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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글/미디어스 칼럼

문제는 비정규직이야, 이 바보들아!

문제는 비정규직이야, 이 바보들아!

 

[조윤호의 우파의 시대에 살아가기]
조윤호 / '보수의 나라, 대한민국' 저자

 

나는 졸업을 앞둔 대학생이다. 이제 나는 졸업 후 무엇을 할 것인지, 어떻게 먹고살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하지만 난 또래 친구들과 달리 토익이나 제2외국어, 봉사활동 등의 스펙을 쌓지 못했다. 그래서 졸업을 앞두고 약간 막막하고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정규직의 안정된 일자리? 그런 거 없어

 

진로에 대해 고민하던 중에 막연하게 언론사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떤 교육센터의 언론사 준비반에서 수업을 들었다. 현직 PD인 강사는 수강생들에게 한 명씩 일어나 왜 언론사에 입사하고 싶은지 말해보라고 했다. 하나같이 언론인의 꿈과 포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던 중 한 학생이 쭈뼛쭈뼛 앞으로 나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원래 방송작가가 하고 싶었는데요. 작가를 하면 비정규직에 삶도 불안정하다보니 부모님이 반대를 많이 하셨어요. 그래서 부모님이랑 이야기하다 피디 준비를 하기로 결심했어요. PD는 그래도 정규직이잖아요.”

 

이 말을 듣는 순간 몇몇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아마 입사면접을 보러 가서 저런 식으로 말했다간 바로 ‘광탈(광속 탈락)’할 지도 모른다. 청년들은 자기소개서와 이력서를 쓰는 내내 그리고 면접장에서 열정과 꿈에 대해 말해야만 한다. 우리는 나의 열정과 꿈이 당신네 회사에게 어떤 도움이 될지 끊임없이 어필해야 한다. 그런데 꿈과 열정은 온데간데없고 부모님이 반대해서, ‘정규직’이라서 이 직업을 선택하겠다니! 하지만 난 그의 말에서 ‘진심’을 느꼈다. 어쩌면 우리가 꿈과 열정을 팔아가며 얻고자 하는 건 정규직의 안정적인 일자리가 아닐까?

 

그의 말이 끝나고 강사였던 PD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여러분들이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게 있는데 PD도 이제 정규직의 안정된 일자리가 아니에요. 만약 여러분들이 무언가 표현하고 싶고 방송 제작이나 기획을 정말 하고 싶어서, 그래서 외주제작사건 비정규직이든 뭐든 상관없다면 PD시험을 보세요. 하지만 PD를 하는 이유가 정규직의 안정된 일자리 때문이라면 포기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문이 너무 좁아요. 방송3사도 요즘 다 외주에 비정규직 씁니다.”

 

정규직 일자리 때문에 PD가 되고 싶다는 한 학생의 말도, 이에 대해 ‘이제 그런 거 없다.’고 대답하는 PD의 말도 모두 사실이다. 청년들은, 그리고 고용시장에 새로 들어서는 구직자들은 수없이 많은 비정규직 일자리, 소수의 정규직 일자리와 마주한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정규직을 더욱 더 갈망한다.

 

취업 준비를 조금만 해본 사람이면 정규직의 안정된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정말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면 나처럼 이제 갓 취업에 대해 이것저것 알아본 사람도 그렇게 느꼈기 때문이다. 정규직의 안정된 일자리를 구하려면 대기업에 들어가거나 고시에 합격해야 한다. 하지만 대기업 채용 자리는 쉽게 나지 않고, 고시도 경쟁률이 엄청나다. 하지만 언제 붙을지도 모르는데 몇 년 동안 고시에 몰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러다가 나이 많이 먹으면 취직도 잘 안되는데 말이다.

