히려 내 욕망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또 우리가 완전히 지배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우리의 생각뿐이며, 따라서 그 생각 외부에 있는 것들에 관해서 우리가 최선을 다한 후에도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불가능하다고 믿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다.

마지막은 자신의 이성을 개발하는 데 자신의 전 생애를 바치며, 진리 인식에 있어서 내가 스스로 나에게 과한 방법을 따라 될 수 있는 데까지 전진하기를 계속하는 것이다.

6. 데카르트 전반에 대한 평가

데카르트에 대한 후세 철학자들의 코멘트를 언급하면서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헤겔은 데카르트가 사고 또는 의식으로부터 출발했지만 사고나 이성 자체로부터 의식의 내용을 연역해 내지 않고 사고나 이성을 경험적으로 받아들였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데카르트가 의식, 사고로부터 출발함으로써 철학의 혁명을 이루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현상학자 후설은 학문들의 통합을 목표로 삼았던 데카르트였기에 주관주의의 출발점에서 필연적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데카르트는 자기 반성적 자아에 대한 성찰로 출발하며, 모든 물질적인 것들을 주관, 의식을 지니고 있는 자아와 관련된 현상으로 보면서 논의를 출발한다. 이런 점에서 후설은 데카르트를 현대 현상학의 선구라고 평가한다.

 

참고문헌

르네 데카르트,『방법서설 : 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 이현복 역, 문예출판사, 1997.

르네 데카르트,『성찰』, 이현복 역, 문예출판사, 1997.

에드문트 후설,『데카르트적 성찰』, 이종훈 역, 한길사, 2002.

F.C. 코플스턴,『합리론』, 김성호 역, 서광사,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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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조본좌 조본좌 2013.01.18 23:47

1. 서론


자본주의의 전 지구화 과정인 ‘세계화’는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증대시키는 동시에 노동의 이동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각 국의 노동자들은 일자리와 높은 임금을 찾아 전 세계를 이동하고 있으며, 자본가들 (주로 선진국) 역시 더 싼 임금과 노동력 확보를 위해 외국인 노동자를 적극 활용하고 있는 추세이다.


외국인 노동자의 유입은 단순히 노동자의 유입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본국의 가족들을 불러오거나(가족 재결합), 국제결혼을 할 경우 노동력의 이동은 이민과 이주라는 사회, 문화적인 문제로까지 이어진다. 각 국들은 서로 다른 이민정책들을 내놓으며 외국인 인구의 증대와 이민 문제에 대응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선진국들이 경제성장으로 인해 노동력 부족을 겪을 때는 큰 논란이 되지 않았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제위기가 닥치면 항상 경제위기의 원인과 해법을 외국인 노동자와 이주민들에게로 돌리는 주장이 등장하기 일쑤이다. 실업의 원인을 외국인 노동자에게로 돌리는 극우 정치세력들의 주장이 힘을 얻고, 이것이 외국인 혐오증과 맞물리면서 각 국에 퍼져 나간다. 최근 벌어진 노르웨이 테러 사건은 외국인 노동자, 이민 정책을 둘러싼 갈등이 단순히 외국인에 대한 적대와 테러에 그치지 않고 국내 정치적인 갈등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음을 잘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외국인 혐오 여론, 반 이민 여론이 이민정책에 진짜로 중요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까? 자유 민주주의는 여론을 반영한다는 기본적인 명제에 따르면 반 이민 여론이 이민 통제 정책에 반영되는 것은 당연하다. 만약에 그렇지 않다면, 왜 반 이민 여론이 이민정책에 반영되지 못하는 지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있다. 나는 영국, 미국, 호주의 사례를 통해 이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2. 반 이민 여론은 이민정책에 중요한 영향력을 미치는가?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일반적으로 이민은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다. 하지만 각 국들에서 반이민적 정책들이 시행되는 경우도 많다. 반이민적 정책이란 이민자 쿼터를 축소하고, 시민권 획득을 어렵게 하는 직접적인 정책들은 물론 이민자들에 대한 권리를 축소하고, 외국인 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며, 불법체류자에 대한 처벌과 추방을 강화하는 다양한 양태를 포함한다. 이러한 반이민적 정책이 도입되는 가장 큰 원인 중의 하나로 반이민적인 여론과 반 이민 극우정당의 영향이 제시되어 왔다.


외국인 이민자를 적대하는 국민들의 여론과 이 여론을 보여주는 극우 정당의 지지율 증대는 국가가 이민을 제한하고 통제하는 반이민적 정책으로 전환하는 가장 큰 이유로 제시된다. 특히 국내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을 때 극우 정당들은 내국인 실업 문제가 이민자들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우리의 복지비가 저들에게 낭비되고 있다고 아우성을 친다. 그리고 국민들 역시 이에 공감하면서 반이민적 정서가 확산하게 된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은 여론에 민감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반이민적 정서가 확산될 경우 그것을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게 된다. 영국에서는 60-70년대에 반 이민 정서가 심해지면서 당시 집권여당이던 보수당이 반이민적 정책들을 도입했다. 또한 미국을 이민 정책을 분석하는 연구에서도 반 이민 여론과 이에 따른 보수, 우파 정당에 대한 지지 증가가 이민 정책에 반영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호주 역시 다문화주의적 정책에서 동화주의로 정책 방향을 전환한 것이 반 이민 여론과 관계있다는 분석이 있다. 이것이 타당한 주장인지에 대해 자세히 검토해보자.


2-1. 영국의 반 이민 여론과 반 이민 정책


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은 노동력 부족과 인구 감소라는 문제에 직면한다. 1949년 인구 문제를 조사하기 위해 설립된 왕립 특별위원회는 출산율 감소와 노령화에 따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매년 140,000명에 달하는 이민을 유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예측한다. 그 결과 1940년 후반기 영국에 채용된 유럽인의 규모는 연간 8-9만 명에 달하게 된다.


1950년대 말부터 상황이 변화하기 시작한다. 1958년 8월 노팅햄과 런던의 노팅힐에서는 식민지 출신의 이민자들과 영국인들 사이에서 대규모 충돌 사태가 발생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에 정착한 식민지 출신 이민자들은 값싼 주거 환경을 찾아 특정 지역에 정착하였다. 동시에 전후 복구에 따라 생활수준이 상승하면서 이 지역에 살고 있던 백인 노동자들은 더 나은 주거환경을 찾아 다른 지역으로 떠나게 된다. 결과적으로 몇몇 지역들은 식민지 출신 이민자들이 모여드는 만큼 생활환경이 악화되었고, 다른 지역으로 떠날 경제적 능력이 없는 백인 노동자들은 이러한 생활환경의 악화를 식민지 출신의 이민자들에게 돌림으로써 갈등이 심화되었고, 결국 폭동 사태로까지 이어졌다. 1958년 백인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이민자들을 공격하고, 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이민자들 역시 폭력으로 맞서면서 대규모의 충돌로 비화된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민 규제를 주장하던 정치세력이 힘을 얻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 1958년을 기점으로 영국은 식민지 이민자들을 직접적인 입법을 통해 규제해야한다는 주장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 사건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80%에 달하는 응답자가 더 이상의 이민을 규제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직접적으로 반이민적 정책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애초에 백인 노동자들이 처음 이민자들에게 폭력을 가한 사건이라 그들에 대한 비난이 거세게 일어났으며(실제로 여론조사에서 폭동의 원인이 백인 노동자에게 있다는 의견이 27%, 이민자들에게 있다는 의견이 9%였다.) 반이민적 정책을 주장하는 이들은 인종차별주의자라는 비난을 받게 된다. 그리고 1959년 1월 내무부에서는 영국이 기존의 전통적인 이민정책을 변경할 의사가가 없음을 공식적으로 선언한다.


본격적인 정책 변화는 1960년대로 들어오면서 시작되었다. 영국 국내 경기가 침체됨에 따라 영국인들과 이민자들이 노동 시장에서 경쟁하게 되고, 이민자들이 영국인의 복지에 위협이 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1962년 영연방 이민법이 입안된다. 62년의 영연방 이민법은 영국에서 태어났거나 영국 정부가 발행한 여권을 소지한 대영 제국 시민, 그리고 앞의 두 기준에 해당하는 이들이 부양하는 가족들을 제외한 이들을 이민 통제의 대상으로 지정하고 있다. 그리고 통제의 대상이 되는 이들의 경우 영국 정부로 고용 증명서를 발급받아야 영국에 입국할 수 있었다. 62년의 이민법은 또한 이민자들의 국외 추방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이민 통제의 대상이 되는 이들은 17세 이상으로 금고형 이상의 범죄로 기소되면 국외로 추방될 수 있다. 하지만 영국에서 5년 이상 거주한 이들은 국외 추방의 대상에서 면제된다. 그러나 사실상 이민 통제에서 면제되는 대상들은 기존에 영국에 정착해 있던 문화와 인종이 유사한 타국의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었기 때문에, 이민 통제의 대상은 편법적으로 입국한 유색 인종 이민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었다. 당시 야당이던 노동당은 이 이민법에 반대하다가 반대를 철회하는데, 그 이유는 노동당의 전통적인 지지층이던 백인 노동자들의 반감을 의식한 것이었다. 1961년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응답자의 76%가 이민 규제 정책에 찬성했으며, 단지 12%만이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


이민정책에 대한 노동당의 입장 전환이 더 극적으로 드러난 건 1968년 영연방 이민법을 둘러싼 논쟁에서였다. 1968년 이민법 개정의 시발점은 ‘케냐 위기’였다. 19세기 이래로 영국 패권이 영향을 미치던 아프리카에 많은 수의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존재했는데, 이들은 1948년 영국 국적법을 통해 대영 제국 시민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1963년 케냐가 독립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케냐 정부는 아프리카 토착민들과 아프리카에 정착한 이들에게는 자동적으로 시민권을 부여하고, 그 외 사람들에게는 2년의 시간을 주고 케냐 시민권을 신청하도록 했다. 케냐의 국적법은 이중 국적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케냐에 있던 아시아와 유럽 이민자들은 케냐 시민권, 영국 시민권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이들 대부분은 영국 시민권을 선택했고, 이들이 영국으로 이주하면서 1967년 대 초반부터 매달 천 명씩 영국으로 이주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전통적으로 이민에 우호적이었던 노동당 정부는 이민을 통제하는 방향의 이민법 개정을 시도했다.


1968년 영연방 이민법에 따르면 이민 통제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영국과의 특별한 관계를 입증해야 했다. 이때의 특별한 관계란 부모나 조부모 중 한 명이 영국에서 태어났거나 귀화, 입양된 경우를 뜻한다. 이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이들은 연간 1,500명으로 한정된 쿼터 안에서만 입국이 가능했다. 68년 이민법 제정에서 놀라운 사실은 노동당이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점이다. 이러한 입장은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었다. 1964년 총선에서 노동당은 영국 입국 이민자의 수를 제한해야 한다는 공약을 내세우고, 이전 보수당 정부의 이민 규제를 유지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1965년 노동당에서 발간한 백서는 입국심사를 강화하고 고용 증명서에 규정된 조건들을 더욱 강력하게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입장 선회는 1960년 이래로 영국에서 더 이상의 이민을 규제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일정한 합의가 성립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야당 시절에 반대하던 것과는 달리 일단 집권여당이 된 입장에서 노동당 역시 대세를 거스를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표1> 이민에 대한 의견, 1964-70(단위: %)


1964년

1966년

1970년

호의적

13.8

14.6

13.3

약간 반대

11.5

10.5

9.8

상당히 반대

27.8

27.2

28.3

매우 반대

46.9

47.7

48.6

(N)

100.0

(1468)

100.0

(1541)

100.0

(1016)

출처 : Donley Studlar. "Poicy Voting in Britain: 1964. 1966. and 1970 General Elections.", American Political Science Review. Vol. 72. No. 4. 1978, p. 54.


1971년에도 이민법 제정이 있었다. 그러나 위의 표에서 알 수 있듯이 1960년대와 비교했을 때 1970년대 초에 특별히 영국에서 반 이민 여론이 증대했던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영국인들이 이민 정책에 있어서 보수당과 노동당의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정도로 보수당과 노동당은 이민정책에 있어 별 차이가 없었다. 당시 보수당 의원이던 파웰과 그가 이끄는 국민전선은 극우적인 반 이민 운동을 전개했는데, 이 과정에서 그들은 전국적인 인기를 누렸고, 보수당과 노동당 모두 파웰의 정책을 일정 부분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파웰은 최초로 선거에서 이민정책을 쟁점으로 다루면서 유색 인종의 이민을 완전히 금지하는 조치와 이미 정착한 이민자들을 강제 송환할 것을 주장했다.


보수당은 1969년 총선에서 이민법의 개정을 공약으로 내세웠고, 실제로 집권 후 이 공약을 실천했다. 1971년의 이민법은 ‘본국인’이라는 개념에 기초하고 있다. 71년 이민법이 규정하는 본국인의 조건은 1) 영국 영토에서 태어났거나 영국으로 입양된, 혹은 정식으로 귀화한 대영 제국 시민, 2) 부모가 조부모가 1)의 조건에 부합하는 경우, 3) 적법한 절차를 거쳐 영국에서 5년 이상 거주하고 그 기간 동안 이민법을 위반하지 않은 경우, 4) 부모 중 한 명이 태어날 때부터 대영 제국의 시민인 영연바 시민, 5) 본국인과 결혼한 여성이다. 본국인의 지위를 가진 이는 영국에서 거주할 권리를 지니지만, 비본국인은 이제 고용 증명서가 아닌 취업허가증을 발급받아 영국에 입국하고, 영국에서 거주할 수 없다. 또한 내무부 장관은 이민 통제의 구체적 절차와 규칙을 정하여 의회에 상정할 권한을 지닌다.


이처럼 영국 이민법 개정의 역사는 몇 가지 계기들을 통해 반 이민 여론이 증대하고, 이 여론을 의식한 정당들이 반이민적 정책을 실시하는 과정을 포함하고 있었다. 물론 1971년 이후 노동당이 다시 입장을 선회하여 이민 통제를 완화하는 방식의 개혁이 시작된다. 그러나 이 역시 노동당이 유색 인종 유권자들이 늘어나면서 이들이 여론과 지지를 의식한 결과였다. 엄격한 이민 정책으로 보수당의 표를 끌어오기 어려운 현실에서 새로운 유권자에게 어필하자는 전략이었던 것이다. 이민 규제가 완화되는 과정도 역시 여론의 영향을 받아 진행된 것이다.


2-2. 미국의 반 이민 여론과 반 이민 정책


미국의 경우 2006년에 이민법 개정이 화두였다. 그 중 2005년 12월 6일 센센브레너 하원의원에 의해 상정되어 공화당 주도로 하원을 통과한 새 이민법은 반이민적 정책을 포함하고 있다. 이 법안의 명칭은 “이민법의 적용을 강화하고 국경의 경비를 증진시키며, 그 외 다른 목적들에 부합하기 위한 이민 및 국적 관계 법령의 개정안”으로, 미국 내 불법 거주 이민자, 불법으로 입국하려는 이민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주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미국 내 불법으로 거주하는 것을 범죄로 규정하고, 부적절한 방법으로 미국에 입국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한다. (2) 조직범죄에 연루되어 추방되었거나 그러한 범죄에 연루되었거나 되었음을 의심할 만한 합당한 근거가 있는 외국인의 입국을 불허한다. (3) 고용적격성 심사 제도를 시행한다. 이 제도 실시 후 2년 후까지 기존에 고용되어 있는 사람들을 포함하여 자발적으로 고용적격성 심사를 실시하도록 하고, 3년 후부터는 연방 및 지방 정부와 군에 고용된 인원들 중 이미 심사를 마친 인원을 제외한 모든 인원들에 대해 의무적으로 실시한다. 이 제도 실시 후 6년 후부터는 모든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 이미 심사를 받은 인원 이외의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심사실시를 의무화한다. 위반 시 2500 달러의 벌금형 등 형사처벌을 가한다. (4) 미국과 멕시코 국경의 3분의 1인 320km에 걸쳐 장벽을 설치하고, 미국-캐나다 국경에도 이를 검토하며, 지역경찰이 이민법을 집행할 수 있도록 한다. (5) 불법체류자는 경범죄가 아닌 중죄로 취급해 체포할 경우 최고 1년간 실형을 선고 받아 수감된 뒤 형기를 마치면 추방되고 이후 영원히 미국 입국이 금지된다.


이러한 미국 내의 이민법 개정 시도는 미국 사회의 반 이민 여론을 반영한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2006년 3월 29일부터 30일까지 타임지가 실시한 이민에 관한 여론조사를 참조해보자.


<표2> 불법 거주자 및 관련 대책에 대한 미국인들의 의견

방안

찬성

반대

불법 거주자에 대한 인식

불법 거주자 문제가 심각하다

89%

8%

불법 거주자들이 미국인들의 일자리를 빼앗아 가고 있다

35%

55%

불법 거주자들에 대한 대책

불법 거주자들에 대한 대책이 강화될 경우 미국의 경제 사정이 나아질 것이다

51%

38%

외국인들에게 임시 비자를 발급하여 임시로 일을 한 후 귀국할 수 있도록 조치

72%

26%

임시 비자를 발급한 후 일정 기간 동안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면 영주권 부여

72%

25%

불법 거주자를 고용한 사람 강제 처벌

71%

26%

국경 경비를 강화하여 불법 입국을 어떻게든 차단

62%

35%

불법 거주자들에게 운전면허증 발급

27%

69%

불법 거주자들에게 주립학교 입학 허용

46%

51%

불법 거주자들에게 건강관리나 식량카드 등의 혜택을 부여

21%

75%

불법 거주자들을 그들 나라로 추방

47%

49%

출처 : Time Poll, 2006년 3월 29일~30일.


일단 미국인의 89%가 불법이민자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했으며, 절대다수가 불법이민자에 대한 운전면허 발급과 건강보조, 식량카드제도 등의 복지제도가 적합하지 않다고 대답했다. 불법거주자를 고용한 미국인을 처벌하는 조치에도 많은 이들이 찬성했다. 비록 과반수는 아니지만 불법거주자들이 미국인들의 일자리를 빼앗아 가고 있다는 대답을 한 의견도 35%나 되었다. 이 35% 중 많은 수가 일자리를 잃은 저소득층일 것이고. 이들의 정치기반이 민주당이라는 점에서 민주당도 이민에 우호적인 정책을 펼치는 데 섣불리 나서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미국 내에서 반 이민 여론이 형성된 주된 이유는 역시 경제 침체로 인해 잉여 노동력이 많아지면서 그 책임을 불법 이민자를 비롯한 이민자들에게 돌리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9.11 테러인데, 9.11 테러에 미국 내 불법 이민자들이 연루되었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불법 이민자에 대한, 더 나아가 외국인(특히 무슬림)에 대한 적대감이 확산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9.11 테러가 벌어지기 한 달 전만 해도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멕시코의 폭스 대통령을 만나 미국 내 멕시코 불법 체류자들이 합법적으로 거주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으나, 테러가 발생한 이유 미국 내 불법 체류자와 이민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는 적대적으로 변해갔다. 미국 국경의 수비 강화와 학생 비자의 대폭적인 제한, 외국인 추적 기능 강화 등에 대한 요구가 제기되었고 부시 정부는 불법 이민자 사면 입법을 6년 후에나 실시하겠다고 정책을 변화시켰다.


2-3. 호주의 반 이민 여론과 반 이민 정책


호주는 1900년대 초부터 1970년대까지 이른바 ‘백호주의’로 불리는 강력한 차별, 배제, 동화주의 정책을 추진해왔다. 그러다가 1973년 노동당 휘틀램 총리의 취임 이후 다문화주의적 모형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이 다문화주의 모형이 동화주의적 이민정책으로 변하는 시기는 1996년 하워드 정부의 출범 이후이다.


하워드 정부는 다문화부를 폐지하고 이민 프로그램을 대폭 축소하는데, 이는 2000년대에 들어서 국민의 강력한 지지를 받았다. 국민들이 반 이민 여론을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인데, 이는 일련의 사건들 때문이다. 2001년의 탐파 사건이 대표적이다. 2001년 호주령 크리스마스섬 인근에 표류하던 433명의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을 노르웨이 화물선 탐파 호가 구조한 뒤 유엔 난민협약에 따라 크리스마스섬으로 향했다. 그러나 호주 정부는 탐파선의 호주 영해 접근을 금지하고, 결국 난민들은 파푸아 뉴기니와 나우루 등에 분산 수용되었다. 하워드 총리는 이들을 국경 침입자로 간주한 것이다. 이 사건 이후 국경보호법이 제정되었는데, 이 법은 호주 정부가 입법부, 사법부의 결정을 초월하여 난민 문제에 관한 최종 결정을 내릴 수 있음을 보장하는 내용이었다. 이 법 실시 직후 30%의 지지율을 유지하던 하워드 총리의 지지도가 70%까지 치솟았다.


