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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글/노동당 기관지

박근혜 대통령의 핵개발 선언? YTN의 황당 오보, 왜?

우연이 반복되면 필연이 된다. 언론의 오보는 실수이지만 특정 언론사에서 오보가 반복되면 그 언론사에 어떤 구조적인 문제점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핵무기 개발 의사를 밝혔다는 내용의 어마어마한 오보를 냈던, YTN이 대표적인 사례다.

‘핵무기 개발’ 황당 오보는 영어 번역 때문?

YTN은 지난 5월 30일 새벽 5시에 어마어마한 기사를 하나 내보냈다. 박근혜 대통령이 미국 언론인 월스트리트 저널과 인터뷰에서 핵무기 개발 의사를 내비쳤다는 보도였다. 사실이라면 국내외적으로 엄청난 파장이 올 수 있는 내용이었다. 핵 개발은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인 박정희 대통령도 실패했던 일 아닌가. 

YTN은 5월 30일 기사 <북 핵실험 하면 남한도 핵무기 개발>에서 “박근헤 대통령은 북한이 4차 핵실험을 할 경우 한국도 독자적인 핵무기 개발에 나서겠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YTN의 이 보도는 박 대통령의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과의 인터뷰 내용을 번역해 소개한 것이었다. 보도 이틀 전인 5월 28일 박 대통령은 월스트리트 저널과 청와대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기사가 나가자 엄청난 파장이 일었다. 대통령이 핵무기를 개발하겠다고 공식 선언한 셈이기 때문이다. 새벽 5시 보도였지만 SNS에서는 이 기사에 대한 엄청난 반향이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미친 거 아니냐” “큰일 났다” 이런 우려의 목소리들이 많았다. 아마 이 엄청난 보도가 오보라고 생각한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우습게도 월스트리트 저널 원문을 잘못 번역한, 즉 오역으로 인한 오보였다. 월스트리트저널 기사 제목은 <한국의 대통령이 핵 도미노 현상을 경고했다>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 기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말하길, 북한의 핵실험은 주변국들이 핵무기로 무장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함으로써 핵 도미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라고 전한다. 기사를 아무리 찾아봐도 박 대통령은 핵 도미노 현상,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함으로써 주변국도 핵무기를 가질 수 있다는 내용만 있을 뿐 한국이 핵무기를 개발하겠다는 내용은 없다.

YTN도 오보를 인정했고 기사도 삭제했다. 미디어오늘이 30일 오전 YTN 측과 통화를 했을 때도 오보를 인정했다. 리포트를 한 기자는 YTN 뉴욕특파원 김원배 기자였으나 김 기자와는 연락이 잘 닿지 않아 YTN 국제부에 문의를 했다. YTN 국제부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YTN 특파원이 기사 안에서 주변국, neighbors라는 표현을 잘못 해석했다. 주변국에 핵 도미나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뜻을 잘못 해석했다. 결과적으로 오보이기에 기사를 내렸다”

YTN은 오전 11시에 사과방송까지 했다. YTN은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 내용을 전하면서 사실과 다른 내용을 보도함으로써 시청자 여러분께 혼란을 끼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영문 기사 원문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일부 단어에 대한 해석오류로 결과적으로 오보를 하게 됐다”며 시청자 여러분께 혼란을 드린 점 거듭 깊이 사과드리며 YTN은 앞으로 더욱 정확한 보도를 통해서 시청자의 신뢰를 높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해 안 가는 오보 이유…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해가 가지 않는 오보 이유였다. 이 기사를 읽어보면 알 수 있지만 뉴욕특파원으로 간 사람이 이해하지 어려운 수준의 영어가 아니다. ‘neighbors’란 단어를 주변국이 아닌 한국으로 해석했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백번 양보해서 특파원 눈에 뭐가 씌여서 잘못 해석을 했다고 쳐도, 대통령이 핵무기 개발 의사를 밝혔다는 엄청난 내용이라면 데스크 차원에서 검증을 해야만 하는 사안이다. 이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이 더욱 충격적이었다.

