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조본좌 조본좌 2016.09.03 17:13

http://slownews.kr/57507

“나는 ㅇㅇㅇ하려고 이런 짓까지 해본 적 있다”

몇 년 전 한 예능 프로그램은 연예인들이 출연해 자신의 독특한 경험을 공유하는 ‘있다/없다’라는 게임을 선보였다. 예컨대 A라는 연예인이 “나는 화가 난 애인의 화를 달래기 위해 이런 짓까지 해본 적 있다”며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는데 나머지 사람들 중에 비슷한 경험이 있으면 A가 벌칙을 받는 게임이다.

대한민국 언론도 ‘있다/없다’ 게임 중이다. ㅇㅇㅇ의 빈칸에는 ‘먹고 살려고’라는 단어가 들어가야 한다. 포털에 쏟아지는 수많은 어뷰징 기사와 기사로 둔갑한 광고와 협찬, 그리고 수많은 혁신의 시도들. 언론은 살아남기 위해 별짓을 다 하고 있다.

뉴스가 말하지 않는 것들 미디어오늘 기자들이 펴낸 신간 [뉴스가 말하지 않는 것들] (이 정환 , 정철운 , 금준경 , 차현아 , 강성원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6)에는 위기의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언론과 기자들의 몸부림이 담겨 있다. 언론은 독자들에게 저널리즘과 알 권리를 이야기하며 고상한 척하지만, 사실은 먹여 살려야 할 식구가 수십, 수백 명 딸린(많게는 수천 명) 기업이다. 이런 몸부림은 뉴스에도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뉴스에 이런 몸부림은 잘 나오지 않는다. 이 책의 제목이 ‘뉴스가 말하지 않는 것들’인 이유다.

낡은 것과 새로운 것 사이 

이탈리아의 철학자 안토니오 그람시는 위기를 “낡은 것은 죽어가고 있지만 새로운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않은 시기”라고 정의한다. 언론이 처한 위기야말로 이 정의에 딱 들어맞는다. 모두가 지금의 수익구조로는 오래가지 못한다는 점은 알지만, 새로운 것이 나타나지 않았기에 쉽사리 혁신을 시도하지 못한다.

종이신문과 TV 뉴스의 권력은 예전 같지 않다. 조간신문으로 하루를 시작하던 아버지의 모습은 유물로 전락했다. 사람들은 더 이상 TV 앞에 앉아 9시 뉴스를 보지 않는다. 언론진흥재단 조사에 따르면 종이신문 열독률은 1996년 85.2%에서 2014년 20.2%로 뚝 떨어졌다. 20대는 온종일 종이신문으로 4.2분 동안 뉴스를 보지만 인터넷으로는 227분 동안 뉴스를 본다. 신문 편집이나 1면 기사는 더는 과거의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신문 열독률 추이

출처: 한국언론진흥재단, ‘2015 언론수용자 의식조사’

하지만 ‘새로운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뉴미디어는 말 그대로 ‘NEW’(새로운) 미디어일 뿐이다. 카드뉴스가 유행하면 카드뉴스를 만들어보고, SNS로 기사를 많이 본다니까 SNS 맞춤형으로 기사를 만들기 바쁘다. 포털에 대한 종속은 새로운 엘도라도, 페이스북에 대한 종속으로 옮겨갔다. 하지만 이걸로 돈 버는 언론은 드물다. 기사에 대한 소비가 구독으로 잘 이어지지 않는다. “뉴미디어에 신경 쓴다”는 브랜드를 만드는 것 정도가 성과다. MCN이 뜬다지만 제대로 수익 내는 사업자는 아직 없다.

혁신과 안전 사이 

언론은 위험한 혁신 대신 안전한 방법을 택한다. ‘낡은 것’으로 돈을 벌 수 없다면 포장만 바꿔 새로운 것으로 보이게 만든다. 아무도 보지 않는 광고 대신 기사를 가장한 광고를 만들어낸다. 광고가 모자라면 컨퍼런스나 포럼을 열어 기업 돈을 끌어당긴다. ‘뉴스가 말하지 않는 것들’은 뉴스가 말하지 않는, 뉴스가 말할 리 없는 언론기업의 장사방법을 속속들이 소개한다.

돈벌이 수단은 뉴스에 국한되지 않는다. 경향신문은 칼국수를 팔고, 조선일보는 마라톤 대회를 연다. 헤럴드미디어는 내추럴푸드 기업을 설립하고 한겨레는 카페를 열었다. 중앙일보는 자회사를 통해 인력파견, 용역업무 등 비정규직 관리업을, 또 다른 자회사를 통해 여행 사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사업 다각화가 늘 수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경쟁력이 뛰어난 기업들과 경쟁해야 한다. 사업의 다각화는 뉴스에도 영향을 미친다. 부동산에 투자한 언론이 부동산에 대해 객관적으로 보도할 수 있을까?

경향신문의 칼국수집 '졍동국시' (출처: 네이버 지도 거리뷰 캡처)

경향신문의 칼국수집 ‘졍동국시’ (출처: 네이버 지도 거리뷰 캡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결국 언론의 생명을 빼앗아 가는 역설적인 상황. 그래서 언론이 위기일수록 언론에는 ‘선(善)’이 필요하다. ‘있다/ 없다’ 게임과 유사하다. ‘화가 난 애인을 달래기 위해’ 시도한 독특한 경험을 제시해야 하지만, 애인의 화를 달래기 위해 “자살시도를 했다”는 말을 할 수는 없다. 게임이 유지되지 않기 때문이다. ‘남들에게서 없는 독특함’을 개척하면서도 ‘다 같이 웃으며 공유할 수 있는 선’을 지켜야 게임이 유지된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혁신을 시도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면서도 동시에 ‘언론의 선’을 지켜야 하는, 아슬아슬한 고공 곡예를 펼쳐야 한다. 이 책은 이 선을 ‘저널리즘의 복원’이라 부른다. 어떻게 하면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에 부합하는 좋은 뉴스를 계속 생산하고, 뉴스 소비자들에게 이를 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해야 한다. 스브스뉴스가 인기라지만 스브스뉴스가 SBS를 구원할 수는 없다. VR이 아무리 대세라도 VR이 뉴스를 구원할 수는 없다.

스브스뉴스

‘믿고 보는’ 브랜드 가치 

이 책이 소개하는 몇 가지 성공 사례에도 ‘언론의 선’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경향신문과 노컷뉴스, YTN은 새로운 시대에 적응한 대표 사례로 꼽힌다. 경향신문 페이스북 계정 ‘향이네’는 언론사 사이트 중 빠르게 ‘좋아요’ 수를 채워나갔다. 노컷뉴스는 1년 만에 페이스북 좋아요 수를 45배 가까이 늘렸다. YTN은 페이스북 구독자수를 1년 6개월 만에 100배 가까이 늘렸다.

이들에게는 ‘좋아요’와 ‘구독자’라는 외연에 가려진 저널리즘에 대한 고민이 있다. 경향신문 향이네는 암컷을 ‘소유’하지 못한 수컷 물개는 황제펭귄을 강간한다는 충격적인 기사를 올렸다. 조회 수는 대박이 났지만 향이네는 앞으로 이런 기사는 올리지 않기로 했다. ‘선’을 지키기 위해서다.

노컷뉴스에게는 동영상이라는 콘텐츠가 있었다.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쓰러지는 영상은 다른 언론사보다 빨리 업로드됐고, 도달 수만 800만에 달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어린이 합창단이 추운 날씨에 외투도 없이 떨고 있는 영상은 700만에 가까운 도달률을 기록했다. 노컷뉴스는 사람들이 보고 싶어 했던 뉴스를 전달하며 ‘대박’을 쳤다.

YTN에게는 ‘제보 영상’이 있었다. 급박한 지하철 심폐소생부터 아찔했던 교통사고 순간까지, 시민이 제보한 날 것 그대로의 영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스토리를 담았다.

결국, ‘좋은 이야기는 널리 퍼진다’는 믿음으로 좋은 콘텐츠를 생산하고 ‘믿고 보는’이라는 수식어가 달린 브랜드를 만들어내는 것이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언론 혁신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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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조본좌 조본좌 2016.08.23 10:19

남자는 울면 안 돼? 남성을 억압하는 강요된 남성다움

[서평] 맨박스 / 토니 포터 지음 / 김영진 옮김 / 한빛비즈 펴냄


“코르셋을 벗자” 인터넷 커뮤니티 ‘메갈리아’ 유저 등이 사용하며 유행한 말이다. 코르셋은 체형을 보정하거나 교정하기 위해 사용되는 속옷을 뜻하지만, ‘코르셋을 벗자’는 말에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시선과 억압에서 벗어나자는 의미가 더해진다.