 

정규직의 안정된 일자리에 대한 어른들의 말말말

 

청년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이 현실을 잘 모르는 어른들이 많은 것 같다. 취업준비생들에게 명절날 만나는 친척 어른들의 ‘취직’ 이야기는 스트레스 그 자체다. 아는 형은 잘 나가는 중소기업에 다니는 데도, 명절 때마다 어른들에게 “언제 이직하냐.” “아직도 거기 다니느냐.”라는 말을 들으며 산다. 친구의 사촌형은 10대 일간지 중 한 곳에서 일하는 한 기자인데도 조중동이나 방송3사 아니면 언론 취급도 안 해주는 어른들 때문에 매번 “때려 치고 대기업 시험 봐라.”라는 말에 시달린다. 어른들이 다른 사람의 직업을 무시하는 파렴치한들이라고 말하고 싶은 게 아니다. 어른들도 정규직의 안정된 일자리를 가지고 있지 않는 한 삶이 얼마나 불안정한지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식들을 다그치는 것이다.

 

▲ 필자와 같은 대학에 다니는 한 학생(시립툰)이 그린 4컷 만화. 인터넷에 떠돌며 취업준비생들의 많은 공감을 샀다.

 

정치권이나 정책결정자들, 일부 언론들의 시각도 취업준비생들의 친척어른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명박 대통령은 청년들이 ‘눈을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청년들이 왜 비정규직의 불안정한 일자리를 꺼려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어른들은 막상 자기 자식이 비정규직이 된다고 하면 열심히 해보라고 응원해줄까? 아마 웬만하면 대기업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하거나 언젠가는 대기업으로 이직하라고 닦달하지 않을까?

 

몇몇 경제학자나 칼럼리스트들은 청년들에게 해외취업이나 창업을 권한다. 해외취업이야말로 정규직의 안정된 일자리보다 더 ‘좁은 문’이다. 한국에는 없는 일자리가 해외에는 넘쳐날 거라는 생각은 어디에 근거하는지 모르겠다. 경제위기와 실업은 한국에만 닥친 일인가? 외국 나간 친구들도 취업이 안 돼서 다시 국내로 돌아오고 있다.

 

창업 역시 취업길이 막힌 청년들에게 하나의 ‘통로’는 될 수 있지만 ‘대안’은 될 수 없다. 자영업자 중 40%가 도산하고, 수없이 많은 자영업자들이 빚에 허덕이고 있다. 한국에서 자영업은 포화상태다. 청년들이 창업을 한다 해도 성공할 확률은 지극히 낮다. 조중동 같은 보수언론들마저 자영업자들의 도산이 사회문제라고 보도할 정도다. 하지만 그들은 동시에 성공한 자영업자들의 성공신화를 보여주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망하지만, 이렇게 열심히 하면 너도 성공할 수 있어.”라고 말하고 싶은 걸까?

 

정규직의 안정된 일자리를 위한 커리어, 인턴!

 

이명박 정부는 이러한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한답시고 청년인턴 제도를 적극 활용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기업들에게도 이를 권장했다. 취업에 대해 이것저것 알아보던 나 역시 실무능력도 쌓을 겸 인턴에 대해 알아보았다. 인턴은 구직자들이 거쳐야할 ‘코스’ 중 하나다. 기업이 ‘신규’ 채용 대상자들에게 ‘경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인턴을 구하려고 보니 이게 인턴인지 정직원인지 구별이 안 간다. 인턴을 하기 위해 또 ‘스펙’이 필요하다. 대기업도 아니고 중소 언론사의 인턴으로 일하려는데 온갖 화려한 스펙을 가진 취업준비생들이 모여든다. 인턴 하는데도 자기 스토리와 꿈과 열정이 필요하고, 토익성적과 무슨 놈의 '경력'이 필요하다. 경력을 쌓기 위해 인턴을 하려고 했는데 인턴에도 경력이 필요하다니. 나는 혼란스러워졌다.

