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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글/한겨레 2030잠금해제

저 위에 사람이 있다

나는 사회에 불만이 많다. 그럴 때마다 어른들이나 몇몇 친구들은 나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네가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바꿀 수 있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냥 참으라는 말을 참 어렵게도 하시네요”라며 발끈했다. 그러나 나는 최근에야 이 말이 굉장히 슬픈 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미 많은 이들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 무관심과 냉소의 벽을 뚫고 목소리를 내기 위해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현대차 울산공장의 송전탑에 두 명의 노동자가 올라가 있다.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로 일하다 해고당한 최병승과 현대차 비정규지회 사무국장 천의봉이 송전탑에 올라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들의 요구는 현대차가 대법원의 판결에 따르라는 것이다. “2년 이상 근무한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는 불법파견에 해당하므로 현대차의 정규직”이라는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현대차가 책임지고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것이다. ‘법을 지키라’는 당연한 말을 하기 위해 노동자들은 이 추운 날 송전탑에 몸을 묶은 채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자본의 부당한 횡포와 이 횡포를 방관하는 국가에 저항하기 위해 수많은 노동자들이 ‘높은 자리’에 올라야만 했다. 사측의 부당해고에 저항하기 위해 기륭전자의 노동자들은 철탑에 올라야 했다. 화물연대 노동자들도 표준운임제와 운송료 인상을 요구하기 위해 철탑에 올라야 했다. 사측의 부당해고에 맞서 한진중공업의 해고노동자 김진숙도 크레인에 올라야 했다. 지난 수십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높은 자리에 올랐고, 굶다 쓰러졌으며 몸에 시너를 끼얹었다. 그러지 않으면 아무도 봐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아직 누군가가 목숨을 걸어야 그 사람을 한번쯤 쳐다보는 사회다. 아니, 여전히 그런 이들 앞에서 경영상의 위기나 기업 하기 좋은 나라를 들먹이고 ‘기업이 살아야, 국가경제가 살아야 니들도 살지’라고 말하는 사회다.

 

대선을 앞두고 대선주자들과 정당들이 경제민주화를 이야기한다. 법을 이렇게 저렇게 바꾸어 재벌과 대기업에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서로 소리친다. 그렇게 자신 있거든 있는 법도 무시하고, 대법원 판결도 무시하는 현대차한테 본때를 보여주길 바란다. 대선주자들은 하나같이 대기업과 재벌이 법을 지키지 않으면 엄벌에 처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그렇게 자신 있거든 현대차부터 엄벌에 처하길 바란다.

 

대선주자들이 그런 행동을 보이지 않은 채 대선공약으로 비정규직 철폐, 경제민주화, 복지를 내세운다면 이는 결국 ‘네가 높은 자리에 올라가서 세상을 바꿔’의 다른 버전이 아닌가? 대통령 시켜주면 세상을 바꾸겠다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만들어야 할 세상은 훌륭한 인품과 결단력을 지닌 누군가가 높은 자리에 올라가야만 바꿀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누군가가 굳이 높은 자리에 올라가지 않아도, 아래에 있는 우리들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는 세상이다. 노동자들은 이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스스로 송전탑에, 크레인에, 철탑에 올랐다.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은 노동자들의 분신 투쟁에 대해 ‘죽음으로 말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말했다. 나도,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정말 그 시대가 끝나길 바라고 있다. 그러나 그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노동자들은 여전히 높은 자리에 오르고 있다. 저 위에 사람이 있다. 자리 말고 그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을 보자. 그리고 노동자들이 높은 자리에 올라야만 하는 이 시대를 이만 끝내자.

 

<한겨레>에 기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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