여성에게 ‘여성은 이래야 한다’는 ‘코르셋’의 억압이 있다면 남성에게는 ‘맨박스’(MAN BOX)가 있다. 신간 ‘맨박스’에는 남성들이 맨박스에서 벗어나야 인류가 행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저자인 미국의 사회운동가 토니 포터는 이 책의 단초가 된 TED 강연을 통해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왔던 남자다움을 의심하라고 말한다.

토니 포터의 동생 헨리는 열 살의 나이에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토니 포터의 아버지는 아들을 묻고 오는 길, 딸과 아내가 없는 자리에서 펑펑 울었다. 아버지는 토니 포터에게 눈물을 보여서 미안하다며 사과하고, 울음을 참은 토니 포터를 칭찬한다. “남자는 울면 안돼!” 4~5살 밖에 안 된 남자 어린아이에게도 익숙한 ‘남성다움’의 규정이다. 우리에게도 이 말은 익숙하다. “남자 새끼가 뭘 그런 걸 가지고 질질 짜냐?”

“남자는 울지 않는다” 말고도 남성을 억압하는 남성다움은 꽤나 많다. “남성은 분노 이외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남자는 쫄지 않는다” “남자는 모든 것을 지배하고 통제한다” “남자는 약한 것들을 보호한다” “남자는 강하고 여자는 약하다” “남자는 여자처럼 굴지 않는다” “남자는 게이처럼 굴지 않는다” “남자는 여자를 소유한다” “남자는 남자다워야 한다” 등등. 강요된 남성다움의 십계명은 우리 주변에 널려 있다.

▲ 맨박스 / 토니 포터 지음 / 김영진 옮김 / 한빛비즈 펴냄
한 남자아이가 여섯 명의 친구를 집에 데리고 왔다. 그 친구들은 모두 여자였다. 아이의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할까. “우리 아들 능력 있네” 아니면 “혹시 우리 아이가 게이일까?” 아버지가 묻는다. “그 여섯 명 중 누가 좋아?” 여섯 명 중 한 두 명의 이름을 언급하면 아버지는 안심한다. 

하지만 아들은 말한다. “아녜요. 다 친구에요.” 당장 반문이 돌아온다. “너희는 대체 뭘 하고 노니? 무슨 애깃거리가 있는데?” 남성은 ‘게이가 아니라면’ 여성을 진짜 친구로 둘 수 없다는 ‘맨박스’다. 맨박스는 진짜 남자라면 성적인 호감이 없는 한 여자에게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강요된 남성다움은 여성에 대한 왜곡된 시선으로 이어지고, 여성성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고착시킨다. 이런 메시지를 사회화한 남자 아이는 여자를 성적인 대상으로만 인식하게 된다. ‘남자는 울면 안 돼’를 학습하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남성들은 감정표현은 여자들이나 하는 것이며 연약함의 증거라고 배운다. 여성은 자주 울고 감정 표현이 과다하므로 남성보다 불완전하며 열등한 존재라는 인식으로 이어진다.

토니 포터는 63세 남성 ‘짐’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짐과 친구는 35년 전 대학시절 바에서 여성 두 명을 만났고 저녁 내내 넷이서 술을 마셨다. 여성들은 자신들의 집으로 초대했다. 짐의 친구와 한 여성은 바로 침실로 향했다. 하지만 짐은 여성과 섹스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대신 이야기를 나누던 그는 20분 정도 지나 자리에서 일어나 친구에게 가자고 말했다. 일을 서둘러 마치게 된 친구는 신경질을 냈다. 친구는 35년이 지난 지금도 짐을 만나면 “우리 대학 때 기억나? 네가 섹스하고 싶지 않아서 나까지 그만두고 나오라고 했던 일 말이야”

강요된 남성다움을 보여주는 사례의 하나다. 여성과 관계를 형성하는 주목적은 성관계이며, 그 외의 관계는 관심이 없다는 맨박스의 가르침은 “남자라면 섹스를 거부하지 않는다”는 가르침으로 이어진다. 섹스 할 기회를 거부하는 남성은 어딘가 문제가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토니 포터는 이런 발상이 “강간이나 성폭력 같은 폭력 상황을 일으키는 정신적 기반이 된다”고 말한다.  

박선영 한국일보 기자는 <‘여혐 팽배 사회’ 아들을 페미니스트로 키우는 방법>이란 제목의 칼럼에서 “아들을 페미니스트로 키우려는 엄마는 드물다”며 딸은 페미니스트로, 아들은 ‘남자답게’ 키우려는 전략은 성공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대신 “여성혐오 이슈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지금이야말로 딸과 아들 모두를 성 평등 의식 갖춘 아이들로 키우려는 노력을 고민해봐야 할 적기”라고 지적한다. 이는 딸들을 위해서만이 아니다. 가부장제는 소년과 남자들에게도 힘들고 괴로운 것이기 때문이다. 

토니 포터에 따르면 아들을 성 평등 의식을 갖춘 아이로 키우는 첫 걸음이 ‘맨박스’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아들에게 울거나 이성 친구와 거리낌 없이 지낸다고 남자가 아닌 게 아니라고 가르쳐야 한다. 언제나 공격적이지 않아도 된다고, 남자가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 아니라고 알려줘야 한다. 

남성들이 경직된 성 역할에서 벗어나야 여성들을 둘러싼 사회적 억압도 해체될 수 있다. 토니 포터가 “평범한 남성의 작은 변화가 모든 것을 바꾼다”고 말하는 이유다. 남성이 배워야할 것은 강요된 남성다움, ‘맨박스’가 아니라 남녀 구분 없이 모든 구성원이 힘을 모을 때 세상이 가치 있게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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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조본좌 조본좌 2016.05.29 19:37

박정희가 명문고를 강남으로 내려보낸 진짜 이유

[서평] ‘강남의 탄생’, 강남을 만든 네 가지 굴곡… 학생들이 두려웠던 군사정권, 투기적 욕망과 화학 반응

대한민국에서 강남은 욕망의 이름이다.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해 특권을 형성한다는 이유로 강남 밖의 사람들은 강남을 미워한다. 하지만 그들은 동시에 강남에 속하고 싶어 한다. 강남은 부정하면서도 선망하는 욕망의 이중성을 갖고 있다.

도 시연구자 한종수, 계용준, 강희용의 신간 <강남의 탄생>은 강남이 대한민국 사람들의 욕망으로 자리 잡게 된 과정을 추적한다. 지금 우리가 ‘강남’이라 부르는 지역은 1963년 이전까지 소달구지가 지나다니는 논밭이었다. 그런 강남에 대단지 아파트, 대법원과 경찰청 등 정부기관, 대형교회가 들어섰고 ‘8학군’이 형성됐다.

강남 개발사에는 현대사의 굴곡이 그대로 반영돼 있다. 첫 번째 굴곡은 ‘남북분단’이다. 1960년대 인구의 급증으로 서울(지금의 강북지역)이 포화상태에 이르자 정부는 도심 기능을 분산시키고자 한다. 그 대안이 강남이었다. 저자들은 한국이 만약 분단국가가 아니었다면 국토의 전통적인 중심축인 서울-개성-평양 축에 있는 은평, 고양, 파주 쪽이 강남보다 먼저 개발되었을 것이라 말한다.

남북분단은 지금의 강남을 만든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나아가 1960년대 후반 푸에블로 호 납치사건, 김신조의 청와대 습격사건 등으로 한반도가 극도의 긴장 상태에 놓이면서 박정희 정권은 서울 인구를 분산시키고 유사시 피난에 대한 부담을 줄이기 위한 방편으로 강남 개발을 선택한다.

강남에 최초로 들어선 아파트는 1971년 완공된 논현동 22번지의 공무원아파트였다. 이후 강남에 대거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강남구가 형성됐다. 이 시기 강남이주를 촉진한 요인은 1975년 4월 남베트남의 붕괴였다. 한국전쟁을 겪은 한국인들에게 남베트남의 수도 사이공이 함락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은 “유사시 한강을 어떻게 건너지?”라는 고민을 던졌기 때문이다.

