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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길 칼럼] 이념은 간다

[김수길 칼럼] 이념은 간다

[중앙일보] 입력 2012.04.25 00:53 / 수정 2012.04.25 00:07


‘봄날은 간다…그래도’

 4·11 총선 결과와 그 평가에 대해 김호기(52) 연세대 교수는 경향신문에 이런 제목의 글을 썼다.

안타까움을 바탕에 깔고, 민주당은 이번 총선이 분명한 패배임을 인정해야 하며 더욱 더 ‘중도 진보’ 정당으로서의 자리매김을 확실히 해야 한다고 쓴 글이다. ‘좌 클릭’이니, 아니니 하는 노선 논쟁보다는 구체적 정책을 제시하라는 주문과 함께.

 그러나 젊은 세대는 별 안타까움이 없다. 대신 불만과 아쉬움이 보인다.

 ‘닥치고 투표? 닥치고 정치?’

 역시 4·11 총선을 놓고 한겨레에 서울시립대 4학년 조윤호씨가 쓴 글의 제목이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우리들에게 과거에 대한 심판만을 이야기하던 그들은 결국 집권당한테 또 한번 기회를 주고 말았다’라는 대목이 핵심이다. 담담하다.


총선을 앞둔 올 3월 다음과 같은 제목의 책이 한 권 나왔다.

 『이런 나라 물려줘서 정말 미안해』.

 헤럴드경제에서 일하는 33세부터 48세까지의 기자들이 쓴 책이다.

30대 후반~40대 중반의 세대를 ‘잊혀졌다가(Forgotten) 사회를 바꾸는 사람들’이란 뜻에서 F세대로 명명하고 그들의 분노·자성·희망을 담아냈다. 386(이제는 486)세대의 동생뻘이자 2040세대의 맏형·맏언니로 지난해 4·27 재·보선과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세대 투표’를 표출한 주역이 F세대임을 자임했다.

 그러나 4·11 총선에서 2040 연대에는 금이 갔다. 출구조사 결과 새누리:민주당 지지율이 20대와 30대에서는 지난해 재·보선 때의 35:65 기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지만, 40대에서는 45:55로 많이 다르게 나왔다. 『이런 나라…』의 대표 저자 함영훈(48)씨는 이를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2030과 달리 40대는 ‘따져보고’ 심판론에 기댔다. 변화를 희구하며 야당에 기대를 걸었지만 실망했고, 여당이 집권해도 야당 못지않게 변화할 것 같은 느낌을 가졌다. 2040 연대에서 40대가 약간 ‘변절’했다고 하지만, 여당이 집권해도 사실상의 정권 교체로 여긴다면 40대의 변심은 탄력을 이어갈 수 있다. 그러나 여당이 탐욕적 보수의 압박에 굴복한다면 40대의 표심은 다시 지난해 서울시장 선거 때로 돌아간다.”

 그럼, 20대는 어떤 생각일까. 한 단면을 보자.

 ‘찍어줘도 개라는 나꼼수와 386에게 작별을 고한다!’

 점령하라(Occupy) 운동을 주도하는 ‘대학생사람연대’가 4월 14일 올린 성명 제목이다.

 “… ‘투표합시다’ 캠페인의 주요 계몽 대상이 20대… 그러니 20대들만 투표해 주면 자신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여기서 실망스러운 거다… 우리에게 구걸하지 말고 좀 더 섹시한 제안을 하란 말이다… 우리들은 97년 이후부터 고통스러웠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 정권을 잡았던 바로 그 시기, 우리는 등록금 폭등을 경험했고… 일부 유명인사들은 20대들이 자신들의 망가진 모습을 보기 위해 투표하는 거라 생각하는 것 같다… 한국 정치는 예능이 됐고, 투표하는 사람들은 예능 시청자가 됐다… 끔찍했던 민주정부 10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투표로 바꿀 만한 대안 세력이 보이지 않는다….”

 이들의 글·책·성명이 각 세대 모든 사람의 생각을 대표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50대에서 40대, 20대로 젊어질 수록 변화의 추세는 분명히 보인다. 탈 이념, 탈 진영논리다.

 보수의 기사회생이 4·11 총선의 최대 수확(?)이 아니라 보수·진보의 어쩔 수 없는 수렴이 4·11 총선의 최대 수확(!)이며, 따라서 4·11 총선의 승자는 박근혜 위원장이나 새누리당이 아니라 유권자라고 보는 이유다.

 이제 연말 대선에서 어디든 정권을 잡으려면 2040 세대를 제대로 볼 수밖에 없다. 그러려면 보수·진보는 어느 정도 수렴되지 않을 수 없다. 지긋지긋한 진영 논리도 통하지 않을 터이다. 2040 세대는 어디가 잡든 상관없이 일자리·교육·주거·여가 등 미래 비전을 보고 판단한다는 것이 이번 선거에서 명확해졌다. 또 2040은 현실적이라 실현성 없는 황당한 공약에 넘어가지도 않았다. 자신들의 노후가 걸려 있음을 잘 안다.

 이 봄, 봄날은 간다. 이념도 간다. 봄날은 안타깝지만, 진영 논리는 안 그렇다.

 4·11 총선의 승자가 누구인지를 제대로 보고 그들을 올 연말 대선에서도 승자로 모시려는 쪽이 승리할 것이다. 올해 대선은 좀 대선답게 치르자. 유권자들이 승자가 되도록.

김수길 주필