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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능력주의만 비판하면 된다는 착각 신이 한 청년에게 ‘다음 생에 가지고 태어날 세 가지 재능’을 주겠다고 말했다. 청년은 ‘소재가 떨어지지 않고 재미있는 웹툰을 그릴 수 있는 능력’ ‘임요환을 능가하는 프로게이머의 재능’ ‘로또 번호를 맞출 수 있는 능력’ 세 가지를 요구했다. 그렇게 청년은 ‘소재가 무한한 재밌는 웹툰을 그릴 수 있는 최고의 프로게이머 억만장자’의 재능을 갖고 태어났다.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조선 시대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네이버에 연재되었던 웹툰 84화에 나오는 에피소드다. 이 에피소드는 우리의 능력이나 재능이 얼마나 ‘사회적’인 것인지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미국의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은 이런 상황을 일컬어 “내가 재능을 후하게 보상하는 사회에 산다면 그것 역시 우연이며, 내 능력에 따른 당연한 결과라고 .. 더보기
능력주의를 비판하는 이유 마이클 샌델의 을 읽었다. 미국 일군의 좌파들 사이에서 ‘능력주의 비판’에 주력하는 기조가 있는데 어떤 맥락인지 샌델의 글을 보고 이해가 갔다. 샌델은 불평등이 돌이킬 수 없이 심각해진 상황에서 기회의 평등, 계층 상승 등을 운운하는 엘리트들의 말이 하층 계급에게는 오만하기 짝이 없는 한가한 소리로 느껴졌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리고 그 근간의 이념으로 ‘능력주의’를 지목한다. 샌델은 능력주의 비판을 통해 굉장히 중요한 시사점을 제기한다. ‘불평등 해소’만 주구장창 이야기한다고 해서 트럼프와 브렉시트로 드러난 - 하층 계급의 우파 포퓰리즘 쏠림 현상을 막아낼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면 이들은 단지 경제적 문제뿐 아니라 엘리트와 테크노크라시 정치의 오만에 뿔이 났기 때문이다. 하층 계급을 도덕‧문화적 차원에.. 더보기
계급을 포기한 대가 ‘차브’는 영국에서 하층 노동계급을 일컫는 말이다. 오언 존스는 이 책에서 어쩌다가 영국의 노동계급이 샅샅이 분열되고, 기득권 세력이 사회경제적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는지, 그 결과 ‘차브 혐오’가 생겨났는지 분석한다. 이는 놀랍게도 대처리즘으로 대표되는 보수당과, 계급을 내다버린 ‘신노동당’(노동당의 신주류)의 연합으로 이루어졌다. 보수당은 집권하자마자 죽기 살기로 계급전쟁을 벌였고, 신주류가 장악한 노동당은 계급전쟁에 맞서기는커녕 다른 갈등으로 이를 우회하려다 이런 결과를 빚었다.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은 아래. “노동자들을 ‘백인종’이라고 정의 내리면 차브들을 혐오하면서도 진보주의적인 견해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백인 노동자들의 인종주의나 그들이 다문화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것을.. 더보기
21세기 공산주의 선언, FALC 아론 바스타니의 책 를 읽었다. 이 책은 1차(신석기 농업혁명), 2차(산업혁명)에 이은 3차 대변혁의 시대가 되면서 결국 마르크스가 말한 공산주의가 가능해지는, 사회경제적 조건이 도래하고 있다는 도발적 문제제기를 던진다. 이 책의 부제가 '21세기 공산주의 선언'인 이유다. 아론 바스타니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5가지 위기에 직면해 있다. 기후변화, 자원 고갈, 인구 과잉, 고령화, 자동화에 따른 실업. 이 다섯 가지 위기는 자본주의가 스스로 버틸 능력을 약화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3차 대변혁(정보와 기술혁명)과 맞물려 새로운 체제의 등장을 가능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바스타니는 노동, 에너지, 자원, 수명과 건강, 음식 등 다각도에서 이 변화를 살피고 분석한다. "3차 대변혁은 이제 막 시작 단계에 접어들었.. 더보기
700년 동안 쓰레기만 치웠는데 친구가 생겼어요 www.nextliterac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4 700년 동안 쓰레기만 치웠는데 친구가 생겼어요 - 주니어미디어오늘 편집자주“2020년까지 매장에서 플라스틱 빨대를 없애겠다” 2018년 7월 9일, 스타벅스의 최고경영자 케빈 존슨이 선언했습니다. 아디다스, 아메리칸·알래스카항공 같은 다국적기업들, 대한민국 www.nextliteracy.co.kr [영화 리뷰] 청소 로봇 월E의 모험, 가상 현실에 빠진 충격적인 미래 편집자주 “2020년까지 매장에서 플라스틱 빨대를 없애겠다” 2018년 7월 9일, 스타벅스의 최고경영자 케빈 존슨이 선언했습니다. 아디다스, 아메리칸·알래스카항공 같은 다국적기업들, 대한민국의 서울시도 ‘플라스틱 프리’를 선언하고 이행 중이.. 더보기