두 번째 굴곡은 민주화다. 1970년대 초 시작된 명문고의 강남 이전 정책의 배후에는 4.19혁명과 6.3학생운동에 대한 두려운 기억이 있다. 학생들의 힘을 알고 있는 권력집단에게 청와대와 중앙부처 가까이에 있는 서울대학교와 고등학교들은 매우 신경 쓰이는 존재였다. 이는 사립대의 지방 캠퍼스 이전 정책과 맞물린다. 정권은 학생운동권의 약화를 노리고 지방으로 사립대를 흩어놓으려 했다. 운동권이 약했던 여대는 지방캠퍼스를 만들지 않았다는 점이 정부의 의도를 반증한다.

▲ 강남의 탄생 / 한종수, 계용준, 강희용 저 / 미지북스 펴냄

세 번째 굴곡은 97년 외환위기다. 강남 밖의 사람들과 강남이라는 욕망을 이어주는 기제는 사교육이다. 강남 밖의 사람들은 강남이 되기 위해 자기 자식을 강남의 학원에 보낸다. 저자들은 대한민국 사교육의 성지 대치동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평생 직장의 개념은 무너지고 이를 목도한 세대는 믿을 것은 자기 자신 뿐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대치동 학원들은 이들에게 ‘명문대 진학’이라는 현실적 목표를 손에 쥐어줬고 2000년대 들어 공교육을 흔드는 괴물이 됐다.

강남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반영인 동시에 대한민국 현대사에 몇 가지 신화를 남겼다. 그 신화 중 하나는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강남 개발은 온갖 특혜로 얼룩졌다. 유신의 실력자인 박종규 청와대 경호실장은 부동산 투기의 원조 격이다. 업자들에게 정보를 흘려주고 이들에게 받은 돈을 정권 유지를 위한 자금으로 썼다. 한보그룹의 정태수 회장은 수서, 일원 일대 개발을 위해 노태우 대통령에게 100억 원을 줬다.

또 다른 신화는 ‘강남불패’다. 강남 부동산 소유자들이 정부 정책을 결정하고, 강남의 집값은 떨어질 줄을 모른다. 강남은 부동산과 교육의 힘으로 금수저를 재생산한다. 강남 밖의 사람들은 강남 밖에서도 잘 살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대신 강남에 들어가고자 한다.

강 남에 들어갈 수 없다면 또 다른 강남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한다. 2008년 총선을 앞두고 불었던 뉴타운 열풍이 대표 사례다. 강북 시민들은 강남을 만들어주겠다는 뉴타운에 집권여당을 선택했다. 그리고 이 현상의 이면에는 ‘강남의 기적’의 주역이던 현대 경영자 출신의 이명박 대통령이 있었다.

이 책은 강남이 개발되면서 사라져버린 옛 기억의 장소를 차근차근 돌아본다. 강남은 지대가 낮아 물에 자주 잠겼고, 대대적인 수방 사업이 강남 개발에 필수적이었다. 수방 사업의 하나로 한강변에 제방을 쌓고 강변도로를 만들며 한강변은 사라졌다. 1970년대 초 압구정동과 옥수동 사이에 있던 저자도는 아파트 대단지 건설을 위해 골재로 채취되어 사라졌다.

지금도 기억의 장소들이 사라지고 있다. 강남의 개발 방식이 성공사례로 부각되면서 부산, 대구, 인천, 광주, 대전 등 광역시는 물론 인구 10만 명도 안 되는 소도시도 강남을 따라 도시를 개발했기 때문이다. 신도심을 개발해 시청, 법원, 방송국, 터미널 등 알짜 시설을 옮겨놓는다. 구도심에는 기차역과 전통시장만 남는다. 대부분의 지방 도시는 특징도 없는 붕어빵 도시가 되고 구도심은 죽어버린다. 강남이 남긴 욕망의 그늘은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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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조본좌 조본좌 2015.11.30 12:49
헬조선의 시간강사가 말하는 각자도생의 청춘
[서평]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 309동1201호 지음 / 은행나무 펴냄

인터넷 커뮤니티 ‘오늘의 유머’에 올라와 많은 인기를 끌었던 연재 글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지방시)를 읽는 내내 알고 지내던 조교 형 A를 떠올렸다. 공부가 좋아 대학원에 갔다는 A는 학부생들에게 아주 간단한 부탁을 할 때도 미안한 표정으로 어쩔 줄 몰라 하던 착한 심성을 지닌 형이었다. 그런 A가 어느 날 갑자기 학교에서 사라졌다.

시간이 조금 지나서야 A가 조교 일을 그만둔 이유를 알게 됐다. A는 조교 일을 버티지 못했다고 했다. 말이 조교였지 그냥 교수 시다바리였기 때문이다. 지방시에도 ‘잡일 도와주는 아이’라는 비슷한 표현이 등장한다.

보고 싶은 DVD를 구해오라는 등 교수의 사적인 심부름은 다반사였고, 컴퓨터가 고장 나거나 기기가 잘 작동하지 않을 때마다 기기 대신 사과해야했다. 어느 날처럼 교수가 차 키를 주며 주차를 시키던 날 A는 조교 일을 때려 치고 학교를 떠났다. “이런 일 하려고 대학원 온 게 아니다”고 분통해 했다는 말은 다른 이를 통해 전해 들었다. 

A는 대학원생이라는 신분을 견디지 못했다. 이 헬조선에는 버텨내지 못하는 자들과 끝까지 버텨내려 바둥 치는 두 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설사 버텨낸다고 해도 달콤한 선물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저 묵묵히 버틴다. 미생의 작가 윤태호는 언론과 인터뷰에서 “버텨내는 것이 능력”이라고 말했다. 헬조선에서 자기 자리에서 자신의 신념을 유지하며 버텨내는 것조차 힘들기 때문이다.

지방시의 주인공, 서른세 살의 인문학 전공자인 시간강사 ‘309동 1201호’는 내가 대학생 때 만났던 그 형과 달리 어떻게든 버텨내고 있는 사람이다. ‘오늘의 유머’에 연재되고 슬로우뉴스, 직썰에 연재돼 누적 조회 수 200만을 넘겼던 309동 1201호의 이야기가 책으로 출간됐다. 

309동 1201호는 ‘아프니까 청춘’이라며 자신의 고된 생활을 미화하지도 않고, ‘짱돌을 들어라’고 함부로 훈계하지도 않는다. 다만 담담하게 자신이 겪어온 길을 설명할 뿐이다. 

‘309동 1201호’가 학업의 길을 선택한 이유는 매우 간단했다. 지도 교수의 전공 강의를 듣고 지적 자극을 받았고, 교수의 권유로 대학원에 갔다. 공부가 좋아서 대학원에 갔지만, 헬조선에서는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건 모험에 가까운 일이다. 

  
▲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 309동1201호 지음 / 은행나무 펴냄
 

한 학기 등록금이 450만원인데, 조교 활동으로 보전되는 비용은 300만원뿐이다. 300만원은 수업이 있는 주 9시간을 제외하고 아침 8시 30분부터 저녁 5시까지 사무실에서 조교 근무를 한 대가로 받는 돈이다.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돈 치고는 잃는 것이 꽤 크다. ‘5분 대기조’처럼 비상사태를 대비한 교수의 호출을 기다려야 하는, 대기시간이 무제한인 노동자다. 

비상사태라는 것은 시답잖은 일이다. 교수가 대량의 복사를 맡기며 “10분 후에 찾으러 올게”라고 하거나 어느 교수가 연구실 책상 배치를 좀 바꾸고 싶은데 남자 조교들이 필요하다는 것 정도다. ‘309동 1201호’는 비상사태를 대비해 늘 학교 근처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 명절에도 고향에 가지 못했다.  

이렇게 조교로 일해도 한 학기에 150만 원, 1년에 300만 원이 더 필요하다. 물론 먹고 자고 입는 비용은 제외하고, 순수하게 공부하기 위해 필요한 돈이다. 이 돈을 메우기 위해 학자금 대출을 받고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대가는 이처럼 가혹하다.

가난은 존엄성의 상실로 이어진다. 309동 1201호는 일을 하다 쌓여있던 책무더기가 쏟아져 뼈가 살을 비집고 나올 정도의 부상을 입는다. 하지만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군대에서 작업하다 이등병이 다쳐도, 일용직 노동자가 현장에서 다쳐도 이렇게 대접받지는 않는다. 

‘잡일하는 대학원생’을 보호해주는 곳은 대학이 아니라 맥도날드였다. 맥도날드에서 알바를 하던 309동 1201호는 팔이 골절되는 부상을 입었다. 매니저는 병원으로 데려가 모든 비용을 부담했고, 산업재해 신청으로 임금의 70%를 받을 수 있다고 안내까지 해줬다. 건강보험을 포함한 4대 보험을 모두 등록해준 것도 대학이 아니라 맥도날드였다.

