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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된 애국심 조롱하는 ‘국뽕’을 아시나요?

연출된 애국심 조롱하는 ‘국뽕’을 아시나요?
위로부터 동원된 충성 강요… 국가주의 철학, 내부갈등 잠재우는 통제 수단으로 변질 우려

대한민국에 태극기 열풍이 불고 있다. 길을 지나다보면 관공서와 공항, 기업 건물에까지 붙어있는 태극기를 쉽게 볼 수 있다. 정부가 대대적으로 태극기달기 사업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가주의를 강요하는 식의 태극기 달기사업은 오히려 반감만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2002년 월드컵 때처럼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태극기를 흔드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나서서 태극기를 달라고 강요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는 7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애국심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아래로부터’ 나오는 애국심인지 ‘위로부터’ 동원되는 애국심인지에는 차이가 있다 태극기를 애국심을 표현하는 상징이자 국가에 대한 충성을 상징하는 기호로 본다면 위로부터 동원되는 태극기 달기 운동도 위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노 교수는 “아래로부터 생기지 않는 애국심은 국가주의적인 철학으로 변질되어 통제의 방식이나 내부 갈등을 잠재우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인터넷상에서는 태극기 달기 운동에 대해 반감을 표현하는 누리꾼들이 많다. 특히 젊은 세대는 이런 과도한 국가주의 이벤트에 대해 ‘국뽕 맞았다’는 표현으로 강한 반감을 드러낸다. ‘국뽕’이란 ‘나라 국(國)’자와 ‘희로뽕’의 ‘뽕’을 합성한 단어로 국가에 대한 자긍심에 과도하게 취해 있는 것을 조롱할 때 쓰이는 말이다.

   
▲ 인터넷에 ‘인터뷰 철벽방어’라는 이름으로 돌아다니는 4월 2일자 JTBC 뉴스룸 갈무리.
 

국뽕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외국인들을 향해 ‘두유 노(Do you know) 김치’ ‘두유 노 싸이’ ‘두유 노 김연아 & 박지성’을 묻는 한국인들과 한국 기자들을 조롱하는 데 쓰였다. 외국 배우들이 한국을 방문할 때 강남스타일의 ‘말춤’을 추거나 김치를 찢어먹는 모습을 연출하는 것도 ‘국뽕’의 비판 대상이다. 누리꾼들은 이런 장면들을 갈무리하며 ‘국뽕 극혐(극도로 혐오)’이라는 코멘트를 붙인다. 

급기야 ‘국뽕을 방어하는 방법’이라며 외국인이 한국에서 입으면 좋은 티셔츠를 소개하는 합성사진도 등장했다. 외국인이 입고 있는 이 티셔츠에는 ‘나는 싸이, 강남스타일, 독도, 김치, 박지성, 김연아를 알고 있다’고 적혀 있다. 태극기 달기 운동이 애국심을 강요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경우 오히려 반감을 살 수 있다는 뜻이다.

노명우 교수는 “사람들이 애국심이 연출된 것이라는 점을 감지할 경우 태극기를 그 기호의 의미가 아니라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며 “연출된 애국심은 오히려 냉소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애초에 의도했던 효과를 전혀 거두지 못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