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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글/한겨레 hook

청년, 정치, 비례대표제

청년, 정치, 비례대표제


청년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이 관심은 청년을 위한 공약들을 쏟아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청년들이 ‘직접’ 바꾸어야 한다며 국회의원 자리를 청년들에게 내주겠다고 한다. 민주통합당이 택한 건 ‘슈퍼스타케이’다. 통합진보당은 ‘위대한 진출’을 선택했다. 공개 오디션 방식으로 국회의원 후보를 뽑고, 오디션에 합격한 청년을 비례대표 앞 순번에 배치하겠다고 한다. 돈 없고 조직 없는 청년이 당장 지역구 후보로 나와 당선되기는 힘드니 비례대표로 배치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오디션 방식으로 청년을 비례대표로 만들면 청년들의 목소리가 잘 반영될 수 있을까?

비례대표제와 대표성

나는 얼마 전 진보신당 청년학생위원회의 자격으로 국회에서 열린 <청년, 정치, 비례대표제>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석했다. 정치인들과 청년들이 모인 이 토론회에서 발표자들은 하나 같이 한국에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가 도입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청년의 목소리를 더 높이기 위해서도 독일식 정당명부비례대표제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나 역시 한국에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더 늘어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비례대표제가 유권자의 의사를 더 잘 대표할 수 있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청년들이 비례대표를 통해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것 역시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현상이 진짜 ‘좋은’ 현상이 되기 위해서는 기계적으로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것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 비례대표제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한 조건들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독일식 비례대표제가 얼마나 좋은 제도인지에 대해서는 많이 이야기한다. 즉 비례대표제 자체에 대한 논의는 널려 있다. 그러나 비례대표제가 제대로 기능하는 데 필요한 조건들에 대해서는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

대의민주주의의 핵심은 대표성이다. 그 이유는 대표성이 선출된 대표가 행사하는 권력의 근거이기 때문이다. 정당성 말이다. 청년 문제를 중요한 의제로 제기하기 위해 비례대표제가 필요한 이유는 지역구 중심의 현재 선거제도로는 청년 의제라는 초-지역적인 의제를 제기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지역구 의원들이 지역에 공항을 깔아주느니, 다리를 놓느니 하는 지역적인 의제에만 관심이 있다는 것이다. 거꾸로 말하자면 지역구 의원들이 지역 의제에 치중하는 이유는 바로 그곳에서 권력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비례대표제로 당선된 의원들이 행사하는 ‘권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그 권력의 정당성과 근거는 어디에 기인하는 것인가? 정당이 아닐까?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비례대표제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비례대표제는 도입된 이후 늘 더러운 논쟁에 휩싸여 왔다. 친박연대의 양정례 사건이 대표적이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도 과거에 비례대표를 둘러싸고 ‘측근의 자리 나누어먹기’ 혹은 ‘돈 주고 의석 사기’ 등의 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다.

쉽게 말해서 정당이 비민주적으로 운영된다면 비례대표제는 정당 중진의원들이나 권력을 지닌 계파 지도자들의 안전 빵으로 전락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유권자가 직접 선출하는 지역구보다 더 비민주적이고 대표성이 낮은 제도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비례대표제가 제 기능과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정당 구조, 정당 민주화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비례대표제가 얼마나 좋은지도 중요하지만 각 정당이 어떤 방식으로 비례대표를 선출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청년비례대표제와 대표성

청년 비례대표제와 ‘대표성’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 당연한 이야기지만 청년 비례대표는 청년을 대표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청년이 ‘청년’을 대표할 수 있을까? 난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이 추진하는 공개오디션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슈스케를 보면 멘토들이 탈락을 좌지우지한다. 심판권을 지닌 몇 몇 당내 인사들이 자신의 입맛에 맞는 청년들만을 걸러내지는 않을까? 이를 위해 청년들은 청년의 이해관계를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고 청년 정책을 생산하는데 주력하기보다, 자신의 경력을 멘토 ‘어른’들에게 어필하는 데 더 힘을 쏟지 않을까? 혹은 당의 권력을 장악한 계파 조직들이 자신의 조직력을 동원하여 자신의 입맛에 맞는 청년들을 밀어주지 않을까?