309동 1201호는 이런 상황을 모두 버텨냈다. 친구들로부터 “그만 좀 얻어먹어라” “공짜로 얻어먹는 법 가르치냐”라는 말을 듣고 결국 이들과 연락을 끊게 되면서도, 부모로부터 “할 일 없는 놈”이라는 취급을 받으면서도 좋아하는 공부를 포기하지 않는다.

지방시가 많은 공감을 얻은 이유는 이러한 고된 현실에 대한 묘사와 함께 자신의 일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환경이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일을 잘하고 싶어 하고, 그렇게 되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는다. 

309동 1201호는 우리에게 논문을 쓰기 위해 박물관을 방문해 어렵사리 자료를 찾아내고 좌절 끝에 논문을 완성해 이 논문을 부모에게 보여준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의 글에는 대학원생과 시간강사의 비참한 삶과 함께 그가 학생들과 소통하며 가르치는 자로 성장해나가는 이야기가 함께 담겨 있다. 이 책이 무거운 사회비판서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다. 

지방시는 분노로 시작해 착취의 구조를 이해하는 단계로 넘어간다. 원망은 주변인들과 선후배 연구자, 지도교수를 향했다. 이들에 대한 공격적인 감정이 글에 그대로 드러나기도 한다. 하지만 글이 이어질수록 분노는 거대한 괴물을 향하고 대학이 구축한 시스템을 향한다. 지방시가 세대의 기록으로 남을 수 있는 이유다. 

책을 덮으며 다시 대학원을 떠난 A를 떠올렸다. A가 계속 버텼다면, 좋은 시간강사가 될 수 있었을까. 분명한 건 309동 1201호의 말대로 “아파도 되는 청춘은 없다”는 것이다. 대학을 떠난 A, 그리고 떠나지 않은 채 버티고 있는 수많은 지방시들이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아픈 것이 나 때문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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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조본좌 조본좌 2015.09.26 11:43

일본 안보법안, 아베 뒤의 ‘미국’을 보라

[서평] 일본 재무장의 새로운 단계 / 임필수 지음 / 사회운동 펴냄

지난 9월 19일 일본이 패전국이 된 지 70년 만에 전쟁할 수 있는 나라가 됐다. 아베 신조 총리가 이끄는 자민-공명 연립정당이 안보관련법안을 참의원 회의에서 통과시킨 것이다. 안보법안의 핵심은 평화헌법이 금지한 ‘집단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안보법안의 통과로 일본은 미국 등 밀접한 관계에 있는 국가가 공격당할 경우 대신 반격을 할 수 있게 됐고, ‘일본의 평화와 안전에 중요한 영향을 주는 사태’가 발생하면 전 세계 어느 곳에나 다른 나라 군대에 대한 후방 지원을 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안보법안 통과를 ‘전쟁 포기, 교전권 불인정, 군대 보유 금지’를 규정한 평화헌법 9조를 뜯어고치려는 아베의 야욕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오랫동안 군사문제와 평화운동에 대해 연구한 임필수 사회진보연대 정책교육실장은 신간 <일본 재무장의 새로운 단계>에서 아베 뒤에 있는 미국에 대해 들여다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임 실장은 일본재무장반대 시민평화행동, 반전평화연대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다.

   
▲ 일본 재무장의 새로운 단계 / 임필수 지음 / 사회운동 펴냄
 

많은 한국인들이 일본의 재무장과 집단자위권 행사에 반대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일본의 평화헌법을 일본의 과거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에 대한 징벌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임필수 실장은 이런 논리가 ‘양날의 검’이라고 지적한다. 일본에 대한 징벌이 영원히 지속될 수 없을뿐더러, 오히려 일본은 국제연합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집단안전보장 체제에 기여함으로써 세계평화에 공헌하겠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주목해야할 점은 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 뒤에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대한 ‘재균형 전략’이 있다는 점이다. 2011년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미국의 태평양 세기’를 선언했다. 아시아 태평양을 지배하는 자가 21세기를 지배할 것이고, 그 지배자가 미국이 되어야 한다는 선언이다. 실제 냉전이 종료된 1990년대 이후 미국 정부는 해외주둔 미군 규모를 점차 줄였는데, 유럽에서는 72% 감축이 이뤄진 반면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는 29%만 감축했다.

미국이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제1의 장애물은 중국이다. 따라서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의 ‘재균형’이란 중국과 군사적 균형을 맞추겠다는 의미이다. 이 지역에서 미국의 전략은 ‘공해전’이다. 이는 유럽을 주전장으로 삼고 소련 지상군과 전투를 상정함으로써 공군과 육군에 초점을 맞추는 ‘공지전’이 아니라 서태평양에서 발발할 전투를 대비해 공군과 해군에 초점을 맞추는 전략이다. 

미국은 서태평양에서 공해전을 수행하기에 매우 불리한 처지다. 세계 최대 함대의 모항인 캘리포니아주 샌디에고에서 하와이 제도 오하우 섬까지 거리는 2265해리에 달하고 하와이에서 미국령 괌까지 거리는 330리, 괌에서 말라카 해협까지는 2550해리다. 미군 기지와 시설은 매우 넓은 지역에 소수의 고립된 섬 위에 퍼져 있으며 한 장소에 대규모로 주둔하고 있으며, 중국 인민해방군의 사정거리 내에 있다. 

반면 중국군은 서태평양 전역에 섬으로 이어진 경계사슬을 지니고 있다. 대만을 범위에 둔 공군기지는 27개에 달하며 탄도미사일 전력도 중국 내에 배치하면 다 사정거리 안에 있다. 중국은 앞마당에서 전쟁을 할 수 있는 반면 미국은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수천킬로 미터 떨어진 곳에서 자원을 수송해야하고, 몇 개의 핵심 병참에 집중해야한다. 중국이 괌에 있는 해군 기지만 무력화하면 미국은 전력에 엄청난 타격을 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일본의 지원이 절실하다. 일본 북부와 동부는 중국으로부터 상대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서 활용도가 높고, 류쿠 제도는 지리적 특징상 대잠수함 전투 작전에 유리하다. 일본이 동맹국이라는 확실한 전제가 있어야 공해전 개념이 성립 가능하다. 임 실장은 일본 자위대가 집단자위권을 명목으로 미국의 대중국 공해전에서 필수불가결한 공군력과 해군력을 담당할 것이라 말한다.

역사적으로 봐도 미일동맹은 계속 평화헌법을 흔들었다. 1951년 2차 대전을 마무리하는 센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체결되던 날 미일 안보조약이 조인됐다. 안보조약에 ‘미국은 일본이 방위를 위해 점점 더 큰 책임을 맡으리라 기대한다’고 명시했다. 이는 일본의 군비 확충과 재무장의 근거가 됐다. 

미국이 베트남전에서 패배한 이후인 1978년 미일은 ‘미일 방위협력을 위한 지침’을 채택했다. 의회 비준도 받지 않은 행정 지침이었다. 극동에서 일본의 안전을 위협하는 사태가 발생할 경우 자위대가 미군을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1997년 미일방위협력지침은 난민과 미군 부상병을 위한 무력사용은 가능하다고 명시하면서 자위대가 교전에 참여할 가능성을 높였고, 급기야 2014년 아베 정부는 각의 결정을 통해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가능하다고 선언하기에 이른다.

이처럼 일본의 안보법안과 재무장은 단순한 일본의 침략 야욕의 결과가 아니다. 미국의 이해관계 및 세계지배전략과 일본 보수 세력이 맞물려 움직인 결과다.   

저자는 일본 재무장의 역사와 함께 일본 평화운동에 대해 상세히 소개한다. 1950년대부터 시작된 일본의 평화운동은 미일동맹 해체라는 목표를 달성하진 못했으나 자위대의 해외파병을 제약하고 핵무기 도입을 억제했으며 우익세력의 평화헌법 개정을 막아내는 요인으로 작동했다. 58년 미일 안보조약 개정을 앞두고 벌어진 평화운동은 기시 내각의 퇴진으로 이어졌다.