미국에서 9.11 테러가 발생하자 호주인들은 더욱 더 하워드 총리의 반이민적 정책을 지지했다. 선거 막바지에 지지율이 하락하자 하워드 총리는 호주로 유입된 난민 중 오사마 빈 라덴의 부하가 있다며 더욱 더 이민을 통제해야한다고 주장했고 호주인들이 이를 지지하면서 재선에 성공했다.


또한 2005년에 크로눌라 해변에서 벌어진 레바논계 청년들의 인명구조대원 폭행사건이 시발점이 되어 앵글로 캘틱계 청년들과 중동계 이민자 간의 폭력 사태가 벌어졌다. 하워드 총리는 이를 계기로 더욱 더 동화주의적 이민정책을 추진했다. 2007년 개각에서는 이민.다문화국을 이민.시민권국으로 변경하여 다문화라는 명칭을 없애버렸으며, 시민권 취득 절차를 강화하고 시민권 취득 대기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렸다. 이러한 하워드 정부의 이민제도 개정은 몇 가지 사태를 통해 반 이민 여론을 형성한 호주인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3. 반 이민 여론의 '변수로써의 한계'


앞의 사례에서 살펴보았듯이 반 이민 여론은 분명 국가가 반이민적 정책을 택하는 데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에는 한계가 있다. 어떤 한계점들이 있을까?


3-1. agenda setting에서 정책 결정자의 자율성


민주주의 국가라 해도 정부 정책결정자들은 여론을 반영하지 않을 힘이 있다. 어떤 의제를 쟁점화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능력 자체가 정부 정책결정자들과 정당에 있기 때문이다. 반 이민 여론이 심화된다 해도 이것이 반드시 정책에 반영되지는 않는다. 정부나 정당은 선택적으로 이 여론을 반영한다. 앞에서 소개하기도 했던 영국의 사례를 보자. 1958년 영국에서 벌어진 폭동으로 인해 영국에서는 반 이민 여론을 형성되기 시작했으나, 집권여당이던 보수당은 이민 관련 이슈를 부각시키지 않았다. 당시 보수당의 승리가 확실시 되던 입장에서 이민 문제라는 새로운 변수를 끌어들이는 위험한 짓을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캐나다의 사례에서도 드러난다. 9.11 직후 반 이민 여론이 캐나다에서도 급증했지만, 대부분의 캐나다 정치인들은 이를 정치적 이슈로 부각시키지 않았다.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이민이라는 의제를 굳이 쟁점화 하는 것 역시 정책 결정자의 자율성이다. 앞에서 살펴본 호주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하워드 총리는 선거에서 자신의 지지율이 하락하자 이민 의제를 자신의 지지율을 상승시키는 도구로 사용했다. 이처럼 정책 결정자들은 여론에 종속되지 않으며, 여론으로부터 자율성을 지닌다.


3-2. 고객정치 모델


반 이민 여론이 반이민적 정책으로 이어진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은 고객정치 모델을 주장하는 이들에 의해 가장 강력하게 제기될 것이다. 게리 프리만이 제기한 고객정치 모델은 애초에 '왜 서구 자유주의 국가들은 이민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에도 불구하고 이민정책을 확대할 수밖에 없었는가.‘에 주목했다. 이들은 이민 정책의 결정에 있어서 개인 유권자의 역할을 배제하고 정치 엘리트와 잘 조직화된 이익집단에 주목한다. 이민정책의 경우 정책의 이익은 집중되지만 비용은 분산되기 때문에 조직화된 이익집단이 정치 엘리트에 로비를 하여 이민정책은 결국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이는 반 이민 여론이 증대함에도 이것이 반이민적 정책으로 이어지지 않는 효과에 대해 설명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는 앞에서 소개한 2006년의 미국 새 이민법이다. 앞에서 소개한 하원의 새 이민법은 불법 이민자에 대해 강력하게 대처하지만, 상원 법사위를 통과한 상원의 새 이민법은 하원의 이민법보다 훨씬 완화된 내용이다. 불법 이민자들을 처벌하기보다 공개 등록하여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하게 해주고, 이들에게 시민권을 부여받을 수 있게 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그 이유는 이 이민법으로 인해 이익을 보지 못하는 이들의 반대 때문이다. 불법 거주자들, 라틴계, 아시아계 이민자들의 조직은 통제를 강화하는 새 이민법이 통과되지 못하도록 집회, 시위를 벌이며 격렬하게 저항했다. 라틴계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당선되지 못하는 지역구의 경우 민주당과 공화당을 가리지 않고 좀 더 완화된 이민법을 내놓을 수 있도록 노력한 것이다.


3-3. ‘여론’은 매개변수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또 다른 한계는 반 이민 여론이라는 변수는 반이민적 정책의 직접적인 독립변수라기보다 다른 독립변수와 반이민적 정책이라는 종속변수를 매개하는 매개변수에 불과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예컨대 반 이민 여론은 경제상황이 좋을 때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한 국가의 경제 상황이야말로 반이민적 정책을 결정하는 변수가 아닐까? 그리고 9.11 테러와 같은 사건 직후 반 이민 여론이 급증한다는 점에서 보면, 반 이민 여론보다는 안보 관련 사건이 터지느냐 마느냐가 반이민적 정책의 변수가 아닐까?


4. 결론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이민 수용국 대부분이 자유민주주의국가라는 점에서 여론은 이민 정책의 변화에 영향력을 주는 변수로 작용한다. 그러나 그 영향력은 제한적이라는 반론이 가능하다. 우선 과연 여론이 정책에 영향을 별로 미치지 못한다는 가설에 기반 하는 두 가지 반박(정책 결정자의 자율성, 고객정치 모델)이 있으며, 여론이 아니라 진짜 다른 변수가 있다는 반박도 존재할 수 있다. 따라서 반이민적 여론이 반이민적 정책에 어느 정도로 영향력을 행사하는지에 대해 연구하려면, 과연 여론이 정책에 얼마만큼의 영향력을 주는 지에 대한 좀 더 심도 깊은 연구가 선행되어야 하며, 경제 위기와 안보 사건이라는 변수와 여론 간의 상관관계를 밝히는 연구가 더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김민정,「한국과 호주의 이민정책 변화요인 분석」, 연세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 석사학위논문, 2011.

신유섭,「미국의 새 이민법」,『亞太 쟁점과 연구』, 2006년 봄호.

장승진,「이민 통제와 국가 시민권의 형성 : 1962-1981의 영국 이민 정책 연구」, 서울대학교 대학원 정치학석사학위논문,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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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조본좌 조본좌 2013.01.18 23:47

과제.

국가를 구성하는 3가지 요소를 흔히 국민, 영토, 주권이라고 한다. 그 중 주권은 국가가 제 역할을 하는데 가장 중요한 ‘실질적인 힘’이다. 따라서 정치학자들 사이에서 주권의 성격과 위치는 늘 논쟁의 대상이다. 이 문제가 국가의 성립과 민주주의 과정을 역사적으로 분석하는데 있어서, 특정한 형태의 정치체제의 구축을 기획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했고, 중요하기 때문이다.

무언가의 성격과 위치를 분석하는데 있어서 가장 좋은 방법은 비교대상을 설정하는 것이다. 나는 이 글에서 주권의 비교대상으로 헌법을 설정하고자 한다. 국가의 3대 요소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헌법은 국가의 필수요소이다. 그 국가가 어떤 체제를 지향하고 있는지, 국가의 통치조직은 어떻게 운영되는지를 밝히고 통치 작용의 기본원리를 규정하는 것이 그 국가의 헌법이기 때문이다. 즉 나는 이 글에서 주권과 헌법의 관계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참조한 텍스트는 크게 세 가지이다. 영국 헌정사에 대해 다룬 알버트 벤 다이시의 “의회주권의 본질”, 미국 헌정사에 대해 다룬 알렉산더 해밀턴 등의 “연방주의자 논설”, 프랑스 헌정사에 대해 다룬 엠마누엘 요제프 시에예스의 "제3신분이란 무엇인가"가 그것이다. 각각의 텍스트를 통해 주권의 성격과 헌법의 지위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 분석, 비교할 것이다.

1. 헌법은 내 손 안에 있소이다!

 

 


헌법학 입문

저자
알버트 다이시 지음
출판사
경세원 | 1993-09-01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헌법의 기본 특성부터 여러 조항의 효력을 자세히 기 술한 전공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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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시는 영국을 ‘의회주권이 지배하는 나라’로 단정한다. “의회주권은 우리 정치제도의 지배적인 특징이다.”(다이시, 2) 법적인 의미에서 영국에서 의회는 국왕, 귀족원, 평민원을 포함한다. 이렇게 정의될 수 있는 의회는 영국에서 말 그대로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한다. “어떠한 법이든지 만들거나 만들지 않을 권리”(다이시, 2)를 가지고 있으며, 영국에 있는 그 누구도 “의회의 입법을 배제하거나 무시할 권리가 인정되지 아니한다.”(다이시, 2)

하지만 의회에게 ‘입법권’이 있다는 이유로 의회에게 ‘주권’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3권 분립에 익숙한 우리는 행정권과 사법권의 견제를 떠올릴 것이다. 의회의 입법권에 대해 논하기 전에 이 의문을 해결하고 넘어가자. 의회는 입법권을 지니고 있지만, 다이시가 서술하는 시대에 존재했던 영국의 정치구조는 의회에게 입법권을 넘어선 ‘주권’을 부여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이시가 아니라 매디슨의 논설을 참조하면 좋다. 매디슨은 몽테스키외의 서술을 참조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영국 헌법을 언뜻 보면 입법, 행정, 그리고 사법부가 전적으로 구분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매디슨, 295)

먼저 행정권에 대해 살펴보면, ‘의회 내의 국왕(King in Parliament)’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행정부의 수반은 입법부의 필수적인 한 부분을 겸한다.”(매디슨, 295) (행정부의 수반이 입법부의 필수적인 한 부분을 겸한다는 말의 의미는 두 가지이다. 첫째, 행정부의 수반이 입법부의 한 부분을 ‘겸하면서' 생겨나는 효과인데, 행정부는 사실상 입법부에 종속되어 있다. 1215년 마그나카르타(대헌장) 사건 이후 영국 국왕은 의회의 승인이 없으면(법률에 의거하지 않으면) 과세도 할 수 없으며, 자유인 신분을 가진 이를 함부로(국법에 의거하지 않거나 재판 없이) 체포, 감금할 수 없게 되었다. 둘째는 기능적인 측면이다. 행정부가 입법부의 역할을 일정 부분 담당한다. 대표적인 예가 조약의 체결이다. 행정부의 수반, 즉 국왕만이 외국과 조약을 맺을 수 있는데, “그 조약은 체결되었을 경우에 특정한 제한 하에서 입법 법령으로서의 효력을 갖는다.”(매디슨, 295)) 영국은 프랑스처럼 왕의 목을 치지 않으면서, 행정부에 해당하는 국왕을 의회 안에 포함시켰던 것이다. 그리고 의회가 국왕으로부터 주권을 넘겨받는 식으로 혁명을 수행했다.

사법권은 또 어떠한가? 정치 구조적으로 영국에서 사법권은 입법권을 견제하기 힘들다. 미국의 건국자들이 연방주의자 논설에서 사법권의 독립을 강조하면서 영국을 언급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영국에서 “행정부의 수반은 사법부의 모든 구성원을 임명하고, 또한 의회 양원의 요청에 의거하여 해임할 수”(매디슨, 295) 있다. 또한 “입법부의 한 부서는 대헌법위원회를 구성하는데, 대헌법위원회는 탄핵의 경우 유일한 사법권의 위탁자가 되며 다른 모든 것에 대한 최고 항소재판권을 부여받는다.” (매디슨, 295) 게다가, “법관은 (의회 입법에서) 표결에 참여할 수는 없지만 입법심의에는 자주 참석함으로써 입법부와 결부되어 있다.”(매디슨, 295)

영국에서는 왜 행정권과 사법권이 의회를 견제할 수 없는지에 대해 살펴보았으니, 이제 의회의 입법권이 얼마나 ‘절대적’인 것인지에 대해 알아보자. 다이시에 따르면, 의회는 무제한적인 입법권을 지닌다. 의회는 마음만 먹으면 ‘거의’ 무엇이든지 법으로 제정할 수 있다. 공권(public rights)의 측면에서 다이시는 두 가지 중요한 사례를 제시한다. 한 가지는 왕위계승법이다. 왕도 자기 마음대로 왕위를 물려주지 못하고, 의회가 정한 법률에 따라서 왕위를 물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사례는 7년 선거법이다. 1716년까지 영국 의회의 임기는 1694년 법률에 따라 3년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하지만 1716년 영국 의회는 의원의 임기를 7년으로 연장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국민들은 자신들이 뽑는 의원들이 3년간 복무할 것이라 ‘기대’하고 표를 행사했는데, 의회는 이러한 ‘기대’와는 별개로 자신들의 임기를 연장해버린 것이다.

의회에 대항할 만한 입법권이 부재하다는 사실도 의회의 입법권을 절대적으로 만들어주는 요인이다. 다이시는 “국왕, 귀족원과 평민원, 유권자단, 법원 등이 각각 독립적인 입법권을 보유한다.”는 오스틴의 주장을 반박하며 사실상 의회가 입법권을 독점하고 있다고 말한다. 먼저 원래 영국 국왕은 법적 구속력을 가진 율령이나 포고령의 반포를 통해 입법권을 행사할 수 있었으나, 명예혁명 과정을 거치면서 이러한 권한이 사라졌다. 또한 평민원과 귀족원의 결의(resolution)는 법적 효력이 없다. 흔히 입법권을 행사한다고 여겨지는(입법권을 행사하는 의원들을 선출할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유권자들 역시 실제로는 입법권을 행사할 수 없다. “유권자들은 의회의 입법을 발안, 비준, 폐지할 어떠한 법적 수단도 가지고 있지 아니한다. 어떠한 법원도 특정 법률이 유권자들의 의사에 반하여 무효라는 주장을 한 순간이라도 수용하지 아니할 것이다. 유권자들의 의사는 법적으로 오로지 의회를 통해서만 표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다이시, 18) 또한 마지막 남은 사법부, 왕립법원 역시 법을 소극적으로 해석하는 역할만 담당하는 측면에서 ‘입법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다. 행정부가 의회보다 법안을 더 많이 발안하고, 국민에게도 법안 발안의 권한이 있고. 사법부가 ‘위헌법률심사’ 등을 통해 입법에 관여하는 오늘날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다이시가 밝힌 대로 영국에서 의회는 입법권을 독점하고 있다.

의회가 입법권을 독점하고 있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는 영국에 사실상 ‘헌법’이 없다는 의미이다. 예컨대 한국에서 헌법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앞에서도 밝혔듯이 헌법이란 국가가 지향하는 체제, 통치조직과 통치원리를 규정한다. 즉 헌법은 한 사회/국가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이자 근본적인 원리이다. 따라서 한 사회 구성원들의 관계를 규정하는 ‘법’은 헌법의 원칙을 따라야한다. 그렇기에 한국에서는 헌법에 위배되는 법률은 폐기되거나 수정될 수 있다.(위헌법률심사. 헌법소원) 그런데 영국에서는 이러한 ‘헌(憲)’이 없는 것이다. 의회는 자신들의 의사에 따라 법률을 정하거나 폐기할 수 있다. 마음대로 자신들의 임기도 늘리고, 전임 의회가 설정한 법도 마음대로 바꾸어버릴 수 있는 권한을 지닌 이들이 영국 의회의 의원들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사실상 의회 독재가 아닌가? 일반 국민들의 인권이 짓밟히지 않을 것이라고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사실 바로 ‘그 믿음’이 의회주권의 나라 영국을 유지시켜주는 힘이다. 영국 의회는 제멋대로 국민들의 기본권을 빼앗는 왕을 ‘법률’로 제한하면서 주권을 얻었다. 영국인들 입장에서 의회는 몇 백 년 동안 나의 자유와 권리를 위해 싸운 존재이다. 이 과정에서 쌓인 권위와 신뢰가 일반 국민들이 영국 의회를 지지하고, 영국 의회도 기본권을 침해하는 법안들을 내놓지 않는 이유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생겨난 여러 가지 법들이 ‘헌법적 작용을 하는 불문헌법’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다이시는 이와 관해 레슬리 스테판의 말을 인용한다. “만약 의회가 파란 눈을 가진 모든 어린이를 죽이도록 결정한다면 파란 눈의 아이를 보호하는 것은 불법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의원들이 그와 같은 법을 통과시키기 전에 모두 미쳐 버리고 나머지 국민들은 그 법에 복종하기 전에 모두 바보가 되어버리지 않는 한 그런 일은 절대로 생기지 않을 것이다.”(다이시, 34)

2.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헌법이다.

 

 


페더랄리스트 페이퍼

저자
알렉산더 해밀턴 지음
출판사
한울아카데미 | 2009-04-20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표지글] 「페더랄리스트 페이퍼」는 독립선언문 그리고 헌법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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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주권의 나라 영국과 극명하게 비교되는 사례는 바로 미국이다. 영국에서 주권은 왕에게서 의회로 이양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의회는 일반 국민들의 기본권과 인권을 지키고자 했다. 미국을 구성한 이들의 과제는 영국 국민들의 그것과는 달랐다. 영국에서 자유를 찾아 아메리카 대륙으로 넘어온 이들에게는 ‘건국’이라는 과제가, 그리고 개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영구히 보장받는 국가의 ‘건국’이라는 과제가 있었다.

각 국의 국민들 입장에서 접근해보자. 영국 국민들 입장에선 원래부터 ‘주권’이 있었다. 다만 그 주권이 의회로 이양된 것이다. 주권을 발휘하는 국가가 이미 있었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는 완전히 달랐다. 1620년 영국에서 건너온 청교도들은 아메리카로 가는 메이플라워호에서 협약을 맺는다. 홉스나 로크가 가상으로 설정한 사회계약이 ‘역사적’으로 실현되었던 곳이 미국인 것이다. 그리고 미국인들이 국가를 건설하면서 맺은 이 ‘계약’이야말로 헌법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헌법이 국가에 앞서, 주권에 앞서 존재한 것이다. 원래 있던 국가의 주권이 이양되는 역사적 과정 속에서 헌법의 역할을 하는 불문헌법이 탄생한 영국과 달리, 헌법이 국가와 주권을 형성한 것이다!

“헌법의 규정에 따라 설립된 여러 부문들 간의 권력분립을 실질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마지막으로 어떤 방법에 의존해야 하는가? 여기에 대한 유일한 대답은 다음과 같다. 즉 이러한 모든 표면상의 규정들만으로는 불충분하므로 정부를 구성하는 여러 부문이 그들의 상호관계에 의해 서로를 적절한 위치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정부의 내적 구조를 설계함으로써 그 결함을 보완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 중요한 착상을 감히 완벽하게 발전시키겠다고는 할 수 없고, 다만 헌법제정회의에서 계획된 정부의 원칙과 구조를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고 더 정확하게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몇 가지 일반적인 의견을 검토하고자 한다.”(매디슨, 315)

위의 인용구에서 알 수 있듯이, 매디슨을 비롯한 미국의 건국자들은 미국 건국 과정에서 자유를 어떻게 하면 보존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입법/사법/행정 3권이 분립되어 있는 정치구조를 마련했다. 이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정부의 원칙과 구조’가 헌법제정회의에서 논의되었다는 것이다. 앞으로 미국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운영되고, 어떠한 권력 구조를 가질 것인지가 ‘헌법’에 포함된 것이다. 즉 미국에게선 영국과 같은 ‘의회주권’이 탄생할 여지가 없었다. 미국 의회는 헌법에 의해 규정되고, 헌법에 의해 그 기능을 부여받았으며 헌법에 의해 창출되었다! 주권은 ‘헌법’에 있다.