YTN의 핵무기 개발 오보가 비판을 많은 이유는 YTN이 이미 여러 차례의 오보나 편파적인 보도로 신뢰도가 하락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한 가지 사건은 YTN <호준석의 뉴스인>이 서울시장 선거를 스케치하면서 빚어진 편파 방송 논란이다. <뉴스인>은 정몽준 당시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를 소개하며 ‘정을 몽땅 준 사람’이라는 자막을 내보냈다. 정몽준 후보만 부각시키는 리포트를 했다는 이유로 이 보도는 선거방송심의위원회로부터 ‘관계자 징계 및 경고’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YTN은 재심을 청구했으나 기각 당했다.

또 다른 사례는 김정은-무인기 화면 합성 사건이다. YTN은 지난 5월 10일 <북 김정은, 공군 전투비행술 대회 참관>이라는 기사를 보도하며 앵커 백, 앵커 뒤편의 배경화면으로 북한 김정은이 무인기를 쳐다보고 있는 사진을 내보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사진은 김정은이 그냥 서 있는 사진과 무인기 사진 두 가지를 합성한 것이었다. 사진 조작 논란에 휩싸인 이 보도는 방통심의위원회로부터 주의 조치를 받았다.


 

계속되는 오보의 원인? “부당한 인사 시스템과 솜방망이 처벌”

이런 사례들이 벌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핵무기 개발 보도 이후 중견기자 A씨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특파원 선발에 있어서 회사가 자질 또는 업무능력보다 노조와의 친소 여부를 먼저 따져왔다. 그동안 모든 사안을 이런 방식으로 접근했다”며 YTN의 인사시스템을 원인으로 꼽았다. 실력이 뛰어난 사람보다 회사에 충성할 사람을 특파원으로 보냈다는 것이다. A 기자는 “고등학생도 이런 식으로 해석하거나 번역하지 않는다. 이번 사태는 원칙 없는 인사 기준을 보면 예상할 수 있었던 것이다”고 말하기도 했다.

YTN은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8년 낙하산 사장에 반대하는 구성원들과 사측 간의 대립이 있었고 이 과정에서 파업과 해직사태가 벌어졌다. 이후 YTN 내부에서는 노조 조합원이나 노조와 친분 있는 인사는 승진에서 배제되고 자질이 검증되지 않은 사람들이 인사발령을 받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오보 역시 이러한 시스템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YTN 기자는 “특파원 지원을 두고 경쟁이 붙었을 때 언제나 배석규 사장 측에 협조적이었던 사람이 선발됐다. 언제부턴가 능력에 대한 공정한 평가로 인사가 이뤄지는 경우는 드물어졌다”고 비판했다. 

솜방망이 처벌도 문제다. <호준석의 뉴스인>의 호준석 앵커는 가장 낮은 수위의 ‘주의’ 조치를 받았고 핵무기 개발 오보를 했던 김원배 기자는 ‘경고’ 조치를 받았다. 경고는 주의 다음으로 낮은 징계다. 이를 두고 임장혁 언론노조 YTN지부 공정방송추진위원장은 “대형오보로 인해 YTN의 신뢰도가 일거에 무너지고 시청자에게 사과까지 했다. 그런데도 이런 징계가 떨어지는 것은 시청자를 조롱하는 행태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YTN의 또 다른 기자는 “무능한 인사가 잘못해도 책임 묻지 않는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형성돼 있다. YTN에는 지금 편집 기능이 없다. 큰 틀에서 보도방향이 잡히지 않으니 속보에 급급하고 문제 많은 리포트가 속출한다”고 밝혔다.

YTN의 신뢰도 하락이 상징하는 바가 있다. 언론사의 경우 사내 민주주의와 노조의 사측에 대한 견제가 뉴스 품질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사장이 독선적으로 의사결정을 하고, 노조와의 친소 여부에 따라 인사권을 휘두르는 언론사에서는 좋은 기사가 나올 수 없다. 이는 독자와 시청자 입장에서도 큰 불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