안보법안 처리를 앞두고 8월 30일 오후 일본 국회의사당 앞에서 12만 명의 군중이 모여 ‘아베 퇴진’ ‘전쟁은 필요 없다’는 구호를 외쳤다. 1968년 이후 일본에서 10만 명 이상의 군중이 참여한 시위를 찾아보기 힘들었다는 점에서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우리는 어쩌면 ‘일본 재무장의 새로운 단계’와 함께 ‘일본 평화운동의 새로운 단계’를 목도하게 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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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조본좌 조본좌 2015.05.24 20:15

청년들과 전쟁하는 미국, 대한민국은?

[서평] 일회용 청년 / 헨리 지루 지음 / 심성보·윤석규 옮김 / 킹콩북 펴냄

삼포세대, 오포세대에 이어 칠포세대까지. 연애, 결혼, 출산은 물론 인간관계와 집, 나아가 꿈과 희망까지 포기한 세대. 대한민국 청년세대를 대표하는 호칭은 ‘포기’다. 최근 조선일보는 청년세대를 ‘달관세대’라 명명했지만, 사실 달관은 ‘포기’의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왜 청년들은 꿈과 희망까지 내버렸을까. 누가 청년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미국의 교육학자 헨리 지루의 <일회용 청년>은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한 번 쓰고 버려지는 쓰레기가 돼버린 미국 청년들의 실상을 탐구한다.

한 사회가 제대로 운영되려면 재생산이 필요하고, 이 재생산을 담당하는 것이 청년들이다. 그러나 헨리 지루에 따르면 미국은 청년들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복지국가의 쇠퇴와 함께 도래했다. 청년들을 위한 복지는 사라졌고, 경쟁에서 도태된 청년들은 낙오자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 일회용 청년 / 헨리 지루 지음 / 심성보‧윤석규 옮김 / 킹콩북 펴냄
 

우파 정치인들은 사회적 투자와 보호를 비난하고, 건강보험과 노령자 보험, 실업급여를 비롯한 사회 보장을 없애려고 한다. 낙오자를 돕기 위한 프로그램은 쓸모없는 것이 됐다. 미국에서 7명 중 한 명이 빈곤에 허덕이고, 5천만 명 이상이 건강보험에서 배제되고 있다. 가난하게 자라나는 아이들이 갈수록 늘어나지만 일자리는 오히려 줄어든다.

사회적 부조가 사라진 상황에서 청년들은 낙오되고, 범죄의 유혹에 빠져들기 십상일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이런 청년들을 문제아로 취급하기에 바쁘다. 미디어와 보수적인 정치, 자본, 그리고 교육체계는 청년들을 잠재적인 범죄자, 약물 중독자, 혹은 심리 상담과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병든 존재로 만든다.

학교에 넘쳐나는 감시 카메라, 마약 탐지견, 금속탐지기 등은 미국사회가 청년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풍경이다. 욕설을 내뱉거나 수업 중에 떠들어도 빨간 줄이 넘고, 복장규정이나 교실규칙을 조금만 위반해도 수갑을 차거나 유치장 신세를 진다. 예전에 젊은이를 순수, 동정, 공감 같은 용어로 묘사했다면 오늘날 이들은 공포와 처벌 같은 담론으로 규정된다.

설사 몇몇 청년들이 범죄에 빠지지 않은 채 멀쩡하게 자라난다 해도 이들은 질 낮은 일자리를 전전하는 하층 노동자나 소비자로, 중동이나 아시아 전쟁을 수행하는 총알받이로 전락한다. 헨리 지루는 미국이 “청년에 대한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미국 이야기지만 기시감이 들 정도로 한국상황과 비슷하다. 한국의 주류언론에 등장하는 청년들의 모습은, 교사들과 부모까지 공격하는 난폭한 10대들이거나 아니면 취업을 못 해 절망에 빠진 무능한 20대들이 대부분이다. 어른들은 “열심히 해라” “아프니까 청춘”외의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 경향 장도리.
 

진보진영이 대안을 내놓지 못한다는 점도 비슷하다. 헨리 지루가 묘사하는 미국의 진보진영은 젠더, 성 정체성, 계급, 인종, 장애 등의 문제를 다루긴 하지만 청년세대의 문제에 대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한국도 비슷한 상황이다. ‘그러니까 우리 당에 투표해라’는 윽박지르기 외에 청년세대를 대변할 정책은 찾아보기 어렵다.

흔해 빠진 청년담론 중에서 <일회용 청년>에 주목할 만한 이유는 두 가지 차이점 때문이다. 옮긴이 심성보가 지적했듯이, 이 책에 등장하는 청년은 위기에 빠진 중산층 청년세대만을 다루지 않는다. ‘88만원 세대’로 대표되는 한국의 청년 담론은 이제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을 나온 중산층 세대마저 먹고 살기 힘들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일회용 청년>은 극빈층을 구성하는 청년 세대의 현실에 주목한다.

두 번째, 기존의 청년 담론은 ‘경제 환원론’에 가깝다. ‘청년 세대가 왜 짱돌을 들지 못하나?’라는 질문에 ‘스펙 쌓고 아르바이트 하느라 못한다’고 대답하는 식이다. 하지만 <일회용 청년>은 청년들을 쓰레기로 만드는 정치 담론과 교육, 미디어로 분석의 대상을 확장한다.

분석대상이 넓어지면서 대안 마련도 더 명확해진다. 더 이상 청년들에게 ‘짱돌을 들어라’라거나 ‘투표해라’라고 소리 지르는 것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공동체의 재생산을 공격하고 복지를 해체하려는 정치세력에 맞서 싸우고, 교육과 미디어 시스템에 대한 문제제기를 이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집합적인 문제를 집합적으로 해결하는 것” 그 길 밖에는 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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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조본좌 조본좌 2014.11.18 21:28
탐욕에 가로막힌 4대강, 민주주의가 살릴 수 있다
[서평] 4대강 사업과 토건 마피아 / 이원영, 박창근 저 / 철수와영희 펴냄

요즘 정치권과 언론에서는 ‘사자방’이란 줄임말이 유행어다. 야당이 4대강, 자원외교, 방위산업 비리에 대한 국정조사를 주장하면서 등장한 말이다. 고구마줄기처럼 나오는 사자방 비리의혹에 사회적 비난도 높아지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이에 대해 “나라경제가 어려운데 정쟁으로 삼아 안타깝다”며 “너무 신경 쓰지 마라, 문제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연 이 전 대통령 말대로 사자방 바리는 야당이 제기한 정쟁일 뿐이며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사안일까? 최근 출간된 <4대강 사업과 토건 마피아>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다. 



4대강 사업과 토건 마피아

저자
박창근, 이원영 지음
출판사
철수와영희 | 2014-11-17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4대강 사업의 비리와 토건 마피아의 실체를 밝힌다 -탐욕으로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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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는 4대강 반대에 앞장서 온 박창근 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와 운하반대교수모임 정책위원장을 지낸 이원영 수원대 교수다. 두 명의 4대강 반대론자들은 질의응답 형식으로 운하가 등장한 배경과 4대강 사업의 문제점, 토건 마피아, 나아가 민주주의의 문제까지 꼬집는다.

4대강 사업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이명박 전 대통령? 한반도 대운하를 공약으로 내건 것도 이명박이고 이를 4대강으로 변화시켜 추진한 인물도 이명박이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면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점을 알 수 있다. 4대강을 밀어붙인 이명박 곁에는 입을 벌린 채 떡고물을 기다리고 있던 토건 마피아들이 있었고, 4대강 정비사업이 필요하다고 나팔을 불어댄 언론도 있었다. 

토목 시장은 대부분이 공공 분야다. 중앙정부나 지자체가 사업을 기획하고 발주하면서 시장이 형성된다. 이에 따라 정치인들이 리베이트 받기 쉽고, 비리에 취약하다. 1970년대 경부고속도로를 시작으로 공업단지 조성, 간척사업, 신도시 개발사업 등 수많은 사업이 있었다. 이원영 교수는 “그 과정에서 학계, 정부 관료, 토목사업자 간에 소위 ‘토목 마피아’ 관계가 형성됐다”고 말한다.

하천사업은 토목사업 계의 신성장 동력이다, 시골 구석구석까지 도로는 다 닦았고 아파트는 넘쳐난다. 대규모 토건사업이 포화 상태에 이르자 토목 마피아들은 새로운 활로를 찾았고, 그것이 하천사업이다. 국가 소유이기에 주민들에게 보상을 안 해줘도 된다는 점에서 금상첨화다. “고속도로에서 시작해 4대강까지 오게 된 것”이다.