이처럼 미국은 ‘헌법주권’의 나라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에서 헌법은 불변의 원칙이다. 아무도(심지어 의회도) 고칠 수 없다. 어떠한 통치기구보다 우선한다. 시간이 흘러도, 미국 건국 당시 세워졌던 ‘헌법에 의한’ 원칙과 원리들은 변하지 않으며, ‘수정헌법’과 같은 방식으로 새로운 내용이 기존의 헌법에 덧붙여지는 형식으로 ‘수정’된다. 헌법제정회의로 대표되는 건국의 아버지들이 자유와 권리의 보장이라는 불변의 원칙에 근거하여 불변의 헌법을 제정한 것이다. “정부의 안정은 시민사회의 최고의 축복 중 하나인 국민들의 마음속에 평화와 자신감을 불어넣는 것뿐만 아니라 국가의 특성과 그 특성에 해당하는 이익들에 필수적이다. 변칙적이고 변화무쌍한 법제는 국민들에게 불쾌한 것을 넘어서 그 자체로 이미 악에 가깝다. 그리고 자연에 관한 한 계몽되고 선한 정부의 취지에 관심이 있는 이 나라의 국민들은 주정부들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는 변동과 불확실성에 대한 어떠한 치료가 이루어질 때까지 결코 만족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확신 있게 주장할 수 있는 점이다.”(매디슨, 221)

따라서 헌법을 만든 이들이 의회가 아닌 것은 물론, 의회는 헌법을 바꿀 수 없으며 헌법에 위배되는 법률을 제정할 수도 없다. 그러나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영국인들과 반대로 의회주권이 미국인들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크게 우려했다. 입법부가 권력 분립에 의해 규정된 권한 이상을 발동할 것을 염려했다. “입법부는 어디에서나 자기의 활동영역을 확장해 가고 있으며 모든 권력을 자신의 격렬한 소용돌이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다.”(매디슨, 303). “헌법상 입법부의 권력은 우선 더 광범위하기도 하고 엄밀히 제한하기도 쉽지 않으므로 다른 동등한 부문에 대한 침해를 복잡하고 간접적인 방법으로 아주 쉽게 은폐할 수도 있다.”(매디슨, 304) 심지어 매디슨은 버지니아 주, 펜실베니아 주의 예를 들며 “헌법은 입법부에 의해서 다양한 사례에서 심각하게 침해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매디슨, 305)고 까지 말한다.

이러한 사태를 해결하고 의회의 권한을 견제하기 위해 해밀턴은 사법부에게 최고재판권(위헌법률을 심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법부가 그러한 권한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성질상 사법부가 헌법의 정치적 권리에 가장 위험하지 않기 때문이다. 행정부는 칼, 즉 수단을 지니고 있으며 입법부는 경비를 주관하는 것은 물론 모든 시민을 규제하는 법을 만드는 반면 “사법부는 칼도 돈도 갖고 있지 않으며 사회의 힘이나 부에도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어떤 것도 실질적으로 결정하지 못한다. 사법부는 힘도 의지도 없으며, 단지 판단만을 내린다.”(해밀턴, 458) 둘째, 사법부를 구성하는 이들의 성격 때문이다. 입법부와 행정부는 선출된 권력이라서 당파에 휩쓸릴 여지가 많은 반면 사법부는 공정한 시험에 의해 선발된 이들로 구성되기 때문에 정치적 변화에 적은 영향을 받는다. 이를 근거로 해밀턴은 최고재판권을 사법부에 부여할 것을 주장하고, 실제로 미국 연방대법원에 이러한 권한이 주어졌다. 의회주권을 제어하고, ‘헌법’에 주권을 부여하기 위해서 말이다.

3. 뛰는 헌법 위에 나는 국민

 


제3신분이란 무엇인가(책세상문고 고전의 세계 33)

저자
E.J.시에예스 지음
출판사
책세상 | 2003-09-3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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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주권’에 대해 들으면 길길이 분노할 인물이 있다. 바로 시에예스이다. 그는 아마 건국의 아버지들이 모여 만든 헌법에 왜 몇 백 년 간 미국 국민들이 종속되어야 하느냐고 분노했을 것이다. 주권이 헌법에 종속되어 있는 미국과는 달리, 프랑스 헌정사는 주권이 헌법을 지배한 연속이었다. 그리고 그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헌법과 관련해 제기되는 여러 가지 의견 충돌을 종식시킬 방법이 단 한 가지밖에 없다. 그것은 명사 회의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전체 국민 자체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체 국민만이 헌법을 제정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시에예스, 89)

시에예스는 정치사회의 형성을 세 시기로 나누어 고찰한다. 제1시기인 기초 사회는 개인적 의사들의 결과이며 개인적 의사들이 모든 권력의 원천이다. 제2시기는 공통적 의사의 실행이 시작되는 시기이다. 제3시기는 공통적 의사를 직접 행사하기에 용이하지 않아서 “전체 국민의 의사, 결과적으로는 권력이라는 부분의 행사를 그들 중 몇몇 사람들에게 위임”(시에예스, 91)하는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공통적 의사가 실질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대의적 공통 의사만 존재한다. 그러나 시에예스는 늘 주권이 국민에게 있음을 잊지 않는다. “대의적 공통 의사에는 두 가지 본질적 특성이 있는데 ① 이 의사는 대표자 단체에게 전적으로 그리고 무제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전체 국민의 커다란 공통적 의사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② 대표자들은 이를 고유한 권리로서 행사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타인의 권리이며. 공통적 의사는 그 위임에 의해서만 존재한다.”(시에예스, 92)

시에예스는 정치사회의 형성을 살피고 나서 곧바로 헌법과 전체 국민과의 관계에 대해 논한다. 그에 따르면 헌법이란 “어떤 단체가 그 단체의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의도된 작용을 완수하기 위해 부여된 적합한 법률, 형태, 제도”(시에예스, 92)이다. 앞에서 설명한 위임받은 대표자들은 이 헌법에 따라서만 작용하고 나아가고 명령할 수 있다. 그렇다면 대표자들 말고, 국민은 헌법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국민은 모든 것 이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으며 국민은 모든 것의 기원이다. 국민의 의사는 항상 적법하며, 국민의 의사가 곧 법률이다.”(시에예스, 93-94)

시에예스에 따르면 국민은 실정법 이전에 존재한다. 헌법은 어떤 단체를(국가) 구성하는 구성원들이(국민들이) 결정한 실정법이다. 반면에 국민은 자연법에 의해서 형성된다. 따라서 국민은 헌법에 종속될 수 없다. 만약에 국민이 헌법에 종속된다면 국민에게 헌법에 종속되라고 강요하는 “사전적인 어떤 권력이 존재하고 있는 것인가?”(시에예스, 96) 시에예스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헌법 간에 충돌이 발생하거나, 헌법에 문제가 생겼을 때 이는 국민들의 의사에 의해 해결될 수 있다. “헌법의 각 부분들 간에 발생할 수 있는 주된 의견 충돌에서, 논란이 되는 헌법에 따라서만 행위 할 수 있다고 길들여지고 지시받은 국민은 어떻게 될 것인가?” “시민들이 자신들의 소송을 신속히 마무리 할 수 있는 힘을 능동적인 권력 쪽에서 찾아내는 것이 공민적 질서에서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점에 주목하자.”(시에예스, 98) 헌법에 의해 구성된 기관들은 헌법에 종속되어 있으므로 헌법을 심판하고 헌법들 사이의 모순을 해결할 능력이 없으며, 오로지 헌법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국민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더 나아가, 헌법으로부터 국민이 독립적이어만 헌법은 헌법답게 존재할 수 있다. “그러므로 만약 국민이 모든 헌법적 형식과 모든 규범들로부터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부분들 간에 아무리 조그마한 장애라도 발생할 경우 그 나라에는 더 이상 헌법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시에예스, 98-99)

그렇다면 조금 더 현실적인 문제로 넘어가서, 말이야 국민 뜻대로 하면 된다고 쉽게 이야기하지만, 도대체 국민은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국민의 의견을 구해야 하는가? 여기서 시에예스는 특별 대표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특별 대표란 일반 대표와 구별되는 것으로, ‘연방주의자 논설’에서의 ‘헌법제정회의’와 유사하다. 일반 대표란 의회라 할 수 있다. 국민은 어디에 있는가? 프랑스의 각 행정구에 있다. 그리고 이 시민의 과반수에 의해 임명된 특별 대표들만이 헌법을 다루거나 국민들에게 헌법을 줄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헌법 제정 대표는 신분별 고려 없이 구성되어야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 특별 대표들은 어떻게 국민의 의견을 구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 간단하다. 국민을 소집해야 한다. “통상적인 국민 의회 헌법 제정을 위해 특별히 위임된 특별 대표를 수도에 파견하기 위해서 우리는 국민을 소집해야 할 것이다.”(시에예스, 107)

시에예스는 이처럼 국민에게 주권을 부여하고, 더 나아가 이 국민주권이 헌법을 지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즉 국민의 의사에 따라 언제든지 헌법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의 이러한 주장은 마치 프랑스대혁명 이후 여러 차례의 헌법 개정을 거친 프랑스의 역사를 선험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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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조본좌 조본좌 2013.01.18 23:46

학교 수업 중 비교정치 관련 발표를 준비하면서 쓴 정리글이다.




1. 문제의식(종속변수의 설정) : 대의제에서 ‘대표성’이라는 문제
2. 독립변수의 설정 : ‘결선투표제’가 대안이 될 수 있는가?
1) 결선투표제란?(단순다수제와의 비교를 통해)
2) 결선투표제와 대표성 사이의 상관관계
3. 가설 검증 :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면 투표율을 높일 수 있다.
1) ‘대표성’이라는 종속변수의 조작적 정의
ⅰ. 결선투표제 도입 이전과 이후 투표율의 변화
ⅱ. 1차 투표보다 2차 투표에서 투표율이 상승했는가?
2) 프랑스, 브라질 등 결선투표제를 도입하고 있는 나라들의 사례 연구
4. Rival Theory : 양당제 국가일수록 투표율이 높다?
5. 결론


1. 문제의식(종속변수의 설정) : 대의제에서 ‘대표성’이라는 문제

‘민주주의’를 잘하고 있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민주주의가 대의제라는 형식을 빌려 전개된다는 측면에서, 그리고 한국 역시 그런 국가들 중 한 곳이라는 ‘현실’ 속에서, 그리고 혁명적으로 분출되는 정치적 욕망이나 열망보다는 항시적이고 측정(그러므로 예측)가능한 제도가 정치학의 ‘연구 대상’에 더 적합하다는 점에서, 특정 국가. 사회. 인간집단이 민주주의를 제대로 하고 있느냐 마느냐는 대의제를 얼마나 잘 작동시키느냐를 기준으로 ‘측정가능’하다.

그렇다면 대의제라는 추상적인 형식을 측정할 수 있는 척도는 무엇인가? 즉 우리는 어떤 기준에 의거하여 대의제가 잘 작동하고 있다 혹은 대의제가 잘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말하는가? 최장집은 그 척도로 참여, 대표성과 책임성을 제시한다. 여기서 대표성이란 대표자가 선출되는 과정에서 유권자의 의사가 더 잘 반영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책임성이란 국민의 대표가 자신에게 위임된 권력을 행사하고 의무를 이행하는 모든 행위결정의 근거에 대해 주권자인 인민의 요구가 있을 때 이에 응답하고 설명해야 하며, 정책의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이다.

나는 이 중 가장 측정하기 손쉬운 대표성을 문제 삼고자 한다. 민주화 이후 한국에서 선거를 통해 선출되는 대통령/국회의원의 대표성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 이는 대통령 선거/총선거에서의 투표율이 점점 하락하고 있다는 사실을 통해 알 수 있다. 이렇게 투표율이 낮은 상황에서 선거에서 1위를 차지한 후보자 역시 과반수를 넘기지 못하면서 대표성에 심각한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양김의 분열로 대표되는 1987년 선거에서 노태우는 겨우 36%의 지지를 받아 당선되었는데, 이 당시 투표율을 고려하면 노태우는 전체 국민 중 32%의 지지, 전체 국민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지지를 받고 대통령이 된 셈이다. 1992년 선거에서 김영삼 역시 42%의 지지를 받았는데 투표율을 고려하면 노태우와 별반 다르지 않은 33.9%의, 겨우 1/3을 넘은 수의 지지를 받고 당선되었다. 김대중과 노무현, 이명박 역시 유권자 과반수의 지지를 얻지 못한 데다, 투표율을 고려하면 이들의 득표율은 더욱 낮아진다. 이명박은 투표에 참여한 유권자 48.5%의 지지를 받았지만 전체 선거인수를 기준으로 할 때 득표율은 30.52%로 이 수치는 대통령 직선제가 실시된 이후 가장 낮은 수치이다. 노무현은 34.33%, 김대중은 31.97%의 전체 유권자 대비 득표율을 기록했다. 국회의원/지방도지사/지방의회 의원에게도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이다. 선거에서의 기권을 후보자에 대한 소극적 거부의 표현으로 이해한다면, 오늘날 대부분의 대표자들은 자신을 지지한 유권자보다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거부한) 유권자를 더욱 많이 가지고 있는 셈이다. 나는 이러한 대표성의 위기를 ‘문제적 상황’(종속변수)으로 설정했다.

2. 독립변수의 설정 : ‘결선투표제’가 대안이 될 수 있는가?

이러한 대표성의 위기를 해결하고자 정치권/학계에서는 결선투표제의 도입이 제기되고 있다. 사실 과반수도 되지 않는 소수의 지지만 받고 대통령에 당선되는 일은 한국에서만 문제되는 일은 아니다. 선거라는 경쟁에 참가한 후보 가운데 제일 많은 표를 차지한 후보가 당선되는 단순다수제를 채택한 나라들 전반에서 나타나는 문제이기도 하다. 예컨대 1945년 이래 영국의 어떤 집권당도 50% 이상을 득표하지 못했지만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여 단일정당 정부를 구성해 왔다. 이러한 단순다수제의 대안으로 흔히 제기되는 제도가 남미 국가나 프랑스에서 시행되는 ‘결선투표제’이다.

1) 결선투표제란?

결선투표제(run-off)란 당선의 조건을 단순다수제와 같이 ‘후보자들 중 1위를 차지하는데’ 두는 것이 아니라, ‘과반수의 지지를 차지하는데’에 두는 ‘절대 다수제’의 한 형태이다. 결선투표제 하에서는 1차 투표에서 50% 이상 득표한 후보자가 없을 경우 1차 투표의 순위나 득표율에 따라 상위의 소수 후보자(보통은 2명)가 결승라운드에 진출하여 최종 당선자를 결정짓는다. 이러한 결선투표제를 시행하고 있는 대표적인 나라가 프랑스이다. 프랑스에서는 대통령 선거 시 1차 투표에서 과반수 득표자가 없는 경우 1,2위 상위 득표 후보들을 대상으로 결선투표를 실시한다. 프랑스 외에도 폴란드, 우크라이나 등이 대통령 선거와 의회 선거에서, 루마니아, 크로아티아, 불가리아, 오스트리아, 포트루칼, 우루과이, 페루, 브라질, 에콰도르 등이 대통령 선거에서 결선투표제를 사용하고 있다.

2) 가설의 논리구조

그런데 이러한 결선투표제 도입이 어떤 방식으로 대표성을 높이는데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일까? 우선, 결선투표제의 제도 자체가 그러하다. 결선투표제는 한 후보자가 과반수의 지지를 얻지 못했을 경우 상위 득표자들만을 두고 2차 투표를 실시함으로써 2차 투표에서는 어느 한 후보가 유권자의 과반수 지지를 얻도록 강제하는 제도적 장치이다. 즉 결선투표제 하에서 한 후보자는 적어도 투표한 사람들 중 과반수의 지지를 얻을 수‘밖에’ 없다. 당선자는 소수가 아니라 과반수의 지지를 받아 당선되었으므로 대표성을 지닐 수 있고 이를 통해 더 강력한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또한 결선투표제는 투표를 안 하던 사람들을 투표장으로 끌어오는 효과를 지니고 있다. 투표 참여/불참의 문제를 일반적인 가설로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유권자들은 대개 선거에서 마음에 드는 후보자가 없는 경우 기권을 선택한다. 단순다수제 선거제도는 기존 정당의 기득권을 보장하고 새로운 인물의 등장을 어렵게 만드는 양당제에 기여한다. 후보자들은 1등을 차지하기 위해 떨어질 가능성을 무릅쓰고 선거에 출마하려 하지 않으며, 최악의 후보자를 막기 위해서나 현 정권 심판을 위해 제2당과 연합해야한다는 압박에 시달린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존 정치에 실망하고 좌절한 이들은 대안의 부재를 느끼며 기권을 선택하거나 자신이 생각한 최악의 후보를 막기 위해 차악을 선택한다. 반면 결선투표제는 단순다수제와는 달리 후보자 수를 증가시킨다. 33개국 대통령 선거를 분석한 존스에 따르면 단순다수제보다 결선투표제를 시행하는 국가에서 후보자 수가 증가하였는데, 그 이유는 결선투표제에서는 일단 1등이 아닌 2등만 차지하면 되는 데다, 설사 2차 선거에 나가지 못하게 되어도 후보자들이 1차 선거의 결과에 따라 2차 선거에 나가는 후보들과 정치적 협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강원택에 따르면 후보자 수 증대는 유권자들에게 투표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효과로 이어진다. 많은 후보들이 선거경쟁에 나서는 상황에서 각 후보들은 서로 다른 유권자 층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각기 다른 유권자들의 이해를 대변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권자들은 자신들의 이해를 제대로 대변해줄 수 있는 후보를 가질 수 있는, 다시 말해 투표선택의 폭이 넓어져 투표에 참여하려는 동기가 커지게 된다. 또한 유권자는 자신의 표가 사표가 되는 것이 싫어서 혹은 최악의 후보를 피하기 위해 차악을 선택하지 않고 자신의 선호도를 표현할 수 있다.

3. 가설 검증 : “결선투표제가 선거의 대표성을 증대할 수 있다.”

위의 논리구조를 정리하여 “결선투표제는 대표성을 증대할 수 있다.”는 가설을 세울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결선투표제는 1) 과반수 지지를 받지 않는 후보는 당선될 수 없게 만들며 2) 유권자에게 투표선택의 옵션을 늘려주어 투표율을 증대시킨다는 점에서 대표성을 증대시킨다. 그런데 여기서 1)의 효과는 굳이 입증할 필요가 없다. 제도 자체가 지닌 효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2)의 효과, 결선투표제가 투표율을 증대시킬 것이라는 가설의 검증에 주력해야 한다. 1)의 효과가 아무리 크더라도 투표율 자체가 높지 않다면 대표성 충족이라는 종속변수에 결선투표제가 별 영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1) ‘대표성’이라는 종속변수의 조작적 정의

여기서 나는 종속변수로 설정한 ‘대표성’과 독립변수인 결선투표제 사이의 상관관계를 살피기 위해 조작적 정의를 시도할 필요가 있다. 이 조작적 정의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ⅰ. 결선투표제 도입 이전과 이후 투표율의 변화

우선, 결선투표제를 실시하고 있는 국가들이 결선투표제 도입 이전과 이후에 투표율에 차이를 보였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결선투표제 도입 이후 투표율이 상승했다면 결선투표제는 대표성이라는 종속변수에 영향을 미치는 독립변수임이 입증된다.

ⅱ. 1차 투표보다 2차 투표에서 투표율이 상승했는가?

그러나 단순히 투표율이 높아졌다는데 만족하지 않고, 1차 투표와 2차 투표 사이의 투표율 변화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결선투표제의 투표율 상승효과에 반대하는 많은 사람들의 비판이 바로 이 지점을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선투표제에서는 1차 선거를 거치면서 후보자들이 두 명으로 좁혀지기 때문에 2차 선거에서 유권자들의 선택은 둘 가운데 하나로 강요받게 되고 따라서 1차 선거에서 지지한 후보가 탈락한 유권자들이 기권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파렐은 이러한 투표율의 하락으로 인해 2차 선거에서 ‘유권자 과반수’의 지지로 당선된 후보도 선거인 모두를 고려하면 결선투표제에서도 승자가 과반수를 획득하지 못할 수도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단순히 결선투표제 도입 이전의 투표율과 도입 이후의 1,2차 투표율 사이의 변화를 살펴보는 것을 떠나서 결선투표제 하에서 1차, 2차 선거에서의 투표율이 1차 선거에서의 투표율에 비해 하락하지 않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2) 프랑스, 브라질 등의 사례 연구

이제 본격적으로 결선투표제를 실시하고 있는 나라들의 사례를 검토해보자. 일단 첫 번째로 결선투표제를 실시하고 있는 나라들이 결선투표제 도입 이후 투표율이 높아졌는지를 살펴보자. 우리가 검토할 수 있는 사례는 브라질, 칠레, 우크라이나이다.