“우리가 이루어낸 대단함에 집중하자” 나는 맨 마지막 장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왜냐면, ‘사회는 여전히 충분히 진보적이지 않아’라는 식의 비관론(“이 사회는 빨갱이/페미들이 전부 지배했어!”라는 식의 비관론도 성격은 다르지만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대신 우리가 이룬 것에 자부심을 가질 때, 과감한 변화도 가능하고 다수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을 하면서도 고민이 있었다. 자부심의 정치가 자칫 대책없는 비관론을 대책없는 낙관론으로 바꾸려는 시도가 되진 않을까? 를 읽고 그런 우려를 상당 부분 씻어낼 수 있었다. 우리가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고 그 근거를 객관적으로 하나하나 짚어주기 때문이다. 공채나 저출산, 비정규직 문제 등 구체적인 이슈에 대해 평할 능력은 안 되지만 그럼에도 이 책의 문제의식이 의미 있고, 지.. 더보기
사회주의에는 반대하지 않지만 사회주의자는 반대한다 조지 오웰의 중 기억나는 구절들을 정리해올렸는데, 몇 가지 구절을 더 가져왔다. 예언에 가까운 이런 글을 읽으면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하나는 "100년 전도 문제였는데 아직도 문제구나”, 그리고 “100년 전 님들도 다 겪은 일이구나”라는 안도감. “사람들에게 사회주의 애기를 꺼내보면 ‘사회주의에는 반대하지 않지만 사회주의자는 반대한다’는 말이 안 되는 듯한 대답을 하곤 한다. 이 말은 논리적으로는 부실한 주장 같지만 상당한 무게를 지닌 말이다. 기독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사회주의의 홍보에 가장 해를 끼치는 것은 바로 그 신봉자들인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나 괴짜들이 불길할 정도로 많다. 사람들은 흔히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라는 말 자체가 영국의 온갖 과일주스 애호가나.. 더보기
이단을 찾아다니는 진보 조지 오웰의 은 언제 읽어도 명문이다.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은 너무 현실적이어서 지금 그대로 적용해도 전혀 문제가 없을 정도다. 세상을 바꾸는 대신 이단자들을 찾아 척결하는 게 진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나는 사회주의자를 보며 도대체 그의 진짜 동기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을 품곤 한다. 내가 보기에 많은 사회주의자들의 숨은 동기는 병적으로 심한 질서 의식일 뿐이다. 그들이 현 세태를 불쾌히 여기는 것은 그것이 비참한 현실을 초래하기 때문도, 자유를 불가능하게 하기 때문도 아니다. 그보다는 무질서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이 세상을 장기판 비슷한 무엇으로 축소하는 것이다."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라 부르는 많은 사람들에게 혁명이란 그들이 어울리고 싶어 하지 않는 .. 더보기
정치적 부족주의를 극복할 '아메리칸드림' 라는 책을 읽었다. 분열을 정치의 동력으로 삼는-정체성 정치를 포함한 부족주의 정치에 대한 신랄한 분석과 비판이 담겨 있다. 이 책은 절망적인 전망을 제시하면서도 책 말미에 미국의 탄생설화인 '아메리칸드림'을 다시 거론하며 웅장하게 책을 마무리한다. "오늘날 좌파와 우파 모두에서 정치적 부족주의를 맹렬히 실어나르는 사람들은 아마도 자신이 미국적 가치를 지키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사실 그들은 독을 가지고 게임을 하고 있다. 미국이 미국의 국가 정체성을 ‘백인’ ‘앵글로 개신교 문화’ ‘유럽 기독교’로 규정하는 한(혹은 다른 종교나 인종을 포용하지 않는 그 밖의 무언가로 규정하는 한) 미국은 미국이기를 멈추게 될 것이다. 하지만 상당수의 미국인이 미국과 미국의 이상이 사기라도 믿어도, 미국은 미국.. 더보기
박정희를 긍정하는 진보는 가능할까 서평 대책없는 비관론에서 현명한 낙관론으로 대한민국을 지배해온 정신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무엇일까? 80년대생들이 쓴 대한민국 성장사 는 그것이 ‘비관론’이었다고 말한다. 우리는 선진국의 이상형과 한국사회의 모자람을 대비해 각성을 촉구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는 것이다. 보수는 미국과 일본을 롤모델로 삼아 비관론을 펼치고, 진보는 유럽을 롤모델로 삼아 비관론을 펼친다. 양극화된 정치 엘리트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절망에 빠져 있다. 진보파는 ‘대한민국은 아직 충분히 진보적이지 않다’고 절망하고, 보수파는 ‘대한민국은 빨갱이들이 장악했어’라고 절망한다. 는 이런 비관론에서 벗어나 현명한 낙관론으로, 열등감의 정치에서 벗어나 자긍심의 정치를 구축하자고 말한다. GDP 세계 10위에 군사력 6위, 거기다 촛불 혁명으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