토목 마피아를 양산하는 대표적인 제도가 턴키 방식의 입찰 제도다. 정부는 4대강을 비롯해 대규모 토목사업을 추진할 때 턴키 방식을 사용한다. 턴키란 사업자가 설계에서 시공까지 모두 책임지는 공사 방식이다. 모든 걸 한 업체에서 해결하고, 남는 몫도 커지니 경쟁이 치열하다. 이 과정에서 입찰 평가 때 뇌물을 받고 높은 점수를 주는 등의 각종 비리가 발생한다.

토건 마피아의 카르텔은 4대강 추진과정에서 힘을 발휘했다. 박창근 교수는 환경영향평가 등 법적 절차가 형식적으로 이루어졌다고 지적한다. 정부는 짜깁기 계획서를 만들고, 위원회는 그냥 심의를 통과시킨다. 박 교수는 “권한이 큰 토목 분야 공무원들이 특히 위원회를 잘 활용한다”며 “교수들이 용역을 받겠다고 줄을 선다. 자기 제자뻘인 공무원 앞에서 교수들이 굽신거린다”고 말한다. “정부 사업에 대한 비판은 언감생심”이다.

이 카르텔 앞에서 학계는 맥을 못 춘다. 박창근 교수는 생태학자였다가 4대강 사업 전도사로 변신한 차윤정 전 4대강살리기 추진본부 환경부 본부장을 예로 든다. 박 교수는 이런 교수들이 저쪽 편에 서서 승승장구하는데 반대 교수들에게는 정부의 고소장이 날아온다고 비판한다.

저자들은 4대강 사업의 또 다른 공신으로 조선일보를 꼽는다. 4대강 사업이 마무리되던 2011년 9월 15일자 조선일보 사설 제목은 ‘4대강 난리 난다던 사람들의 침묵’이다. 조선일보는 이후 감사원이 인정한 4대강 사업의 문제점, 녹조라떼와 이끼벌레에 대해서는 뭐라고 변명했을까? 이원영 교수는 “조선일보만이라도 꼭 찍어서 그간의 왜곡보도에 대해 자료를 수집하고 발표하자”고 제안한다.

4대강 사업의 공신들은 또 있다. 4대강 사업 취소 소송을 기각한 재판부, 4대강 사업 옹호에 앞장선 언론인과 관료, 교수들이 그들이다. 1157명이 4대강 사업 관련해 훈장을 받았다. 수자원공사 관계자들은 물론 입찰비리와 비자금 조성 의혹을 받고 있는 대우건설, 삼성중공업 등 대기업 건설사 직원, 4대강에 찬성한 종교게, 법조계 인사들이 훈장을 받았다.

이처럼 4대강 사업의 공신들은 한국사회 전역에 흩어져 있다. 이명박은 물러났지만 토건 마피아는 여전하고, 국책사업의 비민주성 역시 여전하다. 4대강과 함께 사자방으로 꼽히는 자원외교와 방산비리도 예외가 아니다. 정권 홍보에 주력하는 권력과 그 밑에서 입을 벌리고 있는 관료들, 옹호 혹은 침묵으로 일관한 학계와 언론. 이들의 카르텔이 온갖 비리를 양산하고 있다.

답은 진부하지만 결국 민주주의다.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커져 이런 카르텔을 감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임명된 권력과 선출된 권력 위에 존재하는 선출자, 국민만이 뒤집힌 것을 제 자리에 돌려놓을 수 있다고 말한다. 탐욕으로 가로막힌 강을 다시 흐르게 하는 것, 만신창이가 된 국토를 다시 되돌리는 길은 우리 모두에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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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조본좌 조본좌 2014.11.02 11:04

대한민국 1등 기업 삼성. 삼성을 대하는 한국인들의 태도는 양가적이다. 어떤 이들은 삼성을 일류기업이라 칭송하면서 삼성을 욕망한다. “삼성이 망하면 한국도 망한다”며, 이건희 회장의 리더십을 탐구한다. 또 다른 이들에게 삼성은 노조 탄압과 국내 고객 ‘호갱’ 만들기로 대표되는 나쁜 기업이다.

두 얼굴의 삼성

7인의 경제학자들이 쓰는 본격 삼성 사용설명서

[한국의 경제학자들]은 삼성에 대한 칭송과 비난 속에서 잊혀진, 삼성에 관한 “조금 더 본질적이고 구조적인 이야기”를 다룬다. 삼성 문제에 오랫동안 천착해 온 미디어오늘 이정환 기자가 쓴 이 책은 본격 ‘삼성 사용설명서’다. 저자는 장하준, 김상조, 이병천, 김성구, 김상봉, 장하성, 김정호 등 경제학자 7인의 주장을 망라하며 이들 경제학자의 시선에서 삼성과 재벌을 바라본다.

한국의 경제학자들 표지

‘삼성 사용설명서’지만 논의는 삼성에 국한되지 않는다. 장하준은 삼성의 경영 승계를 인정해주고 삼성으로부터 무언가를 받아내자고 주장한다. 이른바 ‘대타협론’이다. 이러한 ‘대타협론’의 근간에는 재벌보다 주주자본주의가 한국경제에 더 위험하고, 국적자본이 주주 자본주의에 위협받고 있다는 생각이 있다.

김상조는 장하준의 반대편에 서 있다. 주주 자본주의가 제대로 작동해야 경제민주화를 이룰 수 있다고 본다. 김상조의 오른편에는 ‘골수 자본주주의 신봉자’ 장하성이 있다. 더 오른쪽에는 재벌을 괴롭히지 말라는 김정호 등 자칭타칭 ‘신자유주의자’들이 있다.

장하준-김상조의 대립, 즉 ‘재벌이냐’, ‘주주자본주의냐’의 이분법에서 벗어난 경제학자들도 있다. 이병천은 장하준 교수의 주주 자본주의 비판에 동의하면서도 재벌이 주주자본주의나 초국적 자본과 대립관계라는 견해에 반대한다. 이미 재벌이 신자유주의와 결탁해 있다는 것이다. 이병천은 대신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김상봉은 논의의 프레임을 넘어 ‘주식회사의 주인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는 소유권과 경영권을 분리해 주주에게는 배당금 등을 주고 경영권은 노동자에게 주자고 말한다. 주주자본주의와는 상극에 있는 주장이다.

김성구 역시 이 이분법을 벗어나고자 한다. 자유방임의 신자유주의는 가능하지 않으며 신자유주의와 결탁한 독점자본은 항상 국가의 개입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국가는 자본에 종속되어 있으므로 대타협은 불가능하고, 재벌을 통제해야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에게 있어 핵심은 재벌해체가 아니라 ‘재벌경제의 사회화’다.

저자는 7명의 경제학자를 이념에 따라 김성구-김상봉-장하준-이병천-김상조-장하성-김정호 순으로 나열한다. 주제에 따라 전선은 복잡해진다. 주주자본주의를 두고는 장하준-이병천이 비슷한 입장이며, 반대편에 김상조-장하성-김정호가 있다. 재벌 개혁이 주제라면? 장하준-김정호가 한 편이고 반대편에는 김상조-장하성-이병천이 합류한다. 국가의 개입을 두고는 김성구-장하준이 김상조-장하성-김정호와 대립한다. 저자는 이러한 복잡한 전선들을 넘나들며 각 전선이 지닌 강점과 약점을 분석한다.

이재용은 삼성 ‘왕국’을 물려받을 수 있을 것인가

이 책은 단지 7인의 경제학자들의 관점을 소개하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건희와 이재용의 삼성 사용설명서에서 이 책은 보다 구체성을 띠며 우리 현실로 다가온다. 저자는 ‘군림하되 통치는 하지 않는 절대군주’ 이건희가 삼성을 어떻게 통치하고 있는지, 나아가 이재용은 삼성을 물려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 분석한다.

설령 왕위를 물려받을 게 확실하다고 하더라도 왕이 죽기 전까지는 왕이 아니다. 왕세자는 언제라도 축출될 수 있다. 그게 왕조의 운영 원리고, 왕의 권위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이맹희 씨는 왕의 눈 밖에 났고 평생을 세상의 바깥으로 떠돌았다. 이재용 부회장이 아버지 살아생전에 아무런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모든 권력은 왕에게 집중돼 있고 왕이 죽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권력 승계가 시작된다.

미디어오늘 – 이건희 회장이 살아있어야만 하는 이유 중에서

이 책의 백미는 이재용이 이건희의 후계자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한 여러 가지 가정과 시나리오들이다. 저자에 따르면 삼성 일가는 십여 년간 이재용의 후계구도를 목표로 설정한 채 움직였다. 복잡한 지분구조 변화와 순환출자 등 비상식적인 일들은 이러한 목표 때문에 발생했다. 저자는 부록에서 이재용 후계 구도 시나리오의 8가지 변수에 대해 설명한다.

