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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글/한겨레 2030잠금해제

청년들의 목소리를 위하여

대학 내 많은 학생 자치언론이

갖가지 압박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10·26 재보궐선거 이후 정치권과 언론은 2030의 정치세력화를 운운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총선을 앞두고 이러한 호들갑은 극에 달했다. 청년들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느니, 청년들이 투표를 해야 나라가 바뀐다는 이야기가 미디어를 가득 메웠다. 마치 그 이전에는 청년들이 없었던 것처럼.


하지만 언론과 정치권이 청년을 호명하기 이전에, 수많은 청년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며 자신들의 권리와 누군가의 권리를 위해 싸우고 있었다. 서울 시청 앞 광장과 여의도를 점거하고 1% 자본에 저항하는 청년들이 있었다. 희망버스에 올라타고 재능교육 농성장에 함께하던,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죽음에 연대하던 청년들이 있었다. 대학의 청소노동자들과 함께 노동에 대해 이야기하는 청년들이 있었다. 등록금 인하를 위해 재단과 학교 당국과 싸우고, ‘운동권 놈들’이라는 비아냥거림과도 싸우던 청년들도 있었다. 학벌·취업양성소로 전락해 버린 대학을 거부하는 청년들도 있었다. 이 청년들은 지금도 묵묵히 싸우고 있다.


내가 다니는 서울시립대에서도 몇몇의 학생들이 자신들의, 그리고 우리의 목소리를 위해 싸우고 있다. 서울시립대의 유일한 학생자치언론, <대학문화> 교지편집위원회가 그들이다. <대학문화>는 학교 당국의 영향을 받지 않고 진보적이고 비판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시립대 내의 유일한 학생 자치 언론이다. 학교의 예산을 받지 않고,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납부하는 학생회비의 일부를 예산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대학문화>가 ‘정치적으로 편향되어 있다’는 이유로 예산을 삭감당할 위기에 처했다. <대학문화>는 이번에 발행한 교지에서 해적기지 발언으로 논란이 된 김지윤씨와 제주 해군기지 이야기를 실었고, 국가보안법의 탄압을 받은 이들에 관한 글을 실으며 ‘표현의 자유’를 옹호했다. 그러자 일부 학생들이 <대학문화>가 정치적으로 편향되어 있으며, 심지어 빨갱이라는 색깔 공세를 퍼부었다. 이런 의견을 반영한답시고 시립대의 학생 대의원 일부가 교지 예산을 삭감하려고 한다. 누구나 교지의 내용에 대해서 비판할 수 있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논쟁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내용을 문제 삼아 예산을 삭감하는 행동은 의도와 무관하게 학생 자치와 언론을 위축시킬 수 있으며, 자기네 입맛에 맞는 내용만 실으라는 식의 언론 길들이기로 작용할 수 있다. 예산이 삭감될 경우 <대학문화>는 운영이 불가능하며, 사실상 폐간되고 말 것이다.


<대학문화> 외에도 대학 내의 많은 학생 자치 언론들이 위기에 처해 있다. 중앙대 자치언론 <중앙문화>는 학교 재단인 두산그룹을 비판하는 풍자만화를 실었다가 학교 당국의 조치로 예산을 전액 삭감당하고 말았다. 성균관대 학보사는 학교와 싸우는 시간강사 이야기를 다뤘다는 이유로 학교 쪽한테 편집권을 침해당했고, 파업 끝에 편집권을 보장받았다. 고려대의 자치언론 <고대문화> 역시 총학생회를 비판하는 글을 썼다가 총학생회로부터 예산을 삭감하겠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 충남대의 경우 자치언론의 예산을 총학생회와 대의원들이 쥐락펴락하며 자치언론을 총학생회의 홍보기구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 성신여대 자치언론의 경우 예산을 삭감당했고, 경희대 자치언론 <고황>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이처럼 청년들은 투표로만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지 않는다. 자신이 발 딛고 있는 현장에서(거리에서, 대학 안에서, 대학 바깥에서, 노동 현장에서) 청년들의 목소리를 위해 싸우는 청년들은 ‘이미’ 있다. 우리가 청년의 목소리를 원한다면, 청년들이 사회와 투쟁하길 바란다면, 이들의 목소리를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이미 싸우고 있다!

 

<한겨레>에 기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