그런데, 왜 세 가지 나라의 사례 밖에 검토하지 않는가? 결선투표제는 브라질, 칠레, 우크라이나는 외에도 프랑스가 채택하고 있다. 게다가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등의 동유럽 국가들과 콜롬비아, 코스타리카, 도미니카 공화국, 과테말라, 페루, 엘살바도르 등의 중남미 국가들이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동유럽과 중남미 국가 대부분은 권위주의 국가에서 민주주의 국가로 체제 전환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즉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결선투표제는 권위주의 국가에서 민주주의 체제로 넘어가는 단계에서 채택하는 제도이다. 이는 심지어 프랑스도 마찬가지인데, 프랑스의 경우 드골의 주도로 1962년 헌법 개정이 이루어졌고(제5공화국) 이때서야 대통령 직선제가 처음 도입되고, 결선투표제도 함께 실시되었다. 내가 조사한 바로는 그렇지 않고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결선투표제 실시 이전과 이후를 비교할 수 있는 국가는 세 가지 사례뿐이었다.

세 가지 사례만 놓고 보았을 때, 브라질의 경우 결선투표제 도입 이전보다 이후에 투표율이 4~5% 정도 상승했다. 우크라이나의 경우는 오히려 10% 정도 하락했고, 칠레의 경우에도 1~4% 정도 투표율이 하락했다. 세 가지 사례만 놓고 보았을 때 결선투표제 도입과 투표율 상승은 별 관련이 없어 보인다.

다음으로 결선투표제 도입 이후 1차 투표율과 2차 투표율 사이의 변화에 대해 살펴보자.

1차 투표율과 2차 투표율 비교

국가

년도

1차 투표율

2차 투표율

비고



브라질


2002


82.26


79.53


하락


2006


83.2


81


하락


2010


81.9


78.5


하락


루마니아


2004


58.5


55.2


하락


2009


54.4


58


상승




칠레


1999-2000


89.94


90.62


상승


2005-2006


87.67


87.12


하락


2009-2010


87.2


86.7


하락


우크라이나


2010


66.5


68.8


상승


슬로바키아


2009


43.6


51.7


상승


콜롬비아


1994


35


43


상승


1998


50.35


59


상승


코스타리카


2002


68.81


60.96


하락


도미니카공화국


1996


77.2


76.6


하락


에콰도르


1996


67.9


71.7


상승


2002


62.89


71.21


상승



과테말라


1985


60.94


69.28


상승


1999


53.36


40.38


하락


2003


55.91


46.78


하락



페루


1990


78.4


79.7


상승


2000


85.29


82.29


하락


2001


83.71


82.79


하락


2006


88.7


87.7


하락


내가 조사한 31개의 사례들 중에서 1차 투표보다 2차 투표에서 투표율이 상승한 사례는 17가지, 하락한 사례는 14가지였다. 나는 이 사례들을 검토함으로써 결선투표제 도입이 오히려 자기가 원하는 후보가 없어지는 상황을 초래해 2차 투표에서의 투표율 하락을 가져온다는 가설, 양자 대결로 투표가 이루어지게 만들어 투표에 대한 관심도를 증대하여 2차 투표에서 오히려 투표율이 상승할 것이라는 가설 둘 중에 어느 것이 맞는 것인지 검토할 수 있었다. 두 가설 모두 별 상관이 없었다. 결선투표제 도입 여부보다는 오히려 국가별 변수가 중요해 보인다. 브라질의 경우 세 번 모두 하락했고, 칠레 역시 세 번 중 두 번 하락했고 페루는 네 번 중 세 번 하락했으며, 콜롬비아와 에콰도르는 두 번 모두 상승, 과테말라는 세 번 중 두 번 상승했다. 프랑스는 8번의 사례 중 한 번을 제외하고 모두 2차 투표에서 투표율이 상승했다. 1차 투표에서 2차 투표 사이의 투표율 변화가 상승 혹은 하락이라는 하나의 법칙성을 지닌 것이 아니라 국가별로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4. Rival theory

나는 결선투표제와 투표율 사이의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래서 이제 어떤 다른 독립변수들이 투표율과 관련이 있을지를 검토해보기로 했다.

-> 양당제 국가일수록 투표율이 높다?

우선 나는 “양당제 체제를 갖추고 있는 국가일수록 투표율이 높을 것이다.”라는 가설을 세웠다. 이는 결선투표제가 투표율과 별 관련이 없다는 사실로부터 기인한다. 결선투표제의 투표율 상승효과를 기대하는 많은 이들이 결선투표제로 인해 후보자가 많아지고, 유권자 입장에서 선택지가 많아지면 투표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고 사표심리가 줄어들어 더 많은 사람들이 투표에 참여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 후보자가 난립하는 것보다는 후보자가 적을수록 많은 사람들이 투표에 참여할 것이라는 반론이 있다. 두 명의 후보가 박빙을 다투는 선거가 사람들의 흥미를 더 끌 수 있고, 내가 행사하는 표의 가치가 중요해지면서 사람들이 투표에 참여할 동력을 더 얻게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많은 후보자들 중에서 나를 대표해줄 사람을 고르는 비용보다 몇 안 되는 후보자 중에 나를 대표해줄 사람을 고르는 비용이 더 적게 들기 때문에 후보자가 적을수록 투표율이 높아진다는 견해도 있다. 이러한 주장에 따르면 양당제 체제가 더 강한 나라일수록 투표율이 높아지는 경향이 나타날 것이다.

이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우리는 양당제와 다당제 국가들의 투표율을 비교해보기로 했다. 나는 단순다수제를 채택하는 나라일수록 양당제로 흐를 가능성이 높고 비례대표제를 채택하는 나라일수록 다당제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는 뒤베르제의 법칙에 따라 단순다수제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들과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들의 투표율을 비교해보았다. 우리는 단순다수제 국가 43개국의 대선과 총선 투표율, 비례대표제 국가 75개국의 대선과 총선 투표율을 비교해보았다.



양당제(단순다수제)/다당제(비례대표제) 국가의 투표율 비교


양당제(단순다수제)


다당제(비례대표제)


대선 평균 투표율


총선 평균 투표율


대선 평균 투표율


총선 평균 투표율


65.950625


65.950625


67.52461538


68.57444444


내가 살펴본 사례를 볼 때 양당제 국가들의 대선, 총선 평균 투표율은 65%, 다당제 국가들의 대선 평균 투표율은 67%, 총선 평균 투표율은 68%였다. 양당제 국가일수록 투표율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당제 국가일수록 투표율이 더 높아지는 경향이 나타났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것은, 2%,1% 정도의 차이가 통계적으로 무의미한 수치라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조사한 것보다 더 자세한 자료를 찾아냈다. Pippa Norris라는 정치학자가『Shared Global Database』라는 책에서 선거제도와 투표율 사이의 상관관계를 밝히고 있다. (비록 이 자료는 1990년대를 다루고 있다는 한계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선거제도와 투표율>



선거제도


투표율 (%)


사례국가수 (N)


1위 대표제


61.3


43


혼합제 평균


64.3


26


명부식 비례제


70.0


59


양당제일수록 투표율이 높다는 가설과는 달리, 이 연구에서도 오히려 다당제를 불러일으키는 비례대표제를 채택하는 국가일수록 투표율이 높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10% 포인트 정도의 차이가 있다.)

5. 결론

나는 '결선투표제'가 투표율을 높여 대표성을 증대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 검증해보았다. 그 결과, 결선투표제와 투표율은 별 관련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다만 이 가설에 대한 rival theory, "양당제 국가에서 투표율이 높다."를 검증하는 과정에서 다당제, 즉 비례대표제를 택한 나라일수록 투표율이 높다는 뜻밖의 사실을 발견했다. 이러한 연구에 따라 우리는 대표성을 높이기 위해 결선투표제를 도입할 것이 아니라 비례대표제를 증대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그렇다면 똑같이 후보자 증대 효과가 있는, 즉 다당제 효과가 있는 비례대표제와 결선투표제의 차이가 무엇이길래 유권자들이 결선투표제에는 반응하지 않고 비례대표제에는 반응하는 것일까? 여기서 나는 대표성을 증대하는 데 있어 단순히 많은 후보자가 나와 유권자들의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많은 후보자들 중 하나를 찍었을 때 자신의 표가 실질적인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결선투표제의 경우 결국 둘 중 하나를 찍어야 한다는 2차 투표에서는 오히려 투표율이 줄어들기 일쑤이다. 그러나 비례대표제의 경우 자신이 찍은 표가 실제 힘을 발휘할 가능성이 높다. 적어도 이 연구만 보았을 때 유권자들은 투표를 하는데 있어서 '선택의 폭' 증대보다는 '사표방지'에 더욱 민감한 듯하다.

참고자료

강원택. 1997. “대통령 선거 방식의 제도적 문제점에 대한 연구: 단순다수제와 결선투표제 방식의 비교를 중심으로.”『한국정치학회보』제31집 제3호.

박경미. 2010. “결선투표제의 상이한 정치적 결과 : 프랑스와 브라질의 정치개혁.”『현대정치연구』제3권 제2호.

안용흔. 2006. “투표율에 대한 결선투표제와 국제화 변수의 영향력 분석.”『한국정치학회보』 제43집 제4호.

이준한. 2006. “라틴 아메리카의 결선투표제에 대한 고찰.”『국제. 지역연구』15권 A호.

http://aceproject.org/epic-en/CDTable?question=ES005&view=country&set_languag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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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조본좌 조본좌 2013.01.18 23:45

여러가지 글들을 짜집기 했습니다. 2011년 4월 7일 카페 체화당에서 열린 신촌논단 청년주거권 토론회에 공동생활전선도 참여했는데, 그 때 사용한 발제문입니다.

1. 공동생활전선이란?

간단히 말해서 ‘20대 생활 학습 연대체’라 소개할 수 있는 공동생활전선의 이름은 기본적으로 공동생활을 통해 우리가 처한 현실에 대한 전선을 형성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때 전선을 형성한다는 것은 한국사회에서 하나의 독립된 주체로 인정받지 못하는 20대들이 연대하여 우리를 억누르는 사회적 모순에 대해 저항하고 투쟁하자는 의미이다. 공동생활전선은 이러한 저항과 투쟁을 위해서, 즉 20대가 처한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결국 20대가 스스로 경제적 자율성을 가지고 이론적 학습과 실천적 운동을 병행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기획된 생활학습연대모임이다. 2011년 봄 현재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에 생활공간을 구하여 공동생활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는 공동생활을 통해 공통의 대의에 걸맞은 새로운 일상의 습관을 만들고, 공동 학습을 통해 20대가 나름의 지적 역량을 갖춘 담론적 주체로 바로 설 수 있음을 증명하며, 20대가 ‘따로, 또 같이’ 연맹체를 이루며 실천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2. 공동생활전선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가?

공동생활전선에 관한 논의가 처음 나오게 된 곳은 2009년 9월, 군대 내부 전산망인 인트라넷이었다. 당시 인트라넷에는 ‘책 마을’이라는 인문사회 독서 커뮤니티가 존재했다. 책 마을은 군인들이 모여 라이트노벨에서부터 정치철학까지 다양한 독서 관심사를 표현하던 공간이었다. 대부분이 20대인 군인들이 모여 있는 공간이다 보니 책 마을에서도 몇 해 동안 뜨거운 반응을 얻었던 ‘88만원 세대’론이 불거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 2008년『문학 동네』겨울 호에 실린 ‘청춘의 종언’ 좌담회 내용이 책 마을에 옮겨진 뒤부터 책 마을에서 88만원 세대론이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이 글을 보고 누군가는 슬픔을 느꼈고 누군가는 답답함을 느꼈으며 엄청나게 분통을 터트린 이도 있었다. ‘불안한 20대’라는 규정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이는 없었고, 따라서 스스로도 슬픔과 답답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좌담회는 꼭 그만큼의 꺼림직함을 가져다주기도 했는데, 요즘의 이십대들은 반항, 도발, 상상력, 순수, 열정 등 낭만주의적 (청춘의) 특질들을 상실하여 노회하기도 하고, 영악하기도 하고, 젊음 고유의 패기나 무모함이 부족해지는, 20대와 청춘의 분리 현상을 격고 있다는 전제, 그리고 그로부터 이어지는 ‘특징이 없다, 겁에 질려 있다, 계급적 열등의식을 완전히 내면화하고 있다.’ 등등의 규정에 대한 불만 때문이었다. 과연 우리들이 스스로 그러한가에 대한 의문부터 그렇다면 우리가 이렇게 될 때까지 너희 어른들은 과연 무엇을 했느냐는 책임론, 우리는 지금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이냐는 질문까지 다양한 말들이 근무 시간 틈틈이 쓰인 텍스트들을 통해 튀어나왔고, 논의들은 꼬리를 물고 책 마을이 없어지는 날까지 지속되었다.

이 수 많은 텍스트들 중 공동생활전선의 기획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글은 2009년 9월 공동생활전선의 구성원 중 한 명인 양제열이 올린 ‘우리는 88만원 세대인가’라는 글이었다. 양제열은 이 글에서 88만원 세대들의 당사자 운동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궁극적인 이유를 ‘20대 대부분이 부모님 집에서 살며, 등록금을 지원 받기 때문’이라고 정리했다. 부모가 자식이 독립할 때까지 같이 데리고 사는 것은 한국 사회의 기본적인 합의이다. 그러나 양제열은 이러한 기본적 합의가 20대 문제를 심화시키고 있다고 진단한다. 주거권(집 값 문제), 교육권(등록금 문제), 노동권(일자리 문제) 등 20대 문제를 이루는 세 가지 큰 축들에 대해 20대 본인들의 반발과 저항이 나타나야 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한국에서는 부모들이 이 비용을 부담하기 때문에 20대들이 실질적으로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당사자 의식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20대들 뿐 아니라 부모 세대의 노년 안정성을 저해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며, 20-30대 부부들에게 출산율 저하라는 사회적 문제가 등장하는 것 역시 유사한 틀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20대 문제는 세대 간 분배 문제를 넘어서 한국 사회의 재생산 능력 상실과 연결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책 마을에서 활동하던 김예찬은 양제열의 이 글이 지닌 문제의식을 심화시켜 ‘공동생활전선’이라는 기획을 떠올리게 되었다. 이는 마츠모토 하지메의 <가난뱅이의 역습>이라는 책을 참조한 것이었다. 20대들이 ‘가난뱅이 전략’을 실천하며 경제적 자율성을 가지고 공동생활을 하는 문화가 생긴다면, 실질적으로 가게 부담을 줄일 수 있을뿐더러 20대들에게 당사자 의식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 않느냐는 제안이었다. 따라서 큰 틀에서 보았을 때 공동생활전선은 공동생활을 통해 집으로부터 자립하여 사는 젊은이들을 많이 만들어나가자는 운동으로 기획되었다. 이렇게 이야기된 공동생활전선의 기획은 책 마을 내에서 논의를 거듭하며 점차 구체적인 목적을 가진 형태로 발전해 나가게 되었다. 20대 운동의 한 형태로 공동생활전선이 지닌 문제의식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1) 현재 20대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세대론을 포함한 20대에 대한 규정은 대부분 어른들에 의해 생산되고 있다. 일단 우리는 우리의 목소리부터 낼 필요가 있다. 20대가 처한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20대 당사자가 자신들이 처한 현실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스스로의 생각과 행동이 가장 예리하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담론적 주체.

2) 물론 이러한 ‘당사자 운동’의 측면에서 의미 있는 시도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운동이 지속성을 가지려면, 물질적 조건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20대들이 독자적으로 자신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경제적 비용을 감당하는 것이 불가능한 사회적 현실 속에서 부모의 지원을 받아가며, ‘운동’에 투신한다는 것은 적지 않은 반발에 부딪칠 수밖에 없으며 또한 그것을 몇 년 이상 지속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20대가 자신이 처한 사회경제적 현실을 바꿔내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이 가족의 품을 떠나 ‘자립’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3) 설령 물질적 조건이 충족된다 하더라도 이제는 찾기 어려워진 ‘연대’와 ‘투쟁’이라는 상실된 가치를 되살려내지 않는 이상 20대 운동은 마치 지금 학생운동이 처한 상황처럼 일부 특이한 애들의 소란으로 여겨질 뿐이다. 어떻게 하면 20대가 처한 구체적인 상황, 20대가 일반적으로 공감할 수 있을 주제들을 다룰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이러한 문제제기들을 20대에게 일반화된 매체를 통해 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첫 단계로 주장된 것이 가출이었다. 사실 부모가 자식이 독립할 때까지 데리고 사는 것은 한국사회의 거의 기본적인 합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본적인 합의가 오히려 20대 문제를 심화시키는 원흉일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우리들이 가출을 생각하게 된 원인이었다. 오늘날의 20대 대부분은 부모와 함께 살며 등록금과 생활비를 지원 받는다. 오늘날 20대 초반의 젊은이 대다수는 대학생이며, 따라서 경제적 활동을 몇 년간 유예 받은 축복받은 존재들이다. 적지 않은 등록금을 부모들이 부담하며, 자취생의 경우에도 대부분의 경우 부모의 지원으로 생활해나간다. 여기에 과외나 알바를 한다면 생활비 정도는 제가 벌어 쓰기도 한다. 그러나 용돈을 받지 않는 사람을 찾기 힘들다. 기본적으로 20대 대학생들은 집에서 ‘부양’받는 존재인 것이다. 경제가 어렵고 취업이 어렵고 미래가 불안해서 학점과 스펙 관리에 열중하지만, 일단 그것은 ‘미래’의 문제다. 적어도 현재 20대들 자신에게 돈이란 현실적으로 나를 짓누르는 문제는 아니다.