이 지점에서 경제학자들이 다시 소환될 수밖에 없다. 어떤 경제학자의 해법이 삼성을 ‘통제’할 수 있을까? 저자는 장하준식 ‘대타협론’의 비현실성을 지적한다. “이건희가 뭐가 아쉬워서 협상 테이블에 나오겠느나”는 것이다. 삼성은 노동자들을 탄압하고 하청 업체들을 쥐어짜면서 주가를 끌어올렸고 주주들은 이건희의 경영에 크게 불만이 없다. 삼성은 주주자본주의로부터 별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 또한, 이건희 일가는 그간 대타협보다 정부 관료와 정치인들을 포섭하는 식으로 버텨왔고, 아무것도 양보하지 않은 채 원하는 것을 다 얻었다. “삼성을 압박해서 끌어낼 수단이 없다면 대타협론은 탁상공론에 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삼성 왕국의 왕위는 결국, 국가권력에 의해 승계될 것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김상조의 주주자본주의일까? 저자는 “소액주주 운동 정도로 이건희 이재용 부자를 움직일 수 없다”고 말한다. 소액주주운동에 대한 평가도 비판적이다. “참여연대가 주도했던 소액주주 운동에서 소액주주들은 주체로 나서지 못하고 배당을 늘리라는 등의 요구로 주식시장의 큰손들, 기관 투자자들과 외국계 펀드들이 훨씬 더 큰 혜택을 봤다”는 것. 저자는 “경제민주화라고 포장은 했지만 1원 1표의 시장원리와 주주자본주의를 한국경제에 뿌리내리는 결과를 불러왔다. 돈 많은 사람이 더 많은 권리를 갖는 걸 경제민주화라고 부르기는 좀 애매하다”고 지적한다.

저자의 결론은 장하준도 김상조도 아닌, “자본 권력이 국가권력과 결탁했거나 오히려 국가권력을 주무르고 있다”는 것이다. 재벌과 타협을 하든 약점을 공격하든 재벌이 국민경제에 복무하도록 하려면 재벌과 국가권력의 결탁을 차단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삼성과의 싸움은 삼성이 이미 장악한 국가 권력과의 싸움이 될 수밖에 없기에, 저자는 “국가권력과 결탁한 자본권력, 또는 자본권력에 지배당한 국가권력을 사회적으로 통제해야 한다는 결론은 식상하지만 가장 원론적인 접근”이라고 설명한다. 결국, 문제는 정치다.

자본 권력이 국가권력과 결탁했거나 오히려 국가권력을 주무르고 있다

저자는 순환출자를 규제하고 금융산업 분리 원칙을 엄격하게 적용하면 삼성그룹의 지배구조가 산산조각이 날 수 있고, 이 경우 이재용이 이건희 왕국을 그대로 물려받기는 불가능하리라 전망한다. 그럼에도 저자는 “결국 이건희가 바라는 대로 갈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을 내린다. 이유는 삼성과 결탁한, 혹은 삼성이 이미 장악한 국가권력 때문이다. 정치권은 금산분리 완화는 물론 순환출자를 추가 허용하거나 상속제를 파격적으로 완화하는 특혜를 쏟아낼 수도 있다. 삼성은 법이 문제라면 법을 바꿀 것이고, 국회의원 300명을 매수해서라도 이재용 후계구도를 완성하고야 말 것이다.

원칙을 지킬 것인가 다시 권력을 인정할 것인가

책 117페이지에 다소 뜬금없지만 중요한 챕터가 등장한다. 한국 언론의 취재원을 분석한 결과 진보 성향 신문들과 보수 성향의 신문들이 주로 코멘트를 받고 인용하는 취재원이 눈에 띄게 달랐다는 내용이다. 한겨레와 경향에는 김상조와 전성인이 자주 등장하고 조중동과 경제지들에는 김정호와 윤창현, 자유기업원 등이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보수나 진보를 막론하고 삼성경제연구소에 대한 맹신은 놀라울 정도”다. 1년 가까운 기간 18개 신문이 삼성경제연구소를 인용해 쓴 기사는 모두 3,197건이나 됐다. 삼성은 국가권력은 물론 언론권력까지 장악한 걸까?

저자의 결론은 이미 서문에 담겨있다. “순환출자 고리를 끊고 금융산업 분리 원칙을 제대로 적용하고 부당 내부거래를 철저히 규제하면 이재용 부회장이 이건희 왕국을 그대로 물려받는 건 불가능하다. 지금부터라도 과도한 비과세‧감면을 정리하고 부당 노동행위를 엄격하게 처벌하면 삼성전자의 이익도 매우 줄어들 수밖에 없다. 결국, 정부의 의지 문제고 한국 사회의 컨센서스의 문제다”. 이재용 시대의 삼성을 맞이할 우리는 어떻게 정부의 의지를 끌어내고 컨센서스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 “백가쟁명의 논쟁을 뛰어넘는 정치경제학적 상상력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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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조본좌 조본좌 2014.10.03 19:59
송파 ‘세 모녀’도 못 받을 기초생활수급
[서평]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 김윤영, 정환봉 / 북콤마 펴냄

공익근무요원으로 구청 주민생활지원과에 복무한 적이 있다. 주민생활지원과는 기초생활수급자로 신청한 사람들에 대한 지원 여부를 결정하는 부서이다. 공익들은 공무원들과 함께 기초생활수급을 신청한 사람들을 방문한다.

현장방문에서 만난 사람들은 늘 자신의 처지가 얼마나 불쌍한 지 하소연한다. 하지만 부양 가능한 가족이 있으면 수급대상이 될 수 없다. 가족으로부터 아무런 도움을 못 받는 처지라 설명해도 소용없다. 이럴 때마다 공무원들의 반응은 두 가지였다. “안타깝다, 미안하다” 아니면 “법이 그런데 왜 나한테 따지냐.”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는 올해 초 한국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송파 세 모녀 자살사건을 통해 기초생활수급제도의 문제점을 짚어내는 책이다. 빈곤문제 전문가인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과 세모녀 사건을 취재했던 정환봉 한겨레 기자가 썼다.

세 모녀 사건은 지난 2월 26일 생활고를 비관한 세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자살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들이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70만 원이 담긴 흰색봉투에는 ‘주인아주머니께.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이들은 왜 마지막까지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해야 했을까.

김윤영 사무국장은 한국의 복지가 ‘수치심을 대가로 움직인다’고 지적한다. 한국에서 복지 수급권은 신청을 해야만 생긴다. 신청하지 않으면 누릴 수 없는 권리다. 사실 권리라고도 볼 수 없다. 복지제도의 절차와 요건이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수급권자들은 쉽게 ‘포기’하고 만다. ‘집 있고 자식 있으면 못 받는 급여’이다 보니 기초생활수급자는 ‘집도 없고 부양할 자식도 없어 나라한테 도움 받는’ 사람이 된다. 세 모녀가 죽음 앞에서도 ‘죄송하다’고 말한 이유는 이런 정서 때문이 아니었을까. 가난이 ‘죄송’한 사회.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저자
김윤영, 정환봉 지음
출판사
북콤마 | 2014-09-20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주인아주머니께...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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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급자의 수는 많은데 일선 공무원이 너무 적은 것도 복지를 권리가 아닌 수혜로 만든다. 공익 근무할 때 옆에서 지켜 본 사회복지 공무원들은 늘 업무에 시달렸다. 수급 신청자들의 하소연을 다 들어주는 공무원은 하루에 1-2건 밖에 처리하지 못하고, ‘착하지만 능력 없는’ 사람이 된다. 반면 이들의 하소연을 무시하고 하루에 15건씩 처리하는 공무원은 ‘능력자’다. 수급 신청자들은 자신이 얼마나 가난한지 설명하고, 도와달라고 하소연해야 한다. 그래야 공무원이 조금이라도 관심을 더 기울이고 신경을 써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복지를 권리로 인식할 수 있을까

세 모녀의 죽음 이후 박근혜 대통령은 “있는 복지 제도도 활용하지 못하면 사실상 없는 제도나 마찬가지”라며 홍보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김윤영 국장은 “기초생활수급 신청을 했더라도 탈락했을 것”이라 말한다. 세 모녀의 어머니는 최근까지 식당에서 일해 번 소득 150만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팔을 다쳐서 일을 못한다 해도 일시적인 것이므로 공무원은 150만 원을 ‘소득인정액’으로 책정한다. 이 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보다 높으면 수급을 받을 수가 없다.