나의 이런 우려는 단순한 노파심이 아니다. 민주통합당 슈스케에 참여한 인사들 중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강조한 이들이 많았다. 당 내의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인사들의 눈에 들기 위해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노력한 것이 아닐까? 나로썬 ‘청년’ 비례대표가 되는 데 굳이 김대중, 노무현과의 인연을 강조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물론 정치 경력이나 행정 경험에 대한 강조라면 그럴 수 있겠으나, 20-30대 청년들이 더 어린 시절에 정치 경력이나 행정 경험을 했을 가능성은 낮다.) 통합진보당도 마찬가지다. 통합진보당 ‘위대한 진출’ 경선 과정에서 특정 조직이 조직의 구성원인 대학생들에게 특정 후보를 찍으라고 강요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이런 방식으로 당선된 청년 비례대표 의원은 청년을 대표할까, 아니면 당과 조직을 대표할까?

또 다른 우려는 공개오디션 방식에 참여하는 청년들 중에 그 당의 가치와 정강에 동의하여 들어온 이가 얼마나 될까 라는 것이다. 급진적 좌파 박가분은 지난 R칼럼에서 청년 문제를 올바르게 사고하기 위해서는 청년 사이의 당파적인 입장 차이를 드러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의 생각에 동의한다. 따라서 청년들이 서로 다른 정강과 가치를 지닌 정당에서 활동하며 자신의 당파성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슈스케 방식으로 청년 정치인을 ‘모집’하면 어떻게 될까? 나쁜 의미에서의 권력욕, 나쁜 의미에서의 정치인을 꿈꾸는 이들이 슈스케를 절호의 찬스로 포착하지 않았을까? 슈스케에 참여한 이들 중에 미래연대나 새누리당 경력을 지닌 참가자들이 많았다. 물론 새누리당이나 미래연대 출신이 민주통합당에 오면 안 된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목적이 청년을 대표하겠다, 청년의 목소리를 내겠다가 아니라 단지 ‘정치인이 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점을 우려할 수밖에 없다.

청년을 대표하고 싶다면 청년조직을 재건하라

나는 이러한 측면에서 각 정당은 기계적인 비례대표제 도입 이전에 당의 청년조직들을 재건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에는 당에서 나름의 세력을 가진 청년조직이 없다. 청년위원회, 대학생위원회라는 이름의 조직이 있지만 유명무실하며, 당원으로 활동해도 국회 인턴 및 당직자 채용 등에서의 혜택이 없는 상황이다. 심지어 민주통합당은 청년비례대표를 늘린답시고 당직자에게 배정되어 있던 비례대표 할당을 줄인다고 한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어떤 당원이 당을 위해 열심히 일하려고 할까? 더 나아가 어떤 청년당원이 당원 활동을 열심히 하려고 할까? 통합진보당의 경우 청년조직이 당내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개오디션을 통해 청년정치인을 모집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관심과 주목을 끌기 위해서였다는 점은 이해하지만, 청년조직이 뻔히 있는데 외부에서 정치인을 충당하는 방식을 쓰는 것이 청년을 대표한다는 면에서 도움이 될 지는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하지 않을까?

청년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싶다면 각 정당은 슈스케 같은 이벤트가 아니라 청년조직을 건설하는데 힘써야 한다. 슈스케에 참여한 ‘개인으로서의 청년’이 아닌 ‘조직으로서의 청년,’ ‘집단으로서의 청년’이 당 내에서 자신들의 사업을 주도하고 예산을 확보하여, 그 안에서 정치적인 경험(당직자, 당 관료)을 쌓은 뒤 정당 내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 이런 시스템이 고착되어야 청년의 목소리가 꾸준히 사회에 반영될 수 있다. 이렇게 된다면 몇 몇 당내 인사들이 자신의 입맛에 맞는 청년들만을 걸러낼 우려도 없고, 슈스케 같이 반짝하는 기회를 포착하여 자신의 이념이나 정책과 무관하게 정치인이 되고 싶어 정당에 들어오는 청년들도 걸러낼 수 있을 것이다.

선거 때마다 외부의 인사를 끌어올 게 아니라 당이 키우고 당에서 고생한 청년들이 청년조직의 힘을 등에 안고 당 내의 헤게모니를 장악하여 청년을 대표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 청년을 구하지 말고, 청년들이 직접 당을 만들어 가야 한다.

조윤호/ 진보신당 청년당원

 

<한겨레 훅>에 기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