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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글/미디어스 칼럼

쌍용자동차 사태는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다

쌍용자동차 사태는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다

 

[조윤호의 우파의 시대에 살아가기]
조윤호 / '보수의 나라, 대한민국' 저자

 

지난주 목요일, 트위터를 통해 ‘쌍용자동차 무급휴직자 전원 복직’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그 순간 “아, 이제 해결된 건가?”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에도 무급휴직자 복직을 축하한다는 글이 계속 올라왔다. 하지만 골똘히 생각해보니 문제는 해결된 게 아니라 이제 시작이었다.

 

지금 필요한 건 국정조사

 

쌍용자동차 사측이 무급휴직자 복직을 발표하기 하루 전날인 지난주 수요일, 나는 우연히 대한문 앞 농성장을 찾았다. 그곳에서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이현준 씨를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그가 만약 무급휴직자들이 복직한다며 쌍용자동차 사태가 다 끝난 것처럼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보면 무슨 말을 할지 생각하니 마음이 착잡해졌다.

 

“쌍용자동차 사태의 원인은 사측이 기획한 부도입니다. 경영진이 먹튀 자본에게 회사를 넘기려고 고의로 부도를 냈다는 의혹이 있어요. 부도가 났으니 경영상의 위기라며 정리해고가 실행되었고, 이에 맞서는 노동자들에게 손배가압류(손해배상청구소송 및 재산가압류)가 가해졌습니다. 지금까지 23명의 노동자들이 희생되었습니다. 더한 비극을 막기 위해 우선 국정조사를 실시해야 합니다. 국정조사를 한다고 모든 게 해결되는 건 아니지만, 진실규명을 위한 초석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현준 씨의 말이다. 이현준 씨를 비롯한 많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대한문 앞에서 농성 중이다. 그들은 왜 이 추운 날 거리에 나와 있을까? 지난 11월 20일 한상균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전 지부장, 문기주 정비지회장, 복기성 비정규직지회 수석부지회장이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앞 철탑 위에 올라갔다. 지금도 그들은 여전히 그 높은 철탑 위에 있다. 왜 그들은 위험하게 철탑 위에 올라간 것일까?

 

국정조사가 필요한 이유

 

▲ 금속노조 쌍용자동차 정비지회 조합원 이현준씨
노무현 정부 때 상하이차가 쌍용자동차를 매입했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기술만 빼가려는 먹튀 자본이라며 매각을 반대했지만 그들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정부는 이를 방관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상하이차는 경영이 어렵다는 이유로 쌍용자동차를 포기했다. 이어 법정관리를 신청하고 2646명의 노동자들을 정리해고 했다. 노동자들은 이를 수용하지 않고 77일 간의 옥쇄파업을 벌였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노동자들을 강경 진압했고, 노동자들은 희망퇴직자 혹은 무급휴직자, 정리해고자로 뿔뿔이 흩어졌다. 갑자기 직장을 잃고 생계에 위협을 느낀 해고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이 자살이나 질병으로 죽어갔다. 그 수가 23명에 달한다.

 

하지만 최근 상하이차가 회계조작을 통해 부채비율을 높이고, ‘경영상의 위기'를 만들어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법원과 정부는 경영상의 위기라는 상하이차의 의견을 받아들여 법정관리를 수용했고, 이 판단을 근거로 사측은 노동자 2646명을 정리해고 했다. 또한 노동자들의 77일 간의 옥쇄파업 과정에서도 경찰이 노사의 협상을 기다리지 않고 과잉진압을 했다는 의혹이 있다.

 

이현준 씨가, 그리고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국정조사를 요구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국정조사를 통해 사측이 회계조작을 했는지 밝혀내자는 것이다. 경찰이 과잉진압을 했는지 밝혀내자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정부가 관리 감독을 소홀히 하지는 않았는지 밝혀내자는 것이다. 23명의 노동자들이 희생되었고, 수많은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이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다. 국정조사를 통해 그 고통의 원인인 사측의 정리해고와 경찰의 강경진압에 관한 진실을 밝혀내자는 것이다.

 