김 국장은 지난달 소득을 고려하지 않는다 해도 세 모녀가 수급대상자가 되긴 어렵다고 말한다. 세 모녀는 근로능력자이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팔을 다쳤지만 만성질환이 아니기에 ‘근로능력 없음’ 판정을 받지 않는다. 큰 딸은 고혈압과 당뇨가 있었지만 병원에 지속적으로 다닌 진료 기록이 없으므로 ‘근로능력 없음’ 대상이 아니다. 작은 딸도 몸이 건강하므로 마찬가지다. 이들에게 아무런 소득이 없다 해도 ‘추정소득’을 부과할 수 있고, 이 경우 수급권은 제한된다.

김 국장은 “이 모든 상황을 고려해볼 때 만약 세 모녀가 기초생활수급 신청을 했더라면 더 절망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다. 박근혜 대통령 말대로 있는 제도가 홍보가 되지 않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근로능력’ ‘부양의무자’ 등 까다로운 기준으로 복지를 권리가 아닌 수혜로 만들어놓은 현재의 제도가 문제라는 것이다.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지만 여전히 가난 때문에 사람이 죽어나가고, 비현실적인 기초생활수급제도는 복지를 권리가 아니라 수혜로 만들고 있다. 가난을 방치하는 이 순환고리가 끊어지지 않는 한 우리 사회에서 세 모녀의 비극은 계속 나올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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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조본좌 조본좌 2014.10.03 19:57

“세월호는 천천히 침몰…기업 살인죄 기소해야”

[서평] '대형사고는 어떻게 반복되는가'(박상은 / 사회운동 펴냄)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세월호 참사가 어느새 5달이 지났다. 많은 이들이 “잊지 않겠다”고 외쳤지만 어느 새 세월호 참사는 잊히고 있다. 사건 초기부터 세월호 참사의 본질 대신 유병언과 구원파에 집중했던 언론은 이제와서는 특별법을 둘러싼 여야 공방과 단식투쟁에 대응하는 ‘폭식투쟁’, '대리기사 폭행사건' 등으로 호도하고 있다. 이 같은 참사가 왜 발생했고 왜 300명이 넘는 생떼 같은 목숨이 죽어가야 했는지는 어느 새 잊혀졌다.

세월호 국민대책회의에서 안전대안팀 활동가로 일하고 있는 박상은씨가 집필한 <대형사고는 어떻게 반복되는가>(15일 출간)에는 세월호 참사가 ‘정치적 쟁점’이 돼버린 현실 속에서 다시 세월호 참사의 본질을 찾고자 성찰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여객선의 선박 연령을 20년으로 계속 규제했다면 세월호는 한국에 못 들어오지 않았을까. 청해진해운이 승객을 더 태우기 위해 무리한 증축을 하지 않았다면? 화물을 과적하는 관행이 없었다면, 관리 감독이 제대로 이루어졌다면 4월 16일의 비극은 없었을 수도 있다.

따라서 세월호는 4월 16일 갑자기 침몰한 것이 아니다. 그동안 이어진 규제완화, 미흡한 운항관리, 과적을 묵인해 온 긴 시간동안 서서히 침몰했다.


대형사고는 어떻게 반복되는가

저자
박상은 지음
출판사
사회운동 | 2014-09-15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세월호 참사 이후 돌아보는 대형사고의 역사와 교훈「사회운동 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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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과거 한국에서 벌어진 대형 사고들이 등장한다. 1953년 1월 전남 여수항에서 부산항으로 가던 여객선 창경호가 침몰해 300여명이 참변을 당했다. 창경호는 선령이 20년 넘은 낡은 배였고, 화물 적재중량 100톤이었던 배에 200톤이 넘는 화물이 실려 있었다. 1970년 12월, 제주도 서귀포를 출발해 부산항으로 향하던 남영호가 침몰해 326명이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적재중량이 130톤인 배에 540톤의 화물이 실려 있었고, 설계 부실로 배의 복원력에도 문제가 있었다.

1993년 10월 서해훼리호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221명이 정원인 배에 326명을 태웠고, 돌풍 속에 회항을 시도하면서 복원력을 상실한 배는 침몰했다. 이 사고로 292명이 사망했다. 20년 단위로 과적과 배의 복원력 상실로 인한 여객선 대형사고가 반복해서 일어났다.

여객선 사고가 벌어질 때마다 관리 감독을 강화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운항관리를 강화했지만 실제 업무는 해운조합에 일임됐고, 재정적자니 비용절감이니 하는 이유로 예산은 삭감, 규제는 완화됐다. 2009년 12월 연안여객 선사 및 선주에 대한 양벌규정이 완화됐다. 선박에 과적을 벌어졌을 경우 주의와 감독만 ‘일정하게’ 했으면 선사의 최고경영자나 실소유주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조항을 추가시켰다.

그리고 서해훼리호 사건 20년 뒤인 2014년 4월 16일 세월호도 침몰했다. 세월호는 평형수 1565.8톤을 전제로 화물을 최대 1077톤 실을 수 있는 배이지만, 2014년 4월 15일 세월호에는 2142톤의 화물이 실려 있었고 평형수는 762톤에 불과했다. 청해진해운은 대다수 선원을 비정규직으로 고용했으며, 안전교육을 위해 지출한 비용은 소화훈련 세 번과 교육비 54만원이 전부였다. 

이 책에는 다수의 해외 사례도 등장한다. 1911년 3월 뉴욕 맨해튼의 트라이앵글 셔트웨이스트 공장(의류공장)에서 불이 나 15분 만에 146명이 숨지는 대형참사가 벌어졌다. 시민들은 시민안전위원회를 결성해 주의회를 움직였고, 이후 구성된 공장조사위원회가 주 전역의 3385개 사업장을 조사했다. 그 결과 새로운 노동법이 만들어졌고, 안전과 건강을 다루는 행정위원회까지 설치됐다. 1987년 영국에서 벌어진 프리 엔터프라이즈호 침몰 사건은 기업을 살인혐의로 기소한 첫 사건이었으며 결국 2007년 기업 살인법 제정의 초석이 됐다. ‘재발방지’를 통해 참사를 기억하고 추모한 사례들이다.

한국은 어떨까? 양재 시민의 숲에는 삼풍백화점 사고 위령탑이 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자리는 강남 한복판이지만, 위령탑은 고속도로와 맞닿은 공원 구석에 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자리에는 37층짜리 주상복합빌딩이 있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낳은 삼풍백화점 사고는 공원 모퉁이의 위령탑으로 남아 있다. 세월호 참사도 이렇게, 한 때 끔찍했던 사고, 추모의 대상으로만 남는 것이 아닐까.

502명이 사망한 삼풍백화점 참사의 책임은 누가 졌을까. 삼풍그룹의 이준 회장은 ‘업무상 과실치사’로 구속되어 징역 7년 6개월 형을 선고받는데 그쳤다. 태안 기름유출 사고 때 피해주민들은 삼성의 책임을 주장했지만 삼성이 부담한 비용은 56억 원으로 예상 피해액인 7341억 원의 1%에 그쳤다.

   
▲ 사고 직후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는 모습. 사진=세월호침몰사고대책본부
 

세월호 참사의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청해진해운과 실소유주 유병언 일가에 대한 수사당국의 접근방식을 두고도 박씨는 의문을 제기했다. 유씨는 정작 사망했고, 유씨 일가는 304명의 목숨을 잃게 한 살인혐의 대신에 경영상의 '비리'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기업에도 살인죄를 물을 수 있는 환경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하면서 무능한 정부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짚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국민들이 세월호 참사를 지켜보며 충격을 받은 가장 큰 이유는 정부가 사고를 수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해경은 구조보다 청와대에 보고하는 것이 우선이었고, 300명 중 한 명도 구하지 못했다. 대통령은 7시간 동안 보고를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과적과 무리한 증개축, 부실한 배의 복원력 등도 관행이지만 해경과 정부도 구조와 사고 수습에 ‘관행적으로’ 무능한 것은 아닐까.

저자는 국내와 해외사례를 통해 세월호 참사를 일으킨 원인에 대해 분석한다. 그렇다면 그 대형사고 때마다 정부는 어떻게 대처했고, 이것이 이후 사고의 수습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이러한 점도 함께 분석이 되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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