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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글/한겨레 hook

나꼼수, 대안언론과 B급 방송 사이에서

나꼼수 비키니 응원과 관련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이 논란은 한 여인이 징역형을 받고 수감된 정봉주 를 응원하는 비키니 사진을 올리면서 시작되었다. 이 여인은 정봉주의 팬 카페인 ‘미권스’에 자신의 비키니 사진을 올렸다. 가슴에 ‘가슴이 터지도록 나와라, 정봉주’라는 문구를 새긴 채 말이다. 이어 몇 몇 여성들이 속옷이나 비키니 사진을 연달아 올리면서 이런 응원 방식이 올바른 것이냐는 논쟁이 시작되었다. 논란이 심해진 것은 이에 대한 나꼼수 패널들의 반응 때문이다. 김용민이 나꼼수 방송 중 정봉주가 “성욕감퇴제를 먹고 있다”며 “마음 놓고 수영복 사진을 보내라”고 말하고, 주진우가 트위터에 ‘가슴 응원 사진 대박이다.’, ‘코피 터진다.’라는 글을 올리면서 나꼼수 측이 여성들을 성희롱했다는 논란이 불거졌다.


급기야 몇 몇 여성단체와 네티즌들이 나꼼수의 사과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진중권과 이택광 등의 진보 논객들은 나꼼수를 비판했고, 나꼼수와 친분이 있던 공지영 마저 “불쾌하다. 사과를 기다린다.”고 말했다. 그러나 논란의 주인공인 나꼼수 3인방은 사과의 입장을 밝히지 않았으며, 오히려 김어준은 “여성의 생물학적 완성도를 보고 감탄한 것이 뭐가 문제냐”는 반응으로 대처했다. 감옥에 있던 정봉주 만이 사과편지를 보냈다. 이 사과 편지를 공개한 공지영은 미권스와 나꼼수 팬덤의 사이버 공격에 결국 트위터를 그만 두고 말았다.


비키니응원이 표현의 자유인지 아닌지, 이에 대한 나꼼수의 발언이 잘못된 것인지 아닌지, 이들이 사과를 해야 하는지 하지 않아도 되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다. 나는 이 글에서 이 복잡한 논란에 대해서다루지 않을 것이다. 다만 나꼼수, 나꼼수 팬덤과 미권스, 그리고 나꼼수가 사과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내세우는 단 하나의 논리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것이다. 왜 이들은 나꼼수가 이번 비키니응원 논란에 대해 사과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가?


“원래 술자리 뒷담화 하듯 하는 방송인데 뭘 그러냐.” “나꼼수 4인방은 원래 저질이다. 그리고 나꼼수도 저질, B급 방송이다.”,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달려든다.” 대략 이런 반응들이다. 나꼼수는 원래 그런 저질스런 이야기를 하는 방송이고, 주류언론과는 다른 B급 방송인데 그런 성적인 ‘농담’ 좀 한 거 가지고 뭘 그렇게 주류언론에나 대는 엄격한 기준을 들이대며 깐깐하게 구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달로 손가락을 가리키는 데, 자꾸 달을 안 보고 손가락을 본다.” 비키니 응원의 본질은 비키니를 입고 사진을 올려서라도 정봉주를 응원하고 싶은 여성의 ‘자발성’인데, 자꾸 사람들이 그 여성의 메시지가 아니라 그 메시지를 전달하는 태도, 비키니나 가슴, 나꼼수 패널들의 성적 농담을 문제 삼는다는 것이다.


물론 모두 맞는 말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한 가지 사실을 놓치고 있다. “나꼼수가 어떻게 흥행할 수 있었느냐.”는 물음이다. 나꼼수가 흥행에 성공한 이유, 1,100만 명의 청취자를 지닌 팟캐스트가 된 이유는 공교롭게도 ‘달’이 아니라 ‘손가락’의 공헌이다. 현직 대통령과 집권여당을 비판하는 언론들은 이미 있다. 보수언론은 친정부적인 보도를 한다고 쳐도 한겨레, 경향, 시사인, 프레시안, 오마이뉴스 등 정부 비판적인 매체들은 이미 널려 있었다. 그런데도 왜 사람들은 그런 기존의 매체가 아닌 나꼼수에 열광한 것일까? 나꼼수의 메시지보다는 그 메시지를 전하는 태도 덕분이다.


농담 따먹기를 하면서, 낄낄 거리며, 욕설을 해대며 가카를 까고 한나라당을 씹어대는 그 태도 말이다. 심각한 사회 이슈를 희화화하고, 풍자하는 그 태도 말이다. 각 잡은 채 진지하고 심각한 표정으로 뉴스를 전하는, ‘대의’를 위해 투쟁하는 태도가 아닌 풍자와 웃음, 조롱에 환호한 것이다. 나꼼수는 재미있다. 그럼에도 중요한 이슈를 잘 정리하고, 꼭 알아야할 뉴스들을 들려준다. 이게 나꼼수가 뜬 이유다. 그 특유의 ‘B급스러움’이 나꼼수의 가장 강력한 매력이다.