무급휴직자 복직은 쌍용차 사태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따라서 무급휴직자 복직은 쌍용차 사태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애초에 무급휴직자 복직은 2009년 노사가 합의한 사항으로, 이미 3년 전에 지켜졌어야 할 약속이다. 2646명의 해고노동자 중 무급휴직자는 455명, 희망퇴직자는 1904명, 희망퇴직을 거부한 해고자는 159명이다. 이직, 자진퇴사, 사망한 노동자가 129명이다. 설사 455명은 전원 복직된다 해도(한진중공업의 경우처럼 일감이 없다는 이유로 사측이 무기한 휴업을 할 경우 복직한 무급휴직자들도 ‘사실상의 실업자’가 된다) 남은 노동자들은 어찌할 것인가? 국정조사를 통해 진실이 밝혀지고, 정리해고의 부당성이 드러나야 농성하고 있는 해고노동자들도 집으로 돌아갈 수 있고, 더 이상의 죽음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무급휴직자 복직은 쌍용자동차 사태가 ‘일단락’된 것처럼 보이는 효과를 준다. 지난 10일 중앙일보는 1면에 쌍용자동차 사태가 ‘일단락’되었다고 보도하고, 10면에는 <국조 거론하던 쌍용차 사태 해결/ 당선인, 최대 노사현안 부담 덜어>라는 역겨운 제목을 단 기사를 실었다. 아직 해결해야 할 것들이 산더미처럼 남아 있는데도 마치 문제가 다 끝났다는 듯이 여론을 호도하고, 국정조사나 박근혜 당선인에 대한 쌍용차 노동자들의 요구를 무리한 정치공작으로 몰고 가려는 수작이다. 동아일보 역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일하는 사진을 싣고, 그 밑에 ‘동료가 돌아와서 기뻐요.’라는 설명을 달았다. 마치 모든 게 다 해결되었다는 듯이 말이다. 실제로 해고노동자들은 “이제 너도 돌아가는 거냐?”는 주변의 문자와 전화를 자주 받는다고 말했다. 이쯤 되면 사측이 국정조사를 피하기 위해 무급휴직자 복직이라는 카드를 내놓았다는 의심이 들 정도다.

 

 

궁색한 국정조사 반대 논리

 

쌍용자동차 사측 외에도 국정조사를 막으려는 세력들이 있다. 이 문제를 정치쟁점으로 만들고 싶지 않은 새누리당이다. 새누리당 환경노동위원회 위원들이 대선 전 국정조사를 분명히 약속했는데도, 새누리당은 대선이 끝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이를 회피하고 있다. 이한구 원내대표는 국정조사에 반대한다며 “왜 (철탑에) 올라가 있는지 모르겠다. 내려오셨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지난주 수요일에 만난 이현준 씨는 “왜 대한문 앞에서 농성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권투에서 상대방이 내 펀치를 계속 맞고도 끄떡 하지 않으면 다시 칠 필요가 없다고 느끼지 않나. 분향소 차리고 기자회견도 하고 우리 문제를 알리기 위해 해볼 건 다해봤는데, 사람들이 너무 무관심했다. 그래서 다른 걸 시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서울에서 농성하면서 우리 문제를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대한문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옥쇄파업도 77일이나 했고, 기자회견과 언론 인터뷰는 수도 없이 했다. 분향소를 차리고 이슈화도 시켜보려고 했으나 정치권과 사측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대한문에 농성장을 차리고 철탑 위에 올라섰다. 도대체 노동자들이 뭘 더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 어떤 이들은 일단 철탑 위에서 내려와야 사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말한다. 노동자들이 가만히 기다린다고 해결될 문제였으면 애초에 노동자들이 철탑 위에 올라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채필 고용노동부장관은 “국정조사를 하면 사태가 장기화된다.”고 말했다. 2009년 정리해고가 있었고, 지금 4년이 지났다. 사태가 장기화된 게 누구 때문일까? 바로 그걸 밝히는 작업이 국정조사이다. 어떤 노동자는 목숨을 끊고, 어떤 노동자는 철탑 위에 올라가게 만드는 이 사태의 ‘장기화’가 누구 때문에 벌어진 일인지 국정조사를 통해 밝혀야 한다.

 

쌍용자동차 사태는 노사가 알아서 해결할 문제이며, 국정조사와 같은 방식으로 정부가 개입하면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 주로 보수언론들의 지긋지긋한 레퍼토리다. 그러나 그들은 다음과 같은 사실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노사가 알아서 협상을 하고 있는데 경찰이 끼어들어 과잉진압을 했다는 의혹이 있다. 사측이 정리해고를 단행하고 노동자가 이에 맞서고 있을 때 정부와 법원이 관리감독을 소홀히 하여 사실상 사측의 편을 들었다는 의혹이 있다. 국정조사를 통해 이 의혹들을 밝혀야 한다.

 

우파의 시대에 ‘함께’ 살기

 

국정조사를 반대하는 이들의 논리는 하나같이 보수우파들의 지긋지긋한 레퍼토리에 기초한다. 기업이 경영상의 이유에 따라 정리해고를 할 수 있고, 정부나 외부세력이 기업의 경영에 개입하면 안 된다는 논리! 기업 사정이 좋아지면 노동자들을 다시 채용하고, 노동자들은 그때까지 얌전히 기다리라는 논리!

 

하지만 우리는 이 당연해 보이는 논리에 의문을 가져야 한다. 기업들이 정리해고와 이를 통한 자본철수, 이윤 확보를 위해 있지도 않은 ‘경영상의 위기’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건 아닐까? 노동자들한테는 ‘경영권’도 없는데 왜 ‘경영상’의 위기가 터지면 경영자들과 회사 이사, 간부들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해고되는 걸까? 국정조사와 해고자 복직을 이뤄내고 이를 통해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공장으로 되돌아가는 일은 이러한 질문의 연속일 것이다. 함께 살자.

 

<미디어스>에 기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