한국의 경우와 다르게, 성인이 되면 집에서 독립하는 경우가 많고 친구랑 같이 살든 연인과 동거를 하든 어쨌든 나름의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경제적 자율성을 갖추려는 유럽 젊은이들은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와 닿는 경제적인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을까? 그들은 등록금과 취업 문제로 수만 명이 거리로 나선다. 그러나 한국 젊은이들이게 돈 문제란 ‘막연한’ 불안과 공포의 대상일 뿐이다. 부모라는 방패가 나를 지켜주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독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에게 ‘20대 문제’란 나의 일이면서도, ‘지금’ 나의 일은 아닌 것이다. 적극성이 결여된 것은, 어쩌면 가정이라는 온실에 갇혀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현재 20대 문제의 큰 축을 이루는 것은 대략 세 가지이다.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고(노동권), 높은 부동산 가격 때문에 독립된 주거 공간을 찾을 수 없으며(주거권), 너무나 높은 등록금과 생활비를 자율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교육권). 그리고 그것은 ‘부모가 자식을 독립할 때까지 데리고 사는 한’ 반복적으로 지속될 문제인지도 모른다. 만약 성인이 된 자식을 무조건 독립시키는 사회적 관습이 있었다면, 지금처럼 등록금과 학교 주변 집값이 치솟을 수 있었을까? 분명 굉장한 반발이 있었을 것이다. 자식을 독립시켜야 할 부모 세대 또한 이에 호응해주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반발은 자연스레 젊은이들을 ‘연대’하게 했을 것이고, 이러한 ‘연대’의 경험은 단지 20대 문제에 한정된 것이 아닌, 큰 사회적 자산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20대 초중반의 한국 젊은이들에게 ‘독립’과 ‘경제적 자립’이란, 단지 소설이나 드라마 속에나 등장하는 가상적인 것에 불과하다.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서 남성 소설가들의 비아냥거림에 맞서 그들과 달리 여성이 소설을 쓸 수 있으려면 1년에 5백 파운드의 수입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오늘날 20대들에게도 마찬가지의 문제라 할 수 있다. 20대가 소설을 쓰거나, 밴드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려면, 혹은 학문을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1년에 천만 원 이상의 자기 수입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 이것은 거꾸로 이러한 조건이 갖춰지지 않는 이상, 그러한 활동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과연 20대의 ‘자립’은 정말 소설 속에나 나오는 환상에 불과한 것인가? 일상 속에서 공상적으로, 또는 낭만적으로 많은 20대들이 집에서 독립하기를 꿈꾸지만, 많은 경우 경제적 문제나 가족 간의 유대 등을 이유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정말로, 지금 현재 우리가 가진 현실적 조건에서 자립이 불가능한지 따져볼 필요가 있느냐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재기 넘치는 젊은이 마쓰모토 하지메가 쓴 『가난뱅이의 역습』이라는 책이 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20대 문제가 심각한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으며, 비정규직이 확산되고, ‘프리터족’들이 늘어만 가는 일본의 현실에서, 젊은이들에게 가난하게 살아가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과감한 ‘가난뱅이 전략’을 펼칠 것을 주장하는 책이다. 또 다른 ‘가난뱅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 20대들이 마쓰모토 하지메의 주장처럼 ‘가난뱅이 전략’을 통해서 ‘독립’과 ‘저항’ 모두를 실천할 수 있지 않을까? 마쓰모토 하지메의 지침 중 하나는, ‘공동으로 생활할수록 소비는 줄어든다.’는 것이다. 물론 (사립대를 기준으로) 한 달에 100만 원에 달하는 등록금 전액을 당장 자가 부담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적어도 공동생활을 통해 독립된 주거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 사실 이미 전혀 모르는 사람끼리도 인터넷을 통해 룸메이트/하우스 메이트를 구하는 일이 일반적인 상황에서, ‘20대 문제’, 더 나아가 ‘체제에 구멍 내기’를 고민하는 이들끼리 같은 목적을 공유하며 ‘공동(가출)생활’을 시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마쓰모토의 책을 읽으면서 떠올랐던 것이다. 만약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공동생활의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다면, 우리는 경제적으로 자율적인 독립생활에 한발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은 버지니아 울프가 제안한 ‘자기만의 방’을 상징적이고, 낭만적인 공간이 아니라, 정말로 20대들의 실질적이고 물질적인 토대로서의 공간으로 마련하는 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 사람의 주체로, 물질적·정신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가출’이라는 생활양식의 전면화! 이때의 가출은 단순히 물질적으로 부모의 집에서 뛰쳐나와야 한다는 의미에서 더 나아가, 20대들을 쥐고 있는 ‘어른들’의 담론을 벗어나야 한다는 의미를 포함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20대들이 먼저 20대가 속해 있는 ‘부모〓어른’들의 영향권 밖에서 설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20대 운동’이라는 것이 정말로 20대 당사자들에게서 촉발될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바로 그 생각에서부터 이 글을 쓰는 ‘우리들’, 공동생활전선이라는 기획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기획은 책 마을에 있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인터넷에 홍보되었고, 2010년 4월 30일 공동생활전선의 기획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이들이 고려대학교 생활도서관에 모여들었다. 이른바 ‘공동생활전선 준비 모임’이 시작된 것인데, 몇 번의 준비 모임을 거치면서 공동생활전선의 구성원이 확정되었다. 각자 다른 욕망과 기대를 갖고 모인 이들이었으나 그들에게는 ‘공동생활’을 할 만한 공통의 이유가 있었다. 우리는 우선 공동생활전선의 문제의식과 목표, 앞으로의 계획 등에 대해 합의했다. 이 과정에서 이미 만들어진 대안 공동체들에 대한 사전 조사가 이루어졌다. 수유+너머, 빈집, 성공회대 꿈꾸는 슬리퍼, 예수살이, 지행네트워크, 연구 공간 공명 등이 그 대상이었다. 이러한 사전 조사를 통해 우리는 이 다른 대안 공동체들과 구별되는 ‘공동생활전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합의할 수 있었다.

이렇게 모인 공동생활전선 준비 모임 구성원들은 그 다음으로 공동생활전선을 구체적으로 구상하는 일, ‘무엇을 할 것인가’에 관한 논의에 착수했다. 이 논의는 크게 (1) 경제적 자립, (2) 이론적 학습, (3) 담론 투쟁이라는 쟁점으로 나뉘어 전개되었다. 이 글에서는 토론회의 특성상 ‘경제적 자립’부분만을 소개하고자 한다.

(1) 경제적 자립 : 20대는 어느 정도 수준까지, 어떻게 자립할 수 있는가?

먼저 공동생활전선이라는 기획이 담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문제의식인 ‘20대는 부모에게서 경제적으로 자립해야 한다.’라는 모토를 구체화할 필요가 있었다. 일단 구성원 모두 부모에게서 경제적으로 자립하여 공동의 생활공간 겸 학습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에는 합의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자립한다는 것이 당장 가능한지에 대한 문제로 인해 내부에서 ‘자립’의 개념을 명확히 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우선 지금 당장 구성원 모두가 집을 나와 같이 사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학생 몇 명이 노동을 통해 단기간에 보증금 500~1,000에 월세 30~50을 감당하기란 힘든 일이었다(이 비용도 4인 기준으로 잡은 것이다). 또한 대학생들이 부모에게 가장 크게 의존하는 것은 사실상 생활비라기보다 등록금인데, 이 등록금을 부모에게서 지원받지 않는 것은 매우 힘들다. 대학 등록금이 평균적으로 한 학기에 500만 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노동을 통해 등록금을 벌 경우 우리는 한 학기 일하느라 휴학하고 그 돈으로 한 학기를 다니는 짓을 반복할 것이고 이런 상황에서 20대의 목소리를 내는 활동들과 학업을 병행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점진적으로’ 완전한 자립을 추구하되, 지금 당장은 ‘현실 가능한’ 자립을 달성하기로 합의했다. 구성원 모두의 돈으로 공동 공간을 마련하되, 당장 가출을 할 수 있거나 가출이 필요한 이들이 공동의 공간을 주도적으로 사용하고(실제 공간에 거주하면서) 나머지 구성원들의 경우 새로운 공간이 마련될 때까지(자금이 모일 때까지) 완전한 자립을 연기하되 이들 역시 이 공간을 언제나 사용할 수 있으며, 세미나나 운영 회의 등의 공동 작업을 할 때도 이 공간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반(半)가출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보증금처럼 유지되는 비용은 구성원이 모두 동일한 비율로 출자하고 실제 공동으로 거주하면서 사용되는 생활비는 공간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부담하기로 했다. 또한 정기적으로 비정기적으로 각자가 노동으로 얻은 수입을 모아서 공간을 확장하거나 새로운 공간을 마련하는 비용으로 쓰기로 했다.

(2) 이론적 학습 : 무엇을 공부할 것인가?
(3) 담론 투쟁 : 무엇과 싸우고, 무엇에 개입해야 하는가

이러한 논의과정을 거쳐 ‘공동생활전선 준비모임’ 구성원들은 공동생활전선의 강령을 만들었다. 강령 중 ‘자립’에 관한 부분은 다음과 같다.

◎ 사회적 자립

“가계에 의존하지 않는 자율적 주체가 되기 위해 노동으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적 자립을 현실화한다. 이로써 우리 세대의 경제적 자립을 어렵게 만드는 사회구조적 모순을 드러내고자 한다. 그뿐 아니라 주거비와 생활비의 자립을 통해 각자 자유롭게 연대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한다.”

공동생활전선은 사회적 자립을 지향한다. 원래 자립의 의미가 경제적인 것에 국한되어 있다가 논의를 거쳐 사회적인 것으로 바뀌었다. 그 이유는 우리의 자립 시도가 단지 경제적 의미만을 지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노동을 통해 가계로부터 자립함으로써 우리는 사회구조적 모순(주거권, 노동권, 교육권)을 드러내려 한다. 우리가 이 모순에 부딪쳐 고생하고 갈등할수록 우리는 더 ‘주체화’된다. 또한 이 경제적 자립은 부모의 물질적 조건에서 벗어난 20대의 자유로운 연대의 조건이다. 고로 이 자립은 경제적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회적 자립을 지향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세 가지 사항을 지키고자 한다. 첫째, 사회적 자립이라는 이념적 지향을 우리의 삶 속에 구현할 수 있도록 힘쓴다. 둘째, 사회적 자립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가난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셋째, 공동생활과 학습을 병행하는 자율적 공간을 마련한다.” 우리는 지금 마련한 공간을 넘어서 계속 공간의 확장을 도모할 것이다. 공동생활전선이 확장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물적 토대가 바로 ‘우리만의 공간을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책 마을에서 처음 논의가 시작된 이래, 2010년 여름을 거쳐 우리는 공동생활전선의 문제의식과 지향점을 구체화했고, 2010년 9월 25일 고려대학교 생활도서관에서 평소 공동생활전선의 논의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을 초대해 공식적인 출범식을 가졌다. 이제‘준비모임’이 아닌 ‘공동생활전선’의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즉 우리의 기획은 ‘실천’으로 향하게 되었다.

3.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공동생활전선의 구성원 중 세 명은 8월 말, 제기동 시장 주변의 작은 자취방에 둥지를 틀었고, 2011년 2월 한 명이 새로 이사를 왔다. 우리의 방은 보증금 500만 원 월세 55만 원짜리 방으로, 큰 방 하나, 작은 방 하나, 부엌과 화장실이 딸려 있다. 네 명이 20만원씩 내서 월세와 공과금을 충당하고 있다. 우리는 각자 집에서 밥솥, 탁자, 물 주전자, 선풍기를 가져오거나 군대 가는 친구의 가구를 기부 받거나 중고로 냉장고를 구입하는 방식 등을 통해 살림에 필요한 물품들을 마련하며 공동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구성원들 모두 20여 년 넘게 가족과 같이 살다가 다른 사람과 사는 첫 생활 인지라, 공동생활은 생각만큼 쉽진 않았다. 거주자 네 명 모두 자취 경험이 전무 했던 터라 살림에 대해서는 관심도 요령도 없었다. 또한 각자 학교생활과 교외활동에 바쁜 대학생이다 보니 어느새 집은 잠만 자는 공간이 되어버렸다. 청소를 못해 먼지가 쌓이고 빨래와 쓰레기가 방안을 메우는 일들이 즐비해졌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간단한 규칙을 정하고, 이 규칙을 이행하자는 결의를 통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공동생활을 하면서 느낀 가장 중요하고도 당연한 사실은 ‘살림을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집에서 나와서 사는 이유는 20대들에게 대안적 모델을 보여주기 위해서인데, 우리가 살고 있는 모습이 일반적인 남자 대학생들의 자취 모습과 유사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안적 모델을 만들어야한다는 측면에서, 우리들은 끊임없이 ‘시스템’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거주자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같은 공간에서 같이 보낼 수 있다면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에 나은 상황일 것이다. 물론 각자에게는 사정이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밤새 공부해야 할 일이 있고 가야 할 투쟁장이 있으며 꼭 끝내야 할 작업이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밥하는 데 문제가 생기고 쓰레기 비우는 데 문제가 생겨서는 안 된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단 한 명이 집에 남아 있더라도 냉장고에서 알아서 반찬을 꺼내서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는 정도의 준비는 늘 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더 많이 공부하고 더 자유롭게 활동해야 하므로 기본적으로 살림의 문제는 최소화하고 자동화해야 했다.

우리들의 실험은 다른 방식으로도 확장될 여지가 보인다. 우리들의 주거 공간은 다양한 활동가들의 숙소가 되어주기도 했다. 빈집처럼 모두에게 열린 공간은 아니었지만, 투쟁 전선에서 인연이 닿는 사람들에게 잠자리를 제공하곤 했다. 이런 저런 네트워크를 통해 자립음악생산자조합의 음악가들, 두리반 활동가, 진보정당 활동가, 학생운동가 등이 이 공간을 거쳐 갔다. 그들은 밤새 술을 기울이며 정세를 토론하다 잠을 잤고 밥을 먹었다. 서울을 비롯한 각 지역에 우리와 같은 실험을 하는 집단들이 여럿 생겨난다면 대안적 삶을 고민하는 20대 활동가들의 활동 반경을 크게 넓혀줄 수 있지 않을까?

또한 5개월가량 집을 나와 생활을 하면서 점차 안암동과 제기동을 학생의 눈 대신 거주자의 눈으로 보게 되었다. 일단 이곳은 서울에서 얼마 안 되는 미개발 지역이다. 바로 이 경제적 조건이 공동생활전선을 가능하게 했으리라. 보증금 500만원이라는 돈으로 서울에서 방 두 칸짜리 집을 어디서 구하겠는가. 그 외의 조건도 좋았다. 집에서 3분 거리에 제기시장이 있다. 이곳에서 간단한 식료품과 반찬, 일상적으로 사용할 용품들을 구입할 수 있고 재활용 센터도 있어서 살림잡기들을 중고 가에 살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걸어서 15분이면 경동시장과 청량리 청과물시장에 갈 수 있다. 집에서 통학하고 학교 주변 식당에서 밥을 먹고 술을 먹는 통학생의 입장이었다면 절대 발견하지 못했을 사실이었다. 우리에게는 아직 지역 운동과 연대할 계획이나 계기가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기존의 대학생과 학교 주변 주민의 관계가 좋게 말해서 하숙인-하숙집 주인, 구매자-판매자에 불과했다면 이와 다른 학생-거주자로서 새로운 형식의 운동이 가능하지 않을까? 이처럼 공동생활은 기존에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운동의 가능성을 상상하게 한다. 실제로 최근 이러한 연대의 가능성이 보이고 있는데, 우리가 거주하는 지역에서 재개발이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난한 세입자인 공동생활전선은 지역주민들과 함께 재개발 반대운동을 전개해야 할지도 모른다.

4. 앞으로의 과제?

1차적인 자립의 문제를 해결한 공동생활전선이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는 다음과 같다.

(1) 학습과 생활을 병행하는 공동공간과 생활양식의 확장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공동생활전선은 20대의 자립에 필요한 경제적 비용을 공동생활을 통해 최소화한다는 목표를 달성하고자 지속적으로 공동생활 공간을 확충해나가야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우리는 경제적 부담을 덜면서 학습과 생활을 병행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적절한 공간을 물색하면서 내부적으로는 생활과 학습의 연계를 염두에 두고 이전과 다른 생활양식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그리고 공간의 확장과 더불어 이 생활양식이 널리 퍼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이는 지금 공동생활전선이 진행되고 있는 고려대학교 근방인 서울 북부를 넘어서 공동생활전선의 생활양식이 퍼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2) 자금 마련

생활과 공간 확장을 위해 돈을 모아야 한다. 기본적으로 생활과 공간 확장을 위한 자금은 각자의 노동에 의해 마련된 자금의 ‘공동 관리’를 통해 확충된다. 하지만 동시에 함께 작업함으로써 가능해질 수 있는 공동의 소득을 창출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3) 20대 문제의 쟁점들의 첨예화

20대의 주거권, 노동권, 교육권 등과 관련한 다양한 부문 운동들과 연대하여 20대 문제의 직접적인 쟁점들을 더욱 첨예화해야 한다. 우리는 준비 모임 과정에서 수유+너머, 지행네트워크, 연구 공간 공명, 성공회대 꿈꾸는 슬리퍼, 빈집 등의 대안공동체들에 대한 인터뷰와 조사를 실시했는데, 이를 통해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었다. 대안 공동체 말고도 다양한 사회․경제적 모순에 투쟁하는 운동들 역시 연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예컨대 20대 노동권과 관련된 쟁점들을 첨예화하는 과정에서는 청년 유니온과, 20대 교육권과 관련된 쟁점들을 첨예화하는 과정에서는 김예슬 선언 카페와 연대할 수 있다. 담론 투쟁의 일환으로 진행하고 있는 블로그 및 언론매체 기고, 대자보, 대중시위, 출판 등의 활동을 계속하며 20대 문제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려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공동생활전선은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들을 해결해 나가며, 청년들의 빼앗긴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끊임없이 운동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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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조본좌 조본좌 2013.01.18 23:44

예전에 발표 때문에 썼던 글인데 팩트 좀 볼 게 있어서 옮겨둔다. 별로 효용성은 없는 글이다. 지금의 나는 이 글의 내용에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1. 서론

지난 8월 15일 이명박 대통령은 약 34만명에 대한 광복절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당시 특별사면자 중에는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 거액의 횡령과 배임, 분식회계 등으로 유죄를 선고받은 재벌 총수 14명이 포함되어 있어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다. 대통령이 주요 경제인들에 대해 특별사면을 실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한국의 주요 경제인사들, 특히 대기업 총수들은 죄에 비해 가벼운 형을 받기 일쑤이고, 선고받았다하더라도 특별사면으로 복권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정치권이 이러한 경제적 인사에 대한 관대한 법 적용을 정당화하는 논리는 한 가지,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정당 하냐 정당하지 않으냐를 떠나서, 재벌 총수들이 몇 명 잡혀간 것이 한국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몇 몇 재벌들에 의해 경제 전반이 좌지우지되는 경제구조를 가진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인 것이다.

이러한 재벌들은 초창기 한국경제를 발전시킨 주역들이었다. 실제로 재벌들은 막대한 수출로 국가의 부를 증대하였으며 몇몇 재벌들이 국가의 지원 아래 한국경제의 산업구조를 고도화하였으며 이는 한국의 첨단산업의 발전에도 큰 기여를 했다.

그러나 한국이 세계 10위의 경제 강국이 된 지금, 고착화된 재벌 구조는 오히려 한국경제, 더 나아가 한국사회에 여러 가지 문제점을 유발하고 있다. 국가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성장한 재벌들은 정경유착이라는 질 나쁜 관성을 버리지 못하였고 이에 따라 정치권과 재벌들 간의 부패 스캔들이 아직까지도 끈임 없이 터져 나오고 있다. 정경유착으로 인한 도덕적 해이가 IMF 금융위기의 주된 원인임은 이미 알려져 있다. 또한 선단식 경영과 중복투자, 문어발식 사업 확장으로 한국경제는 몇몇 재벌들에 관한 의존도가 심각한 상황이며 이에 따라 몇 몇 재벌들이 경제적 위기를 겪을 경우 한국경제 전반이 영향을 받게 된다.

이처럼 한국의 재벌구조가 많은 문제점을 유발하기 때문에 이러한 구조에 대한 개혁이 필수적이다. 비록 IMF 사태 이후 재벌 구조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영미식 모델을 도입하여 이를 개혁하려 했으나, 총수중심으로 대표되는 기존의 재벌 구조가 존속하는 동시에 영미식 모델이 도입되었기 때문에 영미식 모델의 장점이 살아나고 있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렇기에 보다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한 실정이다.

2. 본론

재벌구조를 개혁하는 방안을 논하기 전에 한국의 경제구조에서만 독특하게 나타나는 재벌구조가 어떤 변수에 의해 발생하게 된 것이지, 종속변수와 독립변수의 관계를 통해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분석을 위해 한국의 재벌구조를 종속변수로, 그리고 이에 영향을 미친 독립변수로 한국의 정치체제, 독재체제로 설정하기로 하겠다.