 

▲ 고교 졸업생 취업박람회와 채용설명회를 통해 중소기업에 조기취업한 새내기 청년인턴사원들이 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양재동 서울시인재개발원에서 열린 '2011 중소기업 새내기 청년인턴 합동연수'에서 연수시작 전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합동연수는 서울시인재개발원이 인턴사원을 위한 별도의 연수실시가 어려운 중소기업을 지원하고 조기취업 인턴자들의 조직적응 및 역량강화를 위해 마련됐다.ⓒ뉴스1

 

여차저차 해서 인턴이 된다 치자. 그래도 정규직으로 채용된다는 보장이 없다.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일하는데 정규직이 아니라고 돈도 안 준다. 미국에서는 기업들이 신규채용을 안 늘리고 인턴을 적극 활용하여 기업을 운영한다고 하던데, 우리나라 기업들도 ‘선진국’에서 배운 모양이다. 기업들이 평일 내내 일할 수 있는 사람을 인턴으로 고용하다보니 대학생의 경우 휴학을 안 하면 인턴으로 지원하기도 힘들다. 그러다 졸업은 늦어지고, 졸업이 늦어지고 나이 먹으면 취직에 불리하고.......진퇴양난이다. 이명박 정부는 이런 인턴 제도를 청년실업 대책으로 내놓고 청년실업이 줄었다고 좋아했다. 그리고 인턴은 이명박 정부의 유일한 청년실업 대책이었다. (아, 4대강 파서 일자리 몇 개 늘린 거 빼고.)

 

문제는 비정규직이야, 이 바보들아!

 

국민통합을 내세우는 박근혜는 청년실업에 대해 어떤 대책을 가지고 있을까? 박근혜가 대선 때 내세운 청년 취업 정책은 한 마디로 ‘스펙초월’이었다. 청년들이 스펙에 매달리지 않고도 취업할 수 있도록 모든 직종에 요구되는 직무 능력을 표준화하고(국가직무능력표준시스템), 이 직무능력을 교육할 ‘스펙초월 청년취업센터’를 설립하겠다는 것이 그의 구상이다. 하지만 이미 기업들이 각자의 채용 절차를 가지고 있는데. 국가직무능력표준시스템을 수용할 지 미지수다. 오히려 취업준비생들 입장에서는 할 일이 더 늘어날지도 모른다. (노무현 정부가 내신등급제를 도입했던 때를 생각해보자. 노무현 정부는 수능에 대한 수험생들의 부담을 줄인다는 명목으로 내신등급제를 도입했지만, 수험생들의 부담은 오히려 늘었다. 수능과 내신 둘 다 잘해야 대학에 갈 수 있는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또한 취업준비생들은 이미 ‘표준화’된 토익과 ‘표준화’된 인·적성을 공부하고 있다.

 

이렇게 비판은 하지만 나에게도 답이 없다. 아마 나 역시 다른 취업준비생들처럼 열심히 스펙을 쌓고 시험 준비를 해서 취직할 것이다. 아니, 사실 그조차 불확실하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비정규직의 불안정한 일자리가 넘쳐나는 사회에서는 청년들이 정규직의 안정된 일자리로 몰려드는 현실을 개선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또한 정규직 일자리를 보장한다는 명목으로 정규직들에게 가해지는 높은 노동 강도와 긴 노동시간을 줄일 수 없다.

 

따라서 비정규직 문제, 불안정노동의 문제는 단순히 비정규직‘만’의 문제가 아니다. 청년들이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문제, 즉 한국사회의 재생산 문제가 걸려 있다. 비정규직의 노동조건과 불안안정노동을 해결하지 않고 청년실업에 대해, 한국사회의 재생산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기만이다.

 

이에 대한 박근혜의 입장은 어떤가? ‘노동의 유연성은 인정하되 기업들이 고용 형태를 공시하도록 해 사회적 압박을 유도한다.’는 것이다.(기업이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고용형태의 구체적인 내용을 외부에 공시하도록 의무화) 고용 형태를 공시하도록 하면 기업들이 “아, 우리 기업이 비정규직을 많이 사용하는 게 들통 났어. 부끄러워. 이제 정규직화를 해야겠어.”라고 생각한다는 것일까? 대법원 판결도 무시하는 이들이?

 

이런 순진한 생각을 하는 걸 보니 박근혜 시대는 청년과 구직자들, 노동자들에게 험난한 시기일 것 같다. 박근혜의 시대, 우파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뭉치고 연대하며 이 시기를 함께 견뎌야 한다. 아마 나도 그럴 것 같다.

 

 

<미디어스>에 기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