원래 나꼼수의 매력은 툭툭 던지는 음모론과 ‘소설’이다. 근거는 조금 부족하지만, 웃고 즐기면서 씹을 수 있는 음모론과 소설 말이다. 나꼼수 패널들은 ‘이것은 소설입니다’라며 연막을 치고 들어가서 한참 음모론을 풀어놓은 뒤에 ‘우리 가카는 절대로 그럴 분이 아니십니다.’라며 다시 안전장치를 치고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나꼼수를 편집하는 김용민이 시사인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이유는 이 때문이다. “비평 과잉 청취자는 달갑지 않다. 이 안에서 숭고한 저널리즘을 기대하는 이들, 의외로 많다. 귀는 폼으로 달고 다니나. 다 터무니없는 소설이다, 각하는 절대 그럴 분이 아니라는 말 좀 새겨들어라.”(시사인, 212호)


그런데 어느 순간 나꼼수는 단순한 B급 방송이 아니라, ‘대안언론’으로 기능하고 말았다. 김용민의 말과는 달리 ‘저널리즘’이 되어버린 것이다. 꼼꼼하기로 소문난 ‘악마기자’ 주진우는 나꼼수가 툭툭 던지는 ‘음모론’과 ‘소설’에 팩트를 부여했다. 높아진 영향력에 현직, 전직 정치인들이 앞 다투어 출연했다. 정치인들은 나꼼수에 출연해 여의도의 비하인드와 국회의원 시절 이야기를 했다. 10.26 재 보궐 선거 전에는 서울시장 후보들이 나와 토론을 했다. 통합민주당 지도부 선출 직전에는 당 대표 후보들이 출연했다. 그 뿐인가? 나꼼수가 ‘의혹’이라고 제기한 디도스 공격은 사실로 드러났다.


나꼼수 팬덤의 태도도 이와 비슷하지 않았는가? 소위 말하는 진보지식인, 논객들이 나꼼수를 비판하는 글을 쓰거나 발언을 하면, 이들에게 몰려가서 ‘입 진보’라고 공격했다. (오마이뉴스, “건드리면 ‘폭풍 까임’ ‘입진보’ 낙인 <나꼼수> 편가르기, 빨간불 들어왔다” 참조) “나꼼수 4인방이 꼼수조직과 가카의 음모를 파헤치기 위해 감옥 갈 각오로 목숨 걸고 싸우는 데 너네는 입만 놀렸지 뭐했냐.”고 묻는다. 정봉주가 BBK 의혹을 제기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가면서 정봉주는 거대 권력 가카에 맞서는 상징이 되었다. 나꼼수는 더 이상 단순한 B급 방송이나 술자리 뒷담화가 아니다. 대안언론으로, 반MB의 상징으로 ‘진화’한 것이다.


나꼼수 팬덤이나 미권스, 나꼼수 패널들이 아무리 ‘술자리 뒷담화’에 불과하다고 자기규정을 해도 나꼼수는 이미 ‘객관적’으로 B급 방송이 아니다. 600만 명이 다운로드를 받아 듣는다고 한다. 김용민의 말에 따르면 1,100만 명이 나꼼수를 청취해본 적이 있다고 한다. 이 쯤 되면 나꼼수는 더 이상 비주류 B급 방송이 아니라, 이미 ‘주류’다. 과거 정권의 인사들이 방송에 나오면서. 집권 여당의 비리를 폭로하면서 나꼼수는 술자리 뒷담화를 뛰어넘었다. 나꼼수 팬덤도 나꼼수가 정권심판에 기여했느니, 젊은 층의 투표율 상승에 기여했느니 라며 나꼼수의 역할을 ‘술자리 뒷담화’ 이상으로 규정하지 않았는가? 김용민은 <인물과 사상>과의 인터뷰에서 나꼼수가 “정치에 관심이 없던 여성들의 정치적 각성에 기여했다”고 말했다. 본인들이 잘 나갈 땐 온갖 정치적이고 공적인 의미 부여를 하다가 불리하면 ‘술자리 뒷담화’라고 스스로를 규정하는 건 너무 비겁하지 않은가?


나꼼수 패널들과 나꼼수 팬덤, 미권스는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보라.”고 말한다. 이에 대한 대답은 그 누구보다 김어준이 대신 해 줄 수 있다.


“내게 왜 방송에서 욕을 하냐고 시비를 거는 사람들이 있는데 왜 욕을 하는 지보다 욕을 하고 있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사람들은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면 손가락을 보고, ‘꼬추’로 달을 가리키면 그것을 본다. 메시지가 아니라 메시지를 전하는 태도가 중요한 것이다”(시사인, 212호)


김어준의 말처럼, 메시지보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 가슴에 글자를 새기면 사람들은 글자가 아니라 가슴을 본다. 정봉주를 응원하는 마음이 아니라, 나꼼수의 성적 농담에 주목한다. 그리고 나꼼수는 바로 그 손가락 덕분에 지금의 위치까지 왔다. 나꼼수가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보라’고 말하면, 더 이상 나꼼수는 나꼼수가 아니다. 나꼼수의 딜레마는 이 지점에 있다. 나꼼수가 사과를 하면, 나꼼수는 스스로 B급 방송이라는 정체성을 버리고 자신이 공적인 언론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반면에 사과를 안 하면, 나꼼수는 대안언론이기를 포기한 채 말 그대로 ‘진짜’ 저질인 인터넷 방송으로 남게 될 것이다. 선택은 나꼼수 본인들에게 달려 있다.


<한겨레 훅>에 기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