먼저 한국의 재벌에 대해 정의하자면, 한국의 재벌은 총수라고 하는 한 개인을 정점으로 그 가족이 많은 기업들에 대해 소유권을 장악한 후 이를 발판으로 경영권까지 행사하면서 이 기업들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게 되는 배타적 기업군을 의미한다. 즉, 한국의 재벌은 한 개인이 소유와 경영을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수많은 개별기업들의 집합체라 볼 수 있다. 한국의 재벌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 한국재벌은 매우 급속하게 성장하였으며 재벌기업의 경제력 집중도가 매우 높다. 즉 재벌의 독과점이 매우 심한 것이다. 1990년 독점규제법에 의해 독과점으로 지정된 품목은 총 127개인데 이 중에서 재벌기업이 참여하고 있는 업종이 105개로 전체의 82.7%를 차지하고 있으며 시장 지배적 사업자로 지정된 사업자 293개 품목 중 재벌기업이 193개 품목을 차지함으로써 전체의 65.9%를 차지하고 있다. 두 번째 국가권력과의 밀착이 매우 강하다. 세 번째 재벌총수 개인의 재벌기업에 대한 영향력이 막대하다. 특히 사외이사를 포함한 이사회 구성에서의 재벌총수 개인의 영향력이 매우 높은 편이다. 네 번째 경공업, 중화학공업에서 유통, 첨단산업에 이르기까지 다업종을 일관공정주의로 경영하는 콘체른형 재벌과 다 부문에 다각화된 문어발식 재벌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특징들을 바탕으로 한국의 재벌구조를 변화치를 가진 값, 변수로 바꿀 수 있다. 위의 한국재벌이 가진 특징들을 바탕으로 정리해보면 한국이 재벌구조라는 것은 곧 1) 재벌이 차지하고 있는 경제력 집중도가 높다, 2) 국가권력과의 밀착도가 높다, 3) 재벌총수 개인의 재벌기업에 대한 영향력이 높다, 4) (문어발 기업의 특징상) 계열사 간 상호지분보유를 통한 내부 지분율이 높다, 이 네 가지 변수를 가진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재벌구조(종속변수)는 무엇 때문에 만들어지고 고착화되었을까? 필자는 재벌구조가 고착화된 시점이 1960~70년대라는 점에 근거, 당시 한국의 정치체제에 주목하고자 한다. 즉 독재체제라는 당시 한국정치체제로 인해 한국의 재벌구조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재벌구조의 기원은 해방 이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해방 이후 정부는 귀속재산을 신흥자본가계층에게 무상으로 불하하였는데, 이로 인해 신흥자본가계층은 기업가로 변모할 자본을 축적하게 되었다. 전후에 기업가들은 원조물자의 특혜 배정과 재정투융자의 중점지원을 통해 자본을 끈임 없이 축적해나갔으나, 1958년 이후 원조의 감소와 1956~1957년 흉작이 계기가 되어 적응하지 못한 기업들은 도태되고 도산되고 이런 기업들을 몇몇 살아남은 기업들이 인수, 합병함에 따라 몇몇 기업들이 재벌화 되는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성장한 기업들이 재벌로 확실히 변모한 것은 60년대 들어서였다. 발전국가 모델의 경제성장을 추진한 박정희 정권은 한국경제의 산업구조를 다양화하고 수출드라이브정책을 펼쳤다. 산업구조를 다양화하는 과정에서 박정희 정권은 새로운 산업에 대한 독과점권한을 대기업들에게 부여했으며, 대기업들의 수출을 이끌기 위한 저가 정책을 위해 노동자들의 임금을 고정시키고 정부 자금을 지원해주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대기업들은 큰 성장을 할 수 있었다. 또한 정부는 국유기업들도 이 때 많이 육성했는데, 그 대표적 사례가 1966년 종합제철공장건설계획을 확정하고 1969년 대일 청구권 자금으로 건설된 포항제철이다. 60년대 대부분의 대기업들은 차관을 통해 자본을 마련하고, 도산 위험에 닥치면 정부가 금융 지원을 쏟아 부어 구제해주는 방식으로 성장했다. 차관공여의 방식은 불가피하게 독점을 강화하였는데, 외자의 도입, 배분에 수반되는 강력한 인. 허가제는 기술 및 특허의 배타적 점유를 가능케 하였고 강력한 장벽을 형성함으로써 시장구조의 조기독점화를 초래하였다.

한국의 재벌구조가 완전히 고착화된 시기는 1970년대인데, 당시의 대표적 산업정책은 중화학공업에 투자재원을 결집시킨 중화학공업정책이었다. 이 정책으로 인해 80년대 자본조정과 기업합리화가 발생했다. 또한 이미 성장한 대기업들은 대량생산체제를 도입하고 수출 지향적 공업화를 통해 대량수출체제로 나아갔으며 중간재의 수입대체화정책을 통해 국내적 분업구조를 창출했다. 이 분업구조 속에서 탄생한 것이 대기업들이 새로운 기업들을 설립하거나 타 기업들을 인수함으로써 만들어진 수많은 계열사들이다. 대기업들은 수많은 계열사를 거느리는 재벌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재벌의 형성과정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재벌의 탄생과 고착화에는 국가가 거의 주된 역할을 했다. 그리고 그 주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1960~70년대 한국의 정치체제가 독재체제였기 때문이다. 박정희 정권은 경제성장을 위해 재벌을 육성하고 지원하는 전략을 택했는데, 이 과정에서 수많은 특혜들이 재벌들에게 주어졌고 또한 이를 위해 농민, 노동자 등의 희생이 필수적이었다. 다양한 이익집단들의 주장이 표출되는 민주주의 사회였다면 이러한 정부 정책은 엄청난 사회적 반발을 가져오고 실제 정책을 집행하는 데 굉장한 난항을 겪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한국은 정치적으로 철저히 국내 사회집단들이나 개개인을 통제하는 독재체제였기 때문에 이러한 반대를 누르고 경제성장을 주도할 수 있었다. 민주주의의 정치체제에서 한국식 재벌구조가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먼저 민주주의 체제가 가장 발달한 나라 중 하나인 미국의 사례를 살펴보자. 미국의 대기업들이 한국 재벌들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총수 1인의 지배체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주주자본주의가 경제구조를 지배하고 있다. 부채가 자본의 대부분으로 시작한 한국 대기업들과는 달리 미국의 대기업들은 주식회사 형식으로 자본을 축적했고, 그렇기 때문에 주식을 가진 주주들의 이익을 옹호하는 방식으로 자본 활동의 모든 것이 이루어져왔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한국처럼 총수 1인이나 총수 가문이 기업 전체를 지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철저히 이루어져 전문경영인(CEO) 제도가 매우 발달했다.

미국이 주주자본주의로 총수 1인 지배체제의 재벌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독일은 사회민주주의의 전통에 의해 이러한 재벌들의 등장을 막을 수 있었다. 민주주의가 발달한 독일에서는 노동자, 농민 등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가 어느 정도 정치에 반영되었고 이에 따라 복지제도가 확충되었는데, 이것이 기업에도 반영되었다. 실제로 노동자이익의 보장을 위한 노동자경영참가제도는 대기업들이 민주적 발언체제로 운영되도록 만들었으며 기업의 지배구조 내부에 직업훈련제도, 복지제도 등을 포함시킴으로써 기업을 총수를 위한 기업이 아닌 노동자 계급을 위한 기업으로 만들었다. 한국이 재벌의 성장을 위해 노동자의 희생을 강요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런 모습이 나타날 수 있었던 이유는 독일이 사회 다양한 계층들의 이익을 반영하는 민주주의 사회였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들과의 비교 말고도 한국 사회에서 독립변수(정치체제) 변이에 따른 종속변수(재벌구조)의 변이를 살펴보는 일치(congruence) 여부 확인 B형의 이론검증 방법을 통해서도 정치체제와 재벌구조 사이의 상관관계를 증명할 수 있다. 바로 한국사회의 민주화 정도가 높아졌을 때 재벌구조는 어떻게 변화 했는 가이다. 비록 계열사 간의 내부지분율과 총수1인의 기업 지배율은 매우 여전히 매우 높다. 그러나 과거 재벌구조와는 다소 변화가 생겼다. 첫 번째가 재벌의 자본구조의 변화다. 1960,70년대 재벌들의 경우 자본의 대부분이 차입으로 인한 부채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는 국가가 재벌들의 성장을 위해 돈을 마구 빌려주고, 재벌들은 이를 이용해 사업을 확장해왔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IMF 사태 이후 자본에서 부채가 차지하는 비율이 줄고 주식이 차지하는 비율이 매우 증가했다. 두 번째는 외부주주들의 감시와 통제가 다소 쉬워졌다는 것이다. 과거 한국 재벌들은 계열사 출자에 의존하여 적은 소유로 많은 기업들을 절대적으로 지배하고 있었다. 즉 외부주주들이 지배주주의 사익 취득을 감시, 통제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역시 IMF 이후 기업경영의 투명성과 지배주주의 책임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가 도입되면서 외부주주의 감시와 통제가 쉬워졌다. 비록 총수의 1인 지배를 완전히 감시할 정도는 아니지만, 소송과 이탈을 통해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총수의 재벌기업에 대한 영향력이 어느 정도 감소한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독재체제가 재벌구조를 만들어냈다는 점은 명백하다. 그러나 그렇다면 왜 다른 독재국가들에는 한국식 재벌구조의 형태가 나타나지 않을까? 그것은 독재정권이 ‘경제성장을 할 동기나 의지’를 가지고 있느냐의 문제와 관련된다. 즉 독재체제라는 독립변수가 60~70년대 한국의 독특한 상황이라는 조건변수가 결합했을 때 재벌구조라는 종속변수가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당시 60~70년대 한국은 남북한대치상황이었다. 즉 체제경쟁 상황이었다. 한국 정부는 자본주의 체제가 공산주의 체제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함으로써 자신들의 정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북한의 경제상황이 더 좋았던 당시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체제의 우월성을 입증하는 방법은 북한보다 더 잘사는 것, 즉 경제발전이었다. 남북한대치상황에서의 체제경쟁이라는 조건변수의 작용이 독재정권으로 하여금 경제성장을 할 동기, 의지를 갖게 했고 이로 인한 경제발전 정책으로 인해 한국의 재벌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또한 재벌들의 대규모 확장을 막기 위한(계열사 간 내부 지분율을 낮추기 위한) 출자총액제한제와 (재벌들의 경제력 집중도가 더 높아지는 것을 막기 위한) 금산분리 정책도 추진되었다.

3. 결론

비록 한국의 정치체제가 민주주의로 바뀌었다고는 하나 이미 형성된 재벌의 구조는 완전히 바뀌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비록 정치체제는 바뀌었으나 과거 독재체제에서 재벌을 육성하기 위해 펼쳤던 정책, 제도들은 바뀌지 않고 연속성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 독재체제 때의 재벌 육성 정책과는 반대로 이제 중소기업들을 육성하여 대기업-중소기업의 지배체제가 아니라 서로 경쟁하는 방식으로 재벌들의 경제적 집중도를 낮춰가야 한다. 2) 국가권력과의 밀착도, 정경유착을 막기 위해 각종 비리사건에 강한 처벌을 가해야 한다. 3) 총수 개인의 지배력을 낮추기 위해 전문경영인제도와 총수의 전횡과 기업의 투명성 제고를 위한 주주자본주의의 도입이 시급하다. 4) 대기업의 지나친 확장을 막기 위한 출자총액제한제와 금산분리 정책이 유지되어야하며 동시에 대기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대기업의 언론 지배 역시 방지되어야한다.

한국은 급속한 성장과 급속한 민주화를 겪으며 민주주의 정치체제와 비민주적 경제구조인 재벌구조가 공존하는 양상을 띠어왔다. 재벌구조의 개혁을 통해 재벌을 해체하는 작업은 한국사회의 경제적 민주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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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조본좌 조본좌 2013.01.18 23:44

안보토론대회를 위해 썼던 논문

 

한국군 PKO 참여와 해외파병 : 다자협력과 양자협력의 차별적(discriminative) 대외파병 정책을 중심으로

 

1. 서론

 

건국 이래 한국은 수차례 해외파병을 해왔다.(아래 <표 1-1>과 <표 1-2> 참조) 베트남전 파병을 처음으로 시작된 국군의 해외파병은 90년대 도래한 탈냉전으로 인해 그 역할이 중요해진 국제연합 평화유지군활동(PKO)에 한국군이 참여하면서 증가하기 시작했다. 아래 <표 1-1>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한국군은 1993년 소말리아를 시작으로 앙골라, 인도․파키스탄, 동티모르, 사이프러스, 서부사하라, 브룬디, 레바논 등지의 PKO에 꾸준히 참여해왔다. 한국군은 PKO라는 방식 말고도 다국적군의 형태로 해외파병을 실시해왔다. 특히 동맹국인 미국의 협조자로서 베트남, 아프가니스탄, 이라크에 대규모 파병을 실시했는데, 이는 상대적으로 PKO 참여에 비해 많은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2004년의 이라크 자이툰 부대 파병은 이러한 논란이 극대화되는 시발점이었다. 정치권과 정부 부처, 시민단체들은 파병안을 놓고 격렬한 논쟁을 벌였고 이로 인해 파병 문제가 전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르게 되었다. 본 논문은 이처럼 한국군 해외파병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또 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르는 가운데 한국 정부가 갖추어야할 바람직한 미래형(future-oriented) 해외파병 정책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표 1-1> 한국군 파병약사


임무


파병기간


파병부대


연인원


월남전


1965.3.10~1973.3.23


주월사, 맹호, 백마, 청룡, 십자성, 비둘기, 백구, 은마(8개 부대)


31만 2천 853명


걸프전 지원


1991.1.24~4.10


사우디 국군의료지원단


154명


1991.2.24~4.10


아랍에미리트 공군수송단


160명


국제연합 평화유지활동


1993.7.30~94.3.18


소말리아 공병대대


516명


1995.10.5~96.12.23


앙골라 공병대대


600명


1997.3.3~98.3.31


인도.파키스탄 정전감시단장


1명(소장 안충준)


1999.10.4~03.10.23


동티모르 상록수부대


3,283명


2000.1.16~04.6.5


동티모르 참모 및 연락단


45명


2002.1.4~03.12.23


사이프러스 사령관


1명(중장 황진하)


1994.8.9~06.5.15


서부사하라 국군 의료지원단


542명


2004.9.15~06.12.11


부룬디 임무단


4명


참모장교: 07년 1월~현재,

서부여단 참모: 08년 1월~현재


국제연합IFIL 협조단(참모장교와 서부여단 참모)


참모장교: 6명

서부여단 참모: 5명


2007.7.19 ~ 07.7.19


레바논 동명부대


1,077명


아프간 항구적 자유 작전


2001.12.18~03.9.1


해군 수송지원단


823명


2001.12.21~03.12.20


공군 수송지원단


446명


2002.7~07.1.26


CFC-A 참모


9명


2002.2.27~07.12.14


다산. 동의부대


2,112명


2001.11~현재


CJTF-82 협조반 등


60명


이라크 자유작전


2003.4.30~04.9.30


의료지원단(제마), 건설 공병지원단(서희)


제마 185명, 서희 956명


2004.9.30~현재


자이툰, 다이만 부대, 동맹국 협조 및 참모장교 등


18,050명


<표 1-2> 한국의 국제연합 PKO 활동과 다국적군 활동 현황



Ⅱ. 해외파병의 분류

1. 분류기준


우리는 자기 나라의 군대나 군함, 군용기 등을 군사적 목적으로 다른 나라의 영토나 영해, 영공에 파견하는 일을 해외파병이라고 포괄적으로 정의하지만, 지금까지의 한국군 해외파병은 파병의 목적을 기준으로 다자협력체제의 해외파병이냐, 양자협력체제의 해외파병이냐 두 가지 범주로 세분화할 수 있다. 다자협력체제의 해외파병은 다자협력체제의 평화유지활동에 참여함으로써 분쟁지역의 평화를 유지하고 재건하기 위해 이루어진다. 한국군의 국제연합 PKO 참여가 대표적인 예이다. 양자협력체제의 해외파병은 동맹국의 전쟁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루어진다. 이를 분류하면 아래 <표2-1>와 같다.







양자협력체제의 해외파병


다자협력체제의 해외파병


목적


동맹국 전쟁 지원


국제평화유지에 기여함으로써 분쟁지역의 평화를 재건

<표 2-1> 해외파병의 분류 기준

양자협력체제와 다자협력체제의 해외파병은 그 목적이 상이하기 때문에 각각 다른 특징들을 지닌다. 첫 번째로 파병이 이루어지는 방식이 다르다. 양자협력체제의 해외파병의 경우 동맹국의 전쟁 지원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파병은 한 동맹국이 다른 동맹국에게 파병을 제안하고 상대방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양국이 협상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다자협력체제의 해외파병, 국제연합 PKO에서는 파병의 주체가 “다자”이고 그 목적이 “국제평화”이기 때문에 특정 분쟁지역에 해외파병이 필요하다는 국제적 합의인 안보리 결의안이 통과된 다음에서야 파병이 가능하다. 두 번째로 파병 규모가 다르다. 양자협력체제의 해외파병의 경우 파병군대가 직접적으로 전쟁을 수행하기 때문에(교전과 전쟁 후 치안유지 모두 포함) 그리고 PKO에 비해 참여하는 국가가 적기 때문에 한 국가가 파병하는 군대의 규모가 상대적으로 크다. 반면에 다자협력체제의 해외파병인 PKO의 경우 파병군대의 임무가 정전 감시, 평화 재건 등 직접적인 전쟁 수행이 아니며 많은 국가들이 파병에 참여하기 때문에 한 국가가 파병하는 군대의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다. 세 번째로 파병에 대한 국내여론이 상이한 반응을 보인다. 양자협력체제의 해외파병의 경우 동맹국의 전쟁에 연루된다는 인식과 대규모로 이루어진다는 점 때문에 국내의 반대여론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하지만 다자협력체제의 해외파병인 PKO의 경우 국제평화를 위해 기여하는 파병이라는 인식과 소규모로 이루어진다는 점으로 인해 특별한 반대여론이 없다. 이를 정리하면 아래 <표 2-2>와 같다.







양자협력체제의 해외파병


다자협력체제의 해외파병


파병이 이루어지는 방식


양국의 협상을 통해 파병 결정


국제적 합의(안보리 결의)가 우선적으로 필요


규모


상대적으로 대규모


상대적으로 소규모


국내 여론


반대여론이 상대적으로 높음


특별한 반대여론이 없음

<표 2-2> 두 가지 해외파병의 특징

2. 분류 기준에 따른 한국군 해외파병 사례

지금까지 해외파병을 두 가지로 분류해보았다. 이제부터는 이러한 기준을 바탕으로 한국군 해외파병 사례들을 이 두 가지로 분류하는 작업을 진행할 것이다. 한국군 해외파병 사례에 대해 논할 때 다자협력체제에서의 국제연합 PKO 파병의 사례로는 파병 규모가 가장 컸던 소말리아, 서부사하라, 앙골라, 동티모르, 레바논 파병을, 양자협력체제에서의 동맹국 지원 형태의 파병 사례로는 역시 파병 규모가 가장 컸던 베트남,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파병에 관해 살펴볼 것이다. 이 사례들을 <표2-1>의 기준에 따라 정리하면 아래 <표3-1>와 같다.

<표3-1> 한국군 해외파병의 분류







양자협력체제의 해외파병


다자협력체제의 해외파병


목적


베트남


미국의 베트남전 지원


소말리아


국제연합의 국제평화유지 노력에 적극 기여하고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제고하기 위하여


앙골라


아프가니스탄


미국의 대테러전쟁 지지 및 지원


서부사하라


국제연합의 평화유지노력에 적극 기여하기 위하여


이라크


미국의 이라크 항구적 자유 작전 지지 및 지원


동티모르


국제연합 평화유지노력에 적극 참여하고 동티모 평화와 안전의 회복과 아․태지역의 안정과 인권보호 및 민주화에 기여하기 위하여


·레바논


국제연합의 국제평화유지 노력에의 적극 동참하고 레바논 사태의 안정화와 중동지역의 평화 달성에 기여하기 위하여


목적이 상이한 파병 사례들은 각각의 다른 특징들을 지닌다. 양자협력체제의 해외파병 사례인 베트남,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파병의 경우 미국과 한국 양국이 협상하면서 파병 정책이 결정되었고 대규모 파병이 이루어졌고 국내적 반대여론이 비교적 팽팽히 대립했다. 반면에 다자협력체제의 해외파병 사례인 소말리아, 앙골라, 서부사하라, 동티모르, 레바논 파병의 경우 파병 지역에 대한 국제적 합의 이후에 파병이 이루어졌고 상대적으로(양자협력체제에 비해) 소규모 파병이었으며 국내적으로 별다른 반대여론이 없었다.

먼저 파병이 이루어지는 방식에 대해 살펴보자. 베트남 파병의 경우 처음에는 미국의 요청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한국 정부의 집요한 요청을 미국 정부가 수용한 결과였다(최용호, 2004, 135-144). 처음에 파병 요청을 거절하던 미국은 상황이 악화되자 비전투병 파병을 요청했고 이어 전투병 위주의 추가파병을 계속 요청한다. 일련의 과정들은 한미정상회담, 실무협상 등 한미 양국간의 협상과 의견조율을 통해 이루어졌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파병 역시 한국이 제안하거나 미국이 요청하면 양국이 안보회담과 실무협상을 거쳐 파병 정책을 결정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반면에 PKO 파병은 안보리 결의 이후에 국제연합이 해당 국가들에게 파병을 요청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를 정리하면 아래 <표4>와 같다.

