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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글/한겨레 2030잠금해제

진정한 경제민주화란?

2012년 마지막날의 글이다. 나는 이번만은 희망찬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힘들 것 같다. 죽음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진중공업 노동자 최강서,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조 이운남 조직부장, 청년노동활동가 최경남, 전국대학노조 한국외대지부 이호일 지부장, 이기연 수석부지부장. 이들이 연달아 죽음을 맞이했다. 이들은 자본권력의 노동자 탄압에 맞서고, 자본권력의 탄압을 방조하는 정치권력의 폭력에도 맞서며 현장에서 활동했던 활동가들이다. 이들의 죽음은 ‘희망’이 사라진 우리 사회의 모습을 상징한다.

 

우리는 이 죽음의 행렬을 막아야 한다. 우리는 이미 23명의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잇따른 죽음을 목격했다. 이런 비극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 이러한 비극을 막기 위해 필요한 건 첫째도 연대이며 둘째도 연대이며 셋째도 연대이다. 연대를 통해 노동자와 활동가들에게 희망을 보여주고, 죽음을 선택할 만큼 상황이 절망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연대를 통해 우리가 이루고 싶은 변화(미시적이든 거시적이든)가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

‘손배가압류 철폐’가 절망에서 희망으로 나아가는 한 단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손배가압류란 손해배상 청구소송 및 재산가압류의 줄임말이다. 사용자(자본가)가 노동자의 파업으로 인해 손해를 입었다며 제기하는 민사소송과 그 소송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재산가압류라는 행정집행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2003년 1월 두산중공업 노동자 배달호가 65억원에 달하는 사쪽의 손해배상 청구와 재산가압류에 저항하며 분신자살했다. 한진중공업 노동자 김주익도 사쪽의 구조조정과 150억원에 달하는 손해배상 청구를 철회하라며 고공농성을 벌이던 중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기업이 노조나 노동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액수가 지난해 7월 기준으로 700억1000만원에 달했다고 한다. 가압류 신청 금액도 지난해 기준 160억4900만원이다. 최강서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한진중공업 사쪽의 손해배상 청구액은 158억원이다. 이운남을 비롯한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 현대차 사쪽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액은 116억원이다. 노동자들이 평생을 일해도 만져보기 힘든 돈 때문에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다.

 

손배가압류는 사쪽의 사유재산을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손배가압류와 마주한 노동자들은 자본과의 싸움을 포기한다. 사쪽 관리자들은 사표를 쓰면 소송을 철회하겠다며 노동자들의 입을 막고, 까불면 손해배상 청구를 하겠다며 노동자들의 단결을 막는다. 국민을 대변한다는 국가마저 노조와 노동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제기한다. 자본과 국가권력의 공세 앞에 노동자들은 힘없이 무너져 내린다.

 

박근혜 당선인이 경제‘민주화’를 이루겠다고 한다. 민주주의란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누구에게나 보장하는 사회를 뜻한다. 따라서 재벌개혁에서 더 나아가 노동자와 서민에게 경제를 통제하고 결정할 힘이 있어야 진정한 경제민주화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자본의 탄압에 맞설 방어적 무기인 노동권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자본과 국가권력은 손배가압류라는 무기를 통해 노동자들의 노동 3권을 짓밟는다. 죽음의 행렬을 멈추고,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기 위해 손배가압류를 없애고, 노동권을 보장받는 사회로 나아가자. 그리고 노동자와 서민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는 ‘경제민주화’로 나아가자.

 

<한겨레>에 기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