<표 4>





한국이 참여한 PKO


PKO 설치 근거


파병 요청


UNSOM Ⅱ

(국제연합 소말리아 평화유지작전)


1992년 4월 24일 안보리 결의


1993년 1월 29일 국제연합이 한국에 파병 요청


MINURSO

(서부사하라 선거감시단)


1991년 4월 안보리결의 제690호


1994년 2월 25일 국제연합이 한국에 파병 요청


UNAVEM Ⅲ

(제 3차 앙골라 검증단)


1995년 2월 안보리 결의 제976호


1995년 2월 국제연합이 한국에 파병 요청


동티모르 PKO


1995년 9월 15일 안보리 결의 제1264호


1999년 9월 15일 국제연합이 한국에 파병 요청


UNIFIL

(유엔 레바논 평화유지군)


2006년 8월 11일 안보리결의 제1701호


2006년 8월 17일 국제연합이 한국에 파병 요청


두 번째로 파병 규모에 대해 살펴보자. 1965년 3월 10일부터 1973년 3월 23일까지 8년 동안 비둘기, 주월사, 맹호, 백마, 청룡, 십자성, 백구, 은마 8개부대가 파견된 베트남 파병은 연인원 31만 2천 858명이 참전한 한국 해외파병 역사상 가장 대규모의 파병이었다. 2001년부터 시작된 아프가니스탄 파병은 5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 해군 수송지원단, 공군수송지원단, CFC(한미연합군사령부)-A 참모, 다산․동의부대, CJTF-82(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사령부) 협조반 등으로 구성된 아프간 파병 한국군은 연인원 3450명이 참여했다. 2003년 4월 30일, 2004년 9월 30일 두 차례에 걸쳐 이루어진 이라크 파병은 의료지원단 제마부대, 건설 공병 지원단 서희부대, 자이툰, 다이만부대 등으로 구성되었다. 제마부대는 185명, 서희부대는 956명, 자이툰, 다이만 부대 및 동맹국 협조 및 참모장교 등은 연인원 18,050명이 파병되었다. 반면에 PKO의 경우는 비교적 규모가 작다. PKO 중 가장 대규모로써 1999년 10월 4일부터 2003년 10월 23일까지 활동한 동티모르 상록수부대도 3,283명에 그쳤다. 소말리아 공병대대는 연 516명, 앙골라 공병대대는 연 600명, 서부사하라 국군의료지원단은 연 542명, 레바논 평화 유지단은 1,077명이다.

세 번째로 파병에 관한 여론에 대해 살펴보자. 베트남 파병 당시는 시민사회의 미성숙으로 찬반의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시민단체들도 없었으며 당시 정권이 독재정권이었다는 점으로 미루어볼 때 사회 각 집단의 반대의견이 반영될 통로가 없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 이루어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파병은 반대여론이 매우 큰 모습을 보였다. 가장 최근 이루어진 여론 조사에 따르면 아프가니스탄 파병 반대 의견이 48.9%, 파병 찬성 의견은 31.9%로 나타났다.(<표 5-1> 참조) 이라크 파병 과정에서는 이러한 반대여론이 극대화되고 더 나아가 파병을 쟁점으로 찬반세력이 대립하는 양상까지 나타났다. 파병 규모를 둘러싸고 외교통상부와 국방부, NSC 간의 이견 차가 존재했으며 심지어 친노 의원들마저도 파병에 반대 목소리를 높였고 파병을 둘러싸고 보수단체와 진보단체 간의 대립도 있었다. 또한 아래 <표5-2>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여론 역시 국제연합 결의안 통과 직후를 제외하고는 파병 반대가 파병 찬성을 앞섰다.

<표 5-1> 아프간 파병 찬반여론

<표 5-2> 파병결정 전후의 여론조사



구분


파병찬성(%)


파병반대(%)


비고


2003.9.16


중앙일보


35.5


56.1




내일신문


30.1


67.1




9.20


KBS


39.3


67.1




MBC


42.0


55.0


유엔의 승인이 있을 경우 찬 46.7, 반 47%


9.22


한겨레신문


38.2


57.5


비전투병 파병시 찬 64.9, 반 30.4


조선일보


36.9


54.7




10.08


경향신문


47.8


48.0




10.18


KBS


56.1


42.3


유엔 결의안 채택 이후


10.19


한겨레신문


56.6


41.6


비전투병 파병시 찬 77.6, 반 21.5


한국일보


74.9


34.1




11.02


문화일보


45.9


52.0




11.13


SBS


46.6


51.0




11.17


경향신문


35.1


54.4




11.21


한겨레신문


38.0


57.8




12.05


한국일보


49.0


35.1


11월 30일 오무전기 직원 2명 사망


12.10


국민일보


47.6


49.3




2004.6.7


MBC


40.7


56.5


김선일씨 사건 이후


반면에 PKO 파병의 경우 별다른 반대여론이 없었다. 동티모르 파병의 경우 오히려 시민단체와 여론이 파병을 찬성하는 분위기였다. 정치개혁시민연대, 경제정의실천연합 등 시민단체들은 ‘동티모르 독립을 위한 시민연대’를 구성하고 평화유지군 파병을 적극 촉구하였다.(위승호 2005, 54) 또한 정부의 파병 정책이 확정된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도 조사대상의 50% 이상이 전투병 파병에 찬성하였다. 조선일보가 1999년 9월 19일 전문기관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국민의 50%가 전투병 파병에 찬성, 29%가 반대하였으며 동아일보가 9월 21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66.9%가 파병에 찬성하고 27.7%가 파병에 반대하였다.


Ⅲ. 한국군의 미래형 해외파병 정책 방안

1. 양자협력체제와 다자협력체제의 해외파병에서 얻을 수 있는 국가이익

지금까지 해외파병을 분류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하고, 또 이 기준에 따라 한국군 해외파병 사례들을 분류해보았다. 이렇게 파병을 분류하는 이유는 이 분류에 따라 국가가 얻을 수 있는 국가이익(national interest)이 달라지고, 이에 따라 한국 정부가 취해야할 파병 정책의 방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양자협력체제와 다자협력체제에서의 해외파병에서 얻을 수 있는 국가이익을 분석하기 위해 ‘국가이익의 우선순위’라는 국가이익 분류법을 사용할 것이다. 자국의 생존이라는 핵심적인 이익에서 자국의 문화를 널리 보급시켜 자국의 번영에 유리하도록 유도하는 상황의 추구까지를 포함하는 국가이익은 중요성이 상이한 여러 층의 이익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를 국가이익의 우선순위라 한다. 일반적으로 국가이익의 우선순위는 (1) 존망의 이익(survival interest), (2) 핵심적 이익(vital interest), (3) 중요한 이익(major interest), (4) 지엽적 이익(peripheral interest) 등으로 분류된다.(구영록 1994, 10)

존망의 국가이익은 국가존립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사안으로 이 이익을 추구하기 위하여 국가는 전쟁까지 불사를 수 있다. 핵심적 국가이익은 국가안보와 안녕에 치명적 손실을 가져올 사안들로 역시 이 경우에도 이 이익을 추구하기 위하여 국가는 군사행동 등 강력한 대응을 시도하게 된다. 하지만 존망의 국가이익을 추구하는 경우보다는 더 타협의 여지가 있고 전쟁보다 다른 방법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진다. 중요한 국가이익이란 국가가 방지책을 사용하지 않을 경우 심각한 국가기능의 손상이 가해지는 경우 국가가 추구하는 국가이익이다. 마지막으로 지엽적 국가이익은 시기적으로 급박하지 않으며 추구하지 않아도 아주 적은 손해가 예상되는 경우의 사안들이다.

이러한 기준을 바탕으로 분석해볼 때 국제연합 PKO 활동을 통해 한국이 얻을 수 있는 국가이익은 존망의 국가이익이나 핵심적 국가이익과는 거리가 멀다. 한국이 국제연합 PKO 참여를 통해 국가존립과 관련된 존망의 이익이나 국가이익의 치명적 손실과 관련된 핵심적 이익을 얻는다고 볼 순 없다. 한국이 PKO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다 해서 국가존립의 위기를 겪게 되거나, 자유민주주의 체제유지, 경제발전, 국가안보유지 등의 핵심적 국가이익을 위협받게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한국이 국제연합 PKO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국가이익은 지엽적 이익에 가깝다. 해외파병과 관련된 많은 국가 문서들에 잘 드러나 있듯이 한국이 PKO 활동에 참여하는 일차적인 이유는 국제평화에 기여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의 위상을 높이고 국제연합이라는 다자협력체제 내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서이다. 한국의 소말리아, 서부사하라 PKO 참여가 한국이 1996~1997년 국제연합 안보리 비상임 이사국으로 선출되는 데 큰 도움이 된 것이 그 예라 볼 수 있다. 즉 한국이 PKO 활동으로 인해 얻은 이익은 추구하지 않아도 국가존립이나 국가기능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지만 추구할 경우 부가적으로 이익을 얻게 되는 지엽적 국가이익인 것이다. 또한 PKO 활동시 얻게 될 PKO 당사국의 경제재건으로 인한 경제적 이익 역시 추구하지 않아도 큰 손해는 없지만 추구할 경우 부가적으로 얻을 수 있는 지엽적 국가이익에 해당한다.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 강화, 경제적 이익 말고도 한국은 PKO 참여를 통해 군사적 이익을 얻을 수 있다. 비록 직접적인 교전은 하지 않는다하더라도 분쟁 지역에서의 다양한 임무 수행은 휴전 상태에 있는 한국군에게 좋은 경험이 될 것이며 다른 나라와의 연합 작전을 통해 다른 나라 군대의 장점들을 배워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군사적 이익 역시 직접적 이익이라기보다 막연하게 예상되는 이익으로써 PKO 활동을 함으로써 부가적으로 얻게 되는 지엽적 이익이라 볼 수 있다.

반면에 동맹국의 요청으로 파병하는, 동맹국 지원 형태의 해외파병은 PKO 참여처럼 파병할 시 얻게 될 부가적 이익들의 추구가 아닌 파병하지 않았을 시 예상되는 불이익들 때문에 이루어진다. 국가이익의 우선순위라는 기준에서 동맹국의 전쟁 지원을 위한 파병은 존망의 이익, 핵심적 이익의 추구를 위해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먼저 아프가니스탄 파병은 한미동맹 체제를 강화함으로써 9.11 테러 이후 변화한 미국의 세계질서 유지 방식에 적응하려는 한국의 전략적 파병이었다. 상대적으로 고립된 지리적 조건 하에 오랜 기간 동안 국토에 대한 직접적인 안보위협을 겪은 경험이 없는 미국인들은 9.11테러로 큰 충격을 받았고 이는 미국 행정부로 하여금 전례 없이 강경한 일방주의 노선을 걷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남궁곤 2007, 112) 그 일환이 바로 미국을 공격한 테러집단 알카에다를 지원하는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에 대한 전쟁 선포였고, 이러한 미국의 대외정책 변화를 적극 지지한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한미동맹을 더욱 강화하려는 시도가 바로 한국의 아프가니스탄 파병이었던 것이다.

월남전 전투병 파병의 경우 남북한대치상황에서 주한미군 철수로 대표되는 한국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지원 감소로 인해 국가안보의 위기를 느낀 박정희 정권의 자발적 참여로 이루어졌다. 즉 박정희 정권이 인식하기에 당시 주한미군의 철수는 국가의 존립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사안이었거나 적어도 국가안보와 안녕에 치명적 손실을 가져올 수 있는 사안이었던 것이다. 이라크 파병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당시 2차 북핵 위기라는 한반도 급변사태가 발생했고 한국의 입장에서 이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했다. 또한 미국이 추가파병 요청을 했을 당시 한국은 주한미군 재배치와 감축, 그리고 기지 이전 등의 문제로 미국과 협의 중이었다. 그렇기에 노무현 정부는 미국이 일으킨 이라크 전쟁을 지원하는 형태로 미국에게 신뢰를 얻으려고 노력하고 더 나아가 미국과 협의 중인 군사안보 관련 사안들을 한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려 했던 것이다. 다만 베트남 전쟁 때보다 한국 정부가 인식하는 안보위협의 정도가 낮았고, 그에 따라 파병의 형태와 규모가 달라진 것이다.

<표3> 안보위협에 따른 한국군 파병의 차이



사례


북한 군비/한국 군비(안보위협)


파병 제의국


최종파병규모


베트남전


1961


2.26


한국


X


1964


2.33


미국


5개 사단


이라크전(2003)


0.18


미국


여단 규모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국가이익의 우선순위를 기준으로 양자협력을 위한 해외파병은 존망의 이익, 핵심적 이익의 추구와 연관되어 있으며 다자협력을 위한 해외파병은 지엽적 이익의 추구와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분석이 양자협력의 해외파병은 중요도가 높은 국가이익과 관련되어 있으니 무조건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하고, 다자협력의 해외파병은 중요도가 낮은 국가이익과 관련되어 있으니 하지 않아도 된다는 논리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제2절 양자협력체제 해외파병의 신중성 제고

파병 정책을 고려할 때는 국가이익의 우선순위와 더불어 정책의 신중성(愼重性)을 고려해야 한다. 특히 존망의 이익이나 핵심적 이익을 추구할 때 국가는 매우 신중해야한다. 존망의 이익, 핵심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국가적 목표나 정책 방향이 과연 이 이익을 추구할 수 있을지에 대한 신중한 검토와 고려가 필수적이다. 예컨대 존망의 국가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국가는 전쟁을 일으키기도 하는데, 그 선택은 존망의 국가이익을 지켜줄 수도 있지만 신중한 검토가 없다면 오히려 그 선택은 패망의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존망의 이익, 핵심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베트남, 이라크 파병이 수많은 논란을 겪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파병 반대론자들의 일관된 주장은 “과연 파병이 국익에 도움이 되었는가” 이다. 베트남 파병 때 수많은 한국 군인들이 전사하고, 또 이라크에서 김선일 씨 피랍 살해사건이 발생하는 등 해외파병으로 한국 국민이 희생당하는 일이 발생하고 미국의 대테러전쟁에 한국이 동참하면서 한국 역시 테러 공격의 대상국이 되는 결과를 가져온 해외파병이 과연 국익에 도움이 되었느냐는 것이다. 즉 국가 안보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해외파병이 국민이 희생당하고 새로운 적(敵)을 만들어내는 등 새로운 국가안보위기 상황을 유발하지 않았느냐는 의문이다.

양자협력체제의 해외파병이 우선순위가 높은 국가이익의 추구라는 점에서 볼 때 두 가지 측면에서의 정책 방향이 요구된다. 먼저 장기적 관점에서 해외파병을 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안보위기 상황을 개선해야한다. 즉 동맹국의 도움 없이도 국가안보 위기상황을 맞지 않을 정도의 힘을 갖추어야한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단기적 관점에서는 파병으로 인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국가이익을 극대화하고 그로 인해 지불하는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어야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파병 정책에 있어서 국가는 매우 신중할 필요가 있으며 이익의 극대화와 비용의 최소화를 이루는 데 적절한 협상 전략을 구상해야한다.

위에서 밝힌 양자협력체제의 해외파병이 가진 특징들이 신중성을 고려해야할 이유가 되기도 한다. 양국 간의 이해관계의 조정과 협상의 산물인 파병 정책은 다자간의 합의에 이루어지는 PKO 활동에 비해 상대국의 요구를 지나치게 수용함에 따라 국가가 추구해야할 이익들이 파병 정책 안에 제대로 포함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대규모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파병이 안고 있는 부담이 크며 반대여론이 높다는 점에서 국민 대다수가 원하지 않는 파병을 시행할 수도 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양자협력체제의 파병은 비용과 이익을 엄밀히 고려하여 이루어져야한다.

이를 위해 먼저 파병이 자국과 파병 요청국 두 국가 중 어느 국가에게 더 큰 이익이 되는 지, 즉 누가 파병을 원하는지를 파악해야한다. 베트남 파병의 초기의 경우 한국이 몇 차례에 걸쳐 파병을 제안할 정도로 파병을 원했으며(3,4차 파병 때는 미국이 먼저 요청했다.) 이라크 파병의 경우 미국이 강력하게 파병을 요청한 걸로 보아 미국이 한국군 파병을 원했음을 알 수 있다. 전자의 경우라면 상대방에게 파병을 거듭 제안해서 파병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하며 더불어 파병으로 인해 우리가 지불해야하는 비용을 최소화하여야한다. 반면에 만약에 후자의 경우라면 ‘파병 요청을 수락함으로써 무엇을 더 얻어낼 수 있을 것인가’를 고려해야한다.

‘전시작전 통제권 환수’를 예로 들어보자. 먼저 한국은 ‘전시작전 통제권의 환수’를 누가 더 원하는지 파악해야한다. 당시 미국은 해외주둔미군재배치계획(Global Defense Posture Review)을 통해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증대시키려하고 있었으며 그 일환으로 미국이 가지고 있었던 한국의 전시작전 통제권 환수를 계획했다. 전작권 환수는 미국이 먼저 제안했으며, 안보환경의 변화에 따른 미국의 군사전략 변화에 따라 미국에게는 꼭 필요한 작업이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노무현 정권은 너무나 쉽게 전작권 환수에 합의했다. 미국이 강력하게 전작권 환수를 원하고 있는 상황에서 노무현 정권은 이 전작권 환수를 협상 전략으로 삼았어야 했다. 즉 노무현 정권은 전작권 환수에 곤란함을 내비치면서 미국으로부터 더 많은 양보들을 얻어낼 수 있었다.

위의 논의들을 한국군 파병 사례에 적용시켜보자.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파병 여부를 신중히 고려하여 국가이익의 극대화를 이룬 파병의 대표적인 사례로 베트남 파병을, 신중한 고려가 없어 국가이익을 추구하지 못한 파병의 대표적인 사례로 이라크 파병을 들 수 있다.

먼저 두 파병의 경우 모두 한국 정부가 파병으로 얻는 이익과 비용을 신중히 고려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베트남 파병의 경우 주한미군 감축 등 안보사안과 관련된 문제를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목적으로 파병을 했지만 파병시 한국이 감수해야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1965년 1월 6일 작성된「월남파병 문제에서 고려되어야할 문제점」이라는 당시 보고서에는 “구라파, 아시아국가 등이 미국의 월남전을 비판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미국의 인기는 대단한 저조를 보이고 있다. 한국이 이러한 베트남전에 파병한다면 아시아, 아프리카, 중립 국가들과의 관계는 극도로 악화될 것이며 UN총회에서의 중립제국의 지지획득에 절대적인 타격이 될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즉 당시 UN 가입을 위한 한국의 노력이 월남 파병으로 타격을 입게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한국 정부는 파병으로 얻을 수 있는 양자협력체제의 강화라는 국가이익과 그로 인해 잃게 될 다자협력체제에서의 신뢰 상실이라는 비용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었다. 이라크 파병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한미동맹의 강화와 원만한 북핵문제 해결을 목적으로 파병을 결정한 한국 정부는 국내적으로 엄청난 반대에 직면해야했으며 명분 없는 전쟁에 개입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즉 파병으로 인해 국내정치적 지지기반이 흔들릴 수도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두 파병에는 큰 차이점이 있다. 바로 “이러한 비용들을 모두 감수하고 추진한 파병이 그 목적을 이루었는가”, 그리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국가는 신중하고 전략적으로 파병 협상에 임했느냐”는 차이이다.

베트남 파병의 경우 한국은 소기의 파병 목적들을 일정 부분 달성했으며 협상도 비교적 잘 이끌었다. 1965년 5월 17일~18일까지의 한미 정상회담의 회담록은 당시 한국이 국가이익 극대화를 위해 벌인 치열한 협상의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미국의 존슨 대통령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전투병으로 이루어진 한국군 추가 파병을 요구하자 박 대통령은 미국의 경제 원조를 파병 조건으로 내걸었고, 이에 존슨 대통령이 한국에 대한 경제 지원과 관련된 안이 의회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한국군 전투부대가 적어도 1개 사단을 파병하겠다는 약속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박 대통령은 확답을 피했고 대신 김성은 국방부장관은 미국이 추진하는 군원 이관 정책의 중단을 협상 조건으로 요구했다. 미국은 한국 측의 끈질긴 요구를 받아들여 한미공동성명에 군원 이관을 재검토하고 차관 1억 5천만 달러를 제공한다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한미공동성명에는 이밖에도 북한의 재침시 미국의 즉각적 개입과 지원, 한국군 유지를 위한 군사지원, 한국 상품의 대미수출 확대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익 극대화를 위한 한국 정부의 노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파병에 반대하던 야당 국회의원들마저 파병불가피론으로 돌아섰는데, 박 대통령의 최측근인 차지철 의원이 파병을 반대하고 나섰다. 당시 외무장관이던 이동원의 회고록에 따르면 차지철의 베트남 파병 반대는 미국의 실무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박 대통령이 지시한 것이었다. 야당이 파병 찬성으로 돌아선 상황에서 파병에 반대하는 주장을 이용해 미국으로부터 더 많은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연극이었던 것이다. 그 결과 실무협상에서 미국은 베트남 파병 기간 동안 군원 이관을 중단하고 베트남 전쟁 군수물자를 제공하는 구매국에 한국을 포함시킨다.(KBS 2003)

이에 비해 이라크 파병 과정에서 한국 정부는 파병 목적을 제대로 달성하지 못하고 파병 협상도 잘 이끌지 못했다. 이라크 파병의 가장 큰 목적은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더불어 수렁에 빠져있는 북핵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파병 이후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루어진 5차례에 걸친 6자회담은 진전이 없었고 2005년 9월 15일에는 BDA(방코델타아시아) 북한 계좌 동결이라는 미국의 대북경제제제 조치까지 내려졌다. 이후 2006년 10월 9일 북한은 핵 실험이 성공했다고 발표했고 이에 따라 10월 13일 미국의 주도로 UN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이 통과되었다. 북핵 문제는 잘 해결되기는커녕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미 브루킹스연구소의 신임연구원 마이클 오헬른은 “부시 정부는 파병과 동아시아 정책을 연계할 생각이 애초부터 없었다. 3천명의 병력을 비교적 안전한 지역에 파병한 것 때문에 미국이 남한에 너무나 고마워서 북핵 문제에 관해 남한이 하자는 대로 할 것이라는 생각은 바보 같은 생각이다. 이미 미 행정부는 부시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의견 차이가 매우 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라고 말했다.(KBS 2006) 즉 한국 정부는 미국의 대외정책 기조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 채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 큰 양보를 얻어내고자 한 것이다.

요약해보면 양자협력 체제에서 단기적으로 한국 정부는 상대국의 파병 요청이 들어왔을 때 이를 매우 신중히 검토하고 더 나아가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협상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다.

제3절 다자협력 체제 해외파병의 신속성 제고

앞에서 분석했듯이 양자협력 체제의 해외파병이 존망적, 핵심적 국가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정책이라면 다자협력 체제의 해외파병은 지엽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정책이다. 이 지엽적 이익을 추구할 때 고려해야할 사항은 양자협력의 해외파병과는 달리 정책의 신중성이 아니라 신속성(迅速性)이다. 그 이유는 국제평화에 대한 기여, 경제적 이익, 군사적 이익으로 대표되는 지엽적 이익들은 신속한 파병이 이루어질 때 극대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밝힌 다자협력체제의 해외파병의 특징들이 PKO 참여에 있어 상대적으로 신중성을 덜 고려해야할 이유가 되기도 한다. PKO는 국제적 합의인 안보리결의 이후 그 활동이 시작되며 다자협력체제인 국제연합의 요청에 의해 이루어진다. 즉 파병 이전에 이미 파병의 국제적 명분이 주어져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양자협력체제의 해외파병보다는 국가가 파병을 신중하게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또한 파병의 규모가 작기 때문에 국가가 지는 경제적, 인적 부담이 작다. 특히 나중에 국제연합으로부터 경비보전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국가가 지는 경제적 부담은 양자협력체제의 해외파병보다 훨씬 적다. 또한 파병을 반대하는 여론이 적기 때문에 국가가 파병 추진을 하는 데 있어서 국내정치적 부담이 적다.

PKO의 주요 임무가 분쟁 당사자 간의 평화협정 체결 촉구 및 이행 감시, 군대해체와 같은 군사적 임무이기 때문에 PKO가 신속하게 분쟁에 대처하지 않는 경우 커다란 문제점이 생기게 된다. 먼저 PKO가 분쟁 초기에 활동하면 예방할 수 있는 상황을 지나친 파병 소요기간으로 인해 악화시키고 보다 결국엔 더 많은 인적, 물적 자원을 필요로 하게 되며 궁극적으로는 국제연합 PKO의 효율성에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조춘호 2005, 26)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 소말리아, 르완다에서의 비극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국제연합에서도 국제연합 상비체제를 마련하는 등 PKO의 신속한 전개를 위해 노력해왔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PKO 파병에서는 신중성을 덜 고려해도 된다는 점, 그리고 한국이 PKO 참여로 얻게 될 국제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이익은 지엽적 이익으로 국가가 적극적으로 찾아나가는 의미의 국가이익이라는 점에서 한국은 PKO의 신속성을 제고하기 위한 노력에 동참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로 PKO 파병에 관한 법과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 현재 한국의 PKO 참여를 뒷받침해주는 법 조항은 “국회는 선전포고, 국군의 외국에의 파견 또는 외국군대의 대한민국 영역 안에서 주둔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는 내용의 헌법 제60조 2항이다. 이 헌법조항은 국군을 해외에 파병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되긴 하지만 PKO 파병시마다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한다는 점에서 신속한 파병 결정에 큰 장애로 작용하고 있다. 사실 헌법 제 60조에 명시되어 있는 국회동의권은 월남전 같이 교전당사자로서 파병했을 때에 적용되던 것이지, 이를 분쟁해결을 위한 정전감시자로 참여하는 PKO 파병에 적용하기엔 무리가 있다.(장기수 2006, 25) 그렇기에 1992년「국제평화협력법」을 만들어 이를 근거로 자위대를 적극적으로 PKO에 파견하는 일본처럼 PKO 관련법을 제정함으로써 신속한 파병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한다.

또한 PKO를 전담하는 기구를 설립해야한다. 현재 PKO 파병은 파병결정까지는 외교통상부가 주관하고 파견 관련 절차, 임무는 국방부가 담당하는 이원화된 협력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임무가 이원화될 경우 임무수행 과정 중에 발생하는 문제에 대한 책임성이 떨어지며 PKO 파병에 대한 공통의 정책목표를 추구하는 것이 아닌 각자 부서에 관한 독립적 결정만이 이루어질 수 있다. 국군의 PKO 파병을 총괄하고 신속하게 추진할 전담기구의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두 번째로 한국은 국제연합 요청시 즉시 대응할 수 있도록 국제연합 상비체제를 갖추어야한다. 한국은 이미 1995년 국제연합 상비체제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며, 국제연합 상비체제 중 1단계에 참여하고 있고 상비체제에 참여할 부대도 편성하고 있다. 물론 한국이 PKO 상비체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지만, 참여하고 있는 수준을 한국의 국제사회에서의 위치를 고려하여 점차적으로 상향시킬 필요가 있다. 한국은 세계 13위의 경제대국이며 국제연합 분납금을 세계에서 열 번째로 많이 내는 국가이기도 하다. 이미 국제연합 회원국 중 50개국이 국제연합 상비체제 3단계에 참여하고 있다. 한국군 역시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위해 적어도 3단계 수준에 참여할 필요가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이 유엔 상비체제에 참여하기 위해 참여 자원인 군인, 민간요원, 선거, 행정업무요원, 물적 자원 등을 사전에 미리 마련해놓고 이 참여 자원들에 대한 교육을 확대해야한다. 이런 방식으로 유엔 상비체제 참여를 준비함으로써 PKO 군의 신속한 전개에 한국이 이바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요약하면, 다자협력체제에서의 해외파병으로 얻을 수 있는 지엽적 국가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파병 정책 결정과정이 신속하게 이루어질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해 PKO 관련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국제연합 상비체제에의 적극적 참여를 고려해야한다.

Ⅳ. 결론

한국군 해외파병이 증가함에 따라 한국군 해외파병 정책에 대한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 왔다. 그리고 그 연구의 대부분이 PKO 파병 자체, 혹은 동맹국 지원 파병 자체를 다루었거나 혹은 두 가지 형태의 파병을 모두 다루었다고 해도 해외파병이라는 하나의 틀이 연구의 기준이었다.

그러나 양자협력체제에서의 해외파병과 다자협력체제에서의 해외파병은 그 목적과 특징, 그리고 파병으로 인해 얻을 수 있는 국가이익이 분명히 상이하며 이런 이유로 두 가지 형태의 파병은 다른 틀로 연구되어져야하며 더 나아가 이를 바탕으로 차별적인 파병 정책을 추구해야한다. 본 논문은 이런 관점에서 한국 정부가 추구해야할 파병 정책의 방향을 제시하고자 쓰여졌다.

이처럼 해외파병의 분류기준에 따라 정부가 추구해야하는 파병 정책은 달라지지만, 두 가지 형태의 파병 정책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국가이익의 극대화”라는 관점에서 이루어져야한다는 것이다. 양자협력체제의 해외파병 정책에서 필요한 신중성 제고는 존망적, 핵심적 국가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안이며 다자협력체제의 해외파병 정책에서 필요한 신속성 제고는 지엽적 국가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안이다.

이라크 파병 이후 해외파병에 관한 찬반논란이 뜨겁다. 비록 지금은 PKO 파병에 관한 논란이 없지만 PKO에 한국이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면 이러한 논란이 PKO 파병에서도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다. 특히 PKO 파병 역시 미국의 요구에 의해 이루어지는 모습으로 진행된다면 국민들은 특정한 국가(미국), 세력에 용병으로 갈 것 같다는 두려움을 갖게 되고 이에 따라 새로운 파병 논란이 시작될 것이다. 하지만 한국사회의 파병 논란은 앞에서 말한 파병 정책의 가장 중요한 기준인 “국가이익”을 중심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대부분의 파병 논란이 친미로 대표되는 보수 세력과 반미로 대표되는 진보 세력 간의 이념 대결의 장으로 이용된다. 한미동맹이 중요하니 파병하자는 보수 세력들, 미국에 의해 주도되는 파병은 제국주의 전쟁이니 참여하지 말아야한다는 진보 세력들의 주장은 진정한 국가이익을 생각하지 않은 냉전시대 산물인 친미-반미 논쟁의 확장인 소모적 논쟁에 불과하다. 한국 정부는 이러한 이념 논쟁에서 벗어나 국가이익을 기준으로 파병 정책을 결정해야하며 이를 통해 국민들을 설득해야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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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조본좌 조본좌 2013.01.18 23:42

2학년 때 쓴 학회 발제문

미국발 금융위기 무엇이 문제인가?

1. 미국 금융위기의 실태

금융위기가 미국을 통째로 집어삼키고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으로 인해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취급하는 총 8,000여개 대출 회사 중 22개사가 파산되었고 기타 회사도 경영상태가 악화되었다. 그 예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업계 2위인 뉴센츄리사는 투자은행으로부터 차입한 84억불의 채무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파산상태이며 5위 금융사인 베어스턴스 역시 도산했다. 모기지 업계 금융회사들의 도산이 금융시장과 서민경제에 미칠 영향은 심각해보인다. 주택경기하락 국면 상황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연체율이 증가함에 따라 주택경기침체가 지속된다. 이에 따라 주택가격의 하락이 촉진되고 연체증가하며 주택경기 악화 등의 악순환이 계속될 가능성이 짙다.

미국 주택소유자들이 은행 대출 원리금을 갚지 못해 주택을 압류당한 비율이 작년 4분기에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주택담보대출의 연체비율도 22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 미국 부동산 시장이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메릴린치(세계적인 투자은행)는 미 주택 가격이 올해 15% 하락하고 내년에는 10%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단순히 주택경기의 악화라는 결과만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다. 메릴린치는 실업률은 연말께 5.75%로 높아지고 내년 초에는 6%까지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주택관련 업종의 GDP 비중은 약 23%로 불럼버그 통신은 사태 악화시 관련업체 종사자 10만명이 해고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또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회사 도산, 체납처분증가 등으로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이 증가되어 신용 경색 사태가 발생할 우려가 있으며, 뉴욕증시는 서브프라임 위기에 대한 우려로 약세장 시현(금융기관 수익이 10-20%까지 하락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하고 있다.

2. 미국 금융위기의 원인: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앨런 그린스펀 전 FRB(미 연방준비은행) 의장은 1996년 미국 주식시장에 과열이 발생했을 당시 금융위기 과정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현상이 ‘비이성적인 과열 (irrational exuberance)’이라고 지적했다. 무리하게 돈을 빌려 무차별적으로 주식이나 부동산 등에 투자할 경우(비이성적) 거품이 생기고, 거품이 빠지면서 위기가 발생하고, 이 금융시장의 위기가 실물경제에까지 파급을 미친다는 것이다. 2007년 4월에 시작되어 지금 미국의 금융위기를 불러일으킨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도 마찬가지의 경우이다.


서브 프라임 위기는 근본적으로 주택시장의 침체에 기인한다. 2000년 이후 FRB(미 연방준비은행)은 침체된 경기의 부흥을 위하여 ‘저금리 정책’을 취했다. 지속적인 저금리 정책을 통해 사람들은 주택시장에 투자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집값이 급등했다. 그러자 금융회사(모기지 업체, 은행)들은 수익이 많이 남는 주택대출시장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이 때 금융회사들은 여러 모기지 대출 채권을 묶어 이를 담보로 새로운 채권을 만들어 파는 금융기법을 사용했는데, 이 금융기법의 확산으로 조기에 현금 확보가 가능해진 모기지 업체들은 신용도가 낮은 사람들에 대한 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을 무분별하게 늘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주택시장의 거품이 꺼지고 시중금리가 상승함에 따라 현금 확보의 수단이던 서브 프라임이 모기지 업체들의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파장은 금융시장 전반을 강타했다. 대출을 하고도 갚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남에 따라 서브프라임 모기지 업체들은 우후죽순처럼 파산했고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담보로 발행된 채권(주택저당채권)에 투자한 금융회사들과 헤지펀드들이 엄청난 손실을 보기 시작했다. 이 파장은 주택저당채권에 문제가 생길 시 책임을 보증했던 채권보증업계에까지 미쳤다. 신용평가 회사들이 잘못된 보증을 선 채권보증업체들의 신용등급을 하향 평가하고, 이에 따라 이에 따라 이 채권보증업체들이 보증을 섰던 다른 채권들의 값도 줄줄이 하락했고 채권 시장 전체가 침체되기 시작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여파는 신용시장 전반으로 확산되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인해 엄청난 손실을 입은 금융회사들은 대출을 줄이고 자금 확보에 주력을 다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자금을 빌려 기업을 인수하기 위한 대출이 연기되는 등 미국의 신용시장 경색이 현실화 되었다. 또한 미국 금융회사들로부터 달러자금을 빌려 쓰던 다른 나라의 은행들과 기업들도 큰 타격을 입었다.


출처: 서울경제신문

미국발(發) 금융위기의 심각성을 드러내주는 사례가 바로 미국 5위의 투자은행(IB) 베어스턴스가 JP모건체이스에 헐값에 매각된 사건이다. 베어스턴스는 작년(2007년)부터 서브프라임 모기지 연계 채권에 투자해 큰 피해를 보았고, 이에 따라 회사에 돈이 없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투자자들은 앞 다투어 투자금을 회수했으며 은행들도 더 이상 대출을 해주지 않았다. 투자자들에게 투자금을 줘야하는 데 필요한 돈은 구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에서 베어스턴스는 결국 중앙은행 FRB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아 2억3000만달러(주당 2달러)에 JP 모건체이스에 매각되고 말았다. 대공황도 버티며 85년의 역사를 자랑하던 미 5위의 금융회사인 베어스턴스는 서브프라임 사태로 인해 무너졌고, 연쇄 효과를 우려한 투자자들 역시 투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투자자들이 미국 금융회사에 투자한 돈 뿐 아니라 해외 각국에 투자한 투자금 역시 회수하기 시작하면서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는 전세계로 퍼져나간다.

3. 미국 발 금융위기의 전 세계적 확산

세계 GDP의 약 27%를 차지하는 미국은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금융거래
의 비중 또한 매우 크기 때문에, 미국의 경기침체가 전 세계 경제의 치명적인 타격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우선,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해 발생한 금융 불안정은 미국 이외의 다른 나라들로
확산되고 있다. 미국으로 대규모 자본을 유입시킨 영국, 프랑스, 독일, 스위스 등 유럽연합의 주요 금융기관들은 서브프라임 사태로 큰 피해를 입었다. 유럽 금융회사들은 미국 내 투자은행과 마찬가지로 주택담보 대출기관들에 거액의 자금을 지원해 왔다. 이 자산이 한순간에 부실화되면서 EU 국가들도 막대한 손실이 불가피해진 것이다. UBS가 이미 187억달러의 자산을 상각 처리했고 프랑스의 크레디 아그리콜, 영국 HSBC, 독일 도이체 방크 등 유럽의 대표적인 금융기관들도 수십억 달러씩의 손실을 피할 수 없었다. 영국 5위의 모기지 은행인 노던록은 파산신청에 들어갔으며, 영국 정부는 550억 파운드라는 공적자금을 투입해 일시 국유화하기로 결정했다. 독일에서도 은행들에 대한 정부의 긴급 자금투입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피해는 미국과 유럽뿐만 아니라 일본, 호주 등 전 세계 금융기관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파생상품 거래의 특성으로 그 피해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세계적인 공포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의 확산과 함께 미국의 경기침체는 세계무역의 위축을 가져와 미국 이외 다른 나라들의 경기에 집적적인 타격을 미칠 것이다. 경기 침체로 인해 미국의 생산과 수요가 감소하면 개별 소비와 기업의 자본 투자 역시 떨어지고, 그 결과 소비자 제품, 자본재, 생활필수품 및 원료의 수입 역시 감소한다. 미국의 수입은 곧 다른 나라의 수출인 동시에 전반적인 수요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다시 말해 미국의 경기 침체로 인한 소비 위축의 심화는 수입 감소로 이어질 것이며, 수입 감소는 미국으로 대규모 상품들을 수출하던 나라들의 수출을 감소시키고 경기둔화를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 캐나다, 중국, 일본, 멕시코, 한국 및 여러 동남아시아 국가를 포함한 주요 경제권은 대미 수출 의존도가 크기 때문에 큰 타격이 우려된다. 이 중에서도 특히 미국에 대규모 무역수지 흑자를 내고 있는 중국은 미국의 수입 감소로 인해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것이란 예상이 있다(2006년 중국경제의 수출 성장률 기여도에서 미국시장은 36%를 차지하였다). 세계에서 가장 큰 투자은행 및 글로벌 금융 서비스 업체 중 하나 인 ‘모건 스탠리’에 따르면 미국의 경기침체의 여파로 2007년 11.5%의 경제성장률에서 2008년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8~9%대로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그 반대의 의견도 있다. 중국의 경우 거시 경제 지표가 양호한 상태로 나타났기 때문에 미국 서브 프라임 사태의 직접적인 영향권에는 들지 않았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이다. 그러나 IT제품 수출, 금융시장에서는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러시아(러시아의 경우 상대적은 미국 경기침체의 따른 영향을 크게 받지 않았고 자원 수출 강세를 보이면서 계속되는 고유가 상태에서 “물가 잡기”에 전념하고 있는 상황) 보다는 다소 복합적인 상태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러시아가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문제에서 자유로웠다면, 중국은 그보다는 못하지만 비교적 자유로운 상태라고 볼 수 있다. 현재 중국의 거시경제 지표는 여전히 양호한 상황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서브프라임 사태의 직접적인 영향권에는 들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내수시장은 여전히 활기를 띄고 있으며 중국 정부는 인플레이션 방지를 최우선 순위로 놓고 있다. 반면 IT 제품 수출에서는 어느 정도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의 수요가 이미 줄어들고 있다는 경고음이 나오고 있다. 미국 금융시장에 투자했던 중국 금융기관들도 적지 않은 손실을 입게 됐으며 부동산과 증시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상황이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는 중국에게 기회로 다가오기도 한다. 중국을 포함한 개발도상국들은 선진국의 다국적 금융기관 주가의 단기적인 파동으로 손해를 입을 수도 있겠지만 금융 기관들의 우량 자산과 가치 절상 잠재력을 가지고 있기에 장기적으로 볼 때 이익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종합적으로 볼 때, 미국의 경기 침체는 대미 의존적인 국가군의 경우 많은 피해를 받고 있는 상태이고, 상대적으로 덜 의존적인 러시아는 피해를 덜 받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중국을 포함한 개발도상국의 경우 이것이 큰 피해를 낳을 거라는 의견도 있고 피해를 입는 동시에 도전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4. 생각해볼 문제


미국의 금융위기가 장기적 경기침체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상하 양원이 7일 1천520억달러 규모의 긴급 경기부양법안을 통과시켰고 부시 대통령도 이에 서명함으로써 미국 경기 악화에 대한 정부 개입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더욱이 최근 번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경기부양을 위해서라면 제로금리라도 채택해야 하며 채권 매입 등의 수단도 동원할 수 있다고 밝혔다. 경기가 악화되는 상황에서 더 큰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한 정부의 시장 개입이 경기 침체를 막는 효율적인 방법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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